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제복 18화. 대통령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경호는 어디서 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대통령 경호실이 떠오른다. 그러나 경호 개념이 처음 나온 것은 1949년 내무부 훈령 제25조(경호 규정)다. 1945년 해방 이후 경호는 내무부 직속기관이었던 경찰 몫이었다. 청와대 경비와 대통령 경호 업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경호실을 만든다. 대통령 직속 경호실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나라에나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하지만 경호실은 미국도 우리와 비슷하지 않으냐고 주장했다.

 

과연 미국이 한국 경호실과 닮은 경우일까? 미국 예를 살펴보자. 미국 대통령 경호는 미연방 보안업무(United States Secret Service)가 맡는다. USSS는 원래 대통령 직속 조직이 아니었다. 19세기 남북전쟁 때 주마다 화폐가 달라 위조지폐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했다. 화폐 위조범을 잡는 연방경찰 필요성은 점점 높아졌다. USSS는 위조지폐를 단속하고자 1865년 재무부 산하에 만든 조직이다. 그리고 1901년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대통령 경호 업무를 맡게 된다.

 

 

 

USSS는 수사와 경호를 겸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이전에 경호팀은 수사로 돌아가고 다시 경호팀을 꾸리는 구조다. 경호 업무는 정권과 함께 순환한다. 클린턴을 경호했던 사람이 부시에게 고자질할 가능성을 굳이 남길 이유가 없다.

 

또 순환하지 않는 조직에는 기득권이 생긴다. 경호실장이 업무 영역을 넘어 권력 구조에서 정점이 될 수도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차지철이 대표적인 경우다. 정권 이인자로 군림해 군과 경찰 인사에 개입하고 국회까지 친위세력을 심어 정권을 농단하다 비극을 불렀다.

 

최근 사례를 보자. 대통령 퇴임 후 거주할 사저를 사들이는 것은 대통령 비서실 업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는 경호처장인 김인종이 사저 매입 업무를 도맡았다. 경호처장 힘이 정점을 찍었던 셈이다.

 

미국경호팀 현장근무요원은 45세 이상이 없다. 그런데 한국은 다른 방향으로 나갔다. 2000년 김대중 정권 시절 경호실법 개정으로 경호실 직원 정년이 보장된다. 그러자 내부적으로 인사적체와 고령화 문제가 불거졌다. 젊은 인재를 뽑으려면 조직 확대가 필요하다. 조직이 확대되려면 업무가 그만큼 늘어야 했다. 마침 기회가 왔다. 2006년 5월 20일 한나라당 대표인 박근혜가 선거 유세 중 피습을 당했다. 국회는 여야 없이 '중요 정치인'도 경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대통령을 제외한 인사 경호는 경찰이 담당했다. 전국 지방청과 경찰서 인력을 활용하고, 경호 행사는 관할 서장이 책임지고, 서 단위를 넘는 경비는 지방청 경비과장이 지원한다. 경찰청 경호과장은 지방청과 경찰서 사이에서 조율과 협력을 맡는다.

 

그런데 대통령 경호실법을 고쳐서 대통경 경호실이 대통령선거 후보, 국무총리, 국가 주요 인사에 대한 경호를 맡도록 법안 개정 검토에 들어간 것이다.

 

관심은 대선 주자 경호 주체에 쏠렸다. 한나라당 의원인 김정훈이 발의한 '요인 경호법'에서 경호 주체는 경찰이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의원인 강성종은 '대통령 경호실법 개정안'으로 대통령 경호실 편을 들었다. 이러면 경찰과 경호실 관계는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관계가 되는 것이다. 외국에서 수상이 한국에 오면 경찰은 경호실을 뒷바라지하는 모양새였다. 경찰은 울화통이 터졌으나 경호실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경호실은 경찰청 경비국 인사에도 개입했다.

 


 

2006년 12월 4일 조현오가 경비국장으로 취임한다. 현재 경찰청 경비국은 경비과, 경호과, 항공과와 대테러 업무를 다루는 위기관리센터로 나뉜다. 그중 경호실은 경호과장 인사에 개입하고자 했다. 조현오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이 상황을 경호실과 갈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인사 개입 자체가 부당한 것이었다. 조현오는 경호실, 검찰뿐 아니라 국가정보원과도 부딪혔다.

 

2010년 12월 평창동계올림픽유치단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대회 유치 신청서를 냈다. 신청서에는 행사 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담겼다. 안전관리 통제본부를 설치하고 안전대책위원회 위원장과 본부장은 국무총리와 경찰청장이 맡도록 했다.

 

보통 안전 문제는 경찰 조직이 컨트롤타워를 맡는 게 국제적인 관례였다. 테러가 발생하면 상황을 통제하고 폭발물을 처리하는 현장 조치는 기본적으로 경찰이 책임진다. 아울러 경비, 교통 관리, 화재 예방, 재난·재해 발생 시 구조·구급 활동까지 경찰 업무에 들어간다.

 

하지만 국정원은 '북한 위협'과 '테러 방지'를 앞세워 자기 조직이 총괄하겠다고 나섰다. 법적으로 대테러 업무를 맡는 기관은 국정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러에 예민한 미국도 중앙정보국(CIA)이 국제경기대회 안전을 총괄하지는 않는다. 조현오는 이렇게 반발했다.

 

"그런 식으로 경찰 지휘하려고 하지 말고 경찰을 내줄 테니 가져가라."

 

국정원이 '북한 위협'이나 '테러'에 별로 반응하지 않던 때도 있었다. 2007년 말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이명박, 민주당 후보는 정동영이었다. 북한은 방송으로 보수 꼴통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여러 번 전했다. 북한은 오직 이명박만 공격했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북한은 이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에게 늘 이런 공격을 했다. 북한이 선거에 개입하려면 어떤 방법을 쓸까.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쟁이 있겠지만 이는 군대가 맡을 영역이다. 폭발물 테러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 방법에는 극소수 인원이 동원될 것이다. 조현오가 또 나섰다.

 

 

조현오는 대선 후보 경호인력을 늘렸고 경찰특공대도 투입했다. 또 선거 유세 장소 외곽 건물 옥상에는 저격수를 배치했다. 북한을 향한 위용 과시 목적으로 장갑차를 배치하기도 했다.

