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제복 12화. 조현오의 조직 장악 비결은 '감찰'

 

조현오는 울산남부서장으로 취임하면서 첫 지휘관 생활을 했다. 울산은 팽창하는 도시로 교통사고와 강력 사건이 잦았다. 사건·사고를 줄이고자 조현오가 주목한 곳은 검문소였다. 검문소에서 인적사항을 미리 노출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현오는 검문소를 직접 챙겼다. 자리를 비운 직원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청문감사관이 나섰다.

 

청문감사관은 일선 경찰서에서 감찰과 감사를 총괄하는 보직이다. 감사 대상은 행정적인 일상 업무다. 감찰 대상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행위가 된다. 즉 개인 행위와 관련한 비위는 감찰 영역이다. 단, 사무감사 중 발견된 계약관계 등으로 말미암은 배임이나 횡령 같은 비위는 감사에서 처리한다. 물론 지휘관이 상황에 따라 감사 쪽 업무라도 감찰 부서를 활용하는 일은 자주 있다.

 

조현오는 새벽에 파출소를 순시했다. 당시 관용 차량은 의경이 운전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관내 지리를 익힐 겸 의경을 옆에 태우고 직접 운전했다. 차량 이동 중 무전으로 112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으로 바로 차를 돌려 초동조치를 확인했다.

 

 

 

업무를 세심하게 챙기자 서울종암경찰서장 시절 직원들은 조현오를 ‘조순경’이라고 부르곤 했다. 조현오는 경찰서 과장들에게 주어진 감독순시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남부서장 시절 하루는 전국 일제검문검색이 진행됐는데 조현오는 과장에게 현장에서 직원 근무를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나이가 한참 어린 과장 한 명이 근무한 것처럼 거짓말했다. 조현오는 과장을 다그쳤다.

 

“지방청에 보고해서 징계받을래? 아니면 일주일 동안 교통외근과 근무복 입고 심야음주운전단속 할래?”

 

과장은 현장 단속을 택했다. 과장이 도로에서 현장 단속을 하자 다른 직원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조현오는 2006년 경찰청 감사관을 지낸다. 감사관 아래로 감찰과장과 감사과장을 뒀다. 당시 감사과에 순경 출신으로 강직하며 다부지게 일을 잘하는 직원이 있었다. 2008년 조현오가 치안감으로 승진하여 부산지방경찰청이 됐을 때 그 직원은 은퇴를 몇 년 앞둔 총경이었다. 조현오는 2009년 그에게 경기청 청문감사담당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부탁을 받는 순간 ‘일을 많이 시킬 텐데…’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방청에서 경무과 기획계는 치안 수요에 맞게 인력을 배정하는 일을 한다. 경찰관 전출은 경무과 인사계 업무다. 조현오는 당시 경기지역 경찰에게 업주와 통화를 금지했다. 이를 위반하면 징계를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감찰은 업주와 통화한 경찰에 대해 1~3단계 등급을 정해 전보 조치했다. 또 첩보를 바탕으로 평판이 좋지 않은 경찰은 다른 경찰서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진술서와 근거를 남겨 항의가 들어오면 사유를 밝혔다.

 

생활안전과 업무에도 감찰 기능이 섞였다. 조현오는 경기청에서 성과주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성과주의는 과잉 단속 부작용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런 폐단을 막는 일도 감찰에서 맡았다.

 

조현오가 경기청으로 오기 전, 2009년 1월 평택 쌍용자동차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다. 쌍용자동차 운명은 법원과 채권단 손으로 넘어갔다. 4월 사측이 발표한 구조조정안은 전체 인력의 37%를 해고하는 것인데, 희망 퇴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976명을 정리 해고한다. 5월 22일부터 쌍용차 노조는 평택 공장을 점거해 파업을 시작했다.

 

6월 25~26일 정리해고에서 벗어난 직원과 임직원 3000여 명이 공장 안에 진입하여 노조와 충돌하며 부상자가 속출한다. 대규모 경찰병력이 투입돼 양쪽이 접촉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사측을 비롯해 누구도 공장 안팎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도록 했다. 수십 개 중대가 교대로 근무했다.

 

경비국 처지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전에 기강을 잡는 것이다.

