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5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 리브스'였어!

 

"와! 끝내준다"

 

키아누 리브스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 <스트리트 킹>(2008년)을 본 소감이다. LA경찰국이 배경인 이 영화는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조직을 보여준다. LA수사국 완더 서장은 권력지향적이고 동료 경찰들도 범죄에 가담하며 이권을 챙긴다. 정의와 진실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은 키아누 리브스뿐이다.

 

현실에도 이와 비슷한 인물이 있다. 2012년 국정원 댓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윗선 개입을 폭로한 권은희 씨다. '권은희 고립되다'(2013.9.18. 오마이뉴스) 기사처럼 조직에서 그녀는 키아누 리브스와 같은 처지였다. 법정에 나온 당시 수서경찰서장, 사이버팀장, 지능범죄수사팀장은 권은희 과장과 견해가 달랐다. 하지만 우리는 권은희 씨 용기와 결단에 박수를 보냈고 진보 언론과 민주당 정치인들은  그녀를 '광주의 딸'로 칭했다.

 

이번 장은 주인공 김헌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김헌기 수사 인생 굴곡을 살펴보려면 국정원 댓글 경찰 수사 이해가 있어야 하겠다.

 


 

필자는 이 사건이 한참 지나고 한 경찰 간부를 만났다.

 

"저 모르세요? 나 텔레비전에 많이 나왔는데."

 

2012년 서울지방경찰청 수서경찰서장이던 그는 권은희 씨 상급자였다. 그해 12월 16일 서울청 지시로 대선을 사흘 앞두고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중간발표를 했다. 언론은 그 공로로 그가 경무관 승진을 했다고 보도한다.

 

그는 승진에 눈이 멀어서 권은희 씨와 다른 주장을 했을까? 그런데 이야기를 할수록 그는 부패한 완더 서장처럼 벽 안에 돈을 감추고 부패한 부하 뒤를 봐주는 그런 인물과 거리가 멀었다.

 

경찰 조직 구성원 대부분이 동의하는 조직 특징이 있다. 경찰은 기무사나 국정원과 달리 개방된 조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사불란해도 검찰처럼 구성원끼리 의리 개념이 강하지 않다. 문재인 정권에서 드러난 것처럼 경찰은 다른 조직보다 적폐 청산에 앞장섰으며 스스로 특별수사팀을 설치해 상급자를 무더기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경찰이 해야 할 적폐 청산으로 아예 거론되지 않는 사건이 있다. 바로 디도스 사건 수사와 국정원 댓글 사건 경찰 수사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부실 수사를 지적했던 거센 목소리가 문재인 정권 들어 잦아들었다. 경찰 수사가 잘못됐다면 진실을 밝히기 더 없는 기회를 맞았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2012년 12월 19일 대선을 앞둔 11일 저녁 7시쯤 서울지방경찰청 관할 수서경찰서 도곡지구대로 신고가 들어온다. '국정원 선거 댓글사건' 서막이다. 민주당은 12일 용의자 김 씨와 김 씨가 소속된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서경찰서에 고발했다. 김 씨가 제출한 PC와 노트북은 서울청 분석팀이 조사했다. 당시 수서경찰서 디지털 분석 역량이 부족해 서울청이 디지털 포렌식을 맡았다. 이 작업은 경찰청 연구관도 파견돼 거들었다. 당시 수서경찰서가 서울청에 요청한 키워드는 이렇다.

 

강금실, 검찰개혁, 공약, 군대, 군복무, 굿판, 김대중, 김두관, 김어준, 납세, 네거티브, 노동자, 노무현, 단일화, 대선, 명품 안경, 명품 의자, 바른손, 사람사는세상, 선거, 선거사무실, 이은미, 종교평화법, 연설, 진선미, 테마주, 호남, 힐링캠프, 협력, 열쇠, 동계올림픽, DMZ, 사람, 수임료, 사랑채, 나라사랑, 네이버…

 

단어 하나를 분석하면 6시간 정도 걸린다. 서울청은 신속한 수사를 내세워 수서경찰서가 요청한 키워드 100개 가운데 대선과 관련 있는 단어 4개(문재인, 박근혜, 새누리당, 민주통합당)만 추려 조사를 진행한다. 이 결과를 김용판 서울청장이 수서경찰서장에게 명령해 16일에 선거 전, 중간발표했다.

