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제3화. 참여정부가 댓글에 빠진 날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2018년 8월 중순으로 기억한다. 경찰 댓글 공작 사건으로 조현오 청장 시절 국장 급부터 구속영장 청구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들었다.

 

그 명단에는 2016년 퇴임한 정용선도 포함됐다. 

 

정용선에게 전화해 대비하라고 알려줬다. 정용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이렇게 툭 내뱉었다.

 

“내가 뭘 했는데요?”

 

문재인 정부 들어 군, 기무사 등에서 특별수사팀이 설치되고 수사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을 귀띔했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구속은 정당성을 갖추는 중요한 모양새다. 구속영장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게 여론전도 펼친다. 경찰 댓글 사건에서도 이런 방식이 되풀이됐다.

 


 

정용선은 한참 생각하더니 경찰 조사 때 제출한 자료가 있다고 말했다. 17쪽에 달하는 내용이다. 오랫동안 정보·기획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알던 경찰청 업무 내용을 떠올리며 혼자 작성했다. 

 

정용선. 연합뉴스 인용

 

물론 경찰 사이버 대응 요령도 포함됐다.

 


 

필자는 이 내용을 검찰 출신 변호사에게 보내 검토해달라고 했다. 철저한 검찰주의자인 그 변호사는 문서를 읽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떤 법조인도 이렇게 보고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나 탁월하다.”

 

훗날 법정에서 재판장도 정용선에게 보고서를 잘 봤다고 덧붙였다.

 


 

정용선 보고서는 큰 제목, 소제목, 숫자 배치, 당구장 표시를 적절히 사용하여 노무현 정권부터 현재까지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 보고서가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던 까닭은 정용선 씨가 그 업무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용선 씨 업무를 되짚어보자.

 


 

경찰 조직은 창설 이후 주요 일간지와 방송 기사를 살펴서 경찰 관련 기사를 챙겨 확인했다.

 

 

경찰 언론 대응 방법은 다른 정부 기관과 같다. 정부 각 부처는 허위보도나 왜곡 주장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청구로 대응했다. 물론 보도자료 배포, 공식 브리핑(문자나 메일 전달 포함)은 기본이다. 이걸  공식 대응이라고 한다. 

 

국가기관 사이버 대응은 2000년쯤 김대중 정부 시절 인터넷 발달과 시작됐다. 그러면서 사이버상 허위 주장과 허위사실도 등장했다. 이는 오늘날 ‘가짜 뉴스’로 개념화된다.

 

영상역사관 인용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언론 공식 대응 방법으로 새로운 대응이 도입된다. 바로 댓글 게재다. 대상은 ‘국정브리핑’에 올린 언론보도였고 댓글 실적을 부처 평가에 반영했다.

 

정용선은 그 당시 충격을 받은 언론들이 기사를 쏟아냈던 것을 기억했다..

 


1.동아일보“BH(청와대) 지시사항이다. 매일 댓글 달라"(2006.4.6.)

2. 동아일보 (사설) 언론 공격 ‘댓글 달기’ 경쟁시키는 청와대(2004.4.6.)

3. 프레시안 노 대통령 “<국정브리핑> 댓글 달아라 ” 지시 논란(2006.04.06.)

4. 연합뉴스. <홍보처‘언론보도에 부처 의견달기’ 공문 발송 (2006.4.6.)

5. Views&News:국정홍보처,‘댓글 지시 달기’ 파문

6. 데일리안 : 노무현 정부,‘ 전 공무원의 댓글 요원화’? (2006.4.6.)

(현재 네이버상에 제목은 검색되나 기사 내용은 삭제된 상태)

7. 문화일보 : 정부 각 부처별 언론보도에 ‘댓글’ 독려(2006.4.6.)

8. 노컷뉴스“공무원들, 언론 보도에 꼭 댓글 달아라”(2006.4.6.)

9. 동아일보: 공무원들 “댓글 잘 달면 출세”... 온라인 국정운영 실태(2006.4.7.)

10. 노컷뉴스. 공무원 “댓글 달기... 달라면 달아야죠.”(2006.4.7.)

11. 세계일보 : “언론보도에 부처 댓글 달아라... 평가에 반영”(2006.4.7.)

12. SBS: 국정홍보처 ”댓글로 언론보도 대응하라”(2006.4.6.)

 


 

경찰도 정부 방침을 따라간다. 이것은 경찰청 정보2과 업무였고 2006년 정보2과장은 정용선이었다.

 

정용선. 뉴스1 인용

 

13만 명을 거느린 경찰청 업무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반복 업무는 대부분 관행적으로 이뤄진다.

 

우선 사이버 이슈에 대응하려면 인터넷상에 어떤 경찰 관련 내용이 떠도는지 파악해야 한다.

 

sbs 인용

 

정보2과는 수집된 사이버 이슈를 기능과 관할에 맞게 통보한다. 물대포 내용은 경비과, 삼색 신호등 내용은 교통과, 서울 사건은 서울청으로 통보할 것이다.

 

이 사이버 이슈를 통보받은 해당 기능이나 해당 지방청 또는 경찰서는 사실 확인을 거친 뒤 대응 여부와 수단을 결정했다.

 

뉴시스 인용

 


 

이 업무가 더 중요하게 자리매김한 계기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광우병 사태는 이명박 정부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08년 6월 청와대는 인터넷을 담당하는 국민소통비서관을 신설했다. 또 부처별 대변인실마다 소관 업무에 대한 인터넷 대응을 강조하고 평가했다.

 

이에 경찰청 정보국도 사이버 정보만 전담하는 정보관 2명을 배치했고 사이버 치안정보를 수집·작성·배포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용선은 정보2과장에서 기획조정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획조정담당관은 조선시대 왕명을 하달하는 도승지와 비슷하다. 과장 중 서열 1번으로 국관회의에서 경찰청장 지시 사항을 정리해 전국 경찰에게 배포한다.

 

2009년 강희락 경찰청장 내정자와 정용선 본청 과장. 매일건설신문 인용.

 

2009년 강희락 경찰청장이 내정됐다. 강희락은 2010년 1월 정용선을 경무관으로 승진시켜 정보심의관으로 삼았다.

 

오마이뉴스 인용

46세인 정용선은 언제나 동기보다 2~3계급 승진이 빨랐다. 경찰청에는 50대 과장이 즐비하다. 정용선은 각별히 처신에 신경 썼다.

 

2010년 8월 강희락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조현오가 청장으로 취임했다.

 

강희락(좌)-조현오(우).시사저널 인용.

 

정용선은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지방청 근무를 희망했다. 그러나 조현오는 업무능력이 탁월한 정용선에게 남아달라고 부탁한다.

 

조현오는 2011년 정용선을 치안감 승진 명단에 넣는다.

 

조현오 경찰청장 시절 정용선(좌). 뉴시스 인용

 

정용선은 이처럼 어느 청장이 오든 항상 인정받고 승진했다.

 

강신명 청장 시절 정용선(우) 수사국장. 일요서울 인용

 

직장인이라면 그 비법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정용선은 두 가지를 꼽았다. 보고할 때 멍청하게 보이지 말고 상사 기분을 맞출 것!

 


 

경찰청은 청장 주재 회의를 8시 30분에 시작한다. 그전까지 경찰청장은 과장들 보고를 받는다. 보고할 사람이 두 명 정도 남으면 비서실은 정보심의관에게 전화를 한다. 

 

“지금 올라오십시오.”

 

정보심의관실은 10층에 있고 경찰청장실은 9층이다. 보고 시간이 임박할 즈음 직원이 ‘사이버이슈 보고’를 마무리해서 가져온다.

 

정용선은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내용을 한 번 훑어본다.  하지만 정용선은 청장 보고 시 ‘사이버동향보고서’에 대해 중점적으로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청장 관심사는 주요 사건이었지 사이버이슈가 아니었다.

 

주요 사건은 신문 1면이나 9시 뉴스에 나오는 정도 사안을 말한다.

 

만약 모 경찰서 초동 조치가 미흡했다는 뉴스가 전날 밤 9시 뉴스에 나왔다면 이미 전날 본청 감찰과에서 총출동한 상태다.

 

 

 

이 내용은 정용선이 청장에게 보고하기 전에 이미 해당 업무 과장이 보고를 마쳤다. 즉 해당 기능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조치가 이뤄진 상황이다.

 

정용선은 이미 보고가 돼 알고 있는 사안을 절대 경찰청장 앞에서 주절주절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태도가 멍청해 보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이버이슈는 왜 중점적으로 보고하지 않았을까. 크지 않은 사이버이슈에 대해서는 각 기능별로 큰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정용선이 다른 기능에 관련된 사이버이슈를 보고했다 치자. 그렇다면 그 기능 국장이나 과장이 정용선에게 일을 크게 만들었다며 비난할 것이다.

 

“보고 안 해도 되는 것까지 보고해서 사람 힘들게 한다.”

 

또한 이러한 보고 내용은 대부분 경찰 조직에 좋지 않은 사안이다. 경찰청장 처지에서 기분 좋을 리 없다. 이처럼 보고 과정에서 상사 기분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다. 수석이 괜히 수석이 아닌 것이다. 

 

정용선은 보고를 마치고 '주요 사이버 이슈 보고서'는 시간 있을 때 읽어보라며 다른 보고서와 함께 책상에 두곤 했다.

 


 

정용선은 2016년 경기지방경찰청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했다.

 

정용선 경기지방경찰청장. 뉴스1 인용

 

정용선은 그간 업무와 국관회의 지시사항을  종합해볼 때, 경찰 조직은 경찰 신분을 밝히고 대응하는 ‘공식 대응’이 기조였다고 인식했다. 이게 정용선이 작성한  17페이지 보고서 핵심이다. 

 


하지만 2018년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조현오 청장 재직 시절 경찰이 신분을 숨기고 댓글 공작을 펼쳤다며 수사했다.

 

당시 서울청에서 어떤 이슈에 댓글을 달았는지를 알 수 있는 '이슈 대응 목록'과 그에 따른 댓글 작업 보고서를 찾아냈고 그것을 언론에 흘렸다.

 

 

이는 정용선 기억과 다르다.  혹시 정용선 씨가 미처 놓친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경찰청은 매일 보고서가 물밀듯 들어온다. 지방청에서 보내는 자료들 중에는 사이버 대응 과정에서 어떤 직원이 어떤 내용으로 댓글을 달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보고서도 분명 있다.  정용선은 이러한 지방청 자료를 신경 써서 살펴보지 않았다.

