<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제13화 마지막 목격자.
백경환·백희정 부녀는 2009년 8월 24일과 26일 검찰에 의해 긴급 체포된다. 그들은 2010년 2월 8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출소했다. 그 후 부녀는 일 년 반 동안 일상생활을 하다가 2011년 11월 10일 항소심에서 다시 법정 구속됐다.
정말 이들 부녀가 범인이었을까? 부녀가 1심 무죄 판결 후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동안 이들을 접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1심 판결 이후, 목격자들의 증언
첫 번째는 가족이다. 가족은 1심 무죄를 받고 아버지와 막내가 교도소에서 나왔을 때, 검찰에서 왜 그런 내용으로 자백했는지 궁금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검찰이 말을 '베베 꼬면서', '슬슬 놀려가면서' 질문했다고 답했다. 아들은 왜 아니라고 말 못 했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아버지는 욱하면서 검찰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눈물만 흘렸다. 아들은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고 했다.
백경환은 집에서 농사를 짓고 다른 사람 일을 해줬다. 고물을 줍기도 했다. 당시 동네 사람들은 백 씨가 힘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큰딸이 종종 집에 와서 아버지를 살폈다. 방안에 휴지가 뒹굴었고 책상 위에는 성경책과 돋보기가 놓여 있었다.
두 번째 목격자는 김밥집 여주인 김미순 씨다. 출소 후 백희정은 김미순 씨를 가끔 찾아왔다. 김미순 씨도 백희정이 한 자백이 사실인지 궁금했다. 나만 알면 안 되겠느냐며 계속 유도했지만 백희정은 범행을 부인했다.
백희정을 약 2~3년 가까이서 관찰했던 김미순 씨도 백 씨가 어머니를 살해할 그런 악질은 아니라고 여긴다. 하지만, 백희정은 검찰 현장검증 때도 범행을 명백히 시인했다. 당시 백희정은 옥상에서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면서 범행을 재연했다. 청산가리를 넣고 나서, 막걸리 병을 흔들어댔다. 당시 검찰이 왜 흔드느냐고 묻자 백희정은 "잘 녹으라고"라고 대답했다. 검찰은 이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재연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미선 씨는 백희정에게 독특한 버릇이 하나 있다고 했다. 물을 마셔도 그냥 마시지 않고 컵을 돌린다는 것이다. 백희정은 항상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맥주를 마실 때나 뭘 마시든 항상 잔을 돌려서 마신다고 했다. 김미선 씨는 이런 버릇이 게임 중독 때문에 생기는 불안 증상이라 여겼다. 백희정은 가만히 있을 때는 휴대전화를 부단히 만지작거렸다.
세 번째 목격자는 백희정 씨 둘째 언니가 다니는 순천 ○○교회 목사다. 부녀가 1심 재판을 받을 때마다 목사는 법정에서 방청하곤 했다. 당시 목사는 백희정에게도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옷도 깨끗하지 않고 냄새도 나는데 인터넷 채팅으로 남자를 만나러 다녔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재판장은 법정 한쪽에 슬라이드를 켜고 백희정 씨에게 OHP 필름 위에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피고인석에 섰던 백희정은 피의자로 지목된 마을 아저씨 집 내부 구조를 그리기 시작했다. 목사는 백희정이 그림 그리는 광경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백희정은 법정에서 그림 속 방을 가리키며 성추행 장면을 '웃으면서' 묘사했다.
1심 무죄판결 후, 부녀는 출소했고, 가족들은 주말이 되면 순천에 있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둘째 딸이 아버지와 막내를 모두 교회로 데려왔다. 목사는 그때부터 백경환과 자주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목사는 백 씨에게서 특이점을 한 가지 발견했다. 대
화를 해보니 백경환 씨는 똑같은 상황을 이야기해도 '어제 누구와 만나서 국을 먹었다'라고 하다가 잠시 있다가는 '자장면을 먹었다'는 등 다르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목사가 보기에 백경환은 '디테일'에 약했다.
마지막 목격자는 광양 식당 사장이다.
백희정은 출소한 지 몇 달 후 광양에 있는 식당에 취직했다. 목사가 같은 교회 신도였던 식당 사장에게 백희정을 부탁한 것이다.
식당 사장은 희정에게 냄새도 나고 옷차림새도 지저분했지만 신앙 차원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사장은 식당 옥상에 있는 집에 백희정이 살 곳을 마련했다. 백희정의 짐을 가지고 온 사람은 백경환이었다. 식당 사장은 교회에서 백경환을 본 적이 있었다. 고향 마을에서 트럭에다가 경운기를 싣고서는 교회 밭을 갈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백경환은 "희정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희정은 평일에는 식당일을 하다가 주말에는 교회로 나갔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꼴로 광주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재판에 참석했다.
