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제복 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경찰청장까지)
외사 수사과(당시 외사3과)는 인터폴에 보내는 공문을 담당한다. 외국으로 도망간 피의자 범죄 내용은 외사과로 들어온다. 외사과 직원은 영어로 사건 개요를 작성해 피의자가 도망간 국가로 보낸다. 조현오가 외사3과장일 때 좋은 소식이 들렸다. 2004년 4월 선배인 허준영이 경찰청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허준영은 2005년 1월 경무관 인사를 단행했다. 조현오도 인사 대상이었다. 경무관이 되면 보통 지방청 차장급으로 출발한다. 당시 경무관 ‘3대 보직’은 정보심의관, 외사관리관, 감사관이었다. 여기에 서울청 경무부장과 정보관리부장까지를 ‘5대 보직’이라고 한다.
조현오는 외사관리관이 됐다. 관리관, 심의관, 기획관 등 ‘관’이 붙는 직책은 기관 고유 업무가 아닌 기관장 보좌 역할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당시는 업무성격과 관계없이 주로 ‘국’은 치안감이 ‘관’급 부서는 경무관이 맡는 식으로 구분됐다.
허준영은 조현오에게 몇 가지 과제를 맡겼다. 외사국 승격과 더불어 주재관 인원수를 30명 늘리라고 지시했다. 당시 교통관리관실도 교통국으로 승격하고자 애썼다. 먼저 움직인 교통관리관실을 제치고 외사관리관실이 승격하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모양새도 나빴다. 주재관 인원을 갑자기 30명이나 늘리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런데 조현오는 모두 해낸다. 2006년 외사관리관실은 외사국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정작 일을 시킨 허준영은 그 전에 경찰청장에서 물러난다. 2005년 11월 15일 여의도에서 한미FTA 반대 집회 중 농민 두 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2006년 2월 10일 이택순이 경찰청장으로 취임한다. 이택순은 조현오에게 ‘감사관’을 맡기고자 했다. 감사관은 감사·감찰 업무를 맡는다. 주변 압력을 견뎌내야 하고 뒷거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택순은 신중하게 적임자를 수소문했고 조현오를 선택한다.
2006년 말 조현오는 치안감으로 승진한다. 보직은 경비국장이었다. 2007년 4월 한화 회장인 김승연이 보복 폭행을 저질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5월 한화 고문과 이택순이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다. 경찰청장 로비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이택순은 자기가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검찰에 수사를 맡길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다. 경찰청장이 경찰 치부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게 맡긴다는 건 조직 안에서 용납되기 어려웠다. 경찰대 1기 출신인 황운하 총경은 경찰 내부 게시판에 청장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고 징계를 당했다.
경찰 내부 논의체인 전국지휘관 회의에서도 같은 의견이 나왔다. 전국지휘관 회의에는 지방청장, 국관, 본청 직속 기관장 등이 참석한다. 치안감 급은 대부분 참석한다고 보면 된다. 이 회의에서 이택순에게 퇴진을 권한 사람은 네 명이었고 그중 한 명이 조현오였다.
하지만, 네 명 가운데 이택순과 매일 마주치는 사람은 조현오뿐이었다. 나머지 세 명은 근무지가 서울 밖이었다. 이택순은 조현오를 ‘시저를 찌른 브루투스’라고 빗대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경찰청 직원은 청장 눈치 때문에 조현오를 멀리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현오를 다독인 사람은 종합경찰학교장 김석기였다. 적어도 김석기는 조현오를 인정했다.
2008년 2월 11일 어청수 경찰청장이 취임한다. 조현오는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보직을 옮긴다. 그해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열린다. 광화문 집회가 길어지면서 전국 전·의경 200개 중대가 집회에 투입된다. 청와대 바로 앞인 내자동 로터리가 뚫리자 어청수는 적잖이 당황했다. 어청수는 7월 22일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김석기에게 맡긴다.
2009년 1월 18일 서울지방경찰청장인 김석기는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됐다. 김석기는 1월 29일 어청수가 퇴임하자 청장 역할을 맡는다. 공식 임명은 되지 않았지만 경찰청 수장 자리를 비워둘 수 없었다. 김석기는 치안정감 명단에 조현오를 넣는다.
