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김헌기를 알게 된 것은 2016년 7월 31일이다.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는 2012년 상황부터 설명해야겠다.

 


 

2012년 당시는 조현오 청장 시절이다. 김헌기는 본청 지능범죄수사과장(현재 수사과장)이었고 지능수사대를 지휘했다. 직속상관이 황운하 수사기획관이다.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신경전이 극에 달했다. 조현오 경찰청장도 나름 호전적인데, 수사기획관에 황운하까지 오면서 검찰 심기를 건드리는 행보가 이어졌다. ‘밀양 경찰 검사 고소 사건’이 출발이다.

 

이 사건은 젊은 경찰대 출신이 2011년 밀양경찰서 지능팀장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당시 지능팀장은 지역 폐기물업체 수사를 하고 있었다. 며칠 후 밀양지청 박 모 검사가 지능팀장을 불러 ‘수사의 정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능팀장은 반문했다.

 

"어떤 점에서 비정도입니까?"

 

검사는 흥분하면서 일어나 욕설을 했다. 지능팀장이 주장하는 검사 발언이다.

 

"이 새끼 너 정신 안 차려. 여기가 어딘 줄 알아? 계장님 이 새끼 피신(피의자신문조서)받으세요. 너거 서장 내 앞에 불러봐? 너거 과장 한 번 불러봐?"

 

검사 말이 다 끝나자 지능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고 나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굴욕감, 자괴감, 모멸감 같은 단어가 스쳤다.

 

사무실로 돌아와 앞으로 대처를 고민했다. 지능팀장은 경찰대 동문 게시판에 사연을 올리면서 검사를 고소할 계획을 밝혔다. 황운하에게도 면담을 요청했다.

 

경찰청은 검사 고소 사건 지휘를 김헌기 수사과장에게 맡겼다. 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배당해 경찰 소환 요구를 세 차례 거부한 박 모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체포영장을 기각했고 경찰 기소 의견도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경찰청 수사에 대응했다. 경찰청 수사 대부분은 특정 관할 사건이 아니다. 가령 조희팔 은닉 자금 추적 수사도 피해자가 전국에 걸친 전국단위 수사다. 조희팔은 3조 5000억 원대 다단계 사기사건 피의자로 2008년 중국에 밀항했다. 조희팔 주요 활동 무대는 대구였고, 대구에 조희팔 관련 수사가 집중됐다. 당시 범죄정보과는 대구에 사는 조희팔 측근이 자금을 은닉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보고를 받은 황운하는 대구지방경찰청이 아닌 경찰청 지능수사대에 수사를 지시했다. 조희팔을 수사했던 대구지역 경찰과 유착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조희팔 은닉 자금 추적 수사도 대구지검에 이송지휘를 내린다. 그렇게 되면 사건은 경찰청 지능수사대가 아닌 대구지방경찰청이 맡는다. 모든 수사는 수사관 의지로 결정된다.

 

김헌기 수사과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관을 대구지방청 수사계 소속으로 인사이동을 시켜 수사하게 한 것이다.

 

 

이때 수사관 X가 파견된다. 이런 과정은 공문으로 진행되므로 검찰도 파악 가능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이 신청하는 각종 통신 허가와 계좌추적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공문에 적인 발령 이유가 조희팔 은닉 재산 추적과 유착 경찰을 잡겠다는 명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 명분과 결과가 같을 보장은 없다.

 

당시 첩보에는 조희팔 측근이 거주하는 주소나 연락처가 없었다. 그래서 대구로 갔던 수사팀은 주변인 전화번호를 추적해 대포폰을 특정했다. 그 대포폰에 나오는 세탁소, 택시 번호를 추적해 다시 거주지인 아파트를 특정했다. 하지만 아파트를 압수 수색하니 첩보와 달리 살림이 빈곤했다. 대신 아파트를 뒤지면서 조희팔 사망을 알리는 간접증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찰청 지능수사대는 2012년 5월 조희팔 사망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발표는 디도스 수사 발표만큼 언론에 집중포화를 맞는다.

