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마지막 제8화 생활의 발견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생활의 발견>

 

 

 

조현오는 감옥에 있을 때부터 경찰 간부를 소개해줬다. 맨 처음 소개받은 경찰이 바로 민갑룡이다.

 

민갑룡은 어느 청장이 오나 상사에게 듬뿍 사랑받았다. 박학다식했고 업무 열정이 남달랐다.

 

그에게 차명계좌 발언 재판기록을 요청했을 때 주변에서는 극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민갑룡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정치적 논란을 걱정했다.

 

이 같은 반대에 내 생각은 간단했다. 화해하면 될 것 아닌가.

 

민갑룡은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며 내 시도를 부정적으로 봤다.

 

이후 이른바 친노 그룹으로 불리는 인사를 만났다. 관용과 화해를 역설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들은 친절하고 깍듯했다.

 


 

2014년 12월 나는 조현오와 함께 봉하마을에서 참배를 진행했다.

(☞조현오 전 청장,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몰래' 참배)

 

그리고 2015년 초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추진했다.

 

인터뷰 당일 아침까지 민갑룡은 반대했다. 당시 캐나다 유학 중이던 그는 이메일까지 보내며 인터뷰를 말렸다.

 

하지만 나중에 인터뷰 내용을 확인한 민갑룡은 흐뭇해했다. (☞ 조현오 오마이뉴스 인터뷰)

 

 

조현오와 글 작업을 진행하면서 제목을 <구겨진 제복>으로 정했는데 바로 민갑룡 아이디어다.

 

그는 나중에는 꼭 제복을 펴달라고 부탁했다.

 


 

정권이 바뀌었다. 황운하도 민갑룡도 다 승승장구했다.

 

2018년 봄, 경찰청에 댓글 관련 특별수사팀이 설치됐다.

 

조현오가 타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tv 인용

 

경찰 댓글 실무는 중간급 계장들이 담당한다. 당시 보안, 정보, 홍보마다 이 사건과 관련된 계장들이 있었다.

 

이 사건 피의자로 바뀔지 모를 간부들은 당시 계장들에게 전화해 원망했다. 조직 내 분위기는 추락했다.

 


 

경찰청장 민갑룡은 두 가지 큰 원칙을 세워서 이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민갑룡 경찰청장. ytn인용

 

첫째 처벌 대상을 당시 경무관급 이상으로 제한했다. 즉 총경 이하는 제외되는 것이다.

 

둘째 경찰청 차장 임호선에게 수사지휘를 맡기고 특별수사단 수사 보고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조현오가 불같이 화를 냈던 게 기억난다.

 

“이게 작은 사안이야? 전임 청장 국장 수사하는 내용 보고를 왜 안 받아? 청장이 모든 수사보고를 받고 책임을 져야지! 나는 디도스 수사도 내가 다 보고 받고 챙겼어. 어디 책임을 회피하려고!”

 


 

경찰 조직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조현오가 정부를 옹호하는 댓글 작업을 지시했다면 이는 경찰청 국관회의(일일회의)에서만 가능하다.

 

연합뉴스 인용

 

청장 지시를 각 부서에 전파하는 역할은 기획조정담당관(총경)이 맡는다.

 

그래서 당시 청장 지시가 범죄라면 기획조정담당관도 공범이라 보는 게 자연스럽다.

 

물론 경찰청장 민갑룡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총경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밝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조현오가 경찰청장 당시 기획조정담당관은 민갑룡이었다.

 

연합뉴스tv 인용

 

하지만 조현오는 민갑룡 이름을 그대로 묻었다. 

 

아마 경찰청장으로서 책임과 고뇌를 잘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한 시사주간지에 실린 조현오 입장문 마지막 구절(아래)처럼 경찰조직에 대한 애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고 외교관이 돼서도 경찰이 너무 좋아서 외교관을 포기하고 경찰관을 택했다. 지금은 내가 평생 사랑했고 자부심을 느꼈던 경찰에게 처벌받는 처지가 됐다. 그래도 경찰 조직이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사회 질서 유지라는 본연의 역할을 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은 변함없다.”

 


 

조현오는 그렇게 경찰에게 처음 구속되는 경찰청장이 됐다. 조현오가 남대문경찰서에 수감되고 일주일 동안 보강수사가 진행됐다.