 


 

대통령 당선자는 이명박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경호실을 차관급인 경호처로 낮췄다. 2013년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경호처장을 장관급인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승격했다.

 

2014년 제정한 '평창겨울올림픽 지원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은 안전 총괄자가 국정원장으로 돼 있다.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안전 관리 주체는 국정원이다. 경찰은 국정원 지휘에 따라야 한다.

 


 

조직에서 권한과 자긍심은 비례한다. 조현오는 어릴 적부터 경찰을 동경했고, 잘 나가던 외무부 생활을 접고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경찰 구성원도 조현오만큼 경찰 조직원으로서 자긍심이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경찰로 살기에는 여러 가지 환경이 열악했다.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되고 시간 외 수당, 수사비 등을 정비해 제대로 된 환경을 갖춰주고자 했다.

 

성과를 외부에 선전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장자연 사건 수사는 경찰이 완벽하게 해냈고 쌍용차 진압 작전도 경찰이 변수 없이 잘했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은 국민정서와 멀었다. 장자연 사건은 장자연 사망으로 경찰 수사 한계를 인정해야 했고 쌍용차 진압 작전도 경찰특공대에게 몽둥이 세례를 당한 해고 노동자에게 유감을 표하며 고개 숙여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거론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비판도 일었다.

 

공권력을 향한 국민정서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다. 집회가 불법사태로 번지면 경찰은 진압할 수밖에 없다. 경찰 진압을 충돌이라고 하고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미법계에서는 없는 일이다. 영미법계는 공권력이 무척 센 편이며 법에 대한 도전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대륙법계는 상대적으로 공권력이 약하다. 그렇더라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 시위는 강도가 약한 편이다. 2011년 유럽에서 시위 현장을 목격한 한 경찰은 프랑스 시위 강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했다. 우리처럼 조직적이지는 않지만 경찰에게 돌을 던지거나 시위 현장에 총기가 등장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2005년 프랑스에서는 이민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전국적으로 소요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시위자들은 자동차와 공공건물에 불을 지르고 경찰을 공격하기도 했다. 당시 내무부장관인 사르코지는 강경하게 대처했다. 진압 과정에서 최루탄을 발사했고 경찰 진압도 적극적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불거지는 경찰을 향한 비판 역시 우리와 비슷하다. 법 준수보다 부당한 공권력에 맞서는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 시민을 때리는 것보다 시민이 경찰을 때리는 게 훨씬 건강한 사회 아닌가요? 인권이 진전된 것이지요."

 

하지만 경찰을 지휘하는 조현오 생각은 달랐다. 그는 두 가지를 항상 강조했다. 공권력이 절대 밀리면 안 되고 경찰과 시민 모두 다쳐서도 안 된다고 말이다.

 


 

2007년 경비국장이던 조현오는 경비과장으로 장전배를 요청한다. 장전배는 조현오가 부산동부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있을 때 같은 경찰서에서 경비과장을 했다. 일을 다부지게 잘했고 추진력이 좋았다. 장전배는 2010년 치안감 승진 명단에도 포함됐다.

 

조현오는 장전배에게 2008년부터 신형 진압복을 보급하도록 지시한다. 신형 진압복은 프랑스 경찰관 기동대 보호복을 참고했다. 두께가 4밀리미터인 플라스틱 보호대를 두꺼운 섬유로 옷처럼 이어 붙여서 가슴, 어깨, 팔, 무릎을 보호하도록 한 것이다. 가슴 보호대는 칼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견고했다.

 

그전까지 경찰이 입었던 것은 대나무 진압복이었다. 두꺼운 솜옷 사이에 대나무 조각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이 진압복을 입은 경찰은 모양새는 둘째 치고 쇠 파이프를 견딜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조현오도 경찰이 되고 이 대나무 진압복을 입었다.

 


 

1997년 5월 31일 한양대에서 한총련 사태가 벌어졌다. 출범식에 참가하려는 학생이 전날부터 전국에서 모였다. 경비를 담당할 경찰 중대(부대)도 전국에서 모였다. 전의경 중대 인원은 150명 정도였다. 각 중대는 경감이 통솔했고 3~4개 중대를 격대장이 맡았다. 조현오는 격대장이었다.

 

경찰은 한양대 주변에 전의경 53개 중대 6400여 명을 배치해 학생 출입을 차단했다. 학생들은 출입을 막는 경찰에게 화염병과 돌을 던지고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포위된 부대도 있었다. 조현오가 한양대 전철역에 고립된 부대를 구출하라고 지시했다. 조현오는 부대원들에게 이렇게 외치며 앞장섰다.

 

“나를 따르라!”

 

전철역사 사방에서 화염병과 돌이 날라 왔다. 목적지에 도착한 조현오가 뒤를 돌아보자 끝까지 따라온 이들이 없었다.

 

 

 

경찰서에 돌아온 조현오는 진압복을 하나씩 벗었다.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2005년 경찰청장인 허준영은 경찰 직원을 유럽에 보냈다. 프랑스 경찰관 기동대 보호복은 접한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보호복을 입고 맞았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보호복은 ‘로보캅’ 그 자체였다.

 

 

(다음 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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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한 참여정부 인사는 경찰청장 시절 조현오 행동을 ‘또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011년 7월 21일 조현오가 해군기지 경비 문제로 제주를 방문했다. 조현오는 강정마을 관내 서귀포경찰서를 방문해 제주 해군기지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단호한 대응을 지시했다. 당연히 MB 눈에 들려는 행동으로 해석됐다.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고 노무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도 마찬가지다.

 

조현오는 언제부터 정치적 행보에 능했을까. ‘불법행위 엄단’ 발언은 울산남부서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관용차량을 의경이 운전했는데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다. 조현오는 비상 상황이 아니라면 교통법규를 철저하게 지킬 것을 주문했다. 지시를 어기면 법규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2006년 12월 1일 경비국장으로 승진하면서 이 같은 특징은 도드라진다. 당시 한미FTA 집회를 비롯해 각종 시위가 줄을 이었다. 조현오는 집회 현장에서 불법행위자 검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보고를 접한다. 조현오는 실무자를 다그쳤다.

