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경찰인재개발원(과거 경찰종합학교)은 경찰 공무원과 경찰간부 후보생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다. 김헌기가 경찰종합학교 교무과장으로 온 것은 2007년 7월이다. 송도 모 초등학교 유괴사건이 일어난 지 몇 달 후였다.

 

대전서부서장을 하고 있어야 할 황운하 선배(경찰대 1기)가 이미 총무과장으로 와 있었다.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이 황운하를 소위 날려버린 것이다.

 

황운하 총무과장은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업무를 포기한 듯 보였는데 그럴 만도 했다. 김헌기가 교무과장으로 왔을 때 경찰청이 황운하에 대한 징계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황운하가 이택순 청장 퇴진 요구 글을 경찰청 게시판에 올렸기 때문이다.

 

사건 발단은 이렇다.

 

송도초등학교 유괴사건이 벌어진 2007년 3월,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이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을 보복 폭행한 사건도 벌어졌다.

 

폭행이 벌어진 날 112 신고가 접수돼 남대문 경찰서에서 출동하자 한화건설 고문이면서 전 경찰청장인 최기문은 전방위 로비에 나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당시 경찰청장 이택순이 개입했는지 여부였다.

 

이택순은 결백을 주장하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카드를 꺼낸다. 2007년 5월 경찰청 게시판에는 이택순 청장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퇴진 요구는 황운하만이 아니었다. 전국지휘관 회의에서 고위간부(치안감) 다섯 명이 이택순에게 청장 사퇴를 건의했다.

 

 

그중 한 명이 당시 경찰종합학교장이던 김석기다. 이택순은 황운하를 징계한 것처럼 그들도 가만두지 않았다. 하지만 김석기는 더 이상 좌천될 자리가 없었다.

 

 

 

김헌기는 이런 유배지 같은 직장 분위기 속에서도 업무를 챙기기 시작했다. 김헌기 과장이 맨 처음 한 일은 교수 '군기잡기'다. 형식적으로 진행하던 교수평가제를 매달 진행했다. 하위 점수를 받은 교수는 학교장 앞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인자한 미소를 띠는 김석기 학교장 옆에서 김헌기는 허리 꼿꼿한 자세로 앉아 뚫어지게 교수들을 쳐다보며 설명을 들었다. 게다가 김헌기 과장은 직접 형사들 수업시간에 들어갔다.

 

송도초등학교 어린이 유괴사건에서 경찰이 수사지휘를 잘못한 부분도 수업 시간에 짚었다. 자신과 관련된 내부 치부를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당시 범인을 잡은 형사에게도 전화했다.

 

이 형사는 아직도 그때 일을 기억했다.

 

“그때 김헌기 과장님이 신임 형사 교육에 인질사건 교육을 넣어야겠다면서 와서 교육시키라고 그랬어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큰 유괴나 인질 사건에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이 형사는 현재 인천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이다. 그런데 그는 경찰이 이 사건에서 엉터리였다고 여기는 김헌기와 생각이 달랐다.

 

"당시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 범인이 공중전화로 전화할지 모르니까 길거리에서 빵과 김밥 먹으면서 3~4일 동안 잠 한 숨 안 자면서 움직였어요. 지금처럼 실시간 위치 추적하는 것도 아닌데 범인을 사흘 만에 잡은 것은 엄청 빨리 해결했다고 생각해요."

 

당시는 CCTV가 드물었고 실시간 위치추적 시스템은 없었다. 유괴범은 첫날 아이를 죽이고 공중전화로 녹음기를 틀어 아이 목소리를 들려줬다. 결과적으로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아이는 이미 죽었다. 경찰 잘못으로만 몰아갈 수 있을까. 당시 범인을 잡은 형사 시각에서 2007년 3월 송도초등학교 어린이 유괴사건을 살펴보자.

 

 

<영화 그놈 목소리 2007년>

 

“이형호 어린이 유괴사건을 다룬 영화 <그놈 목소리>가 2007년 2월 1일에 나왔어요. 그런데 그 유괴범이 공중전화로 똑같이 흉내 냈어요. 공중전화 추적시스템을 설명하면... 유괴범이 공중전화로 전화를 해요. 그때 감청 중이니 전화국에 번호가 뜨지요. 그러면 그 전화번호를 형사지원팀에 무전으로 불러줘요. 그럼 어느 공중전화인지 다 나와요. 해당 공중전화 담당 형사를 보내지요.

 

유괴범은 인천, 부천, 시흥 등을 옮겨 다니면서 전화했어요. 유괴범이 돈가방을 어디로 들고 오라고 해서 가면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다른 부서 경찰들이 나타났지요. 당시 인천 경찰을 대부분 동원해서 모두 무전기를 듣고 있으니 다른 과에서 특진 욕심에 덤벼들곤 했지요.

 

결국 유괴범을 잡은 결정적 단서는 7차 협박 전화였어요. 그곳은 당시 김헌기 수사과장님 사는 아파트 단지 근처였는데 제가 거기 공중전화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다 회수했고 그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서 담배를 산 사람과 인상착의 등을 물었지요. 슈퍼 주인이 알려준 단서를 김헌기 수사과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김헌기는 처지에 따라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전체적으로 시스템을 관리하는 쪽에서 이 사건을 보는 것이고 형사들은 추적하는 처지에서 고생한 게 가장 크겠지요."

 

그럼에도 김헌기는 송도초등학교 유괴사건 수사를 '쪽팔리다'며 박하게 평가했다. 그리고 수사본부에서 감청을 들으면서 유괴범 전화가 걸려오면 즉시 현장에 무전을 치면서 '개지랄' 떨었던 사흘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제야 모두 16번에 걸친 협박 전화에도 범인을 빨리 잡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간 경찰은 개인역량에 좌우되는 조직이었다. 그러다보니 경험을 쌓기가 힘들고 평상시 실전형 현장 훈련, 즉 FTX(Field Traning Exercise)가 부재했던 것이다.

 

유괴사건은 매우 드물게 발생하지만 사회적 여파는 매우 크다. 그런데 경찰이 평상시에 이러한 사건을 가정하여 훈련을 받은 게 없다. 협박전화는 감청을 통해서 추적해야 한다.

 

감청영장을 받아와서 전화국에다가 감청기 설치하고 들어야 발신지를 추적할 수 있다. 감청영장은 신청 상황은 너무 급하기 때문에 재빨리 내준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요?"

 

영장 갖고 집행을 하니 엉뚱한 전화국이었다. 그래서 재영장신청을 해야 했다. 범인은 당시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범인이 어느 공중전화를 이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당시 수사본부는 자료에 근거해서 인천 전 지역 공중전화에 경찰들을 잠복시켰다.

 

한 전철역 광장에 설치된 공중전화는 열 개인데 형사 10명이 배치됐다. 그런데 그 공중전화는 나란히 붙어 있는 상태였다.

 

공중전화가 이미 없어진 곳에도 형사는 배치됐다. 수사본부에서는 전화가 오면 감청을 해서 들었다. 번호가 뜨면 빨리 인상착의를 파악하라고 지시하려고 공중전화 담당 직원에게 무전을 친다. 무전을 받은 담당 직원은 밥 먹는 중이라고 보고했다.

 

 

범인은 계속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했다. 한 지역 공영주차장에 현금을 갖다 놓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경찰이 따라붙으면 애를 죽이겠다고 경고했다.

 

수사본부는 형사를 택시기사로 변장시켰다. 택시 뒷좌석에도 형사가 드러누웠다. 피해자는 돈가방을 들고 접선지로 갔다. 나머지 경찰은 범인이 접근했다 도망갈 길목에 배치했다.

 

그런데 그곳을 지켜야 할 경찰들이 특진 욕심에 모두 공영주차장으로 몰려왔다. 김헌기 수사과장은 무전기에 대고 소리 질렀다.

 

"지금 뭐하는 거야! 빨리 원위치!"

 

유괴범은 사흘 만에 잡혔지만 이 모든 수사 과정은 김헌기 가슴에 시리게 남았다. 유괴사건, 인질 사건이 발생하면 아주 뛰어난 형사가 해결하면 다행이나 그렇지 못하면 사회적 여파가 너무 크다.

 

협상 요원이 있다면 유괴범이 전화할 때 옆에서 피해자에게 메모를 건네서 코치할 수 있다. 그런 시스템 필요성은 같은 시공간에서 우후죽순처럼 자랐다.

 

정신적 문제, 사회 불만, 충동 범죄, 보복 범죄 등 다양한 원인으로 형사 인질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사건들은 지역별로 빈번하게 벌어졌고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가는 남성이 담배 피며 욕설을 내뱉는 고등학생 머리를 툭 쳤다가 폭행죄로 불구속 입건되는 현실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질극이 제대로 벌어지면서 장시간 대치하는 상황이 생기고 언론사가 몰려와 취재하면서 인질 대응 필요성이 부각됐다. 대표적인 게 2010년 7월 24일 서울 중랑구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인질로 붙잡은 사건이다. 여자 친구 어머니는 흉기로 살해됐기에 사회적 여파가 컸다.

 

인질 대응 기구는 2014년 구체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체계 구축을 밀어붙일 지휘관도 나타났다. 바로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장(현 형사과장) 김헌기다.

 

강력범죄, 폭력, 마약, 조직 관련 업무를 총괄하며 소관업무와 관련된 기사들을 예의 주시한다. 그 해 1월 23일 부정 승차하는 20대를 붙잡은 교사가 폭행 혐의로 체포되는 기사가 나왔다. 경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이런 크고 작은 폭행뉴스들은 그 해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에 침몰당한다. 바로 유병언 추적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지는 비상시국으로 전환됐다. 김헌기 과장이 있는 강력범죄수사과는 주무부서였다.

 


2014년 7월 21일 저녁 김헌기 과장 사무실에 전화가 울렸다. 국과수 원장 서중석이었다.

 

6월 12일 전남 송치재 휴게소 인근 매실밭에서 심하게 부패된 시신이 발견됐는데, 서중석 원장은 이 변사체 유전자를 검사하니 유병언 씨로 보인다고 했다. 당시 경찰은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했다. 당연히 경찰청 보고는 없었다.

 

김헌기와 서중석 사이에 DNA 결과를 보완할 수 있는 자료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이후 40일이 지난 7월 23일 DNA 확인을 거치고 유병언 시신으로 확정된다.

 

그때서야 검찰은 경찰과 정보공유를 하지 않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수사과정에서 잘못된 일이 있었다면 지휘관인 본인 책임”이라며 최재경 인천지검장에 이어 이성한 경찰청장도 부실 수사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014년은 김헌기가 경무원 승진을 도전하는 해였다. 얼마 후 민정수석실에서 전화가 왔다. 인사검증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들려온 모양이다.

 

“김헌기 씨가 유병언 변사처리 업무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에게 그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성한 경찰청장이 그 책임을 지고 나갔지 않습니까?”

 

김헌기는 그에 견줄 만한 업무성과를 내세웠다. 특히 정당행위 체크리스트를 강조했다.


학생을 훈계하는 과정에서 어깨나 머리를 툭 친 것도 그간 폭행 혐의로 입건할 수 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진단서까지 제출하는 상황에서 형사 개인이 법리적 반박과 더불어 커지는 수사 범위와 민원을 감당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이는 분명 사회통념에 배치되는 결과다.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장인 김헌기는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풀고자 전문가를 모았다. 판례를 모두 뒤져서 정당행위 판단 항목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마침내 ‘정당행위 검토서’ 체크리스트가 완성됐다. 사건이 벌어지면 각 경찰서 형사과장이 위원회를 열어 정당행위 판단 항목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고 검찰에 송치하도록 했다.