 

조현오에게 이명박 대통령 지시를 받아 댓글 작업을 했다는 진술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노컷뉴스 인용

 

어떤 기자는 조현오에게 이 시국에 책임을 떠넘겨야 빠져나가지 자기가 무슨 장세동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조현오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시간 국정감사가 열렸다.

 

유투브 이재정 tv 인용

 

이재정(여당) 의원이 모 시사주간지에 실린 <조현오 전 경찰청장 입장문>을 들고 나와서 경찰청장 민갑룡을 다그쳤다.

 

이에 경찰청장 민갑룡은 조현오와 분명히 선을 그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조현오는 민갑룡 이름을 덮는다면서, 왜 굳이 입장문 인터뷰에 아래처럼 민갑룡 이름을 들먹였는가?

 

‘민갑룡 청장이 이러한 (청와대) 수사 가이드라인에 항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장의 의지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고백하자면, 이 입장문은 바로 내가 썼다.  (☞  조현오 입장문 "직무범위 벗어난 지시는 전혀 없었다" )

 

조현오는 당시 경황이 없었고 구속을 앞둔 조현오는 내게 전권을 줬다. 전권을 주면 간섭하지 않는 게 조현오 방식이다.

 

 

여기서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당시 시사주간지는 내 의도와 다르게 오히려 여당 의원이 조현오를 두들겨 패기 좋게끔 기사를 써댔다.

 

당시 국정감사에 배석한 경찰 간부 중 김상경(가명)이 있었다.

 

이데일리 인용

 

김상경은 내가 한 짓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당 의원이 이 기사를 근거로 조현오를 난타하는 현장을 지켜봤다. 국정감사가 끝나자 김상경은 문자를 보냈다.

 

“너무 가슴 아팠어.”

 

나는 김상경에게 ‘미친년’ 소리를 들을 각오가 돼 있었다. 그는 연이어 문자를 보냈다.

 

“난 마지막 구절이 너무 좋더라.”

 

 

그 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조현오 구속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기자 때문인가? 당시 기사를 보고 항의하자 기자는 비아냥거렸다.

 

“아이고. 서 작가님. 조 청장님 위하는 것은 알겠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마십시오.”

 

이 눈물은 기자에게 당했기 때문도 아니다.

 

아! 정말이지 고백할 게 너무나 많다.

 

적폐 청산 광풍이 부는 시기에 조현오에게 언론 접촉은 좋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매력적인 언론 선배가 부탁해오면 마음이 약해져 오히려 조현오에게 취재에 응해주라고 몰아쳤다. (☞ PD수첩 장자연 건) 

 

필자가 조현오를 팔아넘긴 순간

 

하찮은 이해관계 때문에 조현오를 팔아넘겼다는 그 사실이 매일 나를 괴롭혔다.

 


 

이 기간 주변에 왜 이 고통과 불행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한겨레> 보도에서 시작한 ‘우연’이라는 카오스적 설명은 허망하게 다가왔다.

 

연합뉴스 인용

 

친노 진영에 찍혀 손 보고 싶은 인물이었다는 코스모스적 설명도 있었다. 내가 손을 놓든 필사적으로 들쑤시고 다니든 결과는 변하지 않았을 듯하다.

 


 

며칠 후, 여전히 침울한 저녁에 전화가 울렸다. 친노 인사 어르신이다. 기분이 좋은 듯 그는 조현오 욕을 시작했다.

 

온갖 듣기 민망한 말을 조현오에 갖다 붙였다.

 

한참 지나자 내 인내심은 한계를 넘었다.

 

 

 

“술 먹었냐?”

 

이 어르신은 내 비아냥거림에 불같이 화를 내며 끊었다. 내 마음도 굳어졌다.

 

조현오가 10여 년 전 차명계좌 발언을 했을 때도 이렇게 마음을 다쳤을 것이다.

 


 

나는 박근혜 정부 시절, 이 분에게 화해와 관용에 대해 수없이 강조했다. 권력을 쥔 자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말을 그대로 내가 돌려받을 때 비로소 보인다.

 

민갑룡 말처럼, 화해와 관용은 어려운 것이다. 며칠 뒤 진영 단감 다섯 상자가 도착했다. 발신 주소는 봉하마을 근처였다.

