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마지막 제8화 생활의 발견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생활의 발견>

 

 

 

조현오는 감옥에 있을 때부터 경찰 간부를 소개해줬다. 맨 처음 소개받은 경찰이 바로 민갑룡이다.

 

민갑룡은 어느 청장이 오나 상사에게 듬뿍 사랑받았다. 박학다식했고 업무 열정이 남달랐다.

 

그에게 차명계좌 발언 재판기록을 요청했을 때 주변에서는 극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민갑룡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정치적 논란을 걱정했다.

 

이 같은 반대에 내 생각은 간단했다. 화해하면 될 것 아닌가.

 

민갑룡은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며 내 시도를 부정적으로 봤다.

 

이후 이른바 친노 그룹으로 불리는 인사를 만났다. 관용과 화해를 역설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들은 친절하고 깍듯했다.

 


 

2014년 12월 나는 조현오와 함께 봉하마을에서 참배를 진행했다.

(☞조현오 전 청장,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몰래' 참배)

 

그리고 2015년 초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추진했다.

 

인터뷰 당일 아침까지 민갑룡은 반대했다. 당시 캐나다 유학 중이던 그는 이메일까지 보내며 인터뷰를 말렸다.

 

하지만 나중에 인터뷰 내용을 확인한 민갑룡은 흐뭇해했다. (☞ 조현오 오마이뉴스 인터뷰)

 

 

조현오와 글 작업을 진행하면서 제목을 <구겨진 제복>으로 정했는데 바로 민갑룡 아이디어다.

 

그는 나중에는 꼭 제복을 펴달라고 부탁했다.

 


 

정권이 바뀌었다. 황운하도 민갑룡도 다 승승장구했다.

 

2018년 봄, 경찰청에 댓글 관련 특별수사팀이 설치됐다.

 

조현오가 타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tv 인용

 

경찰 댓글 실무는 중간급 계장들이 담당한다. 당시 보안, 정보, 홍보마다 이 사건과 관련된 계장들이 있었다.

 

이 사건 피의자로 바뀔지 모를 간부들은 당시 계장들에게 전화해 원망했다. 조직 내 분위기는 추락했다.

 


 

경찰청장 민갑룡은 두 가지 큰 원칙을 세워서 이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민갑룡 경찰청장. ytn인용

 

첫째 처벌 대상을 당시 경무관급 이상으로 제한했다. 즉 총경 이하는 제외되는 것이다.

 

둘째 경찰청 차장 임호선에게 수사지휘를 맡기고 특별수사단 수사 보고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조현오가 불같이 화를 냈던 게 기억난다.

 

“이게 작은 사안이야? 전임 청장 국장 수사하는 내용 보고를 왜 안 받아? 청장이 모든 수사보고를 받고 책임을 져야지! 나는 디도스 수사도 내가 다 보고 받고 챙겼어. 어디 책임을 회피하려고!”

 


 

경찰 조직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조현오가 정부를 옹호하는 댓글 작업을 지시했다면 이는 경찰청 국관회의(일일회의)에서만 가능하다.

 

연합뉴스 인용

 

청장 지시를 각 부서에 전파하는 역할은 기획조정담당관(총경)이 맡는다.

 

그래서 당시 청장 지시가 범죄라면 기획조정담당관도 공범이라 보는 게 자연스럽다.

 

물론 경찰청장 민갑룡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총경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밝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조현오가 경찰청장 당시 기획조정담당관은 민갑룡이었다.

 

연합뉴스tv 인용

 

하지만 조현오는 민갑룡 이름을 그대로 묻었다. 

 

아마 경찰청장으로서 책임과 고뇌를 잘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한 시사주간지에 실린 조현오 입장문 마지막 구절(아래)처럼 경찰조직에 대한 애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고 외교관이 돼서도 경찰이 너무 좋아서 외교관을 포기하고 경찰관을 택했다. 지금은 내가 평생 사랑했고 자부심을 느꼈던 경찰에게 처벌받는 처지가 됐다. 그래도 경찰 조직이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사회 질서 유지라는 본연의 역할을 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은 변함없다.”

 


 

조현오는 그렇게 경찰에게 처음 구속되는 경찰청장이 됐다. 조현오가 남대문경찰서에 수감되고 일주일 동안 보강수사가 진행됐다.

 

조현오에게 이명박 대통령 지시를 받아 댓글 작업을 했다는 진술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노컷뉴스 인용

 

어떤 기자는 조현오에게 이 시국에 책임을 떠넘겨야 빠져나가지 자기가 무슨 장세동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조현오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시간 국정감사가 열렸다.

 

유투브 이재정 tv 인용

 

이재정(여당) 의원이 모 시사주간지에 실린 <조현오 전 경찰청장 입장문>을 들고 나와서 경찰청장 민갑룡을 다그쳤다.

 

이에 경찰청장 민갑룡은 조현오와 분명히 선을 그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조현오는 민갑룡 이름을 덮는다면서, 왜 굳이 입장문 인터뷰에 아래처럼 민갑룡 이름을 들먹였는가?

 

‘민갑룡 청장이 이러한 (청와대) 수사 가이드라인에 항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장의 의지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고백하자면, 이 입장문은 바로 내가 썼다.  (☞  조현오 입장문 "직무범위 벗어난 지시는 전혀 없었다" )

 

조현오는 당시 경황이 없었고 구속을 앞둔 조현오는 내게 전권을 줬다. 전권을 주면 간섭하지 않는 게 조현오 방식이다.

 

 

여기서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당시 시사주간지는 내 의도와 다르게 오히려 여당 의원이 조현오를 두들겨 패기 좋게끔 기사를 써댔다.

 

당시 국정감사에 배석한 경찰 간부 중 김상경(가명)이 있었다.

 

이데일리 인용

 

김상경은 내가 한 짓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당 의원이 이 기사를 근거로 조현오를 난타하는 현장을 지켜봤다. 국정감사가 끝나자 김상경은 문자를 보냈다.

 

“너무 가슴 아팠어.”

 

나는 김상경에게 ‘미친년’ 소리를 들을 각오가 돼 있었다. 그는 연이어 문자를 보냈다.

 

“난 마지막 구절이 너무 좋더라.”

 

 

그 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조현오 구속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기자 때문인가? 당시 기사를 보고 항의하자 기자는 비아냥거렸다.

 

“아이고. 서 작가님. 조 청장님 위하는 것은 알겠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마십시오.”

 

이 눈물은 기자에게 당했기 때문도 아니다.

 

아! 정말이지 고백할 게 너무나 많다.

 

적폐 청산 광풍이 부는 시기에 조현오에게 언론 접촉은 좋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매력적인 언론 선배가 부탁해오면 마음이 약해져 오히려 조현오에게 취재에 응해주라고 몰아쳤다. (☞ PD수첩 장자연 건) 

 

필자가 조현오를 팔아넘긴 순간

 

하찮은 이해관계 때문에 조현오를 팔아넘겼다는 그 사실이 매일 나를 괴롭혔다.

 


 

이 기간 주변에 왜 이 고통과 불행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한겨레> 보도에서 시작한 ‘우연’이라는 카오스적 설명은 허망하게 다가왔다.

 

연합뉴스 인용

 

친노 진영에 찍혀 손 보고 싶은 인물이었다는 코스모스적 설명도 있었다. 내가 손을 놓든 필사적으로 들쑤시고 다니든 결과는 변하지 않았을 듯하다.

 


 

며칠 후, 여전히 침울한 저녁에 전화가 울렸다. 친노 인사 어르신이다. 기분이 좋은 듯 그는 조현오 욕을 시작했다.

 

온갖 듣기 민망한 말을 조현오에 갖다 붙였다.

 

한참 지나자 내 인내심은 한계를 넘었다.

 

 

 

“술 먹었냐?”

 

이 어르신은 내 비아냥거림에 불같이 화를 내며 끊었다. 내 마음도 굳어졌다.

 

조현오가 10여 년 전 차명계좌 발언을 했을 때도 이렇게 마음을 다쳤을 것이다.

 


 

나는 박근혜 정부 시절, 이 분에게 화해와 관용에 대해 수없이 강조했다. 권력을 쥔 자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말을 그대로 내가 돌려받을 때 비로소 보인다.

 

민갑룡 말처럼, 화해와 관용은 어려운 것이다. 며칠 뒤 진영 단감 다섯 상자가 도착했다. 발신 주소는 봉하마을 근처였다.

 

2018년에 보낸 단감

 


 

예전에 친노 정치인 A에게 어떻게 해야 조현오를 용서할 수 있는지 물었다.

 

답은 똑같았다.

 

진정한 사과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봉하 참배나 인터뷰로 밝힌 사과 정도는 진심이 안 느껴진다고 했다.

 

과연 진심이면 될까. 상대 진심을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않으려는 이들에게 그 진심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그래서 그 친노 어르신이 전화로 단감 잘 받았느냐고 물어볼 때까지 입도 뻥끗 안 했다.

 

이제는 권력 중심에서 멀어진 늙고 외로운 노친네 심정을 헤아리고 싶지 않다.

 


 

당시 남대문 경찰서에 수감된 조현오를 면회하러 한걸음에 달려온 이는 칠순을 바라보는 허준영이었다.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후배를 바라본 허준영 심정은 어땠을까. 광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처럼 한쪽으로 쏠린 내 슬픔은 양쪽 진영이 만나 화해하는 게 너무 먼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관용을 더 넓은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당시 일을 추진할 때 그 취지를 깊이 이해하고 도와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친노 진영 인사를 만날 때 도움을 줬다. 그리고 조현오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던 주변 지인도 시간이 흐르면서 양쪽을 이해하는 완충지대로 들어와 있었다. 이들이 휴머니스트인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화해 분위기를 탄다.

 

Jtbc 인용

 

필자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관용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그 완충지대 넓이와 두께에 달려 있다고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진영 논리에 갇혀 우리가 드러내는 사고나 습관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글이 당신과 함께 산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품는데 소소한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적폐 청산 광풍이 불 때는 완충지대는 다시 얇아지며 "휴머니스트는 개뿔"이 된다.

 

 


 

다시 2019년 댓글 재판으로 돌아가자. 공소사실은 정보·홍보·보안 분야에 걸쳐 있었기에 증인이 수백 명에 달했다.

 

2019년 한 해 내내 법정에 앉아 증인 진술을 들었다. 공소사실에 걸쳐 있는 2010~2012년 당시를 차분히 되돌아봤다.

 

그 당시 필자도 광화문 촛불집회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동참했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집회에서 내가 기억하는 모든 장면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경찰 대응은 분명히 필요했다.

 


 

그 당시 경찰이 했던 대응 상당수가 ‘여론조작’이라는 검사 주장이 수없이 나왔다.

 

이에 증인으로 나온 한 경찰이 반박했다.