 

김헌기는 그동안 업무성과로도 승진을 자신했지만 확실한 굳히기가 필요했다.

2014년 12월 4일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 등산로에서 한 등산객이 토막 난 시신이 담긴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경기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차렸으나 일주일 동안 수사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김헌기 과장은 범인 잡을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뭔가 딱 떠올랐다.

 

김헌기는 11일 출근과 동시에 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 승인이 떨어지자 경찰 신고포상금 최고액 5000만 원을 언론에 알렸다. 범인은 12시간 만에 잡혔다.

 

당시 대다수 언론은 공개수사 전환을 ‘신의 한 수’라고 극찬했다. 김헌기 경무관 승진 인사 3일 전이었다.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제1부는 여기서 마칩니다.  2부는 2020년 가을에.)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수사관 P는 1993년 순경으로 들어왔다. 1998년 인천에 있는 한 경찰서 조사계(현 경제팀)에서 처음 수사를 접했다.

 

수사관 P에게 첫 구속사건이 간통이었다. 2015년 2월 간통법 폐지 전까지 간통은 경찰수사에서 대표적인 구속사건이다. 당시 조사계에 간통 전문가가 두 명 있었다. 그들이 신입 P에게 자백 받는 방법을 알려줬다. 수사관 P는 가르쳐 준 대로 잡힌 남성을 조사했다.

 

“몇 년 만났습니까?”

“2년 만났습니다.”

 

“그러면 1년에 50번, 2년이면 100번 했네요. 100번이면 엄청나게 많이 살아요. 딱 한 번만 인정하고 그것만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합시다.”

 

“아이고, 형사님 감사합니다.”

 

남성은 자백했고 수사관 P는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자 나이 지긋한 50대 검사가 불렀다. 이혼심판청구소송 확인하고 영장을 신청했는지 물었다. 수사관 P는 오히려 이혼심판청구소송이 무엇인지 되물었다. 간통죄는 이혼을 전제로 성립하므로 이혼 절차를 밟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경찰 조사계 내 간통 전문가들이 P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다.

 

검사는 불법체포와 감금을 언급했다. 수사관 P는 업무를 맡은 지 한 달밖에 안 됐다며 사정했다. 이후 P는 수사가 ‘무섭고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공부벌레가 됐다.

 


 

그 후 실력을 인정받아 선임들 추천으로 2004년 인천지방경찰청 수사2계로 들어왔다. 수사2계는 뇌물수수 같은 수사나 특별법 관련 범죄를 다룬다. 당시 4개 반마다 쌓인 수사기록 높이를 보고 P는 기획수사 의미를 알게 됐다. 당시 경장이던 P는 큰 사건을 해결해 경사로 특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곳에서 김헌기 계장을 만났다.

 

목이 길고 키가 크며 몹시 마른 황새 같은 외모였다. 김헌기 계장은 모든 기록을 살폈고 빠진 부분을 메모해 회의에서 안건으로 다뤘다. 사건을 진행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P는 '굴비 상자 2억 원' 사건으로 김헌기 계장을 처음 겪었다.

 

2004년 8월 30일 안상수 인천시장이 클린센터에 현금 2억 원을 신고한 내용이 보도됐다. 근처 사는 여동생 집에 전해달라며 2억 원이 든 굴비상자가 왔는데 안상수는 누군지 모르겠다며 찾아가라고 신고했다는 것이다. 이 보도에 김헌기 계장 주재로 수사회의가 열렸다. 수사과장과 김헌기 수사계장, 수사2계 직원들이 참석했다.

 

"시장에게 돈 2억 보냈으면 뇌물 아냐?"

 

이런 의심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현금 추적에 대한 수사 성과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현직 시장과 관련돼 정치적 사안으로 번질 수 있는 민감한 문제다. 당시 수사2계 직원은 이렇게 회상했다.

 

"나도 간이 큰 편인데 그때 경대 출신들이 이건 명백한 불법 아니냐면서 그걸 손대자는 거야. 과장이 용단을 내리고 계장도 가자고 하는데, 당시 현역 시장이 엄청나게 셌거든요. 감히 말도 못 붙일 때야. 수사하는 과정에서 하자가 없는 게 있겠어요? 그거 걸고 날리면 다 날아가는 거지."

 

수사관에게 '험한 세상에 다리'가 돼 줄 이는 오직 상사뿐이다. 당시 인천경찰청장(이하 인천청장)도 힘을 보탰다.

 

"야, 이 돈 성격만 규명해 봐."

 

인천청장은 수사과에 특진도 약속했다. P도 특진이 걸렸다는 말에 마음이 설렜다. 이튿날 경찰은 굴비상자 2억 원에 대한 수사를 착수한다. 4개 반이 모두 붙었다.

 

매일 회의가 열렸고 수사 실무 총괄은 김헌기 수사2계장 몫이었다. 계장은 수사해야 할 사안을 항목별로 나눠줬다. 수사는 만 원권을 묶은 띠지에서 출발했다. 그 띠지에 찍힌 도장이 어느 은행 직원 것인지 금감원을 통해 파악했다. 또 그 현금다발에서 전달자 것으로 추정되는 지문도 찾아냈다.

 

돈다발은 어떻게 인천 안상수 여동생 집까지 굴러갔을까. 통신수사, CCTV, 카드 명세 등을 분석해 전달자 동선도 확인했다.

 

이제 여동생이 굴비상자를 받은 경위를 알아낼 차례다. 그런데 여동생이 갑자기 사라졌다. 출국 가능성도 있었고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은 촉박했다. 수사2계 직원을 여러 팀으로 나눠 시장 여동생이 갈만한 장소로 흩어지게 했다. 당시 P 직속 상사는 Q 반장이다. 순경에서 시작한 Q는 김헌기 계장보다 연배가 훨씬 많았다.

 

Q는 중요한 사건 피의자를 검거 중에 놓친 적이 있었다. 피의자 차량이 국도에서 총알처럼 질주해버렸기 때문이다. 김헌기 계장은 그 소식을 듣고 Q에게 잡을 때까지 올라오지 말라고 했다. 이러한 김헌기 계장 성격을 모두 잘 안다.

 

P는 이른 아침부터 어느 아파트 앞에 잠복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했다.

 

 

‘제발 내 앞에만 나타나지 마라’

 

눈앞에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 일행 중에 한 여성이 보였다. 안상수 시장 여동생이었다. P는 차에서 바로 내려 다가갔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서 같이 인천경찰청에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러한 임의동행도 상대가 거부하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장 여동생이 나타났다는 P 보고에 Q 반장은 긴급체포해서라도 놓치면 안 된다며 광분했다.

 

P는 여동생이 올라타려는 차량 문 앞에서 실랑이했다. 결국, 여동생은 출석했고 한나라당은 P가 강압수사를 했다며 진정을 넣었다. P는 경위서를 한 장 썼다. 굴비상자 현금 2억 원 수사는 두 달 안에 모두 끝냈다. 경찰은 10월 20일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인천청장은 돈 성격만 규명해도 특진시켜준다고 약속했다. 수사진은 금전 성격 파악은 물론 돈을 건넨 업체 대표를 구속시키고 안상수 시장까지 기소되도록 했다. 수사 목표는 초과 달성했지만 특진은 없었다. 수사 기간 인천경찰청장실은 '야당 탄압'이라고 외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북새통이었다. 수사 주체 승진 강행은 부담스러웠을 테다.

 


 

이듬해 2005년 P는 모 업체를 압수 수색을 하다가 고위직 주소가 모두 영종도에 있는 한 빌라인 것을 발견한다. 전입 날짜도 비슷했다. P는 영종도로 향했다. 그곳은 유령도시였다. 빌라에는 유리창이 없고 빌라 지하는 물로 차 있었다. P는 반장 Q와 김헌기 계장에게 보고했다. 반장과 계장이 수사를 승낙하자 P는 영종도에 눌러앉아 조사를 시작했다.

 

김헌기 계장은 첩보 보고를 받으면 수사 방향과 적용 법리 등을 제시한다. P는 전입자 명단을 뽑아 주소지 수도와 전기요금 내역서를 살펴봤다. 수도와 전기를 사용한 게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모두 위장전입으로 입건했다.

 

경제특구인 영종도 부동산 투기위장전입 사건 수사는 상부에서도 주목했다. 경찰 계급은 순경에서 시작해 경장, 경사, 경위로 나간다. 인천청은 경찰청에 경사 특진이 아닌 경위 특진을 올린다. 수사2계 모 경사가 P에게 인사했다.

 

"P야, 너 때문에 내가 특진했다. 고맙게 생각한다."

 

 


 

2006년이 됐다. 인천에 한 장애인협회가 있다. 이곳 대표 B는 일당을 받은 장애인을 동원해 공사 못하게 떼를 쓰는 게 주특기다. 그리고 기업에 장애인 협회에 돈을 기부하도록 유도한다. 이 장애인협회에서 활동하는 비장애인 K가 있다. K는 P를 따랐다. K 처지에서는 험한 세상에서 인천지방경찰청 경장이라도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 게다가 P는 K에게 술도 사줬다. 어느 날 P는 K에게 전화를 받는다.

 

"형사님, 어마어마한 첩보가 있어요."

 

K는 대표 B 모르게 자료를 입수한 듯했다. 정치인이 돈으로 장애인을 당원 가입시켰는데 명단이 꽤 된다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형사님, 500만 원 빌려주세요."

"일단 내용이나 보고 이야기합시다."

 

P는 이 내용을 김헌기 계장과 반장에게 보고했다. P는 K를 횟집에 데려갔다. K는 점퍼 안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냈다.

 

"형사님, 이게 뭔지 아십니까? 이게 장애인 당비 대납한 사람들 명단입니다."

"아 그래요?"

 

P는 궁금했지만 오히려 관심 없는 듯 안주만 더 시켰다. K가 술에 잔뜩 취하자 P가 대뜸 말했다.

 

"그거 뭐예요. 조금 봐 봅시다. 주머니에 있는 거 줘 봐요."

 

종이에는 당비 대납 명단과 금액이 나와 있었다. P는 별거 아닌 듯 K에게 되돌려줬다. K는 내심 500만 원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한 듯했다. 하지만 500만 원은커녕 술만 들이켜는 P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우정 변치 맙시다."

 

K는 딸 장래희망이 경찰관이라고 했다. P에게 자기 딸이 인천지방경찰청을 구경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P는 증거를 확보하고 김헌기 계장에게 전화했다. 김헌기 계장은 술을 마셔도 일할 때 빈틈이 있거나 허술한 것을 질색했다. P는 전후사정을 이야기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어쩔 수 없이 술 좀 먹게 됐습니다."

 

"야, 괜찮아. 괜찮아! 고생했다. 고생했어! 잘했다."

 

P는 K 씨 딸에게 인천지방경찰청 모든 층을 구경시켜줬고 K는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K가 장애인 협회 대표 B와 멀어진 이유를 알게 됐다. B는 다리를 못 쓴다. K는 장애인이 살기 험한 세상을 바꾸려는 협회에서 B를 대신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B는 독차지했다. B는 결국 구속됐다.