 

2018년에 보낸 단감

 


 

예전에 친노 정치인 A에게 어떻게 해야 조현오를 용서할 수 있는지 물었다.

 

답은 똑같았다.

 

진정한 사과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봉하 참배나 인터뷰로 밝힌 사과 정도는 진심이 안 느껴진다고 했다.

 

과연 진심이면 될까. 상대 진심을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않으려는 이들에게 그 진심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그래서 그 친노 어르신이 전화로 단감 잘 받았느냐고 물어볼 때까지 입도 뻥끗 안 했다.

 

이제는 권력 중심에서 멀어진 늙고 외로운 노친네 심정을 헤아리고 싶지 않다.

 


 

당시 남대문 경찰서에 수감된 조현오를 면회하러 한걸음에 달려온 이는 칠순을 바라보는 허준영이었다.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후배를 바라본 허준영 심정은 어땠을까. 광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처럼 한쪽으로 쏠린 내 슬픔은 양쪽 진영이 만나 화해하는 게 너무 먼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관용을 더 넓은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당시 일을 추진할 때 그 취지를 깊이 이해하고 도와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친노 진영 인사를 만날 때 도움을 줬다. 그리고 조현오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던 주변 지인도 시간이 흐르면서 양쪽을 이해하는 완충지대로 들어와 있었다. 이들이 휴머니스트인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화해 분위기를 탄다.

 

Jtbc 인용

 

필자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관용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그 완충지대 넓이와 두께에 달려 있다고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진영 논리에 갇혀 우리가 드러내는 사고나 습관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글이 당신과 함께 산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품는데 소소한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적폐 청산 광풍이 불 때는 완충지대는 다시 얇아지며 "휴머니스트는 개뿔"이 된다.

 

 


 

다시 2019년 댓글 재판으로 돌아가자. 공소사실은 정보·홍보·보안 분야에 걸쳐 있었기에 증인이 수백 명에 달했다.

 

2019년 한 해 내내 법정에 앉아 증인 진술을 들었다. 공소사실에 걸쳐 있는 2010~2012년 당시를 차분히 되돌아봤다.

 

그 당시 필자도 광화문 촛불집회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동참했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집회에서 내가 기억하는 모든 장면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경찰 대응은 분명히 필요했다.

 


 

그 당시 경찰이 했던 대응 상당수가 ‘여론조작’이라는 검사 주장이 수없이 나왔다.

 

이에 증인으로 나온 한 경찰이 반박했다.

 

“저는 지금 이 재판이 진행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경찰의 적절한 여론 대응이 왜 이것이 재판 대상이 되는지 잘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이 일선에서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잘 모르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중간 의사전달 과정에서 곡해될 수 있고 실제로 일을 실행하는 사람이 오버할 수 있겠지요. 그런 부분이 지금 문제로 부각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그 당시에 정말 올바른 여론대응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지,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저도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는 당시 대전지방경찰청장이던 황운하였다.

 

법정 복도에서 황운하를 만났다.

 

드림필드11 블로그 인용

 

황운하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황운하는 능청을 떨었다.

 

“난 기억 안 나. 뭐가 미안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 기억이 안나겠는가. 내가 “그 머리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건드렸는데.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중도일보 인용

 

그는 증언을 마치고 법원을 떠났다.

 


 

우리가 또 만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행보를 생각하며 떠나는 대전지방경찰청장(치안감) 황운하 뒷모습은 박근혜 정권 시절과는 달랐다.

 


 

2015년 그해 봄, 경찰대 교수부장 황운하는 치안감 승진을 포기하고 퇴직 후를 생각하던 시점이었다.

 

그때 처음 점심 식사를 같이 했던 날이 떠오른다. 황운하는 같이 밥 먹자며 친한 후배도 불렀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 함께 관용차에 올라탔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았는데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사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조현오 이후로 경찰청장 인물이 안 나오고 있어.”

 

“그러게 말이에요.”

 

 

황운하와 후배 민갑룡(당시 경찰대 치안 연구소장)은 대화에 정신이 없다.

 

달리는 차창 안으로 햇살이 듬뿍 들어오고 있었다. 자연현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심한 듯 보인다.

 

 

The End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7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경찰을 취재한 시기는 2013년쯤이다.