 

정용선은 왜 이런 자료를 거들떠보지 않았을까? 정용선은 정보심의관 시절 하루에 봤던 보고서 분량이 적어도 500페이지 이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늘 상 시스템에 의해 들어오는 지방청 자료는 관심이 떨어진다.


그렇더라도 ‘댓글 공작’을 펼쳤다는 특별수사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정용선은 경찰 정보통이지만 경찰청 수사국장을 지냈고 지방청 수사과장도 거쳤다.

 

특별수사팀 수사기록은 정용선이 볼 수 없다. 그러나 단서가 있다.

 

특별수사팀이 언론에 흘린 서울청이 작성한 '이슈 대응 목록'이다. 이 목록으로 어떤 이슈에 대응했는지와 대응한 날짜를 파악할 수 있다.

 

 

정용선은 대응한 날짜 전후로 각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사를 찾았고 그곳에 경찰관이 올린 글을 일일이 찾아내기 시작했다.

 

정용선은 경찰관이 자기 실명 또는 자기 직책을 밝히고 쓴 것을 계속해서 찾아냈다. 90여 건 정도였다. 이는 정용선 기억과 일치한다.

 

하지만 정용선은 더 이상 찾아내지 못했다.

 

2010년 경찰서와 지방청마다 언론 대응을 했기에 당시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올린 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3년 전후로 경찰서마다 자체 운영하던 홈페이지가 지방청으로 통합되고 지방청 홈페이지도 본청 홈페이지로 통합됐다.

 

즉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그렇다면 대체 익명 댓글은 어떻게 된 것인가. 정용선은 재판에 넘겨진 후에 수사 기록을 모두 받아 살펴봤다. 진실은 기록에 있었다.

 

수사기관이 포털사에서 확보한 댓글 등은 30만 개였다. 기소한 댓글은 그중 4%인 1만 2000여 개다.

 

정용선은 수사 기록을 보고 지금까지 경찰이 공식 대응을 했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렇다면 왜 익명 댓글로 활동하게 된 것인가. 특별수사팀도 이 업무를 담당한 본청 계장 직원, 실무자에게 확인했다. 정보과에 속한 직원들 상당수 진술이 수사기록으로 남아 있다.

 

드림필드11 블로그 인용

그 후 필자가 정용선을 만난 것은 재판을 앞둔 법정 복도였다.

 

그동안 수사기록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 흔적이 보였다. 그는 몹시 의외라는 표정으로 낮게 속삭였다.

 

“어떻게 여경들이 오히려 당차고 진술을 똑 부러지게 하고...”

 

(다음 제4화, 여경은 경찰의 미래다.)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2화. 밤의 집회에서 혼자

 

 

수사관 X는 2010년경 서울 종로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이하 지능팀) 소속이었다.

 

수사관 X는 힘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성격이 아니었다. 요청을 받으면 자기 이름부터 올렸다. 그가 스폴(SPOL) 팀에 가입한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았고 영어로 뭐라 하는데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들어보니 꽤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었다.

 

“내 이름 넣어라.”

 

 


수사관 X는 법정에서 조현오 청장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분’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검찰은 수사관 X가 ‘틱스님’이라는 아이디로 댓글을 다수 작성했다고 말했다.

 

집회 시위자를 비난하여 시위 동력을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었다. 이는 조현오 청장 지시를 따른 것이고 더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 국정 방향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노컷뉴스 인용

 

그런데 틱스님은 자발적 댓글이었다고 주장했다. 수사부서는 ‘댓글 평가’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틱스님이 속한 지능팀은 집회 관련 수사도 담당한다. 2010년은 집회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집회가 격렬해져 체포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현장에서 대기하는 동안에는 여유가 있다.

 

동영상을 보기도 하고 기사를 읽고 심심풀이로 댓글을 쓰기도 한다. 시위가 밤을 넘겨 진행되면 지능팀 수사관도 야외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2011년 6월 대학생 반값 등록금 시위 때도 현장에 있었다.

 

대기 중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데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이 한창이었다. 틱스님은 한 뉴스에 댓글을 달았다.

 

<조삼모사, 검찰의 보복이 무서운 것인지! 경찰이 힘이 없는 건지! 나 원 참! 검찰 개혁한다는 말은 몇 년 전부터 들었지만...... 나미 아미타불> (수사권 옹호 범죄 댓글)

 

집회가 격렬해지면서 불법 행위자가 나오자 현장에서 체포를 진행한다. 수갑을 채우자 시위대는 경찰에게 항의한다. ‘인권 침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틱스님은 자기 집에서 도둑을 잡으면 수갑을 채우지 않고 친절하게 안내하라는 말인가 묻고 싶지만 묵묵히 할 일만 했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시위대는 ‘폭력 경찰’ 구호를 반복한다. 오히려 맞는 쪽은 경찰인데 말이다. 틱스님은 집회에서 받은 짜증을 댓글로 풀었다.

 

<차 밀려 죽겠는데 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 니네 집 앞에서 해라.> (집회시위 비난 댓글)

 

반값 등록금 시위에 대학생이 몰려나왔다. 몇몇 취한 듯한 대학생은 욕설을 쏟아냈다. 틱스님은 또 댓글을 달았다.

 

<등록금 비싼 것 사실임. 나도 대학생 곧 생김. 그래서 집회 현장 갔더니 인신 비난에 입에 담지 못 할 저질 언행...... 매우 중요한 정책의 장임에도, 이런 저질 난장판이 없었습니다. 목적이 모욕인지 등록금인지. 대학생인지 주정뱅이 싸움장인지 헷갈립니다.>(집회시위 비난 댓글)

 

당시 틱스님은 그때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10년이 흐르면서 사회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사건(대한항공 땅콩 회향 사건)이 벌어지고, 문제 행위를 규정할 개념과 용어가 생겨난다.

 

방송화면캡처

 

틱스님은 법정에서 2011년 전후로 감정적인 댓글을 올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집회 현장에서는 경찰이 ‘을’이었거든요. ‘아주 처참한 을!’. 그 사람들로부터 당한 갑질, 지금 말하면 갑질이지요. 그리고 또 다른 경찰관들이 당하는 상황을 봤을 때 당장 내 눈앞에서 보이는 저 짜증 나는 상황, 저 갑질을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올렸다.”

 

 


 

필자는 지금 이 사건이 터무니없는 수사였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점이 의문이다.


 

 

이 사건은 2010년 8월에서 2012년 4월 사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조현오가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장을 지낸 시절이다. 당시 모든 서울지역 일선 경찰서에는 스폴팀원이 있었다. 

 

서울강북경찰서도 예외일 수 없다. 2010년 6월 채수창 서울강북서장이 조현오 식 ‘성과주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댓글 공작 활동 언급은 없었다. 

 

노컷뉴스 인용

 

경찰 댓글 공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수사권 조정’이었다. 경찰청이 주도한 이 작업은 전체 범죄 댓글 중 20%를 차지했다.

 

2011년 6월 황정인 경찰청 경정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수사권 조정 합의를 주도한 조현오 청장을 거세게 비난했다.

 

한겨레기사.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도 댓글 작업 관련 언급은 없다. 조현오에게 큰 약점이 될 사건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물론 댓글 공작은 이들 언급 여부와 상관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지난 10여 년간 아무런 소문도 없이 묻힐 수 있었을까?

 

혹시 경찰 조직 명령체계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조현오 청장은 와일드애니멀이나 틱스님 둘 다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일선 직원에게 명령을 전달하려면 체계가 있어야 한다. 즉 조현오에게는 공모자가 필요하다.

 

공모자를 알아내려면 일선 직원부터 조사해야 한다. 하기 싫었는데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진술이 쌓인다. 이들을 피해자라고 부른다.

 

아시아투데이 인용

 

이러한 피해자가 누구에게 명령을 받았는지 선을 타고 올라간다.

 

경찰청 정보국 조직도를 살펴보자. 조현오 경찰청장 아래로 차장-정보국장-정보심의관-정보2과장-계장 순서다.

 

경찰청은 실무가 계장 중심으로 돌아간다. 서로 각기 다른 기능을 맡은 계장끼리 스스로 협조하고 판단하는 부분까지 상급자가 신경 쓸 틈이 없다.

 

하지만 댓글 공작 지시라면 윗선에서 계장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MBN 방송 인용

 

전에 모시던 상사를 데려다가 강도 높게 다그치는 수사는 어느 조직이든 재미도 없거니와 쉽지도 않다.

 

한마디로 경찰 조직을 들쑤실 수사를 하지 않는 한 밝히기 어렵다.

 

강도 높은 적폐 청산을 주문한 청와대와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경찰 조직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이철성·민갑룡 경찰청장 의지가 받쳐 줘야 한다.

 

민갑룡(좌)-이철성(우) 경찰청장. 뉴스1 인용

 

여기서 조현오 청장과 스폴팀 운영 공모자로 걸려든 이는 당시 정용선 정보심의관이다.

 

정용선은 경찰대 3기 수석 졸업생으로, 필자도 조현오로부터 정용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2015년 1월 9일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이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고서를 늦게 제출한 과장에게 욕설을 한 게 문제가 됐다.

 

MBN방송 인용

상사는 직원 업무 능력을 어떻게 파악할까. 조현오는 업무 관련 질문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업무를 어느 정도 꿰고 있는지 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조현오가 보기에 정용선은 업무 능력이 탁월했다. 청장이 바뀌어도 정용선이 늘 승승장구한 이유다.

 

물론 정용선이 상사 취향을 잘 맞추기도 했을 테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상사 댓글 취향까지 추가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용선 심의관은 언제 어느 시점에 만나서 조현오 청장 댓글 지시에 ‘무조건 따봉’이라고 외쳤을까?

 


 

첫 번째 가능성은 오전 8시 전, 경찰청장 보고 시간이다.

 

7시 50분쯤 경찰청장 집무실 앞은 보고를 앞둔 과장들이 줄을 서 있다. 본청 과장은 총 45명 정도 되기 때문에 보고뿐만 아니라 결재도 오전에 받는다. 아침에 많을 때는 20~30명이 대기한다.

 

뉴시스 인용

조현오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오전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명했다. 하지만 과장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자주 봐야 정이 쌓이고 눈도장도 찍는다. 승진이나 좋은 보직을 위해서는 사소한 보고라도 들고 가야 한다.

 

과장 보고가 끝나면 맨 마지막 정보심의관 보고가 기다린다. 정보심의관이 마지막 순번인 것도 관행이다.

