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1화. 보험성뇌물의결말 (폭로자 김학성 시선)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제5화. 난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변호사 시선)

⦁제6화. 대검케어가최고야. (작가 시선)

 

 

 

 

 

 

 

나를 케어해줘 마지막 화, 대검 케어가 최고야(작가 시선)

 

 

2016년 9월 초 김학성이 오랫동안 김형준 검사 스폰서 노릇을 했다는 뉴스가 도배됐다. 나도 보도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꽤 많은 수감자를 접하고 취재했다. 그중 김형준을 특별하게 기억한다.

 

김학성이 스폰서 노릇을 했다는 폭로로 김형준은 2016년 10월 구속됐다.

 

나는 김형준에게 편지를 보냈다. 대부분 고위직 출신 수감자들은 편지를 받았다고 바로 답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편지를 보낸 이가 지인도 아니다. 그런데 김형준은 바로 답장했다. 뭘 믿고 내용도 절절한 편지를 보냈는지 오히려 의아했다.

 

 

 

그러나 재판을 보면서 이해 되기 시작했다.


 

검찰은 당시 김학성과 김형준 사이 메신저와 통신 기록을 모두 확보했다. 통화 기록만 봐도 하루 동선은 파악된다. 주고받은 메시지와 통화 내용을 비교하면 특정 날짜에 서로 만났는지 정도는 확인된다.

 

변호인은 이를 근거로 현금수수는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학성은 자신과 오강수를 김형준이 부장검사실로 불러 편의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 부분도 검토했다. 김학성은 김형준 외에도 다른 검사들에게 더 자주 불려 다녔다. 이유는 간단했다. 김학성이 범죄 정보를 제공하면서 재벌과 정치인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시했기 때문이다.

 

김형준도 김학성이 제공한 범죄 정보가 가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김학성이 출소하고 나서도 김형준은 범죄 정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계속 문자를 보냈다.

 


 

변호인은 증거인멸 부분도 따졌다. 당시 채권자들은 김학성 휴대전화 번호를 알았다. 김학성도 채권자에게 협박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김학성은 이 휴대전화를 해지하고 초기화해 동생에게 건넸다.

 

동생이 보면 곤란한 사진과 문자 때문에 초기화한 게 아닐까. 업무용 다이어리도 자기 횡령 사건 관련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없애놓고 김형준 지시로 없앴다고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형준 변호인이 하나씩 따진 내용은 모두 받아 적었다. 그렇게 모은 내용이 수백 쪽 분량이다.

 

그런데 피고인 신문이 시작되자 김학성은 허위진술을 했다며 말을 바꾼다. 오히려 대검 수사팀이 사건을 무리하게 수사했다고 질타했다. 검사들은 당황했다. 김학성 발언이다.

 

“2016년 9월 검찰이 자신을 구속시키는 이유가 김형준 검사의 비위를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김형준을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때마침 대검 수사팀 의도가 느껴졌고 그에 맞춰 진술했다.”

 

1심 재판 선고가 나왔다. 검찰과 피고인 측 모두 항소했고 항소심이 열렸다.

 

김학성은 검찰 수사 때 진술이 진실이었다고 말을 또 바꿨다. 김학성은 왜 진술을 계속 번복했을까.

 


 

먼저 1심 재판 막바지에 그동안 검찰 진술이 거짓이었다고 말한 배경부터 보자.

 

김학성이 설명한 상황은 이렇다.

 


 

1심 재판이 열리는 날 법정대기실에서 만난 김형준은 울면서 진술 번복을 사정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본 교도관이 김형준을 제지하지 않았다. 단지 김학성을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태워 보냈을 뿐이다.

 

1심 재판 진행 중에도 김형준은 재판부 시선을 피해 김학성에게 말을 걸었다. 살려달라며 이번에 유죄를 받으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목을 매는 시늉까지 했다. 친구를 다시는 배신하지 않겠다고 서로 약속했다고 한다.

 


 

김학성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1심 재판에서 수의복장을 한 김형준과 김학성은 변호인 좌석 뒤쪽에 앉았다. 김학성 말처럼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서로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한 친구가 말을 걸면 다른 친구는 귀를 가까이 대고 듣는 모습도 보였다. 방청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형준 친척 중 한 명은 속이 터진다고 했다.

 

김형준은 직접 증인신문을 하다가 이 대목에서 울먹거리기도 했다.

 

“사적인 문제 때문에 정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30년 된 고교 친구한테 급전을 빌렸는데...”

 

흐느끼는 김형준을 보며 김학성은 마음이 움직였을까. 김학성은 1심에서 재판장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30년 지기 친구 부탁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심 재판이 끝나자 대검찰청은 김학성을 다시 소환하게 된다.

 

항소심 재판에서 다시 검찰 증인으로 나온 김학성은 확고하게 오직 사실만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김학성은 형사사건에 얽히면 도움을 얻고자 김형준에게 보험을 든다는 생각으로 술을 샀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항소심에서도 이 진술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김형준을 너무 자주 만나서 볼 때마다 그런 의도를 깔지는 않았겠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면 형준이가 자리를 걸고 나를 도울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다면 술을 샀겠느냐고 되물었다.

 

김학성은 왜 다시 진술을 번복 한 것일까?

 

1심 선고가 나오고 항소심까지 김학성에게 시간이 제법 있었다. 김학성은 재판 기록을 받아 다시 살펴봤다. 김학성은 재판 기록을 거듭 읽을수록 김형준이 친구였다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무슨 내용 때문이었을까.

 

김형준은 1심에서 김학성이 허위진술을 하게 해 놓고 이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학성이 허위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함으로써 수사 초점을 피고인(김형준)에게 맞춰서 김학성에 대한 검찰의 수사방향을 흐리게 하고, 김학성이 수사에 협조하는 것 같은 외관을 만든 다음에 구형량에 이득을 보고자 함이었다.”

 

김학성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학성이 언론에 폭로하면서 당시 서울서부지검 수사팀도 감찰조사 대상이 됐다. 김학성에 대한 횡령사건 수사는 더욱 엄정하게 진행됐고 선처를 기대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그러나 김형준 측 변호인 생각은 달랐던 듯하다. 1심 재판이 끝나자 김학성이 대검찰청에 다시 불려 나가게 된 부분을 공략했다.

 

몇 번 소환됐는지, 검찰 조서를 작성했는지, 대화 내용은 무엇인지 세밀하게 따졌다.

 

김학성은 평소 주변 사람에게 오강수를 ‘케어한다’, 김형준을 ‘케어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되고 나서 한 지인을 접견했을 때도 김학성은 ‘케어’라는 말을 썼다.

 

“서부지검과 대검은 틀려. 서부지검은 나를 죽이려고 하고 대검은 나를 케어해준단 말이야.”

 

김형준 측 변호인이 ‘케어’ 뜻을 묻자 김학성이 답했다.

 

“서부지검이 보기에 저는 일방적인 피고인이고, 대검은 뇌물공여자로서 공여자 진술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중요하고 아무래도 서부지검처럼 저를 막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검찰 증인으로 증인석에 선 김학성을 바라보는 김형준 시선도 분명히 1심 때와 달랐다. 마치 부장검사 시절 자기와 상관없는 사건 보고를 받는 듯한 그런 무덤덤함이 묻어 나왔다.

 

2심 재판부는 김형준에게 집행유예를 선사했다. 김형준은 기자들에게 소회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모함을 걷어낸 법원에 경의를 표한다.”