 

처음 취재 방향을 정하기 전까지 온라인에서 경찰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정보를 쌓기 시작했다.

 

경찰 조직에 아는 게 없는 나에게는 언론이 말을 옮긴 경찰부터 접촉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가장 유명한 것은 조현오 청장이었지만 조현오는 관심 밖 인물이었다. 언론이 전하는 인상도 대부분 좋지 않았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진압하면서 몽둥이로 노동자를 두들기는 장면에서 앞뒤 맥락이 어떻든 무슨 상관인가.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인 조현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진보언론이 다룬 기사도 한몫했다.

 

채수창이 성과주의를 비판한 기자회견을 비롯해 2009년부터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징계를 받은 경찰들 사연을 내보냈다.

 

대부분 징계받은 시기와 관할을 따지지도 않고 원인으로 조현오를 지목했다.

 


 

오히려 자기 신분과 이름을 밝히고 활동하는 다른 경찰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에게는 나름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있었다.

 

1980년대 군사정권 후 사회 분위기가 민주적으로 바뀌면서 언론자유도 한결 보장받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이 분위기를 타고 경찰을 향해 갑질하는 기자들이 허위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는 1998년부터 허위 기사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는 경찰이 전국에서 등장한다.

 

그중에 내가 만난 이가 경찰 황운하, 황정인 등이다. 취재란 늘 그렇듯이 온라인에서 모은 풍문과 어설픈 추측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황운하는 2013년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경무관이었다. 경무관 계급정년은 6년이며, 통상 4년 이내에 치안감 승진을 노린다.

 

황운하. 중도일보 인용

 

당시 황운하는 경무관 2년 차로 수사연수원장이었고 아직 망한 단계가 아닌 만큼 절실함도 없었다.

 

주변에 언론계 인맥이 풍부해 굳이 나와 작업할 이유도 없었다.

 

필자는 보기에는 아주 외향적이고 밝은 성격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아주 슬프고 우울함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헤어질 때 황운하는 다시 만날 일이 없다고 말했고 서운함을 느꼈다.

 


 

두 번째로 황정인을 만났을 때 경찰보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더 관심이 갔다.

 

내부통신망에 상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징계를 당하자 ‘표적 감찰’을 주장하던 경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황정인도 거침없이 상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겨레기사 캡쳐

 

 

황정인은 자기도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에 걸리는지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고 했다.

 

황정인 글 쓰기 비법은 양극단을 짚는 것이다.

 

황정인이 조현오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는 ‘조현오 청장이 헌법정신을 중시 여긴다’는 점을 드높이면서 시작한다. 비판에 칭찬을 덧붙인다는 것이다.

 

그에게 조현오가 진짜 헌법정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평소 국관회의에서 헌법 준수를 자주 강조한다고 했다.

 


 

이런 황정인도 감찰을 받을 뻔했다.

 

2011년 6월 8일 반값 등록금 집회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는데 당시 그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 팀장이었다. 물론 그는 징계를 피했다.

 

황정인 말을 그대로 옮긴다.

 

황정인이 블로그에 쓴 글은 많은 언론이 인용했다. 오전 국관회의에 참석했는데 감찰부서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노컷뉴스 인용

 

쫄면서 앉아 있는데 조현오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더니 황정인부터 찾았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글 썼던데!”

 

이 한마디로 감찰은 없던 일이 됐다. 황정인은 조현오 카리스마를 직접 겪었다.

 

황정인과 대화하면서 조현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상대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모른다는 것을 확인할 때 관심은 높아지는 법이다. 언론이 띄운 인물을 만나고 나니 취재 대상이 확고하게 정해졌다.

 

바로 조현오 전 청장이다.

 


 

조현오는 2012년 4월 5일 퇴직했다. 2013년 가을 고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으로 구속된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에게 황정인 씨 덕에 호감을 얻게 됐다고 털어놨다.

 


 

만날 일이 없다던 황운하는 그 후로 해마다 만났다.

 

경무관 4년 차이던 2015년에 우연히 만났다. 당시 대전지방경찰청 부장이었다. 여전히 승진 희망이 있었는지 절실함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헤어질 때 황운하는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황운하는 2016년 경무관 5년 차에 경찰대 교수부장으로 갔다. 그때부터 위로를 빙자한 밥과 술로 자주 접촉했다.