 

바로 이때 조현오가 정용선에게 이슈를 정해주고 댓글 지시를 내렸다는 진술이 나왔다. 정용선이 청장 보고 후 다시 사무실에 들러서 계장에게 사이버 대응 지시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에 정용선은 이렇게 답했다.

 

“시간도 안 되고, 말도 안 되고, 예의도 아니고…”

 

이유는 이렇다. 정보심의관 보고가 끝나면 바로 8시 30분 경찰청장 주재 국관회의가 시작된다.

 

노컷뉴스 인용

회의실은 경찰청장 직무실 바로 옆에 있다. 그곳에는 이미 국장과 주요 과장이 앉아 회의를 기다리고 있다. 보고가 끝난 정보심의관이 바로 국관회의실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바로 청장이 입장한다.

 


두 번째 댓글 지시 가능성은 바로 국관회의를 통해서다.

 

회의에는 각 국장들이 그날 그 주에 해야 할 일이나 문제가 된 사안을 청장에게 순차적으로 보고한다.

 

연합뉴스 인용

청장은 보고한 사안에 대해서 그렇게 하라는 취지로 말한다. 이어 차장이 당부 사항이 있으면 말을를 하고 마친다. 국관회의에는 기획조정과 직원도 참석한다. 그날 청장 발언을 기록해 경찰 내부망에 공유한다.

 

이 내용은 현직 경찰관은 누구나 조회할 수 있다. 이 기록은 모두 남아 있는데 여기에 정보심의관에게 지시한 내용은 없다.

 


 

마지막은 따로 불러서 은밀히 지시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공문과 지시가 서로 다르면 13만 경찰 조직을 이끌 수 없다.

 

국관회의에서 청장 지시 사항을 받고 국장회의, 과장 회의, 계장과 실무진 회의를 통해서 각 기능 업무를 진행한다. 한 마디로 경찰은 시스템에 의해서 운영되는 조직이다. 

 

경찰청 주요 실무진은 계장이다. 당연히 댓글 업무 실무도 계장이 담당한다. 그러나 당시 정보국 계장 진술을 보면 정용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익명의 댓글 대응과 관련해서. 제가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이슈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가족들도 댓글을 달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시기에 ”업무적인 지시에 가족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라고 문제 제기했던 기억은 난다. 가족들에게 댓글을 달라는 말이 무슨 말이겠는가. 경찰관임을 밝히지 않고 일반인이 마치 경찰에 우호적인 댓글을 작성하고 있는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반면 정용선은 이렇게 기억했다.

 

“그때 인터넷에서 수사권 관련해서 <옳다/아니다.>라는 라이브폴(Live Poll)이 있었어요. 계장들 다 잔뜩 있는 자리에서 어떤 계장이 “그거 했다.”라고 하니까 다른 계장이 “나도 했다.” “나도 찬성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제가 농담조로 “너는 가족도 없냐. 가족 이름으로 한 명 더 하면 되지”라고 말했던 거죠. 왜냐하면 (live poll은) 실명으로 하기에 한 번 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농담조로 “너는 가족도 없냐.”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저렇게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와전된 게 아닌가.. "

 

이처럼 10년 전 기억은 서로 어긋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당시 공문 내용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청 특별수사단은 압수수색을 통해 문서를 잔뜩 파헤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인용

 

한편 퇴직한 정용선도 다시 업무를 재개했다. 

 

 

(다음 3화. 참여정부가 댓글에 빠진 날)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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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2부) 목차

1화 300

2화 이런 수사관은 처음이지? 놀랬다면 미안해.

3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4화 다키스트아워(Darkest hour)

 

 

 

영화 다키스트아워 포스터(2017년작)

 

 

제4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9년 3월 안산에서 부동산 사기 사건이 터졌다.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에게는 월세라고 하고 세입자에게는 전세라고 한 뒤 전세금을 가로챈 사건이다. 피해자가 100명이 넘었다. 경기남부지방청은 부동산 중개업자를 구속했다.

 

김헌기 2부장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문제가 아니다. 유사한 범죄가 있을 거 아냐. 전세금을 유용한 놈이 한두 명이겠냐. 피해자는 젊은 직장인이나 학생들이고 다들 전세금을 엄마, 아빠가 해줬거나 은행 대출해서 마련한 것이잖아. 이건 확대 수사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겠느냐?”

 

“구청과 협조해서 부동산중개업자를 조사하겠습니다.”

 

김헌기는 이것을 도랑 막고 물을 퍼내 고기를 잡는 ‘막고 푸기’식 수사라고 했다. 무식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그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해? 모든 부동산 중개업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경찰이 조사하겠다면 부동산 중개업에서 가만히 있겠냐? 들고일어나지. 대다수는 선량한 중개업자인데 몇 놈 일탈한 놈 잡겠다고 이 잡듯이 뒤져? 그 몇 개 찾으려고 그 많은 수사력을 동원해?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신고를 받는 거야. 신고를 들어오면 수사를 하면 돼 우리는 신고하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만 하면 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대학가와 오피스텔에 ‘부동산 사기 집중신고기간 운영’이라고 홍보 펼침막을 걸었다.

 

신고를 유도하면 범죄 싹을 자르면서 예방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이런 감각은 어떻게 생길까?

 

김헌기는 영화 <다키스트 아워 Darkest hour>에서 처칠 부인이 남편을 위로한 대사를 인용했다.

 

“그 마음의 갈등이 지금 당신을 이렇게 단련시킨 거에요. 당신은 불완전하기에 강하고, 확신이 없기에 현명한 것이에요.”

 

영화 다키스트 아워 포스터(2017년작)

 

 

김헌기는 후배들에게 거듭 말했다. 어려운 과제를 받으면 고민과 갈등이 생기지만 그런 단련을 통해 감각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어쩌면 국민이 흘리는 피와 눈물에 땀과 노력으로 답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김헌기는 2015년 경무관으로 승진하면서 인천지방경찰청 제2부장으로 근무한다. 인천지역 수사와 112 상황실을 담당한다.

 

그해 김헌기 책상에는 상황보고서가 쌓였다. 상황실에서 전날 발생한 범죄 목록을 작성해 내부망에 전파한다. 김헌기가 출근하기 전 이미 부속실장이 이를 인쇄해서 갖다 놓는다.

 

2015년 10월 2일, 인천에서 남자가 전 여자친구를 살해 한 뒤 오피스텔에서 투신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살해된 여성은 이미 그전에 두 차례 112 신고를 했었다. 당일은 남녀가 심하게 다툰다는 이웃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이미 살해된 상태였다.

 

김헌기는 이 사건에서 경찰 대응에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다. 데이트 폭력 대응 기획은 이처럼 상황보고서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상황보고서에서 매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범죄가 있었다. 바로 1997년 대만에서 시작해 2006년 한국으로 건너온 ‘보이스피싱’이다.

 

속여서 돈을 가로채는 방법은 시대와 환경에 맞춰 계속 교묘해졌다.

 

당시 보이스피싱을 예방 방법을 고민하던 김헌기는 은행이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을 착안했다. 피해자가 은행에 가서 거액으로 현금을 찾을 때 은행직원이 경찰에 신고를 해주는 방법이다.

 

인천지방경찰청 2부장 시절에는 인천지역에만 적용했다. 하지만 곧 생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피해자에게 은행 직원과 경찰이 한통속이라며 믿지 못하게 유도한 것이다. 김헌기는 다른 공략법을 찾아야 했다. 결론은 휴대전화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다른 사람과 연락하지 못하도록 휴대전화를 켜놓고 있게 유도한다. 다짜고짜 휴대전화를 뒤졌다가는 민원이 발생한다. 개인 역량이 아니라 조직 시스템으로 걸러야 한다. 김헌기는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경찰이 먼저 시민에게 보이스피싱과 관련해 현금 인출하려는 게 아닌가 반드시 질문한다. 아니라고 대답해도 휴대전화가 통화 중이면 보이스피싱 피해자로 짐작할 수 있다.

 

이듬해 김헌기는 본청 수사기획관이 되면서 이 체계를 전국에 적용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왼쪽),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사진=금감원

 

지금이라도 경찰청에 보이스피싱 전담부서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김헌기는 부정적이다. 보이스피싱 지휘부는 대부분 중국에 있다. 잡아봤자 보병들, 즉 인출책과 송금책이 계속 나타나니 끝이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김헌기 식 해법은 이렇다.

 

“코로나 19 관련해서 국무총리가 대책본부장이 되잖아요. 보이스피싱도 총리가 대책본부장이 돼 끌고 가야 해요. 중국 공안과 공조하는 것도 경찰 혼자보다 외교부가 함께 나서야 더 효과적이고. 금융과 통신 제도를 고쳐야 해요. 안전과 편의는 반비례 관계인데 우리는 편의 위주로 가지요. 금융제도나 통신제도가 편한 대로만 가니까 보이스피싱에게 당해요. 클릭 한 번에 1억씩 날라 가는 게 말이 되나요?”

 

김헌기는 정부가 보이스피싱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본다. 반격 작전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 댓글 작업과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 경찰 중간발표를 심각하게 인식했다. 그래서인지 적폐 청산이 댓글 분야에 집중됐다. 그리고 당시 수사에 참여한 김헌기는 문재인 정부 들어 수사부서와 멀어진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보다 시위집회에 관한 폭넓은 자유가 주어졌다. 정부 철학이 집회시위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면 경찰도 그에 코드를 맞추게 돼 있다.

 

2018년 9월 8일 인천에서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인천 퀴어축제가 열렸고 한편에서는 퀴어 반대축제가 열렸다.

 

2018.09.08.MBC뉴스데스크 방송 캡처

 

반대측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전날부터 무대 단상을 점거하자 결국 경찰이 불법행위로 인한 업무방해로 체포했다. 김헌기가 인천지방경찰청 제3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경찰청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런 의미처럼 보인다.

 

‘무대를 점거한 우리 꽃다운 청년들이 왜 피를 흘리게 해야 하느냐. 불법행위를 해도 집회시위 자유를 누려야 할 너무 소중한 우리 국민이다.’

 

아주 심각한 불법행위가 아니면 체포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채증해서 사후에 처리를 하라는 식이다. 물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고 체포를 하겠는가.

 

그 용의자가 모 단체 깃발 주변에서 뱅뱅 맴돌아준다는 보장도 없다. 현장에서 이런 지침은 ‘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김헌기는 조직 내 지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노총 세가 커졌다. 그리고 기사들이 쏟아졌다.

 

-<건설경기 한파도 무섭지만 건설노조가 더 무섭다.>(2019.5.7.조선일보)

-<노조 등쌀에 치여 더 힘들다.>(2019.4.19. 동아일보)

-<날 풀리자 도진 건설노조 횡포, 크레인 또 날 세웠다.>(한국경제. 2020.3.18.)