 

“저는 지금 이 재판이 진행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경찰의 적절한 여론 대응이 왜 이것이 재판 대상이 되는지 잘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이 일선에서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잘 모르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중간 의사전달 과정에서 곡해될 수 있고 실제로 일을 실행하는 사람이 오버할 수 있겠지요. 그런 부분이 지금 문제로 부각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그 당시에 정말 올바른 여론대응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지,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저도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는 당시 대전지방경찰청장이던 황운하였다.

 

법정 복도에서 황운하를 만났다.

 

드림필드11 블로그 인용

 

황운하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황운하는 능청을 떨었다.

 

“난 기억 안 나. 뭐가 미안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 기억이 안나겠는가. 내가 “그 머리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건드렸는데.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중도일보 인용

 

그는 증언을 마치고 법원을 떠났다.

 


 

우리가 또 만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행보를 생각하며 떠나는 대전지방경찰청장(치안감) 황운하 뒷모습은 박근혜 정권 시절과는 달랐다.

 


 

2015년 그해 봄, 경찰대 교수부장 황운하는 치안감 승진을 포기하고 퇴직 후를 생각하던 시점이었다.

 

그때 처음 점심 식사를 같이 했던 날이 떠오른다. 황운하는 같이 밥 먹자며 친한 후배도 불렀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 함께 관용차에 올라탔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았는데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사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조현오 이후로 경찰청장 인물이 안 나오고 있어.”

 

“그러게 말이에요.”

 

 

황운하와 후배 민갑룡(당시 경찰대 치안 연구소장)은 대화에 정신이 없다.

 

달리는 차창 안으로 햇살이 듬뿍 들어오고 있었다. 자연현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심한 듯 보인다.

 

 

The End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7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경찰을 취재한 시기는 2013년쯤이다.

 

처음 취재 방향을 정하기 전까지 온라인에서 경찰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정보를 쌓기 시작했다.

 

경찰 조직에 아는 게 없는 나에게는 언론이 말을 옮긴 경찰부터 접촉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가장 유명한 것은 조현오 청장이었지만 조현오는 관심 밖 인물이었다. 언론이 전하는 인상도 대부분 좋지 않았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진압하면서 몽둥이로 노동자를 두들기는 장면에서 앞뒤 맥락이 어떻든 무슨 상관인가.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인 조현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진보언론이 다룬 기사도 한몫했다.

 

채수창이 성과주의를 비판한 기자회견을 비롯해 2009년부터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징계를 받은 경찰들 사연을 내보냈다.

 

대부분 징계받은 시기와 관할을 따지지도 않고 원인으로 조현오를 지목했다.

 


 

오히려 자기 신분과 이름을 밝히고 활동하는 다른 경찰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에게는 나름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있었다.

 

1980년대 군사정권 후 사회 분위기가 민주적으로 바뀌면서 언론자유도 한결 보장받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이 분위기를 타고 경찰을 향해 갑질하는 기자들이 허위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는 1998년부터 허위 기사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는 경찰이 전국에서 등장한다.

 

그중에 내가 만난 이가 경찰 황운하, 황정인 등이다. 취재란 늘 그렇듯이 온라인에서 모은 풍문과 어설픈 추측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황운하는 2013년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경무관이었다. 경무관 계급정년은 6년이며, 통상 4년 이내에 치안감 승진을 노린다.

 

황운하. 중도일보 인용

 

당시 황운하는 경무관 2년 차로 수사연수원장이었고 아직 망한 단계가 아닌 만큼 절실함도 없었다.

 

주변에 언론계 인맥이 풍부해 굳이 나와 작업할 이유도 없었다.

 

필자는 보기에는 아주 외향적이고 밝은 성격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아주 슬프고 우울함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헤어질 때 황운하는 다시 만날 일이 없다고 말했고 서운함을 느꼈다.

 


 

두 번째로 황정인을 만났을 때 경찰보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더 관심이 갔다.

 

내부통신망에 상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징계를 당하자 ‘표적 감찰’을 주장하던 경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황정인도 거침없이 상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겨레기사 캡쳐

 

 

황정인은 자기도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에 걸리는지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고 했다.

 

황정인 글 쓰기 비법은 양극단을 짚는 것이다.

 

황정인이 조현오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는 ‘조현오 청장이 헌법정신을 중시 여긴다’는 점을 드높이면서 시작한다. 비판에 칭찬을 덧붙인다는 것이다.

 

그에게 조현오가 진짜 헌법정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평소 국관회의에서 헌법 준수를 자주 강조한다고 했다.

 


 

이런 황정인도 감찰을 받을 뻔했다.

 

2011년 6월 8일 반값 등록금 집회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는데 당시 그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 팀장이었다. 물론 그는 징계를 피했다.

 

황정인 말을 그대로 옮긴다.

 

황정인이 블로그에 쓴 글은 많은 언론이 인용했다. 오전 국관회의에 참석했는데 감찰부서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노컷뉴스 인용

 

쫄면서 앉아 있는데 조현오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더니 황정인부터 찾았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글 썼던데!”

 

이 한마디로 감찰은 없던 일이 됐다. 황정인은 조현오 카리스마를 직접 겪었다.

 

황정인과 대화하면서 조현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상대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모른다는 것을 확인할 때 관심은 높아지는 법이다. 언론이 띄운 인물을 만나고 나니 취재 대상이 확고하게 정해졌다.

 

바로 조현오 전 청장이다.

 


 

조현오는 2012년 4월 5일 퇴직했다. 2013년 가을 고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으로 구속된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에게 황정인 씨 덕에 호감을 얻게 됐다고 털어놨다.

 


 

만날 일이 없다던 황운하는 그 후로 해마다 만났다.

 

경무관 4년 차이던 2015년에 우연히 만났다. 당시 대전지방경찰청 부장이었다. 여전히 승진 희망이 있었는지 절실함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헤어질 때 황운하는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황운하는 2016년 경무관 5년 차에 경찰대 교수부장으로 갔다. 그때부터 위로를 빙자한 밥과 술로 자주 접촉했다.

 

그때 필자가 쓴 글이 바로 <풍운아 황운하>다.

 

일 년 후 경찰 조직을 나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지나간 경찰 생활을 정리한 글을 쓰고 싶다며 필자에게 상담했다. 나 또한 조직에서 망해가는 황운하를 위로해주고자 시작된 글 작업이었다.

 

 

 

어쩌다가 황운하가 이렇게 추락하게 됐을까?

 

황운하를 처음 중용한 경찰청장은 허준영이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이다. 총경이던 황운하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 팀장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수사구조개혁팀 계장은 민갑룡이었다. 경찰 측 자문 위원 중에는 조국 서울대 교수가 있었다.

 

이후 황운하를 중용한 이가 조현오다. 2011년 경무관으로 승진을 시켜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내정했다.

 

 

조현오가 물러나자 박근혜 정부에서 황운하는 수사와 관련 없는 부서를 떠돌았고 권력형 수사는 막힌다. 더불어 인사도 망가졌다.

 

황운하는 탄식하곤 했다.

 

“조 청장님이었다면 이렇게 조직이 망가지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됐다. 경찰 수사권 조정에 유리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황운하는 치안감으로 승진하며 울산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다.

 

민갑룡 경찰청장 내정자. ytn인용

 

민갑룡은 민정수석 조국이 강력하게 추천해 경찰청장이 됐다.

 

(☞조국과 친분 묻자…민갑룡 “청문회에서 말하겠다”)

 

적폐청산은 국정과제였다. 민정수석 조국은 적폐 청산 콘트롤 타워를 자처했다.

 


 

2018년 봄, 경찰청에 댓글 관련 특별수사팀이 설치됐다.

 

경찰 조직 안에서는 이 수사를 곱지 않게 보는 눈이 있었다. 하지만 적폐 청산 명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울산지방청장 황운하에게 나는 민감한 부분을 대놓고 찔렀다. 감정이 폭발하면서 우리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물론 경찰청 내부망에 자신을 드러내고 비판한 경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글은 조현오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찰 댓글 특별수사팀은 이 글을 조현오 구속영장청구 명분으로 활용했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조현오가 친한 경찰을 동원해 조직 내 여론 조작을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오는 2018년 10월 5일 구속됐다.

 


 

구속 기간 경찰청 국정감사가 열렸다. 경찰청장 민갑룡을 향한 국회의원 질문이 쏟아졌다.

 

야당 소식인 윤재옥 의원이 물었다.

 

윤재옥 의원과 민갑룡 경찰청장.시사포커스tv인용

 

 

윤재옥 위원: “청장으로서 전직 경찰총수를 경찰이 수사해서 최초로 구속시킨 사건이라고 보도됐는데 소회나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청장 민갑룡: “법과 원칙에 따라 행위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리해나가겠습니다.”

 

 


 

 

이재정 의원(여당)은 시사저널 단독 기사를 띄웠다. (☞  조현오 입장문 "직무범위 벗어난 지시는 전혀 없었다" )

 

 

 

조현오 입장문을 담은 인터뷰 내용이었다.

 

이재정 위원: “(여기에) 민갑룡 청장을 운운했습니다. ‘민갑룡 청장이 이러한 수사 가이드라인에 항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장의 의지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 하면서 뻔뻔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증거가 현격한데요.... (이런) 상황에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하고 경찰청장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문에 몇 번이나 언급을 하는데 경찰청장님한테 뭐 소통된 게 있습니까? 이것 보는 경찰청장님 입장은 어떻습니까?"

 

민갑룡은 이 질의에 “그 분은 그분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즉 그 생각은 조현오 ‘당신의 것(Yours)’일 뿐이다.

 

그런데 이채익 위원은 이러한 민 청장 답변을 ‘당신 자신의 것(Yourself)’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채익 의원과 민갑룡 경찰청장.연합뉴스 인용

 

이채익 위원 : “울산 남구갑 이채익 위원입니다. 오늘 오전 존경하신 윤재옥 위원의 질의에 민갑룡 경찰청장의 답변을 들으면서 본 위원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오늘 위원들의 각종 질의에는 그토록 신중하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던 청장이 경찰청의 대선배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구속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고 정확한 답변을 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죄를 지었으면 구속은 당연하다. 또한 모든 것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만약 조현오 청장이 무죄가 되면 오늘 이 답변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경찰청장 민갑룡 : 수사 과정을 통해서 불법이 있다는 걸 규정을 했고요. 현재 영장실질심사 과정까지 거쳐서 법원에서도 그렇게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답변을 드린 겁니다.

 

이채익 위원 : 구속은 됐지만 아직까지 확정되지는 않았잖아요.
경찰청장 민갑룡 : 예 그렇습니다.
이채익 위원 : 그런데 경찰청장이 그렇게...
경찰청장 민갑룡 : 현재까지 사법적인 판단까지 거친...