 

그때 필자가 쓴 글이 바로 <풍운아 황운하>다.

 

일 년 후 경찰 조직을 나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지나간 경찰 생활을 정리한 글을 쓰고 싶다며 필자에게 상담했다. 나 또한 조직에서 망해가는 황운하를 위로해주고자 시작된 글 작업이었다.

 

 

 

어쩌다가 황운하가 이렇게 추락하게 됐을까?

 

황운하를 처음 중용한 경찰청장은 허준영이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이다. 총경이던 황운하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 팀장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수사구조개혁팀 계장은 민갑룡이었다. 경찰 측 자문 위원 중에는 조국 서울대 교수가 있었다.

 

이후 황운하를 중용한 이가 조현오다. 2011년 경무관으로 승진을 시켜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내정했다.

 

 

조현오가 물러나자 박근혜 정부에서 황운하는 수사와 관련 없는 부서를 떠돌았고 권력형 수사는 막힌다. 더불어 인사도 망가졌다.

 

황운하는 탄식하곤 했다.

 

“조 청장님이었다면 이렇게 조직이 망가지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됐다. 경찰 수사권 조정에 유리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황운하는 치안감으로 승진하며 울산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다.

 

민갑룡 경찰청장 내정자. ytn인용

 

민갑룡은 민정수석 조국이 강력하게 추천해 경찰청장이 됐다.

 

(☞조국과 친분 묻자…민갑룡 “청문회에서 말하겠다”)

 

적폐청산은 국정과제였다. 민정수석 조국은 적폐 청산 콘트롤 타워를 자처했다.

 


 

2018년 봄, 경찰청에 댓글 관련 특별수사팀이 설치됐다.

 

경찰 조직 안에서는 이 수사를 곱지 않게 보는 눈이 있었다. 하지만 적폐 청산 명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울산지방청장 황운하에게 나는 민감한 부분을 대놓고 찔렀다. 감정이 폭발하면서 우리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물론 경찰청 내부망에 자신을 드러내고 비판한 경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글은 조현오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찰 댓글 특별수사팀은 이 글을 조현오 구속영장청구 명분으로 활용했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조현오가 친한 경찰을 동원해 조직 내 여론 조작을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오는 2018년 10월 5일 구속됐다.

 


 

구속 기간 경찰청 국정감사가 열렸다. 경찰청장 민갑룡을 향한 국회의원 질문이 쏟아졌다.

 

야당 소식인 윤재옥 의원이 물었다.

 

윤재옥 의원과 민갑룡 경찰청장.시사포커스tv인용

 

 

윤재옥 위원: “청장으로서 전직 경찰총수를 경찰이 수사해서 최초로 구속시킨 사건이라고 보도됐는데 소회나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청장 민갑룡: “법과 원칙에 따라 행위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리해나가겠습니다.”

 

 


 

 

이재정 의원(여당)은 시사저널 단독 기사를 띄웠다. (☞  조현오 입장문 "직무범위 벗어난 지시는 전혀 없었다" )

 

 

 

조현오 입장문을 담은 인터뷰 내용이었다.

 

이재정 위원: “(여기에) 민갑룡 청장을 운운했습니다. ‘민갑룡 청장이 이러한 수사 가이드라인에 항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장의 의지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 하면서 뻔뻔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증거가 현격한데요.... (이런) 상황에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하고 경찰청장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문에 몇 번이나 언급을 하는데 경찰청장님한테 뭐 소통된 게 있습니까? 이것 보는 경찰청장님 입장은 어떻습니까?"

 

민갑룡은 이 질의에 “그 분은 그분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즉 그 생각은 조현오 ‘당신의 것(Yours)’일 뿐이다.

 

그런데 이채익 위원은 이러한 민 청장 답변을 ‘당신 자신의 것(Yourself)’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채익 의원과 민갑룡 경찰청장.연합뉴스 인용

 

이채익 위원 : “울산 남구갑 이채익 위원입니다. 오늘 오전 존경하신 윤재옥 위원의 질의에 민갑룡 경찰청장의 답변을 들으면서 본 위원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오늘 위원들의 각종 질의에는 그토록 신중하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던 청장이 경찰청의 대선배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구속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고 정확한 답변을 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죄를 지었으면 구속은 당연하다. 또한 모든 것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만약 조현오 청장이 무죄가 되면 오늘 이 답변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경찰청장 민갑룡 : 수사 과정을 통해서 불법이 있다는 걸 규정을 했고요. 현재 영장실질심사 과정까지 거쳐서 법원에서도 그렇게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답변을 드린 겁니다.

