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마지막 제8화 생활의 발견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생활의 발견>

 

 

 

조현오는 감옥에 있을 때부터 경찰 간부를 소개해줬다. 맨 처음 소개받은 경찰이 바로 민갑룡이다.

 

민갑룡은 어느 청장이 오나 상사에게 듬뿍 사랑받았다. 박학다식했고 업무 열정이 남달랐다.

 

그에게 차명계좌 발언 재판기록을 요청했을 때 주변에서는 극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민갑룡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정치적 논란을 걱정했다.

 

이 같은 반대에 내 생각은 간단했다. 화해하면 될 것 아닌가.

 

민갑룡은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며 내 시도를 부정적으로 봤다.

 

이후 이른바 친노 그룹으로 불리는 인사를 만났다. 관용과 화해를 역설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들은 친절하고 깍듯했다.

 


 

2014년 12월 나는 조현오와 함께 봉하마을에서 참배를 진행했다.

(☞조현오 전 청장,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몰래' 참배)

 

그리고 2015년 초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추진했다.

 

인터뷰 당일 아침까지 민갑룡은 반대했다. 당시 캐나다 유학 중이던 그는 이메일까지 보내며 인터뷰를 말렸다.

 

하지만 나중에 인터뷰 내용을 확인한 민갑룡은 흐뭇해했다. (☞ 조현오 오마이뉴스 인터뷰)

 

 

조현오와 글 작업을 진행하면서 제목을 <구겨진 제복>으로 정했는데 바로 민갑룡 아이디어다.

 

그는 나중에는 꼭 제복을 펴달라고 부탁했다.

 


 

정권이 바뀌었다. 황운하도 민갑룡도 다 승승장구했다.

 

2018년 봄, 경찰청에 댓글 관련 특별수사팀이 설치됐다.

 

조현오가 타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tv 인용

 

경찰 댓글 실무는 중간급 계장들이 담당한다. 당시 보안, 정보, 홍보마다 이 사건과 관련된 계장들이 있었다.

 

이 사건 피의자로 바뀔지 모를 간부들은 당시 계장들에게 전화해 원망했다. 조직 내 분위기는 추락했다.

 


 

경찰청장 민갑룡은 두 가지 큰 원칙을 세워서 이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민갑룡 경찰청장. ytn인용

 

첫째 처벌 대상을 당시 경무관급 이상으로 제한했다. 즉 총경 이하는 제외되는 것이다.

 

둘째 경찰청 차장 임호선에게 수사지휘를 맡기고 특별수사단 수사 보고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조현오가 불같이 화를 냈던 게 기억난다.

 

“이게 작은 사안이야? 전임 청장 국장 수사하는 내용 보고를 왜 안 받아? 청장이 모든 수사보고를 받고 책임을 져야지! 나는 디도스 수사도 내가 다 보고 받고 챙겼어. 어디 책임을 회피하려고!”

 


 

경찰 조직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조현오가 정부를 옹호하는 댓글 작업을 지시했다면 이는 경찰청 국관회의(일일회의)에서만 가능하다.

 

연합뉴스 인용

 

청장 지시를 각 부서에 전파하는 역할은 기획조정담당관(총경)이 맡는다.

 

그래서 당시 청장 지시가 범죄라면 기획조정담당관도 공범이라 보는 게 자연스럽다.

 

물론 경찰청장 민갑룡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총경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밝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조현오가 경찰청장 당시 기획조정담당관은 민갑룡이었다.

 

연합뉴스tv 인용

 

하지만 조현오는 민갑룡 이름을 그대로 묻었다. 

 

아마 경찰청장으로서 책임과 고뇌를 잘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한 시사주간지에 실린 조현오 입장문 마지막 구절(아래)처럼 경찰조직에 대한 애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고 외교관이 돼서도 경찰이 너무 좋아서 외교관을 포기하고 경찰관을 택했다. 지금은 내가 평생 사랑했고 자부심을 느꼈던 경찰에게 처벌받는 처지가 됐다. 그래도 경찰 조직이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사회 질서 유지라는 본연의 역할을 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은 변함없다.”

 


 

조현오는 그렇게 경찰에게 처음 구속되는 경찰청장이 됐다. 조현오가 남대문경찰서에 수감되고 일주일 동안 보강수사가 진행됐다.

 

조현오에게 이명박 대통령 지시를 받아 댓글 작업을 했다는 진술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노컷뉴스 인용

 

어떤 기자는 조현오에게 이 시국에 책임을 떠넘겨야 빠져나가지 자기가 무슨 장세동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조현오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시간 국정감사가 열렸다.

 

유투브 이재정 tv 인용

 

이재정(여당) 의원이 모 시사주간지에 실린 <조현오 전 경찰청장 입장문>을 들고 나와서 경찰청장 민갑룡을 다그쳤다.

 

이에 경찰청장 민갑룡은 조현오와 분명히 선을 그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조현오는 민갑룡 이름을 덮는다면서, 왜 굳이 입장문 인터뷰에 아래처럼 민갑룡 이름을 들먹였는가?

 

‘민갑룡 청장이 이러한 (청와대) 수사 가이드라인에 항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장의 의지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고백하자면, 이 입장문은 바로 내가 썼다.  (☞  조현오 입장문 "직무범위 벗어난 지시는 전혀 없었다" )

 

조현오는 당시 경황이 없었고 구속을 앞둔 조현오는 내게 전권을 줬다. 전권을 주면 간섭하지 않는 게 조현오 방식이다.

 

 

여기서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당시 시사주간지는 내 의도와 다르게 오히려 여당 의원이 조현오를 두들겨 패기 좋게끔 기사를 써댔다.

 

당시 국정감사에 배석한 경찰 간부 중 김상경(가명)이 있었다.

 

이데일리 인용

 

김상경은 내가 한 짓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당 의원이 이 기사를 근거로 조현오를 난타하는 현장을 지켜봤다. 국정감사가 끝나자 김상경은 문자를 보냈다.

 

“너무 가슴 아팠어.”

 

나는 김상경에게 ‘미친년’ 소리를 들을 각오가 돼 있었다. 그는 연이어 문자를 보냈다.

 

“난 마지막 구절이 너무 좋더라.”

 

 

그 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조현오 구속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기자 때문인가? 당시 기사를 보고 항의하자 기자는 비아냥거렸다.

 

“아이고. 서 작가님. 조 청장님 위하는 것은 알겠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마십시오.”

 

이 눈물은 기자에게 당했기 때문도 아니다.

 

아! 정말이지 고백할 게 너무나 많다.

 

적폐 청산 광풍이 부는 시기에 조현오에게 언론 접촉은 좋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매력적인 언론 선배가 부탁해오면 마음이 약해져 오히려 조현오에게 취재에 응해주라고 몰아쳤다. (☞ PD수첩 장자연 건) 

 

필자가 조현오를 팔아넘긴 순간

 

하찮은 이해관계 때문에 조현오를 팔아넘겼다는 그 사실이 매일 나를 괴롭혔다.

 


 

이 기간 주변에 왜 이 고통과 불행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한겨레> 보도에서 시작한 ‘우연’이라는 카오스적 설명은 허망하게 다가왔다.

 

연합뉴스 인용

 

친노 진영에 찍혀 손 보고 싶은 인물이었다는 코스모스적 설명도 있었다. 내가 손을 놓든 필사적으로 들쑤시고 다니든 결과는 변하지 않았을 듯하다.

 


 

며칠 후, 여전히 침울한 저녁에 전화가 울렸다. 친노 인사 어르신이다. 기분이 좋은 듯 그는 조현오 욕을 시작했다.

 

온갖 듣기 민망한 말을 조현오에 갖다 붙였다.

