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제3화. 참여정부가 댓글에 빠진 날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2018년 8월 중순으로 기억한다. 경찰 댓글 공작 사건으로 조현오 청장 시절 국장 급부터 구속영장 청구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들었다.

 

그 명단에는 2016년 퇴임한 정용선도 포함됐다. 

 

정용선에게 전화해 대비하라고 알려줬다. 정용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이렇게 툭 내뱉었다.

 

“내가 뭘 했는데요?”

 

문재인 정부 들어 군, 기무사 등에서 특별수사팀이 설치되고 수사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을 귀띔했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구속은 정당성을 갖추는 중요한 모양새다. 구속영장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게 여론전도 펼친다. 경찰 댓글 사건에서도 이런 방식이 되풀이됐다.

 


 

정용선은 한참 생각하더니 경찰 조사 때 제출한 자료가 있다고 말했다. 17쪽에 달하는 내용이다. 오랫동안 정보·기획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알던 경찰청 업무 내용을 떠올리며 혼자 작성했다. 

 

정용선. 연합뉴스 인용

 

물론 경찰 사이버 대응 요령도 포함됐다.

 


 

필자는 이 내용을 검찰 출신 변호사에게 보내 검토해달라고 했다. 철저한 검찰주의자인 그 변호사는 문서를 읽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떤 법조인도 이렇게 보고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나 탁월하다.”

 

훗날 법정에서 재판장도 정용선에게 보고서를 잘 봤다고 덧붙였다.

 


 

정용선 보고서는 큰 제목, 소제목, 숫자 배치, 당구장 표시를 적절히 사용하여 노무현 정권부터 현재까지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 보고서가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던 까닭은 정용선 씨가 그 업무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용선 씨 업무를 되짚어보자.

 


 

경찰 조직은 창설 이후 주요 일간지와 방송 기사를 살펴서 경찰 관련 기사를 챙겨 확인했다.

 

 

경찰 언론 대응 방법은 다른 정부 기관과 같다. 정부 각 부처는 허위보도나 왜곡 주장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청구로 대응했다. 물론 보도자료 배포, 공식 브리핑(문자나 메일 전달 포함)은 기본이다. 이걸  공식 대응이라고 한다. 

 

국가기관 사이버 대응은 2000년쯤 김대중 정부 시절 인터넷 발달과 시작됐다. 그러면서 사이버상 허위 주장과 허위사실도 등장했다. 이는 오늘날 ‘가짜 뉴스’로 개념화된다.

 

영상역사관 인용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언론 공식 대응 방법으로 새로운 대응이 도입된다. 바로 댓글 게재다. 대상은 ‘국정브리핑’에 올린 언론보도였고 댓글 실적을 부처 평가에 반영했다.

 

정용선은 그 당시 충격을 받은 언론들이 기사를 쏟아냈던 것을 기억했다..

 


1.동아일보“BH(청와대) 지시사항이다. 매일 댓글 달라"(2006.4.6.)

2. 동아일보 (사설) 언론 공격 ‘댓글 달기’ 경쟁시키는 청와대(2004.4.6.)

3. 프레시안 노 대통령 “<국정브리핑> 댓글 달아라 ” 지시 논란(2006.04.06.)

4. 연합뉴스. <홍보처‘언론보도에 부처 의견달기’ 공문 발송 (2006.4.6.)

5. Views&News:국정홍보처,‘댓글 지시 달기’ 파문

6. 데일리안 : 노무현 정부,‘ 전 공무원의 댓글 요원화’? (2006.4.6.)

(현재 네이버상에 제목은 검색되나 기사 내용은 삭제된 상태)

7. 문화일보 : 정부 각 부처별 언론보도에 ‘댓글’ 독려(2006.4.6.)

8. 노컷뉴스“공무원들, 언론 보도에 꼭 댓글 달아라”(2006.4.6.)

9. 동아일보: 공무원들 “댓글 잘 달면 출세”... 온라인 국정운영 실태(2006.4.7.)