 


 

그 후로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나를 케어해줘> 원고는 그대로 묵혀뒀다. 법원이 판단을 내린 사건인데 굳이 들출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각자 자기 인생을 충실하게 살기를 바랐다.

 

2019년 하반기부터 박수종 변호사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뉴스타파>는 박수종 변호사 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 뉴스타파 방송화면 캡처

 

박수종은 법정에서 2015년 당시 여러가지 금융범죄 혐의로 금융위원회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그중 한 건을 대검에 의뢰했고 사건은 서울남부지검으로 이첩됐다.

 

당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이 김형준이었다.  박수종 변호사는 이 자리가 대한민국에서 뇌물 받기 가장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형준이 (김학성에게) 뇌물을 받았다고 생각한 적이 1초도 없었어요. 그리고 제 머릿속에는 김형준이 뇌물을 받으면 남부지검 합수단장 할 때, 10억~20억 원을 받지 1500만 원을 왜 받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박수종은 법정에 나와 김형준을 두둔했다. 2016년 검찰에게 도피중인 김학성 소재를 이야기해 긴급체포가 되게 한 것도 박수종으로 드러났다.

 


 

김형준과 박수종 관계에 의혹이 짙어져갔다.

 

 

▲ 뉴스파타 방송 화면 캡처

 

<뉴스타파>는 구치소에 있는 김학성과 접촉해 그가 말하는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했다.

 


(김학성) “김앤장에도 너랑 친한 변호사들 많은데 왜 옷 벗은 지 10년이나 된 박수종을 자꾸 전면에 내세워 일처리를 하자고 하냐?”

 

(김형준) “걔 주식도 많이 돌리고 함께 엮인 게 있으니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어. 내 말 들어.”

 

(김학성) “무슨 주식을 돌리는데?”

 

(김형준) “주식 해서 돈 좀 만졌는데 문제가 있거든. 지금은 내 말 들을 수밖에 없어. 근데 이런 일 처리는 베스트야.”

 


 

법정에서는 들어보지 않았던 내용이다. 2019년 10월 25일 <뉴스타파>는 김학성과 김형준이 통화한 내용을 편집 없이 모두 공개했다. 그 통화 내용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통화 내용 중 김학성이 ‘셀프 고소’ 작전이 실패하자 김형준에게 항의하는 부분이 있다.

 

이때 김학성은 김형준에게 "박수종이 네 말을 잘 듣는다고 했잖아!"라며 화내지 않는다. 김형준도 김학성에게 “박수종은 제삼자이며 지 아쉬운 게 뭐가 있겠어”라 “자기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지가 틀렸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게 뭐가 있겠어”라며 설명했을 뿐이다.

 


 

2020년 2월 6일 누군가 카톡으로 기사를 보냈다.

 

학성이 또 김형준을 뇌물 의혹으로 고발한 내용이다. 김학성은 박수종 변호사가 김형준에게 뇌물 4000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서울남부지검 검사들과 주가 조작 전문가가 얽힌 검은 커넥션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 이 주장은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이 순간 자신이 데리고 있던 검사들까지 한 묶음으로 매도되는 상황을 마주하는 김형준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재판에서 김형준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웠다는 게 드러났지만 방송은 여전히 폭로자 진술에 무게를 둔다.

 

김학성은 오래 전 입원한 적이 있다.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김학성 씨 아내는 당시 문병 온 사람은 김형준 뿐이었다고 증언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고교 동창 30년 지기, 그 세월 안에는 경쟁, 애정, 시기, 질투 등 온갖 감정이 묵혀있다. 김형준에게는 여전히 큰 인생 숙제다. 그 문제를 푸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이 글을 쓴다.

 

 

 -The End-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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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1화. 보험성뇌물의결말 (폭로자 김학성 시선)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제5화. 난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변호사 시선)

⦁제6화. 대검케어가최고야. (작가 시선)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 재판 추적기> 제4화. 부친 사망일의 진실 – 이문재 시선.

 

 

내 이름은 이문재다. 김학성과 나는 2000년쯤부터 돈거래를 했다. 김학성이 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김형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말만 하면 김형준이 불법 소프트웨어를 단속해주기 때문에 용산에서 내게 잘못 보이면 큰 일 난다. 내가 여기를 꽉 잡고 있다.”

 

 


 

김학성은 2012년 5월 출소하고 나서 나에게 투자를 요청했다. 이때도 김형준 이야기를 꺼냈다.

 

“김형준 검사가 한국에 있었으면 내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형준 검사가 외국에서 돌아와서 억울한 이야기를 듣고 해결해 줘서 나왔다.”

 

2012년 7월쯤 한 술자리에서 김형준을 소개받았다. 김학성이 김형준에게 고마워서 대접하는 자리 정도로 짐작했다. 물론 김학성은 검사 친구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다.

 

나는 출소한 김학성과 사업을 함께 운영했다. 2012년 7월 ‘KK인터네셔널컨퍼런스’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나는 대표이사로서 투자와 차용을, 김학성은 사업을 도맡았다.

 

출소 직후 김학성은 사업자 이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나에게 사업자등록과 투자를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이 이것은 다 가지고 있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사업을 하겠다.”

 

회사를 설립하자 김학성에게 법인카드를 내줬다. 김형준과 술자리를 함께 할 때도 김학성은 술값을 법인카드로 계산했다. 불쾌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결국, 내 돈으로 술값을 계산하면서 온갖 생색은 김학성이 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김학성에게 술값을 법인카드로 결제하는 것은 자제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김학성은 나와 돈거래 중 일부가 김형준 뇌물로 흘러갔다고 했다.

 


 

나는 법정에서 김학성과 돈거래 부분을 증언해야 했다. 증언 당시 법정에서 장부를 공개했다. 빌려준 돈 사용처를 꼼꼼하게 적어둔 장부였다.

 

"김학성과 김학성 처 딸, 휴대폰 통신비, 쌀값, 병원비, 학원비, 아파트 관리비, 보험료, 생활비, 졸업비"

 

빌려준 내역이 계속 나열됐다.

 

"2013.4.15. 70만 원 김학성 부친 병원비, 2013.7.25. 54만 원 김학성 부친 간병비."

 

이어진 내 발언에 법정이 소란스러워졌다. 김학성은 분명 2012년 12월 14일 김형준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형준아. 아버님이 가셨다. 당신 유언대로 고향에서 조용히 장례 치르고 마지막 길 가신다. 나중에 보자. 통화하자’.

 

 

김학성은 생존해 있는 아버지를 왜 돌아가신 분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김학성이 이 문자를 보냈던 시기 정황을 보자.

 


 

2012년 5월 막 출소한 김학성은 생활비도 없었다. 하루는 연체된 카드대금청구서와 휴대전화 문자를 내(이문재)게 보여줬다. 강제집행이 예정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학성은 전 처 이름으로 카드를 사용했는데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통사정을 했다. 당시 나도 힘들었던 시기여서 돈이 없었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 2012년 10월 15일 김학성에게 1000만 원을 송금했다. 통장에는 마이너스 1155만 원이 찍혔다.

 

검찰 조사에서 김학성은 이렇게 빌린 1000만 원 중 500만 원을 오강수 가석방 청탁을 위해 김형준에게 줬다고 했다. 상상도 못 한 일이다. 1000만 원 용도는 당연히 연체된 카드 대금 결제였다.  물론 김학성은 재판에서 카드 연체 이유를 김형준 접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1000만 원을 빌린 김학성은 이틀 뒤 술집 통채를 빌려 생일파티를 열었다. 그 비용을 누가 지불했는지도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됐다. 법정에서 김형준 쪽 변호인이 물었다.