 

한참 지나자 내 인내심은 한계를 넘었다.

 

 

 

“술 먹었냐?”

 

이 어르신은 내 비아냥거림에 불같이 화를 내며 끊었다. 내 마음도 굳어졌다.

 

조현오가 10여 년 전 차명계좌 발언을 했을 때도 이렇게 마음을 다쳤을 것이다.

 


 

나는 박근혜 정부 시절, 이 분에게 화해와 관용에 대해 수없이 강조했다. 권력을 쥔 자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말을 그대로 내가 돌려받을 때 비로소 보인다.

 

민갑룡 말처럼, 화해와 관용은 어려운 것이다. 며칠 뒤 진영 단감 다섯 상자가 도착했다. 발신 주소는 봉하마을 근처였다.

 

2018년에 보낸 단감

 


 

예전에 친노 정치인 A에게 어떻게 해야 조현오를 용서할 수 있는지 물었다.

 

답은 똑같았다.

 

진정한 사과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봉하 참배나 인터뷰로 밝힌 사과 정도는 진심이 안 느껴진다고 했다.

 

과연 진심이면 될까. 상대 진심을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않으려는 이들에게 그 진심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그래서 그 친노 어르신이 전화로 단감 잘 받았느냐고 물어볼 때까지 입도 뻥끗 안 했다.

 

이제는 권력 중심에서 멀어진 늙고 외로운 노친네 심정을 헤아리고 싶지 않다.

 


 

당시 남대문 경찰서에 수감된 조현오를 면회하러 한걸음에 달려온 이는 칠순을 바라보는 허준영이었다.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후배를 바라본 허준영 심정은 어땠을까. 광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처럼 한쪽으로 쏠린 내 슬픔은 양쪽 진영이 만나 화해하는 게 너무 먼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관용을 더 넓은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당시 일을 추진할 때 그 취지를 깊이 이해하고 도와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친노 진영 인사를 만날 때 도움을 줬다. 그리고 조현오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던 주변 지인도 시간이 흐르면서 양쪽을 이해하는 완충지대로 들어와 있었다. 이들이 휴머니스트인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화해 분위기를 탄다.

 

Jtbc 인용

 

필자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관용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그 완충지대 넓이와 두께에 달려 있다고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진영 논리에 갇혀 우리가 드러내는 사고나 습관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글이 당신과 함께 산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품는데 소소한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적폐 청산 광풍이 불 때는 완충지대는 다시 얇아지며 "휴머니스트는 개뿔"이 된다.

 

 


 

다시 2019년 댓글 재판으로 돌아가자. 공소사실은 정보·홍보·보안 분야에 걸쳐 있었기에 증인이 수백 명에 달했다.

 

2019년 한 해 내내 법정에 앉아 증인 진술을 들었다. 공소사실에 걸쳐 있는 2010~2012년 당시를 차분히 되돌아봤다.

 

그 당시 필자도 광화문 촛불집회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동참했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집회에서 내가 기억하는 모든 장면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경찰 대응은 분명히 필요했다.

 


 

그 당시 경찰이 했던 대응 상당수가 ‘여론조작’이라는 검사 주장이 수없이 나왔다.

 

이에 증인으로 나온 한 경찰이 반박했다.

 

“저는 지금 이 재판이 진행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경찰의 적절한 여론 대응이 왜 이것이 재판 대상이 되는지 잘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이 일선에서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잘 모르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중간 의사전달 과정에서 곡해될 수 있고 실제로 일을 실행하는 사람이 오버할 수 있겠지요. 그런 부분이 지금 문제로 부각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그 당시에 정말 올바른 여론대응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지,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저도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는 당시 대전지방경찰청장이던 황운하였다.

 

법정 복도에서 황운하를 만났다.

 

드림필드11 블로그 인용

 

황운하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황운하는 능청을 떨었다.

 

“난 기억 안 나. 뭐가 미안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 기억이 안나겠는가. 내가 “그 머리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건드렸는데.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중도일보 인용

 

그는 증언을 마치고 법원을 떠났다.

 


 

우리가 또 만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행보를 생각하며 떠나는 대전지방경찰청장(치안감) 황운하 뒷모습은 박근혜 정권 시절과는 달랐다.

 


 

2015년 그해 봄, 경찰대 교수부장 황운하는 치안감 승진을 포기하고 퇴직 후를 생각하던 시점이었다.

 

그때 처음 점심 식사를 같이 했던 날이 떠오른다. 황운하는 같이 밥 먹자며 친한 후배도 불렀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 함께 관용차에 올라탔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았는데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사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조현오 이후로 경찰청장 인물이 안 나오고 있어.”

 

“그러게 말이에요.”

 

 

황운하와 후배 민갑룡(당시 경찰대 치안 연구소장)은 대화에 정신이 없다.

 

달리는 차창 안으로 햇살이 듬뿍 들어오고 있었다. 자연현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심한 듯 보인다.

 

 

The End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7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경찰을 취재한 시기는 2013년쯤이다.

 

처음 취재 방향을 정하기 전까지 온라인에서 경찰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정보를 쌓기 시작했다.

 

경찰 조직에 아는 게 없는 나에게는 언론이 말을 옮긴 경찰부터 접촉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가장 유명한 것은 조현오 청장이었지만 조현오는 관심 밖 인물이었다. 언론이 전하는 인상도 대부분 좋지 않았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진압하면서 몽둥이로 노동자를 두들기는 장면에서 앞뒤 맥락이 어떻든 무슨 상관인가.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인 조현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진보언론이 다룬 기사도 한몫했다.

 

채수창이 성과주의를 비판한 기자회견을 비롯해 2009년부터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징계를 받은 경찰들 사연을 내보냈다.

 

대부분 징계받은 시기와 관할을 따지지도 않고 원인으로 조현오를 지목했다.

 


 

오히려 자기 신분과 이름을 밝히고 활동하는 다른 경찰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에게는 나름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있었다.

 

1980년대 군사정권 후 사회 분위기가 민주적으로 바뀌면서 언론자유도 한결 보장받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이 분위기를 타고 경찰을 향해 갑질하는 기자들이 허위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는 1998년부터 허위 기사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는 경찰이 전국에서 등장한다.

 

그중에 내가 만난 이가 경찰 황운하, 황정인 등이다. 취재란 늘 그렇듯이 온라인에서 모은 풍문과 어설픈 추측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황운하는 2013년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경무관이었다. 경무관 계급정년은 6년이며, 통상 4년 이내에 치안감 승진을 노린다.

 

황운하. 중도일보 인용

 

당시 황운하는 경무관 2년 차로 수사연수원장이었고 아직 망한 단계가 아닌 만큼 절실함도 없었다.

 

주변에 언론계 인맥이 풍부해 굳이 나와 작업할 이유도 없었다.

 

필자는 보기에는 아주 외향적이고 밝은 성격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아주 슬프고 우울함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헤어질 때 황운하는 다시 만날 일이 없다고 말했고 서운함을 느꼈다.

 


 

두 번째로 황정인을 만났을 때 경찰보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더 관심이 갔다.

 

내부통신망에 상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징계를 당하자 ‘표적 감찰’을 주장하던 경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황정인도 거침없이 상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겨레기사 캡쳐

 

 

황정인은 자기도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에 걸리는지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고 했다.

 

황정인 글 쓰기 비법은 양극단을 짚는 것이다.

 

황정인이 조현오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는 ‘조현오 청장이 헌법정신을 중시 여긴다’는 점을 드높이면서 시작한다. 비판에 칭찬을 덧붙인다는 것이다.

 

그에게 조현오가 진짜 헌법정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평소 국관회의에서 헌법 준수를 자주 강조한다고 했다.