10. 노컷뉴스. 공무원 “댓글 달기... 달라면 달아야죠.”(2006.4.7.)

11. 세계일보 : “언론보도에 부처 댓글 달아라... 평가에 반영”(2006.4.7.)

12. SBS: 국정홍보처 ”댓글로 언론보도 대응하라”(2006.4.6.)

 


 

경찰도 정부 방침을 따라간다. 이것은 경찰청 정보2과 업무였고 2006년 정보2과장은 정용선이었다.

 

정용선. 뉴스1 인용

 

13만 명을 거느린 경찰청 업무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반복 업무는 대부분 관행적으로 이뤄진다.

 

우선 사이버 이슈에 대응하려면 인터넷상에 어떤 경찰 관련 내용이 떠도는지 파악해야 한다.

 

sbs 인용

 

정보2과는 수집된 사이버 이슈를 기능과 관할에 맞게 통보한다. 물대포 내용은 경비과, 삼색 신호등 내용은 교통과, 서울 사건은 서울청으로 통보할 것이다.

 

이 사이버 이슈를 통보받은 해당 기능이나 해당 지방청 또는 경찰서는 사실 확인을 거친 뒤 대응 여부와 수단을 결정했다.

 

뉴시스 인용

 


 

이 업무가 더 중요하게 자리매김한 계기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광우병 사태는 이명박 정부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08년 6월 청와대는 인터넷을 담당하는 국민소통비서관을 신설했다. 또 부처별 대변인실마다 소관 업무에 대한 인터넷 대응을 강조하고 평가했다.

 

이에 경찰청 정보국도 사이버 정보만 전담하는 정보관 2명을 배치했고 사이버 치안정보를 수집·작성·배포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용선은 정보2과장에서 기획조정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획조정담당관은 조선시대 왕명을 하달하는 도승지와 비슷하다. 과장 중 서열 1번으로 국관회의에서 경찰청장 지시 사항을 정리해 전국 경찰에게 배포한다.

 

2009년 강희락 경찰청장 내정자와 정용선 본청 과장. 매일건설신문 인용.

 

2009년 강희락 경찰청장이 내정됐다. 강희락은 2010년 1월 정용선을 경무관으로 승진시켜 정보심의관으로 삼았다.

 

오마이뉴스 인용

46세인 정용선은 언제나 동기보다 2~3계급 승진이 빨랐다. 경찰청에는 50대 과장이 즐비하다. 정용선은 각별히 처신에 신경 썼다.

 

2010년 8월 강희락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조현오가 청장으로 취임했다.

 

강희락(좌)-조현오(우).시사저널 인용.

 

정용선은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지방청 근무를 희망했다. 그러나 조현오는 업무능력이 탁월한 정용선에게 남아달라고 부탁한다.

 

조현오는 2011년 정용선을 치안감 승진 명단에 넣는다.

 

조현오 경찰청장 시절 정용선(좌). 뉴시스 인용

 

정용선은 이처럼 어느 청장이 오든 항상 인정받고 승진했다.

 

강신명 청장 시절 정용선(우) 수사국장. 일요서울 인용

 

직장인이라면 그 비법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정용선은 두 가지를 꼽았다. 보고할 때 멍청하게 보이지 말고 상사 기분을 맞출 것!

 


 

경찰청은 청장 주재 회의를 8시 30분에 시작한다. 그전까지 경찰청장은 과장들 보고를 받는다. 보고할 사람이 두 명 정도 남으면 비서실은 정보심의관에게 전화를 한다. 

 

“지금 올라오십시오.”

 

정보심의관실은 10층에 있고 경찰청장실은 9층이다. 보고 시간이 임박할 즈음 직원이 ‘사이버이슈 보고’를 마무리해서 가져온다.

 

정용선은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내용을 한 번 훑어본다.  하지만 정용선은 청장 보고 시 ‘사이버동향보고서’에 대해 중점적으로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청장 관심사는 주요 사건이었지 사이버이슈가 아니었다.