 

이채익 위원 : “경찰청장이 이런 답변을 그렇게 예단해서 미리 얘기할 수 있어요? 내가 1998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울산 남구 구청장을 할 때 조현오 청장이 당시 남부경찰서장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조현오 청장을 두둔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전화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만났던 조현오 청장은 국가관이 뚜렷하고 공과 사가 분명한, 너무 공과 사가 분명해서 불편할 정도로 제가 봤을 때는 참경찰상이다, 그렇지만 대민 관계에 좀 더 유연성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할 정도로 너무 국가관이 뚜렷한 경찰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다 보니까 조현오 청장도 이제 영어의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모셨던 전 경찰청장이 경찰의 손에 의해서 구치소에 들어가고 구치가 되고 최초로 경찰청에 의해서 구속된 전 청장에 대해서 구속은 당연하다. 법과 원칙에 따라 했으니까 아무 문제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민갑룡은 이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때 민갑룡이 느꼈을 두려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마 민갑룡은 나에게 자기를 아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 ytn인용

 

 

그렇다면 자신은 누군가처럼 직을 걸고 맞설 그런 용기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스치듯 말했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민갑룡 쌍둥이인가? 2013년이다.

 


 

조현오도 그 시절 순탄하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013년 가을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 봄 그를 면회했다. 조현오는 감옥에 있을 때부터 필자에게 후배 경찰을 소개해줬다.

 

조현오는 가장 먼저 소개해주고 싶은 이가 있다며 경찰 조직 ‘넘버 원’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름을 들었는데 촌스럽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민갑룡”

 

(마지막 화. 생활의 발견.)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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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홍상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6화 오! 용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오!수정>

 

 

김용판은 행정고시 출신이다.

 

 

88 올림픽이 끝나고 경찰 선진화 방안으로 특채가 진행되자 경찰로 입문한다. 그곳에서 조현오를 만나 간부교육을 함께 받았다.

 

조현오도 어릴 적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외무고시 선배인 허준영은 먼저 경찰이 됐다.

 

그때는 다들 친했다.

 

조현오와 김용판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른바 라인에서 갈린다. 경찰 조직에 외무고시 출신은 딱 두 명이다. 조현오는 허준영 라인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경찰청장이 된 허준영은 후배 조현오를 경무관으로 승진시켜 줬다. 그러나 조현오에게 모든 청장이 허준영일 수 없다.

 

 

 


 

2009년 경찰청장 강희락은 조현오를 싫어했다. 하지만 김용판과 강희락은 고교 선후배로 절친한 관계였다.

 

강희락은 김용판을 치안감으로 승진시켰고 조현오가 2010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되자 김용판을 서울청 차장으로 발령낸다.

 

조현오는 당시 김용판이 ‘성과주의’를 비롯해 다른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마치 강희락이 김용판을 통해 조현오를 견제하는 듯했다.

 

강희락(좌)-조현오(우).시사저널 인용.

 

 

2010년 8월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된다. 김용판은 대구청장을 희망했지만 연고지 하나 없는 충북청장으로 발령받는다. 

 

조현오는 치안감 마지막 해에 김용판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다고 회상했다. 부탁은 한 가지뿐이었다. 

 

경찰 임기 마지막을 대구에서 하고 싶다며 간절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김용판을 가장 돋보이지 않는 경찰청(본청) 보안국장으로 발령 낸다.

 

‘자꾸 그놈(조현오)이 그러는 것은 니(김용판) 피를 말려 죽이려는 것이여.’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았다. 

 


 

김용판은 이후 조현오를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증인은 경찰청 보안국장 기간 중에 피고인과 독대해서 피고인으로부터 이 사건에 문제가 되는 댓글과 관련돼 지시를 받은 적 있었나요?”

 

“저는 이 사건만이 아니라 독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용판은 보안국장 시절 보안사이버수사대가 정부 정책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김용판이 보기에 정부 정책에 대한 댓글 작업은 조현오 지시인 게 분명했다. 

 

노컷뉴스 인용

 

 

김용판은 바로 댓글 금지를 지시했다.

 

직원들도 위법성을 알기에 보안국장 지시를 핑계로 댓글을 달지 않았다.


 

추락하던 김용판은 조현오 퇴직 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화려하게 영전한다.

 

김용판에게는 이후에도 고비가 찾아왔다.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고 권은희 폭로가 발단이 돼 김용판은 직권남용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무죄판결로 다시 살아났다. (오히려 애초에 무리한 기소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김용판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회의원 입성에 성공했고 문재인 정부 때 재선까지 성공한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앞세운 적폐 청산 증인이 됐다.

 

김용판은 법정 증인으로 나와 피고인 조현오에게 살을 날렸다.

 

 

하지만 검찰은 현혹되지 않았다.

 

검찰은 조현오와 김용판을 한패로 봤고, 공소장 내용을 이렇게 만들었다.

 

‘피고인(조현오)은... 여론 조작을 하기로 보안국장 김용판과 순차 공모하였다.’

 

김용판은 법정에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안국장 시절 김용판은 조현오와 말도 섞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판은 너무나 기가 막혀서 헌법소원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김용판은 분명히 보안국 직원에게 정부 정책에 우호적인 댓글을 쓰지 못하게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보안과장, 보안계장, 보안사이버수사대 직원 그 누구도 이러한 지시를 들었다는 사람이 없었다.

 

 


 

김용판 씨 말대로 당시 보안국 직원들이 정부 정책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았다고 가정하자.

 

이듬해 2012년 12월에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댓글 공작'이라는 말이 빈번히 쓰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보안국 직원들도 2012년 12월 국정원 댓글 사건 직후 자신들이 작성했던 정치적 댓글을 삭제하려 했을 법하다. 

 

하지만 정작 댓글을 지우려던 시점은 2018년 경이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내세우면서  경찰청 특별수사팀이 수사를 시작했을 때다.

 


 

이러한 직원들 진술에 김용판은 이렇게 주장했다.

 

“저는 진술을 다 봤습니다. 진술 거기에 ‘기억에 안 난다’고 돼 있습니다. 정확한 기억이 없다고 해서 팩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김용판이 강조하는 팩트는 보안국장으로 재임했던 4개월 동안 정부에 우호적인 댓글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용판은 한탄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조현오 지시로 진행한 댓글 작업을 자신이 금지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게 팩트다.  검찰은 댓글 수가 적은 부분을 정상 참작하여 김용판을 기소유예 처리했다. 

 


 

그렇다면 김용판 진술 하나 때문에 보안 분야 댓글 공작에서 조현오가 기소가 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보안국 직원 나홍진(가명) 진술에서 미끼를 물었다.  

 

 

 

나홍진은 수사기관에서 “상부 지시를 받고 부하직원들로 하여금 정부 또는 경찰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 작업하도록 지시했다”라고 인정했다.

 

이러한 보안국 직원 나홍진(가명) 진술은 김용판 주장을 뒷받침한다.

 

 


나홍진은 보안사이버 분야 최고 전문가다.

 

나홍진은 23년 사이버수사대에서 근무했고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경찰청 보안2과 3계장(보안사이버수사대장)이었다.

 

조현오가 전부터 보안국 댓글 활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같은 부서 직원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승진 때문이면 요령껏 해도 된다. 무식할 정도로 새벽에 제일 먼저 출근하여 밤늦게 마지막으로 퇴근했다.

 

보안은 적성국가를 감시하고 파악하는 업무이기에 IP를 노출하지 않는 게 기본이다. 애초에 신분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하는 일이 아니다.  

 

보안국 직원들은 자신을 숨기고 소문이 자자한 친북 사이트 <우리 민족끼리>, <조선중앙통신> 등을 살펴본다. 

 

 

그다음 이러한 북조선 사이트가 국내에 어떤 미끼를 던지는지 추적한다. 이런 미끼는 국내 여론을 현혹할 가능성이 컸다.

 

 

보안국 직원들은 검색 키워드를 활용해 기사를 검색했다. 북한 사이트 주장이 국내 사이트에 번졌는지도 살폈다. 

 

보안 업무 영역은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보안 부서는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이 많다.

 

보안국이 특정 게시물에 대해 대남 선전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다고 판단하면 조치를 진행한다. 안보를 해치는 문건을 게시한 사이트는 삭제하거나 차단한다.

 

그런데 삭제 또는 차단 조치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단순히 글 또는 댓글로 대남 선전 내용을 인용한 정도라면 간단하게 댓글 대응을 했다.

 

한 보안국 직원은 이런 익명(비공식) 댓글 대응을 이렇게 생각했다.

 

“2011-12년 보안사이버 요원으로서 업무를 하는데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일을 열심히 했고 그다음에 특히 친북 관련 불법 문건 삭제나 차단 이런 부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있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법정에서 보안경찰관들은 북한이 자신들 신상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으며 유사시 가장 먼저 처단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댓글 대응은 국가 안보 위해 요소를 줄이고자 그전부터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일이었다.

 

친북 사이트 게시글에는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반정부 글이 대다수였다. 댓글 게시는 이에 대한 당연한 대응으로 인식했다.

 

보안국은 댓글 대응을 조현오가 경찰청장이기 전부터 했고 조현오가 퇴임하고 나서도 지속했다. 

 

활동 당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직원들은 단지 바쁜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느냐며 투덜거렸을 뿐이다. 더군다나 성과에 반영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홍진은 왜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재판장도 그 이유를 물었다.

 

“그때는 왜 북한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했나요?”

 

“제가 그때 조사관들에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부분에 보안에서 하던 부분들은 북한 대남선전에 대한 부분으로 우리가 대응하는 부분이었고 천안함 이야기를 분명히 하면서 천안함 자체가 정부 발표와 전혀 다른, 천안함 자작극이라는 북한 주장을 도배하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해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나홍진은 수사관들과 말씨름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야생 버섯으로 인한 정신착란증’이 더 나은 설명이 될 듯했다.

 


 

10년 사이 남북관계는 예전과 달라졌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과 김정은, 두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으로 갔다가 다시 남측으로 넘어왔다.

 

JTBC 방송인용

 

 

조사를 받던 나홍진은 수사관 질문에 이미 보안 업무가 시대 저편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천안함 조작극이라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게 무슨 잘못이냐?”
 
 
(계속해서 다음 제7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오! 수정>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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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제3화. 참여정부가 댓글에 빠진 날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2018년 8월 중순으로 기억한다. 경찰 댓글 공작 사건으로 조현오 청장 시절 국장 급부터 구속영장 청구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들었다.

 

그 명단에는 2016년 퇴임한 정용선도 포함됐다. 

 

정용선에게 전화해 대비하라고 알려줬다. 정용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이렇게 툭 내뱉었다.

 

“내가 뭘 했는데요?”

 

문재인 정부 들어 군, 기무사 등에서 특별수사팀이 설치되고 수사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을 귀띔했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구속은 정당성을 갖추는 중요한 모양새다. 구속영장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게 여론전도 펼친다. 경찰 댓글 사건에서도 이런 방식이 되풀이됐다.