식당 사장은 백희정이 식당에서 쓸 재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밥을 먹다가 손님이 오면 일어나 맞이하지 않았다. 행동도 늦고 식탁을 닦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신앙 차원에서 받아들였기에 백희정을 따뜻하게 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백희정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당사자였다는 걸 알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사장은 일절 정보를 주지 않았던 목사에게 몹시 맘이 상했다고 한다.
"섭섭했어. 무죄를 받았든 어쨌든, 우리는 먹는 음식을 하는 업이야. 우리가 지저분하다, 냄새난다며 심하게 구박하거나 자존심 상하는 말을 한다면 해코지할 수도 있다는 거지. 사전에 정보를 줬으면 우리가 조심도 하고 더 잘해주려고 했겠지요."
그런데 식당 사장은 백희정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당사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바로 백희정이 직접 털어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식당 사장은 백희정을 해고하지 않았다. 사장은 백희정이 누구를 죽일 만큼 그런 악질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사장은 오히려 "교도소에 살아보니 좋더라"라고 말하는 백희정을 '부족하다'라고 봤다. 보통 사람이라면 응당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잘해준다고 털어놓는 백희정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숨기지 않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희정이 인터넷 채팅을 한다는 사실도 사장 귀에 들어왔다. 아주머니들이 잘해준다고 희정이 털어놓은 모양이었다. 사장은 '백희정이 물 마실 때 잔을 흔드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라고 답했다.
식당 사장은 백희정이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당사자라고 털어놓자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고 했다. 식당 사장은 광주고등법원 재판 전날에는 항상 백희정을 순천 언니 집 근처까지 태워다 줬다. 백경환은 순천에서 백희정을 기다렸다. 희정은 언니 집에서 묵을지 아버지를 따라 고향 집에 가서 머물지를 선택했다. 식당 사장은 부녀 관계가 사건 쟁점인 만큼 유심히 관찰했다.
식당 사장은 백희정이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백희정이 식당에 머무는 동안 백경환이 찾아온 적은 없었다. 백희정이 머문 옥상 집으로 가는 계단은 실내에 있다. 낯선 사람이 계단을 지나가면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11년 11월 10일 광주고등법원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희정은 본인이 무죄로 나올 것처럼 이야기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선고 날 아침 순천에서 광주로 출발했다. 아버지는 교회 목사에게 "판사님이 빨리 끝내줘야 할 텐데"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빨리 돌아와서 OO댁 하우스 일을 해주기로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 품삯을 받아 농약을 사서 밭에 약을 칠 계획이었다.
그날 광양 식당 사장은 법원이 백경환에게 무기징역, 백희정에게 20년형을 선고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장은 그때야 희정이 살던 방으로 올라가 봤다. 이불은 개지 않았고, 바닥은 담배 재와 먼지로 뒤엉켜 있었다. 백희정이 구속된 후 식당 가게로 우편물이 날라 왔다. 그것은 게임 접속 비용 등을 포함한 백희정 휴대전화 요금 통지서였다. 백경환은 그 후로 농사를 짓지 못해 농협 대출 담보로 잡혀 있던 집터는 경매로 넘어갔다. 백희정 씨 언니들은 '결혼 후에도 나물이며 채소를 갖다 먹곤 했던 고향 집이 없어졌다'며 한탄했다.
한 가족이 파국을 맞이한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은 부녀 성관계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검찰 항소이유서는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경환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세 딸을 모두 건드렸다는 자백이었다.
'피고인 백경환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백희정을 성추행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고, 또한 조사과정에서 언니들인 백○○, 백○○에 대한 성추행 사실도 일부 시인하였습니다. 그러나 백○○, 백○○은 현재 결혼을 한 상태이므로 이 부분에 대한 조서는 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검찰 항소이유서 77p
검찰 주장대로라면 세 딸을 모두 성추행한 것은 마을 아저씨가 아니라 바로 아버지, 백경환이었다. 하지만, 취재 중 큰딸은 아버지를 이야기하면서 몇 번이나 목이 메었다. 1심 무죄를 받고 출소한 아버지를 걱정해 고향 집을 자주 찾곤 했다. 둘째 딸은 결혼 후 아이를 낳으려고 친정 집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출소한 아버지를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데려왔다. 필자가 백경환을 면회하고자 순천교도소를 갈 때는 둘째 딸과 동행했다. 그때 부녀 풍경은 '성추행'이란 단어와 멀어 보였다.
무엇보다 두 딸이 아버지 결백을 주장한다.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들은 검찰 주장대로 아버지와 막내가 범인임을 알면서도 은폐에 가담하는 것일까? 이제부터 우리는 검찰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하나씩 따져보겠다.
검찰 공소장을 기반으로, 당시 통화기록, 주변 진술을 바탕으로 나흘간 기억을 재구성해보자. 우선 2009년 7월 2일부터 시작한다.
(제14화 – '첫째 날 재구성'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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