 

"댓글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통령 후보 관련 수사는 통상 선거 전에 발표를 해왔다. 2002년 이회창 대표 아들 병역비리 사건을 터트린 김대엽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병풍수사결과를 선거 전 발표했다. 2007년 말,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BBK수사결과도 선거 전에 발표했다.

 

국정원 댓글 경찰 수사 문제는 중간발표와 최종 발표가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키워드를 확장해 분석한 최종 수사결과 발표는 선거가 끝나고 2013년 1월 31일 발표된다.

 

"정치적 성향 댓글을 49개 달았다."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경찰이 수사결과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2013년 4월 18일 검찰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팀장으로 특별수사팀이 구성했다. 그리고 이틀 후, 권은희 수사과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 수사 윗선 개입'을 폭로하면서 수사결과 조작설에 힘이 실렸다.

 

"서울청에서 분석 키워드를 4개로 줄였다."

"경찰청에서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수사에 압력을 넣었다."

"경찰청 고위간부가 수차례 전화해 '불법선거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흘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 후로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모든 게 착착 맞아떨어졌다. 윤석열 팀장이 이끄는 검찰특별수사팀이 권은희 과장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아낸 것이다.

 

바로 서울청에서 분석관들끼리 대화가 담긴 CCTV 영상이다.

 

당시 서울청은 공정성을 보장하고자 분석실에서 조사 과정을 24시간 녹화했다. CCTV 분량은 모두 127시간이다.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영상에서 한 직원은 "노다지다. 노다지…"라고 말하고, 다른 직원은 "언제 다 보냐고, 왜 자꾸 나와"라고 투덜거린다. "닉네임을 찾았다"며 손뼉 치고 "고기 사 달라"는 말도 나온다.

 

검찰은 김용판 서울청장이 댓글이 나온 것을 알면서도 수서경찰서장을 시켜서 허위수사발표를 하게 했다며 직권남용으로 기소했다. 결과는 어땠나. 김용판은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검찰은 다시 권은희를 위증죄로 기소한다. 권은희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시기 뉴스를 검색하면 두 가지 주장만 판친다. 권은희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김용판을 무죄 선고한 법원은 '썩은 것'이다. 김용판 주장을 인정하는 이들에게 권은희 폭로는 '원맨쇼'다. 대체 진실은 무엇인가.

 


그래도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에 있었다. 2013년 7월 25일 제317회 임시국회에서 '국가정보원댓글의혹사건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조사'가 그런 사례일 것이다. 당시 야당(민주당) 의원은 검찰이 확보한 서울청 분석실 CCTV 영상 자료를 최대한 활용했다. 이를 근거로 이성한 경찰청장과 이 사건 경찰 관계자들에게 허위수사를 질책했다.

 

이 가운데 당시 여당(새누리당) 소속인 윤재옥 의원 발언이 눈에 띈다. 윤재옥 의원은 경찰대 1기 출신이고 경기지방경찰청을 지냈다. 윤 의원은 검찰이 제시한 CCTV 127시간을 분석해 검찰 수사결과와 전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떤 것은 빼버리고 또 자기 논리를 더 부각하기 위해서 장면의 구체적 설명을 다르게 표현하기도 하고....(중략).... 그리고 '싹 갈아 버려' 이런 것도 지금 이 부분만 부각하고 앞뒤 내용은 싹 다 빼버렸어요."

 

검찰이 전체 맥락을 무시하고 부분 부분 편집하고 짜깁기 해 증거를 조작한 것처럼 호도했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이끄는 중앙지검 특별수사팀 작품이었다. 윤재옥 의원은 이 사건에서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서 수사를 했듯이 왜 서울청은 그렇게 못했는지 질타했다.

 

2018년 '버닝썬 사건'을 보자. 관할은 강남경찰서지만 서울청 광역수사대가 처리했다. 서울청 수사능력이 더 우수하고 수사 인력도 훨씬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사건입니까. 사실은 정말 경찰에 몇 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 한 큰 사건이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지방청에서 수사를 장악해 가지고 수사를 해야 되지 디지털 분석만 해 가지고 내려보내고 또 나머지 수사는 일선서에 맡기고… 어렵고 힘든 일은 자꾸 밑으로 내려보내서 책임지라고 하고 문제 생기면 뒤로 숨고 이런 상급기관이나 상급자 모습이… (이하 생략)"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선거에서 진 쪽은 수사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 선거에 진 쪽은 경찰 부실수사로 몰아갈 것이고 검찰은 경찰 수사가 미진한 부분을 찾으려 애쓸 것이다.