 

“그런데 이틀 뒤, 2010년 10월 17일 김학성은 <업타운걸>이라는 술집을 빌려서 생일파티를 하였고 200만 원 정도 비용이 소요됐어요. 이문재 씨가 김학성을 위해서 마련해준 것으로, 결재도 이문재 씨가 하였다고 했는데 김학성 진술이 사실인가요?”

 

나는 사실이 아니라고 답했다.

 

 

 

이처럼 김학성은 출소 후에도 경제적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고급술집에서 술을 마시곤 했다.  당연히 술값 독촉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김학성은 내게서 빌린 1000만 원 중 500만 원을  김형준에게 줬다고 했다. 장소와 날짜도 특정했다.  비긴어게인이라는 고급 술집에서 2012년 11월 15일에서 12월 14일 사이라고 진술했다.

 

재판에서 김형준 변호인 측은 이를 탄핵하기 시작했다.

 

우선 김학성은 2012년 11월 1일 ‘비긴어게인’에서 외상으로 술을 마셨다. 12월 14일에는 김형준과 바로 이 술집에서 만나기로 예정돼 있었다. 비긴어게인 사장은 11월 13일부터 12월 12일까지 술값 결제를 독촉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기간 동안 김학성은 “언제 처리해주겠다”라는 답변을 하며 다른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당시는 오강수도 김학성에게 사람을 보내서 여비서 횡령 문제를 김형준에게 처리해 달라고 재촉하던 시기다.

 

2012년 12월 14일 오전 10시 김학성은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는다. 읽어보니 은행이 보낸 카드 연체 내용이었다. 그날 김학성은 김형준에게 부친 사망 사실을 전했다.

 

김형준 변호인들은 김학성 부친 기일이 언제인지 물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명예가 있기 때문에 말씀을 못 드립니다.”

 

급기야 재판장이 당시 “살아계셨는지 사망한 상태였는지 그 사실관계를 확인해”달라고 요구 했다. 김학성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상태”라고 짧게 답했다. 재판장은 “살아계신 상태였습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내(이문재) 기억에도 김학성 부친 사망일은 2013년 가을이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2014년 7월 김학성은 나를 회사에서 쫓아냈다.

 

당시 김학성이 사업을 하면서 KK인터네셔널컨퍼런스가 거래처 문제로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 나는 대표이사였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김학성은 대표이사가 없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나에게 2015년 2월까지만 피해달라고 했다. 나중에 문제가 해결되면 내가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놓겠다고 했다.

 

그 사이 김학성이 KK게임즈를 만들었는데 나는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그래도 김학성을 사기죄로 고소하지 못했다. 김학성이 부장검사를 친구로 뒀다는 이유도 그중 하나였다.

 


 

사업가에게 검사 친구는 어떤 의미일까?

 

김학성은 구속 기간 대검찰청에 소환돼 김형준이 성공한 모습을 봤다. 김학성은 2012년 5월 2일 만기 출소하고 열흘 뒤부터 2개월 동안 김형준을 10회 만났다.

 

김학성은 재판에서 부장검사 친구인 김형준에게 잘 보여 사업 재개 과정에서 도움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시인했다. 김형준 주변에는 좋은 인맥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부장검사 친구인 김형준 얘기를 자주 한 것도 투자를 끌어내려는 의도였다고 인정했다. 부장검사와 친구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 자체는 출소 후 고교 동창생들 인맥 복원에도 도움이 됐다. 김형준은 동기들 중에 가장 우수한 친구였다. 그래서 동창생들은 형준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자리에서 김학성은 김형준과 친근하게 통화하며 옆에 있는 동기를 바꿔주기도 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2016년 9월 김학성이 오랫동안 김형준 스폰서 노릇을 하면서 수 억 원 여치 술도 사주고 돈도 줬다는 기사가 신문과 방송에 나왔다. 이 뉴스에 동창들 사이 전화통에 불이 났다. 한진우, 김형준. 김학성 모두 고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법정에도 동창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필자는 본의 아니게 김형준⦁김학성 동창들과 안면을 트게 됐다.

 


 

그중 대기업에 다니던 K가 증인으로 나왔다. K도 동창회에서 김학성을 알게 됐다. 김학성은 동창 K에게 사업 관련하여 K 인맥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K는 김학성이 평소에 술자리에서 계산하는 것을 많이 봤다. 김학성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선산과 주식이 있어 돈이 많다는 건 평소에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김학성이 김형준에게 뇌물로 술을 사줬는지 궁금했다. 동창 K는 김학성이 구속되자 면회를 갔다.

 

“네가 뇌물이라고 줬다는데 맞냐?”

“내가 5억 8000만 원 넘게 술을 사줬는데 형준이 생각해서 줄이고 줄여서 5800만 원이 된 것이다.”

 

김학성이 이렇게 큰 소리를 친 반면, 당시 김형준 검사는 공황 상태였으며 기억을 잘 못했다. 변호인들이 “사실이 뭐냐?”라고 물어보자 김형준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술 마신 것은 맞다. 그런데 둘이 간 적 없고 여러 명 있었다. 돈 받은 것은 없었다.”

 

김형준은 둘이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가보면 꼭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당황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체 진실이 무엇일까? 이제 김학성에게 다시 자세히 물어볼 차례다. 그런데 피고인 신문에서 김학성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재판장에게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재판장님, 제가 위증했습니다.”

 

김학성은 공소장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며 사실대로 털어놓겠다고 나섰다. 내용은 이랬다.

 

김학성이 체포 될 당시 알코올 중독자처럼 매일 술을 마셨다. 그런 상태에서 긴급 체포돼 대검찰청에서 매일 새벽 2~3시까지 조사받았다. 검찰이 김형준 비위를 무마하고자 자기를 구속했다고 확신했다. 검찰과 김형준을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했기에 대검찰청 특감팀 수사 의도에 맞춰 진술했다는 것이다.

 

“김수천 부장검사와 진경준 검사는 억 단위인데, 김형준과 저는 해봐야 몇 천만원이다. 금액을 올려야 한다. 다른 거 없느냐”

 

김학성은 검찰 압박을 고스란히 느꼈다고 했다. 피고인 신문에서 김학성이 자백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  술 먹은 사실은 맞다. 향응접대는 아니다.

●  지금까지 김형준에게 17년 동안 구체적인 청탁 한 적 없다.

●  김형준에게 보낸 돈은 계좌로 보낸 500만 원과 1000만 원 이외는 없다.

●  증거인멸 관련해서 휴대폰 초기화는 박수종 변호사 지시다.

 

검찰과 변호인 모두 하필이면 1심 재판을 마무리하는 날 이런 자백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김학성은 이렇게 답했다.

 

“7월 9일 박수종 변호사가 와서 증언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형준이와 저는 박수종 변호사 농간에 놀아난 것입니다. 아마 형준이는 몰랐을 것입니다. 형준이도 박수종 변호사가 하자는 대로 했을 것입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오른쪽이 박수종 변호사

 

김학성은 박수종 변호사가 핸드폰 초기화를 지시했고 김형준과 자기 사이에 끼어서 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이제 박수종 변호사를 만나봐야겠다. 박수종은 검찰 출신이다. 김학성은 김형준이 그를 ‘형사사건의 베스트’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수종은 법정에 나와 정반대 증언을 한다. 박수종 증언 내용을 요약해보면 ‘형사사건 베스트’는 오히려 김학성이었다.