 


 

정용선은 한참 생각하더니 경찰 조사 때 제출한 자료가 있다고 말했다. 17쪽에 달하는 내용이다. 오랫동안 정보·기획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알던 경찰청 업무 내용을 떠올리며 혼자 작성했다. 

 

정용선. 연합뉴스 인용

 

물론 경찰 사이버 대응 요령도 포함됐다.

 


 

필자는 이 내용을 검찰 출신 변호사에게 보내 검토해달라고 했다. 철저한 검찰주의자인 그 변호사는 문서를 읽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떤 법조인도 이렇게 보고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나 탁월하다.”

 

훗날 법정에서 재판장도 정용선에게 보고서를 잘 봤다고 덧붙였다.

 


 

정용선 보고서는 큰 제목, 소제목, 숫자 배치, 당구장 표시를 적절히 사용하여 노무현 정권부터 현재까지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 보고서가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던 까닭은 정용선 씨가 그 업무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용선 씨 업무를 되짚어보자.

 


 

경찰 조직은 창설 이후 주요 일간지와 방송 기사를 살펴서 경찰 관련 기사를 챙겨 확인했다.

 

 

경찰 언론 대응 방법은 다른 정부 기관과 같다. 정부 각 부처는 허위보도나 왜곡 주장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청구로 대응했다. 물론 보도자료 배포, 공식 브리핑(문자나 메일 전달 포함)은 기본이다. 이걸  공식 대응이라고 한다. 

 

국가기관 사이버 대응은 2000년쯤 김대중 정부 시절 인터넷 발달과 시작됐다. 그러면서 사이버상 허위 주장과 허위사실도 등장했다. 이는 오늘날 ‘가짜 뉴스’로 개념화된다.

 

영상역사관 인용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언론 공식 대응 방법으로 새로운 대응이 도입된다. 바로 댓글 게재다. 대상은 ‘국정브리핑’에 올린 언론보도였고 댓글 실적을 부처 평가에 반영했다.

 

정용선은 그 당시 충격을 받은 언론들이 기사를 쏟아냈던 것을 기억했다..

 


1.동아일보“BH(청와대) 지시사항이다. 매일 댓글 달라"(2006.4.6.)

2. 동아일보 (사설) 언론 공격 ‘댓글 달기’ 경쟁시키는 청와대(2004.4.6.)

3. 프레시안 노 대통령 “<국정브리핑> 댓글 달아라 ” 지시 논란(2006.04.06.)

4. 연합뉴스. <홍보처‘언론보도에 부처 의견달기’ 공문 발송 (2006.4.6.)

5. Views&News:국정홍보처,‘댓글 지시 달기’ 파문

6. 데일리안 : 노무현 정부,‘ 전 공무원의 댓글 요원화’? (2006.4.6.)

(현재 네이버상에 제목은 검색되나 기사 내용은 삭제된 상태)

7. 문화일보 : 정부 각 부처별 언론보도에 ‘댓글’ 독려(2006.4.6.)

8. 노컷뉴스“공무원들, 언론 보도에 꼭 댓글 달아라”(2006.4.6.)

9. 동아일보: 공무원들 “댓글 잘 달면 출세”... 온라인 국정운영 실태(2006.4.7.)

10. 노컷뉴스. 공무원 “댓글 달기... 달라면 달아야죠.”(2006.4.7.)

11. 세계일보 : “언론보도에 부처 댓글 달아라... 평가에 반영”(2006.4.7.)

12. SBS: 국정홍보처 ”댓글로 언론보도 대응하라”(2006.4.6.)

 


 

경찰도 정부 방침을 따라간다. 이것은 경찰청 정보2과 업무였고 2006년 정보2과장은 정용선이었다.

 

정용선. 뉴스1 인용

 

13만 명을 거느린 경찰청 업무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반복 업무는 대부분 관행적으로 이뤄진다.

 

우선 사이버 이슈에 대응하려면 인터넷상에 어떤 경찰 관련 내용이 떠도는지 파악해야 한다.

 

sbs 인용

 

정보2과는 수집된 사이버 이슈를 기능과 관할에 맞게 통보한다. 물대포 내용은 경비과, 삼색 신호등 내용은 교통과, 서울 사건은 서울청으로 통보할 것이다.

 

이 사이버 이슈를 통보받은 해당 기능이나 해당 지방청 또는 경찰서는 사실 확인을 거친 뒤 대응 여부와 수단을 결정했다.

 

뉴시스 인용

 


 

이 업무가 더 중요하게 자리매김한 계기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광우병 사태는 이명박 정부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08년 6월 청와대는 인터넷을 담당하는 국민소통비서관을 신설했다. 또 부처별 대변인실마다 소관 업무에 대한 인터넷 대응을 강조하고 평가했다.

 

이에 경찰청 정보국도 사이버 정보만 전담하는 정보관 2명을 배치했고 사이버 치안정보를 수집·작성·배포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용선은 정보2과장에서 기획조정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획조정담당관은 조선시대 왕명을 하달하는 도승지와 비슷하다. 과장 중 서열 1번으로 국관회의에서 경찰청장 지시 사항을 정리해 전국 경찰에게 배포한다.

 

2009년 강희락 경찰청장 내정자와 정용선 본청 과장. 매일건설신문 인용.

 

2009년 강희락 경찰청장이 내정됐다. 강희락은 2010년 1월 정용선을 경무관으로 승진시켜 정보심의관으로 삼았다.

 

오마이뉴스 인용

46세인 정용선은 언제나 동기보다 2~3계급 승진이 빨랐다. 경찰청에는 50대 과장이 즐비하다. 정용선은 각별히 처신에 신경 썼다.

 

2010년 8월 강희락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조현오가 청장으로 취임했다.

 

강희락(좌)-조현오(우).시사저널 인용.

 

정용선은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지방청 근무를 희망했다. 그러나 조현오는 업무능력이 탁월한 정용선에게 남아달라고 부탁한다.

 

조현오는 2011년 정용선을 치안감 승진 명단에 넣는다.

 

조현오 경찰청장 시절 정용선(좌). 뉴시스 인용

 

정용선은 이처럼 어느 청장이 오든 항상 인정받고 승진했다.

 

강신명 청장 시절 정용선(우) 수사국장. 일요서울 인용

 

직장인이라면 그 비법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정용선은 두 가지를 꼽았다. 보고할 때 멍청하게 보이지 말고 상사 기분을 맞출 것!

 


 

경찰청은 청장 주재 회의를 8시 30분에 시작한다. 그전까지 경찰청장은 과장들 보고를 받는다. 보고할 사람이 두 명 정도 남으면 비서실은 정보심의관에게 전화를 한다. 

 

“지금 올라오십시오.”

 

정보심의관실은 10층에 있고 경찰청장실은 9층이다. 보고 시간이 임박할 즈음 직원이 ‘사이버이슈 보고’를 마무리해서 가져온다.

 

정용선은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내용을 한 번 훑어본다.  하지만 정용선은 청장 보고 시 ‘사이버동향보고서’에 대해 중점적으로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청장 관심사는 주요 사건이었지 사이버이슈가 아니었다.

 

주요 사건은 신문 1면이나 9시 뉴스에 나오는 정도 사안을 말한다.

 

만약 모 경찰서 초동 조치가 미흡했다는 뉴스가 전날 밤 9시 뉴스에 나왔다면 이미 전날 본청 감찰과에서 총출동한 상태다.

 

 

 

이 내용은 정용선이 청장에게 보고하기 전에 이미 해당 업무 과장이 보고를 마쳤다. 즉 해당 기능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조치가 이뤄진 상황이다.

 

정용선은 이미 보고가 돼 알고 있는 사안을 절대 경찰청장 앞에서 주절주절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태도가 멍청해 보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이버이슈는 왜 중점적으로 보고하지 않았을까. 크지 않은 사이버이슈에 대해서는 각 기능별로 큰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정용선이 다른 기능에 관련된 사이버이슈를 보고했다 치자. 그렇다면 그 기능 국장이나 과장이 정용선에게 일을 크게 만들었다며 비난할 것이다.

 

“보고 안 해도 되는 것까지 보고해서 사람 힘들게 한다.”

 

또한 이러한 보고 내용은 대부분 경찰 조직에 좋지 않은 사안이다. 경찰청장 처지에서 기분 좋을 리 없다. 이처럼 보고 과정에서 상사 기분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다. 수석이 괜히 수석이 아닌 것이다. 

 

정용선은 보고를 마치고 '주요 사이버 이슈 보고서'는 시간 있을 때 읽어보라며 다른 보고서와 함께 책상에 두곤 했다.

 


 

정용선은 2016년 경기지방경찰청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했다.

 

정용선 경기지방경찰청장. 뉴스1 인용

 

정용선은 그간 업무와 국관회의 지시사항을  종합해볼 때, 경찰 조직은 경찰 신분을 밝히고 대응하는 ‘공식 대응’이 기조였다고 인식했다. 이게 정용선이 작성한  17페이지 보고서 핵심이다. 

 


하지만 2018년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조현오 청장 재직 시절 경찰이 신분을 숨기고 댓글 공작을 펼쳤다며 수사했다.

 

당시 서울청에서 어떤 이슈에 댓글을 달았는지를 알 수 있는 '이슈 대응 목록'과 그에 따른 댓글 작업 보고서를 찾아냈고 그것을 언론에 흘렸다.

 

 

이는 정용선 기억과 다르다.  혹시 정용선 씨가 미처 놓친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경찰청은 매일 보고서가 물밀듯 들어온다. 지방청에서 보내는 자료들 중에는 사이버 대응 과정에서 어떤 직원이 어떤 내용으로 댓글을 달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보고서도 분명 있다.  정용선은 이러한 지방청 자료를 신경 써서 살펴보지 않았다.

 

정용선은 왜 이런 자료를 거들떠보지 않았을까? 정용선은 정보심의관 시절 하루에 봤던 보고서 분량이 적어도 500페이지 이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늘 상 시스템에 의해 들어오는 지방청 자료는 관심이 떨어진다.


그렇더라도 ‘댓글 공작’을 펼쳤다는 특별수사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정용선은 경찰 정보통이지만 경찰청 수사국장을 지냈고 지방청 수사과장도 거쳤다.

 

특별수사팀 수사기록은 정용선이 볼 수 없다. 그러나 단서가 있다.

 

특별수사팀이 언론에 흘린 서울청이 작성한 '이슈 대응 목록'이다. 이 목록으로 어떤 이슈에 대응했는지와 대응한 날짜를 파악할 수 있다.

 

 

정용선은 대응한 날짜 전후로 각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사를 찾았고 그곳에 경찰관이 올린 글을 일일이 찾아내기 시작했다.

