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7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경찰을 취재한 시기는 2013년쯤이다.

 

처음 취재 방향을 정하기 전까지 온라인에서 경찰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정보를 쌓기 시작했다.

 

경찰 조직에 아는 게 없는 나에게는 언론이 말을 옮긴 경찰부터 접촉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가장 유명한 것은 조현오 청장이었지만 조현오는 관심 밖 인물이었다. 언론이 전하는 인상도 대부분 좋지 않았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진압하면서 몽둥이로 노동자를 두들기는 장면에서 앞뒤 맥락이 어떻든 무슨 상관인가.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인 조현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진보언론이 다룬 기사도 한몫했다.

 

채수창이 성과주의를 비판한 기자회견을 비롯해 2009년부터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징계를 받은 경찰들 사연을 내보냈다.

 

대부분 징계받은 시기와 관할을 따지지도 않고 원인으로 조현오를 지목했다.

 


 

오히려 자기 신분과 이름을 밝히고 활동하는 다른 경찰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에게는 나름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있었다.

 

1980년대 군사정권 후 사회 분위기가 민주적으로 바뀌면서 언론자유도 한결 보장받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이 분위기를 타고 경찰을 향해 갑질하는 기자들이 허위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는 1998년부터 허위 기사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는 경찰이 전국에서 등장한다.

 

그중에 내가 만난 이가 경찰 황운하, 황정인 등이다. 취재란 늘 그렇듯이 온라인에서 모은 풍문과 어설픈 추측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황운하는 2013년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경무관이었다. 경무관 계급정년은 6년이며, 통상 4년 이내에 치안감 승진을 노린다.

 

황운하. 중도일보 인용

 

당시 황운하는 경무관 2년 차로 수사연수원장이었고 아직 망한 단계가 아닌 만큼 절실함도 없었다.

 

주변에 언론계 인맥이 풍부해 굳이 나와 작업할 이유도 없었다.

 

필자는 보기에는 아주 외향적이고 밝은 성격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아주 슬프고 우울함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헤어질 때 황운하는 다시 만날 일이 없다고 말했고 서운함을 느꼈다.

 


 

두 번째로 황정인을 만났을 때 경찰보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더 관심이 갔다.

 

내부통신망에 상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징계를 당하자 ‘표적 감찰’을 주장하던 경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황정인도 거침없이 상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겨레기사 캡쳐

 

 

황정인은 자기도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에 걸리는지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고 했다.

 

황정인 글 쓰기 비법은 양극단을 짚는 것이다.

 

황정인이 조현오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는 ‘조현오 청장이 헌법정신을 중시 여긴다’는 점을 드높이면서 시작한다. 비판에 칭찬을 덧붙인다는 것이다.

 

그에게 조현오가 진짜 헌법정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평소 국관회의에서 헌법 준수를 자주 강조한다고 했다.

 


 

이런 황정인도 감찰을 받을 뻔했다.

 

2011년 6월 8일 반값 등록금 집회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는데 당시 그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 팀장이었다. 물론 그는 징계를 피했다.

 

황정인 말을 그대로 옮긴다.

 

황정인이 블로그에 쓴 글은 많은 언론이 인용했다. 오전 국관회의에 참석했는데 감찰부서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노컷뉴스 인용

 

쫄면서 앉아 있는데 조현오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더니 황정인부터 찾았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글 썼던데!”

 

이 한마디로 감찰은 없던 일이 됐다. 황정인은 조현오 카리스마를 직접 겪었다.

 

황정인과 대화하면서 조현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상대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모른다는 것을 확인할 때 관심은 높아지는 법이다. 언론이 띄운 인물을 만나고 나니 취재 대상이 확고하게 정해졌다.

 

바로 조현오 전 청장이다.

 


 

조현오는 2012년 4월 5일 퇴직했다. 2013년 가을 고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으로 구속된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에게 황정인 씨 덕에 호감을 얻게 됐다고 털어놨다.

 


 

만날 일이 없다던 황운하는 그 후로 해마다 만났다.

 

경무관 4년 차이던 2015년에 우연히 만났다. 당시 대전지방경찰청 부장이었다. 여전히 승진 희망이 있었는지 절실함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헤어질 때 황운하는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황운하는 2016년 경무관 5년 차에 경찰대 교수부장으로 갔다. 그때부터 위로를 빙자한 밥과 술로 자주 접촉했다.

 

그때 필자가 쓴 글이 바로 <풍운아 황운하>다.

 

일 년 후 경찰 조직을 나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지나간 경찰 생활을 정리한 글을 쓰고 싶다며 필자에게 상담했다. 나 또한 조직에서 망해가는 황운하를 위로해주고자 시작된 글 작업이었다.

 

 

 

어쩌다가 황운하가 이렇게 추락하게 됐을까?

 

황운하를 처음 중용한 경찰청장은 허준영이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이다. 총경이던 황운하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 팀장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수사구조개혁팀 계장은 민갑룡이었다. 경찰 측 자문 위원 중에는 조국 서울대 교수가 있었다.

 

이후 황운하를 중용한 이가 조현오다. 2011년 경무관으로 승진을 시켜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내정했다.

 

 

조현오가 물러나자 박근혜 정부에서 황운하는 수사와 관련 없는 부서를 떠돌았고 권력형 수사는 막힌다. 더불어 인사도 망가졌다.

 

황운하는 탄식하곤 했다.

 

“조 청장님이었다면 이렇게 조직이 망가지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됐다. 경찰 수사권 조정에 유리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황운하는 치안감으로 승진하며 울산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다.

 

민갑룡 경찰청장 내정자. ytn인용

 

민갑룡은 민정수석 조국이 강력하게 추천해 경찰청장이 됐다.

 

(☞조국과 친분 묻자…민갑룡 “청문회에서 말하겠다”)

 

적폐청산은 국정과제였다. 민정수석 조국은 적폐 청산 콘트롤 타워를 자처했다.

 


 

2018년 봄, 경찰청에 댓글 관련 특별수사팀이 설치됐다.

 

경찰 조직 안에서는 이 수사를 곱지 않게 보는 눈이 있었다. 하지만 적폐 청산 명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울산지방청장 황운하에게 나는 민감한 부분을 대놓고 찔렀다. 감정이 폭발하면서 우리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물론 경찰청 내부망에 자신을 드러내고 비판한 경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글은 조현오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찰 댓글 특별수사팀은 이 글을 조현오 구속영장청구 명분으로 활용했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조현오가 친한 경찰을 동원해 조직 내 여론 조작을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오는 2018년 10월 5일 구속됐다.

 


 

구속 기간 경찰청 국정감사가 열렸다. 경찰청장 민갑룡을 향한 국회의원 질문이 쏟아졌다.

 

야당 소식인 윤재옥 의원이 물었다.

 

윤재옥 의원과 민갑룡 경찰청장.시사포커스tv인용

 

 

윤재옥 위원: “청장으로서 전직 경찰총수를 경찰이 수사해서 최초로 구속시킨 사건이라고 보도됐는데 소회나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청장 민갑룡: “법과 원칙에 따라 행위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리해나가겠습니다.”

 

 


 

 

이재정 의원(여당)은 시사저널 단독 기사를 띄웠다. (☞  조현오 입장문 "직무범위 벗어난 지시는 전혀 없었다" )

 

 

 

조현오 입장문을 담은 인터뷰 내용이었다.

 

이재정 위원: “(여기에) 민갑룡 청장을 운운했습니다. ‘민갑룡 청장이 이러한 수사 가이드라인에 항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장의 의지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 하면서 뻔뻔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증거가 현격한데요.... (이런) 상황에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하고 경찰청장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문에 몇 번이나 언급을 하는데 경찰청장님한테 뭐 소통된 게 있습니까? 이것 보는 경찰청장님 입장은 어떻습니까?"

 

민갑룡은 이 질의에 “그 분은 그분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즉 그 생각은 조현오 ‘당신의 것(Yours)’일 뿐이다.