 

“왜 법대로 안 하느냐?”

“그렇게 못합니다.”

 

“왜 못하냐?”

“시위대와 경찰이 엉키면 사고가 납니다.”

 

“왜 사고가 나냐?”

“집회·시위 관리를 전·의경이 하다 보니 그렇습니다.”

 

집회·시위는 사회적 갈등이 폭발해서 생긴다. 그동안 집회·시위 관리 주체는 20대 초반인 전·의경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치한 전의경을 국가 권력으로 보고 공격적으로 모욕을 주곤 한다. 자극을 받은 전·의경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채 진압에 들어가면 사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게 무리한 추적이다. 진압 상황에서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도망가면 일단 법 위반 행위가 시정된 것으로 보면 된다. 무리하게 끝까지 쫓아가 검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감정 통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압대는 방어용 방패를 공격적으로 쓰기도 한다.


조현오의 근본적 사고

 

2005년 허준영이 경찰청장일 때 한미FTA 반대 집회 중에 농민 2명이 사망한다. 조현오는 법대로 조치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고민한 끝에 전·의경 폐지를 해결책으로 내놓는다. 조현오에게 집회·시위 관리 모델은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직업 경찰관 부대가 집회·시위를 관리한다. 대략 100개 중대로 중대마다 250명 정도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버스, 승합차, 자동차로 이동하며 프랑스 전역에서 일어나는 집회·시위를 관리한다.

 

조현오는 전·의경 폐지를 주장했고 이를 대체할 경찰 인력 협상을 기획재정부와 진행한다. 하지만, 2008년 ‘촛불집회’가 터지면서 전·의경 폐지 불가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조현오가 경비국장을 하던 시절 기자들은 예정된 집회·시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묻곤 했다. 조현오는 “불법행위는 엄단하겠다”라고 답했고, 기자들은 “이번 주 족족 잡아들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2011년 7월 21일 경찰청장이 된 조현오는 해군기지 경비 문제로 제주를 방문했다. 조현오는 강정마을 관내 서귀포경찰서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하는 불법행위에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한 매체를 통해 서귀포경찰서 밖에 있던 주민도 실시간으로 이 정보를 접했다. 흥분한 주민은 조현오가 탄 버스를 에워싸며 이동을 막았다. 7분 정도 흘러서야 버스는 움직일 수 있었다.

 

조현오는 제주를 떠나기 전 서귀포에 있는 한 횟집을 들렀다. 제주경찰청장인 신용선을 비롯해 제주지방청 참모들이 모였다. 조현오는 식사 전에 이번 불법사태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경찰청장 한마디에 제주지방청 참모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제대로 회를 먹는 사람은 조현오뿐이었다.

 

 

 

사람들은 서귀포경찰서에서 조현오 발언은 청와대를 의식한 것으로 봤다.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되고자 차명계좌 발언을 했고 이런 발언으로 MB 눈에 들어야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모양이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하지만, 이 같은 단정은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시기 조현오가 청와대와 마찰을 빚는다는 보도도 눈에 띄기 때문이다. 조현오가 서울청장이던 2010년 2월 국제범죄수사대가 창설됐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14 회계연도 재정사업 성과 평가’ 보고서를 보면 2015년 4월 기준 지역경찰(지구대·파출소 근무 인력)은 정원(4만 5490명)보다 1705명이 적다. 반면, 경찰청과 경찰서 근무 인력은 정원(6만 5579명)보다 848명이 많다. 이 통계를 접한 언론은 민생안전 현장 일선을 책임지는 지구대·파출소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고 질타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부족한 일선 경찰서 인력을 더 줄여서 지방청 인력을 늘리는 방향으로 구조를 조정한 이가 조현오다. 국제범죄수사대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1991년 조현오가 부산동부경찰서 보안과장(당시 대공과장)이던 때부터 시작한다. 부산동부경찰서 보안과장은 조현오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보직이기도 하다. 보안과는 이른바 간첩을 잡는 곳이다. 그리고 경찰서 보안과에는 외사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소속돼 있다. 아침마다 보안과 직원은 보안 및 외사첩보를 작성했다. 보고서 출처는 노조 소식지나 신문 등이었다.

 

일본 야쿠자, 중국 삼합회, 외국 조직폭력단, 인신매매단, 간첩 등을 막고 검거하려면 일선 경찰서에 배치된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는 불가능했다. 첩보를 입수한다고 바로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조현오는 경찰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방청 인력이 많고 파출소 지구대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국회에서 경찰 지휘부를 압박하는 단골 메뉴였다. 그러다 보니 경찰도 비난을 의식해 한 발씩 나가지 못했다.

 

권한을 갖게 된 조현오는 2009년 경기지방경찰청부터 조직을 개편했다. 안산 등 외국인 밀집 지역에서 활동하는 외국 조폭 등을 관리하려면 경찰서 단위 외사 인력으로는 대처에 한계가 있었다.

 

각 경찰서에서 첩보를 담당하는 최소 인원만 남기고 모두 지방청으로 불러들여 경기지방경찰청 외사계를 만들었다. 통상 ‘외사분실’이라고 부른다. 실무를 맡은 계장(경정) 중에 총경 승진자를 배출하도록 하면 동기부여가 된다. 승진 의욕이 있는 유능하고 젊은 직원도 선발된 외사경찰이 활동하면서 효과가 나타났다.

 


 

청와대와 마찰 빚은 까닭

 

이듬해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된 조현오는 계장급이 대장을 맡는 국제범죄수사대를 만들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조현오 행보 때문에 난처했다. 민정수석실은 검찰을 앞세워 외국인 범죄를 대처할 계획이었다. 2009년 10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주도로 ‘외국인 조직범죄 합동수사본부’가 출범했다. 그런데 경찰이 먼저 치고 나간 모양새였다. 민정수석실이 경찰청장 강희락에게 경고성 전화를 했다는 보도가 나갔다. 물론 이후 이야기는 없다.