 

이채익 위원 : 구속은 됐지만 아직까지 확정되지는 않았잖아요.
경찰청장 민갑룡 : 예 그렇습니다.
이채익 위원 : 그런데 경찰청장이 그렇게...
경찰청장 민갑룡 : 현재까지 사법적인 판단까지 거친...

 

이채익 위원 : “경찰청장이 이런 답변을 그렇게 예단해서 미리 얘기할 수 있어요? 내가 1998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울산 남구 구청장을 할 때 조현오 청장이 당시 남부경찰서장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조현오 청장을 두둔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전화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만났던 조현오 청장은 국가관이 뚜렷하고 공과 사가 분명한, 너무 공과 사가 분명해서 불편할 정도로 제가 봤을 때는 참경찰상이다, 그렇지만 대민 관계에 좀 더 유연성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할 정도로 너무 국가관이 뚜렷한 경찰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다 보니까 조현오 청장도 이제 영어의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모셨던 전 경찰청장이 경찰의 손에 의해서 구치소에 들어가고 구치가 되고 최초로 경찰청에 의해서 구속된 전 청장에 대해서 구속은 당연하다. 법과 원칙에 따라 했으니까 아무 문제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민갑룡은 이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때 민갑룡이 느꼈을 두려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마 민갑룡은 나에게 자기를 아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 ytn인용

 

 

그렇다면 자신은 누군가처럼 직을 걸고 맞설 그런 용기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스치듯 말했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민갑룡 쌍둥이인가? 2013년이다.

 


 

조현오도 그 시절 순탄하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013년 가을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 봄 그를 면회했다. 조현오는 감옥에 있을 때부터 필자에게 후배 경찰을 소개해줬다.

 

조현오는 가장 먼저 소개해주고 싶은 이가 있다며 경찰 조직 ‘넘버 원’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름을 들었는데 촌스럽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민갑룡”

 

(마지막 화. 생활의 발견.)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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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10년 전 이명박 정권 적폐까지 파헤쳤다. 그중 하나가 ‘댓글 공작’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원·군·기무사·경찰을 동원해 여론 조작을 시도한 사건이다. 그들이 신분을 숨기고 조직적으로 댓글을 쓴 가장 큰 목적은 ‘이명박 정부 옹호’로 알려졌다.

 

이 글은 댓글 공작에 대한 경찰 수사를 다룬다. 수사 과정을 보며 생겼던 한 가지 의문이 출발점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정말 틀렸을까?”

 

‘댓글 공작’ 경찰 수사 기록을 다시 불러낸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1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찰 댓글 수사는 2018년 3월 12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서 시작됐다.

 

국정원·군 이어 경찰도... 2011~2012년 ‘댓글 공작’ 드러나

 

경찰청은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이 집중적으로 파헤친 기간은 2010년 8월에서 2012년 4월이다. 바로 조현오가 서울청장, 경찰청장이던 시절이다.

 

조현오는 2010년 2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댓글부대’를 구성했다. 최대 인원은 100여 명에 달했다. 부대 이름은 스폴(SPOL), Seoul Police Opinion Leader 약자다.

 

이름부터 온라인 여론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지휘부는 쟁점(issue)을 지정해 스폴에 댓글 작성을 지시했다.

 

수사를 시작하자 상급자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댓글을 썼다는 피해자 진술이 쏟아져 나왔다.

 

조현오를 비롯해 경찰 간부 5명에게 적용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방해행사’이다. 조현오는 경찰 댓글 공작을 지휘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됐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이 나왔다. 정보 분야 전체 범죄 댓글 가운데 14.4%를 경찰 한 명이 썼다는 것이다. 그 경찰은 ‘와일드애니멀’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했다.

 

와일드애니멀은 2010년 11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열린 ‘G20 서울정상회의’ 관련 기사에 특히 댓글을 많이 썼다.

