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

•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

•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

•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풍운아 황운하 마지막 화. 백 한 번째 프로포즈

 

1983년 경찰대 겨울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황운하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입실 시각은 오후 6시. 친구들과 헤어진 황운하는 6시가 약간 지나 학교에 도착했다. 황운하를 부른 지도관은 흡연과 음주 여부도 확인했다. 황운하는 모두 인정했다. 오히려 당황한 지도관이 되물었다.

 

“왜 이렇게 다 인정하느냐?”

“거짓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술·담배를 하다 적발된 경찰대 학생에게는 퇴교조치가 내려졌다. 황운하는 그를 아낀 한 교수 덕에 구제받을 수 있었다. 황운하는 경찰대 생활에 몰입이 어려웠다. 스스로 자신이 경찰 조직에 있어야 할 동기를 찾아야 했다. 졸업 즈음 자신이 경찰에 있어야 할 이유로 찾은 게 경찰 조직 숙원 해결이었다. 그중 하나가 수사권 독립이다. 이 정도 구조 변화를 꾀하려면 형사소송법 체제를 바꿔야 한다.

 

황운하는 경찰 조직에서 경정 직급인 형사과장 시절, 형사들에게 수사국장이 되어 이러한 큰 틀을 바꾸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경정에서 총경, 그리고 경무관을 거쳐서 치안감으로 승진해야 수사국장이라는 보직을 받을 수 있다.

 


 

황운하에게 2002년 총경 승진 기회가 찾아온다. 2001년 한 경찰대 동기가 서울청 홍보계장을 지냈다. 총경 승진 1순위라 인기가 많은 보직이었다. 그 동기는 총경으로 승진하면서 자기 후임으로 황운하를 추천했다. 당시 동기는 두터운 경찰청장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황운하를 밀어주는 것은 가능했다.

 

황운하는 이렇게 거절했다.

 

"기자들 상대는 체질에도 안 맞고, 일선 형사과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만약 황운하가 서울청 홍보계장으로 갔다면 2002년에 총경 승진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황운하는 일선 형사과장을 택했다. 그리고 2004년 강남서 형사과장 시절 경찰 수뇌부에 찍혀 직위해제를 당했다. 집에서 놀다가 소청심사로 강동서 생활안전과장으로 복직됐다.

 

주변에서는 황운하 총경 승진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우선 승진 가능성이 높은 보직이 아니었다. 심사 기준에는 근무 기간도 포함된다. 황운하가 복직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그 짧은 기간을 가지고 심사받아 승진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 것이다. 그런 순간에도 그 경찰대 동기는 집에서 놀고 있는 황운하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지금 최기문 청장하고 있어. 너는 모르는 채 하고 여기로 와. 그럼 내가 인사시킬 테니까 여기 와.”

 

물론 황운하는 가지 않았다. 그 시절에 황운하를 챙겨준 동기생은 그 친구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 박종희는 경찰청장 최기문에게 황운하 직위해제 문제를 따진다. 언론사와 갈등을 해소하려는 무리한 징계라고 지적했다.

 

경찰청장이 국정감사 지적을 받는 상황에서 최기문 청장이 황운하에게 호의적일 리는 없었다. 그러나 한 참모가 경찰청장에게 “황운하를 승진 안 시키면 경찰 역사에 두고두고 오점을 남기는 경찰청장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황운하는 총경 승진 후, 2005년 수사구조개혁팀장을 맡으면서, 수사권 독립은 '수사 구조'를 개혁하는 시도라는 걸 알리고자 했다. 지금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장하면 사람들은 지금 구조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눈앞에 제시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검찰이 부패하다고요? 경찰도 부패하잖아요. 검찰이 부당한 지시를 하듯 경찰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내릴 수도 있잖아요.”

 

그걸 보여주는 사건은 언제나 존재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06년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수사권 독립 토대로 삼으려 했다. 경찰이 재벌 회장을 구속한 첫 사례였고 마무리도 깔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후 늑장수사와 은폐 의혹으로 이런 시도는 물거품이 됐다. 남대문서장이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현장에 나간 형사들을 철수해 수사를 막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대문서장이 수사를 지연시킨 것은 눈앞에 명백히 드러난 상황이다. 현장에 나간 형사들을 철수해 수사를 막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사가 수사를 지휘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행위다.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에 앞서 문제점을 먼저 드러내야 한다면 검찰 권력 독점은 바꾸기 어렵다. 애초에 오류를 드러낼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를 바꾸고자 실질적인 행동으로 나섰던 이는 조현오 청장이었다. 2009년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조현오는 황운하에게 서울청 형사과장 자리를 제안한다.