 

 

민정수석실은 바로 조현오에게 전화해 질책했다고 한다. 조현오는 경찰청 허가를 받으면 지방청에 계 단위 조직을 만들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고 받아쳤다. 질책성 전화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돼서도 눈치를 보지 않는 행보를 이어갔다. 경찰 인사에 주도권을 쥐었고 검찰과 맞서기도 했다. 민정수석은 차명계좌 발언 수사를 언급하며 조현오를 압박했다. 조현오는 이에 언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과연 조현오 행동과 발언 배경에는 MB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까. 사람들은 조현오가 경찰청장이 될 욕심으로 치밀하게 계산해 ‘차명계좌 발언’을 했다고 여긴다. 차명계좌 발언에 대해 한 전직 참모는 계획적이라면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고 무심코 나왔다면 조직 안에서 파워가 커지다 보니 거리낄 것이 없어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고 짐작했다.

 

연재 시작부터 밝힌 대로 조현오 행위를 선의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우선 조현오가 경찰청장 시절 터진 ‘함바 비리’ 사건에 대처한 방법을 살펴보겠다.

 

건설현장에 있는 식당을 ‘함바집’이라고 부른다. 유상봉은 함바집 운영권과 인사 청탁 명목으로 전임 경찰청장인 강희락을 비롯해 고위 공무원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2010년 말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함바 비리에 전·현직 경찰 간부가 대거 엮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총경 급 연루자가 상당수라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 지휘부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전직 간부들은 보통 검찰 수사를 지켜보든지 조용히 정보나 감찰을 동원해 내부적으로 진상 파악을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조현오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조현오는 총경 이상 간부 560명에게 자진신고를 지시했다. 유상봉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만났는지, 금품·향응을 받은 적이 있는지 등을 적어 내라고 했다. 자진신고를 하면 최대한 선처하지만 검찰 수사나 보도를 통해 연루 사실이 밝혀지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가혹하고 엄중하게 처벌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은 수사와 구형을 담당하는 검찰이 보기에 황당했다.

 


 

조현오의 경찰 사기 진작 방식

 

조현오 발언을 이해하려면 그가 지휘관이었다는 점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지휘관은 조직 구성원 사기 진작에도 책임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를 가나 분위기가 중요하다. 조직 구성원의 99.999%는 함바 비리 사건과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그 99.999%가 위축되고 자괴감에 빠지는 상황이었다.

 

조현오는 지휘관이 손 놓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상봉과 관련된 경찰이 극소수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관련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자 감찰을 활용하지도 않았다. 검찰에서 수사하는데 감찰까지 풀어서 구성원을 다시 조사하면 조직 사기가 추락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자수’를 지시한 것이다. 유상봉과 접촉을 인정한 경찰은 41명이었다. 유상봉에게 금품을 받은 경찰은 2명이었는데 내용물은 각각 와인과 홍어였다.

 

조현오가 지휘관이 된 2008년부터 조직원 사기가 크게 떨어진 적은 3번 정도를 꼽을 수 있다. 2007년 12월 경기도 안양에서 발생한 혜진·예슬 양 사건이 터지고 경찰은 거센 비난을 받았다. 국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것은 2008년 촛불집회였다.

 

2008년 부산청장이던 조현오는 경찰 사기 진작을 위해 밤새 범인 검거 소식이 들리면 아침마다 상과 상품을 들고 현장에 나갔다. 낮에도 검거 소식이 들리면 바로 전화하며 치하했다.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의 배경

 

조현오가 서울청장이던 2010년 고 노무현 대통령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있었다. 경찰도 노무현 죽음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망 1주기 즈음 열리는 집회 참여자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자기 일에 대한 정당성에 의심을 품기 마련이다. 이는 조직 내 사기 문제로 이어진다. 2011년 3월 서울청 2층 강당에서 조현오는 기동대 지휘관을 모아 교육을 진행했다.

 

내가 만난 한 전직 청장은 자기가 강의를 했다면 “막는 게 우리 숙명”이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했다. 조현오는 5월부터 경찰 사기가 떨어진다면 그 분위기가 그해 11월에 있을 G20 서울정상회담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현오는 원고 없이 강의했다. 대한민국 경찰이 얼마나 유능했는지 계속 강조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어디선가 들은 내용이 떠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1주기 집회 참가자보다 이를 막는 경찰에게 정당성이 있다는 것을 뒷받침할 근거였다. 그리고 ‘차명 계좌’ 발언이 이어졌다. 조현오는 경찰도 뇌물 받으면 바로 파면당하고 형사입건당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휘관으로서 부대 사기 진작 노력을 아래와 같이 약속하며 강의를 마친다.

 

“여러분 사기 관리를 위해서 저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근무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였고, 특히 전·의경 사기관리를 위해 필요 이상으로 억압하고 규정하는 이런 것은 안 하려고 그럽니다....(중략)... 다른 식으로라도 사기 관리를 어떻게 하면 더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그해 8월 조현오가 경찰청장으로 지명되자 암투가 시작됐다. 당시 강연을 찍은 동영상이 유출됐고 KBS가 이를 보도하면서 조현오는 ‘공공의 적’이 됐다. 2011년 말 문재인을 비롯한 친노 정치인들이 검찰청 앞에서 조현오를 처벌하라는 1인 시위를 벌였다. <나꼼수>도 왜 중앙지검 형사1부는 조현오를 부르지 않느냐며 성토했다.

 

당시 조현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사회적 비난과 별개로 법적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의성’과 ‘허위 인식성’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의성’은 보통 선거에서 후보자끼리 비방을 할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그가 ‘노무현 차명계좌’ 이야기를 진짜로 믿었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제 조현오와 마지막 현장검증 장소로 가보겠다. 바로 서울 청담동에 있는 고급 한정식집이다.

 

(다음 15화-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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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12화. 조현오의 조직 장악 비결은 '감찰'

 

조현오는 울산남부서장으로 취임하면서 첫 지휘관 생활을 했다. 울산은 팽창하는 도시로 교통사고와 강력 사건이 잦았다. 사건·사고를 줄이고자 조현오가 주목한 곳은 검문소였다. 검문소에서 인적사항을 미리 노출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현오는 검문소를 직접 챙겼다. 자리를 비운 직원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청문감사관이 나섰다.