 


 

이런 황정인도 감찰을 받을 뻔했다.

 

2011년 6월 8일 반값 등록금 집회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는데 당시 그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 팀장이었다. 물론 그는 징계를 피했다.

 

황정인 말을 그대로 옮긴다.

 

황정인이 블로그에 쓴 글은 많은 언론이 인용했다. 오전 국관회의에 참석했는데 감찰부서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노컷뉴스 인용

 

쫄면서 앉아 있는데 조현오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더니 황정인부터 찾았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글 썼던데!”

 

이 한마디로 감찰은 없던 일이 됐다. 황정인은 조현오 카리스마를 직접 겪었다.

 

황정인과 대화하면서 조현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상대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모른다는 것을 확인할 때 관심은 높아지는 법이다. 언론이 띄운 인물을 만나고 나니 취재 대상이 확고하게 정해졌다.

 

바로 조현오 전 청장이다.

 


 

조현오는 2012년 4월 5일 퇴직했다. 2013년 가을 고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으로 구속된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에게 황정인 씨 덕에 호감을 얻게 됐다고 털어놨다.

 


 

만날 일이 없다던 황운하는 그 후로 해마다 만났다.

 

경무관 4년 차이던 2015년에 우연히 만났다. 당시 대전지방경찰청 부장이었다. 여전히 승진 희망이 있었는지 절실함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헤어질 때 황운하는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황운하는 2016년 경무관 5년 차에 경찰대 교수부장으로 갔다. 그때부터 위로를 빙자한 밥과 술로 자주 접촉했다.

 

그때 필자가 쓴 글이 바로 <풍운아 황운하>다.

 

일 년 후 경찰 조직을 나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지나간 경찰 생활을 정리한 글을 쓰고 싶다며 필자에게 상담했다. 나 또한 조직에서 망해가는 황운하를 위로해주고자 시작된 글 작업이었다.

 

 

 

어쩌다가 황운하가 이렇게 추락하게 됐을까?

 

황운하를 처음 중용한 경찰청장은 허준영이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이다. 총경이던 황운하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 팀장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수사구조개혁팀 계장은 민갑룡이었다. 경찰 측 자문 위원 중에는 조국 서울대 교수가 있었다.

 

이후 황운하를 중용한 이가 조현오다. 2011년 경무관으로 승진을 시켜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내정했다.

 

 

조현오가 물러나자 박근혜 정부에서 황운하는 수사와 관련 없는 부서를 떠돌았고 권력형 수사는 막힌다. 더불어 인사도 망가졌다.

 

황운하는 탄식하곤 했다.

 

“조 청장님이었다면 이렇게 조직이 망가지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됐다. 경찰 수사권 조정에 유리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황운하는 치안감으로 승진하며 울산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다.

 

민갑룡 경찰청장 내정자. ytn인용

 

민갑룡은 민정수석 조국이 강력하게 추천해 경찰청장이 됐다.

 

(☞조국과 친분 묻자…민갑룡 “청문회에서 말하겠다”)

 

적폐청산은 국정과제였다. 민정수석 조국은 적폐 청산 콘트롤 타워를 자처했다.

 


 

2018년 봄, 경찰청에 댓글 관련 특별수사팀이 설치됐다.

 

경찰 조직 안에서는 이 수사를 곱지 않게 보는 눈이 있었다. 하지만 적폐 청산 명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울산지방청장 황운하에게 나는 민감한 부분을 대놓고 찔렀다. 감정이 폭발하면서 우리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물론 경찰청 내부망에 자신을 드러내고 비판한 경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글은 조현오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찰 댓글 특별수사팀은 이 글을 조현오 구속영장청구 명분으로 활용했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조현오가 친한 경찰을 동원해 조직 내 여론 조작을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오는 2018년 10월 5일 구속됐다.

 


 

구속 기간 경찰청 국정감사가 열렸다. 경찰청장 민갑룡을 향한 국회의원 질문이 쏟아졌다.

 

야당 소식인 윤재옥 의원이 물었다.

 

윤재옥 의원과 민갑룡 경찰청장.시사포커스tv인용

 

 

윤재옥 위원: “청장으로서 전직 경찰총수를 경찰이 수사해서 최초로 구속시킨 사건이라고 보도됐는데 소회나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청장 민갑룡: “법과 원칙에 따라 행위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리해나가겠습니다.”

 

 


 

 

이재정 의원(여당)은 시사저널 단독 기사를 띄웠다. (☞  조현오 입장문 "직무범위 벗어난 지시는 전혀 없었다" )

 

 

 

조현오 입장문을 담은 인터뷰 내용이었다.

 

이재정 위원: “(여기에) 민갑룡 청장을 운운했습니다. ‘민갑룡 청장이 이러한 수사 가이드라인에 항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장의 의지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 하면서 뻔뻔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증거가 현격한데요.... (이런) 상황에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하고 경찰청장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문에 몇 번이나 언급을 하는데 경찰청장님한테 뭐 소통된 게 있습니까? 이것 보는 경찰청장님 입장은 어떻습니까?"

 

민갑룡은 이 질의에 “그 분은 그분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즉 그 생각은 조현오 ‘당신의 것(Yours)’일 뿐이다.

 

그런데 이채익 위원은 이러한 민 청장 답변을 ‘당신 자신의 것(Yourself)’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채익 의원과 민갑룡 경찰청장.연합뉴스 인용

 

이채익 위원 : “울산 남구갑 이채익 위원입니다. 오늘 오전 존경하신 윤재옥 위원의 질의에 민갑룡 경찰청장의 답변을 들으면서 본 위원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오늘 위원들의 각종 질의에는 그토록 신중하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던 청장이 경찰청의 대선배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구속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고 정확한 답변을 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죄를 지었으면 구속은 당연하다. 또한 모든 것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만약 조현오 청장이 무죄가 되면 오늘 이 답변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경찰청장 민갑룡 : 수사 과정을 통해서 불법이 있다는 걸 규정을 했고요. 현재 영장실질심사 과정까지 거쳐서 법원에서도 그렇게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답변을 드린 겁니다.

 

이채익 위원 : 구속은 됐지만 아직까지 확정되지는 않았잖아요.
경찰청장 민갑룡 : 예 그렇습니다.
이채익 위원 : 그런데 경찰청장이 그렇게...
경찰청장 민갑룡 : 현재까지 사법적인 판단까지 거친...

 

이채익 위원 : “경찰청장이 이런 답변을 그렇게 예단해서 미리 얘기할 수 있어요? 내가 1998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울산 남구 구청장을 할 때 조현오 청장이 당시 남부경찰서장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조현오 청장을 두둔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전화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만났던 조현오 청장은 국가관이 뚜렷하고 공과 사가 분명한, 너무 공과 사가 분명해서 불편할 정도로 제가 봤을 때는 참경찰상이다, 그렇지만 대민 관계에 좀 더 유연성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할 정도로 너무 국가관이 뚜렷한 경찰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다 보니까 조현오 청장도 이제 영어의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모셨던 전 경찰청장이 경찰의 손에 의해서 구치소에 들어가고 구치가 되고 최초로 경찰청에 의해서 구속된 전 청장에 대해서 구속은 당연하다. 법과 원칙에 따라 했으니까 아무 문제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민갑룡은 이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때 민갑룡이 느꼈을 두려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마 민갑룡은 나에게 자기를 아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 ytn인용

 

 

그렇다면 자신은 누군가처럼 직을 걸고 맞설 그런 용기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스치듯 말했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민갑룡 쌍둥이인가? 2013년이다.

 


 

조현오도 그 시절 순탄하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013년 가을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 봄 그를 면회했다. 조현오는 감옥에 있을 때부터 필자에게 후배 경찰을 소개해줬다.