 

오랜 기간 경비 근무를 하면 음주, 졸음 같은 사고가 생기기 마련이다. 쌍용자동차 사태 때는 그런 사고가 없었는데 그만큼 조직이 장악됐다고 볼 수 있다. 밤마다 무전으로 근무 확인을 점검하는 것도 감찰이 맡은 일이었다. 여기에 국정감사보고서까지 조현오는 청무감사담당관에 넘겼다. 조현오가 끌어들인 총경은 모든 일 처리가 야무졌다.

 

이듬해 조현오는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된다. 조현오는 총경에게 1년만 더 함께 일하자고 부탁한다. 당시 그는 은퇴를 앞두고 있어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조현오가 서울에서도 ‘성과주의’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묵묵하게 뒷받침한 총경 덕이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밀어붙였을 듯한 조현오도 경찰청장이 될 때까지 참았던 것도 있다. 경찰 문화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보통 사람 시각에서 기본적인 것들이 경찰 조직 안에서는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일할 때와 쉴 때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 관할 경찰서장은 휴일이 없었다. 서울종로경찰서장은 북한산을 앞에 두고도 등산 한 번 하기 쉽지 않았다.

 

 

업무에 소홀하다는 질책을 받을까 걱정했다.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휴가를 가지 못하는 직원도 많았다. 대부분 직원은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고 눈치만 봤다. 조현오는 감찰을 풀어 정시 퇴근 문화를 정착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청장 시절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청장 지휘방침과는 달라 경찰청 감찰 등을 통해 간섭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청문감사담당관은 열심히 했지만, 인사권을 가진 경찰청에서 견제를 받아 본인 희망과 관계없이 2010년 경찰대학 교육과정으로 발령 난다. 경무관이 되는 필수 과정이었지만 은퇴를 고작 1년 남짓 앞둔 총경에게는 불필요했다.

 


 

2010년 8월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된다. 통상 청장이 바뀌면 중요 보직은 자기 뜻을 잘 파악하는 사람으로 채우기 마련이다. 정기인사 때 교체하는 보직 가운데 청장이 중요시하는 자리는 인사·감찰·경무·정보과장 등이다. 조현오는 감찰과장을 비롯해 주요 과장을 바꾸지 않았다. 업무역량이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참모 중에는 청장이 지시하면 대답만 하고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름대로 이해관계를 따지기 때문이다. 조현오는 청장이 되기 전부터 지방청이 하달한 공문을 읽지도 않고 넘어가는 직원을 수없이 봤다. 청장 지시를 적극적으로 따르게 하려면 자극이 필요했다. 조직에서 감찰은 효과 좋은 침 같은 역할을 한다.

 

 

감찰은 언론 보도에 대응하기도 한다. 2011년 4월 20일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해 서울시내 11개 교차로에 별다른 홍보 없이 3색 신호등이 작동했다. 5월 7일 3색 신호등이 설치된 서울시청 앞 교차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은 신호 체계를 지적했다. 문제 파악을 위해 교통과에 감찰 직원이 투입됐다.

 

물론 잘 돌아가는 기능까지 감찰을 동원해 관리하지는 않았다. 조현오는 해당 기능 보고를 바탕으로 정보 기능도 동원해 사실을 교차 확인했다. 다만, 해당 기능 국장이나 과장이 청장 지시에 미온적이라면 여유롭게 기다려 주는 일은 없었다. 경비과에서 발생한 전의경 가혹 행위 관련 지시가 대표적이다. 이럴 경우는 가차 없이 감찰을 동원했다.

 


 

10월 21일 길병원 조폭 난투극 사건을 이튿날 SBS가 보도한다. 인천시 구월동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폭력조직끼리 유혈 난투극이 벌어진 사건이다. SBS는 당시 현장에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력반 형사 5명이 있었지만 유혈 난투극을 막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시민은 경찰의 허술한 초동 대응으로 두 시간 넘게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조현오는 방송을 접하고 바로 감찰과장에게 전화했다. 본청 감찰팀이 바로 출동해 최초 112신고를 접수한 시점부터 사무실 CCTV를 면밀하게 살폈다. 감찰 조사가 모두 끝난 23일 인천남동경찰서장이 직위 해제됐다. 남동서 형사과장, 강력3팀장, 상황실장, 지구대 순찰팀장 등도 중징계됐다. 조현오는 “조폭 겁내는 경찰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26일 현장에 출동했던 강력3팀장이 조폭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다며 경찰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온라인에서 급속하게 퍼졌다. 조현오가 제대로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괜히 엄한 경찰만 잡았다는 댓글이 달렸다. 원인은 자신에게 있으면서 남 탓하며 징계만 하는 청장이라는 사설까지 나왔다. 조현오는 결국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대한 징계를 거둔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다음 13화-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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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서울과 경기는 스케일이 다르다. 연쇄살인이나 토막살인 사건 같은 강력 사건이 아니라면 경기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미디어 관심을 끌기 어렵다. 반면, 서울에서는 작은 사건과 집회도 어떻게 엮이느냐에 따라 정치적 이슈로 발전하기도 한다.