 

그런데 이채익 위원은 이러한 민 청장 답변을 ‘당신 자신의 것(Yourself)’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채익 의원과 민갑룡 경찰청장.연합뉴스 인용

 

이채익 위원 : “울산 남구갑 이채익 위원입니다. 오늘 오전 존경하신 윤재옥 위원의 질의에 민갑룡 경찰청장의 답변을 들으면서 본 위원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오늘 위원들의 각종 질의에는 그토록 신중하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던 청장이 경찰청의 대선배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구속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고 정확한 답변을 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죄를 지었으면 구속은 당연하다. 또한 모든 것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만약 조현오 청장이 무죄가 되면 오늘 이 답변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경찰청장 민갑룡 : 수사 과정을 통해서 불법이 있다는 걸 규정을 했고요. 현재 영장실질심사 과정까지 거쳐서 법원에서도 그렇게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답변을 드린 겁니다.

 

이채익 위원 : 구속은 됐지만 아직까지 확정되지는 않았잖아요.
경찰청장 민갑룡 : 예 그렇습니다.
이채익 위원 : 그런데 경찰청장이 그렇게...
경찰청장 민갑룡 : 현재까지 사법적인 판단까지 거친...

 

이채익 위원 : “경찰청장이 이런 답변을 그렇게 예단해서 미리 얘기할 수 있어요? 내가 1998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울산 남구 구청장을 할 때 조현오 청장이 당시 남부경찰서장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조현오 청장을 두둔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전화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만났던 조현오 청장은 국가관이 뚜렷하고 공과 사가 분명한, 너무 공과 사가 분명해서 불편할 정도로 제가 봤을 때는 참경찰상이다, 그렇지만 대민 관계에 좀 더 유연성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할 정도로 너무 국가관이 뚜렷한 경찰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다 보니까 조현오 청장도 이제 영어의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모셨던 전 경찰청장이 경찰의 손에 의해서 구치소에 들어가고 구치가 되고 최초로 경찰청에 의해서 구속된 전 청장에 대해서 구속은 당연하다. 법과 원칙에 따라 했으니까 아무 문제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민갑룡은 이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때 민갑룡이 느꼈을 두려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마 민갑룡은 나에게 자기를 아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 ytn인용

 

 

그렇다면 자신은 누군가처럼 직을 걸고 맞설 그런 용기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스치듯 말했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민갑룡 쌍둥이인가? 2013년이다.

 


 

조현오도 그 시절 순탄하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013년 가을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 봄 그를 면회했다. 조현오는 감옥에 있을 때부터 필자에게 후배 경찰을 소개해줬다.

 

조현오는 가장 먼저 소개해주고 싶은 이가 있다며 경찰 조직 ‘넘버 원’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름을 들었는데 촌스럽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민갑룡”

 

(마지막 화. 생활의 발견.)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구겨진 제복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부하를 다루는 방식

 

조현오에게 현장검증 3차 장소는 청담동에 있는 고급 한정식집이다. 길게 나 있는 복도 양편에 모든 공간이 룸으로 돼 있다. 조현오도 출소 후 이곳이 궁금해 처음 와봤다고 했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수백 명이 면회를 왔고 대부분 경찰이었다.

 

조현오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를 향해 '자기 사람 잘 챙긴다'는 비판을 한다. 그런데 조현오는 걸핏하면 "경찰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말하곤 했다. 얼핏 보면 규칙과 관례를 무시하면서까지 자기 사람 챙기면서 겉으로만 대의를 외친 듯하다.

 


 

실제 한국 경찰 정체성에 관심을 보인 경찰청장은 허준영이었다. 2005년 허준영은 한국 경찰 주체성을 파고들면서 수사권 독립을 강하게 외쳤다. 한국 경찰 마크로 참수리를 쓴 게 이때다. 그동안 한국 경찰 상징은 미국 흰머리 독수리였다. 게다가 참수리는 독수리와 달리 죽은 시체를 건들지 않는다. 이게 당시 경찰이 상징을 독수리에서 참수리로 바꾼 이유였다.

 

 

 

허준영에 이어 조현오가 경찰청장이 된다. 두 번째 외무고시 출신이다. 조현오는 회의시간에 경찰이 왜 존재하는지를 자주 물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보자.

 


 

2011년 12월 20일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유서에는 그동안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학교 폭력으로 말미암은 자살이 잇달아 터지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보통 이런 사건이 터지면 교육 당국이 대책을 세우고 경찰도 대책에 맞춘 대응 방안을 내놓곤 한다. 하지만, 조현오는 학교폭력 문제는 경찰이 주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나섰다. 그러자 사회적으로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교권 침해를 비롯해 학교 폭력 해결 주체는 교사, 학생, 부모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더 큰 목소리를 냈다.

 

부정적인 것은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일선 경찰서에 올라오는 불만 중에는 주취자 신고를 112로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주취자, 노숙자 등에 대한 조치는 지방자치단체 몫이다. 경찰은 '범법행위'가 발생해야 나선다는 태도가 분명했다. 조현오는 한국 경찰 구조가 이런 사고 방식을 만들어냈다고 판단했다.

 


 

조현오가 경찰 생활을 하면서 지겹도록 들은 말이 있다. "한국 경찰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한탄이었다. 한국에서는 경비작전은 국방부, 수사는 검찰, 정보는 국가정보원, 경호는 경호실에서 주도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경찰은 눈치를 보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을 하기 마련이다.

 

조현오는 "경찰이 왜 존재하냐"고 물었다. 자살하는 아이들 인권은 누가 지킬 것인지 따졌다.

 

교사가 성인 조직과 연계된 일진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조현오는 경찰청에 학교폭력전담TF팀을 만들어 대책을 만들도록 했다. TF조직은 행정학상 비정규 조직이다. 어느 한 기능이 담당하기 부적절하거나 일정 기간 특정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경우 TF조직을 만든다.

 

경찰청은 전국에 퍼져 있는 정보망을 통해 학교폭력 현장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경찰청 종합대책은 2012년 1월 26일, 정부 종합대책이 2월 7일에 나왔다. 조현오는 16개 지방청에 다니며 토론회 등으로 학교 폭력 문제를 중요 이슈로 만들었다. 경찰은 교육 당국과 일선 학교가 따라오도록 수레바퀴를 돌리는 동력을 만들었다. 경찰이 앞장서자 학교폭력 피해경험률이 2012년 초반 9.5%에서 2013년 하반기에는 1.8%까지 떨어진다.

 

 

경찰청에 여성청소년과가 생긴 것은 2005년이다. 그해 부산청장이던 어청수는 여성청소년과 업무로 학교전담경찰관(스쿨폴리스)을 운영한다. 하지만, 한 경찰이 맡는 학교 수가 너무 많아 세심한 관리는 버거웠다.

 

조현오는 스쿨폴리스 인력 확충과 동시에 학교폭력예방상담사 교육을 통해 스쿨폴리스가 학교폭력 문제에 전문성을 갖추도록 했다.

 

조현오는 일진 불량서클 해체만큼 선도에도 신경을 썼다. 제대로 훈방조치가 되는지 학교폭력점검대응반이 이를 점검했다. 2012년 경찰서부터 여성청소년과가 신설됐고, 2013년에는 각 지방청에도 여성청소년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013년 서울청장인 김용판이 서울경찰 100여 명을 스쿨폴리스로 전환했다. 여성청소년 업무가 발전하면서 경찰 인력자원이 몰리기 시작했다. 경찰 치안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물꼬를 튼 것이 조현오다.

 


 

한 경찰은 조현오가 이슈가 생기면 문제 근본을 건드리는 데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경찰과 같은 계급 조직에 이 같은 문제 해결 방식과 호불호가 강한 성격이 결합하자 적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현오가 물었다.

 

"경무과, 수사과, 정보과, 보안과 이런 것은 뭐 때문에 나눕니까?"

 

궁극적으로 경찰업무를 잘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 어느 조직이나 칸막이 행정이 될수록 일이 바로 가기 어렵다. 다른 경찰 간부 역시 칸막이 행정에 대한 문제의식은 조현오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달랐다.

 


 

다른 이들은 칸막이 행정은 책임 문제만 정확하게 선을 긋고 종합적인 의견을 모아 일을 추진하면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가장 믿음직한 사람에게 일을 맡겼다. 울산남부서장을 할 때는 업무 분담과 상관없이 수사과장을 불렀다. 살인사건 현장은 보통 형사과장이 책임을 진다. 사건 원인 파악부터 대책 마련은 정보과와 경비과가 맡는다. 하지만, 조현오는 수사과장을 불러냈다.

