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제12화 경찰 입장
이번에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들어보자. 존속살인 사건을 수사한 전직 형사과장은 검찰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직 형사과장이 지적한 것은 바로 백희정 씨가 용의자로 지목된 과정이다. 검찰은 '백희정이 경찰 수사를 피하고자 수사에 혼선을 주려 했다'라고 말했다. 그 방법은 '동네 아저씨' 장영환을 성폭행으로 고소한 것을 뜻한다.
검찰은 성폭력 사건 조사를 통해 백희정 씨가 '무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를 백희정 씨의 의도적인 위증으로 파악한다. 검찰은 백희정 씨가 이웃집 남자를 강간으로 고소해 수사 방향을 그쪽으로 틀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범인이 심리적 압박을 받으면 수사 방향에 혼선을 주려고 시도하는 일은 간혹 있다. 2012년 발생한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이 그런 예다. 지난 2012년 7월 12일, 제주 올레길에서 40대 여성 관광객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에 수색견·헬기·군 특공대 등을 투입한 대규모 수색이 진행됐다. 사건 발생 20일이 지나 올레길에서 멀리 떨어진 버스정류장에 신발과 함께 절단한 손목이 발견됐다.
언론은 '엽기적인 사건'으로 사안을 다뤘다. 하지만 형사들은 범인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자 꾸민 짓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결과적으로 '절단된 손목'을 다른 현장에 둔 시도는 범인이 저지른 최대 패착이었다. 사체를 찾기 전까지 이 사건은 실종 사건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손목이 발견되면서 경찰이 살인 사건으로 수사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도 백희정씨가 고소만 하지 않았다면 '완전 범죄'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희정 씨는 고소를 통해 순천경찰서를 속였다. 검찰은 '백희정 씨가 조사 때 이웃집 구조까지 그림으로 그리며 진술했기에 경찰도 속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백희정 씨가 위증을 위해 작정한 것으로 봤다.
하지만 기록을 검토한 전직 형사과장의 의견은 달랐다. 검찰이 만약에 경찰 수사 과정을 지켜봤다면, 검찰도 분명 경찰이 장영환 씨를 의심하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라 했다. 경찰이 장영환을 캐기 위해서는 구속수사가 필요했다. 장영환을 의심하게 되면서, 경찰은 백희정 씨에게 최근 6개월 이내에 당한 날짜를 찍어 보라고 했다. 성인인 경우 고소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다. 그래서 결국 장영환을 긴급 구속할 수 있었고,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집 안의 여러 물건을 뒤질 수 있었다.
즉 "왜 백희정씨가 '무고'를 저질렀을까를 생각할 때, 이건 검찰처럼 '백희정의 뜻'으로 볼 게 아니라 '경찰의 뜻'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느껴야 맞다고 본다"는 뜻이다.
사건기록 본 어느 형사 과장 "이해가 안 된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기록을 살펴본 한 형사과장은 '검찰이 원점에서 수사하기 어려웠던 이유로, 경찰 수사를 문제 삼은 게 가장 이해가 안 된다'라고 했다. 당시 검찰은 이렇게 주장했다.
"경찰에서 50일 이상 수사가 진행됐는데 그중에서 단 하나의 단서를 잡지도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2010.12.2. 항소심 2회 기일)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당시 수사본부가 설치된 사건이다.
전쟁 시 군 부대에 중대·대대·연대·사단 단위 전투가 있듯이, 수사본부 또한 경찰서 자체로만 수사하기 힘들 때는 상급기관의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이 들어간다. 충남 보령 청산가리 독극물 사건은 충남 보령경찰서 형사들과 충남지방청 광역수사대 인력이 더해졌다. 지방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하여 수사본부를 차렸다. 매일 한 번 회의를 개최하고 수사내용을 점검해야 했다. 4월 29일 발생한 보령 청산가리 독극물 사건은 9월 10일 용의자를 대전지검 홍성지청으로 구속 송치했다.
수사가 가장 길었던 사건은 강호순 검거일 것이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여성 실종 사건이 접수되자 2007년 1월 3일 수사에 착수했다. 그중 실종자 3명의 휴대전화가 모두 경기도 화성시에서 꺼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시체 은닉 장소로 화성을 지목했고 화성 연쇄살인이 재현됐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전경 부대가 화성 일대에 투입돼 시체 은닉 장소를 찾았고 이 같은 수색은 주민에게 심리적 압박을 줬다. 민원이 빗발치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화성에 서부경찰서를 하나 더 짓게 했다. 강호순은 서부경찰서가 세워진 후인 2009년 1월 24일 긴급 체포됐고 2009년 2월 3일 수원지검 안산지청으로 송치됐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을 두고 지방청장이 수사본부 사건 보고를 받고 진척이 없느냐며 재촉했다. 그러자 한 경찰 간부는 수사본부가 꾸려진 사건은 기본적으로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고 한다. 즉, 수사본부가 설치된 사안에서 '50일' 경과 시점을 문제 삼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백희정씨에게서 자백을 받았어도 다시 원점에서 하나씩 따져 들어가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그러지 못했다.