 

2007년 P는 경사로 특진했고 일선 경찰서로 나갔다. 김헌기 계장도 2007년 초 총경으로 승진해 인천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이 됐다. 몹시 좋았던 순간들이다. 김헌기와 함께 서초서 조사계에 근무했던 W도 어느덧 승진하여 인천으로 와 반가움을 더했다. 그러나 햇살은 사건과 함께 구름  속으로 사라져갔다.

 

2007년 3월 송도초등학교 유괴 사건이 벌어진다. 마침 2007년 2월 '이형호 유괴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그놈 목소리>(주연 설경구)가 개봉해 충격이 더 컸다. 수사본부를 꾸렸고 인천 모든 경찰서가 투입됐다.

 

유괴범은 나흘 만에 잡았으나 아이는 유괴 당일 살해됐다. 뒤늦은 검거에 비난이 쏟아졌다. 청장 주재 회의가 열렸다. 인천청장과 과장들이 모두 참석한 회의에 일선 경찰서 과장들도 모두 모니터 앞에 앉았다.

 


 

형사과장 W는 그날 회의를 이렇게 돌이켰다.

 

"제 기억으로 그때 청장이 김헌기 수사과장을 박살냈어요. 네가 그렇게 지휘해서 사람이 죽었다면서. 사실 청장 자신이 책임져야 하거든요. 청장이 보고를 다 받고 최종지휘를 한 거잖아요. 그때 속으로 공개적으로 고생한 과장에게 저렇게 뭐라 하나 생각했지요."

 

(다음 제7화 김헌기 상상은 현실이 된다.)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2012년은 선거가 많았다. 4월 11일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 12월 19일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선거 기간에는 현수막 훼손이나 선거운동 방해 같은 일로 고소나 고발이 잦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는 선거 관련 사건 수사를 총괄한다. 당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장(현 수사과장)은 총경 김헌기다.

 

대선 일주일 전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사안이 급박해 김헌기 과장이 수사를 지휘했다. 그는 곧 국장에게 건의했다.

 

"국장님, 신고 내용이 인터넷 댓글을 단다는 것입니다. 단체로, 댓글부대가 댓글을 단다는 것입니다. 사이버 선거운동 아닙니까? 이것은 사이버 쪽 업무지 저희 업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초기에 출동해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이제부터 전문성 있는 사이버에서 사건 업무를 전부 맡아서 해야 합니다."

 

그러자 담당 과장이 자기들 업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국장도 김헌기 과장이 맡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사안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누구 업무를 따지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김헌기 과장은 국장에게 다시 건의했다.

 

"좋습니다. 그럼 수사를 하다가 댓글이 나오면 이건 사이버에서 해야 합니다."

 

12월 13일 서울지방경찰청 증거분석팀은 김 씨 노트북 등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댓글이 나왔다. 김헌기 과장은 다시 국장에게 건의했다.

 

"댓글 나왔으니까 사이버가 맡으십시오."

 

그러자 담당 과장이 엉뚱한 얘기를 했다.

 

"지금까지 지능에서 다 했는데 일관성 있게 다 하셔야지요."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서울청은 여론과 검찰에 초토화됐다. 경찰청 댓글 수사 업무 담당자는 2013년 국회 국정조사와 안전행정위원회에 불려 다니며 면박을 당했다.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은 국회의원들에게 '이상한' 청장으로 불리는 수모도 당했다.

 

경찰 간부들이 검찰이 제시한 분석실 CCTV가 사실과 다르다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야당(민주당) 의원들로부터 검찰 수사 결과에 반항한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해 말, 고위직 인사가 진행됐다. 동기생 강신명은 치안정감인 서울지방청장으로 갔다. 강신명은 서울청 경무부장과 대통령실 치안비서관실 코스를 밟아서 승진이 빨랐다. 동기생 송무빈은 그해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김헌기는 2014년 1월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장(현재 형사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력범죄, 폭력, 마약, 조직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정부는 사건 원인으로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을 지목했다. 4월 20일 유병언 검거를 위한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이 구성됐고 경찰청에 검거 협조공문이 온다. 그러면 이 공문을 담당부서가 접수해 처리해야 한다. 당시 유병언 죄명은 '업무상 횡령'이다. 보통 특수부에서 온 업무상 횡령 범죄는 지능범죄과장이 담당한다. 하지만 정작 지능범죄수사과장 다른 얘기를 했다.

 

"검거 관련은 형사과지요."

 

김헌기는 국장 앞인데도 정색을 하고 언성을 높였다.

 

"이 사람아!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죄명 별로 협조해야지. 너희들이 해야지 왜 형사과에 미루려고 해? 이건 검찰 강력부가 아니잖아. 검찰 특수부야! 그리고 죄명도 업무상 횡령! 그런데 왜 우리 형사에서 해?"

 

순간 회의실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후 회의마다 지능범죄과장은 국장에게 유병언 추적 관련 보고를 했다. 국장은 그때마다 김헌기 형사과장을 계속 쳐다봤다. 눈빛이 보내는 의미는 하나였다. 결국 김헌기는 국장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병언 검거는 실패했다. 6월 12일 전남 송치재 휴게소에서 2.5km 떨어진 매실밭에서 변사체가 발견된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다. 그는 유병언이었다.

 

최재경 인천지검장에 이어 이성한 경찰청장까지 부실 수사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박근혜 정권은 이성한 청장 후임으로 강신명을 임명했다.


 

 

그 해 송무빈은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장으로 발령 났다. 2016년부터는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을 맡았다. 서울청 경비부장은 그래서 1~2년 내로 승진이 보장되는 자리였다. 노동 강도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2015년은 세월호 1주년 추모 집회부터 연말까지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까지는 탄핵 관련 촛불집회 관리를 했다. 다시 대통령 선거 일정이 잡히자 19대 대선 경호·경비 등을 송무빈 경비부장이 담당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조국 서울대 교수는 4년 전 문재인 후보가 집권했다면 나라가 이렇게 됐겠느냐며 유세를 펼쳤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송무빈 업무성과는 계속해서 최우수(S) 등급이었다. 그 사이 경찰청장은 강신명에서 이철성, 그리고 민갑룡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승진 소식은 없었다.

 

2018년 4월 송무빈은 업무 과로로 한쪽 귀가 아프기 시작했다. 송무빈 부장은 민갑룡 청장에게 승진시켜줄 게 아니면 다른 보직으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치안감 승진에서도 제외됐다.

 

송무빈 부장은 11월 29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청와대가 치안감 승진에 밀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자신에게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백남기 농민 사태' 책임을 물었다고 주장했다. 송무빈 부장은 기자회견 직후 사의를 밝혔다.

 

물론 김헌기도 치안감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어떤 조직에서든 누구든 자기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런 상황을 피하려 애쓰며 그러는 게 현명하다. 얽히는 게 없으면 인사에 불이익을 당할 일도 없다.

 

왜 김헌기에게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는 일을 피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짧게 말했다. 남은 경찰 인생도 충실히 채워서 명예롭게 퇴직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헌기 경찰 인생은 경찰 지능수사 그 자체다.  그러나 2015년 경찰청 수사기획관 이후로 김헌기 보직은 수사를 자주 접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경찰 입직 후 지능수사에 다가가기도 순탄치 않았다.

 


 

어릴 적 순경이던 아버지 근무지를 따라 가족도 전국 각지를 떠돌았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살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1979년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대가 생긴다더라. 너는 무조건 경찰대를 들어가라."

 

김헌기는 1982년 경찰대 2기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경찰대는 군사학교 같았다. 1기 선배들이 주는 단체기합은 고단함을 더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경찰대를 졸업하면 군 복무 대신 기동대 생활을 했다. 집회 현장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민과 마주한 채 날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시민에게 욕먹을 때마다 경찰대를 왜 입학했나 자괴감이 들었다.

 

 

경찰대 출신은 경위에서 시작한다. 김헌기는 경감이 돼서도 경비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하루 12시간 대기하는 게 일상이었다. 아무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갈등이 많았다.

 

 

1993년 4월 구로경찰서 방범계장으로 발령받았다.

 

방범계장은 지금은 생활안전계장에 해당한다. 주 업무는 순찰을 돌며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다. 구로는 광명과 부천 경계로 강남순환도로와 내부순환도로가 지나간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 탓에 도둑과 강도가 들끓었다. 순찰로 범죄를 예방할 수는 없었다. 가장 좋은 범죄 예방법은 형사계가 도둑과 절도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서장은 김헌기를 무조건 질책했다.

 

이듬해 서장이 바뀌었다. 김헌기는 새로운 서장에게 고충을 털어놨다. 경찰대학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근무 이력을 나열하며 경비와 생활안전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는 정말 수사를 하고 싶습니다. 서장님 저를 수사부서에 보내주십시오."

 

"너는 무조건 한 우물만 파! 경비만 계속 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이무영 경찰청장은 경찰 수사역량을 높일 목적으로 조사간부제도를 기획했다. 경찰서에 고소·고발·진정·탄원 형태로 피해 내용이 접수되면 경제팀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불러 신문조서를 만든다. 수사는 조서를 만드는 능력이 기본이다. 상대 진술을 듣고 진술을 종합하는 능력, 증거를 수집하는 능력 그리고 결론을 내기까지 상당한 수사역량이 필요하다.

 

1994년 3월부터 젊은 간부를 대상으로 조사계(현 경제팀) 수사관 교육이 진행된다는 공문이 각 경찰서에 하달됐다. 그렇게 육성한 간부를 방배·서초·강남·송파·강동 등 강남권에 배치하는 게 목적이었다. 김헌기는 무조건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김헌기가 경제팀 수사관 교육을 신청했다는 소식에 서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너에게 무조건 한 우물을 파라고 했는데 넌 왜 안절부절못해서 경력도 없는 놈이 교육 신청한다고 되겠어!"

 

얼마 후 김헌기는 희망대로 수사연수원으로 교육발령이 났다. 그는 서장 면박을 곱씹으며 각오를 다졌다.

 

김헌기는 1994년 7월 서초경찰서 조사계장으로 발령 났다. 김헌기 밑에 조사계 직원은 40명이었다. 이 가운데 절반이 교육을 함께 받은 경찰대 후배였다. 그중에 W가 있었다. 조사계장은 사건 배당과 결재를 맡았다. 김헌기는 결재하기 전에 모든 기록을 읽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노란 포스트잇에 적어 기록에 붙였다.

 

서초경찰서는 1994년 9월 지존파 일당 검거,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등으로 떠들썩했지만 조사계 직원들은 기록에 파묻힌 채 치열하게 세월을 보냈다. 김헌기는 그렇게 태풍 중심에서 4년을 보냈다.

 

1998년 경정으로 승진을 하여 2003년 인천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이 됐다. 오늘날 지능범죄수사대장에 해당되며 인지·기획수사를 하는 곳이다. 원인까지 따져 뿌리 채 뽑는 수사, 몸통을 찾는 수사를 한다.

 

그동안 수사2계장이 되고자 경찰청 로비에 수없이 드나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을 희망자를 생각하면 김헌기에게 큰 기회다.

 

그때부터 총경 승진 전까지 5년 6개월 동안 수사2계장으로 활약했다.

 

김헌기는 처음에 2개 반을 운영했다. 총직원은 10명이다. 수사2계 수사관들은 그 지역에서 나름 베테랑들이다. 이런 수사2계 직원들과 호흡을 맞춘 결과 수사2계가 빛을 발하자 부임하는 인천지방경찰청장들은 임시편제로 정원을 확대했다. 4개 반에 직원은 20명까지 늘어났다. P도 수사2계로 발탁됐다. 수사2계 사무실은 바로 옆에 있는 강력계 공간 벽을 밀어내면서 확장됐다.