 

정용선은 경찰관이 자기 실명 또는 자기 직책을 밝히고 쓴 것을 계속해서 찾아냈다. 90여 건 정도였다. 이는 정용선 기억과 일치한다.

 

하지만 정용선은 더 이상 찾아내지 못했다.

 

2010년 경찰서와 지방청마다 언론 대응을 했기에 당시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올린 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3년 전후로 경찰서마다 자체 운영하던 홈페이지가 지방청으로 통합되고 지방청 홈페이지도 본청 홈페이지로 통합됐다.

 

즉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그렇다면 대체 익명 댓글은 어떻게 된 것인가. 정용선은 재판에 넘겨진 후에 수사 기록을 모두 받아 살펴봤다. 진실은 기록에 있었다.

 

수사기관이 포털사에서 확보한 댓글 등은 30만 개였다. 기소한 댓글은 그중 4%인 1만 2000여 개다.

 

정용선은 수사 기록을 보고 지금까지 경찰이 공식 대응을 했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렇다면 왜 익명 댓글로 활동하게 된 것인가. 특별수사팀도 이 업무를 담당한 본청 계장 직원, 실무자에게 확인했다. 정보과에 속한 직원들 상당수 진술이 수사기록으로 남아 있다.

 

드림필드11 블로그 인용

그 후 필자가 정용선을 만난 것은 재판을 앞둔 법정 복도였다.

 

그동안 수사기록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 흔적이 보였다. 그는 몹시 의외라는 표정으로 낮게 속삭였다.

 

“어떻게 여경들이 오히려 당차고 진술을 똑 부러지게 하고...”

 

(다음 제4화, 여경은 경찰의 미래다.)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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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4화. 여경은 경찰의 미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홍상수<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조현오 청장이 댓글 공작을 했다면 실행 부서는 경찰청 정보2과다.

 

정보2과 업무 중 하나가 사이버 이슈 대응이기 때문이다. 정보2과 담당 직원 대다수가 법정으로 불려 나왔다.

 

2011년경 경찰청(이하 본청)에서 <사이버 이슈 보고서>를 작성했던 여경 A부터 살펴보자.

 

여경 A는 본청은 지방청이나 일선 경찰서에 댓글을 쓰라고 지시하거나  곳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본청은 사이버상에 떠도는 이슈를 관할과 기능에 맞게 알려주는 곳이라고 했다. 

 

통고를 받은 지방청과 일선 경찰서는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여론 대응 방법을 선택한다.  

 


 

서울청 스폴팀에서 근무한 여경 B도 상부 지시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자체적으로 했던 것이 95% 이상이었던 것 같고요. 제가 그날 작성했던 사이버이슈 같은 경우는 아침에 일찍 와서, 전날부터 검색을 해서 선정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저희 실무자들이 (대응 이슈를) 선정해서 보고를 했던 것이지 위에서 지시를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검찰은 실망하지 않았다.

 

댓글을 직접 쓴 서울청 정보국 정보4과(스폴팀) 여경 B가 스폴팀이 처음부터 경찰관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활동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세간에서도 이미 경찰이 일반인처럼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론에 보도가 종종 됐기 때문이다. 

 

- ‘나경원 편들기 수사’ 글에 비난 댓글 달아라... 경찰, SNS 여론몰이 지침 논란(서울신문. 2012.02.03.)

- '주민 괴롭히는 희망버스’ 글, 알고 보니 경찰이 작성(한겨레. 2011.07.13)

 

당시 언론은 이를 댓글 공작 또는 여론조작이라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과 경찰이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던 시기였다. 익명 댓글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론조작 행위로 인식됐다면 검찰은 분명 칼을 들이댔을 것이다.

 

이러한 익명 댓글이 범죄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12월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지고 난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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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이런 익명 댓글 대응이 뭔가 당당하지 못하고 '찝찝하다'는 느낌을 가졌을 뿐이다.    

 


2011년 새로 부임한 정보 4계장이 특히 그랬다.

 

그는 직원들에게 경찰관 신분을 밝히고 사실관계를 바로 잡는 내용으로 댓글을 쓰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수구꼴통이냐’는 악플들 뿐이었다. 경찰이라는 것을 밝히고 댓글을 쓰면 읽지도 않는 현실을 경험한 정보 4계장은 공개 대응을 포기했다. 

 


 

스마트 폰 보급률은 2009년 3% → 2010년 14% → 2011년 40%로 증가했다. 2007년 설립된 '트위터'가 국내에는 스마트폰 보급과 맞물리며 2011년 활성화됐다.  

 

여경 B는 당시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SNS상에 허위사실을 올리는 게 위법하다는 인식이 높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심각성은  문재인 정부 들어와 <가짜뉴스>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김주완 블로그 인용

당시 집회가 열리면 누군가가 SNS에 올린 허위사실이 순식간에 리트윗 됐다. 이런 허위사실을 진보 매체가 받아서 보도했고 시위대를 흥분시켜 과격 폭력시위를 부추겼다.

 


재판장이 물었다.

 

“일반인처럼 댓글을 달면 유언비어 퍼졌던 것이 바로 잡히는 효과가 있나요?”
“네. 있습니다.”

 

여경 C는 확고하게 답했다.

 

“유언비어가 한 번 퍼진 것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사실이 아니라고 올리면 확산되는 게 방지가 됩니다. 예를 들면 경찰이 누구를 때렸다고 하면 막 퍼지고 퍼져서 리트윗이 계속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부분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 되돌리기는 힘들지만 확산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방지가 됐습니다.”

 

여경 B은 법정에 나왔던 다른 여경들보다 한 수 더 뜬다.

 

“공식 비공식을 따지는 것보다는 그 유언비어 유포로 인해서 올 수 있는 사회 혼란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사가 물었다.

 

“공식, 비공식보다는 혼란을 막는 게 중요하다?”
“네”

 

여경 B는 뜸 들이지 않고 답했다. 평소 소신이고 신념이라고 했다.

 


 

검찰도 SNS 초창기인 당시에는 경찰 조직 내 명확한 SNS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검사로서는 당시 이러한 비공식 댓글 대응이 문제 될 소지가 있어 보였다는 진술만 받아도 성공한 셈이다.

 

재차 질문했다.

 

“지금 증인께서 7~8년 전 당시 SNS 상황하고 지금 상황하고 많이 다르다고 설명하시는 것 중에 일부 요소로서 당시에는 일부 젊은 층이 관심이 있었고 또 노조나 이런 집회시위를 하는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 위주로 이걸 사용했다고 하셔서 그런데 일종이 그때 당시의 대응은 젊은 층이나 노조 등등이 법질서 파괴세력으로 거론되기도 했었거든요. 그 당시 내부 문건 보면. 이런 것에 대한 심리적 차원에서 행해진 측면은 있지 않을까요?”

 

여경 C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런 거대한 관점을 갖기에는 제가 너무 소소한 업무를 했네요.”

 


 

경찰이 존재하는 이유는 치안 질서 유지다. 정보·홍보·보안 등 모든 업무는 치안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그렇더라도 그 수단은 오직 공식적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소신과 신념으로 뭉친 경찰도 있다.

 

고학성 씨가 그런 경찰이다.

 


 

고학성은 2000년 중반부터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에서 근무했다. 고학성이 근무했던 홍보부서는 국민에게 경찰 이해도를 높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2017년 경찰 댓글 사건 수사가 시작되자 특별수사팀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고학성이 조사를 받은 부분은 2011년 6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됐던 부산 희망버스 집회 관련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발하여 김진숙 씨가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했고 2011년 6월부터 SNS로 집회 참가자들을 모집하여 희망버스 집회가 부산에서 개최됐다.

 

김주완 블로그 인용

 

경찰청장 조현오는 화상 간부회의에서 여론대응팀 가동을 주문했다.

 

이러한 조현오 청장 지시가 떨어지자 부산청은 여론 대응을 위해 온라인TF(태스크포스)팀이 만든다.

 

경찰관 신분을 숨기고 1박 2일 동안 집회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댓글이나 트윗을 작성했다. 희망버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고학성은 조사 과정에서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지금과 같이 민주당 시절이라고 한다면 보도자료를 배포할 수 없었겠지만 당시 부산시장이 희망버스 시위에 대한 반대의견이나 외부세력 반대의견을 발표하니, 부산 상공회의소도 같이 움직였겠지요. 그 부분은 저희 추정입니다만 지금의 민주당은 작은 목소리 상대적으로 낮고 힘없는 곳에 귀를 기울이고 반면 자유한국당은 그 반대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고학성은 보수 색채가 강한 부산에서 다른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다. 실제로 고학성은 퇴직 후 민주당에 입당했고 선거도 나갔다.

 

문재인 정부와 시각이 비슷했던 고학성은 당시 서천호 부산경찰청장, 부산경찰청 차장, 경찰청 조현오 청장뿐만 아니라 경찰청 대변인, 홍보담당관이 기소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학성은 검찰 핵심 증인이었기에 재판마다 불려 나갔다. 그때마다 변호인들은 똑같이 언론 기사를 하나 꺼냈다.

 

mbn 인용

 

“증인, 여기 권기선 청장 알지요? 2015년 1월 7일 자 권기선 부산청장이 도를 넘는 욕설과 모욕적인 말을 했다며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한 사실. 증인이 이 해명을 요구했지요?”

 

고학성은 이 내용은 희망버스와 관련 없다며 반박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재판장도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질문을 이어가게 했다.

 

“증인이 이렇게 한 것은 맞잖아요”
“네.”

 

“증인의 성품은 윗사람에게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 맞지요?”
“권기선 청장님은 부하 직원들에게 육두문자로 욕을 하니까...”

 

사과하는 권기선 청장.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서천호 전 부산청장 기억에도 증인 성격이 불의를 못 참고 좀 강직한 성격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증인께서 적어도 댓글 다는 게 증인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면 피고인에게 '청장님 위험하니까 우리 좀 조심스럽게 합시다' 이렇게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변호인들은 계속해서 고학성을 추궁했다

 

변호인들이 던지는 질문에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이렇게 느껴졌다.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특별수사단에게 데이셨죠?’

 


 

변호인은 언제부터 위법하다고 판단했는지 그 시점을 물었다.

 

“제가 2017년 퇴직 후에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댓글 문제가 등장하면서 조사받는 게 제 귀에 들어올 때 2년간 정말 힘들었습니다. 조사를 제가 전체적으로 받아보니까 제가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가 그때는 제가 생각 못했지만 ‘정말 잘못됐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학성은 경찰 특별수사단 조사를 받을 때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읊조렸다.

 

“참 힘들었다. 지금도 힘듭니다.”

 

법정에서 변호인은 고학성 씨가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에 있었던 2006년과 비교해서 희망버스 집회가 열렸던 2011년에는 어느 정도 홍보업무 환경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이에 고학성 씨 답변은 이례적으로 막힘없었다.

 

“많이 바뀌었어예.”