 

조현오는 가장 먼저 소개해주고 싶은 이가 있다며 경찰 조직 ‘넘버 원’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름을 들었는데 촌스럽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민갑룡”

 

(마지막 화. 생활의 발견.)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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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5화 부산경찰의 힘

 

 

 

 

2011년 부산지방경찰청에 가장 큰 현안은 '희망버스' 집회였다.

 

집회 날짜는 예고돼 있고 그에 맞춰서 각 기능은 대책을 수립했다. 잘못된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게 홍보 업무 가운데 핵심이다.

 

부산경찰청에 출입하는 기자들과 유대 관계만 신경 쓰면 충분했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홍보담당관실은 SNS 환경을 반영해 희망버스 여론 대응 계획을 만들었다.

 


 

2011년 6월부터 희망버스 집회가 열렸다.

 

경찰 처지에서 1차 시위는 허를 찔렸다고 볼 수 있다. 희망버스 시위대가 군함을 건조하는 ‘가’급 국가 중요시설인 한진중공업 사다리를 타고 담장을 넘어 침입했기 때문이다.

 

부산경찰청 제공

 

그 후에 법원에서 외부인 출입금지 가처분 결정이 났고 한진중공업 경비가 강화됐다.

 

1차 희망버스 집회가 끝나고 바로 2차 집회가 예고됐다. 2차는 가장 대규모 인원이 참가할 것이라는 정보가 잡혔다. 일부 정치인도 가세한다고 했다.

 

시위대는 SNS를 통해서 집회 참가자 모집, 경찰력 배치, 영도조선소 진입을 위한 해상침투 등 각종 정보를 퍼트렸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경찰로서는 온라인 모니터링과 대응이 더욱 중요해졌다. 희망버스 시위 당시 아침·저녁으로 청장과 차장 주재 대책회의가 진행됐다.

 

본청도 1차에 영도조선소가 뚫리고 대규모 2차 집회가 진행되면서는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경찰청장 조현오는 화상 간부회의에서 여론대응팀 가동을 주문했다.

 

고학성은 조현오 지시 이후 부산지방경찰청 창설 이후 전무후무한 여론 대응 계획을 수립했다고 했다. 온라인 TF(태스크포스) 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법정에서 검찰이 TF팀 창설을 지시한 자를 묻자 고학성은 분명하게 답했다.

 

"부산청장 지시를 받았어예."

 

희망버스 집회 전날 부산청은 온라인 TF팀 직원 37명에게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홍보담당관실 직원이 TF팀 직원에게 트위터 계정 생성부터 리트윗 등 기초를 가르쳤다. 온라인 활동은 집회가 시작된 토요일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1박 2일 동안 진행됐다.

 

김주완 블로그 인용

 

부산청 언론대응 TF팀 37명은 한 곳에 모여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먼저 부산청 홍보담당관실 직원은 대형 스크린에 이슈를 띄워 대응을 지시했다.

 

이를테면 '최루액이 발암물질이다'라는 이슈에 대해 경찰은 '거짓말', '시위대 불법행위' 등 대응 방향을 정해 실행했다. 30여 명이 한 강당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여론 흐름을 좌지우지한 것처럼 보인다.

 

 


 

 

희망버스 10월 8일 부산에서 열린 5차 집회로 막을 내렸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세가 약해지기까지 온라인 여론 대응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결과보고서가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에서 본청으로 쭉쭉 올라갔다.

 

2011년 부산청은 성과평가 '최상위'를 받았다.

 

홍보담당관 고학성은 무조건 조현오 지시 때문에 비공식 댓글 활동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은 부산지방경찰청에는 이러한 SNS 대응 경험과 역량이 오래전부터 축적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2010년 2월 부산에서 발생한 김길태 여중생 살인 사건 자료를 제시했다. 당시 온라인에 김길태 팬카페가 생기고 김길태 영웅화, 김길태 음모론 등 기가 막힌 내용들이 퍼졌다.

 

 

부산경찰청은 자체적으로 댓글 대응을 포함한 사이버 대응을 하여 김길태 카페를 폐쇄 조치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호인이 ‘부산경찰의 힘’을 내세운 반면, 검찰은 더 강한 자료를 증거를 내밀었다.

 


 

희망버스 집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청 주재로 워크숍이 열렸다. 워크숍에서 오고 간 말들은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문건에는 조현오 경찰청장은 부산 순경 권창훈(가명)에게 '비공식 대응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나온다. 이는 명백한 증거다.

 

왜 조현오는 권창훈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이 사건은 이미 10년 전 일을 파헤친 것이다.

 

조현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권창훈은 어떨까.

 

법정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그때 스테이크 먹은 기억밖에 안 나예. 그 문건의 발언 내용을 봤을 때는 다 사실인데 청장님이 밑에 전국 직원 다 불러놓고 '야 댓글 달아라' 이렇게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문건 내용을 따라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 보자.

 


 

권창훈 순경은 희망버스 집회 당시 한진중공업 정문에서 근무했다.

 

당시는 트위터가 유행이었다.

 

 

 

집회 담당 경찰도 트위터 앱을 설치하여 '버스' 단어를 실시간 검색했다. 뭐라고 경찰을 욕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초상권 인식이 낮았다. 시위대는 경찰들 사진을 찍어 그대로 트위터에 올렸다. 동료 경찰관들은 트위터에 서로 얼굴이 나왔다면서 알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권창훈 트위터가 능숙해졌다.

 

그는 희망버스 집회가 끝나고 나서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에서 전화를 받는다.

 

“SNS가 유행이라서 한 자리 생겼다”

 

대체 권창훈에게 행운처럼 굴러온 ‘한 자리’는 무엇인가?

 


 

당시 경찰청은 비난 여론 대응 방식 변화를 모색했다. 경찰청은 유행하던 온라인 미디어 <위키트리>에 눈을 돌린다. <위키트리>는 SNS를 중심으로 뉴스 아이템을 발굴해 이용자들과 함께 뉴스를 생산·편집하는 서비스다.

 

 

경찰청은 공식 대응을 강화하는 '온라인 소통계'를 2011년 10월 신설한다. 경찰청 온라인소통계 직원들이 기자처럼 소속을 밝혀 글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한 글을 트위터가 퍼트리면 된다.

 

그런데 한 가지 난관이 생겼다.

 

경찰청이나 지방청 공식 트위터 팔로워 수가 많지 않아 확산력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홍보를 하면 팔로워 수가 늘어날 것이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확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트위터를 하는 젊은 경찰을 대상으로 '온라인 커뮤니케이터'를 모집했다. 이미 부산청도 '온라인 커뮤니케이터'를 선발했다. 그중 한 명이 권창훈(가명)이다.

 


 

2011년 11월 22일 전국 '온라인 커뮤니케이터'가 참석하는 창설 기념행사가 열린다는 공문이 부산청에 왔다. 그 자리에서 청장 발언이 끝나면 한 명씩 발언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폴리스타임즈 인용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은 워크숍에서 직원들이 돌출 발언을 하지 않도록 단도리했다. 경찰청장 앞에서 어떤 질문을 한 것인지 미리 연습해 발언하도록 했다.

 

당시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은 권창훈에게 다음과 같은 건의를 청장에게 하도록 연습시켰다.

 

"웬만하면 신분을 밝히고 대응하는 것도 좋지만 비공식적 대응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왜 직원들은 권창훈에게 이런 말을 하게 했을까? 권창훈은 이렇게 말했다.

 

"가서 우리 잘했다고 어필하고 온나."

 

권창훈이 비공식 대응 필요성을 제기한 배경이다.