 

물론 시간이 촉박한 사안이라면 가장 업무역량이 뛰어난 사람에게 일을 맡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업무 능력이 부족한 직원을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경찰 간부들은 일을 주기 전에 사람 능력에 따라 방향을 정하기도 하며, 업무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에게는 간단한 일을 하나 맡겨놓고 어려운 일을 맡길 때 간단한 일을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조현오는 어땠을까.

 

고시계장 시절 조현오는 업무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을 처음에는 가르치려고 했다. 그러나 불성실한 업무 태도와 실수가 되풀이되면 조현오는 아예 결제 라인에서 뺐다. 면박과 무안을 주는 정도는 보통보다 강했다.

 

울산남부서장일 때 조현오는 아침마다 참모회의를 열었다. 과장에게 업무 관련 질문을 했다. 질문은 알고 던지기도 했고 논리적으로 궁금하면 물어보기도 했다. 막힘없이 답하는 것은 업무를 잘 챙긴다는 뜻이다.

 

보통 서장들은 대답을 잘 못하는 과장에게 다음부터 잘하라고 넘기고 나서 담당 계장에게 내용을 확인한다. 반면 조현오는 과장에게 들어오지 말라 하고 계장을 보내라 했다. 이 광경을 본 직원은 '권위적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했다.

 

'조현오 방식'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찰은 계급 조직인만큼 수평 질서와 수직 질서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급사회는 보고, 의전, 모양새, 형식 등을 유난히 따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현오는 관직은 사유물이 아닌 만큼 업무를 모른다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직원들은 첫인상부터 '독일병정' 같은 조현오가 업무 역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깨버리니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직원은 사람 좋은 것도 필요 없고 공무원은 밥값을 해야 한다는 게 조현오 철학이라고 말했다.

 

 

 

 

서울종암경찰서장 시절에도 업무에는 칸막이가 없었다.

 

교인 헌금으로 지은 한 교회가 있었다. 목사가 명의를 자기 앞으로 돌려놓으면서 일반 신도와 목사 쪽 신도가 충돌했다. 주말에 양측에서 서로 예배를 보겠다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런 일은 경비과장이 대책을 세우고 진압한다. 그런데 조현오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형사계장에게 권한을 전폭적으로 위임했다. 형사계장이 경비과 전의경 100여 명과 정보과, 형사과 인원을 이끌고 지휘했다.

 

조현오는 지방청장이 돼서도 업무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은 ‘없는 사람’ 취급했다. 대부분 지방청장은 참모인 과장을 의식해 무난하게 결제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조현오는 경비 지휘를 할 때조차 정보과장에게 작전을 맡겼다.

 


 

조현오 이미지 형성에 가장 영향을 미친 시기는 경찰청장 때다. 조현오는 인사정의, 부패척결 등을 내세우며 '7대 개혁과제'를 내놓았고 전담 TF팀을 구성했다. 한 고위간부는 TF팀이 해당 과에서부터 낮은 단계 협의가 이뤄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나온 내용을 국장이 청장에게 보고하는 체계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나 조현오는 ‘개혁’을 원했다. 하지만 계급이 높아질수록 변화를 싫어하는 성향을 보인다. 경찰이라는 계급조직 하에서 눈치 안 보고 개혁을 밀어붙일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적임자를 TF팀장 자리에 앉혔다. 조현오는 국장이 결제한 보고서가 맘에 안 들면 TF팀과 협의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조현오가 경찰 조직 질서를 수평과 수직 모두 흔드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국장 결제를 받은 보고서를 검토할 TF팀장 직위가 경정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호불호가 강한 조현오 성격도 한몫을 했다.

 

관리자 한마디는 격려든 질책이든 조직 안에서 더 큰 의미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조직 안에서 불만이 번지기 시작했다. 경찰청 국장(치안감)이나 부장(경무관)에게서 나오는 한마디는 힘이 실려 더욱 퍼졌다.

 

 

조현오는 이듬해 TF팀장도 총경으로 승진시킨다. 조직 내 비판 세력은 이 역시 조현오가 챙긴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조현오에게 중요한 것은 업무 적합성이었다. 보직에는 그 업무에 맞는 사람을 앉혀놓으려 했다.

 

황운하를 경무관을 승진시키고 나서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배치한 것도 한 예다. 수사 기획관은 그 자리가 주는 무게로 봐서는 경무관 3년 차 정도가 어울리는 자리라고 보통 생각한다. 조현오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경찰이기 때문에 그 업무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현오가 좋아하는 사람은 일 잘하는 사람, 업무 역량 뛰어난 사람이었고 인사권을 쥐자 그런 사람들을 그 자리에 꽂았다.

 

그렇다면, 조현오가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업무역량이 얼마나 뛰어난 것일까?

 

먼저 2010년 정보국장을 지낸 이철규를 보자. 그는 조현오가 경찰청장이 되자 충북청장에서 정보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2011년 말 조현오 체제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했다. 조현오와 3차 현장검증을 한 청담동 고급 한정식집이 바로 이철규와 깊게 얽힌 곳이기도 하다.

 

(다음 16화-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부친 까닭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구겨진 제복 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조현오는 서울구치소 안에서 이경백과 마주쳤다. 구속된 김광준 검사도 거기 있었다. 조현오 구속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 중에 황운하도 있다. 그는 경찰 안에서 ‘수사권의 상징’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경백, 김광준과 관련이 깊다.

 


 

황운하는 경찰대 1기 출신으로 1985년 입문했다. 2003년 용산경찰서 형사과장일 때 경찰이 검찰 비리를 직접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른바 법조브로커 ‘오달이’ 사건이다. 수사는 체포, 압수수색 등 강제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인신구속, 압수, 수색에는 반드시 법원 영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찰은 법원에 영장을 신청할 수 없다. 반드시 검찰 힘을 빌려야 한다.

 

수사권 핵심은 경찰이 피의자를 구속하거나 증거물을 압수하기 위해 영장청구권을 갖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황운하가 신청한 ‘오달이’ 계좌 추적 영장을 수차례 기각했다.

 

2005년 경찰청장인 허준영은 황운하를 경찰청 수사권개혁팀장으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이 공약했던 경찰수사권은 국회 입법화 과정에서 지지부진했다. 그동안 경찰이 부당함에 스스로 맞서야 한다는 주문도 불거졌다.

 

황운하는 2005년 전국 경찰에 공문을 보낸다. 공문에는 검찰과 잘못된 관행을 14개 항목으로 정리하고 앞으로 거부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중에는 ‘검사 면전 인치 요구 거부’도 있었다. 공문은 수사구조개혁팀장 이름으로 뿌렸다. 청장인 허준영에게 보고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공문을 받고 일선에서 나설 사람이었다.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

 

충남지방경찰청 소속 경감 한 명이 시발점이 됐다. 대전지방검찰청이 전화로 긴급체포한 용의자를 데려오라고 하자 거부한 것이다. 경감은 피의자 인적사항에 검찰 관련자가 눈에 띌 때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마침 경찰청에서 온 공문도 힘이 됐다. 검사 요구를 거부한 그는 검찰에 직무유기 등으로 기소됐고 재판에 넘겨졌다.

 

2006년 9월 5일 대전서부경찰서 서장이 두 번째였다. 그는 2006년 이택순이 경찰청장으로 부임하면서 경찰청 수사권개혁팀장에서 대전서부경찰서 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황운하였다. 그는 다시 경찰·검찰 사이 갈등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좌천된다.

 

 

2007년 4월 한화 회장인 김승연이 보폭 폭행을 저지른다. 이후 한화 고문과 경찰청장인 이택순이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택순은 결백을 증명하고자 검찰에 수사를 맡기겠다는 뜻을 내비친다. 황운하는 경찰 내부 게시판에 청장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고 다시 징계를 당했다.

 


 

2010년 대전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과장이던 황운하를 서울청 형사과장으로 발탁한 이는 조현오였다.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되자 황운하를 경무관으로 승진 인사하고 경찰청 수사기획관에 전진 배치한다.

 

수사기획관은 수사국이 맡는 중요 사건에 대해 수사 업무를 챙기는 자리였다. 당시 대검찰청도 중수부장이 수사기획관을 거느렸다.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지능수사대와 범죄정보과 등을 지휘한다. 모두 조현오가 경찰청장이 되면서 만든 새로운 기능이다. 조현오는 검찰 중수부와 범죄정보과 역할을 맡을 부서가 경찰에도 있어야 서로 감시·견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능범죄수사대는 고위공무원 비리, 경제사범과 같은 대형 사건을 인지해 직접 수사한다. 범죄정보과 역시 검사 등 비리 공직자 범죄 정보를 캐내고자 만든 기구다.