 

조현오 청장은 ‘조파면’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내부 비리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조현오 생각은 이랬다. “경찰 부패를 도려내면 국민이 경찰을 지지할 것이고 그런 여론을 바탕으로 수사권을 가져올 거야.”

 

조현오 청장이 업주 접촉 지시를 어긴 직원을 숙청하듯 날려버려도, 경찰은 ‘비리 경찰’ 이미지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이경백 사건이 단적인 예였다.

 

2010년 6월 황운하가 구속한 이경백은 곧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경백은 1심 판결 전까지 자신과 유착한 경찰을 불지 않았다. 하지만,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자 항소심에서 자신과 유착된 경찰을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경백은 2012년 7월 17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왔다.

 

서울 중앙지검 강력부는 2012년 3월 말부터 이경백과 유착한 현직 경찰을 체포하기 시작했고 18명이 옷을 벗었다. ‘이경백 부실 수사’ 여론이 일자 조현오 경찰청장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반면, 조현오는 경찰청장 시절에 ‘황운하를 승진시킨 것’을 가장 잘 한 일로 여긴다고 했다.

 

조현오는 2011년 말 황운하를 경무관으로 승진시킬 때 청와대 민정수석이 강하게 반대했다고 했다.

 

통상 경찰 고위직 인사는 청와대 정무수석과 비서실장, 민정수석, 인사비서관과 경찰청장이 논의한다. 민정수석은 승진자 적격 여부를 검증한다. 보통 민정수석은 검찰과 접촉이 잦아 검찰 출신이 이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그래서 경찰은 검찰 눈 밖에 나면 승진하기 어렵다.

 

황운하가 승진하려면 배짱 두둑한 상사가 받쳐 줘야 했다. 황운하는 2011년 경무관으로 승진했고 수사기획관이 됐다. 2002년부터 황운하가 힘들 때 도와주려 했던 경찰대 동기 친구는 앞서 2009년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2011년 베이징 주재관을 지냈다.

 

수사기획관 황운하가 범죄정보과에게 받았던 첫 보고는 베이징 주재관, 즉 경찰대 동기생이 저지른 범죄행각이었다. 2012년 3월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경무관 박병국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옛 고마웠던 생각들이, 괴로움으로 번졌을 황운하 고통은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물러난 후, 황운하를 과감하게 기용한 상사는 없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과거 황운하가 수사했던 사건에 관계된 검사 일부가 박근혜 정권 핵심으로 포진됐다. 황운하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자 승진과는 더욱 멀어졌다.

 


 

2016년 황운하는 경찰대학교 교수부장이 됐다. 황운하가 경찰 생활을 시작한 지 29년째인 해이자, 경무관 5년 차였다. 경찰은 계급정년 제도가 있다. 승진을 못하면 경무관은 6년 차에 경찰 조직을 떠나야 한다. 황운하는 박근혜 정권과 경찰 인사에 대한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내 역할을 해야 경찰로서 존재해온 살아온 이유와 명분이 있는 것인데, 만약에 내 잘못으로 치안감 승진에서 밀려난다면 오케이지만. 우병우 민정수석이 훼방 놓고, 정치권 실세들이 치안감 자리를 땅따먹기 하듯이 하니까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 내가 그런 걸 바꿔보려고 살아왔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치안감으로 승진이 안 되니까 승질이 나지.”

 

치안감으로 승진이 되지 않아 불만을 쏟아낸다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한 고위직에 있는 경찰대 후배는 그가 박근혜 정권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모습에 탄복했다.

 

"운하 형 대단해. 털어서 먼지 안 나나 봐.”

 

아직 뜻한 바를 이루지도 못했는데, 조직에서 나가라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법하다. 또한, 다가오는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황운하는 2016년 4월, 경찰대학교로 출근하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되짚어 본 소회를 이렇게 피력했다.