 

(다음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5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 리브스'였어!

 

"와! 끝내준다"

 

키아누 리브스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 <스트리트 킹>(2008년)을 본 소감이다. LA경찰국이 배경인 이 영화는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조직을 보여준다. LA수사국 완더 서장은 권력지향적이고 동료 경찰들도 범죄에 가담하며 이권을 챙긴다. 정의와 진실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은 키아누 리브스뿐이다.

 

현실에도 이와 비슷한 인물이 있다. 2012년 국정원 댓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윗선 개입을 폭로한 권은희 씨다. '권은희 고립되다'(2013.9.18. 오마이뉴스) 기사처럼 조직에서 그녀는 키아누 리브스와 같은 처지였다. 법정에 나온 당시 수서경찰서장, 사이버팀장, 지능범죄수사팀장은 권은희 과장과 견해가 달랐다. 하지만 우리는 권은희 씨 용기와 결단에 박수를 보냈고 진보 언론과 민주당 정치인들은  그녀를 '광주의 딸'로 칭했다.

 

이번 장은 주인공 김헌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김헌기 수사 인생 굴곡을 살펴보려면 국정원 댓글 경찰 수사 이해가 있어야 하겠다.

 


 

필자는 이 사건이 한참 지나고 한 경찰 간부를 만났다.

 

"저 모르세요? 나 텔레비전에 많이 나왔는데."

 

2012년 서울지방경찰청 수서경찰서장이던 그는 권은희 씨 상급자였다. 그해 12월 16일 서울청 지시로 대선을 사흘 앞두고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중간발표를 했다. 언론은 그 공로로 그가 경무관 승진을 했다고 보도한다.

 

그는 승진에 눈이 멀어서 권은희 씨와 다른 주장을 했을까? 그런데 이야기를 할수록 그는 부패한 완더 서장처럼 벽 안에 돈을 감추고 부패한 부하 뒤를 봐주는 그런 인물과 거리가 멀었다.

 

경찰 조직 구성원 대부분이 동의하는 조직 특징이 있다. 경찰은 기무사나 국정원과 달리 개방된 조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사불란해도 검찰처럼 구성원끼리 의리 개념이 강하지 않다. 문재인 정권에서 드러난 것처럼 경찰은 다른 조직보다 적폐 청산에 앞장섰으며 스스로 특별수사팀을 설치해 상급자를 무더기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경찰이 해야 할 적폐 청산으로 아예 거론되지 않는 사건이 있다. 바로 디도스 사건 수사와 국정원 댓글 사건 경찰 수사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부실 수사를 지적했던 거센 목소리가 문재인 정권 들어 잦아들었다. 경찰 수사가 잘못됐다면 진실을 밝히기 더 없는 기회를 맞았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2012년 12월 19일 대선을 앞둔 11일 저녁 7시쯤 서울지방경찰청 관할 수서경찰서 도곡지구대로 신고가 들어온다. '국정원 선거 댓글사건' 서막이다. 민주당은 12일 용의자 김 씨와 김 씨가 소속된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서경찰서에 고발했다. 김 씨가 제출한 PC와 노트북은 서울청 분석팀이 조사했다. 당시 수서경찰서 디지털 분석 역량이 부족해 서울청이 디지털 포렌식을 맡았다. 이 작업은 경찰청 연구관도 파견돼 거들었다. 당시 수서경찰서가 서울청에 요청한 키워드는 이렇다.

 

강금실, 검찰개혁, 공약, 군대, 군복무, 굿판, 김대중, 김두관, 김어준, 납세, 네거티브, 노동자, 노무현, 단일화, 대선, 명품 안경, 명품 의자, 바른손, 사람사는세상, 선거, 선거사무실, 이은미, 종교평화법, 연설, 진선미, 테마주, 호남, 힐링캠프, 협력, 열쇠, 동계올림픽, DMZ, 사람, 수임료, 사랑채, 나라사랑, 네이버…

 

단어 하나를 분석하면 6시간 정도 걸린다. 서울청은 신속한 수사를 내세워 수서경찰서가 요청한 키워드 100개 가운데 대선과 관련 있는 단어 4개(문재인, 박근혜, 새누리당, 민주통합당)만 추려 조사를 진행한다. 이 결과를 김용판 서울청장이 수서경찰서장에게 명령해 16일에 선거 전, 중간발표했다.

 

"댓글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통령 후보 관련 수사는 통상 선거 전에 발표를 해왔다. 2002년 이회창 대표 아들 병역비리 사건을 터트린 김대엽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병풍수사결과를 선거 전 발표했다. 2007년 말,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BBK수사결과도 선거 전에 발표했다.

 

국정원 댓글 경찰 수사 문제는 중간발표와 최종 발표가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키워드를 확장해 분석한 최종 수사결과 발표는 선거가 끝나고 2013년 1월 31일 발표된다.

 

"정치적 성향 댓글을 49개 달았다."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경찰이 수사결과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2013년 4월 18일 검찰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팀장으로 특별수사팀이 구성했다. 그리고 이틀 후, 권은희 수사과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 수사 윗선 개입'을 폭로하면서 수사결과 조작설에 힘이 실렸다.

 

"서울청에서 분석 키워드를 4개로 줄였다."

"경찰청에서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수사에 압력을 넣었다."

"경찰청 고위간부가 수차례 전화해 '불법선거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흘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 후로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모든 게 착착 맞아떨어졌다. 윤석열 팀장이 이끄는 검찰특별수사팀이 권은희 과장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아낸 것이다.

 

바로 서울청에서 분석관들끼리 대화가 담긴 CCTV 영상이다.

 

당시 서울청은 공정성을 보장하고자 분석실에서 조사 과정을 24시간 녹화했다. CCTV 분량은 모두 127시간이다.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영상에서 한 직원은 "노다지다. 노다지…"라고 말하고, 다른 직원은 "언제 다 보냐고, 왜 자꾸 나와"라고 투덜거린다. "닉네임을 찾았다"며 손뼉 치고 "고기 사 달라"는 말도 나온다.

 

검찰은 김용판 서울청장이 댓글이 나온 것을 알면서도 수서경찰서장을 시켜서 허위수사발표를 하게 했다며 직권남용으로 기소했다. 결과는 어땠나. 김용판은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검찰은 다시 권은희를 위증죄로 기소한다. 권은희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시기 뉴스를 검색하면 두 가지 주장만 판친다. 권은희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김용판을 무죄 선고한 법원은 '썩은 것'이다. 김용판 주장을 인정하는 이들에게 권은희 폭로는 '원맨쇼'다. 대체 진실은 무엇인가.

 


그래도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에 있었다. 2013년 7월 25일 제317회 임시국회에서 '국가정보원댓글의혹사건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조사'가 그런 사례일 것이다. 당시 야당(민주당) 의원은 검찰이 확보한 서울청 분석실 CCTV 영상 자료를 최대한 활용했다. 이를 근거로 이성한 경찰청장과 이 사건 경찰 관계자들에게 허위수사를 질책했다.

 

이 가운데 당시 여당(새누리당) 소속인 윤재옥 의원 발언이 눈에 띈다. 윤재옥 의원은 경찰대 1기 출신이고 경기지방경찰청을 지냈다. 윤 의원은 검찰이 제시한 CCTV 127시간을 분석해 검찰 수사결과와 전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떤 것은 빼버리고 또 자기 논리를 더 부각하기 위해서 장면의 구체적 설명을 다르게 표현하기도 하고....(중략).... 그리고 '싹 갈아 버려' 이런 것도 지금 이 부분만 부각하고 앞뒤 내용은 싹 다 빼버렸어요."

 

검찰이 전체 맥락을 무시하고 부분 부분 편집하고 짜깁기 해 증거를 조작한 것처럼 호도했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이끄는 중앙지검 특별수사팀 작품이었다. 윤재옥 의원은 이 사건에서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서 수사를 했듯이 왜 서울청은 그렇게 못했는지 질타했다.

 

2018년 '버닝썬 사건'을 보자. 관할은 강남경찰서지만 서울청 광역수사대가 처리했다. 서울청 수사능력이 더 우수하고 수사 인력도 훨씬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사건입니까. 사실은 정말 경찰에 몇 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 한 큰 사건이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지방청에서 수사를 장악해 가지고 수사를 해야 되지 디지털 분석만 해 가지고 내려보내고 또 나머지 수사는 일선서에 맡기고… 어렵고 힘든 일은 자꾸 밑으로 내려보내서 책임지라고 하고 문제 생기면 뒤로 숨고 이런 상급기관이나 상급자 모습이… (이하 생략)"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선거에서 진 쪽은 수사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 선거에 진 쪽은 경찰 부실수사로 몰아갈 것이고 검찰은 경찰 수사가 미진한 부분을 찾으려 애쓸 것이다.

 

 

조현오 청장 시절, 2011년 경찰이 수사한 디도스 사건이 그랬다. 결국 경찰 수사 축소 은폐 의혹으로 특검까지 갔다. 선거 관련 수사 담당자들은 특검이나 검찰 특별수사팀, 국회 조사위, 국정감사 등에 불려 나가게 돼 있다. 즉 서울청에서 직접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챙기지 못한 이유는 한 줄로 정리된다.

 

“똥물 튀길까 봐.”

 

그래서 수서경찰서가 맡은 사건을 누구도 손을 대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윤재옥 의원은 이 지점에서 갈등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일선 서에 수사 책임을 맡기고 디지털증거분석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지방청에서 하다 보니까 이게 일선 서하고 수사를 지휘해야 될 지방청이 마치 서로 대등한 관계인 양 수사 관련해서 계속 서로 의견 일치가 안 되고 또 이런 과정이다 노출되고…"

 

윤재옥 의원은 권은희 씨 행동도 과했다고 평가했다.

 

"수서 수사과장이 제가 알기에는 사이버수사 경험이 많은 분이 아니에요. 사법시험 출신이라서 법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중략)… 일선 서 수사과장 개인이 이 수사를 전부 자기가 판단한 대로, 자기 생각대로 수사를 끌고 가려고 하고 또 그것을 초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좀 수사지휘를 했는데, 거기에 반발하니까 전부 다… 뭐 잘못도 이야기하면 구설에 오르내리고 물의가 야기되니까 전부 뒤로 빠져 버리고 이런 현상이 생겼지 않습니까."

 

당시 권은희 수사과장에게 수사지휘 관련 윗선은 경찰서장, 서울청, 경찰청이다.

 

우선 첫 번째, 당시 수서경찰서장은 회의석상에서 수사 방향을 논의하고 결론을 내려 지시하는 식으로 유도했다. 이런 수사지휘 방식은 빌미를 줄 여지가 없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더 윗선 경찰청은 어떨까. 당시 경찰청 모 담당과장은 큰 사건이 나면 일선 경찰서에 전화를 자주 하는 사람이다. 실무자와 통화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중간 단계를 거쳐 보고받으면 시간이 걸리며 그 과정에서 사실이 왜곡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관련하여 수서경찰서와 통화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주변에서 함부로 전화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압력 행사한다는 말 듣게 된다고. 그래서 전화 안 했어요. 권은희 과장이 나에게 건의가 와서 한 번 통화했을 뿐 나는 직접 한 번 안 했고."