 


 

황운하가 수사기획관으로 처음 맡은 사건이 이른바 ‘디도스 사건’이다. ‘디도스 사건’은 2011년 10월 26일 보궐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와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 홈페이지가 사이버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사건 당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 수사에 들어갔다. <나꼼수>는 10월 29일 26회 방송에서 이 내용을 짚었다. 선관위 홈페이지 전체가 마비된 것이 아니라 일부 메뉴만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단순 사이버테러가 아니라 선관위 내부자 공모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경찰은 12월 1일 디도스 공격을 한 강 씨와 일당 3명, 이를 지시한 공현민을 검거했다. 공현민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구식의 수행비서관이었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경찰은 피의자 구속 열흘 안에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 이쯤이면 누구나 예상하는 앞날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시는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 조정’을 놓고 어느 때보다 예민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경찰 수사 허점을 놓칠 리 없었다.

 

 

선거 부정 관련 사건은 여야가 날카롭게 맞설 수밖에 없고 언론도 중요하게 다루는 사안이었다. 만약 경찰 수사 결과가 각종 의혹을 잠재울 만큼 명확하지 않으면 야당은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요구한다.

 

경찰은 2011년 12월 6일 국회의장인 박희태의 전 비서 김태경을 소환한다. 공현민과 김태경은 분명히 돈거래가 있었다. 사건 발생 전에 1000만 원, 사건 발생 후 9000만 원 등 모두 1억 원이 오갔다. 김태경은 사건 관련성을 모두 부인했다. 경찰은 사건 이후 오간 9000만 원은 범죄와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사건 직전에 건넨 1000만 원은 충분히 의심을 살만 했다. 그러나 공모 증거가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황운하는 이를 ‘대가성’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이제 수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민감한 사안 이인만큼 누구를 비호한다는 인상을 줘도 안 된다.

 

황운하는 12월 9일 자신감 있게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간제한이 있었던 점을 상기하거나 미흡한 부분은 검찰 수사에 넘기는 출구 같은 것을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다.

 

“공 씨 단독범행이며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이 발표가 나가자 여론은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다고 몰아붙였다. 경찰과 다른 검찰 판단도 축소·은폐 비난 여론을 부추겼다.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자 서울중앙지검은 첨단범죄수사2부를 주축으로 40여 명이 참여하는 수사팀을 꾸린다. 검찰은 2011년 12월 30일 박희태의 전 비서인 김태경을 구속한다. 당시 <나꼼수>는 32회 방송에서 이 내용을 언급하며 경찰 수사를 비판한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렸을 때 이미 뭔가 잡은 것이 있다. 1억은 검찰이 거둔 쾌거.”

 

하지만, 황운하가 예상한대로 검찰이 기소한 김태경은 2013년 3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는다. 하지만, 그때는 사건에 대한 관심이 이미 사라진 시기였다.

 

당시 언론은 12월 16일 조현오가 준비한 기자간담회를 주목했다. 보도를 보면 조현오가 기자간담회에서 함께 앉은 황운하를 질책했다고 나온다. 조현오가 배후를 거론하며 단독범행이 아닐 가능성을 열어두려 하자 황운하는 경찰 수사가 옳다고 받아친다. 조현오는 “가만 좀 있어봐라”며 황운하를 면박했다. 이를 언론은 ‘극단적 언쟁’, ‘적전 분열 양상’ 등으로 정리했다.

 

조현오와 황운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시 경찰 조직 안에서는 황운하를 인사 조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미숙한 발표가 조직에 너무 큰 부담을 줬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도 조현오는 황운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황운하는 자신이 발표한 수사 내용 근거를 더 설명하려는 듯했다. 길게 얘기해봤자 부작용이 더 커질 듯했고 조현오는 말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여론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오히려 화살은 조현오를 겨누기 시작했다. 조현오가 경찰 수사 발표 전인 12월 7일 청와대 정무수석인 김효재와 나눈 두 차례 전화통화를 문제 삼은 것이다. 경찰은 행정안전부 소속이고 행정안전부는 정무수석 소속이므로 김효재가 조현오에게 전화한 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당장 청와대가 돈거래 부분을 발표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청와대 압력을 받은 조현오가 황운하에게 지시했고 막판에 혼자 살겠다고 황운하에게 모든 책임을 씌웠다는 해석이 나왔다. <나꼼수> 32회 방송 내용이다.

 

 

“경찰이 수사를 잘 해놓고 마지막 발표를 하는 데 있어서 망가지고 있습니다.”(주진우)

“조현오 청장 때문이야. 청와대에서 오더가 왔어도 조현오 청장이 막았어야지.”(김어준)

 

그러나 황운하 예상대로 검찰 수사도 경찰과 차이가 없었다. 2012년 3월 26일 디도스 특검이 출범한다. 특검보 3명과 파견검사 10명을 비롯해 100여 명이 특검에 참여했다. 특검도 윗선이 수사 과정에 개입했는지 파악하고자 4월 19일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직원 2명을 불러 조사했다. 그리고 5월 21일 수사국장 강신명과 수사기획관 황운하, 마지막으로 5월 23일 조현오를 불러 조사한다.

 

조사 순서에는 의도가 있다. 우선 수사진을 조사한 내용은 상급자를 캐는 데 활용된다. 조사는 계단식으로 진행됐지만 언론이 원하는 건더기는 나오지 않았다. 특검은 2012년 6월 21일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먼저 김효재를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 상황을 국회의원인 최구식에게 알려줬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의혹 무마용’, ‘혈세 낭비’라는 비난이 특검을 향했다.

 

당시 사건 관계자는 여전히 디도스 사건을 ‘공현민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단독범행’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당시 <나꼼수>가 의혹을 제기한 근거가 됐던 증언들은 어떻게 봐야할까? 일반적으로 수사 담당자는 ‘진술’보다 과학을 우선했다. 예를 들어보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물속으로 가라앉은 후에도 탑승한 학생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경찰이 통신기록을 조회한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전 세모그룹 회장인 유병언이 변사체로 발견된 시점을 둘러싼 의혹도 떠올려보자. 유병언 변사체가 6월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이전에 발견됐다는 진술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경찰 수사를 불신하는 목소리는 높아졌다. 하지만, 경찰은 전산으로 남은 112 신고 시각과 사건 처리 기록을 바탕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디도스 사건에서 <나꼼수>가 선거관리위원회 내부 공모 의혹을 제기한 근거가 된 진술을 보자. 이용자는 인터넷으로 홈페이지 서버에 접속한다. 화면에서 늘 같은 부분은 홈페이지 서버에 저장돼 있고, 바뀌는 부분은 데이터베이스 서버에서 가져와 화면에 표시된다. 당시 <나꼼수>는 디도스 공격 중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화면 일부(데이터베이스 서버에서 가져오는 ‘투표소 정보’ 부분)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누군가 홈페이지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서버 연결을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분석한 결과는 홈페이지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서버 사이 통신은 정상이었다. 이러한 결론은 검찰수사와 특검을 통해서도 다시 확인됐다.

 

<나꼼수>가 ‘선관위 내부 공모’를 의심한 것은 일부 화면은 보이고 일부 화면은 보이지 않았다는 진술이 ‘진실’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경찰이 말하는 과학수사를 바탕으로 검토하면 거꾸로 그런 진술이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공현민을 비롯해 몇 명이 모여 벌인 일이 여야 정쟁, 종편 출연 같은 변수를 맞으며 순식간에 정국에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황운하에게는 권력을 비호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경찰 수사에서 윗선으로 지목된 박희태, 최구식 모두 디도스 사건과 관련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황운하조차도 생각한 그림이 아니었다. 황운하가 첩보를 입수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수사가 바로 ‘김광준 검사’ 사건이다.

 

(다음 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구겨진 제복 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서울과 경기는 스케일이 다르다. 연쇄살인이나 토막살인 사건 같은 강력 사건이 아니라면 경기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미디어 관심을 끌기 어렵다. 반면, 서울에서는 작은 사건과 집회도 어떻게 엮이느냐에 따라 정치적 이슈로 발전하기도 한다.

 

조현오는 2010년 1월 8일 서울지방청장으로 부임한다. 조현오는 바로 역대 서울청장 리더십 분석·평가한 내용을 접한다. 직원 여론과 불만을 수렴해 정책을 추진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현오가 밝힌 소감은 이렇다.