 

"25년 전, 나도 경감 초임 시절에 경찰 선배들에게 도대체 뭐하느라 이렇게 형편없는 경찰 조직을 만들었냐며 당돌하게 따진 적이 있었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은 경찰 조직에서 지금껏 실제로 별 이루어놓은 것이 없이 벌써 퇴직할 시점이 다가왔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럽다. 무엇보다도 앞으로도 별 이루어놓을 자신이 없는 것이 또 부끄럽고 또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내게 주어진 어쩌면 마지막 미션일 수도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나마 마음의 무거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나를 비롯한 선배들의 실패사례를 후배들은 반복하지 않도록 올바르게 가르치고 인도하는 일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런 공격을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내가 부끄럽다면 적어도 나보다 더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지만 그대로 난 몹시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걸 아는 사람은 덜 부끄럽다지만 그대로 난 몹시 부끄러웠다." (출처 황운하 블로그. 2016년 4월 25일 쓴 ‘경찰대학에 출근하다’ 글 중에서)

 


 

에필로그

 

2017년 연말은 황운하 경찰 퇴직 예상 시점이었다. 그런 경우, 누구나 평생 몸 담았던 경찰 생활을 담은 자서전 한 권 정도는 소장하고 싶기 마련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하게 될 황운하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서 필자가 써주고 싶다고 자청했다.

 

취재는 2016년 여름에 시작했다. 2016년 경찰 조직 내 황운하 관련 취재는 어려웠다. 황운하가 박근혜 정부와 경찰 수뇌부를 정면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인사를 앞둔 고위직들은 그와 가깝다는 인상이 줄까 봐 취재를 꺼려했다. (바쁜 시간 쪼개서 취재에 응해준 분들께는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2017년 초, 황운하는 수사구조개혁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무관 6년 차 임기를 그렇게 보냈다. 수사권 독립을 위해 멀리서 손 놓고 있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그 뒤로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2016년 연말,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열렸고 이듬해 새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황운하는 치안감으로 승진하여 울산지방청장으로 부임했다.

 

경력 30년 경찰 황운하가 경찰 조직 발전에 얼마나 보탬이 됐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그의 삶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호소력을 갖는다면, 그것은 수사권이라는 주제 안에서 보이는 통렬한 일관성 덕분일 것이다.

 

나 또한 황운하를 겪은 지금, 그가 한국사회에 끊임없이 던져온 '경찰 수사권 독립'이라는 프로포즈를 다시 장기적 과제로 밀어내며, 외면하는 주장을 하지는 못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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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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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공 씨 단독범행이며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2010년 12월 9일 황운하는 디도스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당한 발표와 달리 여론은 축소수사로 받아들였다. 정권 입맛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디도스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자 검찰은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디도스 사건을 수사한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경찰 수사가 잘못된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경찰 조직 내에서도 후폭풍이 불었다. 황운하가 경찰 조직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문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불거졌다. 그러나 황운하는 2012년 말까지 수사기획관으로 일했다. 경찰청장 조현오가 흔들리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믿고 일을 맡기면 간섭하지 않고 외풍도 차단하는 게 조현오 방식이었다.

 

지능수사대와 범죄정보과를 신설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현오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을 테니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해당 과장은 최대한 능력 있는 직원으로 팀을 구성했다.

 

당시 범죄정보과는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작성하는 수준을 요구하지 않았다. 범죄정보과 일부 직원을 정보과 출신이 아닌 수사과 사람으로 구성한 이유다.

 

사건 첩보를 구해 수사하는 것을 ‘인지수사’라고 한다. 이른바 인지수사로 승진을 한 번 이상 했던 사람이 범죄정보과에서 일했다. 이들이 생산한 정보는 수사부서에 넘기면 바로 몇 가지 사항만 보완해 압수영장이나 계좌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수사부서가 압수영장을 받았다고 해서 그 결과가 모두 성공적일 수는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희팔 자금 추적 수사였다. 조희팔은 3조 5000억 원대 다단계 사기사건 주범으로 2008년 중국으로 밀항했다. 조희팔은 주로 대구에서 활동했고 이 지역에 관련 수사가 집중됐다. 당시 범죄정보과는 대구에 사는 조희팔 측근이 자금을 은닉했다는 첩보를 얻었다. 황운하는 대구지방경찰청이 아닌 경찰청 지능수사대에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청장 조현오도 나름 호전적인 기질이 있는데, 수사기획관으로 황운하까지 오면서 검찰 심기를 건드리는 행보가 이어졌다. ‘밀양 경찰 검사 고소 사건’이 첫출발이었다.

 


 

이 사건은 젊은 경찰대 출신이 2011년 밀양경찰서 지능팀장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당시 경남지방청은 토착비리 수사 성과를 독려했다. 때마침 지능팀장은 지역 사이비 기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역 폐기물업체 수사로 급선회한다. 수사 대상은 업체를 비호한 공무원까지 확대된다. 사건 규모는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독려하던 검사도 태도가 달라졌다. 검사는 지능팀장을 검사실로 불러들여 ‘수사의 정도’가 아니라며 제동을 걸었다. 지능팀장이 되물었다.

