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나흘간의 기억> 제2화, 범행 도구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범행도구는 막걸리와 청산가리다. 용의자 백경환(가명)씨는 검찰에서 막걸리와 청산가리 구입처를 자백했지만, 검찰은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자.
검찰은 백경환 씨가 7월 2일 순천 시내 아랫시장, 장원식당에서 막걸리를 샀다고 했다. 이곳은 순천 시내에서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는 장원식당 남자 주인에게 국밥과 작은 막걸리(750㎖) 3병 값을 계산했다. 백경환 씨의 자백은 과연 현실 타당할까?
식당 주인은 막걸리 큰 병(900㎖)을 주로 취급하고 작은 병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큰 병이 이윤이 더 남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식당 주인은 장원식당 장부를 제출했다.
검찰은 장원식당이 정말 큰 병만 취급하는지 확인하고자 현장으로 나갔다. 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이 채 안 지날 때였다. 그런데 현장으로 나간 검찰은 이 식당 냉장고에서 작은 막걸리 8병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900㎖ 막걸리만 취급한다는 식당 주인 주장과 달랐다. 식당 주인은 이 작은 막걸리는 정상적인 유통경로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범행 도구였던 막걸리, 왜 용량이 달랐을까
8월 15일 순천만 갈대밭 축제 때 행사에 쓰인 막걸리가 남아 통장이 구매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병을 1만 원에 주고 샀다며 장부를 보여줬다. 하지만 검찰은 750㎖ 막걸리가 납품 과정에서 섞여 들어올 가능성에만 주목했다. 게다가 7월 2일은 손님이 붐비는 아랫장날이었다.
검찰은 아랫시장 국밥집 가운데 주로 900㎖ 막걸리를 취급하는 대송순대국밥 주인을 증인으로 불렀다.
대송순대국밥집은 자신들도 큰 막걸리를 주로 취급하지만 7월 2일은 900㎖ 막걸리가 다 떨어져 작은 막걸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장원식당에 대해서도 대송순대국밥집과 같은 가능성을 제기했다.
검찰은 이처럼 단지 '작은 병이 섞어 들어왔을 가능성'을 말했다.
그렇다면 이 사건 두 번째 핵심 쟁점인 '청산가리'를 살펴보자. 검찰은 청산가리 구입처를 명확하게 밝혀냈을까?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청산가리에 관한 자백을 받으면서 정작 추궁해야 할 것은 지나쳤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사건이 더욱 복잡하고 난해해졌다는 것이다. 대체 그건 무슨 말일까?
부녀는 범행에 쓰인 청산가리를 어디서 구했던 것일까? 검찰 공소장에는 백경환 씨가 17년 전에 청산가리를 이강춘(가명)씨에게 얻었다고 한다.
변호인은 주변에 나이가 제법 든 선배들에게 예전에 유통되던 청산가리에 관해서 물어봤다고 한다. 선배 변호사들은 17년 전에 유통되던 청산가리는 가루 형태가 아니라 덩어리였다고 했다.
17년 보관했다는 청산가리 가루,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이 사건과 같은 해 발생했던 보령 청산가리 독극물 사건에 등장하는 청산가리도 덩어리 모양이었다. 충남 보령에서 독극물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09년 4월 29일이다. 사건 당일 마을 사람 6명은 태안 안면도 꽃 박람회 구경을 다녀왔다. 그날 밤 한 노부부가 거실에 나란히 누운 채 죽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추가 사망자를 확인한다. 아랫집에 사는 정 씨 할머니도 밤새 혈압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정 씨 할머니 남편은 사건 초기부터 유력한 용의자였다. 형사들은 정씨 할머니 남편에 대해 캐기 시작했다. 과거 다른 지역에서 살 때 가입했던 친목단체 회원 명부까지 파악했다.
이후 8월이 되자 경찰서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철공소를 운영한다는 그는 사건 전 정씨 할머니 남편에게 청산가리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청산가리는 철공소 안에 있는 분유통에서 발견했다. 그 분유통에는 수십 년이 지난 청산가리 덩어리가 있었다. 청산가리 표면은 공기와 접촉하면서 변질한 듯했다. 서리가 낀 것처럼 꽃이 핀 모양이었다.