 

이제 남은 것은 서울청 전화. 당시 김용판 서울청장이 권은희 과장에게 직접 전화한 사실이 도마에 올랐다. '지방청장 수사지휘권' 부분이 논란이 된다. 김용판 청장을 기소한 검찰은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청장은 사법경찰관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지휘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찰 조직 내 의견은 다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4조를 보면 경찰은 상관의 지휘를 받아 직무를 수행한다고 나와 있다. 즉, 지방청장도 구체적인 사건 수사와 관련된 지휘 감독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경찰들은 권은희 씨가 언론에 폭로한 내용은 사실관계는 전부 맞다고 했다. 단지 받아들이는 차이, 해석 차이라고 했다.  당시 권은희 씨 입장에서는 압력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권은희 사건 이후로 경찰 조직 내부에서는 서면수사지휘 필요성이 확대됐다. 수사과정에서 상하급자 사이에 이견이 발생한 사항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면 수사지휘 책임 소재가 명확해진다.

 


 

2016년 서면수사지휘 방식을 확대 추진한 이는 현 민갑룡 경찰청장이다. 민 청장은 경찰대 4기로 기획 계통에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시스템 주의자다.

 

과거 민갑룡 경무관이 캐나다에 유학을 갔을 당시, 그에게 영화 <스트리트 킹>을 거론하며 키아누 리브스와 같은 멋진 형사가 없는지 물었는데 문자로 여러 가지 시스템 문제를 지적한 답장을 받았다.

 

청와대는 민갑룡을 경찰 개혁 적임자로 보고 2018년 7월 24일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이어 11월 29일 치안감 인사가 진행됐다. 그날 오랜만에 서울청에 있는 지인에게 전화했다.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안에 난리가 났어! 송무빈 부장이 기자 회견한다고 기자실로 갔어."

 

(다음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3화. 미스터 계장들

 

2011년 12월 22일 김헌기는 경찰청(이하 본청) 지능범죄 수사과장이 됐다. 직속 계장이 보고했다.

 

“조현오 청장님께서 그 의경 사망 사건에 대해서 독회를 하신답니다.”

 

2011년 7월 말 의정부 동두천에서 의경이 사람을 구하려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다. 그 후로 이 사건에 대한 후속 조치가 진행됐다. 경찰청장이 배석한 상태에서 주무담당과장이 단상에 올라가 사건을 보고한다. 그 후에 쟁점을 두고 서로 토론하는 것을 독회라고 한다. 김헌기는 본청 경험이 없어 ‘독회’ 뜻을 몰랐다. 하지만 담당 계장은 김헌기 과장이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료를 챙겨주지 않았다.

 

회의가 시작되자 옆에 앉은 강신명 수사국장이 발표하라며 김헌기를 툭툭 쳤다. 당연히 매끄럽게 될 리가 없었다. 조현오 청장은 서슬 퍼런 목소리로 소리쳤다.

 

“과장 내려가. 담당자 올라오라고 해!”

 

김헌기는 본청 생활을 그렇게 시작했다. 만약 경찰종합학교장을 했던 김석기가 2009년 경찰청장이 됐다면 본청 경험을 일찍, 좀 더 수월하게 했을 것이다.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석기는 2009년 용산참사로 2월 10일 물러났다. 김석기는 경찰청장 내정자 기간 경찰 인사를 단행했다. 그때 조현오를 치안정감으로 승진시켜 경기지방경찰청장에 내정한다.

 

이 둘은 이택순 청장이 엄청 괴롭혔던 대상이다. 김석기는 본청에서 이택순 청장을 매일 마주하는 조현오를 위로하면서 수사권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되자 몇 가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수사국은 수사국장(치안감) 아래에 새롭게 수사기획관(경무관)을 뒀다. 그 밑에 지능범죄수사대와 범죄정보과를 신설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담당할 수사구조개혁팀은 경무관이 단장인 수사구조개혁단으로 크게 몸집을 키웠다.

 

조현오 청장 시절에는 연줄보다 해당 분야에 가장 유능한 인재를 뽑는 인사 흐름이 있었다. 강신명 수사국장은 지능범죄 수사과장에 김헌기를 추천했다. 김헌기는 인천지방청 수사 2계장 시절 안상수 굴비사건 수사로 각인됐다.

 

 

 

공무원은 밥값을 해야 한다는 게 조현오 청장 소신이다. 일을 제대로 못하면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당시 민갑룡 기획조정담당관은 조 청장이 가장 대접했던 인물이다. 조선시대 도승지 역할이었고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대통령령을 정할 때 검찰과 실무협상에 나가기도 했다.

 

조현오 청장은 능력이 탁월하면 수직과 수평 질서를 흔들어도 중용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황운하다. 조 청장이 민정수석 반대를 무릅쓰고 승진시켜 2011년 말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내정했다. 믿고 맡기면 일절 간섭하지 않고 외풍을 차단해주는 게 조현오 청장 방식이다. 수사국에 속한 지능범죄수사과(현 수사과), 강력범죄수사과(현 형사과), 수사구조개혁단 등 수사부서들은 모두 본청 5층에 있다.

 

경찰청 내에는 계장급 경정이 150여 명이 근무하고 총경 승진 할당량도 경찰청이 가장 많다. 수사국은 매년 계장 두 명 정도가 총경 승진을 한다. 승진에 유리한 보직들이 있다. 계장이 총경으로 승진 후 자리가 비면 수평이동을 할 우선권은 주로 같은 국이나 과 계장에게 주어진다. 당시 수사구조개혁단에는 김헌기가 예전에 함께 근무를 했던 W가 있었다. 김헌기 수사과장은 사무실 복도에서 W를 만나면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나랑 같이 근무하는 계장으로 와야 해."

"네, 알겠습니다."

 

 


 

2013년은 이성한 경찰청장 시절이다.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 직전 국정원 댓글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국정원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인터넷에 게시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급기야 민주당 쪽에서 국정원 직원이 작업하는 오피스텔을 급습하고 경찰에 고발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선거 후 김헌기 수사과장도 이 사건으로 국회로 불러 다녔다. 직속 계장들은 따라다니며 뒤에 앉아 지켜봤다. 그 당시 계장 눈에 비친 김헌기는 어땠을까? 한 계장은 김헌기 과장에 대한 인상 깊은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경찰 수사는 정신없이 진행됐다. 김헌기 과장은 회의 때 검찰에서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수사할 시간(2개월)을 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거법 공소시효는 6개월이다. 검찰은 사건 발생 6개월 내에 공소제기를 해야 한다. 계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수사에 집중하다 보면 모를 수가 있어요. 지혜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요?”

 

박근혜 정부는 불량식품 근절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이러한 정부시책에 경찰은 어느 정도 업무성과를 내야 했다. 불량식품 관련 법규는 식품위생법 위반 특별법이다. 특별법 업무 소관은 지능과가 맡는다.

 

본청 계장들 역할은 무엇일까?

 

계장들은 여러 가지 총괄 계획서를 작성한다. 계획서에는 단속 배경과 대상, 방법, 인력, 적용 법 조항 등이 들어간다. 불량식품 단속은 경찰도 생소해 소집교육도 시키고 매뉴얼도 제공한다. 이후 단속 사항이 올라오면 수사 지도를 한다. 성과를 언론에 홍보하는 것까지 본청이 관리한다.

 

동물 사료용 폐닭, 폐기용 돼지 부산물 등이 시중에 유통되다 경찰 수사에 적발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 업무를 관리했던 담당 직원은 당시에 순대와 통닭을 도저히 먹지 못했다고 했다. 원래 식품사범은 구청 소관업무다. 이게 경찰업무로 들어오자 일선 경찰은 불만을 드러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작용도 나타났다.

 

하루는 경찰청에 토종닭협회 전화가 걸려왔다. 야산에 닭을 삼삼오오 키우는데 그게 무허가라 경찰 단속을 받은 모양이다.

 

 

 

“경찰 때문에 서민경제가 다 죽는다.”

 

토종닭협회는 강경하게 나왔다. 경찰청이 있는 서대문 사거리에 2000명이 모여 생존권 투쟁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경찰청 앞에서 닭들이 파드닥거리며 휘젓고 다닐 모습이 그려졌다. 이미 언론도 경찰이 무분별하게 단속한다는 기사를 내고 있었다.

 

본청에서는 저인망식 수사 자제를 지시했지만 영세업자 기준을 분명하게 정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이처럼 실무에서 혼선이 있을 때 김헌기는 명확히 기준을 잡아준다. 함께 일했던 한 계장은 풍부한 수사업무 경험에서 생긴 감각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란법 매뉴얼을 만들 때 일화도 들려줬다.

 

당시 경찰 대응 방향을 의논하는 회의가 열렸다. 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이 김영란법을 위반했다며 112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김헌기가 단호하게 말했다.

 

“112 신고에 나가면 안 되는 거지. 나가면 안 되는 거야. 이게...”

 

김헌기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란법의 약점은 국민들의 세세한 일상까지 법에 규정해버린 것이다. 선물부터 관혼상제. 일상생활과 밀접한 것을 법으로 규정했다. 그게 부패방지를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법에 의존하는 사회가 될수록 112 출동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또한 이건 현장에서 증거를 잡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도 쉽지 않다.”

 

김헌기는 김영란법 신고 관련 대응 방향은 서면 신고를 받는 것으로 정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경찰은 112 신고에 출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헌기는 일선 서에 부담을 줄이고 명확한 지침을 내리고자 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조현오 청장이 물러나면서 쫒겨났던 황운하는 그 해 여름, 경무관 6년 차에 기적같이 승진했다. 반면 김헌기는 원하던 보직과 멀어졌다. 수사연수원장으로 첫 부임하고 나서도 한동안 맥이 빠지고 마음이 우울했다.

 

어느 날 아침 9시 모르는 전화가 왔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을 고교 동창이라고 소개했다. 전화한 용건을 털어놨다.

 

“이웃집은 강아지 3마리를 키운다. 강아지는 다리가 짧고 험상궂게 생겼다. 자기 부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는데 충격을 받아 출근도 못했다.”

 

이 대목에서 그 고교 동창은 강아지 사진을 김헌기에게 보냈다.

 

 

납작한 얼굴을 가진 새까만 강아지였다. 김헌기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고교 동창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112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와서는 이건 경찰에서 할 수 없는 것이라며 돌아갔다. 부인이 무서워하고 스트레스받는데 어떻게 경찰이 안 해주냐”

 

김헌기는 가슴에서 열불이 확 올라왔다. 겨우 진정하고 공동주택에서 애완견 키우는 건은 경찰이 처리할 수 없다고 답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뭔가 찜찜했다. 꼼꼼하고 깔끔한 김헌기 방식이 아니었다. 김헌기는 인터넷을 검색해 고교 동창에게 오피스텔 관리회사 공동주택 관리규약과 대응법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시간이 흘러 해가 또 바뀌었다. 2018년 민갑룡은 새로운 경찰청장이 됐다. 조국 민정수석이 추천했다고 한다. 조국은 이미 2005년 민갑룡 경정이 수사구조개혁팀 근무할 당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알았던 사이다. 민갑룡은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있었다. 수사나 경비와 아닌 기획 계통으로 근무했고 지휘 경험이 없어 꼬투리 잡힐 게 그다지 없었다. 민갑룡 경찰청장 후보자는 무난하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경찰청은 연말이 되면 승진인사 발표한다. 경무관은 승진이 안 되면 6년째 그만둬야 한다. 2018년 송무빈 경무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아직 기간이 남았는데도 사의를 표명했을 때 누군가에게는 그 해를 기회로 여기고 은근히 기대했을 테다. 서로 가족처럼 생각해도 결국 한 명이라도 옷을 벗고 나가기를 바란다. 늘 승자는 소수다.