 

“다 좋은데… 이렇게 가자니 시간이 어디 있냐?”

 

보통 참모를 비롯해 지휘관 임기는 1년이다. 외사관리관, 감사관, 경비국장, 부산청장, 경기지방청장 등 조현오가 거친 곳에서는 어김없이 직원들 곡소리가 났다.

 

 

처음 3개월 동안 새로운 틀을 짜고 나머지 기간 강하게 추진해 그 틀을 정착하는 게 조현오 방식이었다. 조현오가 조직에 심고자 한 틀은 당연히 ‘성과주의’였다

 


 

조현오는 인사 과정에서 주관적인 지휘관 평가를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통상 인사는 심사위원회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서울청장으로 취임한 조현오는 바로 승진하고 싶은 직원을 강당에 모이도록 했다. 경정·경감 승진 대상자 225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7시간 남짓 면접이 이어졌다.

 

“자기가 승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봐라.”

 

조현오는 그 자리에서 담당 과장에게 면접한 직원마다 성과를 확인했다. 몇몇 직원은 승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약을 받기도 했다. 성과를 봤을 때 승진이 어려운 직원에게는 그 자리에서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면접에서 탈락이 확정된 직원은 ‘빽’을 쓸 기회조차 사라졌다.

 

당시 직원들이 가장 힘들었던 게 이 같은 인사 방식이었다. 조현오는 2~3개월에 한 번씩 성과 우수자를 내부에 공개해 승진 인사에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경쟁에 내몰린 직원들은 안팎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2014년 기준 부산은 경찰서가 15개, 경기도는 41개, 서울은 31개가 있다. 지역이 넓으면 지방청장이 일일이 챙길 수 없으므로 각 경찰서 서장이 치안을 책임져야 한다.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경찰서 단위로 평가를 진행했다. 성과가 좋은 경찰서는 혜택을 받았고 성적이 나쁜 경찰서는 집중감찰을 받았다. 조현오가 서울지방청을 맡은 시기에는 이 같은 평가 시스템이 무르익는 단계였다. 조현오는 평가 시스템을 적용하기 전에 개념을 구체화하고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장들과 회의를 했다.

 

“방배경찰서는 치안 수요가 적은 곳인데, 우리는 성과를 많이 낼 수 없어요.”

“종로경찰서와 남대문경찰서는 경호와 행사가 빈번해 실적을 많이 올릴 수 없습니다.”

 

조현오는 불평·불만을 끝장토론, 공청회, 간담회로 돌파하고자 했다. 통상 서울지방청 직원은 2만 3000여 명, 경기지방청 직원은 2만여 명이다. 이 정도 규모면 아무리 청장이라도 직원 공감 없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선 경찰서 정도 규모면 서장이 직원을 마음먹은 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실적을 내지 못하면 집중감찰 대상이 된다. 서장부터 일선 경찰까지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강북경찰서장인 채수창도 이 같은 압박에 시달렸다. 조현오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채수창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도 실적주의에서 살아남으려고 제 직원이 검거 실적을 올리도록 굉장히 독려하고 채찍질을 했습니다.”

 

인사에 대한 불만과 성과주의로 말미암은 피로는 경찰 조직에 꾸준히 누적됐다. 2010년 6월 23일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경찰관 4명이 구속된다. 피의자에게 고문·가혹행위를 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는 2009년 8월에 시작된다. 조현오 인사청문회 위원인 정수성은 증인으로 참석한 채수창에게 이 점을 확인한다.

 

“증인은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에 조 청장 책임도 있다며 동반 사퇴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양천서 피의자 고문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생긴 일이고 조현오 내정자는 올해 1월 서울청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양천서 고문 사건과 조현오 실적주의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은 결과적으로 조현오식 성과주의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통로가 된다.

 


 

역풍을 맞게 된 조현오에게 악재가 이어졌다. 강남 룸살롱 업주 유착 사건이다. 이 사건은 가출한 여학생 A양을 서초경찰서 실종팀이 성매매 업소에서 찾아내면서 시작된다. 가수 지망생인 A양은 미성년자였다. 업소 사장 이름은 이경백이었다. 웨이터 출신인 이경백은 2000년 북창동에서 룸살롱을 개업하고 강남 일대에서 유흥업소를 기업형으로 운영했다. ‘룸살롱 업계의 스티브 잡스’, ‘룸살롱의 황제’ 등으로 불리게 된 비결은 다방면에 비호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 단속반에 뇌물도 잘 바쳐야 했다.

 

경찰 단속을 비롯한 유흥업계 정보는 이경백을 거쳤다. 2006년 한화 회장 김승연이 폭행을 저지른 것을 경찰에 흘린 것도 이경백이었다. 경찰은 이경백과 단단히 엉켰고 조직은 점차 곪아 들어갔다. 이경백을 수사한다는 것은 경찰 조직의 종기를 도려내는 일이었다. 그전에 경찰은 이미 이경백에게 농락당한 적도 있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혐의를 포착해 이경백을 수사하려 했을 때 그는 오히려 수사관이 접대받은 내용을 확보해 수사팀을 엎었다.

 

외압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원래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은 생활안전과 소관이다. 하지만 조현오는 형사과에 이 사건을 맡긴다. 당시 형사과장은 황운하 총경이었다.

 

통화기록 분석부터 시작했다. 이경백이 지난 1년 동안 휴대 전화 두 대로 통화한 기록은 몇 만 건이었다. 등록된 사람만 1500명이 넘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적잖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검찰은 경찰이 긴급 체포한 이경백을 풀어줬는데, 수사를 이끈 황운하는 언론 브리핑에서 검사 실명을 거론하며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말한다.

 

 

이경백도 만만찮았다. 구속되면 그동안 바친 뇌물 내용을 모두 검찰에 불겠다며 맞섰다. 조현오는 오히려 이경백이 검찰에 뇌물 관련 내용을 불기를 기대했다. 검찰 수사이긴 하지만 경찰 비리를 도려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이경백과 통화 기록이 있는 경찰관 63명이 적발됐다. 조현오는 이미 취임할 때부터 업주 관계자와 공무 외에 전화 한 통, 물 한잔도 하지 말 것을 지시한 상태였다. 통화 내용을 소명하지 못한 경찰은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39명이 징계를 받았고 이 가운데 6명은 파면됐다.

 

“조현오가 범서방파 행동대장 출신과 의형제라더라.”

“조현오가 유흥업소에 10억 원을 투자해 월 2500만 원씩 배당금을 받는다.”

 

그즈음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조현오가 조폭과 의형제이며, 조현오 서울청장 비서실장도 연루됐다는 식으로 소문은 점점 덩치를 키웠다. 인터넷에서도 조현오가 강남 유흥가 조폭과 수십 차례 통화했다는 글이 돌았다. 민정수석실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조현오는 그를 옥죄는 의혹에 정면 대응하는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비서실장을 감찰해서 비위 사실이 있으면 엄하게 처벌할 것이고, 내 휴대전화 통화내역까지 모두 공개하겠다.”

 

조현오는 자신도 수사 대상에 넣었다. 서울청 수사부장인 박상용에게 자기 계좌열람동의서도 전달했다.

 

형사과장 황운하는 결국 이경백을 탈세와 성매매 혐의로 6월에 구속한다. 조현오는 이경백이 구속되고 두 달 후인 2010년 8월 경찰청장이 된다. 하지만, 이경백도 곧 보석으로 풀려났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으며 유유히 빠져나온다.

 

(다음 9화 –조현오, 경검 수사권 조정 어떻게?)

 

서형 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

•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

•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

•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2010년 2월 10일, 112 신고가 들어왔다.

 

불법 오락 신고자를 오락실 사장이 찾아내 폭행한 보복범죄 사건이었다. 오락실 사장이 신고자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오락실 사장에게 뇌물을 받은 경찰관이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컸다. 서울청장 조현오는 황운하에게 유착 경찰관 색출을 지시했다. 오락실 사장은 이미 휴대전화도 지니지 않은 채 잠적했다.

 

잠적한 용의자를 휴대전화 추적이 아닌 방법으로 하루 이틀 내에 찾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용의자를 붙잡았다 해도 자백을 받아내는 일도 문제였다. 자백을 받으면 해당 경찰관에게 또 자백을 받아야 했다.