<서울지방경찰청장 주상용. 경찰대학장 김정식, 경찰청 차장 이길범. 경기지방경찰청장 조현오>
하지만, 김석기는 2월 10일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한 달 뒤에 사퇴하면서 경찰청장에 오르지 못했다. 다음 청장 후보군에 눈길이 쏠렸고 조현오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그러나 치안정감이 되고 갓 일주일을 넘긴 조현오는 준비되지 않았다.
2009년 2월 15일 새 경찰청장에 해경청장인 강희락이 임명된다. 이후 조현오는 강희락 청장에게 견제를 받았다고 한다.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쌍용자동차 노조 진압으로 청와대 인정을 받았다. ‘용산참사’처럼 사망자 없이 정리했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조현오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임명된다.
조현오는 당시 서울청장 자리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경비통이 필요했다. 2010년 11월 11일 G20 서울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찰은 요인 보호를 위한 시뮬레이션을 끝없이 반복한다. 그 책임자가 조현오였다.
2010년 8월 9일 조현오는 청와대 측으로부터 경찰청장으로 내정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8월 14일, KBS는 5개월 전 조현오가 서울경찰청 기동대 지휘관 내부 강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를 언급했다고 보도한다. 8월 18일 변호사 곽상언(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은 ‘사자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다.
경찰 안에서는 조현오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현오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조현오는 8월 30일 청와대에서 경찰청장 임명장을 받는다.
조현오에게 ‘빽’은 자신을 인정하고 등용한 상사였다. 하지만, 조현오가 자신을 인정한 상사 힘만 빌려 경찰청장이 될 수는 없었다. 역시 ‘관운’이 받쳐줘야 한다. 그렇다면, 그 ‘관운’이라는 게 과연 뭘까.
허준영, 김석기가 자신을 아낀 것처럼 조현오도 ‘차기 경찰청장’ 후보를 키우고자 했다. 조현오는 2011년 11월 능력과 인품을 모두 갖춘 차기 경찰청장 후보들을 치안정감으로 전진 배치했다. 그는 그 치안정감 중에서 경찰청장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종준 경찰청 차장, 이강덕 서울지방경찰청장, 이철규 경기지방경찰청장, 강경량 경찰대학장, 서천호 부산지방경찰청장>
조현오가 기대했던 미래 청장들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경찰청 차장인 박종준은 2011년 12월 말 사퇴한다. 2012년 총선 출마를 위해서였다. 이철규(간부후보 29기)는 2012년 2월 29일 제일저축은행 금품수수 건으로 구속된다.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복귀는 할 수 없었다. 이철규가 구속되면서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서천호가 맡는다. 하지만, 불과 1개월 뒤에 ‘오원춘 사건’이 터졌다. 조현오는 이 사건 책임을 지고 4월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뜻을 밝혔다. 하지만, 서천호에게 ‘오원춘 사건’은 악재로 작용했고 그 역시 경찰대학장으로 경력을 마감한다. 이강덕, 강경량 모두 경찰청장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조현오가 자진사퇴를 했다면 봉하 쪽에서 차명계좌 발언을 더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현오는 누구보다 경찰청장이 되고 싶었다. 인사청문회에 나선 조현오는 의원들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존경하는 위원님, 저에게 경찰청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하여 경찰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겠습니다.”
참모는 지휘관과 달리 자기 색을 드러낼 수 없다. 조현오가 참모시절 건의를 하면 경찰청장들은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하며 한 가지 충고를 덧붙였다.
“나 혼자 잘 되려고 이러는 줄 아느냐?”
“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너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다.”
조현오는 전임자 조언을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경찰청장 해보니까 다 뻥이야.”
경찰 조직에서 가장 큰 권한인 인사권과 감찰권은 경찰청장에게 있다. 한 경찰은 조현오를 ‘황야의 무법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자기 하고 싶은 것은 원 없이 다 누렸다는 얘기다.
다음에는 조현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전·의경 가혹행위 근절’ 과정을 짚어보겠다.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부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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