 

이명박 정부가 몹시 신경을 썼던 행사다. 와일드애니멀이 쓴 댓글을 보면 단순히 횟수만 많은 게 아니라 분량도 남다르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입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대륙을 향하여 표호하는 끝자락에 있는 작지만 가장 강한 나라 대한민국 아주 순수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또한 손님을 접대할 줄 아는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도 하지요. 이번 G-20 행사 때 세계를 리드하는 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합니다. 어디 지도자분이겠습니까?? 한나라의 대통령이 오시면 그에 따른 수행원과 경제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시는데 집회나 시위를 하여 그분들에게 불안감을 주거나 방해를 한다면 손님들을 불러놓고 집안싸움하는 꼴이 될 것이고 백의의 나라 호랑이가 대륙을 향해 표호하는 대한민국이 세계로부터 버림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여타 나라에서 신뢰를 잃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 후손들은 더욱 어려운 경제와 신뢰가 떨어져 활동하는데 위축될 것이 뻔할 것입니다. 이제 진정으로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행사 기간에는 우리 모두가 양보하고 단합하여 세계 지도자들이 깜작 놀라도록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줍시다. 세계 20개국 외에도 어마어마한 거물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많은 지도자와 훌륭하신 분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실 때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계를 리드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줍시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나요?? 우리 한 번 해 봅시다~~ > (정치관여옹호 범죄 댓글)

 

 

와일드 애니멀은 댓글 치고는 매우 길게 썼다. 댓글 작성을 마치면 이어서 또 쓰기도 했다. 어떤 댓글 작성 시각은 오전 6시 29분, 6시 34분, 6시 38분, 6시 42분으로 이어진다.

 

특별수사팀은 와일드애니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2013년 이미 퇴직한 와일드애니멀을 강제 수사하기는 어려웠다.

 

와일드애니멀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법정이다.

 


 

와일드애니멀은 스폴(SPOL)에서 활동을 인정했다. 그는 동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 정확하게는 기억에 안 나지만 그 당시에 학교폭력이 제일 많았기 때문에 저는 제 아들도 일진에 가입돼가지고 한동안 제가 힘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스폴을 ‘학교폭력 전담 경찰(School Police)’로 이해했으며 결코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시간대를 보면 지시가 내려오기 전에, 이미 댓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댓글 보고를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소속 부서는 댓글 작성을 업무성과에 반영하지도 않았다.

 

그는 생활안전과 소속으로 2010년 남대문경찰서 태평로지구대장으로 근무했다. 주변 경찰들은 그가 평소 댓글을 많이 쓰는 것을 알았다. 서울청에서 스폴 모집 이야기가 나오자 주변에서 그를 추천했다. 그에게 지시를 내린 주체가 있다면 언론과 현장이다.

 

당시 와일드애니멀 일상은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까지 지구대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태평로지구대 주변은 천막을 치고 노숙하는 시위자가 있다.

 

이 구역에서 집회는 일상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경찰은 밥이었다. 시위대는 ‘짭새 새끼’라고 욕했고 운전자는 교통정리도 못하는 ‘세금 도둑’으로 취급했다.

 

2010년 스마트폰 보급률은 4% 정도다. 대부분 컴퓨터로 기사를 검색했다.

 

현장에서 지구대로 돌아온 와일드애니멀은 자리에서 온라인 기사를 살핀다. 대부분 경찰을 비난하는 보도다. 사실관계를 왜곡한 기사에는 댓글을 달았다. 사실관계 왜곡 기준은 와일드애니멀이 정했다.

 

물론 현장에서 자괴감을 느낀 경찰이 모두 와일드애니멀처럼 댓글을 쓰지는 않는다. 와일드애니멀에게는 남다른 경험이 있다. 그는 사건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했다.

 


 

1984년 4월 9일. 당시 서울 ◯◯경찰서에 근무하던 와일드애니멀은 집회시위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곳에서 시위대에 끌려간 그는 3일 동안 한 대학에서 고초를 겪었다.

 

가까스로 풀려난 그는 경찰병원에 이송돼 9개월 정도 입원했다. 이후 몸과 마음이 모두 변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찰을 무조건 비난하는 보도를 보면 목이 메고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댓글은 이런 괴로움을 덜어내는 수단이었다.

