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나를 케어해줘 마지막 화, 대검 케어가 최고야(작가 시선)
2016년 9월 초 김학성이 오랫동안 김형준 검사 스폰서 노릇을 했다는 뉴스가 도배됐다. 나도 보도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꽤 많은 수감자를 접하고 취재했다. 그중 김형준을 특별하게 기억한다.
김학성이 스폰서 노릇을 했다는 폭로로 김형준은 2016년 10월 구속됐다.
나는 김형준에게 편지를 보냈다. 대부분 고위직 출신 수감자들은 편지를 받았다고 바로 답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편지를 보낸 이가 지인도 아니다. 그런데 김형준은 바로 답장했다. 뭘 믿고 내용도 절절한 편지를 보냈는지 오히려 의아했다.
그러나 재판을 보면서 이해 되기 시작했다.
검찰은 당시 김학성과 김형준 사이 메신저와 통신 기록을 모두 확보했다. 통화 기록만 봐도 하루 동선은 파악된다. 주고받은 메시지와 통화 내용을 비교하면 특정 날짜에 서로 만났는지 정도는 확인된다.
변호인은 이를 근거로 현금수수는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학성은 자신과 오강수를 김형준이 부장검사실로 불러 편의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 부분도 검토했다. 김학성은 김형준 외에도 다른 검사들에게 더 자주 불려 다녔다. 이유는 간단했다. 김학성이 범죄 정보를 제공하면서 재벌과 정치인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시했기 때문이다.
김형준도 김학성이 제공한 범죄 정보가 가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김학성이 출소하고 나서도 김형준은 범죄 정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계속 문자를 보냈다.
변호인은 증거인멸 부분도 따졌다. 당시 채권자들은 김학성 휴대전화 번호를 알았다. 김학성도 채권자에게 협박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김학성은 이 휴대전화를 해지하고 초기화해 동생에게 건넸다.
동생이 보면 곤란한 사진과 문자 때문에 초기화한 게 아닐까. 업무용 다이어리도 자기 횡령 사건 관련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없애놓고 김형준 지시로 없앴다고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형준 변호인이 하나씩 따진 내용은 모두 받아 적었다. 그렇게 모은 내용이 수백 쪽 분량이다.
그런데 피고인 신문이 시작되자 김학성은 허위진술을 했다며 말을 바꾼다. 오히려 대검 수사팀이 사건을 무리하게 수사했다고 질타했다. 검사들은 당황했다. 김학성 발언이다.
“2016년 9월 검찰이 자신을 구속시키는 이유가 김형준 검사의 비위를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김형준을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때마침 대검 수사팀 의도가 느껴졌고 그에 맞춰 진술했다.”
1심 재판 선고가 나왔다. 검찰과 피고인 측 모두 항소했고 항소심이 열렸다.
김학성은 검찰 수사 때 진술이 진실이었다고 말을 또 바꿨다. 김학성은 왜 진술을 계속 번복했을까.
먼저 1심 재판 막바지에 그동안 검찰 진술이 거짓이었다고 말한 배경부터 보자.
김학성이 설명한 상황은 이렇다.
1심 재판이 열리는 날 법정대기실에서 만난 김형준은 울면서 진술 번복을 사정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본 교도관이 김형준을 제지하지 않았다. 단지 김학성을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태워 보냈을 뿐이다.
1심 재판 진행 중에도 김형준은 재판부 시선을 피해 김학성에게 말을 걸었다. 살려달라며 이번에 유죄를 받으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목을 매는 시늉까지 했다. 친구를 다시는 배신하지 않겠다고 서로 약속했다고 한다.
김학성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1심 재판에서 수의복장을 한 김형준과 김학성은 변호인 좌석 뒤쪽에 앉았다. 김학성 말처럼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서로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한 친구가 말을 걸면 다른 친구는 귀를 가까이 대고 듣는 모습도 보였다. 방청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형준 친척 중 한 명은 속이 터진다고 했다.
김형준은 직접 증인신문을 하다가 이 대목에서 울먹거리기도 했다.
“사적인 문제 때문에 정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30년 된 고교 친구한테 급전을 빌렸는데...”
흐느끼는 김형준을 보며 김학성은 마음이 움직였을까. 김학성은 1심에서 재판장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30년 지기 친구 부탁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심 재판이 끝나자 대검찰청은 김학성을 다시 소환하게 된다.
항소심 재판에서 다시 검찰 증인으로 나온 김학성은 확고하게 오직 사실만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김학성은 형사사건에 얽히면 도움을 얻고자 김형준에게 보험을 든다는 생각으로 술을 샀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항소심에서도 이 진술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김형준을 너무 자주 만나서 볼 때마다 그런 의도를 깔지는 않았겠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면 형준이가 자리를 걸고 나를 도울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다면 술을 샀겠느냐고 되물었다.
김학성은 왜 다시 진술을 번복 한 것일까?
1심 선고가 나오고 항소심까지 김학성에게 시간이 제법 있었다. 김학성은 재판 기록을 받아 다시 살펴봤다. 김학성은 재판 기록을 거듭 읽을수록 김형준이 친구였다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무슨 내용 때문이었을까.