 

(다음 5화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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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1화. 보험성뇌물의결말 (폭로자 김학성 시선)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제5화. 난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변호사 시선)

⦁제6화. 대검케어가최고야. (작가 시선)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 재판 추적기>  제5화 난 초등학생이었다. - 박수종 변호사 시선

 

 

 

나는 박수종 변호사다. 김형준은 2006년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할 때부터 아는 사이였다. 나는 검찰에 몸담았다가 2007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2016년 3월 김형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사업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는데 법적분쟁에 휘말릴 것 같다. 네가 만나보고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줬으면 좋겠다.”

 

김형준은 김학성을 30년 지기 제일 친한 친구라고 소개했다.

 

4월 2일 법무법인 처음 상담실에서 김학성을 처음 만났다. 김학성은 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

 

2010년 자신이 구속됐을 때 내가 상대편 고소 대리인이었다고 했다. 물론 내가 사임하면서 다른 변호사가 선임되고 김학성이 구속됐기 때문에 별 악감정은 없다고 생각했다.

 

김학성은 당시 구속이 억울했다며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김학성이 설명한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1) 김학성은 동창생 한수찬을 데려다가 사업을 했는데 한수찬이 무리하게 사업을 벌여 회사가 파탄 났다.

 

2) 자금 부족으로 물품을 공급하지 못해 거래처에서 압류가 들어올 가능성이 컸다.

 

3) 압류를 당하지 않고자 김학성은 회사 돈을 빼돌린다.

 

4) 한수찬은 그렇게 사고를 치고 회사 장부를 빼내 피해자들에게 넘긴다.

 

5) 김학성이 김형준에게 순수하게 1500만 원을 빌려줬는데, 실수로 회사 장부에 ‘김형준 대여금’으로 메모했다.

 


 

김학성은 한수찬이 피해업체들과 결탁하여 이 메모를 빌미로 돈을 받아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준과 엮어 사건을 크게 만들겠다며 협박했다고 한다. 김학성은 순수하게 우정으로 빌려준 돈이 마치 비리처럼 보도되거나 검찰 내부에 이 내용이 알려져 김형준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김학성은 한수찬이 김형준을 공격하려 하지만 온몸을 다해서 막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김학성은 회사 돈이 나갈 때 결재서류에 서명했기 때문에 자기도 책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신 한수찬도 자기가 잘못한 만큼 책임져야 한다며 같이 처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상담 중에 김학성에게 곤란한 상황도 확인됐다. 먼저 서부지검이 접수한 김학성이 피의자인 고소가 3건이었다. 김학성은 각 사건이 경찰서로 갔다가 다시 검찰로 송치되고 기소되는 과정을 불안해했다.

 

상대는 서부지검 주임검사를 겨냥해 같은 대학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만큼 피해 업체는 절박했고 이들이 김학성에 대해 미리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은 컸다. 김학성은 서부지검에서 조사받는 게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나는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김학성 주거지 관할은 고양지청이었다. 고양지청이 나서서 이 사건을 모두 이송받아 수사하면 이런 문제가 모두 풀릴 것으로 판단했다.

 

고양지청 부장검사가 나와 연수원 동기고 김형준과 친분도 있으니 사건 진행이 잘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김학성에게 합의한 피해업체가 있으면 고소를 부탁하라고 제안했다.

 

통상적으로 합의한 업체가 피의자를 고소하는 일은 없다. 김학성은 한 거래업체에 합의금 4000만 원을 건네고 고양지청에 자신을 고소하라고 부탁했다. 4월 22일 김학성에 대한 고소장이 고양지청에 들어간다. 이른바 ‘셀프 고소’이다. 셀프 고소는 김학성 사건을 일괄 기소해 빨리 처리하는 게 목적이었다.

 


 

4월 20일 김형준은 나에게 김학성에게 빌린 1500만 원을 반환해달라고 부탁했다. 돌이켜보면 계좌로 흔적을 남기기에는 찜찜하고 현금으로 돌려주자니 증인이 필요해 나에게 부탁한 듯하다.

 

나는 그냥 돈을 돌려주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날 김학성에게 전화했다.

 

“형준이가 돈을 돌려주라고 하니 만납시다.”

 

4월 25일 법무법인 처음 회의실 테이블 위에 현금 1500만 원을 올려놓고 분명히 얘기했다.

 

“형준이가 돌려주라는 돈이다.”

 

김학성은 오히려 나를 변호인으로 선임하고 싶다며 1500만 원을 선임료로 내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나를 도와달라. 억울하게 당하고 싶지 않다.”

 

김학성은 선임료가 적은 듯하다며 100만~200만 원 더 챙겨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구두합의가 됐다. 선임계약서는 5월 2일 작성했다.

 


 

셀프 고소는 결국 실패했다. 서부지검 주임검사가 사건 이송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학성은 6월 20일 서부지검 첫 조사를 받고 나서, 이튿날 고양지청 담당자에게 서부지검으로 사건을 이송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전화를 받는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당시 김학성이 김형준에게 거칠게 항의했다고 한다.

 

김학성 태도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나는 상담 과정에서 김학성에게 합의가 최선이라고 전제했다. 적은 금액이라도 합의를 먼저 해 피해자 규모를 줄일 것을 당부했다. 김학성도 이 조언을 받아들여 합의를 진행했다.

 

고소하기 위해 합의한 게 아니라 합의한 피해자 가운데 한두 명에게 고소를 부탁하라 했다.

 

셀프 고소가 실패하자 김학성 태도는 돌변한다. 지금까지 진행 과정을 놓고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선 김형준이 반환한 돈으로 나에게 변호사 선임료를 준 부분부터 김학성 설명은 다르다.

 

김학성은 내가 김형준 변호인이지 김학성 변호인은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김형준이 나에게 활동비로 1500만 원을 줬다가 이후 자기 문제가 사건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학성 사건 진행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고, 셀프 고소도 필요하니 선임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김형준을 도와주려고 한다면 왜 돈을 받겠는가. 그냥 도와주면 될 텐데 말이다. 나는 당시 김형준이 뇌물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김형준은 2014년 서울남부지검 합수단장을 지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뇌물 받기 좋은 자리다.

 

그리고 내가 아는 김형준 주변에는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득실 하다. 아쉬운 소리 안 하면서 사는 김형준이 김학성에게 1500만 원을 빌렸다기에 진짜 허물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 머릿속에 ‘사건’이란 것이 없었기에 사건 파악할 내용도 없었다.

 

나는 법정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도대체 왜 김학성 씨가 저를 선임 안 했는데 변호인을 하며, 선임계약서를 왜 작성하며, 선임료를 왜 법무법인 처음에다 입금을 하겠으며. 거기에 입금하면 그 돈은 제 돈이 아니에요. 법무법인 처음 돈이에요. 거기서 제 몫이 얼마 되지도 않아요.”

 

당시 나는 법무법인 처음을 나와서 다른 로펌으로 가려했다. 이미 6월 말 이전에 나가기로 확정했다. 어차피 법무법인 처음에 소속된 상황에서 선임계가 제출되고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나에게는 손해였다. 

 


 

김학성이 대체 김형준에게 무엇을 원했을까? 김학성은 김형준에게 긴급체포를 면하게 해 달라 부탁했다고 한다. 김형준이 수사팀에 언질을 줘서 긴급체포를 막았으면 했다.