 

주요 사건은 신문 1면이나 9시 뉴스에 나오는 정도 사안을 말한다.

 

만약 모 경찰서 초동 조치가 미흡했다는 뉴스가 전날 밤 9시 뉴스에 나왔다면 이미 전날 본청 감찰과에서 총출동한 상태다.

 

 

 

이 내용은 정용선이 청장에게 보고하기 전에 이미 해당 업무 과장이 보고를 마쳤다. 즉 해당 기능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조치가 이뤄진 상황이다.

 

정용선은 이미 보고가 돼 알고 있는 사안을 절대 경찰청장 앞에서 주절주절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태도가 멍청해 보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이버이슈는 왜 중점적으로 보고하지 않았을까. 크지 않은 사이버이슈에 대해서는 각 기능별로 큰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정용선이 다른 기능에 관련된 사이버이슈를 보고했다 치자. 그렇다면 그 기능 국장이나 과장이 정용선에게 일을 크게 만들었다며 비난할 것이다.

 

“보고 안 해도 되는 것까지 보고해서 사람 힘들게 한다.”

 

또한 이러한 보고 내용은 대부분 경찰 조직에 좋지 않은 사안이다. 경찰청장 처지에서 기분 좋을 리 없다. 이처럼 보고 과정에서 상사 기분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다. 수석이 괜히 수석이 아닌 것이다. 

 

정용선은 보고를 마치고 '주요 사이버 이슈 보고서'는 시간 있을 때 읽어보라며 다른 보고서와 함께 책상에 두곤 했다.

 


 

정용선은 2016년 경기지방경찰청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했다.

 

정용선 경기지방경찰청장. 뉴스1 인용

 

정용선은 그간 업무와 국관회의 지시사항을  종합해볼 때, 경찰 조직은 경찰 신분을 밝히고 대응하는 ‘공식 대응’이 기조였다고 인식했다. 이게 정용선이 작성한  17페이지 보고서 핵심이다. 

 


하지만 2018년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조현오 청장 재직 시절 경찰이 신분을 숨기고 댓글 공작을 펼쳤다며 수사했다.

 

당시 서울청에서 어떤 이슈에 댓글을 달았는지를 알 수 있는 '이슈 대응 목록'과 그에 따른 댓글 작업 보고서를 찾아냈고 그것을 언론에 흘렸다.

 

 

이는 정용선 기억과 다르다.  혹시 정용선 씨가 미처 놓친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경찰청은 매일 보고서가 물밀듯 들어온다. 지방청에서 보내는 자료들 중에는 사이버 대응 과정에서 어떤 직원이 어떤 내용으로 댓글을 달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보고서도 분명 있다.  정용선은 이러한 지방청 자료를 신경 써서 살펴보지 않았다.

 

정용선은 왜 이런 자료를 거들떠보지 않았을까? 정용선은 정보심의관 시절 하루에 봤던 보고서 분량이 적어도 500페이지 이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늘 상 시스템에 의해 들어오는 지방청 자료는 관심이 떨어진다.


그렇더라도 ‘댓글 공작’을 펼쳤다는 특별수사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정용선은 경찰 정보통이지만 경찰청 수사국장을 지냈고 지방청 수사과장도 거쳤다.

 

특별수사팀 수사기록은 정용선이 볼 수 없다. 그러나 단서가 있다.

 

특별수사팀이 언론에 흘린 서울청이 작성한 '이슈 대응 목록'이다. 이 목록으로 어떤 이슈에 대응했는지와 대응한 날짜를 파악할 수 있다.

 

 

정용선은 대응한 날짜 전후로 각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사를 찾았고 그곳에 경찰관이 올린 글을 일일이 찾아내기 시작했다.

 

정용선은 경찰관이 자기 실명 또는 자기 직책을 밝히고 쓴 것을 계속해서 찾아냈다. 90여 건 정도였다. 이는 정용선 기억과 일치한다.

 

하지만 정용선은 더 이상 찾아내지 못했다.