 

(다음 제5화 부산경찰의 힘)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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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5화 부산경찰의 힘

 

 

 

 

2011년 부산지방경찰청에 가장 큰 현안은 '희망버스' 집회였다.

 

집회 날짜는 예고돼 있고 그에 맞춰서 각 기능은 대책을 수립했다. 잘못된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게 홍보 업무 가운데 핵심이다.

 

부산경찰청에 출입하는 기자들과 유대 관계만 신경 쓰면 충분했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홍보담당관실은 SNS 환경을 반영해 희망버스 여론 대응 계획을 만들었다.

 


 

2011년 6월부터 희망버스 집회가 열렸다.

 

경찰 처지에서 1차 시위는 허를 찔렸다고 볼 수 있다. 희망버스 시위대가 군함을 건조하는 ‘가’급 국가 중요시설인 한진중공업 사다리를 타고 담장을 넘어 침입했기 때문이다.

 

부산경찰청 제공

 

그 후에 법원에서 외부인 출입금지 가처분 결정이 났고 한진중공업 경비가 강화됐다.

 

1차 희망버스 집회가 끝나고 바로 2차 집회가 예고됐다. 2차는 가장 대규모 인원이 참가할 것이라는 정보가 잡혔다. 일부 정치인도 가세한다고 했다.

 

시위대는 SNS를 통해서 집회 참가자 모집, 경찰력 배치, 영도조선소 진입을 위한 해상침투 등 각종 정보를 퍼트렸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경찰로서는 온라인 모니터링과 대응이 더욱 중요해졌다. 희망버스 시위 당시 아침·저녁으로 청장과 차장 주재 대책회의가 진행됐다.

 

본청도 1차에 영도조선소가 뚫리고 대규모 2차 집회가 진행되면서는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경찰청장 조현오는 화상 간부회의에서 여론대응팀 가동을 주문했다.

 

고학성은 조현오 지시 이후 부산지방경찰청 창설 이후 전무후무한 여론 대응 계획을 수립했다고 했다. 온라인 TF(태스크포스) 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법정에서 검찰이 TF팀 창설을 지시한 자를 묻자 고학성은 분명하게 답했다.

 

"부산청장 지시를 받았어예."

 

희망버스 집회 전날 부산청은 온라인 TF팀 직원 37명에게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홍보담당관실 직원이 TF팀 직원에게 트위터 계정 생성부터 리트윗 등 기초를 가르쳤다. 온라인 활동은 집회가 시작된 토요일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1박 2일 동안 진행됐다.

 

김주완 블로그 인용

 

부산청 언론대응 TF팀 37명은 한 곳에 모여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먼저 부산청 홍보담당관실 직원은 대형 스크린에 이슈를 띄워 대응을 지시했다.

 

이를테면 '최루액이 발암물질이다'라는 이슈에 대해 경찰은 '거짓말', '시위대 불법행위' 등 대응 방향을 정해 실행했다. 30여 명이 한 강당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여론 흐름을 좌지우지한 것처럼 보인다.

 

 


 

 

희망버스 10월 8일 부산에서 열린 5차 집회로 막을 내렸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세가 약해지기까지 온라인 여론 대응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결과보고서가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에서 본청으로 쭉쭉 올라갔다.

 

2011년 부산청은 성과평가 '최상위'를 받았다.

 

홍보담당관 고학성은 무조건 조현오 지시 때문에 비공식 댓글 활동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은 부산지방경찰청에는 이러한 SNS 대응 경험과 역량이 오래전부터 축적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2010년 2월 부산에서 발생한 김길태 여중생 살인 사건 자료를 제시했다. 당시 온라인에 김길태 팬카페가 생기고 김길태 영웅화, 김길태 음모론 등 기가 막힌 내용들이 퍼졌다.

 

 

부산경찰청은 자체적으로 댓글 대응을 포함한 사이버 대응을 하여 김길태 카페를 폐쇄 조치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호인이 ‘부산경찰의 힘’을 내세운 반면, 검찰은 더 강한 자료를 증거를 내밀었다.

 


 

희망버스 집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청 주재로 워크숍이 열렸다. 워크숍에서 오고 간 말들은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문건에는 조현오 경찰청장은 부산 순경 권창훈(가명)에게 '비공식 대응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나온다. 이는 명백한 증거다.

 

왜 조현오는 권창훈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이 사건은 이미 10년 전 일을 파헤친 것이다.

 

조현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권창훈은 어떨까.

 

법정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그때 스테이크 먹은 기억밖에 안 나예. 그 문건의 발언 내용을 봤을 때는 다 사실인데 청장님이 밑에 전국 직원 다 불러놓고 '야 댓글 달아라' 이렇게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문건 내용을 따라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 보자.

 


 

권창훈 순경은 희망버스 집회 당시 한진중공업 정문에서 근무했다.

 

당시는 트위터가 유행이었다.

 

 

 

집회 담당 경찰도 트위터 앱을 설치하여 '버스' 단어를 실시간 검색했다. 뭐라고 경찰을 욕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초상권 인식이 낮았다. 시위대는 경찰들 사진을 찍어 그대로 트위터에 올렸다. 동료 경찰관들은 트위터에 서로 얼굴이 나왔다면서 알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권창훈 트위터가 능숙해졌다.

 

그는 희망버스 집회가 끝나고 나서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에서 전화를 받는다.

 

“SNS가 유행이라서 한 자리 생겼다”

 

대체 권창훈에게 행운처럼 굴러온 ‘한 자리’는 무엇인가?

 


 

당시 경찰청은 비난 여론 대응 방식 변화를 모색했다. 경찰청은 유행하던 온라인 미디어 <위키트리>에 눈을 돌린다. <위키트리>는 SNS를 중심으로 뉴스 아이템을 발굴해 이용자들과 함께 뉴스를 생산·편집하는 서비스다.

 

 

경찰청은 공식 대응을 강화하는 '온라인 소통계'를 2011년 10월 신설한다. 경찰청 온라인소통계 직원들이 기자처럼 소속을 밝혀 글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한 글을 트위터가 퍼트리면 된다.

 

그런데 한 가지 난관이 생겼다.

 

경찰청이나 지방청 공식 트위터 팔로워 수가 많지 않아 확산력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홍보를 하면 팔로워 수가 늘어날 것이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확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트위터를 하는 젊은 경찰을 대상으로 '온라인 커뮤니케이터'를 모집했다. 이미 부산청도 '온라인 커뮤니케이터'를 선발했다. 그중 한 명이 권창훈(가명)이다.

 


 

2011년 11월 22일 전국 '온라인 커뮤니케이터'가 참석하는 창설 기념행사가 열린다는 공문이 부산청에 왔다. 그 자리에서 청장 발언이 끝나면 한 명씩 발언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폴리스타임즈 인용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은 워크숍에서 직원들이 돌출 발언을 하지 않도록 단도리했다. 경찰청장 앞에서 어떤 질문을 한 것인지 미리 연습해 발언하도록 했다.

 

당시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은 권창훈에게 다음과 같은 건의를 청장에게 하도록 연습시켰다.

 

"웬만하면 신분을 밝히고 대응하는 것도 좋지만 비공식적 대응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왜 직원들은 권창훈에게 이런 말을 하게 했을까? 권창훈은 이렇게 말했다.

 

"가서 우리 잘했다고 어필하고 온나."

 

권창훈이 비공식 대응 필요성을 제기한 배경이다.

 

문서에는 조현오가 이렇게 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웬만하면 신분을 밝히고 대응하는 것이 좋지만 비공식적 대응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조현오가 씩씩한 순경에게 무안을 주지 않으려고 애써 부드럽게 돌려서 한 말이라는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조현오가 청장 시절 이런 조직을 만들어 비공식적이고 조직적인 댓글과 트위터 활동으로 온라인 여론이 형성되는 장을 파괴한 게 핵심이다.

 


 

권창훈은 법정에서 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권 씨는 지난 10년 동안 느낀 점을 털어놨다.

 

"저희 내부 분위기가 말이 ‘조직적’이지, 그냥 요만한 것(작은 것)을 이만하다고(크게) 보고도 많이 하거든예."

 

권창훈이 말한 대로면 당시 부산청 언론대응 TF팀 37명이 한 곳에서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대응하여 여론 흐름을 주도했다고 하지만, 이 또한 과장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당일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사용법을 익혔다. 즉 30명 대부분 팔로우가 없는 알 계정인 것이다. 트위터에 글을 쓴다고 리트윗 할 팔로워가 없다.

 

그래서 부산청 홍보팀장은 목표를 이렇게 설정했다.

 

"그 당시 저희가 했던 것은 트위터에 '희망버스'로 검색하면 그 글이 올라가는 정도만..."

 

하지만 거친 표현이 들어간 글들이 문제가 된다.

 


 

홍보실 직원은 당시 홍보담당관 고학성이 "트위터에 좌측 세력이 너무 많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했다.

 

게다가 고학성이 당시 여론대응 TF팀에게 '더 세게'를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진술이 나왔다.

 

고학성이 법정에서 기억에 없다고 할수록 '더 세게'라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이 쏟아졌다.

 

 

-변호인: ....온라인TF 경찰관들에게 “더 세게, 더 세게”라고 하면서....
-재판장: 증인이 더 세게 더 세게 했다는 거 맞아요?
-변호인: 정보화교육장에 가서 더 세게 더 세게 표현하라는 식으로....
-재판장: 그렇게 한 것 맞아요? 더 세게 더 세게?
-변호인: 증인이 강하게! 더 세게! 계속 ............

 

고학성이 저항할수록 재판장과 변호인은 계속 “더 세게 더 세게”라고 밀어붙였다.

 

법정이라는 이 고립된 공간은 어느새 <브로크백 마운튼>(이안 감독)을 떠올리게 만든다.

 

 

에니스 델마(히스 레저)와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레할) 못지않게 고학성 또한 가혹한 현실을 견디고 있었다.

 


 

반면 ‘보안 댓글’ 수사는 영화 <에어리언 대 프레데터>에 비유할 수 있겠다.

 

 

보안 분야 댓글은 범죄 댓글 중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내용은 가장 심각했다. 당연히 조현오 시절 보안국장이 줄줄이 조사받았다.

 

조현오 시절 마지막 보안국장은 김용판(2012년)이다.

 


 

2018년 8월 19일 <한겨레>가 또 단독 보도를 했다.

 

김용판 “조현오 전 경찰청장 댓글 지시 위법하다 판단”

 

기사 내용을 보면 김용판은 경찰 조사에서 조현오가 댓글 작성을 지시한 사실은 있지만 위법하다고 판단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조현오를 피의자로 입건하는 결정적 한 방이었다.

 

그러나 김용판은 6년 동안 댓글 위법성에 침묵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프레데터 은신(clocking) 능력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산성 피를 쏟아낸 것은 조현오가 아닌, 바로 검찰이었다.