 

어느 날 김헌기는 전화를 받는다. 아끼던 본청 직원 J가 입원했다는 것이다.

 

김헌기는 본청에서 4년 동안 지능범죄 수사과장(현 수사과장), 강력범죄 수사과장(현 형사과장), 수사기획관으로 있으면서 많은 계장을 경험했다. 김헌기가 수사과장일 때 계장으로 오라 했던 W는 형사과 계장으로 도망갔지만 이듬해 김헌기가 강력범죄 수사과장(현 형사과장)으로 가서 다시 만났다. W는 뚝심이 있고 나이답지 않은 노련한 면이 있다. 결국 W는 형사과에서 총경 승진을 했다.

 

반면 J는 우직하게 일만 했다. 병세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그런데 입원하자니 인사를 앞두고 있어 주위 시선이 걸린 모양이었다. 승진에서 떨어지자 병이 더욱 깊어졌고 병원으로 실려 오게 됐다. 김헌기가 급히 병원을 찾아갔다. 병상에 누워 수혈하는 J를 보고 김헌기는 눈물을 흘렸다. 어느새 둘이 껴안고 엉엉 울었다.

 

“일만 시키고 내팽개치니까 조직이 원망스럽다.”

 

(다음 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김헌기를 알게 된 것은 2016년 7월 31일이다.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는 2012년 상황부터 설명해야겠다.

 


 

2012년 당시는 조현오 청장 시절이다. 김헌기는 본청 지능범죄수사과장(현재 수사과장)이었고 지능수사대를 지휘했다. 직속상관이 황운하 수사기획관이다.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신경전이 극에 달했다. 조현오 경찰청장도 나름 호전적인데, 수사기획관에 황운하까지 오면서 검찰 심기를 건드리는 행보가 이어졌다. ‘밀양 경찰 검사 고소 사건’이 출발이다.

 

이 사건은 젊은 경찰대 출신이 2011년 밀양경찰서 지능팀장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당시 지능팀장은 지역 폐기물업체 수사를 하고 있었다. 며칠 후 밀양지청 박 모 검사가 지능팀장을 불러 ‘수사의 정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능팀장은 반문했다.

 

"어떤 점에서 비정도입니까?"

 

검사는 흥분하면서 일어나 욕설을 했다. 지능팀장이 주장하는 검사 발언이다.

 

"이 새끼 너 정신 안 차려. 여기가 어딘 줄 알아? 계장님 이 새끼 피신(피의자신문조서)받으세요. 너거 서장 내 앞에 불러봐? 너거 과장 한 번 불러봐?"

 

검사 말이 다 끝나자 지능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고 나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굴욕감, 자괴감, 모멸감 같은 단어가 스쳤다.

 

사무실로 돌아와 앞으로 대처를 고민했다. 지능팀장은 경찰대 동문 게시판에 사연을 올리면서 검사를 고소할 계획을 밝혔다. 황운하에게도 면담을 요청했다.

 

경찰청은 검사 고소 사건 지휘를 김헌기 수사과장에게 맡겼다. 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배당해 경찰 소환 요구를 세 차례 거부한 박 모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체포영장을 기각했고 경찰 기소 의견도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경찰청 수사에 대응했다. 경찰청 수사 대부분은 특정 관할 사건이 아니다. 가령 조희팔 은닉 자금 추적 수사도 피해자가 전국에 걸친 전국단위 수사다. 조희팔은 3조 5000억 원대 다단계 사기사건 피의자로 2008년 중국에 밀항했다. 조희팔 주요 활동 무대는 대구였고, 대구에 조희팔 관련 수사가 집중됐다. 당시 범죄정보과는 대구에 사는 조희팔 측근이 자금을 은닉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보고를 받은 황운하는 대구지방경찰청이 아닌 경찰청 지능수사대에 수사를 지시했다. 조희팔을 수사했던 대구지역 경찰과 유착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조희팔 은닉 자금 추적 수사도 대구지검에 이송지휘를 내린다. 그렇게 되면 사건은 경찰청 지능수사대가 아닌 대구지방경찰청이 맡는다. 모든 수사는 수사관 의지로 결정된다.

 

김헌기 수사과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관을 대구지방청 수사계 소속으로 인사이동을 시켜 수사하게 한 것이다.

 

 

이때 수사관 X가 파견된다. 이런 과정은 공문으로 진행되므로 검찰도 파악 가능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이 신청하는 각종 통신 허가와 계좌추적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공문에 적인 발령 이유가 조희팔 은닉 재산 추적과 유착 경찰을 잡겠다는 명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 명분과 결과가 같을 보장은 없다.

 

당시 첩보에는 조희팔 측근이 거주하는 주소나 연락처가 없었다. 그래서 대구로 갔던 수사팀은 주변인 전화번호를 추적해 대포폰을 특정했다. 그 대포폰에 나오는 세탁소, 택시 번호를 추적해 다시 거주지인 아파트를 특정했다. 하지만 아파트를 압수 수색하니 첩보와 달리 살림이 빈곤했다. 대신 아파트를 뒤지면서 조희팔 사망을 알리는 간접증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찰청 지능수사대는 2012년 5월 조희팔 사망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발표는 디도스 수사 발표만큼 언론에 집중포화를 맞는다.

 

수사관 X는 처음 첩보와 다른 수사 결과가 나왔기에 김헌기 과장이 철수 지시를 내리길 바랐다. 하지만 김헌기는 사람이 죽어도 돈은 어디 있을 것이라며 은닉 자금 추적을 지시했다. 김헌기가 수사지휘를 끊임없이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 친구들에게 지시하면 진척이 나오니 시키지. 못하겠다, 안 되겠다 하면 어떻게 시켜. 기본적으로 수사 역량과 의지, 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봐.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수사관 X가 그런 게 대단해. 내가 시키지 않은 것도 현장에서 판단해 성과를 내더라고."

 

불법 다단계 업자들은 통상 차명계좌를 사용한다. 대구에서 수사팀은 계좌추적 영장을 수십 차례 받아내며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그리고 조희팔 오른팔인 강태용에게 받은 자금 일부가 김광준 차명계좌로 흘러간 것을 포착한다. 강태용은 이미 2008년 말 조희팔과 중국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대구로 파견된 지능수사대 수사팀은 끈질길 수사를 바탕으로 정제된 보고서를 완성했다. 이때까지  김헌기는 황운하에게 보고를 잘하지 않았다. 김헌기는 황운하와 달리 철저한 실무형이다. 황운하가 언론에 터트릴까 봐 수사 기밀은 극도로 신경 썼다.

 

하지만 결국 검찰은 이 사건을 가로챈다. 한상대 총장은 11월 9일 김수창 특임검사를 지명해 김광준 검사를 검찰에서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2011년 11월 19일 김광준은 구속됐다. 이튿날 11월 20일 황운하 또한  수사연수원장으로 날아갔다. 당시는 조현오 청장이 물러난 후였다. 조현오 청장처럼 호전적인 뒷배가 아니면 조자룡의 칼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김헌기는 계속 수사과장으로 남아 검찰 수사를 지켜봤다. 2012년 말에는 대선이 있었다. 대선 직전에 터진 부패 검사 사건 때문에 각 대선 후보 측에서 검찰개혁, 수사권 조정 공약들이 나왔다. 그렇게 이 사건은 잊혀갔다.

 


 

그 후로 4년 이 지났다.

 

2015년 12월 15일,  7년 동안 도피하던 강태용이 국내에 소환되면서 제2막이 올랐다. 2016년 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광준에게 편지를 받았다.

 

 

김광준은 법원에서 뇌물수수로 징역 7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 대구지검에서 조사받던 강태용이 김광준에게 돈을 빌려줬고 돌려받았다고 진술했다. 김광준은 편지에 2016년 1월 2일 자 강태용 피의자 신문 조서를 첨부했다. 뇌물이 아닌 새로운 증거라면서 재심을 원했다.

 

그러나 재심 신청이 어려운 시기였다. 2016년 검찰은 홍만표·진경준 사건으로 비난받는 시기다. 김광준에게 정공법을 권했다. 언론에 사죄하는 인터뷰를 하고 그래도 억울한 점이 있으니 재심을 요청하겠다고 하면 분위기가 훨씬 더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광준은 억울한 사정을 맞장구 칠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필자가 황운하를 섭외했을 때 김광준은 기절초풍했다.

 

 

2016년 황운하는 충남 아산에 있는 경찰대 교수부장이었다. 당시 <풍운아 황운하>를 집필하면서 그를 만났다. 황운하는 사무실에서 김광준이 보낸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당시 언론에 피의사실 공표를 했다며 황운하를 욕한 부분도 있었다.

 

황운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약해."

 

그래도 황운하는 ‘특임검사는 눈속임 쇼’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해줬다.

 

"김 전 검사가 특임검사를 통해 탈탈 털린 것은 맞다. 되는 것 안 되는 것 깡그리 탈탈 털렸다.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 인터넷 매체에는 김광준 편지 전문이 나가기도 했다. 김광준 처지에서는 자기 억울한 부분만 부각했을 것이다. 어느 날 한 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경찰청 김헌기 수사기획관에게 기사 항의 메일을 받았다며 내용도 보내줬다.

 

<이런 부정부패범 의견을 그대로 수용해 사실인양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에 큰 실망과 더불어 분노를 금치 못한다.>

 

수습하고자 나섰다. 만나기 전에 한 직원이 필자에게 귀띔해줬다.

 

“원래 에어컨에서 냉난방은 한 기계잖아요. 김헌기 씨는 냉방은 잘 되는데 난방이 잘 안 돼요.”

 

처음 김헌기 수사기획관을 만난 날, 꼬장꼬장한 황새 아우라가 그대로 느껴졌다.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눈빛에서 드러나는 분노가 얼굴 전체로 출렁이며 퍼졌다. 김헌기는 파렴치한 부정부패사범이라는 구체적 근거들은 수사사항이라 말할 수 없다며 답답해했다. 필자는 김광준 인터뷰가 경찰에게 유리했다는 점을 들어 다독였다.

 

김광준은 그해 재심청구를 했으나 기각됐다. 당시 김헌기는 끝까지 항의했고 기사에 자신의 주장을 반영시켰다.

 


 

정권이 바뀌고 김헌기는 2018년 인천지방경찰청 3부장으로 재직했다 3부장은 크게 정보과와 보안과를 아우른다. 이 시기 김헌기는 난방 기능을 향상하려고 애썼다. 직원들을 기쁘게 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은 인천3부장실을 방문했는데 김헌기는 책상에서 직원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2018년 12월 1일, <노컷뉴스>에 기사가 뜬다.

 

"1천만 원 인출 시 경찰 출동"... 사생활 침해 논란

 

각 은행은 경찰과 업무협약이 돼 있다. 고객이 찾아와 1000만 원 이상 현금으로 인출하면 은행 직원은 무조건 112 신고를 한다. 신고를 접수하면 즉시 경찰이 긴급 출동해 현장에서 휴대전화 통화 내용 등을 살펴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범죄 연관성을 확인한다. 김헌기가 기사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딱 하나다.

