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제10화 <그것이 알고 싶다> PD 입장
이제부터 검찰 수사를 하나씩 점검해보자. 우선 범행 도구 중 첫 번째 막걸리다.
검찰은 백경환 씨가 7월 2일 순천 아랫장에 있는 장원 식당에서 구마막걸리 작은 병(750㎖)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원 식당 주인은 자신의 식당에서 구마막걸리 작은 병(750㎖)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막걸리 배달원도 법정에 나와 장원 식당에는 구마막걸리 큰 병(900㎖)만 공급한다고 증언했다.
범행도구인 막걸리, 사건 당시엔 작은 병도 팔았다고?
검찰은 7월 2일이 사람이 붐비는 아랫장날이라 작은 병이 섞여 들어올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그런 예도 있었다.
장원 식당 근처 대송 순대국밥집이 그랬다. 이 식당도 당시에는 900㎖ 구마막걸리만 팔았다. 식당에서 막걸리가 떨어지면 제조공장으로 주문 전화를 한다. 그런데 7월 2일 식당 주인이 전화하니 공장에서는 '900㎖가 떨어져 750㎖밖에 없다'라고 했다. 대송 순대국밥집주인은 '작은 병이라도 갖다 달라'라고 부탁했다.
검찰은 법정에 대송 순대국밥집주인을 검찰 측 증인으로 불러냈다. 대송 순대국밥집주인은 법정에서 "큰 막걸리(900㎖)를 취급하지만 아랫장 날인 7월 2일에는 작은 병(750㎖)도 팔았다"라고 증언했다. 검찰은 이 증언을 장원 식당 주장을 뒤집는 근거로 활용했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송순대국밥집 주인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우선 전체적인 경찰 수사 흐름을 되짚어보자.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백경환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봤다. 경찰은 백경환 씨를 순천 시내 슈퍼와 식당을 데리고 다니면서 주인들에게 막걸리를 팔았는지 물었다. 그런데 경찰이 백경환 씨 주변을 아무리 파헤쳐도 뚜렷한 물증이 없었다. 이후 경찰은 새로운 용의자가 생길 때마다 식당 주변을 파헤쳤다. 형사들은 새로운 용의자 사진을 들고 막걸리를 파는 가게와 식당에 다니면서 탐문수사를 했다.
대송 순대국밥집에도 형사들이 왔다. 형사는 주인 부부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런 사람에게 막걸리를 팔았느냐"라고 물었다. 당시는 사건이 일어난 지 이미 한 달이 지난 시기라 바로 기억해낼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형사들은 여러 번 찾아왔다. 그 사이 식당 주인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 5일경 주인이 "식당에 온 어떤 손님 부부에게 (7월 2일에 주문했던) 작은 막걸리를 판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대송 순대국밥집도 900㎖ 구마막걸리가 떨어지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로 '흔한 일은 아니었다'라고 했다. 그래서 750㎖ 작은 막걸리가 들어온 날을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날이 바로 7월 2일 아랫장날이었다는 것이다.
형사들이 더욱 빈번하게 식당에 국밥을 먹으러 왔다. 처음에는 짜증을 내던 식당 주인 부부도 차츰 마음이 움직였다. 무엇보다 더운 8월에 매일 국밥을 먹으러 오는 형사들이 안쓰러웠다.
한 형사가 대송 순대국밥집 식당 주인에게 최면수사를 제안했다. 식당 주인에게 최면수사 참여는 하루 생업을 접어야 하는 일이다. 결국 남자 주인이 전북경찰청에서 최면수사를 받았다.
검찰의 행동은 다른 용의자와 관련된 식당 증언을 부녀 유죄를 입증하고자 가져다 붙인 것이다. 이래도 될까?
이에 대해서 법조계와 경찰 의견이 엇갈렸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그러면 안 되는 건데…"라며 깊이 생각하다가 "법전에는 '그러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자신이 법관이었다면 이를 검찰이 장원 식당 장부 신빙성을 흔들고자 노력하는 차원으로 봐줄 것이라고 했다. 정도는 아니지만 용인할 수는 있는 범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달랐다. 수사 정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만약에 경찰이 검찰에게 A를 수사했던 내용을 B에다가 갖다 붙인 기록을 송치했다면 검찰은 분명히 수사 재지휘를 내릴 것이라고 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백경환 씨는 검찰에서 자백했다.