 

(다음 제6화. 오! 용판)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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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2화. 밤의 집회에서 혼자

 

 

수사관 X는 2010년경 서울 종로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이하 지능팀) 소속이었다.

 

수사관 X는 힘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성격이 아니었다. 요청을 받으면 자기 이름부터 올렸다. 그가 스폴(SPOL) 팀에 가입한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았고 영어로 뭐라 하는데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들어보니 꽤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었다.

 

“내 이름 넣어라.”

 

 


수사관 X는 법정에서 조현오 청장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분’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검찰은 수사관 X가 ‘틱스님’이라는 아이디로 댓글을 다수 작성했다고 말했다.

 

집회 시위자를 비난하여 시위 동력을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었다. 이는 조현오 청장 지시를 따른 것이고 더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 국정 방향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노컷뉴스 인용

 

그런데 틱스님은 자발적 댓글이었다고 주장했다. 수사부서는 ‘댓글 평가’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틱스님이 속한 지능팀은 집회 관련 수사도 담당한다. 2010년은 집회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집회가 격렬해져 체포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현장에서 대기하는 동안에는 여유가 있다.

 

동영상을 보기도 하고 기사를 읽고 심심풀이로 댓글을 쓰기도 한다. 시위가 밤을 넘겨 진행되면 지능팀 수사관도 야외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2011년 6월 대학생 반값 등록금 시위 때도 현장에 있었다.

 

대기 중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데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이 한창이었다. 틱스님은 한 뉴스에 댓글을 달았다.

 

<조삼모사, 검찰의 보복이 무서운 것인지! 경찰이 힘이 없는 건지! 나 원 참! 검찰 개혁한다는 말은 몇 년 전부터 들었지만...... 나미 아미타불> (수사권 옹호 범죄 댓글)

 

집회가 격렬해지면서 불법 행위자가 나오자 현장에서 체포를 진행한다. 수갑을 채우자 시위대는 경찰에게 항의한다. ‘인권 침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틱스님은 자기 집에서 도둑을 잡으면 수갑을 채우지 않고 친절하게 안내하라는 말인가 묻고 싶지만 묵묵히 할 일만 했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시위대는 ‘폭력 경찰’ 구호를 반복한다. 오히려 맞는 쪽은 경찰인데 말이다. 틱스님은 집회에서 받은 짜증을 댓글로 풀었다.

 

<차 밀려 죽겠는데 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 니네 집 앞에서 해라.> (집회시위 비난 댓글)

 

반값 등록금 시위에 대학생이 몰려나왔다. 몇몇 취한 듯한 대학생은 욕설을 쏟아냈다. 틱스님은 또 댓글을 달았다.

 

<등록금 비싼 것 사실임. 나도 대학생 곧 생김. 그래서 집회 현장 갔더니 인신 비난에 입에 담지 못 할 저질 언행...... 매우 중요한 정책의 장임에도, 이런 저질 난장판이 없었습니다. 목적이 모욕인지 등록금인지. 대학생인지 주정뱅이 싸움장인지 헷갈립니다.>(집회시위 비난 댓글)

 

당시 틱스님은 그때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10년이 흐르면서 사회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사건(대한항공 땅콩 회향 사건)이 벌어지고, 문제 행위를 규정할 개념과 용어가 생겨난다.

 

방송화면캡처

 

틱스님은 법정에서 2011년 전후로 감정적인 댓글을 올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집회 현장에서는 경찰이 ‘을’이었거든요. ‘아주 처참한 을!’. 그 사람들로부터 당한 갑질, 지금 말하면 갑질이지요. 그리고 또 다른 경찰관들이 당하는 상황을 봤을 때 당장 내 눈앞에서 보이는 저 짜증 나는 상황, 저 갑질을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올렸다.”

 

 


 

필자는 지금 이 사건이 터무니없는 수사였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점이 의문이다.


 

 

이 사건은 2010년 8월에서 2012년 4월 사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조현오가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장을 지낸 시절이다. 당시 모든 서울지역 일선 경찰서에는 스폴팀원이 있었다. 

 

서울강북경찰서도 예외일 수 없다. 2010년 6월 채수창 서울강북서장이 조현오 식 ‘성과주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댓글 공작 활동 언급은 없었다. 

 

노컷뉴스 인용

 

경찰 댓글 공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수사권 조정’이었다. 경찰청이 주도한 이 작업은 전체 범죄 댓글 중 20%를 차지했다.

 

2011년 6월 황정인 경찰청 경정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수사권 조정 합의를 주도한 조현오 청장을 거세게 비난했다.

 

한겨레기사.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도 댓글 작업 관련 언급은 없다. 조현오에게 큰 약점이 될 사건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물론 댓글 공작은 이들 언급 여부와 상관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지난 10여 년간 아무런 소문도 없이 묻힐 수 있었을까?

 

혹시 경찰 조직 명령체계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조현오 청장은 와일드애니멀이나 틱스님 둘 다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일선 직원에게 명령을 전달하려면 체계가 있어야 한다. 즉 조현오에게는 공모자가 필요하다.

 

공모자를 알아내려면 일선 직원부터 조사해야 한다. 하기 싫었는데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진술이 쌓인다. 이들을 피해자라고 부른다.

 

아시아투데이 인용

 

이러한 피해자가 누구에게 명령을 받았는지 선을 타고 올라간다.

 

경찰청 정보국 조직도를 살펴보자. 조현오 경찰청장 아래로 차장-정보국장-정보심의관-정보2과장-계장 순서다.

 

경찰청은 실무가 계장 중심으로 돌아간다. 서로 각기 다른 기능을 맡은 계장끼리 스스로 협조하고 판단하는 부분까지 상급자가 신경 쓸 틈이 없다.

 

하지만 댓글 공작 지시라면 윗선에서 계장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MBN 방송 인용

 

전에 모시던 상사를 데려다가 강도 높게 다그치는 수사는 어느 조직이든 재미도 없거니와 쉽지도 않다.

 

한마디로 경찰 조직을 들쑤실 수사를 하지 않는 한 밝히기 어렵다.

 

강도 높은 적폐 청산을 주문한 청와대와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경찰 조직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이철성·민갑룡 경찰청장 의지가 받쳐 줘야 한다.

 

민갑룡(좌)-이철성(우) 경찰청장. 뉴스1 인용

 

여기서 조현오 청장과 스폴팀 운영 공모자로 걸려든 이는 당시 정용선 정보심의관이다.

 

정용선은 경찰대 3기 수석 졸업생으로, 필자도 조현오로부터 정용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2015년 1월 9일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이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고서를 늦게 제출한 과장에게 욕설을 한 게 문제가 됐다.

 

MBN방송 인용

상사는 직원 업무 능력을 어떻게 파악할까. 조현오는 업무 관련 질문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업무를 어느 정도 꿰고 있는지 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조현오가 보기에 정용선은 업무 능력이 탁월했다. 청장이 바뀌어도 정용선이 늘 승승장구한 이유다.

 

물론 정용선이 상사 취향을 잘 맞추기도 했을 테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상사 댓글 취향까지 추가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용선 심의관은 언제 어느 시점에 만나서 조현오 청장 댓글 지시에 ‘무조건 따봉’이라고 외쳤을까?

 


 

첫 번째 가능성은 오전 8시 전, 경찰청장 보고 시간이다.

 

7시 50분쯤 경찰청장 집무실 앞은 보고를 앞둔 과장들이 줄을 서 있다. 본청 과장은 총 45명 정도 되기 때문에 보고뿐만 아니라 결재도 오전에 받는다. 아침에 많을 때는 20~30명이 대기한다.

 

뉴시스 인용

조현오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오전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명했다. 하지만 과장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자주 봐야 정이 쌓이고 눈도장도 찍는다. 승진이나 좋은 보직을 위해서는 사소한 보고라도 들고 가야 한다.

 

과장 보고가 끝나면 맨 마지막 정보심의관 보고가 기다린다. 정보심의관이 마지막 순번인 것도 관행이다.

 

바로 이때 조현오가 정용선에게 이슈를 정해주고 댓글 지시를 내렸다는 진술이 나왔다. 정용선이 청장 보고 후 다시 사무실에 들러서 계장에게 사이버 대응 지시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에 정용선은 이렇게 답했다.

 

“시간도 안 되고, 말도 안 되고, 예의도 아니고…”

 

이유는 이렇다. 정보심의관 보고가 끝나면 바로 8시 30분 경찰청장 주재 국관회의가 시작된다.

 

노컷뉴스 인용

회의실은 경찰청장 직무실 바로 옆에 있다. 그곳에는 이미 국장과 주요 과장이 앉아 회의를 기다리고 있다. 보고가 끝난 정보심의관이 바로 국관회의실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바로 청장이 입장한다.

 


두 번째 댓글 지시 가능성은 바로 국관회의를 통해서다.

 

회의에는 각 국장들이 그날 그 주에 해야 할 일이나 문제가 된 사안을 청장에게 순차적으로 보고한다.

 

연합뉴스 인용

청장은 보고한 사안에 대해서 그렇게 하라는 취지로 말한다. 이어 차장이 당부 사항이 있으면 말을를 하고 마친다. 국관회의에는 기획조정과 직원도 참석한다. 그날 청장 발언을 기록해 경찰 내부망에 공유한다.

 

이 내용은 현직 경찰관은 누구나 조회할 수 있다. 이 기록은 모두 남아 있는데 여기에 정보심의관에게 지시한 내용은 없다.

 


 

마지막은 따로 불러서 은밀히 지시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공문과 지시가 서로 다르면 13만 경찰 조직을 이끌 수 없다.

 

국관회의에서 청장 지시 사항을 받고 국장회의, 과장 회의, 계장과 실무진 회의를 통해서 각 기능 업무를 진행한다. 한 마디로 경찰은 시스템에 의해서 운영되는 조직이다. 

 

경찰청 주요 실무진은 계장이다. 당연히 댓글 업무 실무도 계장이 담당한다. 그러나 당시 정보국 계장 진술을 보면 정용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익명의 댓글 대응과 관련해서. 제가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이슈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가족들도 댓글을 달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시기에 ”업무적인 지시에 가족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라고 문제 제기했던 기억은 난다. 가족들에게 댓글을 달라는 말이 무슨 말이겠는가. 경찰관임을 밝히지 않고 일반인이 마치 경찰에 우호적인 댓글을 작성하고 있는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반면 정용선은 이렇게 기억했다.