 

사실 나와 상담하면서도 김학성은 이해하기 어려운 주문을 했다.

 

“구속은 감수하겠지만 긴급체포는 안 된다.”

 

김학성은 구속된 적이 있다. 당연히 변호사를 쓴 경험도 있다. 그렇다면 변호사인 나와 검사인 김형준 사이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많은 거래업체에 피해를 주고 구속을 피할 수 있겠는가. 김학성은 기소 단계에서 어차피 구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았다. 셀프 고소로 수사 관할을 변경해도 사안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셀프 고소는 사건을 일괄 기소해 빨리 처리하고 싶어 택한 방법이었다. 물론 일괄 기소되면 형을 덜 받기도 한다.

 

당시 김학성은 주변 정리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긴급체포를 피하려 했다. 내가 보기에는 김학성에게 시간이 꽤 많았다.

 

4월 초부터 나와 상담하면서 사건 규모와 내용을 알게 되자 김학성은 구속될 각오가 됐다고 말했다. 구속에 대비할 시간은 충분했는데 왜 사건이 임박해서 긴급체포만 안 된다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김학성이 긴급체포당할 가능성이 희박했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에 계속 출석해 조사받는 사람을 긴급 체포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검찰도 고소 사건에 소환 조사하다가 영장을 치더라도 사전 영장을 치므로 긴급체포라는 게 거의 없다. 그러니까 김형준이 긴급체포 문제로 수사팀에 따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김학성은 나에게 100% 확신하느냐고 되물었다. 물론 권한이 없는 내가 100%를 말할 수는 없었다.

 


 

셀프 고소가 실패하자 김학성은 나에게 변호사비를 토해내도록 했다. 변호사가 선임비를 돌려주는 일은 분명히 있다. 의뢰인 처지에서 변호사가 불구속을 약속했는데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특히 그렇다. 그러나 김학성은 단 한 번도 불구속을 부탁한 적이 없다.

 

김학성 목적은 불구속이 아니었다. 즉, 김학성은 나에게 변호사 선임료를 돌려달라고 할 권한이 없다. 변호사 선임료가 법무법인 처음으로 입금됐기에 반환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학성은 6월 17일 김형준에게 문자를 보낸다.

 

‘연락이 없어 실망이다. 어쩔 수 없이 문자 보낸다. 난 진짜 친구라 생각했는데 긴말하기 싫다. 박 변호사가 내게 해 준 말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니가 날 도와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나도 알아봤고. 나는 지금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 내가 할 것은 내 가족이 그나마 살 수 있는 돈을 최대한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해서 보내준 천오백만 원은 아래 계좌로 오늘 6시까지 송금하거라. 내 집사람 신한은행 000. 누구든 보내기만 하거라. 이것으로 너와 나는 정리하자. 너에게 피해가 없도록 처리할 테니 걱정 말고. 박 변호사는 네가 알아서 정리하거라... 더 실망하게 하지 말고’.

 

이어서 나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변호사님 저는 이제 삶에 대한 미련도 없습니다. 형준이에게 제가 보낸 돈 보내라 문자 보냅니다. 형준이랑 통화하세요. 그간 감사했습니다’.

 

오후 6시까지 돈이 들어오지 않자 김학성은 다시 김형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준아 너 연락도 없고 입금된 것도 없다. 내가 빌려준 돈도 못 받으니 병신이구나. 오케이. 알았다. 변제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내가 알아서 할게 나쁜 새끼’.

 

그날 저녁 김형준이 내게 전화했다. 김형준은 김학성에게 받은 문자 내용을 설명하며 1500만 원을 돌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김학성은 6월 20일 서부지검 첫 조사를 받는 날 아침에 받아갔다.

 

김학성은 먼저 장부에 적시한 ‘김형준 대여금 1500만 원’을 변호사 비용이었다고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김학성은 나를 잘랐다.

 

나는 최소한 돈을 돌려줬으니 여기서 해방됐다고 생각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박수종 변호사

 


 

그런데 뜬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이후에도 김학성에게 계속 문자를 받게 된 것이다.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되받아간 사람이 해당 사건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으며 불쾌했다.

 

그렇다고 김학성에게 내 감정을 담아 왜 연락하느냐고 따지지 않았다. 문자를 받을 때마다 ‘고생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같은 형식적인 답만 했다. 당시에는 왜 나에게 문자를 보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7월 7일 받은 문자 내용은 황당하고 뜬금없었다.

 

‘변호사님 저는 형준이와 전에 문자 주고받은 휴대폰도 다 해지하고 다 없앴습니다’.

 

김학성은 예측불허였다.

 

8월 16일 서부지검은 김학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8월 19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소식을 듣고 김학성이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할 것으로 생각했다. 어쨌든 긴급체포만은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학성은 출석하지 않았고 9월 5일 긴급 체포됐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내가 김형준에게 다급한 연락을 받은 것은 9월 1일이었는데 그날은 김학성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김형준은 <한겨레> 기자가 김학성 문제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는 김학성 회사 고문변호사를 만나 기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고문 변호사는 김학성에게 연락했는데 이때 금액을 말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한다. 내 기억은 다르다. 나는 김형준에게 전해 들은 금액을 이야기했다. 김형준은 자기 명의로 내 계좌에서 일단 2000만 원을 김학성에게 보내도록 부탁했다.

 

그날 저녁 나는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

 

 

중간에 메신저를 확인하니 김학성이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형준이가 자기에게 진심으로 사과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사과가 없어서 본인이 이렇게 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김학성은 나에게 김형준이 사과하면 자기가 모두 해결하겠다고 했다. 나는 김형준에게 그 메시지를 전했지만 사과를 요구하는 김학성 메시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김형준도 당시 어떻게든 김학성을 달랠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김형준이 나에게 전한 사과 메시지를 다시 김학성에게 전했다.

 


 

9월 2일 언론은 ‘스폰서 검사’ 취재를 시작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도 김형준에 대한 감찰에 들어갔다. 이날 저녁 김학성에게 계속 메시지를 받았다.

 


●  낼 연락해서 모든 자료가 담겨 있는 제 핸드폰 자체를 넘겨드릴게요. 그리고 저는 진술서를 써서 한겨레 등에 보내겠습니다. 제가 다 안고 가겠습니다. 다만 중간에 넘길 때 저도 살아야 하니 돈 더 준비하세요.

 

제가 내일 연락하고 사람 보낼 테니 핸드폰 챙기세요.

 

● 저 믿으시고 내일 연락할 테니 일요일에 핸드폰 받으세요.


 

여기서 김학성이 “돈 준비하라”는 이야기가 나온 배경을 설명해야겠다.

 

당시 김학성은 한겨레 기자가 자기 후배라고 했다.

 

마치 얼마든지 기사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보도가 일부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너무 선정적으로 보도되지 않도록 협조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김학성은 우리가 자신과 거래를 하려 했다며 기자에게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넘겼다.

 

9월 6일 김학성이 김형준의 스폰서였다고 폭로하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에서 김학성은 한겨레에 한 달에 두세 번은 김형준에게 술을 샀다고 했다. 술자리가 끝나면 100만~200만 원씩 용돈을 줬다는 내용도 있었다.

 

일이 커지자 대검찰청은 김형준과 유착관계를 확인하고자 나도 훑고 지나갔다. 김학성은 그간 일방적으로 보낸 문자를 내가 사건 은폐와 증거 인멸에 가담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정작 내가 증거 인멸에 가담한 문자나 통화 녹음이 있었다면 벌써 제출했을 것이다. 나는 증거인멸교사로 조사받은 적도 없다.