 

조현오는 2010년 1월 8일 서울지방청장으로 부임한다. 조현오는 바로 역대 서울청장 리더십 분석·평가한 내용을 접한다. 직원 여론과 불만을 수렴해 정책을 추진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현오가 밝힌 소감은 이렇다.

 

“다 좋은데… 이렇게 가자니 시간이 어디 있냐?”

 

보통 참모를 비롯해 지휘관 임기는 1년이다. 외사관리관, 감사관, 경비국장, 부산청장, 경기지방청장 등 조현오가 거친 곳에서는 어김없이 직원들 곡소리가 났다.

 

 

처음 3개월 동안 새로운 틀을 짜고 나머지 기간 강하게 추진해 그 틀을 정착하는 게 조현오 방식이었다. 조현오가 조직에 심고자 한 틀은 당연히 ‘성과주의’였다

 


 

조현오는 인사 과정에서 주관적인 지휘관 평가를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통상 인사는 심사위원회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서울청장으로 취임한 조현오는 바로 승진하고 싶은 직원을 강당에 모이도록 했다. 경정·경감 승진 대상자 225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7시간 남짓 면접이 이어졌다.

 

“자기가 승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봐라.”

 

조현오는 그 자리에서 담당 과장에게 면접한 직원마다 성과를 확인했다. 몇몇 직원은 승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약을 받기도 했다. 성과를 봤을 때 승진이 어려운 직원에게는 그 자리에서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면접에서 탈락이 확정된 직원은 ‘빽’을 쓸 기회조차 사라졌다.

 

당시 직원들이 가장 힘들었던 게 이 같은 인사 방식이었다. 조현오는 2~3개월에 한 번씩 성과 우수자를 내부에 공개해 승진 인사에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경쟁에 내몰린 직원들은 안팎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2014년 기준 부산은 경찰서가 15개, 경기도는 41개, 서울은 31개가 있다. 지역이 넓으면 지방청장이 일일이 챙길 수 없으므로 각 경찰서 서장이 치안을 책임져야 한다.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경찰서 단위로 평가를 진행했다. 성과가 좋은 경찰서는 혜택을 받았고 성적이 나쁜 경찰서는 집중감찰을 받았다. 조현오가 서울지방청을 맡은 시기에는 이 같은 평가 시스템이 무르익는 단계였다. 조현오는 평가 시스템을 적용하기 전에 개념을 구체화하고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장들과 회의를 했다.

 

“방배경찰서는 치안 수요가 적은 곳인데, 우리는 성과를 많이 낼 수 없어요.”

“종로경찰서와 남대문경찰서는 경호와 행사가 빈번해 실적을 많이 올릴 수 없습니다.”

 

조현오는 불평·불만을 끝장토론, 공청회, 간담회로 돌파하고자 했다. 통상 서울지방청 직원은 2만 3000여 명, 경기지방청 직원은 2만여 명이다. 이 정도 규모면 아무리 청장이라도 직원 공감 없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선 경찰서 정도 규모면 서장이 직원을 마음먹은 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실적을 내지 못하면 집중감찰 대상이 된다. 서장부터 일선 경찰까지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강북경찰서장인 채수창도 이 같은 압박에 시달렸다. 조현오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채수창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도 실적주의에서 살아남으려고 제 직원이 검거 실적을 올리도록 굉장히 독려하고 채찍질을 했습니다.”

 

인사에 대한 불만과 성과주의로 말미암은 피로는 경찰 조직에 꾸준히 누적됐다. 2010년 6월 23일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경찰관 4명이 구속된다. 피의자에게 고문·가혹행위를 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는 2009년 8월에 시작된다. 조현오 인사청문회 위원인 정수성은 증인으로 참석한 채수창에게 이 점을 확인한다.