 

2010년 경찰서와 지방청마다 언론 대응을 했기에 당시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올린 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3년 전후로 경찰서마다 자체 운영하던 홈페이지가 지방청으로 통합되고 지방청 홈페이지도 본청 홈페이지로 통합됐다.

 

즉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그렇다면 대체 익명 댓글은 어떻게 된 것인가. 정용선은 재판에 넘겨진 후에 수사 기록을 모두 받아 살펴봤다. 진실은 기록에 있었다.

 

수사기관이 포털사에서 확보한 댓글 등은 30만 개였다. 기소한 댓글은 그중 4%인 1만 2000여 개다.

 

정용선은 수사 기록을 보고 지금까지 경찰이 공식 대응을 했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렇다면 왜 익명 댓글로 활동하게 된 것인가. 특별수사팀도 이 업무를 담당한 본청 계장 직원, 실무자에게 확인했다. 정보과에 속한 직원들 상당수 진술이 수사기록으로 남아 있다.

 

드림필드11 블로그 인용

그 후 필자가 정용선을 만난 것은 재판을 앞둔 법정 복도였다.

 

그동안 수사기록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 흔적이 보였다. 그는 몹시 의외라는 표정으로 낮게 속삭였다.

 

“어떻게 여경들이 오히려 당차고 진술을 똑 부러지게 하고...”

 

(다음 제4화, 여경은 경찰의 미래다.)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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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10년 전 이명박 정권 적폐까지 파헤쳤다. 그중 하나가 ‘댓글 공작’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원·군·기무사·경찰을 동원해 여론 조작을 시도한 사건이다. 그들이 신분을 숨기고 조직적으로 댓글을 쓴 가장 큰 목적은 ‘이명박 정부 옹호’로 알려졌다.

 

이 글은 댓글 공작에 대한 경찰 수사를 다룬다. 수사 과정을 보며 생겼던 한 가지 의문이 출발점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정말 틀렸을까?”

 

‘댓글 공작’ 경찰 수사 기록을 다시 불러낸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1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찰 댓글 수사는 2018년 3월 12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서 시작됐다.

 

국정원·군 이어 경찰도... 2011~2012년 ‘댓글 공작’ 드러나

 

경찰청은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이 집중적으로 파헤친 기간은 2010년 8월에서 2012년 4월이다. 바로 조현오가 서울청장, 경찰청장이던 시절이다.

 

조현오는 2010년 2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댓글부대’를 구성했다. 최대 인원은 100여 명에 달했다. 부대 이름은 스폴(SPOL), Seoul Police Opinion Leader 약자다.

 

이름부터 온라인 여론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지휘부는 쟁점(issue)을 지정해 스폴에 댓글 작성을 지시했다.

 

수사를 시작하자 상급자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댓글을 썼다는 피해자 진술이 쏟아져 나왔다.

 

조현오를 비롯해 경찰 간부 5명에게 적용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방해행사’이다. 조현오는 경찰 댓글 공작을 지휘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됐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이 나왔다. 정보 분야 전체 범죄 댓글 가운데 14.4%를 경찰 한 명이 썼다는 것이다. 그 경찰은 ‘와일드애니멀’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했다.

 

와일드애니멀은 2010년 11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열린 ‘G20 서울정상회의’ 관련 기사에 특히 댓글을 많이 썼다.

 