 


 

나중에 김학성을 수사한 서부지검 담당검사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귀신에 홀린 듯했다. 내가 김학성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김학성은 서부지검 담당검사가 자기를 앉혀놓고 (한수찬에게 들은 것을 토대로) 한 시간 동안 김형준에 대해 추궁했다고 했다. 그런데 주임검사 얘기로는 김학성이 김형준과 나눈 문자를 슬쩍 드러내며 오히려 관계를 언급했다고 한다.

 

만약 김학성이 나를 계속 선임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변호를 계속 맡았다면 나와 김형준에게 서로 다르게 얘기한 부분이 들통 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나를 자른 게 아닌가 싶었다.

 

지금까지 나는 ‘30년 지기’ 같은 말에 휩쓸려 김학성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 자신이 한심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후배 검사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나는 검사와 변호사를 거치며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나는 이렇게 고백했다.

 

“지금 보면 김학성은 대학생 정도고요. 저와 김형준은 초등학생 정도 되는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화 - 대검 케어가 최고야-작가 시선)

 


☞ 뉴스타파가 공개한 김형준-김학성 간 전화통화 풀버전을 다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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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1화. 보험성뇌물의결말 (폭로자 김학성 시선)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제5화. 난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변호사 시선)

⦁제6화. 대검케어가최고야. (작가 시선)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 재판 추적기> 제3화. 앞뒤좌우 완벽하게 - 오강수 시선.

 

2010년 김학성은 특가법위반, 사기 등으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때 구치소에서 오강수를 알게 됐다. 오강수는 불법 다단계로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는 자금관리를 여비서에게 맡겼다.

 

 

김학성은 당시 합의금으로 거액이 필요했는데 오강수가 그 부분을 도와줬다. 김학성은 UN에 파견 나간 김형준이 돌아오면 출소 후 구명활동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2011년 9월 대검찰청 제2범죄정보담당관으로 복귀한 김형준은 김학성을 소환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범죄정보 제공이었다. 김형준은 나중에 문제 되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요식행위로 뭐라도 하나 써낼 것을 주문했다. 김학성은 A4용지에 허위사실을 작성해 건네면서 친구인 그에게 고마움과 뿌듯함을 느꼈다. 이 검사 친구는 앞으로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학성은 총 9회에 걸쳐 대검찰청 제2범죄정보담당관실에 소환됐다.

 

아침에 가면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김형준과 이야기했다. 김형준이 보고 때문에 사무실에서 나가면 김학성은 아이패드를 만지거나 스포츠 방송을 보기도 했다.

 

▲ SBS ESPN 방송 화면 캡처

 

전화도 자유롭게 썼다. 그렇게 있다가 오후 4시쯤 다시 구치소로 돌아왔다. 김학성은 김형준에게 금전적 지원은 받은 오강수를 소개하며 그도 함께 소환해달라 부탁했다. 김형준은 김학성을 소환할 때 두 차례 오강수도 불렀다.  그 자리에서 김학성은 오강수를 잘 부탁한다며 거듭 부탁했다. 김형준은 가석방 등 김학성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2012년 5월 6일 출소한 김학성은 오강수가 가석방될 수 있도록 돕고자 움직였다. 오강수는 가석방 대가로 금전적 도움을 제안하기도 했다.

 


 

출소하고 나서 김형준과 시작한 술자리는 6~7월에 집중됐다. 누가 봐도 향응일 수밖에 없는 접대였다. 당시 출소 직후인 만큼 별다른 수입원이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술값을 낼 능력이 없어 지인 A 씨가 대신 내주기도 했다. A 씨는 나중에 법정에서 당시 술자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김형준이 검사이다 보니 나중에라도 도움을 받고자 계속 접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유가 없을 때도 어쨌든 저에게 술을 먹으면서 제가 계산할 수 있게 같이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자체를 봤을 때는 나중에 도움을 받겠다는 이유밖에 안 됩니다.”

 

김학성은 매달 오강수를 면회했는데 당시 오강수는 무척 곤란한 상황이었다. 2012년 6월 여비서가 자금을 횡령한 것이다.

 

오강수는 김형준에게 여비서 횡령 사건을 부탁했다. 오강수 측근은 문자를 보내며 사건 처리를 독촉했으나 김학성 집안에 복잡한 일이 있었다. 부친이 위독했던 것이다.

 

12월 14일 김형준을 만나려 했던 당일,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김형준은 만사 제치고 오겠다 했으나 거절했고 부친 유언대로 가족장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KK게임즈를 하면서 오강수를 만날 기회가 더 없어졌다. 여기까지가 김학성 진술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오강수 씨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 이름은 오강수. 나는 유사수신범행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 말 구치소에서 김학성을 알게 됐다. 함께 지내다 보면 서로 자기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 마련이다. 나는 밖에 여비서를 두고 불법다단계로 번 돈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김학성은 당시 사기죄로 구속 재판 중이었다.

 

김학성은 검사인 김형준과 친구라고 했다. 김형준이 검사가 된 직후부터 접대도 하고 용돈도 주면서 스폰서 역할을 하며 관리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런데 김형준이 UN으로 파견되는 바람에 수사 과정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학성은 김형준이 자기 안부를 묻는 이메일 내용을 보여주며 관계를 자랑했다. 둘 사이가 가깝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시 나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형량이 상당히 남았기에 가석방을 받을 요건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 처지에서 검찰에 범죄정보 제공으로 공적을 쌓다보면 가석방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솔깃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검찰이 매력을 느낄만한 정보가 없었다.

 

반면 김학성에게는 굵직한 범죄정보가 제법 있다고 했다. 자기 계좌에서 수십억이 나간 흔적들을 보여줬다. 김형준 장인인 국회의원 박희태 씨에게 건넨 정치자금이 30억 원 정도 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 채널A 방송 화면 캡처

 

어느 날 김학성은 종이 한 장에 대기업 비자금 뇌물 사건, 판검사 뇌물 사건, 경찰·국세청 공무원 뇌물 사건을 적어서 보여줬다.

 

“나에게 이런 사건들이 있으니 김형준이 UN에서 돌아오면 형님이 가석방 받거나 최소한 교도소에서 편하게 지내도록 조치해주겠다”

 

김학성은 김형준만 UN에서 돌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수차례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제가 재판을 받는 사건에 대한 합의금을 지원해 달라.”

 

나는 여비서를 시켜서 김학성에게 합의금 수억 원을 전달하도록 했다. 2011년 김형준이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으로 복귀했다. 나와 김학성은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김형준이 근무하는 대검찰청에 두 차례 소환됐다. 부장검사 사무실에서 김학성은 존칭도 쓰지 않은 채 김형준을 ‘김 부장’이라고 불렀다. 김학성은 김형준과 친구인 것을 보여주려 애썼다. 김형준은 별 말없이 업무적인 이야기를 했다. 김형준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김학성이 나에게 말을 꺼냈다.

 

“김형준 부장이 형님을 위해 가석방을 알아봐주는 중이니까 김 부장에게 직접 들어보세요.”

