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의 기억 제6화 유력한 용의자 남편

 

 

 

 

남편 백경환(가명)씨가 사건 발생 직후 보인 행동들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당일 상황을 살펴보자.

 



백경환 씨는 오전 11시경 아내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일터에서 백 씨는 전화를 받은 뒤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뭔 막걸리를 줬는데 그게 잘못 되었는갑소."

 


백 씨는 일터에서 고향 마을로 달렸다. 당시 아내가 실려 간 병원으로 가려면 구례역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백 씨는 동생 집으로 갔다. 동생은 우선 장례식장으로 갈 것을 권했다. 하지만 백경환 씨는 현장으로 가서 막걸리병을 찾아 나섰다.

 

물론 현장은 이미 노란색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이 쳐진 상태였다. 그 후 백 씨는 병원으로 갔다. 친척들도 모여들었다. 장례식장에서 장모는 "술 먹으면 백 서방에게 많이 맞더니 결국에는 이렇게 되었네"라며 통곡했다.

이처럼 사건 당일, 최 씨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에 백경환 씨가 바로 '막걸리'가 문제였다고 여긴 점, 장례식장으로 곧장 가지 않고 사건 현장으로 간 점, 장모가 사위의 폭력적인 성향을 거론한 점 등을 검찰은 문제 삼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백경환 씨는 딸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백희정(딸, 가명)씨 검찰 자백에 의하면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는 막내딸에게 "경찰들에게 말조심하라"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이 부녀를 범인으로 지목하자 죽은 최 씨 식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검찰은 죽은 최 씨 여동생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왜 언니가 죽었는데도 용의자 편을 드느냐는 것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망한 최 씨쪽 식구들은 필자에게 사건 당일 있었던 일을 더욱 상세히 들려줬다.

 



당시 친척 사이에 장례 절차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고 한다. 순천 시내 병원보다는 동네와 가까운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백경환 씨는 돈이 없다며 난처해했다고 한다. 백경환 씨는 부인이 죽은 상황에서 돈 걱정을 먼저 했다는 것이다.

장례식장 주변에는 경찰이 모였다. 조문객이 한 명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문객들이 부조금을 건네자 그걸 일일이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장례 마지막 날 관이 나올 때 백 씨는 대성통곡을 했다.

"나 두고 가면 어쩌냐!"

이 장면을 본 사돈 쪽 식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백경환 씨가 범인이란 의심을 했을까? 친척들은 백 씨의 이런 모습이 결혼 초기부터 늘 봐 왔던 장면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 시선에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비칠지 생각하는 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장모가 통곡한 내용에는 친척들이 어떤 입장을 보일까? 당시 장모 통곡 소리는 장례식장에 있던 사람 대부분이 들었다고 한다. 사돈 쪽 식구들은 장모가 이런 통곡을 한 것은 이들 부부가 장모 앞에서도 싸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친척들 대부분은 동네 사람들을 초대한 장인 회갑 때를 비롯하여, 딸 결혼식 전날에 벌어졌던 부부간 다툼을 기억했다.

백 씨의 '욱'하는 성격, 친척은 "정상이 못 된다"는데

 

 


백경환 씨는 이처럼 '욱'하고 성질이 뻗치면 주변 시선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친척들은 이런 백경환 씨를 '부족하다', ' 정상이 못 된다'라고 생각했다. 즉 이런 범행을 계획할 만큼 지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아내 최 씨가 술에 취해 말수가 많아지면 부부 싸움이 나곤 했다. 자녀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술을 마시면 말수가 많아지고 언성이 높아졌는데, 아버지 백경환 씨는 "시끄러워!" 하면서 물건을 집어던지며 다퉜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정도 부부싸움은 흔한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장례식장에서 장모 통곡을 접했던 친척들은 전체적인 맥락상, 장모가 사위를 용의자로 놓고 하는 말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내딸은 아버지가 "경찰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당부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털어놨다. 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부분 역시 친척의 생각은 검찰과 많이 달랐다. 죽은 최명자(가명)씨 여동생도 형부가 백희정 씨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유는 아버지와 딸 둘이서 나눈 귓속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이 오고 간 것일까? 당시 한 친척은 막내딸이 장례식장에서 엉뚱한 소리를 해대니 아버지가 '말 함부로 하지 말라'라고 주의를 시킨 취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검찰은 이러한 보강증거와 더불어 살인 발생 원인도 더욱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 살인사건 동기가 반드시 부녀 성관계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이 사건도 다른 존속살인들처럼,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장기간을 두고 복합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해당 사건이 백 씨 집안에서 '가정환경, 성폭행 배경, 인터넷 채팅, 부부간의 다툼, 모녀지간의 갈등, 피고인 백희정의 비관적 삶의 한탄, 가족 간 경제적 어려움, 가족 간 우애 상실' 등이 오랜 시간을 두고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형사합의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러한 논리에 동감했다. 변호사는 여러 누적된 갈등이 내재한 상태에서 어느 순간 격분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우발적으로 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계획범죄에 가깝다. 계획적인 범죄들은 동기가 뚜렷한 법이다. 보통 살해 동기는 금전, 치정, 원한 이 세 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그 복합적 원인 중 하나가 "실제 백경환은 은행권에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에 발생한 인천 모자 살인사건에서도 사채라 불리는 제2금융권 대출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백경환 씨에게는 어떤 채무가 있었을까? 경찰은 초기에 백경환 씨 빚을 조사했다. 큰딸 카드 값과 오이 하우스 등 이유로 농협에 집을 담보로 4천만 원을 대출받았고, 2008년 12월경부터는 연체되고 있었다. 이는 농협에 농사자금을 빚진 것이다. 농사자금은 저금리에 속한다.