항소심에서 변호인은 검찰을 향해 7월 2일 백경환 씨의 이동 경로를 입증할 CCTV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자 검찰은 "백경환 씨가 다른 차를 운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 증거로써 의미가 없어서 제출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런데 백경환씨는 '절대 다른 차를 운전하지 않는다'라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만약 다른 차로 운전했다면 그 차량을 찾아내는 것이 과연 어려운 것일까? 검찰은 항소심 마지막 기일에서 'CCTV가 뇌우에 맞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해당 사건 관련 형사들은 '그런 기억이 없다'라고 했다. 만약 CCTV가 뇌우에 맞았다면 수사보고에 첨부돼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계속 경찰의 기억과 다른 주장을 이어나간다. 바로 살해 동기인 '부녀 성관계' 문제 부분이다. 경찰은 당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지만 단서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검찰은 항소 이유서에서 놀라운 고백을 한다. 검사는 경찰 제보로 부녀 성관계에 대해 수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급기야 항소심 3회 공판에서 검찰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전남지방청 소속 김옥빈 경위가 55일 넘게 경찰수사를 하다가 마을 사람들 제보에 의해 피고인들 간에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부분에 대해서 수사를 하게 되었는데…."
55일 이후라면 2009년 8월 29일 이후를 말한다. 당시 백희정 씨가 검찰에서 자백한 날이 8월 24일이다. 이튿날인 25일 검찰은 순천경찰서에 전화하여 경찰 수사기록 일체를 검찰로 넘기라고 지휘했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순천경찰서 살인사건 수사팀이 허리까지 닿는 분량의 수사서류를 가져왔다. 그 후에 검찰로 경찰 제보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에 김옥빈 경위는 펄쩍 뛰었다. 자신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부서에서 근무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한 검찰 관계자도 김옥빈 경위는 그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미 검찰이 부녀에게 자백을 받았기에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였다.
'개 짖는 소리' 안 들렸다는 증언, 당사자 만나보니
2009년 7월 6일,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경찰은 현장에 수시로 드나들었다. 반면 검찰이 현장에 나타난 것은 8월 26일, 백경환 씨를 긴급 체포할 때였다. 검찰이 두 번째 현장을 찾은 것은 검찰 현장검증 때다. 당시 마당에 땔감 나무는 마침 다 써버려 넓은 공간이 드러난 상태였다. 검찰은 그 넓은 마당을 두고 좁은 입구에 백 씨가 주차했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백경환 씨네 아랫집 아주머니가 7월 9일 경찰 조사에서 '6일 새벽에 개 짖는 소리를 못 들었다'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사건이 '내부자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왜 이런 부분을 놓쳤던 것일까? 백경환씨 집과 이웃집 구조를 살펴보자. 당시 백경환 씨 집 개 두 마리는 정문에서 바라볼 때 왼편 끝, 텃밭 구석에 있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창고가 있고, 그 뒤로 백경환 씨 집에 높은 담이 있고, 그 옆에는 아랫집 담이 둘러싸여 있다.
이제 아랫집 아주머니를 만나보자. 아랫집 아주머니는 필자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집 안에 있을 때는 (바깥소리를) 잘 못 들어!"
아랫집 아주머니는 집 안에 있을 때는 '개소리'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차 소리'도 안 들리고, 윗집 부부싸움도 안 들린다고 했다. 왜 그럴까? 당시는 7월 6일이었고, 여름이라고 해도 새벽에는 쌀쌀해서 창문을 닫아놨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사건 발생 후, 형사들이 아주머니 집을 찾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형사들은 대문을 등에 지고 마당에서 아주머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때 아주머니 시야에 대문 밖 도로로 차가 지나갔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형사들에게 "방금 차 지나갔는데 그 소리 들었어요?"라고 물었다고 했다. 형사들도 못 들었다고 답했다. 아주머니는 여기는 비탈길이라서 차가 소리 없이 '쓱'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형사들에게 "이렇게 마당에서도 소리가 안 들리는데 집 안에서 차 소리가 들리겠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랫집 아주머니 진술을 검찰이 내부자 소행을 뒷받침하는 보강증거로 사용한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부녀는 9월 2일 검찰 현장검증 때도 범행을 시인했다. 당시 백희정씨는 옥상에서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는 시연을 했다.
백희정 씨는 청산가리를 넣고 나서 막걸리 병을 흔들어댔다. 검찰이 "왜 흔드느냐"라고 묻자 백희정 씨는 "잘 녹으라고요"라고 답했다. 검찰은 이를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다면 재연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검찰의 주장을 반박하는 목격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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