이명박 정부가 몹시 신경을 썼던 행사다. 와일드애니멀이 쓴 댓글을 보면 단순히 횟수만 많은 게 아니라 분량도 남다르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입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대륙을 향하여 표호하는 끝자락에 있는 작지만 가장 강한 나라 대한민국 아주 순수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또한 손님을 접대할 줄 아는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도 하지요. 이번 G-20 행사 때 세계를 리드하는 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합니다. 어디 지도자분이겠습니까?? 한나라의 대통령이 오시면 그에 따른 수행원과 경제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시는데 집회나 시위를 하여 그분들에게 불안감을 주거나 방해를 한다면 손님들을 불러놓고 집안싸움하는 꼴이 될 것이고 백의의 나라 호랑이가 대륙을 향해 표호하는 대한민국이 세계로부터 버림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여타 나라에서 신뢰를 잃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 후손들은 더욱 어려운 경제와 신뢰가 떨어져 활동하는데 위축될 것이 뻔할 것입니다. 이제 진정으로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행사 기간에는 우리 모두가 양보하고 단합하여 세계 지도자들이 깜작 놀라도록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줍시다. 세계 20개국 외에도 어마어마한 거물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많은 지도자와 훌륭하신 분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실 때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계를 리드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줍시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나요?? 우리 한 번 해 봅시다~~ > (정치관여옹호 범죄 댓글)

 

 

와일드 애니멀은 댓글 치고는 매우 길게 썼다. 댓글 작성을 마치면 이어서 또 쓰기도 했다. 어떤 댓글 작성 시각은 오전 6시 29분, 6시 34분, 6시 38분, 6시 42분으로 이어진다.

 

특별수사팀은 와일드애니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2013년 이미 퇴직한 와일드애니멀을 강제 수사하기는 어려웠다.

 

와일드애니멀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법정이다.

 


 

와일드애니멀은 스폴(SPOL)에서 활동을 인정했다. 그는 동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 정확하게는 기억에 안 나지만 그 당시에 학교폭력이 제일 많았기 때문에 저는 제 아들도 일진에 가입돼가지고 한동안 제가 힘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스폴을 ‘학교폭력 전담 경찰(School Police)’로 이해했으며 결코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시간대를 보면 지시가 내려오기 전에, 이미 댓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댓글 보고를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소속 부서는 댓글 작성을 업무성과에 반영하지도 않았다.

 

그는 생활안전과 소속으로 2010년 남대문경찰서 태평로지구대장으로 근무했다. 주변 경찰들은 그가 평소 댓글을 많이 쓰는 것을 알았다. 서울청에서 스폴 모집 이야기가 나오자 주변에서 그를 추천했다. 그에게 지시를 내린 주체가 있다면 언론과 현장이다.

 

당시 와일드애니멀 일상은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까지 지구대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태평로지구대 주변은 천막을 치고 노숙하는 시위자가 있다.

 

이 구역에서 집회는 일상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경찰은 밥이었다. 시위대는 ‘짭새 새끼’라고 욕했고 운전자는 교통정리도 못하는 ‘세금 도둑’으로 취급했다.

 

2010년 스마트폰 보급률은 4% 정도다. 대부분 컴퓨터로 기사를 검색했다.

 

현장에서 지구대로 돌아온 와일드애니멀은 자리에서 온라인 기사를 살핀다. 대부분 경찰을 비난하는 보도다. 사실관계를 왜곡한 기사에는 댓글을 달았다. 사실관계 왜곡 기준은 와일드애니멀이 정했다.

 

물론 현장에서 자괴감을 느낀 경찰이 모두 와일드애니멀처럼 댓글을 쓰지는 않는다. 와일드애니멀에게는 남다른 경험이 있다. 그는 사건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했다.

 


 

1984년 4월 9일. 당시 서울 ◯◯경찰서에 근무하던 와일드애니멀은 집회시위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곳에서 시위대에 끌려간 그는 3일 동안 한 대학에서 고초를 겪었다.

 

가까스로 풀려난 그는 경찰병원에 이송돼 9개월 정도 입원했다. 이후 몸과 마음이 모두 변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찰을 무조건 비난하는 보도를 보면 목이 메고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댓글은 이런 괴로움을 덜어내는 수단이었다.

 

“마음 답답한 게 글을 달고 나면 아 좀 시원한 느낌이 들고 자기 만족감도 있고.”

 

하지만 검사는 와일드애니멀이 썼던 댓글이 집회시위 관리를 내세워 시위 동력을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조현오 경찰청장 지시를 따른 것이고 이명박 정부가 원했던 것이다.