 

문서에는 조현오가 이렇게 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웬만하면 신분을 밝히고 대응하는 것이 좋지만 비공식적 대응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조현오가 씩씩한 순경에게 무안을 주지 않으려고 애써 부드럽게 돌려서 한 말이라는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조현오가 청장 시절 이런 조직을 만들어 비공식적이고 조직적인 댓글과 트위터 활동으로 온라인 여론이 형성되는 장을 파괴한 게 핵심이다.

 


 

권창훈은 법정에서 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권 씨는 지난 10년 동안 느낀 점을 털어놨다.

 

"저희 내부 분위기가 말이 ‘조직적’이지, 그냥 요만한 것(작은 것)을 이만하다고(크게) 보고도 많이 하거든예."

 

권창훈이 말한 대로면 당시 부산청 언론대응 TF팀 37명이 한 곳에서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대응하여 여론 흐름을 주도했다고 하지만, 이 또한 과장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당일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사용법을 익혔다. 즉 30명 대부분 팔로우가 없는 알 계정인 것이다. 트위터에 글을 쓴다고 리트윗 할 팔로워가 없다.

 

그래서 부산청 홍보팀장은 목표를 이렇게 설정했다.

 

"그 당시 저희가 했던 것은 트위터에 '희망버스'로 검색하면 그 글이 올라가는 정도만..."

 

하지만 거친 표현이 들어간 글들이 문제가 된다.

 


 

홍보실 직원은 당시 홍보담당관 고학성이 "트위터에 좌측 세력이 너무 많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했다.

 

게다가 고학성이 당시 여론대응 TF팀에게 '더 세게'를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진술이 나왔다.

 

고학성이 법정에서 기억에 없다고 할수록 '더 세게'라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이 쏟아졌다.

 

 

-변호인: ....온라인TF 경찰관들에게 “더 세게, 더 세게”라고 하면서....
-재판장: 증인이 더 세게 더 세게 했다는 거 맞아요?
-변호인: 정보화교육장에 가서 더 세게 더 세게 표현하라는 식으로....
-재판장: 그렇게 한 것 맞아요? 더 세게 더 세게?
-변호인: 증인이 강하게! 더 세게! 계속 ............

 

고학성이 저항할수록 재판장과 변호인은 계속 “더 세게 더 세게”라고 밀어붙였다.

 

법정이라는 이 고립된 공간은 어느새 <브로크백 마운튼>(이안 감독)을 떠올리게 만든다.

 

 

에니스 델마(히스 레저)와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레할) 못지않게 고학성 또한 가혹한 현실을 견디고 있었다.

 


 

반면 ‘보안 댓글’ 수사는 영화 <에어리언 대 프레데터>에 비유할 수 있겠다.

 

 

보안 분야 댓글은 범죄 댓글 중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내용은 가장 심각했다. 당연히 조현오 시절 보안국장이 줄줄이 조사받았다.

 

조현오 시절 마지막 보안국장은 김용판(2012년)이다.

 


 

2018년 8월 19일 <한겨레>가 또 단독 보도를 했다.

 

김용판 “조현오 전 경찰청장 댓글 지시 위법하다 판단”

 

기사 내용을 보면 김용판은 경찰 조사에서 조현오가 댓글 작성을 지시한 사실은 있지만 위법하다고 판단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조현오를 피의자로 입건하는 결정적 한 방이었다.

 

그러나 김용판은 6년 동안 댓글 위법성에 침묵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프레데터 은신(clocking) 능력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산성 피를 쏟아낸 것은 조현오가 아닌, 바로 검찰이었다.

 

(다음 제6화. 오! 용판)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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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10년 전 이명박 정권 적폐까지 파헤쳤다. 그중 하나가 ‘댓글 공작’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원·군·기무사·경찰을 동원해 여론 조작을 시도한 사건이다. 그들이 신분을 숨기고 조직적으로 댓글을 쓴 가장 큰 목적은 ‘이명박 정부 옹호’로 알려졌다.

 

이 글은 댓글 공작에 대한 경찰 수사를 다룬다. 수사 과정을 보며 생겼던 한 가지 의문이 출발점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정말 틀렸을까?”

 

‘댓글 공작’ 경찰 수사 기록을 다시 불러낸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1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찰 댓글 수사는 2018년 3월 12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서 시작됐다.

 

국정원·군 이어 경찰도... 2011~2012년 ‘댓글 공작’ 드러나

 

경찰청은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이 집중적으로 파헤친 기간은 2010년 8월에서 2012년 4월이다. 바로 조현오가 서울청장, 경찰청장이던 시절이다.

 

조현오는 2010년 2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댓글부대’를 구성했다. 최대 인원은 100여 명에 달했다. 부대 이름은 스폴(SPOL), Seoul Police Opinion Leader 약자다.

 

이름부터 온라인 여론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지휘부는 쟁점(issue)을 지정해 스폴에 댓글 작성을 지시했다.

 

수사를 시작하자 상급자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댓글을 썼다는 피해자 진술이 쏟아져 나왔다.

 

조현오를 비롯해 경찰 간부 5명에게 적용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방해행사’이다. 조현오는 경찰 댓글 공작을 지휘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됐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이 나왔다. 정보 분야 전체 범죄 댓글 가운데 14.4%를 경찰 한 명이 썼다는 것이다. 그 경찰은 ‘와일드애니멀’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했다.

 

와일드애니멀은 2010년 11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열린 ‘G20 서울정상회의’ 관련 기사에 특히 댓글을 많이 썼다.

 

이명박 정부가 몹시 신경을 썼던 행사다. 와일드애니멀이 쓴 댓글을 보면 단순히 횟수만 많은 게 아니라 분량도 남다르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입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대륙을 향하여 표호하는 끝자락에 있는 작지만 가장 강한 나라 대한민국 아주 순수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또한 손님을 접대할 줄 아는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도 하지요. 이번 G-20 행사 때 세계를 리드하는 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합니다. 어디 지도자분이겠습니까?? 한나라의 대통령이 오시면 그에 따른 수행원과 경제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시는데 집회나 시위를 하여 그분들에게 불안감을 주거나 방해를 한다면 손님들을 불러놓고 집안싸움하는 꼴이 될 것이고 백의의 나라 호랑이가 대륙을 향해 표호하는 대한민국이 세계로부터 버림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여타 나라에서 신뢰를 잃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 후손들은 더욱 어려운 경제와 신뢰가 떨어져 활동하는데 위축될 것이 뻔할 것입니다. 이제 진정으로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행사 기간에는 우리 모두가 양보하고 단합하여 세계 지도자들이 깜작 놀라도록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줍시다. 세계 20개국 외에도 어마어마한 거물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많은 지도자와 훌륭하신 분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실 때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계를 리드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줍시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나요?? 우리 한 번 해 봅시다~~ > (정치관여옹호 범죄 댓글)

 

 

와일드 애니멀은 댓글 치고는 매우 길게 썼다. 댓글 작성을 마치면 이어서 또 쓰기도 했다. 어떤 댓글 작성 시각은 오전 6시 29분, 6시 34분, 6시 38분, 6시 42분으로 이어진다.

 

특별수사팀은 와일드애니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2013년 이미 퇴직한 와일드애니멀을 강제 수사하기는 어려웠다.

 

와일드애니멀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법정이다.

 


 

와일드애니멀은 스폴(SPOL)에서 활동을 인정했다. 그는 동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 정확하게는 기억에 안 나지만 그 당시에 학교폭력이 제일 많았기 때문에 저는 제 아들도 일진에 가입돼가지고 한동안 제가 힘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스폴을 ‘학교폭력 전담 경찰(School Police)’로 이해했으며 결코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시간대를 보면 지시가 내려오기 전에, 이미 댓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댓글 보고를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소속 부서는 댓글 작성을 업무성과에 반영하지도 않았다.