 

청문감사관은 일선 경찰서에서 감찰과 감사를 총괄하는 보직이다. 감사 대상은 행정적인 일상 업무다. 감찰 대상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행위가 된다. 즉 개인 행위와 관련한 비위는 감찰 영역이다. 단, 사무감사 중 발견된 계약관계 등으로 말미암은 배임이나 횡령 같은 비위는 감사에서 처리한다. 물론 지휘관이 상황에 따라 감사 쪽 업무라도 감찰 부서를 활용하는 일은 자주 있다.

 

조현오는 새벽에 파출소를 순시했다. 당시 관용 차량은 의경이 운전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관내 지리를 익힐 겸 의경을 옆에 태우고 직접 운전했다. 차량 이동 중 무전으로 112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으로 바로 차를 돌려 초동조치를 확인했다.

 

 

 

업무를 세심하게 챙기자 서울종암경찰서장 시절 직원들은 조현오를 ‘조순경’이라고 부르곤 했다. 조현오는 경찰서 과장들에게 주어진 감독순시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남부서장 시절 하루는 전국 일제검문검색이 진행됐는데 조현오는 과장에게 현장에서 직원 근무를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나이가 한참 어린 과장 한 명이 근무한 것처럼 거짓말했다. 조현오는 과장을 다그쳤다.

 

“지방청에 보고해서 징계받을래? 아니면 일주일 동안 교통외근과 근무복 입고 심야음주운전단속 할래?”

 

과장은 현장 단속을 택했다. 과장이 도로에서 현장 단속을 하자 다른 직원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조현오는 2006년 경찰청 감사관을 지낸다. 감사관 아래로 감찰과장과 감사과장을 뒀다. 당시 감사과에 순경 출신으로 강직하며 다부지게 일을 잘하는 직원이 있었다. 2008년 조현오가 치안감으로 승진하여 부산지방경찰청이 됐을 때 그 직원은 은퇴를 몇 년 앞둔 총경이었다. 조현오는 2009년 그에게 경기청 청문감사담당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부탁을 받는 순간 ‘일을 많이 시킬 텐데…’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방청에서 경무과 기획계는 치안 수요에 맞게 인력을 배정하는 일을 한다. 경찰관 전출은 경무과 인사계 업무다. 조현오는 당시 경기지역 경찰에게 업주와 통화를 금지했다. 이를 위반하면 징계를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감찰은 업주와 통화한 경찰에 대해 1~3단계 등급을 정해 전보 조치했다. 또 첩보를 바탕으로 평판이 좋지 않은 경찰은 다른 경찰서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진술서와 근거를 남겨 항의가 들어오면 사유를 밝혔다.

 

생활안전과 업무에도 감찰 기능이 섞였다. 조현오는 경기청에서 성과주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성과주의는 과잉 단속 부작용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런 폐단을 막는 일도 감찰에서 맡았다.

 

조현오가 경기청으로 오기 전, 2009년 1월 평택 쌍용자동차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다. 쌍용자동차 운명은 법원과 채권단 손으로 넘어갔다. 4월 사측이 발표한 구조조정안은 전체 인력의 37%를 해고하는 것인데, 희망 퇴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976명을 정리 해고한다. 5월 22일부터 쌍용차 노조는 평택 공장을 점거해 파업을 시작했다.

 

6월 25~26일 정리해고에서 벗어난 직원과 임직원 3000여 명이 공장 안에 진입하여 노조와 충돌하며 부상자가 속출한다. 대규모 경찰병력이 투입돼 양쪽이 접촉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사측을 비롯해 누구도 공장 안팎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도록 했다. 수십 개 중대가 교대로 근무했다.

 

경비국 처지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전에 기강을 잡는 것이다.

 

오랜 기간 경비 근무를 하면 음주, 졸음 같은 사고가 생기기 마련이다. 쌍용자동차 사태 때는 그런 사고가 없었는데 그만큼 조직이 장악됐다고 볼 수 있다. 밤마다 무전으로 근무 확인을 점검하는 것도 감찰이 맡은 일이었다. 여기에 국정감사보고서까지 조현오는 청무감사담당관에 넘겼다. 조현오가 끌어들인 총경은 모든 일 처리가 야무졌다.

 

이듬해 조현오는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된다. 조현오는 총경에게 1년만 더 함께 일하자고 부탁한다. 당시 그는 은퇴를 앞두고 있어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조현오가 서울에서도 ‘성과주의’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묵묵하게 뒷받침한 총경 덕이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밀어붙였을 듯한 조현오도 경찰청장이 될 때까지 참았던 것도 있다. 경찰 문화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보통 사람 시각에서 기본적인 것들이 경찰 조직 안에서는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일할 때와 쉴 때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 관할 경찰서장은 휴일이 없었다. 서울종로경찰서장은 북한산을 앞에 두고도 등산 한 번 하기 쉽지 않았다.

 

 

업무에 소홀하다는 질책을 받을까 걱정했다.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휴가를 가지 못하는 직원도 많았다. 대부분 직원은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고 눈치만 봤다. 조현오는 감찰을 풀어 정시 퇴근 문화를 정착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청장 시절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청장 지휘방침과는 달라 경찰청 감찰 등을 통해 간섭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청문감사담당관은 열심히 했지만, 인사권을 가진 경찰청에서 견제를 받아 본인 희망과 관계없이 2010년 경찰대학 교육과정으로 발령 난다. 경무관이 되는 필수 과정이었지만 은퇴를 고작 1년 남짓 앞둔 총경에게는 불필요했다.

 


 

2010년 8월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된다. 통상 청장이 바뀌면 중요 보직은 자기 뜻을 잘 파악하는 사람으로 채우기 마련이다. 정기인사 때 교체하는 보직 가운데 청장이 중요시하는 자리는 인사·감찰·경무·정보과장 등이다. 조현오는 감찰과장을 비롯해 주요 과장을 바꾸지 않았다. 업무역량이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참모 중에는 청장이 지시하면 대답만 하고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름대로 이해관계를 따지기 때문이다. 조현오는 청장이 되기 전부터 지방청이 하달한 공문을 읽지도 않고 넘어가는 직원을 수없이 봤다. 청장 지시를 적극적으로 따르게 하려면 자극이 필요했다. 조직에서 감찰은 효과 좋은 침 같은 역할을 한다.