 

집요한 수사 끝에 오락실 사장을 검거했고, 자백도 받았다. 그 결과 형사과장 황운하는 2010년 2월 25일 그 사장과 유착관계였던 강남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 네 명을 구속, 한 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2월에는 서초경찰서가 한 가출 여학생을 찾고 있었다. 통화기록 조회로 위치 추적이 가능했다. 여학생은 한 유흥업소에 있었다. 여학생은 업소에서 성매매를 강요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업소 장부를 압수하고 종업원 조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업소 주인은 바지사장이고 실소유주는 이경백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경백은 미성년자 성매매를 강요한 업소 실소유주로 긴급 체포됐다.

 

이렇게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피의자를 수사관서 등 일정한 장소에 인치하여 단기간 신체 자유를 제한하는 게 체포 제도다. 형사소송법은 사법경찰관이 긴급체포를 하면 검사에게 사후 승인을 받게 돼 있다.

 

미성년 성매매 문제로 사안이 심각했으나 검찰 기각으로 이경백은 풀려난다. 이 소식이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보고됐다. 황운하는 서울청 기자실에서 검찰에 대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성매매 사건은 생활안전과 담당이다. 하지만, 조현오는 황운하를 부른다. 황운하는 다시 폭력계 팀과 이 사건을 의논한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미 이경백을 잘 알고 있었다. 2008년 자신을 수사하려던 경찰청 특수수사과를 박살 낸 인물로 알려졌다. 당시 특수수사과에 발령받은 한 직원은 6명이어야 할 팀원이 2명뿐인 이유가 궁금했다. 확인하니 세 명은 이경백 때문에 날아갔고 나머지 한 명은 스트레스를 받아 병가 중이라고 했다.

 

이처럼 이경백을 잡으려면 완전히 벗겨야 했다. 어설프게 접근하면 다치는 쪽은 경찰이었다. 꼼꼼하게 수사해야 검찰도 구속영장 청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황운하는 수사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경백은 업소마다 바지사장을 내세웠다.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이 없었다. 수익은 추적할 수 없도록 세탁했다. 서초경찰서가 압수한 자료 중에는 업소 장부가 있었다. 일부 업소와 최근 3년 동안 매상이 적힌 장부였다.

 

수사팀은 이 장부가 신빙성 있는지 입증해야 했다. 73개 계좌에 흩어진 자금을 추적하는 일이다. 빼돌린 세금까지 찾으려면 국세청 직원 도움이 필요했다. 처음 수사를 시작했던 서초경찰서 팀과 서울청 팀까지 수사팀 합류 인원은 18명이었다.

 

이경백은 자신은 실소유주가 아니라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 막바지에 이경백은 황운하와 면담했다. 황운하가 카드를 내밀었다.

 

“비호세력 몇 명 불어라. 그럼 혐의 몇 개는 빼주겠다. 그거 안 하면 끝까지 죽는다. 내가 경찰에 있는 한 죽는다.”

 

“제가 평생 모시겠습니다. 퇴직 후에도 진짜 책임지겠습니다.”

 

“너하고 다른 할 말 없다. 너 혹시 나중에 빽 써서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경찰에 있는 동안 끝까지 쫓아다닐 거다. 내가 경찰을 그만둬도 내 후배들이 계속 경찰에 있을 거다. 네가 죄지은 만큼 응징을 받아라.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뇌물 바친 공무원을 부는 것밖에 없다.”

 

이경백 표정에는 구속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경찰은 3년 매장 장부에서 42억 세금 탈루액을 특정했다. 한 해에 14억씩 빼돌린 셈이다. 한 해 10억 원 이상 탈세는 10년형도 가능하다. 경찰은 이경백을 특별경제가중처벌법 조세법위반, 성매매알선, 전자금융거래법, 청소년 보호법, 범죄수익은닉 등으로 영장을 청구했다.

 

이경백은 2010년 6월 24일 구속된다. 그날 수사팀은 노래방을 갔다. 황운하는 김정호 노래를 골랐다.

 

예상대로 검찰은 경찰 수사 내용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성매매업소에 온 여성이 청소년인 줄 몰랐다는 이경백 주장을 수용했다. 그리고 경찰이 특정한 세금탈루액 42억 원 중 21억 원만 기소했다. 한 해에 7억 원씩 빼돌린 셈인데, 10억 원 미만은 보석 가능성이 커진다. 검찰은 이경백을 오직 세금 누락과 성매매 알선, 청소년 보호법 위반 세 가지만 기소했다.

 

이경백을 구속하자 두 번째 수사가 기다렸다. 경찰은 이미 이경백 휴대전화 통화기록 조회 영장을 모두 받았다. 당시 이경백은 대포폰을 사용했다. 먼저 이경백이 사용하는 대포폰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이경백 대포폰을 찾아냈고 그 휴대전화로 지난 1년 동안 경찰관 69명과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공직자는 업주와 어떻게 엮이는가? 처음에는 커피 한 잔부터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간단한 식사, 그다음 저녁에는 소주 한 잔, 그러다가 노래방을 간다. 한 사람이 포섭되면 그 직원은 자신과 친한 직원을 데리고 온다.

 

이경백은 특히 한 번이라도 만났던 공무원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가 운영하는 수십 개 업소가 인맥 형성을 뒷받침했다. 이경백은 이미 1997년 북창동에서 호객꾼 노릇을 할 때 파출소 직원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인맥을 유지했을 테다.

 

당시 서울청장 조현오는 업주 관계자와 공무 외에 전화 한 통, 물 한 잔도 말 것을 지시했다. 자진 신고기간을 주기도 했다. 지시를 어긴 직원은 숙청하듯이 날려버렸다. 이경백과 통화한 명단은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실로 전달됐다.

 

“수사 강도가 하도 세서 자기 새끼들 다 죽이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이를 지켜본 한 경찰관의 회상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유흥업소 업주와 접촉 금지' 지시 위반으로 40명을 징계했고 이 가운데 6명을 구속했다.

 

예상대로 이경백은 구속 3개월 만인 9월 7일 보석으로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된다. 경찰청장이 되면 대외적으로 조직에 대해 입장표명을 해야 했다. 바로 수사권이다. 당시 국회 사법개혁 소위원회가 구성돼 검찰 개혁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다. 국회를 중심으로 장이 마련된 만큼 경찰은 자기 조직 견해를 밝혀야 했다.

 

조현오는 호전적으로 알려졌다. 명분 있는 싸움은 애써 피하지 않았다. 취임 초기 수사구조개혁팀을 수사구조개혁단으로 격상한 데서도 이런 기질이 엿보인다. 이전부터 개혁팀을 경무관이 책임자로 있는 개혁단으로 격상하자는 제안은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면 검찰과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주변에서는 조현오가 황운하를 경무관으로 승진시켜 이 자리에 앉히려 한다고 봤다. 실제 그해 조현오는 경무관 승진인사에 황운하를 포함했다. 하지만, 검찰 출신 민정수석인 권재진이 반발했다. 황운하가 서울 서장 경험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조현오는 바로 황운하를 송파서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음 인사에서 황운하를 경무관으로 승진시켰다.

 

그동안 형사소송법 개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조현오는 전국지휘관회의에서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 검찰에 타격도 입혔다. 2011년 말 경찰청에 범죄정보과와 지능범죄수사대가 설치됐다. 경찰청 내 신설 조직은 이런 의미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사기능을 행하는 곳은 검찰과 경찰이다. 비록 경찰이 검찰 수사지휘를 받지만 경찰 특수수사기능이나 범죄정보 기능이 살아 있으면 검찰 부패비리를 견제할 수 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고위공무원 비리, 경제사범과 같은 대형 사건을 인지해 직접 수사한다. 범죄정보과 역시 검사 등 비리 공직자 범죄 정보를 캐내고자 만든 기구다. 검찰에는 중수부와 범죄정보과가 이런 기능을 했다.

 

조현오가 경찰청장이 되면서 만든 새로운 기능 중에 수사기획관이 있었다. 경찰청 지능수사대와 범죄정보과 등을 지휘하면서 수사국이 맡는 중요 사건에 대해 수사 업무를 챙기는 자리였다. 당시 대검찰청도 중수부장이 수사기획관을 거느렸다. 수사기획관이라는 보직은 그 자리가 주는 무게감과 중요성으로 경무관으로 승진한 사람이 바로 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조현오는 바로 황운하를 수사기획관으로 내정했다.