 

그는 생활안전과 소속으로 2010년 남대문경찰서 태평로지구대장으로 근무했다. 주변 경찰들은 그가 평소 댓글을 많이 쓰는 것을 알았다. 서울청에서 스폴 모집 이야기가 나오자 주변에서 그를 추천했다. 그에게 지시를 내린 주체가 있다면 언론과 현장이다.

 

당시 와일드애니멀 일상은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까지 지구대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태평로지구대 주변은 천막을 치고 노숙하는 시위자가 있다.

 

이 구역에서 집회는 일상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경찰은 밥이었다. 시위대는 ‘짭새 새끼’라고 욕했고 운전자는 교통정리도 못하는 ‘세금 도둑’으로 취급했다.

 

2010년 스마트폰 보급률은 4% 정도다. 대부분 컴퓨터로 기사를 검색했다.

 

현장에서 지구대로 돌아온 와일드애니멀은 자리에서 온라인 기사를 살핀다. 대부분 경찰을 비난하는 보도다. 사실관계를 왜곡한 기사에는 댓글을 달았다. 사실관계 왜곡 기준은 와일드애니멀이 정했다.

 

물론 현장에서 자괴감을 느낀 경찰이 모두 와일드애니멀처럼 댓글을 쓰지는 않는다. 와일드애니멀에게는 남다른 경험이 있다. 그는 사건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했다.

 


 

1984년 4월 9일. 당시 서울 ◯◯경찰서에 근무하던 와일드애니멀은 집회시위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곳에서 시위대에 끌려간 그는 3일 동안 한 대학에서 고초를 겪었다.

 

가까스로 풀려난 그는 경찰병원에 이송돼 9개월 정도 입원했다. 이후 몸과 마음이 모두 변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찰을 무조건 비난하는 보도를 보면 목이 메고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댓글은 이런 괴로움을 덜어내는 수단이었다.

 

“마음 답답한 게 글을 달고 나면 아 좀 시원한 느낌이 들고 자기 만족감도 있고.”

 

하지만 검사는 와일드애니멀이 썼던 댓글이 집회시위 관리를 내세워 시위 동력을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조현오 경찰청장 지시를 따른 것이고 이명박 정부가 원했던 것이다.

 

검사는 다음 아고라에 달았던 와일드애니멀 댓글을 문제 삼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큰 행사인 이번 G20 우리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해 주는 나라로 성장한 작금에 확실하게 아시아의 표호하는 호랑이가 세계를 향하여 표호 하는 이 시기에 확실한 매듭을 짓기 위해 모이는 G20 정상회의에 우리 모두는 정성을 다 해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이런 시기에 테러 집단과 야합한다던지 집회나 시위를 하려 한다면 그는 진정 지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이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배달의 자손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내고 계시는 수많은 명사들과 땀을 흘리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중대한 시기에 테러나 집회를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고 그 무엇입니까?? 저희들은 어릴 적에 강냉이 죽을 배급받아먹고 자랐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갔습니다. 더욱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으려면 이번 기회야말로 가장 호기입니다. 한 번 해봅시다~~ 여러분 >

 

검사가 물었다.

 

“증인은 지금 중요한 전제를 깔고 있기를 중요한 일이 있으면 집회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이에 와일드 애니멀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손님 불러놓고 집안에서 싸울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검사는 더 질문하지 않았다. 당시 필자 옆에서 함께 재판을 보던 분이 “공무원 중에 나이 많을수록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라고 속삭였다.

 

와일드애니멀이 시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현오를 옹호하는 댓글은 어떻게 봐야 할까.

 

‘조현오 개인 옹호 댓글’ 개수 1위도 와일드애니멀이다.

 

 

 

“여기 보시면 2010년 8월 14일부터 피고인이 서울청장일 때 인사청문회 관련하여 증인이 피고인을 개인적으로 옹호하는 댓글을 34건이나 달았어요.”

 

이 질문에 답하는 와일드애니멀 목소리가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변했다.

 

“제가 청장님을 존경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기 때문에 달았다는 것인가요?”

 

“네. 처음에 저도 청장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한 번 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청장님 듣다시피 목소리가 허스키하시고.....”

 

이 부분에서 검사가 증인 말을 재빨리 끊고 핵심을 짚고자 했다.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어요?”

 

와일드애니멀 목소리는 여전히 꽃밭 위를 날고 있었다.

 

“웃음이 별로 없으신 분인데 처음에 참석하고 나서 굉장히 직원들에 대한 배려, 조직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 경찰을 이끄시는... 제가 생각하는 서울 치안이 대한민국 치안이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막중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분이 조직을 이끌면, 정말 잘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

 

 

그러자 검사는 논리 싸움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지금 증인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아는 조현오 청장은 이런 사람이고 경찰청장을 수행할 능력과 인품이 충분한 분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안다’ 이렇게 써야 하는 게 아니냐.”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한다.”

 

검사는 다시 댓글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댓글을 보십시오. ‘경찰청장 내정자를 비하하다니. 그럼 누가 경찰을 이끌고 갈 것인가’ 그럼 내정자를 비판하지 누구를 비판합니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임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비판하여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일을 못하면 물러나게 하면 되지...’ 이런 식입니다. ‘경찰청장은 훌륭하고...’ 뭐 이런 내용이 아니에요. 증인이 주장하는 내용과 댓글 내용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와일드애니멀은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 내용과 이 내용이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와일드애니멀은 당시 조현오 서울청장이 “경찰청장 수뇌부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재판장도 뭐가 그리 좋았냐고 재차 물었다. 와일드애니멀은 “성과주의를 도입하고, 공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았다”고 답했다.

 

 

와일드애니멀 증언은 특별수사팀 수사 결과와 배치된다. 하지만 와일드애니멀이 조현오 청장 지지자라 거짓증언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도 스폴팀에서 두 번째로 댓글을 많이 쓴 직원은 조현오를 싫어한다고 밝혔다.

 

 

‘댓글 은메달’ 아이디는 ‘틱스님’이다. 과연 틱스님은 지시에 의한 행위였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해 줄 것인가. (다음 제2화 밤의 집회에서 혼자)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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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2010년 6월 23일 서울 양천경찰서 경찰관 4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고자 가혹행위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수갑을 채워 팔을 꺾어 올리는 이른바 ‘날개 꺾기’ 같은 폭력을 행사했다는 게 사회적으로 충격을 줬다.

 

6월 29일 강북경찰서장인 채수창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리한 성과주의가 양천경찰서 고문을 부추겼다며 서울청장인 조현오가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청장인 강희락과 조현오는 불편한 사이였다. 하지만, 경찰 조직에서 하극상에 대한 대응은 단호했다. 강희락은 조현오 퇴진 요구를 기강 문란 행위로 규정하고 채수창을 직위 해제한다. 이후 채수창이 제기한 성과주의 비판은 일선 경찰서 직원도 공감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보직과 승진 인사 기준은 오직 성과’. 조현오가 내세운 ‘성과주의’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언론은 조현오가 MB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고 갑자기 실적 위주 평가를 도입한 것처럼 접근했다. 물론 MB 정부가 행정 효율성을 유난히 강조했고 ‘성과주의’는 그 방향을 잘 따른 방침처럼 보이기는 했다. 조현오는 그저 정부 기조를 잘 따랐을 뿐일까.

 


 

경찰 조직에서 실적에 집착하는 관행은 이전부터 있었다. 조현오가 형사과장일 때는 ‘범죄와의 전쟁’이 한창이었는데 대부분 경찰서 형사과장실에는 각 팀별 실적을 표시하는 막대그래프가 걸려있었다. 당시 전체 수사 활동비로 지급하던 돈이 430만 원 정도였는데 조현오는 수사비 절반은 형사 수만큼 나눴고 나머지 절반은 한 달 동안 팀별 성과에 맞춰 지급했다.