 

 

감찰은 언론 보도에 대응하기도 한다. 2011년 4월 20일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해 서울시내 11개 교차로에 별다른 홍보 없이 3색 신호등이 작동했다. 5월 7일 3색 신호등이 설치된 서울시청 앞 교차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은 신호 체계를 지적했다. 문제 파악을 위해 교통과에 감찰 직원이 투입됐다.

 

물론 잘 돌아가는 기능까지 감찰을 동원해 관리하지는 않았다. 조현오는 해당 기능 보고를 바탕으로 정보 기능도 동원해 사실을 교차 확인했다. 다만, 해당 기능 국장이나 과장이 청장 지시에 미온적이라면 여유롭게 기다려 주는 일은 없었다. 경비과에서 발생한 전의경 가혹 행위 관련 지시가 대표적이다. 이럴 경우는 가차 없이 감찰을 동원했다.

 


 

10월 21일 길병원 조폭 난투극 사건을 이튿날 SBS가 보도한다. 인천시 구월동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폭력조직끼리 유혈 난투극이 벌어진 사건이다. SBS는 당시 현장에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력반 형사 5명이 있었지만 유혈 난투극을 막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시민은 경찰의 허술한 초동 대응으로 두 시간 넘게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조현오는 방송을 접하고 바로 감찰과장에게 전화했다. 본청 감찰팀이 바로 출동해 최초 112신고를 접수한 시점부터 사무실 CCTV를 면밀하게 살폈다. 감찰 조사가 모두 끝난 23일 인천남동경찰서장이 직위 해제됐다. 남동서 형사과장, 강력3팀장, 상황실장, 지구대 순찰팀장 등도 중징계됐다. 조현오는 “조폭 겁내는 경찰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26일 현장에 출동했던 강력3팀장이 조폭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다며 경찰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온라인에서 급속하게 퍼졌다. 조현오가 제대로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괜히 엄한 경찰만 잡았다는 댓글이 달렸다. 원인은 자신에게 있으면서 남 탓하며 징계만 하는 청장이라는 사설까지 나왔다. 조현오는 결국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대한 징계를 거둔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다음 13화-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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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서울과 경기는 스케일이 다르다. 연쇄살인이나 토막살인 사건 같은 강력 사건이 아니라면 경기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미디어 관심을 끌기 어렵다. 반면, 서울에서는 작은 사건과 집회도 어떻게 엮이느냐에 따라 정치적 이슈로 발전하기도 한다.

 

조현오는 2010년 1월 8일 서울지방청장으로 부임한다. 조현오는 바로 역대 서울청장 리더십 분석·평가한 내용을 접한다. 직원 여론과 불만을 수렴해 정책을 추진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현오가 밝힌 소감은 이렇다.

 

“다 좋은데… 이렇게 가자니 시간이 어디 있냐?”

 

보통 참모를 비롯해 지휘관 임기는 1년이다. 외사관리관, 감사관, 경비국장, 부산청장, 경기지방청장 등 조현오가 거친 곳에서는 어김없이 직원들 곡소리가 났다.

 

 

처음 3개월 동안 새로운 틀을 짜고 나머지 기간 강하게 추진해 그 틀을 정착하는 게 조현오 방식이었다. 조현오가 조직에 심고자 한 틀은 당연히 ‘성과주의’였다

 


 

조현오는 인사 과정에서 주관적인 지휘관 평가를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통상 인사는 심사위원회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서울청장으로 취임한 조현오는 바로 승진하고 싶은 직원을 강당에 모이도록 했다. 경정·경감 승진 대상자 225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7시간 남짓 면접이 이어졌다.

 

“자기가 승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봐라.”

 

조현오는 그 자리에서 담당 과장에게 면접한 직원마다 성과를 확인했다. 몇몇 직원은 승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약을 받기도 했다. 성과를 봤을 때 승진이 어려운 직원에게는 그 자리에서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면접에서 탈락이 확정된 직원은 ‘빽’을 쓸 기회조차 사라졌다.

 

당시 직원들이 가장 힘들었던 게 이 같은 인사 방식이었다. 조현오는 2~3개월에 한 번씩 성과 우수자를 내부에 공개해 승진 인사에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경쟁에 내몰린 직원들은 안팎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2014년 기준 부산은 경찰서가 15개, 경기도는 41개, 서울은 31개가 있다. 지역이 넓으면 지방청장이 일일이 챙길 수 없으므로 각 경찰서 서장이 치안을 책임져야 한다.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경찰서 단위로 평가를 진행했다. 성과가 좋은 경찰서는 혜택을 받았고 성적이 나쁜 경찰서는 집중감찰을 받았다. 조현오가 서울지방청을 맡은 시기에는 이 같은 평가 시스템이 무르익는 단계였다. 조현오는 평가 시스템을 적용하기 전에 개념을 구체화하고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장들과 회의를 했다.

 

“방배경찰서는 치안 수요가 적은 곳인데, 우리는 성과를 많이 낼 수 없어요.”

“종로경찰서와 남대문경찰서는 경호와 행사가 빈번해 실적을 많이 올릴 수 없습니다.”

 

조현오는 불평·불만을 끝장토론, 공청회, 간담회로 돌파하고자 했다. 통상 서울지방청 직원은 2만 3000여 명, 경기지방청 직원은 2만여 명이다. 이 정도 규모면 아무리 청장이라도 직원 공감 없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선 경찰서 정도 규모면 서장이 직원을 마음먹은 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실적을 내지 못하면 집중감찰 대상이 된다. 서장부터 일선 경찰까지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강북경찰서장인 채수창도 이 같은 압박에 시달렸다. 조현오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채수창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도 실적주의에서 살아남으려고 제 직원이 검거 실적을 올리도록 굉장히 독려하고 채찍질을 했습니다.”

 

인사에 대한 불만과 성과주의로 말미암은 피로는 경찰 조직에 꾸준히 누적됐다. 2010년 6월 23일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경찰관 4명이 구속된다. 피의자에게 고문·가혹행위를 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는 2009년 8월에 시작된다. 조현오 인사청문회 위원인 정수성은 증인으로 참석한 채수창에게 이 점을 확인한다.