 

검사는 다음 아고라에 달았던 와일드애니멀 댓글을 문제 삼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큰 행사인 이번 G20 우리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해 주는 나라로 성장한 작금에 확실하게 아시아의 표호하는 호랑이가 세계를 향하여 표호 하는 이 시기에 확실한 매듭을 짓기 위해 모이는 G20 정상회의에 우리 모두는 정성을 다 해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이런 시기에 테러 집단과 야합한다던지 집회나 시위를 하려 한다면 그는 진정 지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이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배달의 자손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내고 계시는 수많은 명사들과 땀을 흘리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중대한 시기에 테러나 집회를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고 그 무엇입니까?? 저희들은 어릴 적에 강냉이 죽을 배급받아먹고 자랐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갔습니다. 더욱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으려면 이번 기회야말로 가장 호기입니다. 한 번 해봅시다~~ 여러분 >

 

검사가 물었다.

 

“증인은 지금 중요한 전제를 깔고 있기를 중요한 일이 있으면 집회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이에 와일드 애니멀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손님 불러놓고 집안에서 싸울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검사는 더 질문하지 않았다. 당시 필자 옆에서 함께 재판을 보던 분이 “공무원 중에 나이 많을수록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라고 속삭였다.

 

와일드애니멀이 시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현오를 옹호하는 댓글은 어떻게 봐야 할까.

 

‘조현오 개인 옹호 댓글’ 개수 1위도 와일드애니멀이다.

 

 

 

“여기 보시면 2010년 8월 14일부터 피고인이 서울청장일 때 인사청문회 관련하여 증인이 피고인을 개인적으로 옹호하는 댓글을 34건이나 달았어요.”

 

이 질문에 답하는 와일드애니멀 목소리가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변했다.

 

“제가 청장님을 존경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기 때문에 달았다는 것인가요?”

 

“네. 처음에 저도 청장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한 번 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청장님 듣다시피 목소리가 허스키하시고.....”

 

이 부분에서 검사가 증인 말을 재빨리 끊고 핵심을 짚고자 했다.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어요?”

 

와일드애니멀 목소리는 여전히 꽃밭 위를 날고 있었다.

 

“웃음이 별로 없으신 분인데 처음에 참석하고 나서 굉장히 직원들에 대한 배려, 조직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 경찰을 이끄시는... 제가 생각하는 서울 치안이 대한민국 치안이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막중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분이 조직을 이끌면, 정말 잘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

 

 

그러자 검사는 논리 싸움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지금 증인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아는 조현오 청장은 이런 사람이고 경찰청장을 수행할 능력과 인품이 충분한 분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안다’ 이렇게 써야 하는 게 아니냐.”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한다.”

 

검사는 다시 댓글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댓글을 보십시오. ‘경찰청장 내정자를 비하하다니. 그럼 누가 경찰을 이끌고 갈 것인가’ 그럼 내정자를 비판하지 누구를 비판합니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임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비판하여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일을 못하면 물러나게 하면 되지...’ 이런 식입니다. ‘경찰청장은 훌륭하고...’ 뭐 이런 내용이 아니에요. 증인이 주장하는 내용과 댓글 내용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와일드애니멀은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 내용과 이 내용이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와일드애니멀은 당시 조현오 서울청장이 “경찰청장 수뇌부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재판장도 뭐가 그리 좋았냐고 재차 물었다. 와일드애니멀은 “성과주의를 도입하고, 공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았다”고 답했다.

 

 

와일드애니멀 증언은 특별수사팀 수사 결과와 배치된다. 하지만 와일드애니멀이 조현오 청장 지지자라 거짓증언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도 스폴팀에서 두 번째로 댓글을 많이 쓴 직원은 조현오를 싫어한다고 밝혔다.

 

 

‘댓글 은메달’ 아이디는 ‘틱스님’이다. 과연 틱스님은 지시에 의한 행위였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해 줄 것인가. (다음 제2화 밤의 집회에서 혼자)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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