 

“황운하는 수사경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 세워라. 일상적인 업무 하지 마라.”

 

황운하도 경찰 존재감과 자존심을 드러낼 수 있는 이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현오 청장이 바로 태도를 바꾼다. 예상치 못한 일이 전국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황 기획관은 무슨 이런 계획을 세우는 거 하지 말고 지능수사대, 특수수사과, 범죄정보과 끌고 디도스 수사를 해라.”

 

‘디도스 사건’은 2011년 10월 26일 보궐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와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 홈페이지가 사이버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사건 당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 수사에 들어갔다. <나꼼수>는 10월 29일 26회 방송에서 이 내용을 짚었다. 선관위 홈페이지 전체가 마비된 것이 아니라 일부 메뉴만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단순 사이버테러가 아니라 선관위 내부자 공모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경찰은 12월 1일 디도스 공격을 저지른 강 씨와 일당 3명, 이를 지시한 공현민을 검거했다. 공현민은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구식을 보좌하는 수행비서관이었다. 경찰은 2011년 12월 6일 국회의장인 박희태를 모신 전 비서 김태경을 소환한다. 공현민과 김태경은 분명히 사건 발생 전 후로 돈거래가 있었다. 김태경은 사건 관련성을 모두 부인했다. 공모 증거 또한 없었다.

 

이쯤이면 누구나 예상하는 앞날이 보이기 시작한다.

 

선거 부정 관련 사건은 여야가 날카롭게 맞설 수밖에 없고 언론도 중요하게 다뤘다. 만약 경찰 수사 결과가 각종 의혹을 잠재울 만큼 명확하지 않으면 야당은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요구한다. 게다가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 조정’을 놓고 어느 때보다 예민할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경찰 수사 허점을 놓칠 리 없었다.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당시 조현오 청장이 배후에 대한 여지를 열어두자고 설득했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누구를 감싼다는 인상을 주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사 결과라면 진실 여부를 떠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경찰은 피의자 구속 열흘 안에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 이를 내세워 수사에 시간제한이 있었던 점을 상기하거나 미흡한 부분은 검찰 수사에 넘기는 방법으로 폭풍을 피할 수도 있다.

 

수사결과가 일반인들이 믿고 싶어 하는 방향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황운하는 왜 당당하게 경찰 수사결과를 드러내지 못하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황운하는 단호했다.

 

"열어둘 여지가 없습니다."

 

"황 기획관이 너무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단정적으로 하셔도 좋습니다. 배후 없습니다."

 

황운하는 세간 여론에 휩쓸리기보다는 수사경찰로서 자존심과 당당함이 중요했다. 그리고 12월 9일 디도스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 씨 단독범행이며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다음 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글쓴이 : 서형 seohyung224@gmail.com


서형작가 다른 연재물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서형작가 다른 연재물 ☞ 구겨진 제복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풍운아 황운하>는 제가 2018년에 쓴 연재물입니다.

 

 

 

 

법을 아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법 위에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배우 박중훈이 주연을 맡은 OCN 방영 드라마 <나쁜 녀석들-악의 도시>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이 사회 법 위에 있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악행들을 펼쳐 보입니다.

 

처음에는 돈 많은 기업인인가 싶더니 권력과 부에 미친 검찰 지검장 악행이 드러나지요. 이들이 구속되자 착한 권력으로 보이는 새 지검장이 들어섭니다. 그다음 ‘나쁜 녀석들’로 강력계 형사들이 급부상하지만 이 역시 검찰 조직이 뒤를 봐줬다는 게 드러납니다. 결국 착한 권력으로 생각했던 새로운 지검장도 ‘조직 보호’ 논리 앞에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국정원과 검찰 권력 견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검찰 조직도 인사 물갈이가 이뤄졌습니다.

 

드라마 <나쁜 녀석들>은 검사장 한 명 바뀐다고 해서 썩을 대로 썩은 검찰 조직 개혁이 쉽게 이뤄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한 가지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면 된다고 합니다.

 

경찰 수뇌부가 보기에 통제가 안 되는 아주 ‘나쁜 녀석’이 이런 주장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바로 경찰 황운하입니다. 상대가 악이라고 생각하면, 발언 수위가 자기 상사든 대통령이든 거침이 없습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경찰 수사권 독립 역사와 궤를 같이 한 이 인물을 눈여겨보고 취재했습니다.

 

이 연재는 경찰 황운하(현 울산경찰청장)의 인생을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형>

 

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

•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

•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

•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2012년 말 경찰과 검찰이 첨예하게 맞붙은 사건이 있었다. 이를 두고 한 기자는 유사 이래 경찰이 검찰에게 날린 최고 ‘빅엿’이라는 표현을 썼다. 바로 ‘김광준 검사’ 사건이다.

 

수조 원 단위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이 숨긴 자금을 추적하던 경찰은 자금 일부가 검찰 특수부 출신 검사 김광준이 만든 차명계좌로 흘러간 단서를 포착했다. 경찰은 디데이를 정하고 김광준 차명계좌 관련자를 전원 조사하고자 전국으로 흩어졌다. 이 가운데 차명계좌 주소지 조사를 위해 한 지역에 모인 경찰들은 주변 장소가 무척 낯익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 어디서 봤던 데 아냐?”

 

그곳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 촬영 장소였다. 영화는 1996년 인천서부경찰서 형사들 활약을 소재로 했다. 1980~1990년대 수사는 잠복과 탐문에 의존했다. CCTV나 블랙박스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여죄를 밝히는 과정에서 영화처럼 용의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주연 배우 박중훈은 당시 인천서부경찰서 형사 박재인이 하는 말과 행동을 따라 했다.

 

“눈에 힘 빼.”, “맞았다고 변호사 대. 그런 거 무서우면 형사 안 해.”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고 자란 세대 일부가 직업으로 경찰을 선택했다. 그리고 2012년 경찰 수사에서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청 지능수사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낸 최대 결과물이 ‘김광준 사건’이다.

 

여기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김광준 사건을 관통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경찰 황운하다. 영화 배경인 1996년 당시 인천서부서 형사과장을 지냈으며 2012년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김광준 사건을 지휘하기도 했다.

 

‘검찰 저격수’, ‘싸움닭’, 이라는 황운하를 수식하는 말처럼 그는 상명하복 관계로 인식됐던 검찰과 부딪히는 상황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2011년 경찰은 조희팔 계좌추적을 하다가 어떤 최〇〇씨 계좌를 발견했다. 하지만 은행 CCTV를 통해서 그 계좌를 이용한 사람은 최〇〇씨가 아니라 김광준 검사임을 확인한다.

 

경찰은 조용히 그 차명계좌에 입금한 사람들을 조사했고 정제된 보고서를 완성했다. 주 타깃은 김광준 검사였는데 황운하 수사기획관이 뒤를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검찰이 눈치채고, 김광준 사건을 자신들이 수사하겠다고 나서자, 경찰은 사건 빼앗기라며 반발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경찰 수뇌부는 황운하를 수사연수원장으로 보낸다. 이후 검찰이 사건을 가져가 김광준 검사를 기소했고 법원에서 뇌물수수로 징역 7년형을 받았다.

 

2012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그 후로 황운하는 수사 부서를 맡진 않았지만 언론 노출이 잦았다. 박근혜 정권 들어 무너진 경찰 인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렇게 튀는 언행으로는 아예 승진이 물 건너간다는 주변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 못한 박근혜 탄핵 후,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황운하는 치안감 승진을 하며 새롭게 비상을 했다.

 

이렇게 거칠 것이 없기에, 황운하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관심은 황운하 입을 향했다. 정작 인간 황운하, 경찰 황운하를 향한 접근은 없었다. 그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황운하가 드러낸 언행이 경찰 조직에 발전을 가져왔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건, 검찰 권력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으려는 일관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저항이 가능했던 것은 황운하에게 흐르는 반골기질 때문이라 본다.

 

필자는 이런 기질이 어디서 시작하여 촉발됐는지 궁금했다. 이야기는 경찰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황운하가 겪은 삶부터 시작한다.