 

“증인은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에 조 청장 책임도 있다며 동반 사퇴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양천서 피의자 고문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생긴 일이고 조현오 내정자는 올해 1월 서울청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양천서 고문 사건과 조현오 실적주의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은 결과적으로 조현오식 성과주의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통로가 된다.

 


 

역풍을 맞게 된 조현오에게 악재가 이어졌다. 강남 룸살롱 업주 유착 사건이다. 이 사건은 가출한 여학생 A양을 서초경찰서 실종팀이 성매매 업소에서 찾아내면서 시작된다. 가수 지망생인 A양은 미성년자였다. 업소 사장 이름은 이경백이었다. 웨이터 출신인 이경백은 2000년 북창동에서 룸살롱을 개업하고 강남 일대에서 유흥업소를 기업형으로 운영했다. ‘룸살롱 업계의 스티브 잡스’, ‘룸살롱의 황제’ 등으로 불리게 된 비결은 다방면에 비호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 단속반에 뇌물도 잘 바쳐야 했다.

 

경찰 단속을 비롯한 유흥업계 정보는 이경백을 거쳤다. 2006년 한화 회장 김승연이 폭행을 저지른 것을 경찰에 흘린 것도 이경백이었다. 경찰은 이경백과 단단히 엉켰고 조직은 점차 곪아 들어갔다. 이경백을 수사한다는 것은 경찰 조직의 종기를 도려내는 일이었다. 그전에 경찰은 이미 이경백에게 농락당한 적도 있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혐의를 포착해 이경백을 수사하려 했을 때 그는 오히려 수사관이 접대받은 내용을 확보해 수사팀을 엎었다.

 

외압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원래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은 생활안전과 소관이다. 하지만 조현오는 형사과에 이 사건을 맡긴다. 당시 형사과장은 황운하 총경이었다.

 

통화기록 분석부터 시작했다. 이경백이 지난 1년 동안 휴대 전화 두 대로 통화한 기록은 몇 만 건이었다. 등록된 사람만 1500명이 넘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적잖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검찰은 경찰이 긴급 체포한 이경백을 풀어줬는데, 수사를 이끈 황운하는 언론 브리핑에서 검사 실명을 거론하며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말한다.

 

 

이경백도 만만찮았다. 구속되면 그동안 바친 뇌물 내용을 모두 검찰에 불겠다며 맞섰다. 조현오는 오히려 이경백이 검찰에 뇌물 관련 내용을 불기를 기대했다. 검찰 수사이긴 하지만 경찰 비리를 도려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이경백과 통화 기록이 있는 경찰관 63명이 적발됐다. 조현오는 이미 취임할 때부터 업주 관계자와 공무 외에 전화 한 통, 물 한잔도 하지 말 것을 지시한 상태였다. 통화 내용을 소명하지 못한 경찰은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39명이 징계를 받았고 이 가운데 6명은 파면됐다.

 

“조현오가 범서방파 행동대장 출신과 의형제라더라.”

“조현오가 유흥업소에 10억 원을 투자해 월 2500만 원씩 배당금을 받는다.”

 

그즈음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조현오가 조폭과 의형제이며, 조현오 서울청장 비서실장도 연루됐다는 식으로 소문은 점점 덩치를 키웠다. 인터넷에서도 조현오가 강남 유흥가 조폭과 수십 차례 통화했다는 글이 돌았다. 민정수석실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조현오는 그를 옥죄는 의혹에 정면 대응하는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비서실장을 감찰해서 비위 사실이 있으면 엄하게 처벌할 것이고, 내 휴대전화 통화내역까지 모두 공개하겠다.”

 

조현오는 자신도 수사 대상에 넣었다. 서울청 수사부장인 박상용에게 자기 계좌열람동의서도 전달했다.

 

형사과장 황운하는 결국 이경백을 탈세와 성매매 혐의로 6월에 구속한다. 조현오는 이경백이 구속되고 두 달 후인 2010년 8월 경찰청장이 된다. 하지만, 이경백도 곧 보석으로 풀려났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으며 유유히 빠져나온다.

 

(다음 9화 –조현오, 경검 수사권 조정 어떻게?)

 

서형 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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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조현오 전 청장(이하 호칭 생략)은 차명계좌 발언으로 많은 사람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겼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출소 후 2014년 말,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다녀왔다. 관련 기사에는 수행원이 3명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호의호식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2015년 2월 말, 조현오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수행원 정체를 밝혔다. 바로 그 수행원 가운데 한 명이 필자다.

 

조현오를 알게 된 것은 <나꼼수>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서다. <나꼼수>에서 다룬 조현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장자연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나꼼수 30회)’, ‘검경 수사권 조정을 검찰에 유리하게 한 장본인이고(나꼼수 31회)’, ‘디도스 수사에서 경찰 수사를 망친 장본인이며(나꼼수 32회)’, ‘경찰에 최시중 관련 첩보를 줬음에도 수사를 방해한 인물(봉주 2회)’이었다.

 

 

2013년 중반까지 조현오는 관심 밖 인물이었다. 당시 경찰을 취재 중이었고 한 형사에게 자신이 수사하던 사건을 윗선에서 덮으려던 일을 듣게 됐다. 그는 사직서를 준비하고 윗선에 들이댔다.

 

“만약 사건을 가져가면 사표를 내고 조현오 청장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사건을 묻으려던 시도는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됐다. 형사에게 ‘경찰청장 조현오’는 어떤 상징이었을까.

 

“검찰과 붙었을 때 그만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이 흔치 않거든요. 위에 눈치 안 보고 내부 비리에는 굉장히 부정적이지요. 바로 날려버려요. 숙청하듯이.”

 

이어진 경찰 취재 과정에서 접한 조현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조 파면’이라는 별명을 거론하며 독재자로 보는 시선도 있었고 인사 문제에 대한 불만은 상당했다. 반면 긍정적인 평가는 그동안 <나꼼수>에서 접했던 조현오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상반됐다.

 

“역대 경찰청장 중 허준영과 조현오를 존경해요. 아이러니한 것은 외무고시 출신들이 조직에 들어와서 비전을 줬다는 것이지요.”

 

“경찰 조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분이에요.”