 

“어떤 점에서 비 정도입니까?"

 

지능팀장은 당시 그 말을 들은 검사가 흥분해 욕설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새끼 너 정신 안 차려. 여기가 어딘 줄 알어? 계장님 이 새끼 피신(피의자 신문조서) 받으세요. 너희 서장 내 앞에 불러봐? 너희 과장 한 번 불러봐?”

 

지능팀장은 검찰과 경찰이 협력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전과 머슴이었다. 지능팀장은 검사 말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고 검사실을 나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굴욕감, 자괴감, 모멸감 같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지능팀장은 앞으로 처신을 고민했다. 수사기획관인 황운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했고 검사를 폭언과 수사 축소 지시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해당 검사가 지능팀장에게 과잉수사 문제를 지적하며 적절한 수사 지휘를 했을 뿐 폭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이 사건을 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즉시 배당한다. 또 혐의를 부인한 채 진술서만 내고 경찰 소환 요구를 세 차례 거부한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영장을 기각했고 경찰 기소 의견도 무혐의 처리했다.

 

경찰청장 조현오는 이 과정에서 “검찰은 문제 있는 경찰을 잡아들이고 경찰도 문제 있는 검찰을 잡아들이면 두 조직이 모두 깨끗해지지 않겠느냐”라고 말해 검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검찰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경찰청 수사에 대응했다.

 


일반적으로 경찰청이 하는 수사는 특정 관할 사건이 아니다. 가령 조희팔 은닉자금 추적 수사는 피해자가 전국에 걸친 전국단위 수사였다. 검찰은 그런 경찰청 수사 사건들을 관할로 이첩을 요구하면서 방해하기 시작했다.

 

즉, 서울중앙지검은 조희팔 은닉자금 추적 수사를 대구지검으로 넘기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이 사건은 경찰청 지능수사대가 아니라 대구지방경찰청이 맡게 된다. 그러나 대구지역 경찰관은 조희팔 세력과 유착이 됐다는 의혹 때문에 수사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든 수사는 수사관 의지에 달렸다. 경찰청은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관을 대구지방청 수사계 소속으로 보냈다. 공문으로 진행하는 이 인사 과정은 검찰도 파악했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이 신청하는 각종 통신 허가와 계좌추적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공문에는 조희팔 은닉 재산 추적과 유착된 경찰을 잡겠다는 명분이 있었다.

 

대구로 간 수사팀은 조희팔 측근 거주지 아파트까지 특정해냈다. 하지만, 아파트를 압수수색하니 첩보 내용과 달리 측근은 빈곤하게 살고 있었다. 아파트를 뒤지면서 조희팔 사망을 암시하는 간접증거도 나왔다. 경찰청 지능수사대는 2012년 5월 조희팔 사망을 발표한다. 이 발표는 디도스 수사 발표만큼 언론에 집중포화를 맞는다.

 

처음 첩보와 수사 내용이 다르면 수사팀은 철수 지시를 바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부는 사람이 죽어도 돈은 있을 것이라며 은닉자금 추적을 지시했다. 불법 다단계 업자들은 통상 차명계좌를 사용한다. 모든 단서는 조희팔 주변인 진술에서 시작된다.

 

“내가 통장 빌려서 준 적 있다.”

 

수사팀은 본인 동의를 받아서 계좌들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장을 받아서 상대 계좌를 다시 열어본다. 수사팀은 대구에서 계좌추적 영장을 수십 차례 받아내며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조희팔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흘러 들어간 계좌 가운데 한 검사 이름이 등장한다. 검사는 조희팔 쪽에서 넘어온 자금으로 유진기업 주식을 샀는데 그 계좌에 입금한 사람들은 모두 특수 3부 검사였다. 이 가운데 한 명이 조희팔 쪽 수표를 검사 계좌에 입금한 것이다. 그 검사 이름이 김광준이다.

 

김광준은 고교 동창이면서 조희팔 측근인 강태용에게 받은 수표로 주식 투자를 한 것이다. 조희팔 자금 일부가 부장검사인 김광준 차명계좌로 흘러간 것이다. 수사관 30여 명이 차명계좌에 입금 한 사람들을 동시 조사하고자 전국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경찰 수사 정보가 언론에 새 나가면서 검찰이 직접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김수창 특임검사를 지명했다. 특임검사제도는 2010년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이 불거지자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이 검찰이 자정 능력을 강화하겠다며 들고 나온 개혁(?) 조치다.