 

건설노조 조직체계는 지역본부-지대-분회로 이어진다. 군대에서 대대-중대-소대와 같은 개념이다.

 

기사 내용은 비슷하다. “우리 노조원 써라”는 요구를 안 들어주면 출입구 앞에서 공사를 못하도록 집회를 하거나 노동청에 신고를 한다. 못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면 건설 현장에 안전조치 소홀로 지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구를 안 들어주면 "모델하우스 오픈 첫날 그 앞에서 확성기를 틀고 시위하겠다."는 것이다. 귀가 찢어지는 확성기를 단 승합차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단결투쟁가>가 울려 퍼지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런데도 업체들은 고소고발을 하지 못한다. 건설노조가 전국 조직이므로 집중 타깃을 삼을까 봐 겁내는 것이다.

 

“악질적인 무법 행위가 도를 넘었다”며 급기야 건설노조를 처벌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민노총 측은 "정당한 노동운동이었다"는 주장이고 경찰도 이미 정상적으로 집회 신고를 했기에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2019년 김헌기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2부장 시절이다.

 

화물연대 소속 기사들이 농협물류센터에서 자신들과 계약하지 않자 화물연대 소속이 아닌 기사들 차량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2019.04.20. MBC뉴스투데이 방송 캡처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들거나 돌멩이가 날아와 차량 앞 문에 금이 갈 지경이었다.

 

 

여러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자 당시 김헌기 2부장은 회의석상에서 단발성 불법행위보다 이걸 조종하는 지휘부를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휘부는 호응이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정치인과 여론은 독일과 협상을 원했다. 김헌기는 혼자 전쟁을 외치는 처칠 신세였다. 좌절감만 깊어졌다.

 


 

 

2020년 경무관 6년 차 마지막 해가 됐다. 김헌기는 다시 고향 같은 인천지방경찰청 1부장으로 돌아왔다.

 

여기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건설현장 인근에서 신고되는 집회 대부분이 민주노총에게 함락된 것처럼 느껴진다.

 

20년 전 그는 결코 불법행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수사2계장 시절, 경제팀 직원들과 간담회 자리였다. 직원들 하소연이 쏟아졌다. 재건축 재개발 관련 조합, 컨설팅 업체, 비상대책위원회 등 사이 고소고발 사건 때문에 다른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김헌기는 경제팀은 일반 선량한 사람들의 고소사건에 집중해야 하며, 자기네 이권 때문에 경찰 수사력을 낭비하는 게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겼다.

 

김헌기 수사2계장 지시가 떨어졌다.

 

“각 경찰서 재건축 재개발 사건 고소고발 사건 다 줘봐.”

 

인천지방경찰청 수사 2계로 고소고발 사건들이 모아졌다. 전체 사건을 놓고 보면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시공사에 문제가 있고 어떤 이권 때문에 문제를 삼는 것이 분석이 된다. 악취가 심하게 나는 부분은 수사 2계가 칼을 들이댔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촛불 탄핵 정국 이후 시대는 김헌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 보인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출근할 때마다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나를 보여줘야 할까.’

 

김헌기는 상상한다. 인천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시민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건이 터졌다. 2020년 4월 20일 인천 동구 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 안전교육장 앞에서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와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현장 노동자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 충돌로 10여 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2020년 4월 27일 경인일보는 <‘도 넘는’ 공사장 일감 다툼... 치안 강화 ‘두 팔 걷은’ 경찰>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경찰이 집회 과정에서 업무방해 등 불법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는 내용이다.

 

기사를 보면 인천지방경찰청은 최근 일선 5개 경찰서 경비, 정보, 수사 과장들과 건설현장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폭력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그 회의 장면을 상상해본다.

 

회의석상에서 ‘타협은 없다’고 질러대는 한 사람이 보인다. 일장 연설이 끝나자 일선 과장들은 속 시원한 표정을 짓는다. 마침내 회의석 정중앙에 앉아 있던 인천경찰청장이 흰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는다.  

 

 

 

 

- 2부 The End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1부)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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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차명계좌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조현오를 향해 언론은 '공감능력'을 지적했다. 인간 감정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지 않고서야 '차명계좌 발언'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조현오 주변 사람도 공감능력 부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 '외통수' 기질 덕에 역대 경찰청장 가운데 청와대를 향해 가장 강한 목소리를 내는 게 가능했다고 한다.

 


 

조현오는 1990년 경찰이 되고 여러 사람에게 지시를 받아야 했다. 경찰청장이 청와대 수석 등 지휘계통이 아닌 사람들에게 지시받아야 하는 법적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한마디 하면 통상 경찰청장을 거쳐 경찰 조직으로 하달됐다. 2010년 8월 30일 경찰청장이 된 조현오는 지휘권부터 바로잡고자 했다. 직원에게 전달되는 것은 오직 경찰청장 지시뿐이었다.

 

경찰청장 지휘권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사권이다.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던 맹형규와 행안위원장이던 안경률은 인사에 일체 간섭이 없었다. 참여정부 시절 행정안전부 장관이던 김두관도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 자신했다. 

 

 

MB는 어땠을까. 조현오는 MB도 지휘권에 간섭이 없었다며 고마워했다. 조현오는 2년에 걸쳐 경찰 고위급 인사를 단행했다. 그는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인사를 단행했다고 자부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2010년 치안정감(9월 7일), 치안감(12월 2일), 경무관(12월 3일) 인사를 단행하는 시점에 조현오는 여야 의원 10여 명에게 인사청탁을 받았다. 그때마다 조현오는 청탁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했고, 대부분 의원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전화를 끊었다. 경찰 고위직 인사는 청와대 정무수석과, 비서실장, 민정수석, 인사비서관과 경찰청장이 논의한다.

 

민정수석은 승진자 적격 여부를 검증했다. 보통 민정수석은 검찰과 연락할 일이 많기에 검찰 출신이 이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검찰 눈 밖에 난 경찰은 승진하기 어려운 구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민정수석에 맞서 경찰청장은 어떻게 인사 주도권을 쥘 수 있을까. 조현오는 어렵지 않다고 했다.

 

당시 민정수석은 권재진이었다. 그는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후보자 적격 여부를 따졌는데 조현오가 이렇게 말했다.

 

"경찰청장 지휘권은 인사권인데 그것도 제대로 행사 못 한다면 차라리 그만두겠습니다."

 

조현오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인사를 했다. 이때 인사에서 나타난 특징을 보자. 조현오는 2010년 인사를 시작으로 경무관 자리는 서울 총경 몫이라는 관행을 바꾼다. 이 같은 관행이 생긴 배경에는 '서울 치안이 곧 대한민국 치안'이라는 서울 중심 사고가 있다.

 

하지만 부산과 경기에서 지휘관 생활을 한 조현오는 치안 활동이 공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2010년에는 부산총경과 광주 총경, 2011년에는 경기도에서 오래 근무한 총경이 경무관으로 승진한다. 그들은 조현오가 지방청장이던 시절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해낼 만큼 업무역량이 탁월했다.

 

그러나 경무관 경쟁에 밀린 사람들에게는 조현오가 자기 사람을 챙기는 것으로 보였을 테다. 조현오는 '자기 사람 챙긴다'는 시선을 경찰 개혁 차원에서 발탁 인사였다고 주장했다. 그 사람들 중 일부가 나중에 친해졌을 뿐이며 꽤 많은 사람이 조현오가 감옥에 있을 때 면회를 오지 않았다고 했다.

 


 

2011년 초, 민정수석인 권재진과 코리아나 호텔 중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권재진은 2010년 인사에 자기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서 꽤 불쾌해 했다. 그런데 인사가 끝나고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불거진다.

 

권재진은 당시 "검찰이 차명계좌 사건을 수사 중인데 조 청장이 수사권 관련해서 그렇게 강하게 발언해도 되느냐"라고 물었다. 조현오는 언성을 높여 받아쳤다고 한다. 물론 조현오는 그런 분위기에서도 코스 요리를 모두 끝까지 먹기는 했다.

 

 

이후 '조현오는 통제되지 않는 사람이다', '조현오는 또라이다' 같은 소문이 나돌았다. 조현오는 이런 소문을 애써 막지 않았다. 오히려 소문이 경찰청장 지휘권 발휘에 도움이 됐다. 누구도 조현오를 건들지 않았다. 외부 청탁 전화도 뚝 끊겼다.

 

 


 

2011년 연말 두 번째 경찰 고위직 인사 내용을 보자. 이때 민정수석은 정진영이다. 당시 정진영은 승진 후보자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비롯해 각종 자료를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부동산 투기', '검찰 수사 중', '위장전입' 등을 언급하며 조현오가 낸 인사 안을 반대했다. 이때 조현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민정 자료 못 믿겠다."

 

정진영은 발끈하며 "민정수석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조현오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민정수석실 자료에 직접 당한 피해자 아닌가요? 민정수석실에서 조현오가 조폭 행동대장과 의형제 맺어 유흥업소에 10억 투자하고 월 2500만 원씩 배당받았다고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했잖습니까?"

 

조현오는 원래 계획대로 밀어붙였다. 이때 '수사권의 상징'인 황운하가 경무관으로 승진한다. 또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가 눈에 띈다. 바로 2010년 승진한 경무관 김성근(58년생)이 1년 만에 치안감으로 승진한 것이다. 아무리 공정하다고 해도 이런 파격 인사는 자기 사람만 확실하게 챙긴다는 여론을 만들 수밖에 없다. 물론 조현오는 김성근과 처음부터 잘 알던 사이라는 것은 인정했다.

 


 

조현오가 김성근을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경남지방경찰청 경비과장으로 있을 때다. 당시는 IMF 직후 현대자동차 사태로 노사관계가 악화하면서 경남지방경찰청도 나름대로 경비대책 준비단계에 들어갔다. 경비계장이 제출한 대책안을 본 조현오는 ‘경찰에 이런 인재가 있었나’ 싶었다고 한다. 문서 작성 능력이 돋보였던 경비계장이 바로 김성근이다. 김성근은 간부후보 35기로 입문해 경찰청 정보분실팀장을 지냈다.

 

정보와 경비는 밀접하다. 경비작전을 세울 때 집회 참가자 경로와 방어 중점 포인트를 찍으면 그만큼 부대 배치 등 경비 단계가 수월해진다. 조현오는 경남지방경찰청에 있을 때 김성근과 저녁을 먹으며 경험담을 나누곤 했다. 김성근은 일반인이 경험할 수 없는 인적 네트워크를 정보국 경험을 통해 꿰고 있었다.