 

“증인은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에 조 청장 책임도 있다며 동반 사퇴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양천서 피의자 고문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생긴 일이고 조현오 내정자는 올해 1월 서울청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양천서 고문 사건과 조현오 실적주의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은 결과적으로 조현오식 성과주의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통로가 된다.

 


 

역풍을 맞게 된 조현오에게 악재가 이어졌다. 강남 룸살롱 업주 유착 사건이다. 이 사건은 가출한 여학생 A양을 서초경찰서 실종팀이 성매매 업소에서 찾아내면서 시작된다. 가수 지망생인 A양은 미성년자였다. 업소 사장 이름은 이경백이었다. 웨이터 출신인 이경백은 2000년 북창동에서 룸살롱을 개업하고 강남 일대에서 유흥업소를 기업형으로 운영했다. ‘룸살롱 업계의 스티브 잡스’, ‘룸살롱의 황제’ 등으로 불리게 된 비결은 다방면에 비호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 단속반에 뇌물도 잘 바쳐야 했다.

 

경찰 단속을 비롯한 유흥업계 정보는 이경백을 거쳤다. 2006년 한화 회장 김승연이 폭행을 저지른 것을 경찰에 흘린 것도 이경백이었다. 경찰은 이경백과 단단히 엉켰고 조직은 점차 곪아 들어갔다. 이경백을 수사한다는 것은 경찰 조직의 종기를 도려내는 일이었다. 그전에 경찰은 이미 이경백에게 농락당한 적도 있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혐의를 포착해 이경백을 수사하려 했을 때 그는 오히려 수사관이 접대받은 내용을 확보해 수사팀을 엎었다.

 

외압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원래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은 생활안전과 소관이다. 하지만 조현오는 형사과에 이 사건을 맡긴다. 당시 형사과장은 황운하 총경이었다.

 

통화기록 분석부터 시작했다. 이경백이 지난 1년 동안 휴대 전화 두 대로 통화한 기록은 몇 만 건이었다. 등록된 사람만 1500명이 넘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적잖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검찰은 경찰이 긴급 체포한 이경백을 풀어줬는데, 수사를 이끈 황운하는 언론 브리핑에서 검사 실명을 거론하며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말한다.

 

 

이경백도 만만찮았다. 구속되면 그동안 바친 뇌물 내용을 모두 검찰에 불겠다며 맞섰다. 조현오는 오히려 이경백이 검찰에 뇌물 관련 내용을 불기를 기대했다. 검찰 수사이긴 하지만 경찰 비리를 도려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이경백과 통화 기록이 있는 경찰관 63명이 적발됐다. 조현오는 이미 취임할 때부터 업주 관계자와 공무 외에 전화 한 통, 물 한잔도 하지 말 것을 지시한 상태였다. 통화 내용을 소명하지 못한 경찰은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39명이 징계를 받았고 이 가운데 6명은 파면됐다.

 

“조현오가 범서방파 행동대장 출신과 의형제라더라.”

“조현오가 유흥업소에 10억 원을 투자해 월 2500만 원씩 배당금을 받는다.”

 

그즈음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조현오가 조폭과 의형제이며, 조현오 서울청장 비서실장도 연루됐다는 식으로 소문은 점점 덩치를 키웠다. 인터넷에서도 조현오가 강남 유흥가 조폭과 수십 차례 통화했다는 글이 돌았다. 민정수석실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조현오는 그를 옥죄는 의혹에 정면 대응하는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비서실장을 감찰해서 비위 사실이 있으면 엄하게 처벌할 것이고, 내 휴대전화 통화내역까지 모두 공개하겠다.”

 

조현오는 자신도 수사 대상에 넣었다. 서울청 수사부장인 박상용에게 자기 계좌열람동의서도 전달했다.

 

형사과장 황운하는 결국 이경백을 탈세와 성매매 혐의로 6월에 구속한다. 조현오는 이경백이 구속되고 두 달 후인 2010년 8월 경찰청장이 된다. 하지만, 이경백도 곧 보석으로 풀려났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으며 유유히 빠져나온다.

 

(다음 9화 –조현오, 경검 수사권 조정 어떻게?)

 

서형 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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