 

 

 

조현오가 성과를 강조한 것은 울산남부서장 때부터 도드라진다. 경정 이하 인사는 시험과 심사로 승진을 결정한다. 심사는 경찰서장의 주관적인 판단과 ‘빽’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였다. 조현오는 심사 과정에서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자 했다. 한 번은 승진 대상자를 모아놓고 이런 말도 했다.

 

“자신이 왜 승진해야 하는지 설명해봐라. 조직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자기 업무를 어떻게 열심히 했는지 증명해봐라.”

 

순위는 모두 보는 앞에서 성과를 중심으로 결정됐다.

 


 

조현오는 2003년 서울종암서장 때도 여전히 성과를 중시했다. 당시 종암서 형사과 실적은 서울지역 31개 경찰서 중 상위권이었다. 조현오는 형사과에 자주 들러 형사들을 격려하곤 했다. 그런데 한 번은 조현오가 생활안전과장에게 서울종암서 관할 파출소 직원 200여 명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성과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조사 결과 검거 실적이 전혀 없는 직원이 70여 명이었다.

 

해마다 경찰청은 다양한 치안 관련 통계를 내놓는다. 범죄 발생을 월, 요일, 시각, 장소, 기상 등으로 구분해 통계를 낸다. 이는 치안 수요에 맞게 인력을 배치하는 참고 자료가 된다. 70여 명이 1년 동안 실적이 없다는 것은 인력 배정이 문제 거나 직원이 일을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게 조현오 판단이었다. 조현오는 형사계장에게 일주일 동안 재교육 운영을 지시했다. 소매치기 식별 요령부터 수배자 검거 방법까지 전반적인 교육이 진행됐다. 재교육 성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최근에도 경찰청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일화가 있다. 2007년 조현오가 경비국장일 때 일이다. 이때도 승진 기준은 성과였고 순위는 공개한다는 게 인사 원칙이었다. 경비국 회의실에서 조현오는 참석자에게 ‘우리가 합의한 내용’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승진 순위를 밝혔다. 이 순번은 조현오가 보직 이동을 한 뒤에도 어김없이 지켜진다. 조현오가 떠났을 때 ‘빽’이 개입할 틈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조현오도 이를 의식했는지 이듬해 부산청장으로 옮기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순번을 어기는 사람은 내가 경찰청장이 되면 가만 안 두겠다.”

 


 

2008년 조현오는 부산청장으로 부임한다. 오랜 참모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휘관으로서 이력이 시작됐다. 부산에서는 지금도 조현오를 두고 ‘추진력은 최고’라는 평가가 많다.

 

조현오는 오전 6시 30분쯤이면 출근했다. 간밤에 주요 수배자 검거 소식을 들으면 즉시 검거 직원이 있는 경찰서로 향했다. 조현오가 움직이면 지방청 인사계에서도 함께 움직였다.

 

 

 

부산지방청에서 가장 먼 부산강서경찰서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조현오는 언제나 8시 전에 도착해 공을 세운 경찰을 격려했다. 인사계에서 준비한 상과 상품도 함께 전달됐다. 낮에도 주요 검거 소식이 들리면 경찰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조현오는 경찰 사기를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2007년 말 혜진이, 예슬이 사건, 2008년 3월 일산 엘리베이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 등으로 경찰은 거센 비난을 받고 있었다.

 

2014년 기준으로 부산에는 경찰서 15개, 파출소 40개, 지구대가 50개 있다. 조현오는 치안 체계를 점검하고자 각 팀별로 실적 통계를 내라고 지시한다. 그 결과 최고 실적과 최저 실적 차이는 1224배나 됐다. 조현오는 당장 성과를 근거로 인력을 배정하고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내부 게시판에서는 성과주의를 향한 불만이 쏟아졌다. 조현오 역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토론하고 싶은 사람은 당장 다 와라. 결론 나올 때까지 토론하자. 내가 잘못했으면 깨끗이 거두겠다. 내가 맞으면 내 방침을 따라라.”

 

끝장 토론으로 불평·불만을 돌파하는 방식은 일선 경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듯하다. 최근에도 그 일화를 떠올리는 경찰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물론 이 같은 대응을 두고 실적을 바탕으로 차기 경찰청장 자리를 노린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한 경찰 취재기자 생각은 달랐다.

 

“청장으로 와서 다양한 정책을 펼치는 부류가 있어요. 그런 정책이 인기를 얻으면 차기로 가는 디딤돌이 되지요. 하지만,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되고자 다양한 정책을 통해 인기를 얻고자 하지는 않았어요. 그보다 자기 권한으로 잘못된 것을 뜯어고치겠다는 쪽이었지요.”

 

조현오는 권한이 커질수록 징계 수위도 높였다. 비리를 도려내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경찰 조직 안에서는 1985년부터 경찰대 출신들이 입문하면서 조직을 깨끗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이처럼 아래에서는 ‘경찰개혁의 첨병’이라는 자부심으로 뭉친 젊은 피가 수혈되고 있었고 위로는 모든 청장이 유착 근절을 부르짖었다.

 

조현오도 부패 경찰 척결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과격했다. 일반적으로 유착에 대한 징계는 ‘사후 조치’였다. 경찰이 업주에게 돈을 받은 게 나와야 징계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현오는 단속 대상자인 업주와 업무 외 전화를 아예 금지했다. 물 한 잔도 얻어먹지 말라는 지시를 어긴 경찰에게는 여지없이 징계가 떨어졌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한 기자가 내린 평가는 박했다. 단순 통화는 통신 자유에 해당하며 설사 지시를 어겨 징계를 하더라도 행위에 비례하는 문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조현오가 징계한 직원 중 일부는 소청심판이나 행정소송을 거쳐 살아나기도 했다. 조현오가 내세운 ‘일벌백계’는 명료했지만 분명히 지나친 면도 있었다.

 

지방청장은 경정 이하 승진과 전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보통 경찰서 간 전보 인사는 인근 경찰서로 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성과를 기준으로 인력 배정을 진행한 조현오에게 관례는 관례일 뿐이었다. 해운대경찰서에서 강서경찰서로 옮기게 된 직원들 불만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해운대와 강서는 부산에서 경찰서 사이 거리가 가장 먼 곳으로 이동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2009년 경기지방청장으로 부임한 조현오는 징계 차원에서 평택에 근무하는 직원을 포천으로 보내기도 했다.

 


 

2010년 서울청장 때는 비리 온상으로 지목된 강남경찰서 수사팀을 뒤엎었다. 당시 강남 유흥업계가 단속을 돈으로 무마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조현오는 업주와 엮인 경찰을 서슴없이 징계하기 시작했다.

 

한 언론은 조현오가 차기 경찰청장 임명을 앞두고 ‘자기 관리’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강력한 내부 비리 척결로 청와대 관심을 끌고자 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현오가 청와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맞다. 민정수석실도 나름 움직이기 시작한 듯했다.

 

(다음 8화-조현오, ‘룸싸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서형 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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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조현오 전 청장(이하 호칭 생략)은 차명계좌 발언으로 많은 사람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겼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출소 후 2014년 말,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다녀왔다. 관련 기사에는 수행원이 3명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호의호식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2015년 2월 말, 조현오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수행원 정체를 밝혔다. 바로 그 수행원 가운데 한 명이 필자다.