 

김성근과 다시 만난 것은 2006년 12월 조현오가 경비국장이 됐을 때다. 경비국에는 경비과, 경호과, 항공과가 있다. 조현오는 경호과장으로 김성근을 요청했다. 다음은 당시 경비국에 근무한 한 직원이 들려 준 얘기다.


 

2007년 3월 12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조현오 출연이 예정돼 있었다. 주제는 'FTA 반대 시위, 또다시 과잉진압 논란'이었다. 경비과 담당 직원이 작가에게 질문을 미리 받아 답변을 준비했다. 3월 12일 출연 시각이 다가오자 경비과 담당 직원은 경비국장실에서 조현오 옆에 앉아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김성근이 경비국장실에 들어왔다. 김성근은 라디오를 허리춤에 차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어폰이 빠지지 않도록 볼에 테이프도 붙였다. 손석희가 조현오와 연결을 예고했다.

 

"경찰청의 조현오 경비국장을 연결하겠습니다. 여보세요."

 

"네, 경찰청 경비국장 조현오입니다."

 

(중략)

 

"그렇다 하더라도 집 떠나는 사람부터 막은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지적인데요."

 

"저희 경찰에서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6조 범죄의 예방과 제지라는 그 근거 규정에 따라서 불법집회 참가하려는 시위대를 출발지에서 상경 차단했습니다."

 

"그런데 아까 몇조라고 말씀하셨지요?"

 

"경찰관 직무집행법 6조의 범죄의 예방과 제지에 관한 규정 하고요…."

 

조현오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김성근은 손석희가 질문을 할 때마다 답을 적은 메모를 건네려 했다. 당시 이를 지켜본 직원은 이렇게 회상했다.

 

"경호과장이 경비과 업무로 준비해 오는 걸 보니 제가 담당자인데 부끄럽더라고요. 자기 일도 아닌데. 경비과장도 안 하는데…."

 

2010년 1월 조현오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됐을 때 김성근은 정보1과장을 맡았다. 정보1과장은 집회나 시위 예상 정보를 파악해 대비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연초부터 농민회, 노동계가 그해 11월 11일에 있을 G20 행사 저지 조짐을 보인다는 정보가 올라왔다. 서울은 2008년 촛불집회 경험이 있어 서울 도심에 집회를 막았다. 2010년 조현오는 집회를 허용하는 쪽으로 나갔다. 이렇게 통제하면 연말에 더 폭발한다며 청와대를 설득했다.

 

조현오는 농민계와 노동계 대표도 직접 만나 설득했다. 당시 조현오 행보에 서울청장이 할 일이냐는 논란이 분분했다고 한다. 5월 12일 서울경찰청은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중보다 싼 값에 판매하는 '우리 농산물 홍보 행사'를 마련한다. 경찰악대도 행사에 동원됐다. 경찰이 농민연합과 우리 농산물 홍보 협약을 맺고 직거래 구입에 나섰다. 2014년 쌀 시장 전면 개방 문제로 서울 도심에서 농민들이 집회를 벌였다. 9월 농민 대표들이 서울에서 집회를 하기 전 서울청장 구은수와 식사 자리를 했다. 이때 농민 대표로 참석한 사람이 "나는 조현오와 같은 함안 조 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2010년 8월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됐다. 경무관 승진 인사에 앞서 경찰청, 서울청 총경을 대상으로 성과에 따른 상위 30% 명단을 공개했다. 김성근도 포함돼 있었다. 경무관 인사를 단행하면서 조현오는 김성근을 서울청 정보관리부장에 배치한다. 경찰청 정보분실팀장, 서울청 정보과장 등 정보 중요 보직을 맡아 능력 검증과 더불어 조직 장악이 가능했다.

 

앞으로 조현오가 경찰 개혁을 비롯한 수사권 문제로 청와대를 설득해야 할 텐데 서울청 정보과장 출신이면 그런 인맥을 갖게 된다. 또 서울청도 경찰청처럼 정보분실을 두고 있다.

 

정보 형사는 정부기관, 사회단체, 지역별 담당 구역을 정하고 배치해 정보를 수집한다. 2012년 '안철수 사찰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이 안철수 뒷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언론은 '사찰 논란'이라는 타이틀로 공격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전직 경찰 정보과 출신들 생각은 달랐다. 경찰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이다. 즉 경찰 정보 수집은 집회나 시위 관련 정보로 한정하는 게 목적에 어울린다. 그런데 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조(직무의 범위)에는 '치안(public safety)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수행한다고 나온다. 그래서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치안이나 정보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정보 수집 목적과 활용도다. 경찰은 당연히 위 규정을 확장해서 해석하려 할 것이고 언론은 축소해서 볼 것이다. 경찰 정보과 출신은 경찰이 전반적인 정보 업무를 모두 취급하는 한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조현오는 2011년 김성근을 치안감으로 승진시키고 정보국장에 임명했다. 네티즌은 정권에 잘 보인 대가라고 했다.

 

조현오는 왜 김성근을 초고속 승진시킨 것일까. 경찰청 정보과는 보통 사무실에서 정보를 분석한다. 하지만 정보국장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정보국장은 자기가 직접 움직이기도 하지만 전국에 정보관을 동원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당시 조현오는 경찰관 시간 외 근무수당과 사건 수사비 현실화 문제에 매진했다. 사건 수사비는 범죄를 수사하고 범인을 추적하고 검거할 때까지 들어가는 경비를 말한다. 수사가 부족해 유류비, 통신비 등을 형사 개인에게 부담하라는 것은 국민에게 삥을 뜯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조현오는 수사 중 드는 비용을 모두 해결해줘야 반듯한 경찰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산 확보를 위해서는 해당 부서가 논리를 마련하고 실무협의를 통해 진행하고 정보는 입장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보국 업무 범위는 포괄적이다.

 

당시 조현오는 '수사권 조정'이라는 다른 목표가 있었다. 그러려면 정보국장은 법률 개정 등을 위해 여야 중진을 만나야 한다. 한나라당은 황우여(47년생), 민주당은 박지원(42년생)이 원내대표였다. 1961년생 경찰대 1기 출신은 한국 나이로는 52세였다. 조현오는 여야 중진을 만나려면 나이가 좀 더 있는 간부후보 출신들이 낫다 판단했다.

 

경찰청장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여야 중진과 관계도 원만해야 했다. 조현오는 김성근에게서 이러한 자질이 돋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경무관이던 김성근을 승진시켜 정보국장으로 발령한 것이다. 무엇보다 조현오는 김성근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바로 2007년 경비국장 때 청와대 경호실과 맞부딪힌 일이었다.

 

(다음 18화-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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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12화. 조현오의 조직 장악 비결은 '감찰'

 

조현오는 울산남부서장으로 취임하면서 첫 지휘관 생활을 했다. 울산은 팽창하는 도시로 교통사고와 강력 사건이 잦았다. 사건·사고를 줄이고자 조현오가 주목한 곳은 검문소였다. 검문소에서 인적사항을 미리 노출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현오는 검문소를 직접 챙겼다. 자리를 비운 직원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청문감사관이 나섰다.

 

청문감사관은 일선 경찰서에서 감찰과 감사를 총괄하는 보직이다. 감사 대상은 행정적인 일상 업무다. 감찰 대상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행위가 된다. 즉 개인 행위와 관련한 비위는 감찰 영역이다. 단, 사무감사 중 발견된 계약관계 등으로 말미암은 배임이나 횡령 같은 비위는 감사에서 처리한다. 물론 지휘관이 상황에 따라 감사 쪽 업무라도 감찰 부서를 활용하는 일은 자주 있다.

 

조현오는 새벽에 파출소를 순시했다. 당시 관용 차량은 의경이 운전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관내 지리를 익힐 겸 의경을 옆에 태우고 직접 운전했다. 차량 이동 중 무전으로 112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으로 바로 차를 돌려 초동조치를 확인했다.

 

 

 

업무를 세심하게 챙기자 서울종암경찰서장 시절 직원들은 조현오를 ‘조순경’이라고 부르곤 했다. 조현오는 경찰서 과장들에게 주어진 감독순시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남부서장 시절 하루는 전국 일제검문검색이 진행됐는데 조현오는 과장에게 현장에서 직원 근무를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나이가 한참 어린 과장 한 명이 근무한 것처럼 거짓말했다. 조현오는 과장을 다그쳤다.

 

“지방청에 보고해서 징계받을래? 아니면 일주일 동안 교통외근과 근무복 입고 심야음주운전단속 할래?”

 

과장은 현장 단속을 택했다. 과장이 도로에서 현장 단속을 하자 다른 직원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조현오는 2006년 경찰청 감사관을 지낸다. 감사관 아래로 감찰과장과 감사과장을 뒀다. 당시 감사과에 순경 출신으로 강직하며 다부지게 일을 잘하는 직원이 있었다. 2008년 조현오가 치안감으로 승진하여 부산지방경찰청이 됐을 때 그 직원은 은퇴를 몇 년 앞둔 총경이었다. 조현오는 2009년 그에게 경기청 청문감사담당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부탁을 받는 순간 ‘일을 많이 시킬 텐데…’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방청에서 경무과 기획계는 치안 수요에 맞게 인력을 배정하는 일을 한다. 경찰관 전출은 경무과 인사계 업무다. 조현오는 당시 경기지역 경찰에게 업주와 통화를 금지했다. 이를 위반하면 징계를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감찰은 업주와 통화한 경찰에 대해 1~3단계 등급을 정해 전보 조치했다. 또 첩보를 바탕으로 평판이 좋지 않은 경찰은 다른 경찰서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진술서와 근거를 남겨 항의가 들어오면 사유를 밝혔다.

 

생활안전과 업무에도 감찰 기능이 섞였다. 조현오는 경기청에서 성과주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성과주의는 과잉 단속 부작용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런 폐단을 막는 일도 감찰에서 맡았다.

 

조현오가 경기청으로 오기 전, 2009년 1월 평택 쌍용자동차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다. 쌍용자동차 운명은 법원과 채권단 손으로 넘어갔다. 4월 사측이 발표한 구조조정안은 전체 인력의 37%를 해고하는 것인데, 희망 퇴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976명을 정리 해고한다. 5월 22일부터 쌍용차 노조는 평택 공장을 점거해 파업을 시작했다.