반면 백경환 씨가 17년 동안 보관한 청산가리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부녀의 진술에 따르면 17년간 보관한 청산가리는 백색 가루 형태였다.
이들 부녀는 17년 동안 청산가리를 신문지와 비닐봉지에 보관했다고 진술했다. 비닐봉지는 고분자 물질이다. 백경환 씨가 17년간 허름한 창고 안에 보관한 청산가리는 여름 장마철을 17번 겪어야 했다.
청산가리(KCN)는 조해성이 강한 물질이다. 조해성은 고체가 공기 중 수분을 흡수해 스스로 녹는 성질을 말한다.
여름 장마철 수분을 흡수해 녹은 청산가리는 이산화탄소(CO2)를 흡수해 시안화수소(HCN)와 탄산칼륨(K2CO3)으로 변한다. 기체인 시안화수소는 산이고, 고체인 탄산칼륨은 염기다. 산과 지속해서 접촉한 비닐은 손상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종이는 산이나 염기와 접촉하면 변색하고 부서진다.
변호인은 청산가리 가루가 17년간 남아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을 표했다. 이에 검찰은 신문지와 비닐봉지로 청산가리가 17년 동안 잘 밀봉됐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공기에 노출된 청산가리 가루는 약한 살구색 또는 푸르스름한 색으로 변한다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즉 백희정(가명)씨가 막걸리에 탄 청산가리 가루는 결코 백색일 수가 없다.
검찰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 그런데 백경환 씨는 조사과정에서 단 한 번도 17년 전에 청산가리를 얻었다고 말한 바가 없었다. 백경환 씨는 검찰이 현장검증할 당시에도 17년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4~5년 전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17년 전으로 시기가 조정이 됐을까? 청산가리를 주었다는 이강춘 씨가 10년 전인 1999년에 죽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를 백경환의 착오로 설명했다. 여기서 검찰 조사에서 나타난 당시 막걸리와 청산가리를 희석하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검찰 공소장에는 백희정 씨가 사건 이틀 전인, 2009년 7월 4일 오후 8시쯤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탔다고 했다. 실제로 백희정 씨는 검찰 현장검증 때는 막걸리 병에 청산가리를 넣던 당시 캄캄해서 라이터를 켰다고 했다.
막걸리에 청산가리 타던 시각, 한 손으로는 폰뱅킹을?
그녀의 자백은 과연 납득 가능할까? 백희정 씨는 오후 8시쯤 면장갑,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 막걸리, 청산가리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면장갑을 착용하고 캄캄한 곳에서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탔다. 이에 변호인은 7월 4일 백희정 씨 통화기록을 제시했다.
통화기록에는 당일 오후 7시 55분부터 8시 48분까지 9회에 걸쳐 폰뱅킹을 한 것으로 돼 있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백희정 씨는 한 손으로 청산가리를 막걸리에 타면서 다른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쥐고 계좌를 계속 확인한 셈이다.
변호인이 의문을 제기하자 검찰은 공소장에 기재한 시간을 '오후 7시 30분경부터 7시 50분경'으로 조정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KASI 천문우주 지식정보 자료를 검색하면 이날 일몰 시각은 오후 7시 48분이다.
공소장에는 청산가리가 하얀 비닐봉지와 신문지 조각으로 감싼 채 보관됐다고 나온다. 이는 아버지 주장이다. 막내딸은 검은색 비닐봉지라고 주장했다가 검찰이 추궁하자 어두운 데서 봤기 때문에 착각했다고 진술을 바꾼다. 검찰이 조정한 시간대로라면 비닐봉지 색깔을 착각할 정도로 어두운 때가 아니었다.
변호인은 검찰 조사에서 밝힌 이들 부녀 공모 과정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 조사대로라면 계획적인 범행을 공모했는데, 부녀 사이에 구체적인 소통 과정이 없다는 점이다.
(제3화 '소통 없는 공모'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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