 

다시 사무실로 들어온 김형준이 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외국에는 플리바게닝 제도, 즉 범죄정보제공과 관련된 가석방 제도가 있는데 우리는 그런 제도가 없습니다. 다만 수감자가 자기가 아는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향후 가석방에 가점 요인으로 작용하는 제도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설명을 들으면서 김학성에게 믿음이 갔다. 김형준 설명은 제대로 된 범죄정보를 제공하면 가석방을 신속하게 받도록 힘 써주겠다는 취지로 들렸다. 김형준은 고급 범죄정보 제공에 협조를 구했다. 나도 김형준에게 제공할 정보를 하나 준비했다.

 

오강수가 모 국회의원에게 향응과 함께 현금 500만 원을 줬다’.

 

김형준은 ‘좀 약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전히 나는 김학성 지시에 따랐을 뿐이었다. 소환 전에 김학성은 내게 편지를 보내 얘깃거리를 준비하도록 했다.

 

‘그날 들어보고 필요하다면 아주 간단히 김 부장 앞으로 진술서 쓸 겁니다. 모양새와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사건화 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나라도 흠 잡히지 않게 하는 조치입니다. (...) 누가 묻지도 않겠지만 혹시 흠이 있어서는 안 되는 주의이십니다. 뭘 하나 하더라도 앞뒤 좌우 완벽하게 하려 하십니다’.


 

 

김학성은 2012년 5월 6일 만기출소를 했다. 그 직후 내 비서를 시켜 김학성에게 1000만 원을 송금하도록 했다. 김학성이 가석방, 교도소 이감 등 내 수감생활 편의를 위해 움직여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김학성은 정기적으로 면회를 왔다. 그리고 김형준 이야기를 주로 했다.

 

“김형준과 맨날 술을 마신다. 용돈도 준다. 형님을 위해서 밖에서 엄청 애쓰고 있다.”

 

김학성에게 김형준을 만나면 잘 이야기해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에는 내가 변호사법 위반, 사기 등으로 고소할까봐 면회를 충실히 왔던 것 같다. 나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학성 태도를 보면, 김학성이 김형준을 내세워 구치소에서 저와 한 돈거래에 대해서 문제삼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저도 실제로 김학성 친구가 김형준이라는 점 때문에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고소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7월이 됐을 때 김형준에게 부탁할 일이 추가됐다. 내 여비서가 돈을 모두 들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나는 비서를 횡령으로 고소했고, 김형준이 이 사건을 잘 챙길 수 있도록 김학성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2012년 말 김학성 부친이 사망하면서 내 아쉬운 얘기만 할 수 없었다. 김학성이 면회 오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2015년으로 넘어가자 사업이 바쁘다며 면회 오지 않았다.

 


 

그래도 오강수 처지에서는 건넨 돈을 고급 범죄정보와 맞바꿨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오강수는 김학성이 건넨 고급 범죄정보를 손에 쥐었다. 오강수는 2010년 말부터 7년 동안 김학성이 종이에 써준 범죄정보 내용을 여러 장 복사해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여러 검찰청에 근무하는 검사들과 담당 수사관들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정보를 바탕으로 실제 수사가 시작된 적은 없었다.

 

2017년 말 오강수가 재판 증인으로 나왔을 때 김형준 변호인은 그 이유를 알려줬다.

 

“저거 가짜라는 말 안 하던가요? 김학성은 다 거짓말로 썼대요.”

 

점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김학성이 오강수 구명활동을 위해 애를 쓴 것은 분명하다. 김학성은 오강수 구명을 위해서 김형준에게 돈을 건넸다고 말했다. 2012년 11월 15일에서 12월 14일 전으로 날짜도 특정 가능했다. 그 이후에 건넨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14일에는 김학성 부친이 돌아가셨고 두 친구는 한 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법정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이 나왔다.

 

“김학성 부친 사망일은 2013년 10월 21일. 내 기억에.”

 

이 증언을 한 사람은 KK인터네셔널 대표이사였던 이문재다. 이문재도 김학성 소개로 김형준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김학성은 왜 이 시점에 부친 사망이라는 카드를 꺼내야 했을까? 이제 이문재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음 4화- 부친사망일의 진실-이문재 시선)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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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1화. 보험성뇌물의결말 (폭로자 김학성 시선)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제5화. 난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변호사 시선)

⦁제6화. 대검케어가최고야. (작가 시선)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 재판 추적기> 제2화 제 말이 그 말 입니다. (한수찬 시선)

 

 

나는 한수찬이다. 나와 김학성, 김형준은 고교 동창이다. 그러나 이들을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다. 김형준은 총동문동창회에서 몇 번 보기만 했다. 보통 45~50명 정도 모이므로 김형준은 나를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김형준은 동창회에 잠시 있다가 밀린 업무 처리 때문에 검찰 차량을 타고 돌아갔다.

 


 

가까이서 김형준을 접한 것은 김학성 덕분이다. 내가 김학성과 얽힌 것은 2015년 1월부터다. 김학성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나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권했다.

 

 

 

당시 김학성은 KK인터내셔널에 다니고 있었다. KK인터네셔널 대표이사 이문재가 경영을 못해 망할 것 같다며 회사 게임사업부만 빼내 새로운 법인을 설립할 것이라고 했다. 그게 바로 KK게임즈다.

 

이후 나는 KK게임즈 대표이사가 됐지만 등기만 했을 뿐 회사 전반적인 업무는 김학성이 총괄했다. 나도 김학성 지시대로 움직였다. 김학성이 단골 술집 여직원에게 빌려 준 돈을 회수하는 일도 했다.

 

KK게임즈는 중국 샤오밍 전자 제품을 국내 거래처에 판매하면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김학성은 샤오밍 전자제품을 국내에서 가장 싸게 팔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국내 업체를 상대로 영업하고 계약하는 일을 담당했다. 국내 거래처에서 현금이 들어오자 매출은 늘었다. 덩달아 직원 회식도 잦았다. 결제는 언제나 김학성 몫이었다.

 

 

직원들 모두 김학성 인맥과 재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김학성은 처가 재산도 상당했다. 한 달에 두 번 용돈을 받는데 한 번에 2000만 원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번은 회식 중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왔다. 정치인 김무성이 나오자 김학성이 한마디 했다.

 

“아, 우리 6촌 형님.”

 

김학성은 김무성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6촌 형님’이라고 불렀다. 직원들도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삼성 이재용, 신세계 정용진을 언급할 때도 항상 ‘형님’ 호칭을 썼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하루는 김학성이 내게 재벌 2세들과 9인회 모임이 있다며 동행을 권했다. 그런데 바로 김학성 일정이 바뀌었다. 모임이 파기됐고 김형준과 셋이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평소 김학성은 김형준을 매우 가까운 사이로 내세웠다.

 

술집에서 보니 둘은 정말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대화에 깊이 끼어들지 못했던 나는 술 몇 잔 마시고 먼저 일어났다. 다음 날 김학성은 술값을 자신이 냈다고 말했다.

 


 

2016년 2월 KK게임즈 사무실 근처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던 김학성은 이런 얘기도 했다.

 

“김형준이 여자랑 사랑에 빠졌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줬다.”

 

김학성은 김형준 뿐 아니라 고교 동창에게도 중국에 있는 큰 기업을 언급하며 회사 매출이 100억 원을 넘는다고 자랑했다. 모임에서는 항상 자신이 술값을 계산하려 했다. 동창들도 술값이 김학성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동창 모임을 연 술집이 자신이 투자해 설립했다며 반은 자기 것이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 김학성은 회사 자랑에 끝이 없었다. 하지만, 나타나는 현상은 달랐다. 2015년 중반부터 거래업체에서 물품 납품 지연 항의가 들어왔다. 9월 들어 납품일자에 물품을 받지 못한 거래업체가 선수금 반환을 요구했다. 거래업체 대표가 사무실에 찾아와 항의하면 김학성은 자리를 피하면서 나에게 떠넘겼다.