 

6월 25~26일 정리해고에서 벗어난 직원과 임직원 3000여 명이 공장 안에 진입하여 노조와 충돌하며 부상자가 속출한다. 대규모 경찰병력이 투입돼 양쪽이 접촉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사측을 비롯해 누구도 공장 안팎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도록 했다. 수십 개 중대가 교대로 근무했다.

 

경비국 처지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전에 기강을 잡는 것이다.

 

오랜 기간 경비 근무를 하면 음주, 졸음 같은 사고가 생기기 마련이다. 쌍용자동차 사태 때는 그런 사고가 없었는데 그만큼 조직이 장악됐다고 볼 수 있다. 밤마다 무전으로 근무 확인을 점검하는 것도 감찰이 맡은 일이었다. 여기에 국정감사보고서까지 조현오는 청무감사담당관에 넘겼다. 조현오가 끌어들인 총경은 모든 일 처리가 야무졌다.

 

이듬해 조현오는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된다. 조현오는 총경에게 1년만 더 함께 일하자고 부탁한다. 당시 그는 은퇴를 앞두고 있어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조현오가 서울에서도 ‘성과주의’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묵묵하게 뒷받침한 총경 덕이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밀어붙였을 듯한 조현오도 경찰청장이 될 때까지 참았던 것도 있다. 경찰 문화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보통 사람 시각에서 기본적인 것들이 경찰 조직 안에서는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일할 때와 쉴 때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 관할 경찰서장은 휴일이 없었다. 서울종로경찰서장은 북한산을 앞에 두고도 등산 한 번 하기 쉽지 않았다.

 

 

업무에 소홀하다는 질책을 받을까 걱정했다.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휴가를 가지 못하는 직원도 많았다. 대부분 직원은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고 눈치만 봤다. 조현오는 감찰을 풀어 정시 퇴근 문화를 정착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청장 시절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청장 지휘방침과는 달라 경찰청 감찰 등을 통해 간섭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청문감사담당관은 열심히 했지만, 인사권을 가진 경찰청에서 견제를 받아 본인 희망과 관계없이 2010년 경찰대학 교육과정으로 발령 난다. 경무관이 되는 필수 과정이었지만 은퇴를 고작 1년 남짓 앞둔 총경에게는 불필요했다.

 


 

2010년 8월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된다. 통상 청장이 바뀌면 중요 보직은 자기 뜻을 잘 파악하는 사람으로 채우기 마련이다. 정기인사 때 교체하는 보직 가운데 청장이 중요시하는 자리는 인사·감찰·경무·정보과장 등이다. 조현오는 감찰과장을 비롯해 주요 과장을 바꾸지 않았다. 업무역량이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참모 중에는 청장이 지시하면 대답만 하고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름대로 이해관계를 따지기 때문이다. 조현오는 청장이 되기 전부터 지방청이 하달한 공문을 읽지도 않고 넘어가는 직원을 수없이 봤다. 청장 지시를 적극적으로 따르게 하려면 자극이 필요했다. 조직에서 감찰은 효과 좋은 침 같은 역할을 한다.

 

 

감찰은 언론 보도에 대응하기도 한다. 2011년 4월 20일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해 서울시내 11개 교차로에 별다른 홍보 없이 3색 신호등이 작동했다. 5월 7일 3색 신호등이 설치된 서울시청 앞 교차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은 신호 체계를 지적했다. 문제 파악을 위해 교통과에 감찰 직원이 투입됐다.

 

물론 잘 돌아가는 기능까지 감찰을 동원해 관리하지는 않았다. 조현오는 해당 기능 보고를 바탕으로 정보 기능도 동원해 사실을 교차 확인했다. 다만, 해당 기능 국장이나 과장이 청장 지시에 미온적이라면 여유롭게 기다려 주는 일은 없었다. 경비과에서 발생한 전의경 가혹 행위 관련 지시가 대표적이다. 이럴 경우는 가차 없이 감찰을 동원했다.

 


 

10월 21일 길병원 조폭 난투극 사건을 이튿날 SBS가 보도한다. 인천시 구월동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폭력조직끼리 유혈 난투극이 벌어진 사건이다. SBS는 당시 현장에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력반 형사 5명이 있었지만 유혈 난투극을 막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시민은 경찰의 허술한 초동 대응으로 두 시간 넘게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조현오는 방송을 접하고 바로 감찰과장에게 전화했다. 본청 감찰팀이 바로 출동해 최초 112신고를 접수한 시점부터 사무실 CCTV를 면밀하게 살폈다. 감찰 조사가 모두 끝난 23일 인천남동경찰서장이 직위 해제됐다. 남동서 형사과장, 강력3팀장, 상황실장, 지구대 순찰팀장 등도 중징계됐다. 조현오는 “조폭 겁내는 경찰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26일 현장에 출동했던 강력3팀장이 조폭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다며 경찰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온라인에서 급속하게 퍼졌다. 조현오가 제대로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괜히 엄한 경찰만 잡았다는 댓글이 달렸다. 원인은 자신에게 있으면서 남 탓하며 징계만 하는 청장이라는 사설까지 나왔다. 조현오는 결국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대한 징계를 거둔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다음 13화-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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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서울과 경기는 스케일이 다르다. 연쇄살인이나 토막살인 사건 같은 강력 사건이 아니라면 경기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미디어 관심을 끌기 어렵다. 반면, 서울에서는 작은 사건과 집회도 어떻게 엮이느냐에 따라 정치적 이슈로 발전하기도 한다.

 

조현오는 2010년 1월 8일 서울지방청장으로 부임한다. 조현오는 바로 역대 서울청장 리더십 분석·평가한 내용을 접한다. 직원 여론과 불만을 수렴해 정책을 추진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현오가 밝힌 소감은 이렇다.

 

“다 좋은데… 이렇게 가자니 시간이 어디 있냐?”

 

보통 참모를 비롯해 지휘관 임기는 1년이다. 외사관리관, 감사관, 경비국장, 부산청장, 경기지방청장 등 조현오가 거친 곳에서는 어김없이 직원들 곡소리가 났다.

 

 

처음 3개월 동안 새로운 틀을 짜고 나머지 기간 강하게 추진해 그 틀을 정착하는 게 조현오 방식이었다. 조현오가 조직에 심고자 한 틀은 당연히 ‘성과주의’였다

 


 

조현오는 인사 과정에서 주관적인 지휘관 평가를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통상 인사는 심사위원회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서울청장으로 취임한 조현오는 바로 승진하고 싶은 직원을 강당에 모이도록 했다. 경정·경감 승진 대상자 225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7시간 남짓 면접이 이어졌다.

 

“자기가 승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봐라.”

 

조현오는 그 자리에서 담당 과장에게 면접한 직원마다 성과를 확인했다. 몇몇 직원은 승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약을 받기도 했다. 성과를 봤을 때 승진이 어려운 직원에게는 그 자리에서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면접에서 탈락이 확정된 직원은 ‘빽’을 쓸 기회조차 사라졌다.

 

당시 직원들이 가장 힘들었던 게 이 같은 인사 방식이었다. 조현오는 2~3개월에 한 번씩 성과 우수자를 내부에 공개해 승진 인사에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경쟁에 내몰린 직원들은 안팎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2014년 기준 부산은 경찰서가 15개, 경기도는 41개, 서울은 31개가 있다. 지역이 넓으면 지방청장이 일일이 챙길 수 없으므로 각 경찰서 서장이 치안을 책임져야 한다.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경찰서 단위로 평가를 진행했다. 성과가 좋은 경찰서는 혜택을 받았고 성적이 나쁜 경찰서는 집중감찰을 받았다. 조현오가 서울지방청을 맡은 시기에는 이 같은 평가 시스템이 무르익는 단계였다. 조현오는 평가 시스템을 적용하기 전에 개념을 구체화하고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장들과 회의를 했다.

 

“방배경찰서는 치안 수요가 적은 곳인데, 우리는 성과를 많이 낼 수 없어요.”

“종로경찰서와 남대문경찰서는 경호와 행사가 빈번해 실적을 많이 올릴 수 없습니다.”

 

조현오는 불평·불만을 끝장토론, 공청회, 간담회로 돌파하고자 했다. 통상 서울지방청 직원은 2만 3000여 명, 경기지방청 직원은 2만여 명이다. 이 정도 규모면 아무리 청장이라도 직원 공감 없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선 경찰서 정도 규모면 서장이 직원을 마음먹은 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실적을 내지 못하면 집중감찰 대상이 된다. 서장부터 일선 경찰까지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강북경찰서장인 채수창도 이 같은 압박에 시달렸다. 조현오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채수창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도 실적주의에서 살아남으려고 제 직원이 검거 실적을 올리도록 굉장히 독려하고 채찍질을 했습니다.”

 

인사에 대한 불만과 성과주의로 말미암은 피로는 경찰 조직에 꾸준히 누적됐다. 2010년 6월 23일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경찰관 4명이 구속된다. 피의자에게 고문·가혹행위를 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는 2009년 8월에 시작된다. 조현오 인사청문회 위원인 정수성은 증인으로 참석한 채수창에게 이 점을 확인한다.

 

“증인은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에 조 청장 책임도 있다며 동반 사퇴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양천서 피의자 고문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생긴 일이고 조현오 내정자는 올해 1월 서울청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양천서 고문 사건과 조현오 실적주의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은 결과적으로 조현오식 성과주의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통로가 된다.

 


 

역풍을 맞게 된 조현오에게 악재가 이어졌다. 강남 룸살롱 업주 유착 사건이다. 이 사건은 가출한 여학생 A양을 서초경찰서 실종팀이 성매매 업소에서 찾아내면서 시작된다. 가수 지망생인 A양은 미성년자였다. 업소 사장 이름은 이경백이었다. 웨이터 출신인 이경백은 2000년 북창동에서 룸살롱을 개업하고 강남 일대에서 유흥업소를 기업형으로 운영했다. ‘룸살롱 업계의 스티브 잡스’, ‘룸살롱의 황제’ 등으로 불리게 된 비결은 다방면에 비호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 단속반에 뇌물도 잘 바쳐야 했다.

 

경찰 단속을 비롯한 유흥업계 정보는 이경백을 거쳤다. 2006년 한화 회장 김승연이 폭행을 저지른 것을 경찰에 흘린 것도 이경백이었다. 경찰은 이경백과 단단히 엉켰고 조직은 점차 곪아 들어갔다. 이경백을 수사한다는 것은 경찰 조직의 종기를 도려내는 일이었다. 그전에 경찰은 이미 이경백에게 농락당한 적도 있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혐의를 포착해 이경백을 수사하려 했을 때 그는 오히려 수사관이 접대받은 내용을 확보해 수사팀을 엎었다.