경찰이 짚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경찰은 백경환 씨가 사건 당일 막걸리를 발견한 위치를 의심하지 않았다. 백경환 씨는 그동안 막걸리 발견 위치를 대문과 가까운 지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 수사 중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을 보고 해당 진술에 의심을 품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과 관련된 방송을 3번 내보냈다. 검찰이 힌트를 얻었다는 방송은 2009년 8월 1일에 방영된 726회 '두 마을의 끝없는 공포-청산가리 살해 미스터리' 편이었다. 한 전직 형사과장은 이 방송에서 부녀 인터뷰를 보고는 자기주장을 펴는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보고 자백받아낸 검찰
당시 백 씨 부녀를 인터뷰한 SBS 고영우 피디의 생각은 어땠을까? 고영우 피디는 백희정 씨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백희정 씨에게 최근 일어난 상황을 물었는데, 그 질문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말솜씨는 단순한 사실을 나열하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검찰은 방송을 예리하게 보았다. 방송을 보면 막걸리 발견 위치에 대해 두 가지 다른 장소가 나온다. 먼저 집과 가까운 '화단 끝 부분'이 먼저 클로즈업되었고 재연 장면에서는 전혀 다른 '대문 밖'이었다.
2009년 8월 27일 백경환 씨 2회 피의자 신문 조서를 통해 검찰 수사를 살펴보자.
문 : SBS 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726회)' 제작진이 본건 취재하여 2009.8.1. 프로그램이 방송된 사실을 확인하였는데 아는가요.
답 : 예, 알고 있고, 저희 집을 취재와 저도 피해자 유가족으로서 인터뷰에 응한 사실이 있습니다. (중략)
문 : 방송에서는 피의자가 지적한 지점이 아니라 집 안쪽 방향 화단 끝 부분이라고 하던데 왜 다른가요(녹색 형광펜으로? 표시하다).
답 : 방송이 잘못되었습니다. (중략)
문 : 그것은 피의자가 기자에게 그 지점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답 : 아니오, 제가 기자에게 가리킨 것도 아닌데 자기들이 알아서 그곳에서 막걸리가 있었다고 촬영해버린 것입니다.
문 : 그리고 그 방송에서는 이어서 피의자가 대문 밖(녹색 형광펜으로? 표시하다)에서 막걸리를 발견하고 이를 주워 집 안으로 가져오는 장면을 재연하여 앞서는 화면과 다른 장면을 재연하여 이상하던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
답 : 잘 모릅니다. (중략)
문 : 기자가 피의자 집에 간 목적이 막걸리를 발견한 지점이 어딘지 알아보고, 이를 발견한 피의자의 말을 들어보려고 간 것이 아닌가요.
답 : 예, 맞습니다.
문 : 그런데 왜 엉뚱한 지점을 촬영하였을까요.
답 : 그건 저도 모릅니다.
문 : 그것은 피의자가 기자에게 막걸리를 발견한 지점에 대하여 정확히 지적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말로써 대충 알려주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답 : 아니요. 대충도 아니고, 바깥이라고 말도 안 했습니다.
문 : 피의자가 말 못 할 사정이 있어 그랬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답 : 아니요, 말 못할 사정은 없습니다. (중략)
이때 피의자 백희정이 대기하고 있는 조사실로 가 백희정에게 막걸리를 가져다 놓은 위치 약도를 그리게 하여 가져와 보여주고,
문 : 백희정 자신이 막걸리를 가져다 놓았다고 표시한 지점은 위 방송에서 막걸리 발견 지점이라고 클로즈업하고 촬영한 지점과 동일한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답 : 예, 제가 그곳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검찰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
"방송에서 그 지점을 클로즈업한 것은 당시 피의자가 기자에게 그 지점이 막걸리병 발견지점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라고 보이는데 어떤가요?"
결국 백경환 씨는 "예, 맞습니다"라고 답하며 "제가 그곳에서 막걸리 병을 처음 발견하였다고 말을 해주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그리고 백경환 씨는 누군가가 갖다 놓은 것처럼 포장하려면 막걸리 놓인 위치를 대문과 가까운 지점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직 검찰 수사관은 수기에서 경찰이 방송에서 백경환 씨가 한 주장 등에 좀 더 분석하는 자세를 가졌더라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인데 별 의심 없이 지나쳐버려 미궁에 빠졌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적었다.
그러나 정작 고영우 피디는 황당해했다.
"경찰이 방송을 봤으면 범인을 잡았을 거라고요?"
고영우 피디는 당시 방송에 내보낸 막걸리 발견 위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당시 그가 이 프로그램을 만든 계기는 이렇다.
2009년 4월 29일 충남 보령 청산가리 독극물 사건이 먼저 발생했다.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해당 사건을 취재했는데, 보령 청산가리 독극물 사건만 가지고는 방송 분량인 60분을 채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보충 취재할 소재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순천 청산가리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서 두 사건의 내용을 엮어서 60분을 채우게 된 것이다. 순천에 취재하러 갔을 때는 고영우 피디는 막걸리 발견 위치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누군가 막걸리를 놓고 갔다는 의미로 재연 장면을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즉 검찰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 장면을 근거로 아버지를 추궁했고, 자백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검찰 수사에 나타난 문제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11화 - '청산가리 구입처'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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