 

조현오를 알게 된 것은 <나꼼수>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서다. <나꼼수>에서 다룬 조현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장자연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나꼼수 30회)’, ‘검경 수사권 조정을 검찰에 유리하게 한 장본인이고(나꼼수 31회)’, ‘디도스 수사에서 경찰 수사를 망친 장본인이며(나꼼수 32회)’, ‘경찰에 최시중 관련 첩보를 줬음에도 수사를 방해한 인물(봉주 2회)’이었다.

 

 

2013년 중반까지 조현오는 관심 밖 인물이었다. 당시 경찰을 취재 중이었고 한 형사에게 자신이 수사하던 사건을 윗선에서 덮으려던 일을 듣게 됐다. 그는 사직서를 준비하고 윗선에 들이댔다.

 

“만약 사건을 가져가면 사표를 내고 조현오 청장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사건을 묻으려던 시도는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됐다. 형사에게 ‘경찰청장 조현오’는 어떤 상징이었을까.

 

“검찰과 붙었을 때 그만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이 흔치 않거든요. 위에 눈치 안 보고 내부 비리에는 굉장히 부정적이지요. 바로 날려버려요. 숙청하듯이.”

 

이어진 경찰 취재 과정에서 접한 조현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조 파면’이라는 별명을 거론하며 독재자로 보는 시선도 있었고 인사 문제에 대한 불만은 상당했다. 반면 긍정적인 평가는 그동안 <나꼼수>에서 접했던 조현오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상반됐다.

 

“역대 경찰청장 중 허준영과 조현오를 존경해요. 아이러니한 것은 외무고시 출신들이 조직에 들어와서 비전을 줬다는 것이지요.”

 

“경찰 조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분이에요.”

 

“역대 청장 중 청와대와 관계에서 가장 강한 목소리를 냈어요. 검·경 수사권 다툼이 벌어질 때 자기에게 큰 타격이 올 수도 있어요. 통상적으로 검찰 조직은 자기 조직에 대항하거나 해를 입히면 반드시 보복합니다. 자기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상대 힘을 빼지요. 대표적인 대상이 경찰 수장이고요. 차명계좌 고소 건 외에는 걸릴 게 없는 분이잖아요. 국민이 갖는 가장 큰 이미지는 차명계좌 발언이지만 큰 줄기는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고 사명을 회피하는 사람은 아니지요.”

 

“카리스마 있어요.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이 있고 가차 없지요. ‘조 파면’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조직 내 비리를 완전히 쓸어버리면 조직은 깨끗해질 것 아니에요?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조현오> 책 표지에 멍든 사진? 그것은 이제석 디자인인데, 그런 디자인 쓴 것에 대해 쿨하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보기에는 수구적이고 권위적일 것 같지만 생각이 대단히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이들은 조현오가 차명계좌 발언으로 저평가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꼼수>가 제기한 내용이 과연 진실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사전조사를 마치면서 경찰을 주제로 글을 쓴다면 그건 ‘조현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조현오를 몹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연락처를 비롯해 그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조현오는 당시 ‘차명계좌 발언’으로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죄’로 기소돼 항소심 재판을 받았다. 이런 죄는 보통 양형이 벌금 100만 원 정도다. 항소심 재판에서 그는 차명계좌 발언 진원지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 임 씨를 지목했지만, 임 씨는 부인했다. 2013년 9월 26일 그는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다시 구속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정보가 하나도 없는 것과 소재를 알고 있는 것은 큰 차이다. 서울구치소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내용은 특별할 게 없이 평소 생각하는 바를 적었다. 하지만, 조현오는 편지를 받는 족족 찢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이 과정에서 조현오는 누군가를 한 번 믿으면 그냥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언젠가 그에게 재판기록을 요청했을 때 주변에서는 극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모든 기록을 조건 없이 보내줬다.

 

조현오는 2014년 5월 중순 만기 출소했다. 그에게 연락을 받고 만나기로 하면서 부탁한 것은 재판부가 하지 않았던 현장검증이었다. 그가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이야기를 들었다는 한 서울역 인근 호텔 식당을 현장으로 지목했다.

 

 


 

조현오는 서울청장으로 부임해 2010년 3월쯤 이 호텔 식당에서 임 씨를 만났다고 한다. 지금까지 언론은 임 씨를 MB와 독대할 수 있는 핵심 실세 가운데 한 명으로 묘사했다. 그만큼 정보력이 막강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문은 당시 임 씨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 상황을 알 수 있는 지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임 씨가 조현오를 만난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현오가 임 씨를 만났다는 식당은 호텔 지하에 있는 고급 다다미방이다. 음식 값은 1인당 최하가 10만 원 선이다. 단아한 옷차림으로 머리를 깨끗이 뒤로 동여맨 아가씨들이 음식 시중을 든다. 조현오에게 임 씨에 대한 기억을 더듬도록 했다.

 

임 씨는 음식을 나르는 아가씨에게 ‘기프트 카드(Gift Card)’로 결제가 가능한지를 물었다고 한다. 아가씨는 결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임 씨는 카드 유효기간을 두고 아가씨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조현오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결제할지 고민하다가 예의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술이었다. 막강한 정보력이 있다는 사람이 자기 상품권 카드로 결제가 되는지도 모르는 식당에 서울지방청장을 불러냈다? 애초부터 불러낸 사람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정도로 허술할까? 법정 진술도 이런 식이었다면 재판부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듯했다.

 

조현오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차명계좌’ 발언에 대해 서울지방청장 시절 내부 강의였을 뿐이고 허위 인식과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문제가 있다.

 

그는 당시 현직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다. 일반 국민들로서는 그가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발언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고위직 공무원은 그만큼 말과 행동에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가 받은 판결이 부당한 면이 있다는 점을 짚어야겠다. 조현오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는 징역 8개월로 감형됐다. 감형 이유는 경찰직 공무원으로서 끼친 사회적 공헌을 고려한 것이다.

 

경찰 안에서 조현오를 싫어하는 이도 동의하는 점이 있다. 그가 매우 청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도 있다. MB가 임명한 경찰총수이기 때문이다. 차명계좌 발언까지 했을 정도면 눈치 보기와 아부에도 능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다.

 

 

영화 라스트 캐슬(2001)

 

 

‘균형 잡힌 시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라스트 캐슬>에서 어원(로버트 레드포드) 장군은 교도소장에게 군 형무소 수감자를 대하는 태도가 왜 서로 다른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은 그들의 최악인 면을 바라보지만, 나는 최선의 면을 보고자 한다.”

 

1차 현장검증에서 조현오에게 ‘최선의 면’을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과 정치적 색채가 맞지 않다면 모두 부정적으로 색칠하는 오늘날 사회상에 대한 반발로 조현오를 다시 보게 됐다. 물론 조현오는 여러 정치적인 논란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이다. 이 글은 분명히 선의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대상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작가가 책임을 져야 할 영역이다.

 


 

조현오와 첫 만남이 끝날 즈음 2차 현장검증을 제안했다. 장소는 서울시청 근처에 있는 코리아나호텔 중식당이었다. 이곳에서 조현오는 경찰청장 시절 당시 청와대 ◯◯ 수석과 언쟁이 있었다고 했다. 한 달 뒤에 조현오와 다시 만났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는 식탁이 있는 방이었다.

 

그곳에서 청와대 ◯◯ 수석에게 어떤 일로 화를 냈는지 물었다. ◯◯ 수석이 “검찰에 차명계좌 사건이 수사 진행 중인데, 조청장이 수사권 관련해서 그렇게 강하게 발언해도 되는 건가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칠 때쯤 <나꼼수>에서 주진우 기자가 망쳤다고 주장한 사건이 떠올랐다.

 

“여기 왔으니 안 물어볼 수 없네요.”

 

코리아나호텔 사장은 방용훈이며,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형제이다. 2009년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있었던 ‘장자연 사건’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다음 제2화-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 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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