 

외압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원래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은 생활안전과 소관이다. 하지만 조현오는 형사과에 이 사건을 맡긴다. 당시 형사과장은 황운하 총경이었다.

 

통화기록 분석부터 시작했다. 이경백이 지난 1년 동안 휴대 전화 두 대로 통화한 기록은 몇 만 건이었다. 등록된 사람만 1500명이 넘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적잖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검찰은 경찰이 긴급 체포한 이경백을 풀어줬는데, 수사를 이끈 황운하는 언론 브리핑에서 검사 실명을 거론하며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말한다.

 

 

이경백도 만만찮았다. 구속되면 그동안 바친 뇌물 내용을 모두 검찰에 불겠다며 맞섰다. 조현오는 오히려 이경백이 검찰에 뇌물 관련 내용을 불기를 기대했다. 검찰 수사이긴 하지만 경찰 비리를 도려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이경백과 통화 기록이 있는 경찰관 63명이 적발됐다. 조현오는 이미 취임할 때부터 업주 관계자와 공무 외에 전화 한 통, 물 한잔도 하지 말 것을 지시한 상태였다. 통화 내용을 소명하지 못한 경찰은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39명이 징계를 받았고 이 가운데 6명은 파면됐다.

 

“조현오가 범서방파 행동대장 출신과 의형제라더라.”

“조현오가 유흥업소에 10억 원을 투자해 월 2500만 원씩 배당금을 받는다.”

 

그즈음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조현오가 조폭과 의형제이며, 조현오 서울청장 비서실장도 연루됐다는 식으로 소문은 점점 덩치를 키웠다. 인터넷에서도 조현오가 강남 유흥가 조폭과 수십 차례 통화했다는 글이 돌았다. 민정수석실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조현오는 그를 옥죄는 의혹에 정면 대응하는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비서실장을 감찰해서 비위 사실이 있으면 엄하게 처벌할 것이고, 내 휴대전화 통화내역까지 모두 공개하겠다.”

 

조현오는 자신도 수사 대상에 넣었다. 서울청 수사부장인 박상용에게 자기 계좌열람동의서도 전달했다.

 

형사과장 황운하는 결국 이경백을 탈세와 성매매 혐의로 6월에 구속한다. 조현오는 이경백이 구속되고 두 달 후인 2010년 8월 경찰청장이 된다. 하지만, 이경백도 곧 보석으로 풀려났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으며 유유히 빠져나온다.

 

(다음 9화 –조현오, 경검 수사권 조정 어떻게?)

 

서형 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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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추적기> 제7화 경찰 수사 점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도 백경환(가명)·백희정(가명) 부녀를 가장 먼저 의심했다.

 



죽은 최 씨 집은 마을 큰 도로에서 골목길을 따라 200m 들어간 곳에 있다. 사인이 된 막걸리는 최 씨가 평소 즐겨 마시던 술이었다. 형사들은 현장을 보자 면식범 소행으로 예상했다.

 

 


순천경찰서는 남편 백경환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남편 백경환 씨는 경찰서에서 사건 당일부터 계속 조사받았다. 유가족과 친척은 장례 절차를 마치고 조사가 시작됐다. 한 친척은 "조사를 받아보니 이미 백 씨의 보험·금융·통신 내용은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당시 범행에 사용된 막걸리를 만드는 공장은 순천 시내에 있었다. 생술이라서 그날 만들어 바로 소비해야 하므로 순천지역에서만 판매됐다. 형사들은 그 막걸리가 순천에서 황전마을로 오려면 자가용·택시·버스 중 하나를 통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루 열 번 운행하는 33번 버스에는 CCTV 4대가 부착돼 있었다. 따라서 승객이 버스를 탄 곳과 내린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형사들은 백경환씨에게 수사 협조를 부탁했다. 형사가 백경환 씨를 3일 동안 데리고 그 막걸리를 파는 슈퍼·식당 근처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형사는 주인에게 '백 씨에게 막걸리를 판매한 적이 있는지' 확인했다. 당시 백 씨는 3일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경찰은 백 씨가 '배가 고프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식사 때면 밥을 걸신들린 것처럼 먹었다고 한다.


 

막걸리 생산 일자는 7월 2일이었다. 범인이 막걸리를 샀다면 분명 7월 2일 이후였다. 순천과 황전 사이에 있는 도로 CCTV를 최대한 뒤졌다. 또 7월 2일부터 행적도 모두 조사했다. 백경환 씨 일터 작업일지를 모두 제출받았다.

그와 관련된 모든 게 조사 대상에 올랐다. 경찰은 백 씨 집과 동생 식당도 압수 수색을 했다. 형사들은 사건 전날 백 씨 가족이 외식을 한 식당을 찾아 직원에게 당시 분위기를 물었다. 당시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백 씨 아들은 아버지가 걱정돼 일을 접고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아버지가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갈 때면 동행했다. 경찰은 백 씨에게 여자관계를 묻기도 했고, 오이 농사에서 병균을 죽일 때 무엇을 쓰는지도 물었다. 백 씨는 오이 농사에 석회질소를 쓴다고 답했다.


백 씨는 혐의를 부인했고 조사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평소 무척 말이 없던 백 씨는 조사 과정에서도 형사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결국 경찰은 백 씨에게 자백을 받지 못했다. 자백을 받아낼 명확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반경을 점점 넓히며 조사 범위를 확대했다. 마을 사람 알리바이와 동선도 확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7년 동안 치매로 누워 있던 할아버지도 조사 대상이었다.

 



경찰은 남편 백경환씨만 의심한 게 아니었다. 막내딸 백희정 씨 역시 유력한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한 형사는 백희정 씨 언니 진술에서 감이 왔다고 했다. 언니의 진술 내용은 뭐였을까.

"제가 집에 오면 엄마와 희정이가 여러 번 다퉜거든요. 서로 악을 쓰면서 싸웁니다. 그러면 옆에서 제가 희정이를 혼냅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 아침에 제가 희정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서 '엄마가 막걸리를 마시고 돌아가셨다'라고 '○○병원으로 민수 데리고 가보라'라고 하니까, 희정이가 자고 일어난 목소리로 '알았다'라고 했고 제가 조금 후에 전화를 하니까,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2009.7.23. 2회 진술조서)

 


엄마 사망 소식에 놀라지 않은 딸

 


이 대목은 검찰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당시 백희정 씨는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에 놀라지도 않았고, 택시를 잡아타고 황급히 (장례식장에) 가지도 않았다. 이에 형사는 백희정 씨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백희정 씨는 7월 4일 남자 친구를 만나러 부산에 갔다고 했다. 형사들은 (백희정 씨의) 돈 출처가 궁금했다. 백희정 씨 계좌와 통신내역을 추적했고 그가 일하는 마을도서관 컴퓨터를 조사했다. 둘째 언니는 사건 전날 식당에 가는 길에 마주친 백희정 씨가 가방 같은 것을 메고 걸었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형사들은 가방에 막걸리가 들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백희정 씨는 사건 전날 부산에서 바로 순천으로 오지 않았다. 7월 5일 오전 부산에서 창원으로 이동했다. 형사들은 백희정 씨 당시 이동 경로를 확인했고, 버스를 타거나 편의점에 들렀다면 그곳에 부착된 CCTV를 확인했다고 한다. 또 그동안 백희정 씨와 채팅을 한 남자를 만나러 전국을 돌기도 했다.

백희정 씨가 엄마에게 질책을 받자 남자 친구를 시켜 살해할 수도 있다는 게 또 다른 가정이었다. 수많은 용의자가 눈을 사로잡다가 용의 선상에서 사라져 갔다. 경찰은 이처럼 백경환·백희정 씨 부녀에게서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이들은 거짓말탐지기도 모두 통과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살인 사건과 관련해 받은 질문은 세 가지였다. 백경환·백희정 씨 부녀는 모두 부정했고 거짓말탐지기 반응은 모두 '진실'이었다.

1. 당신이 그 당시 집에 청산가리를 막걸리를 탄 막걸리를 놔두었습니까?
2. 당신이 집 마당에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놔두었습니까?
3. 그 당시 집에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갖다 놓은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수사본부 사건 경험이 있는 형사과장들은 거짓말탐지기를 신뢰한다고 했다. 신뢰하지 못한다면 왜 그런 시스템을 국민 세금 축내면서 구축하느냐고 되물었다. 과연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진실과 거짓 중간에 '판단 불능' 구역이 있다. 진실 또는 거짓이 얼마든지 판단 불능으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이 거짓으로 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7월 27일 경찰청에서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를 투입한다. 프로파일러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범인의 특성을 몇 가지로 요약했다. 피해자 주변인으로 범인의 입장에서 피해자보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우월한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었다. 또 범인은 대인관계가 미숙해 위축돼 있고,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 친절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공격성과 폭력성이 내재해 가족 등 자신의 영역에서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특성이 있는 인물로 판단했다.

프로파일러는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프로파일러는 필자에게 수사에 관한 사항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사건 정황을 비롯한 종합적인 상황을 분석한 것임을 강조했다. 내가 만난 형사과장들도 프로파일러 실력은 인정했다. 그러나 프로파일러 의견이나 거짓말탐지기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증거라고 했다.

 



순천경찰서 형사들은 가족들에게 계속 의심되는 사람을 물었다. 이에 아버지와 딸 의견이 엇갈렸다.

백경환 씨는 경찰 조사 때부터 아내가 사망 직전 갈등을 빚었던 마을 아주머니를 꼽았다. 백경환 씨와 달리 딸들은 다른 마을 아저씨, 장영환(가명)씨를 지목했다.

경찰이 장영환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삼은 데에는, 죽은 최 씨 여동생과 최 씨 동네 할머니 증언도 한몫했다. 사건 전에 최 씨로부터 "희정이가 동네 어떤 남자랑 알고 지내는 것 같다. 미치겠다"는 하소연을 들었고, 동네 할머니는 그냥 막내딸을 시집보내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여기에 최 씨 딸들 진술까지 가세했다.

초상집에 갑티슈 들고 온 이상한 조문객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최 씨가 청산가리 막걸리를 마시고 죽은 사건 당일, 백경환 씨 집에 친척들이 모여들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충격에 친척이 토방에 앉아 허탈하게 있는데, 첫 조문객이 들어왔다. 조문객은 갑 티슈 묶음을 들고 있었다. 죽은 최 씨 여동생은 당시 '시골에서는 초상집에 티슈를 들고 오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조문객은 두리번거리다가 그냥 대문 밖으로 나갔다.