 

2015년 12월부터 나는 거래업체 관계자와 회사 근처에서 만나며 계속 이야기했다.

 

번은 김학성에게 돈을 서둘러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김학성은 돈을 벌어야 갚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영업을 독촉했다.

 

2016년 1월 납품이 장기간 지연되자 업체들 항의가 거세졌다. 김학성은 중국 명절 기간 공백 등을 내세우며 상황을 넘겼다. 2016년 2월 들어서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김학성에게 물품 입고 일정을 계속 물었다. 김학성은 중국 쪽 문제든 국내 통관 절차 문제든 항상 이유는 설명했다. 나는 그 해명을 거래 업체 관계자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김학성은 오히려 거래 업체에 끌려다니지 않는 당당한 영업을 강조했다.

 

“그 사람들이 매일 찾아와서 괴롭히면 업무방해로 고소해라. 뒤에서 형준이가 봐주는데 넌 왜 그리 겁이 많니?”

 

2016년 3월 14일 김학성은 다시 내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 형준이하고는 통화했다. 만일 일이 발생하면 서부지검에 업무방해등으로 형사 고소하고 처벌해버리자. 형준이가 나 건드리면 죽여버리자고 한다.

 

직원들도 회사가 어렵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직원들은 나중에라도 김학성이 회사에 자기 자금을 투여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학성 또한 자기 재산을 거론하며 일부만 대출받아도 해결된다고 큰소리쳤다.

 

실제 3월 중순부터 거래처 항의가 거세지자 김학성은 거래처 환불 문제를 개인 돈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대신 대표이사인 내가 일처리 잘못으로 회사에 피해를 입힌 모양새를 갖추자고 했다. 김학성은 이사회를 열어 형식적인 권한정지를 결의할 테니 잠시 피해 있으라고 했다.

 


 

3월 18일 KK게임즈 이사회가 열렸고 이후 나는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당시 나는 김학성이 잠시 사용하라며 건넨 휴대폰이 있었다. 휴대폰은 로그인이 된 상태였다. 나는 휴대폰으로 김학성 계정 이메일을 볼 수 있었다. 이메일에는 KK게임즈 회사 지출 및 자금 현황 보고서가 있었다. 그 자료를 열어본 순간 나는 김학성이 그려놓은 큰 그림을 알게 됐다.

 

그 보고서 거래업체에 납품이 지연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김학성은 국내에는 샤오밍 제품을 수입 가격보다 더 싸게 판매하도록 지시했다. 초기에는 외형적으로 회사 매출이 증가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오래 운영할 수 없다.

 

그러나 13~15개 거래업체에서 30억 원이 넘는 현금을 당길 수 있었다. 김학성은 이 가운데 20억 원 이상을 횡령해 유흥비로 썼다. 김학성은 이 모든 짓을 덮어 씌울 상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제안한 것도 큰 그림 안에 들어 있지 않았을까.

 

보고서를 보다가 ‘김형준 대여금’으로 두 군데 찍힌 항목이 눈에 띄었다. 2월 4일 500만 원, 3월 8일 1000만 원 등 총 1500만 원이 김형준에게 흘러갔다. 김학성이 김형준에게 돈을 해줬다는 말을 들은 게 2월 초였다. 그 내용을 서류로 직접 확인한 것이다.

 


 

나는 3월 26일 이 자료를 들고 피해 규모가 가장 큰 업체인 아스트라를 찾아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는 아스트라에 김학성 고소를 위임했다. 아스트라는 법무법인 로얄에 일을 맡겼다. 일을 진행하면서 김형준 부분은 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스트라는 단호했다.

 

4월 15일 아스트라와 나는 각각 서부지검에 김학성을 사기와 횡령으로 고소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학성은 자료를 회수하려 아스트라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니 돈을 갚으려면 선수금 더 내라.”

 

6월 3일 나는 서부지검에 출석해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주임검사가 김형준과 관련된 부분을 물어봤다. 나는 김학성에게 들은 대로 간단하게 진술했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당시 김학성은 김형준 검사가 나를 죽일 것이라는 식으로 소문을 냈다. 거래업체에서도 김학성이 뒤에 검찰이 있다는 이야기를 흘리고 다닌다고 했다. 급기야 김형준이 김학성을 위해 서부지검 검사들과 식사를 한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이 당시 나는 극도로 두려운 상태였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기자들에게 언론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했을 정도로 내 방어책이 필요했다.

 

내가 고소한 이 사건은 결국 두 동창생을 뇌물공여와 뇌물수수로 재판에 서게 했다. 그런데 각각 주장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김학성은 오랫동안 검사 친구 스폰서 노릇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김형준은 과장이라고 받아쳤다. 김형준은 ‘김형준 대여금’으로 표시된 1500만 원도 뇌물이 아니라 빌린 돈이며 갚았다고 주장했다. 둘 사이에 현금이 오간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이 사건을 차분하게 되짚었다.

 

김학성은 나에게 일시를 정해서 김형준과 함께 만나자고 한 적이 없었다. 늘 당일 갑자기 가자고 했다. 회사 직원들도 나처럼 갑자기 합석하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혹시 우리 회사는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김형준 변호인은 김학성이 말하는 뇌물 부분이 거짓이며 향응 횟수도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나는 김형준 측 주장에 동감하며 회사 자료를 그쪽에 건네줬다. 증거자료 제출에 KK게임즈 회사 직원도 도왔다. 나는 법정에서 자료를 건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김학성은 몇 월 몇 일 몇 시에 김형준을 만났다고 하는데 그날은 저랑 같이 있던 날이거든요. 그런데도 김형준을 만났다고 하니까.”

 

나는 김형준 변호인에게 김학성이 오랫동안 단골로 다니던 유흥주점 <달> 사장 장미희도 소개했다. 변호인은 장미희에게 장부를 제공받았다. 김학성이 술 마신 날짜와 액수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기에 김형준에게 유리한 자료들이었다. 변호인은 법정에서 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2016년 6월 김형준에게 빌려줬던 1500만 원도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다고 가족을 위해 최대한 마련해야 한다고 하면서까지 그 돈을 받아냅니다. 김학성이 술집 여직원에게도 법무팀 운운하며 돈을 회수할 정도인데 만약에 김학성이 김형준에게 뇌물로 건넨 다른 돈이 있다면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요.”

 

나는 변호인 말에 동의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내 기억에 김학성은 입이 무거운 편이 아니었다. 심지어 나와 술을 마시다가 대리비 5만 원을 건넨 적이 있었는데 이튿날이면 직원들이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김학성도 가만있지 않았다. 변호인에게 자료를 넘겨준 것을 문제 삼아 나를 서부지검에 고소했다. 유흥주점 <달> 관할 기관에 장부 사본을 근거로 이 주점이 여성 접대부 등을 두고 영업한다고 고소했다. 종업원들이 팁을 받은 내용이 적힌 장부 한 장을 첨부해 종업원들 처벌을 요구했다.

 

물론 김학성은 KK게임즈 이전부터 김형준에게 향응과 뇌물을 제공했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만난 오강수 씨 구명활동을 위해서다.

 

당시 둘 사이 일은 나(한수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오강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음 제3화, 앞뒤좌우 완벽하게(오강수 시선)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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