김형준은 1심에서 김학성이 허위진술을 하게 해 놓고 이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학성이 허위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함으로써 수사 초점을 피고인(김형준)에게 맞춰서 김학성에 대한 검찰의 수사방향을 흐리게 하고, 김학성이 수사에 협조하는 것 같은 외관을 만든 다음에 구형량에 이득을 보고자 함이었다.”
김학성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학성이 언론에 폭로하면서 당시 서울서부지검 수사팀도 감찰조사 대상이 됐다. 김학성에 대한 횡령사건 수사는 더욱 엄정하게 진행됐고 선처를 기대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김형준 측 변호인 생각은 달랐던 듯하다. 1심 재판이 끝나자 김학성이 대검찰청에 다시 불려 나가게 된 부분을 공략했다.
몇 번 소환됐는지, 검찰 조서를 작성했는지, 대화 내용은 무엇인지 세밀하게 따졌다.
김학성은 평소 주변 사람에게 오강수를 ‘케어한다’, 김형준을 ‘케어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되고 나서 한 지인을 접견했을 때도 김학성은 ‘케어’라는 말을 썼다.
“서부지검과 대검은 틀려. 서부지검은 나를 죽이려고 하고 대검은 나를 케어해준단 말이야.”
김형준 측 변호인이 ‘케어’ 뜻을 묻자 김학성이 답했다.
“서부지검이 보기에 저는 일방적인 피고인이고, 대검은 뇌물공여자로서 공여자 진술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중요하고 아무래도 서부지검처럼 저를 막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검찰 증인으로 증인석에 선 김학성을 바라보는 김형준 시선도 분명히 1심 때와 달랐다. 마치 부장검사 시절 자기와 상관없는 사건 보고를 받는 듯한 그런 무덤덤함이 묻어 나왔다.
2심 재판부는 김형준에게 집행유예를 선사했다. 김형준은 기자들에게 소회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모함을 걷어낸 법원에 경의를 표한다.”
그 후로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나를 케어해줘> 원고는 그대로 묵혀뒀다. 법원이 판단을 내린 사건인데 굳이 들출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각자 자기 인생을 충실하게 살기를 바랐다.
2019년 하반기부터 박수종 변호사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뉴스타파>는 박수종 변호사 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박수종은 법정에서 2015년 당시 여러가지 금융범죄 혐의로 금융위원회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그중 한 건을 대검에 의뢰했고 사건은 서울남부지검으로 이첩됐다.
당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이 김형준이었다. 박수종 변호사는 이 자리가 대한민국에서 뇌물 받기 가장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형준이 (김학성에게) 뇌물을 받았다고 생각한 적이 1초도 없었어요. 그리고 제 머릿속에는 김형준이 뇌물을 받으면 남부지검 합수단장 할 때, 10억~20억 원을 받지 1500만 원을 왜 받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박수종은 법정에 나와 김형준을 두둔했다. 2016년 검찰에게 도피중인 김학성 소재를 이야기해 긴급체포가 되게 한 것도 박수종으로 드러났다.
김형준과 박수종 관계에 의혹이 짙어져갔다.
<뉴스타파>는 구치소에 있는 김학성과 접촉해 그가 말하는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했다.
(김학성) “김앤장에도 너랑 친한 변호사들 많은데 왜 옷 벗은 지 10년이나 된 박수종을 자꾸 전면에 내세워 일처리를 하자고 하냐?”
(김형준) “걔 주식도 많이 돌리고 함께 엮인 게 있으니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어. 내 말 들어.”
(김학성) “무슨 주식을 돌리는데?”
(김형준) “주식 해서 돈 좀 만졌는데 문제가 있거든. 지금은 내 말 들을 수밖에 없어. 근데 이런 일 처리는 베스트야.”
법정에서는 들어보지 않았던 내용이다. 2019년 10월 25일 <뉴스타파>는 김학성과 김형준이 통화한 내용을 편집 없이 모두 공개했다. 그 통화 내용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통화 내용 중 김학성이 ‘셀프 고소’ 작전이 실패하자 김형준에게 항의하는 부분이 있다.
이때 김학성은 김형준에게 "박수종이 네 말을 잘 듣는다고 했잖아!"라며 화내지 않는다. 김형준도 김학성에게 “박수종은 제삼자이며 지 아쉬운 게 뭐가 있겠어”라며 “자기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지가 틀렸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게 뭐가 있겠어”라며 설명했을 뿐이다.
2020년 2월 6일 누군가 카톡으로 기사를 보냈다.
김학성이 또 김형준을 뇌물 의혹으로 고발한 내용이다. 김학성은 박수종 변호사가 김형준에게 뇌물 4000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서울남부지검 검사들과 주가 조작 전문가가 얽힌 검은 커넥션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 이 주장은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이 순간 자신이 데리고 있던 검사들까지 한 묶음으로 매도되는 상황을 마주하는 김형준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재판에서 김형준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웠다는 게 드러났지만 방송은 여전히 폭로자 진술에 무게를 둔다.
김학성은 오래 전 입원한 적이 있다.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김학성 씨 아내는 당시 문병 온 사람은 김형준 뿐이었다고 증언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고교 동창 30년 지기, 그 세월 안에는 경쟁, 애정, 시기, 질투 등 온갖 감정이 묵혀있다. 김형준에게는 여전히 큰 인생 숙제다. 그 문제를 푸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이 글을 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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