최 씨 장례를 치르고 열흘 정도 지나 최 씨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죽은 최 씨 둘째 딸이었다. 만나서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가 이튿날 찾아와 물었다.

"이모, 그때 갑 티슈 들고 온 사람 기억나세요?"
"왜?"

그게 시작이었다. 둘째 딸은 그 조문객이 수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갑 티슈를 들고 온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시 조문객은 바로 마을 아저씨 장영환 씨였다.

둘째 딸은 자신과 언니가 예전에 그에게 성추행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막내도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는지 걱정했다. 이모는 백희정 씨를 만나 이에 관해 물었다. 희정 씨는 (그런 적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엄마를 죽인 범인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자신도 당한 적이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경찰이 백희정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성추행과 더불어 성폭행 여부도 물었다. 처음에는 (성폭행을 당한 적이) 없었다던 희정 씨는 결국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2009년 7월 26일 경찰은 백희정 씨에게 물어보면서 고소장을 작성했다.

'장영환은 2008년 11월 15경부터 2009년 5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서 고소인을 강간하거나 강제로 추행하였으니 이를 처벌해 달라.'

경찰은 희정 씨에게 장영환 씨 집 구조를 그리게 했다. 희정 씨 그림에는 실제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묘사가 있었다. 경찰은 장영환 씨를 긴급 체포했다. 경찰은 살인사건 수사를 진행하는 와중에 백희정 씨 강간과 강제추행 등 피의사건 조사를 끝내고 8월 18일 광주지검 순천지청으로 구속 송치했다.


그런데 검찰이 8월 24일 백희정 씨로부터 (어머니 살해) 자백을 받아낸다. 단 일주일 만이다.

대체 일주일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계속해서 이 당시 경찰과 검찰의 수사 동선을 살펴보겠다.


(제8화 - '막바지 경찰 수사 상황'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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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간의 기억 제6화 유력한 용의자 남편

 

 

 

 

남편 백경환(가명)씨가 사건 발생 직후 보인 행동들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당일 상황을 살펴보자.

 



백경환 씨는 오전 11시경 아내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일터에서 백 씨는 전화를 받은 뒤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뭔 막걸리를 줬는데 그게 잘못 되었는갑소."

 


백 씨는 일터에서 고향 마을로 달렸다. 당시 아내가 실려 간 병원으로 가려면 구례역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백 씨는 동생 집으로 갔다. 동생은 우선 장례식장으로 갈 것을 권했다. 하지만 백경환 씨는 현장으로 가서 막걸리병을 찾아 나섰다.

 

물론 현장은 이미 노란색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이 쳐진 상태였다. 그 후 백 씨는 병원으로 갔다. 친척들도 모여들었다. 장례식장에서 장모는 "술 먹으면 백 서방에게 많이 맞더니 결국에는 이렇게 되었네"라며 통곡했다.

이처럼 사건 당일, 최 씨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에 백경환 씨가 바로 '막걸리'가 문제였다고 여긴 점, 장례식장으로 곧장 가지 않고 사건 현장으로 간 점, 장모가 사위의 폭력적인 성향을 거론한 점 등을 검찰은 문제 삼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백경환 씨는 딸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백희정(딸, 가명)씨 검찰 자백에 의하면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는 막내딸에게 "경찰들에게 말조심하라"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이 부녀를 범인으로 지목하자 죽은 최 씨 식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검찰은 죽은 최 씨 여동생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왜 언니가 죽었는데도 용의자 편을 드느냐는 것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망한 최 씨쪽 식구들은 필자에게 사건 당일 있었던 일을 더욱 상세히 들려줬다.

 



당시 친척 사이에 장례 절차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고 한다. 순천 시내 병원보다는 동네와 가까운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백경환 씨는 돈이 없다며 난처해했다고 한다. 백경환 씨는 부인이 죽은 상황에서 돈 걱정을 먼저 했다는 것이다.

장례식장 주변에는 경찰이 모였다. 조문객이 한 명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문객들이 부조금을 건네자 그걸 일일이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장례 마지막 날 관이 나올 때 백 씨는 대성통곡을 했다.

"나 두고 가면 어쩌냐!"

이 장면을 본 사돈 쪽 식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백경환 씨가 범인이란 의심을 했을까? 친척들은 백 씨의 이런 모습이 결혼 초기부터 늘 봐 왔던 장면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 시선에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비칠지 생각하는 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장모가 통곡한 내용에는 친척들이 어떤 입장을 보일까? 당시 장모 통곡 소리는 장례식장에 있던 사람 대부분이 들었다고 한다. 사돈 쪽 식구들은 장모가 이런 통곡을 한 것은 이들 부부가 장모 앞에서도 싸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친척들 대부분은 동네 사람들을 초대한 장인 회갑 때를 비롯하여, 딸 결혼식 전날에 벌어졌던 부부간 다툼을 기억했다.

백 씨의 '욱'하는 성격, 친척은 "정상이 못 된다"는데

 

 


백경환 씨는 이처럼 '욱'하고 성질이 뻗치면 주변 시선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친척들은 이런 백경환 씨를 '부족하다', ' 정상이 못 된다'라고 생각했다. 즉 이런 범행을 계획할 만큼 지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아내 최 씨가 술에 취해 말수가 많아지면 부부 싸움이 나곤 했다. 자녀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술을 마시면 말수가 많아지고 언성이 높아졌는데, 아버지 백경환 씨는 "시끄러워!" 하면서 물건을 집어던지며 다퉜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정도 부부싸움은 흔한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장례식장에서 장모 통곡을 접했던 친척들은 전체적인 맥락상, 장모가 사위를 용의자로 놓고 하는 말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내딸은 아버지가 "경찰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당부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털어놨다. 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부분 역시 친척의 생각은 검찰과 많이 달랐다. 죽은 최명자(가명)씨 여동생도 형부가 백희정 씨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유는 아버지와 딸 둘이서 나눈 귓속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이 오고 간 것일까? 당시 한 친척은 막내딸이 장례식장에서 엉뚱한 소리를 해대니 아버지가 '말 함부로 하지 말라'라고 주의를 시킨 취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검찰은 이러한 보강증거와 더불어 살인 발생 원인도 더욱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 살인사건 동기가 반드시 부녀 성관계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이 사건도 다른 존속살인들처럼,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장기간을 두고 복합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해당 사건이 백 씨 집안에서 '가정환경, 성폭행 배경, 인터넷 채팅, 부부간의 다툼, 모녀지간의 갈등, 피고인 백희정의 비관적 삶의 한탄, 가족 간 경제적 어려움, 가족 간 우애 상실' 등이 오랜 시간을 두고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형사합의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러한 논리에 동감했다. 변호사는 여러 누적된 갈등이 내재한 상태에서 어느 순간 격분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우발적으로 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계획범죄에 가깝다. 계획적인 범죄들은 동기가 뚜렷한 법이다. 보통 살해 동기는 금전, 치정, 원한 이 세 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그 복합적 원인 중 하나가 "실제 백경환은 은행권에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에 발생한 인천 모자 살인사건에서도 사채라 불리는 제2금융권 대출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백경환 씨에게는 어떤 채무가 있었을까? 경찰은 초기에 백경환 씨 빚을 조사했다. 큰딸 카드 값과 오이 하우스 등 이유로 농협에 집을 담보로 4천만 원을 대출받았고, 2008년 12월경부터는 연체되고 있었다. 이는 농협에 농사자금을 빚진 것이다. 농사자금은 저금리에 속한다.

부조금 일일이 챙긴 남편, 과연 금전 문제가 살인 동기였을까

검찰 주장처럼 저금리 농사자금이 살인사건 동기 중 일부로 작용했을까? 한 형사는 만약에 부인이 농협에서 농사자금을 빌려서 그걸 엉뚱한 데 써버렸다면 부부간 갈등이 됐을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 집안은 금전 문제로 인한 부부 갈등이 어느 정도였을까? 사건이 발생한 2009년, 백경환 씨 집안의 경제적 여유를 살펴보자.

2009년은 오이 하우스 농사를 접었기에 돈이 궁해졌다. 2009년 4월경 백 씨 부부는 집 전화와 휴대전화 요금을 연체하기도 했다. 게다가 자녀 빚까지 갚아주는 실정이었다. 부부는 나락 농사와 동네 품팔이를 시작했다. 백 씨는 이웃 사람과 함께 다니며 집 짓는 일을 거들기도 했다. 최 씨는 순천시청을 찾아 희망근로사업장 근무를 신청했다. 농촌 품삯과 비슷한 일당이 나왔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최 씨는 일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백경환 씨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백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거리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마을 식당 주인이 친척 한 분을 소개했다. 산림청 하청을 받아 풀 베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일터까지 차로 40분 거리였다. 백 씨는 2009년 7월 1일부터 일을 시작했다.

만약에 부인이 없어진다면 남편 백경환 씨에게는 어떤 경제적 이익이 생길까? 백경환 씨가 혼자 농사를 지어야 하며 은행 빚도 혼자서 짊어져야 한다. 게다가 막내딸은 훌륭한 농사 파트너가 아니었다. 지난 기사에서 말했듯이, 백희정 씨는 일에 서툴고 의지가 없어 농사와 집안일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즉, 딸과의 자유로운 성관계를 위해 아버지가 평생 혼자 일하며 딸의 밥상까지 차려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부녀가 살인했을 때 상대적으로 돌아오는 이익을 생각해보면 살해 동기를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백경환 씨와 백희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초기에 유력한 용의자였다. 하지만 경찰은 부녀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백희정 씨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경찰을 철저하게 속였다고 털어놨다. 경찰도 막내딸의 말을 그냥 믿어줬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통화내역 등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압박해 부녀가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백경환 씨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번복한 사실에 의심을 품었다. 백경환 씨 진술을 살펴보자. 우선 기상 시각이 오락가락했다. 또 막걸리를 토방에 올려놓을 당시 아내가 방 안에서 자고 있었다고 말했다가 부엌에 있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사건 당일 식당 주인은 백경환 씨가 가게에 온 시각이 오전 5시 10분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백 씨 주장은 오전 5시 30분이었다. 백 씨는 또 일터로 바쁘게 가야 해서 막걸리병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마을 식당에서 커피 마실 시간은 있었다는 진술도 있었다.

사실 경찰도 검찰처럼 백경환 씨와 백희정 씨를 의심했다. 하지만 한 달 이상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경찰은 왜 검찰처럼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이제부터 경찰 수사를 한 번 점검해보기로 하자.

(제7화 - '경찰 수사 점검'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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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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