부조금 일일이 챙긴 남편, 과연 금전 문제가 살인 동기였을까

검찰 주장처럼 저금리 농사자금이 살인사건 동기 중 일부로 작용했을까? 한 형사는 만약에 부인이 농협에서 농사자금을 빌려서 그걸 엉뚱한 데 써버렸다면 부부간 갈등이 됐을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 집안은 금전 문제로 인한 부부 갈등이 어느 정도였을까? 사건이 발생한 2009년, 백경환 씨 집안의 경제적 여유를 살펴보자.

2009년은 오이 하우스 농사를 접었기에 돈이 궁해졌다. 2009년 4월경 백 씨 부부는 집 전화와 휴대전화 요금을 연체하기도 했다. 게다가 자녀 빚까지 갚아주는 실정이었다. 부부는 나락 농사와 동네 품팔이를 시작했다. 백 씨는 이웃 사람과 함께 다니며 집 짓는 일을 거들기도 했다. 최 씨는 순천시청을 찾아 희망근로사업장 근무를 신청했다. 농촌 품삯과 비슷한 일당이 나왔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최 씨는 일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백경환 씨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백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거리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마을 식당 주인이 친척 한 분을 소개했다. 산림청 하청을 받아 풀 베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일터까지 차로 40분 거리였다. 백 씨는 2009년 7월 1일부터 일을 시작했다.

만약에 부인이 없어진다면 남편 백경환 씨에게는 어떤 경제적 이익이 생길까? 백경환 씨가 혼자 농사를 지어야 하며 은행 빚도 혼자서 짊어져야 한다. 게다가 막내딸은 훌륭한 농사 파트너가 아니었다. 지난 기사에서 말했듯이, 백희정 씨는 일에 서툴고 의지가 없어 농사와 집안일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즉, 딸과의 자유로운 성관계를 위해 아버지가 평생 혼자 일하며 딸의 밥상까지 차려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부녀가 살인했을 때 상대적으로 돌아오는 이익을 생각해보면 살해 동기를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백경환 씨와 백희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초기에 유력한 용의자였다. 하지만 경찰은 부녀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백희정 씨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경찰을 철저하게 속였다고 털어놨다. 경찰도 막내딸의 말을 그냥 믿어줬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통화내역 등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압박해 부녀가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백경환 씨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번복한 사실에 의심을 품었다. 백경환 씨 진술을 살펴보자. 우선 기상 시각이 오락가락했다. 또 막걸리를 토방에 올려놓을 당시 아내가 방 안에서 자고 있었다고 말했다가 부엌에 있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사건 당일 식당 주인은 백경환 씨가 가게에 온 시각이 오전 5시 10분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백 씨 주장은 오전 5시 30분이었다. 백 씨는 또 일터로 바쁘게 가야 해서 막걸리병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마을 식당에서 커피 마실 시간은 있었다는 진술도 있었다.

사실 경찰도 검찰처럼 백경환 씨와 백희정 씨를 의심했다. 하지만 한 달 이상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경찰은 왜 검찰처럼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이제부터 경찰 수사를 한 번 점검해보기로 하자.

(제7화 - '경찰 수사 점검'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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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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