 

황운하는 196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와 정착했다. 황운하는 아버지가 경로당에서 다른 노인과 신념 문제로 자주 부딪혔다고 기억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고집만 세운다며 나무라곤 했다. 어머니는 슬기로운 분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고등학생 황운하는 우등생이었다. 황운하는 서울 명문대에 입학해 과외를 하면서 학비를 벌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이상한 지점에서 틀어졌다. 1980년 전두환은 과외를 금지하는 ‘730 교육개혁 조치’를 단행한다. 서울 명문대에 다니겠다는 꿈은 꺾였고 다른 대학보다 차라리 경찰대 입학이 낫다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경찰이 되면 뭔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황운하는 1985년 경찰에 입문해 소대장, 중대장, 부대장을 지냈다. 경찰은 계급에 따라 일정 기간 돌아가며 집회·시위를 담당하는 기동대장, 중대장·소대장을 맡는다. 이 시기를 함께 했던 직원들은 황운하가 부하 직원을 잘 포용하는 상관이었다고 기억했다. 한 후배는 술에 취해 황운하가 사는 자취방을 찾아갔던 일화를 들려줬다.

 

“한참 자다가 배가 고파 깼는데 냉장고에 얼린 떡이 있더라고요. 녹여서 먹으려고 프라이팬에 떡을 놓고 식용유를 두른다는 게 그만 꿀을 부었지요. 떡은 탔고 술에 취해서 그냥 그대로 잤어요.”

 

 

 

타는 냄새에 잠을 깬 황운하는 뒤처리를 해놓고도 전혀 후배를 나무라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아량 넓은 어머니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황운하 특징으로 ‘배포’를 기억하는 직원도 있었다. 1989년 황운하가 종암경찰서 파출소장 시절이다. 관내 시장에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한 정육점 주인이 칼과 칼갈이를 들고 소동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파출소 직원 두 명과 의경 등 세 명이 출동했다.

 

현장에서 정육점 주인은 칼과 칼보다 더 긴 칼갈이를 들고 시장 포목점에서 천을 자르며 난동을 피웠다. 출동한 파출소 직원이 정육점 주인을 향해 가스총을 쐈다. 하지만, 정육점 주인은 순간적으로 피했고 반대쪽에 있던 다른 파출소 직원이 가스를 맞았다.

 

 

경찰 한 명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른 한 명을 현장을 장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황운하가 도착했다. 황운하는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흥분한 정육점 주인이 소리쳤다.

 

“당신 누구야?”

 

“내가 여기 장암파출소 소장 황운하다. 대화를 하자."

 

황운하는 거리를 두고 정육점 주인을 설득했다. 결국 황운하는 정육점 주인에게 수갑을 채웠다. 이렇듯 황운하와 함께 했던 직원들은 그를 가리켜 이 ‘포용력’과 ‘배포’를 가진 덕장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다른 증언은 전혀 뜻밖에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경찰이라는 계급 조직에서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1993년 대통령 김영삼이 당선 직후 서울 신당동에 있는 중대를 방문했을 때 일화다. 당시 이 현장에 있었던 한 직원은 이렇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기동대는 대통령 맞이 예행연습을 했지요. 황운하 중대장이 맨 앞에 서 있었고, 대통령이 악수를 하면 각자 신고를 하는 연습이었습니다. 기동본부장이 대통령 역할을 했지요. 악수를 하던 기동본부장은 황운하 중대장에게 시계를 풀라고 했어요. 당시는 경찰이 부정부패 이미지 때문에 고급 차를 몰거나 고급 시계를 못 차는 분위기였거든요. 황운하는 롤렉스를 차고 있었어요.”

 

기동본부장이 시계를 가리키며 지시했다.

 

“빼.”

 

황운하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뺄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기동본부장은 단호했다.

 

“무슨 소리 하고 있어? 경찰관이 롤렉스를 차면 안 되는 거 몰라? 빼!”

 

황운하는 조근조근 다시 설명했다.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이튿날 다시 예행연습이 반복됐다. 기동본부장은 여전히 황운하 손목에 있는 시계를 발견했다.

 

“어제 빼라고 했는데?”

 

이 일화를 전한 이는 황운하가 그때도 다시 조근조근 말대꾸를 했다고 기억했다. 이후 기동본부장은 전체 지휘관 회의에서 황운하를 겨냥해 거칠게 비난하기도 했다.

 

황운하는 왜 그랬을까? 황운하는 기동대 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경찰이 집회·시위 현장에 과잉 동원되는 게 자존심 상했다. 직업 경찰에게 동원 수당을 준다면 저렇게 작전을 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외부 위문·격려 물품이 경비 계통에 들어오는 것도 못마땅했다. 경찰이 거지도 아닌데 왜 위문을 받고 라면과 빵을 받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없어 보이는 경찰이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황운하는 당시 매형이 하고 있던 롤렉스 시계를 달라고 하여 손목에 차고 다녔던 것이다.

 

1985년 경찰이 된 황운하는 1995년 경찰서 과장(경정)으로 승진하기까지 13년 동안 썩 바라지 않는 보직을 거쳤다. 종암경찰서 형사 반장, 대전동부경찰서 형사계장 경험으로 서울에서도 거악과 맞설 수 있는 형사계장으로 가고 싶다고 편지도 썼으나 소용없었다.

 

이 시기 직원들이 보기에 황운하는 고집이 셀뿐 평범했다. 당시 직원들이 기억하는 ‘황고집’은 주로 인사에서 발휘됐다. 19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경찰서 계장 자리는 여러 경로로 뇌물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좋았다. 경찰서 인사는 서장이 지시해도 해당 부서 과장이 승인해야 한다. 1995년 황운하는 서장이 추천한 직원을 부패하다는 평이 있다며 거절했다.

 

거절 직후 주말에 황운하는 직원들과 치악산에 놀러 갔다. 서울에서 치악산까지 가는 길에 휴대전화가 내내 울렸지만 황운하는 서장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다. 이러한 황운하의 자존심이 고집과 결합하면서 상사를 애먹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질들은 수사를 만나며 황운하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황운하는 1995년 경정으로 승진한 후, 인천서부경찰서(1996년)를 서울 중랑경찰서(1998년), 성동경찰서(1999년), 마포경찰서(2000년), 용산경찰서(2001~2003년), 강남경찰서(2003년)를 돌며 형사과장을 지냈다.

 

황운하가 경찰 수사권 아이콘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성동경찰서 형사과장 이후다.

 

당시 형사들은 형사과장에게 자기 반에 형사 한 명 더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다른 인원이 없어 쩔쩔매는데 형사들은 검찰에 파견 나가서 검찰 수사를 돕고 있었다. 황운하는 이 시기에 검찰 파견 경찰을 모두 철수시킨다. 고집과 배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1996년부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전면 철수가 아니라 실력 있는 형사를 반드시 복귀시키는 정도였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배우 박중훈이 연기한 형사 박재인도 당시 인천검찰청에 파견됐는데 황운하가 인천서부경찰서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해 ‘김포토박이파’를 검거하는 쾌거를 거둔다. 당시 관내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행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가 이미 수배를 내린 김포토박이파 소속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또 감청을 통해 용의자가 한 호텔 지하 룸살롱에 있다는 정보도 입수한다. 황운하는 형사들과 룸살롱을 급습했다.

 

“다들 벽을 향해 돌아서!”

 

한 명이라도 뻣뻣하게 나오면 바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경찰서에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형사 반장이 과장실로 황급하게 들어왔다.

 

“잘못 데려왔는데요.”

 

반장은 지금 데려온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난리를 치고 있다는 보고도 했다. 형사들도 상황을 수습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황운하는 씩씩거리는 20대들을 모두 과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다짜고짜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벌써 룸살롱에서 술이나 처먹고 다녀? 부모님들에게 연락해서 무슨 돈으로 술 먹었는지 다 조사해야겠다!”

 

그들은 더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당시 황운하에게 상황을 보고했던 반장은 어느덧 노인이 됐지만 경험도 적고 나이도 어렸던 과장 황운하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당시 인천서부경찰서 형사들은 ‘파주 용주골 사건’을 가장 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황운하가 전 형사들을 동원해 다른 관할지인 파주에 있는 집창촌 용주골을 쓸어버린 사건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 )

 

 


 

 

서형작가 다른 연재물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

sweet-scent.tistory.com

서형작가 다른 연재물 ☞ 구겨진 제복

 

구겨진 제복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조현오 전 청장(이하 호칭 생략)은 차명계좌 발언으로 많은 사람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겼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출소 후 2014년

sweet-scent.tistory.com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