 

'이 지침은 2016년 3월부터 이어졌다'

 

김헌기가 착안해서 전국으로 뿌리내린 이 제도를 겨냥해 기사는 '사생활 침해'를 지적하며 경찰 내부 의견을 인용한다. 분노 지수가 최고치를 경신한 김헌기는 계장에게 바로 지시한다.

 

"내가 글을 써야 하니까 통계 좀 갖다 줘!"

 

한해 총 1854건, 피해액 200억 원이 넘는 인천지역 통계를 바탕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보이스피싱 피해의 심각성을 알면 사생활 침해 운운하지 못한다'

 

김헌기는 페이스북 글을 복사해서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 제3화. 미스터 계장들)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나는 <구겨진 제복>(조현오), <풍운아 황운하>(황운하)에 이어 다시 경찰 한 명을 만난다. 주인공 이름은 김헌기다. 황운하와 김헌기는 경찰대 선후배 사이다. 2011년 조현오 경찰청장 시절 김헌기는 지능범죄 수사과장이었고 황운하 수사기획관은 직속 상사였다.

 

황운하는 자신이 ‘검경수사권 역사’라고 자부할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황운하 활약은 여러 차례 언론이 다뤘으며 숱하게 화제가 됐다. 반면 김헌기는 철저한 실무형이다. 나는 김헌기 수사 인생을 담은 매뉴얼을 만들어 후배 경찰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2020년 1월 13일 국회는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처리했다. 경찰 수사 재량이 더 확대했다. 그 후 경찰청은 ‘수사 역량 강화’를 목표로 많은 정책을 내놓았다. 특히 실무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을 키워야 했다. 이 글은 앞으로 경찰이 당면한 과제, 수사역량 상향평준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유능한 선배 인생에서 자극을 받는 것도 하나의 동기부여가 된다. 물론 이러한 대의명분이 이 글을 쓰게 된 유일한 원동력은 아니다.

 

 

필자가 취재를 시작한 시기는 2006년이다. 노래방 사장들 피해 사례를 블로그에 올린 게 출발점이다. 손님이 노래방에 몰래 술을 가지고 와서 마시다가 적발돼도 업주가 처벌받는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법 사각을 노린 부작용이 생긴다. 노래방을 골라 돈을 뜯고 무전취식하는 사람, 자기가 소개하는 도우미를 쓰지 않는다고 신고하는 사람도 있다. 노래방 업주는 도우미를 쓰는 위법행위 때문에 금품을 갈취당해도 신고를 꺼렸다.

 

이런 상황을 언론에 제보해도 보도하는 매체는 많지 않았다. 노래방 사장들은 블로그를 기반으로 취재 활동을 했던 나에게 연락했다. 뜻있는 노래방 사장들은 법 개정만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고 자비를 털어 신문을 창간했다. 하지만 유흥주점 로비를 뚫고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몇 년 후 이 문제를 해결한 이가 김헌기다.

 

김헌기는 2014년 본청 강력과장이 되자 신고 활성화를 위해 노래방 업주는 처벌을 면해주는 ‘피해자 면책제도’를 만들었다. 강신명 경찰청장이 취임하고 ‘동네 조폭 특별단속기간’을 정해 동네 조폭들을 입건했다.

 

지금 생각해도 경찰이 진작 해결했어야 할 일이다. 경찰이라면 누구나 민생범죄 문제를 고민해야 하고 해결하는 게 당연하다. 특별히 칭송받을 일까지는 아니다. 필자가 김헌기를 취재하기 시작한 시기는 그가 2018년 인천지방경찰청 3부장으로 재직할 때다.

 


 

3부장은 크게 정보과와 보안과를 아우른다. 그런데 얼마 후 112 상황실을 관리하는 2부장 소관에서 사건이 터진다. 인천 송도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입구에서 한 여성이 고급 승용차를 세워놓고 가로막는 일이 벌어졌다. 아파트 주차위반 단속에 항의하겠다고 다른 차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당연히 112 신고가 접수됐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은 몇 시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사유지라 주차위반 단속도 아니고 견인대상도 아니지요. 차량 압수는 재산권 침해 때문에 어렵고요.”

 

그러자 주민들이 차주를 비난하는 내용을 적은 포스트잇을 차량에 닥지닥지 붙이기 시작했다.

 

▲ YTN뉴스 방송 캡쳐

 

주민들은 합심하여 차량을 옆으로 옮겨 놨다. 이 사건은 외국까지 크게 대서특필됐다. 김헌기는 이 사건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 경찰관들을 지휘하는 체계가 있다. 경찰서 112 상황실과 상급기관인 지방경찰청 상황실 조직으로 올라간다. 김헌기는 지방청 회의에서 시스템 문제를 지적했다.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상황에서 현장 경찰에게 뭔가 지침을 줘야 할 거 아닙니까. 선제적으로 지원을 해줘야지, 경찰 조직이 이래서 되겠습니까. 경찰서와 지방청 조직은 대체 뭐하는 조직이냐 이거지요.”

 

112 상황실은 김헌기 소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칠 수도 없었다. 이듬해 2019년 봄, 계속해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참모로 내정됐다. 다행스럽게도 2부장이었다. 김헌기는 여기로 오자마자 112 코칭 시스템을 바로 시행했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다양한 현장을 접한다. 거기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애매하면 종합상황실에서 코칭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전국으로 확대될 것을 확신했다.

 

사명감과 열정이 돋보이는 사례다. 물론 이 정도 소명의식은 다른 경찰 간부에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김헌기와 다른 경찰들 사이 차이가 더 명확하게 보인다. 그 차이가 ‘김헌기 수사 인생 매뉴얼’을 만든 결정적인 계기다. 이런 경험이 있었다.

 


 

2020년 봄, 대학병원 주차장에서 후진 중에 뒤 차량 번호판을 툭 건드렸다. 뒤에 있는 차량 운전자 상태를 확인했다. 운전자는 중년 여성이었는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안전벨트를 매서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데 차량 엔진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보험회사에 전화해 달라.”

 

보험회사 직원을 기다리는 동안 중년 여성은 이렇게 뒤로 차를 치면 차 엔진이 망가진다고 했다. 그 주장을 그냥 듣기만 했다. 도착한 보험회사 직원이 차 엔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해주고 사건 접수는 취소됐다.

 

보험회사 직원이 떠나자 운전자는 다시 차량 문짝이 이상하다며 고쳐야겠다고 주장했다. 보험회사는 다시 그 여성에게 전화해 차 구조상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운전자는 공업사에 가서 차량 점검을 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흘이 지났다.

 

운전자에게 전화가 왔다. 차량 이야기는 전혀 없이 목이 너무 아파 엑스레이를 찍어야겠다며 보험회사에 대인 접수를 부탁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교통과 경찰에게 상담을 청했다. 대부분 의견은 같았다. ‘똥 밟은 셈 치라’는 것이다.

 

한 경찰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 도로에서 차량 접촉으로 상대에게 20만 원가량 차량 수선비를 물어줬는데 병원비로 350만 원을 청구했다며 누구인지도 말해줬다.

 

“우리 위층에 사는 여자야!”

 

내가 사는 지역 관할 서장은 경찰청(본청) 교통과에서 총경 승진을 했다. 그는 내가 주인이고 보험회사가 종이라며 주인이 종을 부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너 대리인이 누구야? 이런 일 하라고 비싼 보험 드는 것 아니야? 물론 너 보험료 약간은 올라가겠지만 보험회사 보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 너 그 여자 또 만날래?”

 

대다수 의견을 받아들여 대인접수를 했지만 찝찝했다. 2006년에 만난 노래방 업주도 금품갈취를 당하는 현실을 하소연하고 싶어서 나에게 취재를 요청했을 테다. 김헌기에게 전화했다. 사고 상황을 설명하니 며칠 전 인천 골목길 사고를 이야기해줬다.

 

한 운전자가 운전 중 차량 사이드미러에 부딪혔다. 상대방 차량 운전자는 현장에서는 괜찮다고 했다가 나중에 뺑소니 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나보다 더 나쁜 상황을 접하면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김헌기는 이야기를 끝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 교통사고 악성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대비책! 그래서 국민이 교통사고 악성 피해자에게 시달리지 않게 내가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 교통사고 악성 피해자가 억지 주장할 때 경찰 대처를 보니 믿음이 간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겠네. 좋은 아이디어네. 오케이!”

 

가능성이 있는 계획일까?

 

“쉬운 것은 누구나 다 하지. 이건 기준이 모호하니까 잘 만들어야지. 나는 내가 백 프로 하려고 안 해요. 내가 시작의 반이야. 항상 그런 생각을 하지.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아. 난 그런 능력 없어.”

 

김헌기는 담당 계장에게 교통사고 악성 피해자를 걸러내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그에게 받은 문자 메시지다.

 

‘인천에서 시작해보겠다. 나이롱 교통사고 피해자를 거르는 장치를 마련하겠다. 이런 나이롱 교통사고 피해자가 설치지 않도록 고민 또 고민해보겠다’

 

순간 영화 <와일드카드>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교통사고 악성 피해자들이 아무리 쇼하듯 뒹굴어도 김헌기 앞에서는 어림없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고 북쪽에는 60만 대군이 버티고 서있다.

 

(다음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풍운아 황운하>는 제가 2018년에 쓴 연재물입니다.

 

 

 

 

법을 아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법 위에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배우 박중훈이 주연을 맡은 OCN 방영 드라마 <나쁜 녀석들-악의 도시>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이 사회 법 위에 있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악행들을 펼쳐 보입니다.

 

처음에는 돈 많은 기업인인가 싶더니 권력과 부에 미친 검찰 지검장 악행이 드러나지요. 이들이 구속되자 착한 권력으로 보이는 새 지검장이 들어섭니다. 그다음 ‘나쁜 녀석들’로 강력계 형사들이 급부상하지만 이 역시 검찰 조직이 뒤를 봐줬다는 게 드러납니다. 결국 착한 권력으로 생각했던 새로운 지검장도 ‘조직 보호’ 논리 앞에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국정원과 검찰 권력 견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검찰 조직도 인사 물갈이가 이뤄졌습니다.

 

드라마 <나쁜 녀석들>은 검사장 한 명 바뀐다고 해서 썩을 대로 썩은 검찰 조직 개혁이 쉽게 이뤄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한 가지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면 된다고 합니다.

 

경찰 수뇌부가 보기에 통제가 안 되는 아주 ‘나쁜 녀석’이 이런 주장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바로 경찰 황운하입니다. 상대가 악이라고 생각하면, 발언 수위가 자기 상사든 대통령이든 거침이 없습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경찰 수사권 독립 역사와 궤를 같이 한 이 인물을 눈여겨보고 취재했습니다.

 

이 연재는 경찰 황운하(현 울산경찰청장)의 인생을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형>

 

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

•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

•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

•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2012년 말 경찰과 검찰이 첨예하게 맞붙은 사건이 있었다. 이를 두고 한 기자는 유사 이래 경찰이 검찰에게 날린 최고 ‘빅엿’이라는 표현을 썼다. 바로 ‘김광준 검사’ 사건이다.

 

수조 원 단위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이 숨긴 자금을 추적하던 경찰은 자금 일부가 검찰 특수부 출신 검사 김광준이 만든 차명계좌로 흘러간 단서를 포착했다. 경찰은 디데이를 정하고 김광준 차명계좌 관련자를 전원 조사하고자 전국으로 흩어졌다. 이 가운데 차명계좌 주소지 조사를 위해 한 지역에 모인 경찰들은 주변 장소가 무척 낯익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 어디서 봤던 데 아냐?”