 

“그때 인터넷에서 수사권 관련해서 <옳다/아니다.>라는 라이브폴(Live Poll)이 있었어요. 계장들 다 잔뜩 있는 자리에서 어떤 계장이 “그거 했다.”라고 하니까 다른 계장이 “나도 했다.” “나도 찬성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제가 농담조로 “너는 가족도 없냐. 가족 이름으로 한 명 더 하면 되지”라고 말했던 거죠. 왜냐하면 (live poll은) 실명으로 하기에 한 번 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농담조로 “너는 가족도 없냐.”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저렇게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와전된 게 아닌가.. "

 

이처럼 10년 전 기억은 서로 어긋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당시 공문 내용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청 특별수사단은 압수수색을 통해 문서를 잔뜩 파헤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인용

 

한편 퇴직한 정용선도 다시 업무를 재개했다. 

 

 

(다음 3화. 참여정부가 댓글에 빠진 날)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차용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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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10년 전 이명박 정권 적폐까지 파헤쳤다. 그중 하나가 ‘댓글 공작’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원·군·기무사·경찰을 동원해 여론 조작을 시도한 사건이다. 그들이 신분을 숨기고 조직적으로 댓글을 쓴 가장 큰 목적은 ‘이명박 정부 옹호’로 알려졌다.

 

이 글은 댓글 공작에 대한 경찰 수사를 다룬다. 수사 과정을 보며 생겼던 한 가지 의문이 출발점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정말 틀렸을까?”

 

‘댓글 공작’ 경찰 수사 기록을 다시 불러낸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1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찰 댓글 수사는 2018년 3월 12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서 시작됐다.

 

국정원·군 이어 경찰도... 2011~2012년 ‘댓글 공작’ 드러나

 

경찰청은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이 집중적으로 파헤친 기간은 2010년 8월에서 2012년 4월이다. 바로 조현오가 서울청장, 경찰청장이던 시절이다.

 

조현오는 2010년 2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댓글부대’를 구성했다. 최대 인원은 100여 명에 달했다. 부대 이름은 스폴(SPOL), Seoul Police Opinion Leader 약자다.

 

이름부터 온라인 여론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지휘부는 쟁점(issue)을 지정해 스폴에 댓글 작성을 지시했다.

 

수사를 시작하자 상급자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댓글을 썼다는 피해자 진술이 쏟아져 나왔다.

 

조현오를 비롯해 경찰 간부 5명에게 적용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방해행사’이다. 조현오는 경찰 댓글 공작을 지휘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됐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이 나왔다. 정보 분야 전체 범죄 댓글 가운데 14.4%를 경찰 한 명이 썼다는 것이다. 그 경찰은 ‘와일드애니멀’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했다.

 

와일드애니멀은 2010년 11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열린 ‘G20 서울정상회의’ 관련 기사에 특히 댓글을 많이 썼다.

 

이명박 정부가 몹시 신경을 썼던 행사다. 와일드애니멀이 쓴 댓글을 보면 단순히 횟수만 많은 게 아니라 분량도 남다르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입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대륙을 향하여 표호하는 끝자락에 있는 작지만 가장 강한 나라 대한민국 아주 순수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또한 손님을 접대할 줄 아는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도 하지요. 이번 G-20 행사 때 세계를 리드하는 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합니다. 어디 지도자분이겠습니까?? 한나라의 대통령이 오시면 그에 따른 수행원과 경제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시는데 집회나 시위를 하여 그분들에게 불안감을 주거나 방해를 한다면 손님들을 불러놓고 집안싸움하는 꼴이 될 것이고 백의의 나라 호랑이가 대륙을 향해 표호하는 대한민국이 세계로부터 버림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여타 나라에서 신뢰를 잃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 후손들은 더욱 어려운 경제와 신뢰가 떨어져 활동하는데 위축될 것이 뻔할 것입니다. 이제 진정으로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행사 기간에는 우리 모두가 양보하고 단합하여 세계 지도자들이 깜작 놀라도록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줍시다. 세계 20개국 외에도 어마어마한 거물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많은 지도자와 훌륭하신 분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실 때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계를 리드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줍시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나요?? 우리 한 번 해 봅시다~~ > (정치관여옹호 범죄 댓글)

 

 

와일드 애니멀은 댓글 치고는 매우 길게 썼다. 댓글 작성을 마치면 이어서 또 쓰기도 했다. 어떤 댓글 작성 시각은 오전 6시 29분, 6시 34분, 6시 38분, 6시 42분으로 이어진다.

 

특별수사팀은 와일드애니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2013년 이미 퇴직한 와일드애니멀을 강제 수사하기는 어려웠다.

 

와일드애니멀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법정이다.

 


 

와일드애니멀은 스폴(SPOL)에서 활동을 인정했다. 그는 동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 정확하게는 기억에 안 나지만 그 당시에 학교폭력이 제일 많았기 때문에 저는 제 아들도 일진에 가입돼가지고 한동안 제가 힘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스폴을 ‘학교폭력 전담 경찰(School Police)’로 이해했으며 결코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시간대를 보면 지시가 내려오기 전에, 이미 댓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댓글 보고를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소속 부서는 댓글 작성을 업무성과에 반영하지도 않았다.

 

그는 생활안전과 소속으로 2010년 남대문경찰서 태평로지구대장으로 근무했다. 주변 경찰들은 그가 평소 댓글을 많이 쓰는 것을 알았다. 서울청에서 스폴 모집 이야기가 나오자 주변에서 그를 추천했다. 그에게 지시를 내린 주체가 있다면 언론과 현장이다.

 

당시 와일드애니멀 일상은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까지 지구대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태평로지구대 주변은 천막을 치고 노숙하는 시위자가 있다.

 

이 구역에서 집회는 일상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경찰은 밥이었다. 시위대는 ‘짭새 새끼’라고 욕했고 운전자는 교통정리도 못하는 ‘세금 도둑’으로 취급했다.

 

2010년 스마트폰 보급률은 4% 정도다. 대부분 컴퓨터로 기사를 검색했다.

 

현장에서 지구대로 돌아온 와일드애니멀은 자리에서 온라인 기사를 살핀다. 대부분 경찰을 비난하는 보도다. 사실관계를 왜곡한 기사에는 댓글을 달았다. 사실관계 왜곡 기준은 와일드애니멀이 정했다.

 

물론 현장에서 자괴감을 느낀 경찰이 모두 와일드애니멀처럼 댓글을 쓰지는 않는다. 와일드애니멀에게는 남다른 경험이 있다. 그는 사건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했다.

 


 

1984년 4월 9일. 당시 서울 ◯◯경찰서에 근무하던 와일드애니멀은 집회시위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곳에서 시위대에 끌려간 그는 3일 동안 한 대학에서 고초를 겪었다.

 

가까스로 풀려난 그는 경찰병원에 이송돼 9개월 정도 입원했다. 이후 몸과 마음이 모두 변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찰을 무조건 비난하는 보도를 보면 목이 메고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댓글은 이런 괴로움을 덜어내는 수단이었다.

 

“마음 답답한 게 글을 달고 나면 아 좀 시원한 느낌이 들고 자기 만족감도 있고.”

 

하지만 검사는 와일드애니멀이 썼던 댓글이 집회시위 관리를 내세워 시위 동력을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조현오 경찰청장 지시를 따른 것이고 이명박 정부가 원했던 것이다.

 

검사는 다음 아고라에 달았던 와일드애니멀 댓글을 문제 삼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큰 행사인 이번 G20 우리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해 주는 나라로 성장한 작금에 확실하게 아시아의 표호하는 호랑이가 세계를 향하여 표호 하는 이 시기에 확실한 매듭을 짓기 위해 모이는 G20 정상회의에 우리 모두는 정성을 다 해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이런 시기에 테러 집단과 야합한다던지 집회나 시위를 하려 한다면 그는 진정 지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이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배달의 자손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내고 계시는 수많은 명사들과 땀을 흘리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중대한 시기에 테러나 집회를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고 그 무엇입니까?? 저희들은 어릴 적에 강냉이 죽을 배급받아먹고 자랐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갔습니다. 더욱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으려면 이번 기회야말로 가장 호기입니다. 한 번 해봅시다~~ 여러분 >

 

검사가 물었다.

 

“증인은 지금 중요한 전제를 깔고 있기를 중요한 일이 있으면 집회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이에 와일드 애니멀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손님 불러놓고 집안에서 싸울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검사는 더 질문하지 않았다. 당시 필자 옆에서 함께 재판을 보던 분이 “공무원 중에 나이 많을수록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라고 속삭였다.

 

와일드애니멀이 시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현오를 옹호하는 댓글은 어떻게 봐야 할까.

 

‘조현오 개인 옹호 댓글’ 개수 1위도 와일드애니멀이다.

 

 

 

“여기 보시면 2010년 8월 14일부터 피고인이 서울청장일 때 인사청문회 관련하여 증인이 피고인을 개인적으로 옹호하는 댓글을 34건이나 달았어요.”

 

이 질문에 답하는 와일드애니멀 목소리가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변했다.

 

“제가 청장님을 존경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기 때문에 달았다는 것인가요?”

 

“네. 처음에 저도 청장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한 번 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청장님 듣다시피 목소리가 허스키하시고.....”

 

이 부분에서 검사가 증인 말을 재빨리 끊고 핵심을 짚고자 했다.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어요?”

 

와일드애니멀 목소리는 여전히 꽃밭 위를 날고 있었다.

 

“웃음이 별로 없으신 분인데 처음에 참석하고 나서 굉장히 직원들에 대한 배려, 조직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 경찰을 이끄시는... 제가 생각하는 서울 치안이 대한민국 치안이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막중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분이 조직을 이끌면, 정말 잘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

 

 

그러자 검사는 논리 싸움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지금 증인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아는 조현오 청장은 이런 사람이고 경찰청장을 수행할 능력과 인품이 충분한 분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안다’ 이렇게 써야 하는 게 아니냐.”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한다.”

 

검사는 다시 댓글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댓글을 보십시오. ‘경찰청장 내정자를 비하하다니. 그럼 누가 경찰을 이끌고 갈 것인가’ 그럼 내정자를 비판하지 누구를 비판합니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임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비판하여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일을 못하면 물러나게 하면 되지...’ 이런 식입니다. ‘경찰청장은 훌륭하고...’ 뭐 이런 내용이 아니에요. 증인이 주장하는 내용과 댓글 내용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와일드애니멀은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 내용과 이 내용이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와일드애니멀은 당시 조현오 서울청장이 “경찰청장 수뇌부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재판장도 뭐가 그리 좋았냐고 재차 물었다. 와일드애니멀은 “성과주의를 도입하고, 공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았다”고 답했다.

 

 

와일드애니멀 증언은 특별수사팀 수사 결과와 배치된다. 하지만 와일드애니멀이 조현오 청장 지지자라 거짓증언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도 스폴팀에서 두 번째로 댓글을 많이 쓴 직원은 조현오를 싫어한다고 밝혔다.

 

 

‘댓글 은메달’ 아이디는 ‘틱스님’이다. 과연 틱스님은 지시에 의한 행위였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해 줄 것인가. (다음 제2화 밤의 집회에서 혼자)

 

 

 


 

P.S)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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