 

“역대 청장 중 청와대와 관계에서 가장 강한 목소리를 냈어요. 검·경 수사권 다툼이 벌어질 때 자기에게 큰 타격이 올 수도 있어요. 통상적으로 검찰 조직은 자기 조직에 대항하거나 해를 입히면 반드시 보복합니다. 자기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상대 힘을 빼지요. 대표적인 대상이 경찰 수장이고요. 차명계좌 고소 건 외에는 걸릴 게 없는 분이잖아요. 국민이 갖는 가장 큰 이미지는 차명계좌 발언이지만 큰 줄기는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고 사명을 회피하는 사람은 아니지요.”

 

“카리스마 있어요.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이 있고 가차 없지요. ‘조 파면’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조직 내 비리를 완전히 쓸어버리면 조직은 깨끗해질 것 아니에요?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조현오> 책 표지에 멍든 사진? 그것은 이제석 디자인인데, 그런 디자인 쓴 것에 대해 쿨하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보기에는 수구적이고 권위적일 것 같지만 생각이 대단히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이들은 조현오가 차명계좌 발언으로 저평가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꼼수>가 제기한 내용이 과연 진실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사전조사를 마치면서 경찰을 주제로 글을 쓴다면 그건 ‘조현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조현오를 몹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연락처를 비롯해 그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조현오는 당시 ‘차명계좌 발언’으로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죄’로 기소돼 항소심 재판을 받았다. 이런 죄는 보통 양형이 벌금 100만 원 정도다. 항소심 재판에서 그는 차명계좌 발언 진원지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 임 씨를 지목했지만, 임 씨는 부인했다. 2013년 9월 26일 그는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다시 구속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정보가 하나도 없는 것과 소재를 알고 있는 것은 큰 차이다. 서울구치소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내용은 특별할 게 없이 평소 생각하는 바를 적었다. 하지만, 조현오는 편지를 받는 족족 찢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이 과정에서 조현오는 누군가를 한 번 믿으면 그냥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언젠가 그에게 재판기록을 요청했을 때 주변에서는 극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모든 기록을 조건 없이 보내줬다.

 

조현오는 2014년 5월 중순 만기 출소했다. 그에게 연락을 받고 만나기로 하면서 부탁한 것은 재판부가 하지 않았던 현장검증이었다. 그가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이야기를 들었다는 한 서울역 인근 호텔 식당을 현장으로 지목했다.

 

 


 

조현오는 서울청장으로 부임해 2010년 3월쯤 이 호텔 식당에서 임 씨를 만났다고 한다. 지금까지 언론은 임 씨를 MB와 독대할 수 있는 핵심 실세 가운데 한 명으로 묘사했다. 그만큼 정보력이 막강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문은 당시 임 씨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 상황을 알 수 있는 지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임 씨가 조현오를 만난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현오가 임 씨를 만났다는 식당은 호텔 지하에 있는 고급 다다미방이다. 음식 값은 1인당 최하가 10만 원 선이다. 단아한 옷차림으로 머리를 깨끗이 뒤로 동여맨 아가씨들이 음식 시중을 든다. 조현오에게 임 씨에 대한 기억을 더듬도록 했다.

 

임 씨는 음식을 나르는 아가씨에게 ‘기프트 카드(Gift Card)’로 결제가 가능한지를 물었다고 한다. 아가씨는 결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임 씨는 카드 유효기간을 두고 아가씨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조현오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결제할지 고민하다가 예의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술이었다. 막강한 정보력이 있다는 사람이 자기 상품권 카드로 결제가 되는지도 모르는 식당에 서울지방청장을 불러냈다? 애초부터 불러낸 사람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정도로 허술할까? 법정 진술도 이런 식이었다면 재판부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듯했다.

 

조현오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차명계좌’ 발언에 대해 서울지방청장 시절 내부 강의였을 뿐이고 허위 인식과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문제가 있다.

 

그는 당시 현직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다. 일반 국민들로서는 그가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발언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고위직 공무원은 그만큼 말과 행동에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가 받은 판결이 부당한 면이 있다는 점을 짚어야겠다. 조현오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는 징역 8개월로 감형됐다. 감형 이유는 경찰직 공무원으로서 끼친 사회적 공헌을 고려한 것이다.

 

경찰 안에서 조현오를 싫어하는 이도 동의하는 점이 있다. 그가 매우 청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도 있다. MB가 임명한 경찰총수이기 때문이다. 차명계좌 발언까지 했을 정도면 눈치 보기와 아부에도 능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다.

 

 

영화 라스트 캐슬(2001)

 

 

‘균형 잡힌 시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라스트 캐슬>에서 어원(로버트 레드포드) 장군은 교도소장에게 군 형무소 수감자를 대하는 태도가 왜 서로 다른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은 그들의 최악인 면을 바라보지만, 나는 최선의 면을 보고자 한다.”

 

1차 현장검증에서 조현오에게 ‘최선의 면’을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과 정치적 색채가 맞지 않다면 모두 부정적으로 색칠하는 오늘날 사회상에 대한 반발로 조현오를 다시 보게 됐다. 물론 조현오는 여러 정치적인 논란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이다. 이 글은 분명히 선의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대상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작가가 책임을 져야 할 영역이다.

 


 

조현오와 첫 만남이 끝날 즈음 2차 현장검증을 제안했다. 장소는 서울시청 근처에 있는 코리아나호텔 중식당이었다. 이곳에서 조현오는 경찰청장 시절 당시 청와대 ◯◯ 수석과 언쟁이 있었다고 했다. 한 달 뒤에 조현오와 다시 만났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는 식탁이 있는 방이었다.

 

그곳에서 청와대 ◯◯ 수석에게 어떤 일로 화를 냈는지 물었다. ◯◯ 수석이 “검찰에 차명계좌 사건이 수사 진행 중인데, 조청장이 수사권 관련해서 그렇게 강하게 발언해도 되는 건가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칠 때쯤 <나꼼수>에서 주진우 기자가 망쳤다고 주장한 사건이 떠올랐다.

 

“여기 왔으니 안 물어볼 수 없네요.”

 

코리아나호텔 사장은 방용훈이며,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형제이다. 2009년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있었던 ‘장자연 사건’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다음 제2화-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 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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