 

그곳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 촬영 장소였다. 영화는 1996년 인천서부경찰서 형사들 활약을 소재로 했다. 1980~1990년대 수사는 잠복과 탐문에 의존했다. CCTV나 블랙박스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여죄를 밝히는 과정에서 영화처럼 용의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주연 배우 박중훈은 당시 인천서부경찰서 형사 박재인이 하는 말과 행동을 따라 했다.

 

“눈에 힘 빼.”, “맞았다고 변호사 대. 그런 거 무서우면 형사 안 해.”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고 자란 세대 일부가 직업으로 경찰을 선택했다. 그리고 2012년 경찰 수사에서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청 지능수사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낸 최대 결과물이 ‘김광준 사건’이다.

 

여기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김광준 사건을 관통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경찰 황운하다. 영화 배경인 1996년 당시 인천서부서 형사과장을 지냈으며 2012년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김광준 사건을 지휘하기도 했다.

 

‘검찰 저격수’, ‘싸움닭’, 이라는 황운하를 수식하는 말처럼 그는 상명하복 관계로 인식됐던 검찰과 부딪히는 상황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2011년 경찰은 조희팔 계좌추적을 하다가 어떤 최〇〇씨 계좌를 발견했다. 하지만 은행 CCTV를 통해서 그 계좌를 이용한 사람은 최〇〇씨가 아니라 김광준 검사임을 확인한다.

 

경찰은 조용히 그 차명계좌에 입금한 사람들을 조사했고 정제된 보고서를 완성했다. 주 타깃은 김광준 검사였는데 황운하 수사기획관이 뒤를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검찰이 눈치채고, 김광준 사건을 자신들이 수사하겠다고 나서자, 경찰은 사건 빼앗기라며 반발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경찰 수뇌부는 황운하를 수사연수원장으로 보낸다. 이후 검찰이 사건을 가져가 김광준 검사를 기소했고 법원에서 뇌물수수로 징역 7년형을 받았다.

 

2012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그 후로 황운하는 수사 부서를 맡진 않았지만 언론 노출이 잦았다. 박근혜 정권 들어 무너진 경찰 인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렇게 튀는 언행으로는 아예 승진이 물 건너간다는 주변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 못한 박근혜 탄핵 후,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황운하는 치안감 승진을 하며 새롭게 비상을 했다.

 

이렇게 거칠 것이 없기에, 황운하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관심은 황운하 입을 향했다. 정작 인간 황운하, 경찰 황운하를 향한 접근은 없었다. 그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황운하가 드러낸 언행이 경찰 조직에 발전을 가져왔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건, 검찰 권력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으려는 일관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저항이 가능했던 것은 황운하에게 흐르는 반골기질 때문이라 본다.

 

필자는 이런 기질이 어디서 시작하여 촉발됐는지 궁금했다. 이야기는 경찰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황운하가 겪은 삶부터 시작한다.

 

황운하는 196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와 정착했다. 황운하는 아버지가 경로당에서 다른 노인과 신념 문제로 자주 부딪혔다고 기억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고집만 세운다며 나무라곤 했다. 어머니는 슬기로운 분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고등학생 황운하는 우등생이었다. 황운하는 서울 명문대에 입학해 과외를 하면서 학비를 벌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이상한 지점에서 틀어졌다. 1980년 전두환은 과외를 금지하는 ‘730 교육개혁 조치’를 단행한다. 서울 명문대에 다니겠다는 꿈은 꺾였고 다른 대학보다 차라리 경찰대 입학이 낫다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경찰이 되면 뭔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황운하는 1985년 경찰에 입문해 소대장, 중대장, 부대장을 지냈다. 경찰은 계급에 따라 일정 기간 돌아가며 집회·시위를 담당하는 기동대장, 중대장·소대장을 맡는다. 이 시기를 함께 했던 직원들은 황운하가 부하 직원을 잘 포용하는 상관이었다고 기억했다. 한 후배는 술에 취해 황운하가 사는 자취방을 찾아갔던 일화를 들려줬다.

 

“한참 자다가 배가 고파 깼는데 냉장고에 얼린 떡이 있더라고요. 녹여서 먹으려고 프라이팬에 떡을 놓고 식용유를 두른다는 게 그만 꿀을 부었지요. 떡은 탔고 술에 취해서 그냥 그대로 잤어요.”

 

 

 

타는 냄새에 잠을 깬 황운하는 뒤처리를 해놓고도 전혀 후배를 나무라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아량 넓은 어머니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황운하 특징으로 ‘배포’를 기억하는 직원도 있었다. 1989년 황운하가 종암경찰서 파출소장 시절이다. 관내 시장에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한 정육점 주인이 칼과 칼갈이를 들고 소동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파출소 직원 두 명과 의경 등 세 명이 출동했다.

 

현장에서 정육점 주인은 칼과 칼보다 더 긴 칼갈이를 들고 시장 포목점에서 천을 자르며 난동을 피웠다. 출동한 파출소 직원이 정육점 주인을 향해 가스총을 쐈다. 하지만, 정육점 주인은 순간적으로 피했고 반대쪽에 있던 다른 파출소 직원이 가스를 맞았다.

 

 

경찰 한 명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른 한 명을 현장을 장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황운하가 도착했다. 황운하는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흥분한 정육점 주인이 소리쳤다.

 

“당신 누구야?”

 

“내가 여기 장암파출소 소장 황운하다. 대화를 하자."

 

황운하는 거리를 두고 정육점 주인을 설득했다. 결국 황운하는 정육점 주인에게 수갑을 채웠다. 이렇듯 황운하와 함께 했던 직원들은 그를 가리켜 이 ‘포용력’과 ‘배포’를 가진 덕장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다른 증언은 전혀 뜻밖에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경찰이라는 계급 조직에서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1993년 대통령 김영삼이 당선 직후 서울 신당동에 있는 중대를 방문했을 때 일화다. 당시 이 현장에 있었던 한 직원은 이렇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기동대는 대통령 맞이 예행연습을 했지요. 황운하 중대장이 맨 앞에 서 있었고, 대통령이 악수를 하면 각자 신고를 하는 연습이었습니다. 기동본부장이 대통령 역할을 했지요. 악수를 하던 기동본부장은 황운하 중대장에게 시계를 풀라고 했어요. 당시는 경찰이 부정부패 이미지 때문에 고급 차를 몰거나 고급 시계를 못 차는 분위기였거든요. 황운하는 롤렉스를 차고 있었어요.”

 

기동본부장이 시계를 가리키며 지시했다.

 

“빼.”

 

황운하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뺄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기동본부장은 단호했다.

 

“무슨 소리 하고 있어? 경찰관이 롤렉스를 차면 안 되는 거 몰라? 빼!”

 

황운하는 조근조근 다시 설명했다.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이튿날 다시 예행연습이 반복됐다. 기동본부장은 여전히 황운하 손목에 있는 시계를 발견했다.

 

“어제 빼라고 했는데?”

 

이 일화를 전한 이는 황운하가 그때도 다시 조근조근 말대꾸를 했다고 기억했다. 이후 기동본부장은 전체 지휘관 회의에서 황운하를 겨냥해 거칠게 비난하기도 했다.

 

황운하는 왜 그랬을까? 황운하는 기동대 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경찰이 집회·시위 현장에 과잉 동원되는 게 자존심 상했다. 직업 경찰에게 동원 수당을 준다면 저렇게 작전을 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외부 위문·격려 물품이 경비 계통에 들어오는 것도 못마땅했다. 경찰이 거지도 아닌데 왜 위문을 받고 라면과 빵을 받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없어 보이는 경찰이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황운하는 당시 매형이 하고 있던 롤렉스 시계를 달라고 하여 손목에 차고 다녔던 것이다.

 

1985년 경찰이 된 황운하는 1995년 경찰서 과장(경정)으로 승진하기까지 13년 동안 썩 바라지 않는 보직을 거쳤다. 종암경찰서 형사 반장, 대전동부경찰서 형사계장 경험으로 서울에서도 거악과 맞설 수 있는 형사계장으로 가고 싶다고 편지도 썼으나 소용없었다.

 

이 시기 직원들이 보기에 황운하는 고집이 셀뿐 평범했다. 당시 직원들이 기억하는 ‘황고집’은 주로 인사에서 발휘됐다. 19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경찰서 계장 자리는 여러 경로로 뇌물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좋았다. 경찰서 인사는 서장이 지시해도 해당 부서 과장이 승인해야 한다. 1995년 황운하는 서장이 추천한 직원을 부패하다는 평이 있다며 거절했다.

 

거절 직후 주말에 황운하는 직원들과 치악산에 놀러 갔다. 서울에서 치악산까지 가는 길에 휴대전화가 내내 울렸지만 황운하는 서장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다. 이러한 황운하의 자존심이 고집과 결합하면서 상사를 애먹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질들은 수사를 만나며 황운하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황운하는 1995년 경정으로 승진한 후, 인천서부경찰서(1996년)를 서울 중랑경찰서(1998년), 성동경찰서(1999년), 마포경찰서(2000년), 용산경찰서(2001~2003년), 강남경찰서(2003년)를 돌며 형사과장을 지냈다.

 

황운하가 경찰 수사권 아이콘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성동경찰서 형사과장 이후다.

 

당시 형사들은 형사과장에게 자기 반에 형사 한 명 더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다른 인원이 없어 쩔쩔매는데 형사들은 검찰에 파견 나가서 검찰 수사를 돕고 있었다. 황운하는 이 시기에 검찰 파견 경찰을 모두 철수시킨다. 고집과 배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1996년부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전면 철수가 아니라 실력 있는 형사를 반드시 복귀시키는 정도였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배우 박중훈이 연기한 형사 박재인도 당시 인천검찰청에 파견됐는데 황운하가 인천서부경찰서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해 ‘김포토박이파’를 검거하는 쾌거를 거둔다. 당시 관내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행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가 이미 수배를 내린 김포토박이파 소속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또 감청을 통해 용의자가 한 호텔 지하 룸살롱에 있다는 정보도 입수한다. 황운하는 형사들과 룸살롱을 급습했다.

 

“다들 벽을 향해 돌아서!”

 

한 명이라도 뻣뻣하게 나오면 바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경찰서에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형사 반장이 과장실로 황급하게 들어왔다.

 

“잘못 데려왔는데요.”

 

반장은 지금 데려온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난리를 치고 있다는 보고도 했다. 형사들도 상황을 수습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황운하는 씩씩거리는 20대들을 모두 과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다짜고짜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벌써 룸살롱에서 술이나 처먹고 다녀? 부모님들에게 연락해서 무슨 돈으로 술 먹었는지 다 조사해야겠다!”

 

그들은 더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당시 황운하에게 상황을 보고했던 반장은 어느덧 노인이 됐지만 경험도 적고 나이도 어렸던 과장 황운하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당시 인천서부경찰서 형사들은 ‘파주 용주골 사건’을 가장 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황운하가 전 형사들을 동원해 다른 관할지인 파주에 있는 집창촌 용주골을 쓸어버린 사건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 )

 

 


 

 

서형작가 다른 연재물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

sweet-scent.tistory.com

서형작가 다른 연재물 ☞ 구겨진 제복

 

구겨진 제복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조현오 전 청장(이하 호칭 생략)은 차명계좌 발언으로 많은 사람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겼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출소 후 2014년

sweet-scent.tistory.com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