 

검찰은 무엇보다 검사가 경찰에게 조사받는 선례를 남기지 않는 게 중요했다. 특임검사팀은 김광준 검사를 구속시키면서, 총 10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김광준 검사 개인 비리 차원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들은 황운하가 수사기획관이었기에 타깃이 김광준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 진행하는 ‘윤우진 용산세무서장 뇌물 수수 의혹’ 사건 또한 황운하가 뒤를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사건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 모 교수와 관련된 뇌물 첩보에서 시작된다. 당시 학과 학생 절반이 이 교수에게 불법 레슨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다른 첩보를 얻는다. 바로 이 교수에게 돈을 바친 학부모 김 모 씨가 윤우진 세무서장에게 뇌물을 건넨 정황을 잡아낸 것이다.

 

김 씨는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서 육류 수입 가공업자로 일했다. 매출이 큰 사업체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자기 사업체를 나누는 방식으로 매출을 줄이기도 한다. 이런 편법 사용 여부를 관할 세무서가 모를 리가 없다. 이를 눈감아달라는 뜻에서 관할 세무서장에게 로비를 할 이유가 생긴다. 김 모 씨는 윤우진 세무서장이 골프를 칠 때, 본인 카드로 비용을 결제를 해줬고 검사들도 함께 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범죄정보과에서 생산한 정보를 바탕으로 경찰청이 수사할지 지방청으로 보내야 할지 판단하는 주체가 수사기획관이다. 이 정보는 서울청 광역수사대로 넘어간다.

 

김모 씨 카드 결제 내역을 살펴보면 언제 골프를 쳤는지 알 수 있다. 보통 자기 이름으로 예약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각 골프 부킹 명단과 골프장 내 CCTV만 확인하면 된다.

 

간단한 사건이다. 하지만 검찰은 골프장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명분은 인권 보호였다.

 

경찰은 당시 윤우진 세무서장 통화기록을 갖고 있었다. 골프 치는 당일, “지금 누가 먼저 도착했어?”와 같은 대화가 전화로 오갔을 것이다. 기지국 위치를 근거로 톨게이트를 통과했을 차량을 특정해냈다. 그러나 차량 번호로 정확한 부킹 명단을 확인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해 검찰은 골프장 압수수색 영장을 6차례나 기각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는 여름에 윤우진을 불러 조사를 했다.

 

수사관은 조사를 끝마칠 즈음 외국에 나갈 계획이 있는지 확인했다. 윤우진 세무서장은 성실히 수사에 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사관은 당부했다.

 

“혹시 외국으로 나가려면 사전에 저희에게 꼭 말씀해야 합니다.”

 

2012년 8월 30일, 윤우진 세무서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해외로 도망친 것이다. 도피 전, 윤우진 세무서장은 대포폰으로 검사 여러 명과 수시로 통화를 하곤 했다. 누군가로부터 코치를 받은 흔적이 짙었다.

 

윤우진이 해외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경찰 쪽에 쓴 '빽'이 황운하로 인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사건 수사 관계자는 이를 “황운하 공이 크다”라고 표현했다.

 

윤우진 세무서장은 사회 전방위 분야에 힘 있는 인맥을 갖고 있었다. 경찰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당시 수사기획관인 황운하도 ‘빽’ 쓰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황운하는 그럴수록 서울청 광역수사대 실무진을 경찰청으로 불러들여 윤우진 수사 상황을 챙기기 시작했다. 진행 상황을 자세히 듣고 부족한 사항은 보완을 지시했다.

 

윤우진은 친한 경찰 고위직 인맥을 통해서 수사에 힘을 빼려는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윤우진 입장에서는 시간을 끌 수 있는 방법으로 해외도피를 택했을 것이다. 시간을 끌면 경찰 인사철이 다가올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2012년 11월 황운하는 결국 수사기획관에서 물러났고, 수사와 상관없는 보직으로 밀려났다. 당시 경찰청장 김기용은 황운하에게 부담스러운 심경을 털어놓았다고 했다.

 


 

2012년 말,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2013년 3월 김학의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이 터졌다. 정권은 권력층 수사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이 수사에 관여한 경찰들은 수사부서에서 배제됐다. 인사가 조직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경찰 수사기능은 그렇게 와해됐다.

 

황운하 수사기획관이 떠난 후, 박근혜 정권 하에서 권력층 비리 수사를 이어갔던 한 경찰은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조직에서, 저에게 전화해서 열심히 하라고 끝까지 격려해준 사람은 황운하와 조현오. 나머지 대부분은 전화해서 뭐라 하고 욕하고…”

 

(마지막 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글쓴이 : 서형 seohyung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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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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