 

 

조현오 청장 시절, 2011년 경찰이 수사한 디도스 사건이 그랬다. 결국 경찰 수사 축소 은폐 의혹으로 특검까지 갔다. 선거 관련 수사 담당자들은 특검이나 검찰 특별수사팀, 국회 조사위, 국정감사 등에 불려 나가게 돼 있다. 즉 서울청에서 직접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챙기지 못한 이유는 한 줄로 정리된다.

 

“똥물 튀길까 봐.”

 

그래서 수서경찰서가 맡은 사건을 누구도 손을 대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윤재옥 의원은 이 지점에서 갈등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일선 서에 수사 책임을 맡기고 디지털증거분석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지방청에서 하다 보니까 이게 일선 서하고 수사를 지휘해야 될 지방청이 마치 서로 대등한 관계인 양 수사 관련해서 계속 서로 의견 일치가 안 되고 또 이런 과정이다 노출되고…"

 

윤재옥 의원은 권은희 씨 행동도 과했다고 평가했다.

 

"수서 수사과장이 제가 알기에는 사이버수사 경험이 많은 분이 아니에요. 사법시험 출신이라서 법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중략)… 일선 서 수사과장 개인이 이 수사를 전부 자기가 판단한 대로, 자기 생각대로 수사를 끌고 가려고 하고 또 그것을 초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좀 수사지휘를 했는데, 거기에 반발하니까 전부 다… 뭐 잘못도 이야기하면 구설에 오르내리고 물의가 야기되니까 전부 뒤로 빠져 버리고 이런 현상이 생겼지 않습니까."

 

당시 권은희 수사과장에게 수사지휘 관련 윗선은 경찰서장, 서울청, 경찰청이다.

 

우선 첫 번째, 당시 수서경찰서장은 회의석상에서 수사 방향을 논의하고 결론을 내려 지시하는 식으로 유도했다. 이런 수사지휘 방식은 빌미를 줄 여지가 없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더 윗선 경찰청은 어떨까. 당시 경찰청 모 담당과장은 큰 사건이 나면 일선 경찰서에 전화를 자주 하는 사람이다. 실무자와 통화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중간 단계를 거쳐 보고받으면 시간이 걸리며 그 과정에서 사실이 왜곡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관련하여 수서경찰서와 통화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주변에서 함부로 전화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압력 행사한다는 말 듣게 된다고. 그래서 전화 안 했어요. 권은희 과장이 나에게 건의가 와서 한 번 통화했을 뿐 나는 직접 한 번 안 했고."

 

이제 남은 것은 서울청 전화. 당시 김용판 서울청장이 권은희 과장에게 직접 전화한 사실이 도마에 올랐다. '지방청장 수사지휘권' 부분이 논란이 된다. 김용판 청장을 기소한 검찰은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청장은 사법경찰관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지휘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찰 조직 내 의견은 다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4조를 보면 경찰은 상관의 지휘를 받아 직무를 수행한다고 나와 있다. 즉, 지방청장도 구체적인 사건 수사와 관련된 지휘 감독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경찰들은 권은희 씨가 언론에 폭로한 내용은 사실관계는 전부 맞다고 했다. 단지 받아들이는 차이, 해석 차이라고 했다.  당시 권은희 씨 입장에서는 압력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권은희 사건 이후로 경찰 조직 내부에서는 서면수사지휘 필요성이 확대됐다. 수사과정에서 상하급자 사이에 이견이 발생한 사항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면 수사지휘 책임 소재가 명확해진다.

 


 

2016년 서면수사지휘 방식을 확대 추진한 이는 현 민갑룡 경찰청장이다. 민 청장은 경찰대 4기로 기획 계통에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시스템 주의자다.

 

과거 민갑룡 경무관이 캐나다에 유학을 갔을 당시, 그에게 영화 <스트리트 킹>을 거론하며 키아누 리브스와 같은 멋진 형사가 없는지 물었는데 문자로 여러 가지 시스템 문제를 지적한 답장을 받았다.

 

청와대는 민갑룡을 경찰 개혁 적임자로 보고 2018년 7월 24일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이어 11월 29일 치안감 인사가 진행됐다. 그날 오랜만에 서울청에 있는 지인에게 전화했다.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안에 난리가 났어! 송무빈 부장이 기자 회견한다고 기자실로 갔어."

 

(다음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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