 

“마음 답답한 게 글을 달고 나면 아 좀 시원한 느낌이 들고 자기 만족감도 있고.”

 

하지만 검사는 와일드애니멀이 썼던 댓글이 집회시위 관리를 내세워 시위 동력을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조현오 경찰청장 지시를 따른 것이고 이명박 정부가 원했던 것이다.

 

검사는 다음 아고라에 달았던 와일드애니멀 댓글을 문제 삼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큰 행사인 이번 G20 우리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해 주는 나라로 성장한 작금에 확실하게 아시아의 표호하는 호랑이가 세계를 향하여 표호 하는 이 시기에 확실한 매듭을 짓기 위해 모이는 G20 정상회의에 우리 모두는 정성을 다 해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이런 시기에 테러 집단과 야합한다던지 집회나 시위를 하려 한다면 그는 진정 지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이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배달의 자손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내고 계시는 수많은 명사들과 땀을 흘리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중대한 시기에 테러나 집회를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고 그 무엇입니까?? 저희들은 어릴 적에 강냉이 죽을 배급받아먹고 자랐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갔습니다. 더욱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으려면 이번 기회야말로 가장 호기입니다. 한 번 해봅시다~~ 여러분 >

 

검사가 물었다.

 

“증인은 지금 중요한 전제를 깔고 있기를 중요한 일이 있으면 집회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이에 와일드 애니멀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손님 불러놓고 집안에서 싸울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검사는 더 질문하지 않았다. 당시 필자 옆에서 함께 재판을 보던 분이 “공무원 중에 나이 많을수록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라고 속삭였다.

 

와일드애니멀이 시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현오를 옹호하는 댓글은 어떻게 봐야 할까.

 

‘조현오 개인 옹호 댓글’ 개수 1위도 와일드애니멀이다.

 

 

 

“여기 보시면 2010년 8월 14일부터 피고인이 서울청장일 때 인사청문회 관련하여 증인이 피고인을 개인적으로 옹호하는 댓글을 34건이나 달았어요.”

 

이 질문에 답하는 와일드애니멀 목소리가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변했다.

 

“제가 청장님을 존경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기 때문에 달았다는 것인가요?”

 

“네. 처음에 저도 청장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한 번 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청장님 듣다시피 목소리가 허스키하시고.....”

 

이 부분에서 검사가 증인 말을 재빨리 끊고 핵심을 짚고자 했다.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어요?”

 

와일드애니멀 목소리는 여전히 꽃밭 위를 날고 있었다.

 

“웃음이 별로 없으신 분인데 처음에 참석하고 나서 굉장히 직원들에 대한 배려, 조직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 경찰을 이끄시는... 제가 생각하는 서울 치안이 대한민국 치안이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막중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분이 조직을 이끌면, 정말 잘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

 

 

그러자 검사는 논리 싸움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지금 증인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아는 조현오 청장은 이런 사람이고 경찰청장을 수행할 능력과 인품이 충분한 분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안다’ 이렇게 써야 하는 게 아니냐.”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한다.”

 

검사는 다시 댓글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댓글을 보십시오. ‘경찰청장 내정자를 비하하다니. 그럼 누가 경찰을 이끌고 갈 것인가’ 그럼 내정자를 비판하지 누구를 비판합니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임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비판하여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일을 못하면 물러나게 하면 되지...’ 이런 식입니다. ‘경찰청장은 훌륭하고...’ 뭐 이런 내용이 아니에요. 증인이 주장하는 내용과 댓글 내용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와일드애니멀은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 내용과 이 내용이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와일드애니멀은 당시 조현오 서울청장이 “경찰청장 수뇌부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재판장도 뭐가 그리 좋았냐고 재차 물었다. 와일드애니멀은 “성과주의를 도입하고, 공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았다”고 답했다.

 

 

와일드애니멀 증언은 특별수사팀 수사 결과와 배치된다. 하지만 와일드애니멀이 조현오 청장 지지자라 거짓증언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도 스폴팀에서 두 번째로 댓글을 많이 쓴 직원은 조현오를 싫어한다고 밝혔다.

 

 

‘댓글 은메달’ 아이디는 ‘틱스님’이다. 과연 틱스님은 지시에 의한 행위였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해 줄 것인가. (다음 제2화 밤의 집회에서 혼자)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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