 

수사관 X는 처음 첩보와 다른 수사 결과가 나왔기에 김헌기 과장이 철수 지시를 내리길 바랐다. 하지만 김헌기는 사람이 죽어도 돈은 어디 있을 것이라며 은닉 자금 추적을 지시했다. 김헌기가 수사지휘를 끊임없이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 친구들에게 지시하면 진척이 나오니 시키지. 못하겠다, 안 되겠다 하면 어떻게 시켜. 기본적으로 수사 역량과 의지, 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봐.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수사관 X가 그런 게 대단해. 내가 시키지 않은 것도 현장에서 판단해 성과를 내더라고."

 

불법 다단계 업자들은 통상 차명계좌를 사용한다. 대구에서 수사팀은 계좌추적 영장을 수십 차례 받아내며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그리고 조희팔 오른팔인 강태용에게 받은 자금 일부가 김광준 차명계좌로 흘러간 것을 포착한다. 강태용은 이미 2008년 말 조희팔과 중국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대구로 파견된 지능수사대 수사팀은 끈질길 수사를 바탕으로 정제된 보고서를 완성했다. 이때까지  김헌기는 황운하에게 보고를 잘하지 않았다. 김헌기는 황운하와 달리 철저한 실무형이다. 황운하가 언론에 터트릴까 봐 수사 기밀은 극도로 신경 썼다.

 

하지만 결국 검찰은 이 사건을 가로챈다. 한상대 총장은 11월 9일 김수창 특임검사를 지명해 김광준 검사를 검찰에서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2011년 11월 19일 김광준은 구속됐다. 이튿날 11월 20일 황운하 또한  수사연수원장으로 날아갔다. 당시는 조현오 청장이 물러난 후였다. 조현오 청장처럼 호전적인 뒷배가 아니면 조자룡의 칼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김헌기는 계속 수사과장으로 남아 검찰 수사를 지켜봤다. 2012년 말에는 대선이 있었다. 대선 직전에 터진 부패 검사 사건 때문에 각 대선 후보 측에서 검찰개혁, 수사권 조정 공약들이 나왔다. 그렇게 이 사건은 잊혀갔다.

 


 

그 후로 4년 이 지났다.

 

2015년 12월 15일,  7년 동안 도피하던 강태용이 국내에 소환되면서 제2막이 올랐다. 2016년 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광준에게 편지를 받았다.

 

 

김광준은 법원에서 뇌물수수로 징역 7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 대구지검에서 조사받던 강태용이 김광준에게 돈을 빌려줬고 돌려받았다고 진술했다. 김광준은 편지에 2016년 1월 2일 자 강태용 피의자 신문 조서를 첨부했다. 뇌물이 아닌 새로운 증거라면서 재심을 원했다.

 

그러나 재심 신청이 어려운 시기였다. 2016년 검찰은 홍만표·진경준 사건으로 비난받는 시기다. 김광준에게 정공법을 권했다. 언론에 사죄하는 인터뷰를 하고 그래도 억울한 점이 있으니 재심을 요청하겠다고 하면 분위기가 훨씬 더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광준은 억울한 사정을 맞장구 칠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필자가 황운하를 섭외했을 때 김광준은 기절초풍했다.

 

 

2016년 황운하는 충남 아산에 있는 경찰대 교수부장이었다. 당시 <풍운아 황운하>를 집필하면서 그를 만났다. 황운하는 사무실에서 김광준이 보낸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당시 언론에 피의사실 공표를 했다며 황운하를 욕한 부분도 있었다.

 

황운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약해."

 

그래도 황운하는 ‘특임검사는 눈속임 쇼’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해줬다.

 

"김 전 검사가 특임검사를 통해 탈탈 털린 것은 맞다. 되는 것 안 되는 것 깡그리 탈탈 털렸다.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 인터넷 매체에는 김광준 편지 전문이 나가기도 했다. 김광준 처지에서는 자기 억울한 부분만 부각했을 것이다. 어느 날 한 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경찰청 김헌기 수사기획관에게 기사 항의 메일을 받았다며 내용도 보내줬다.

 

<이런 부정부패범 의견을 그대로 수용해 사실인양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에 큰 실망과 더불어 분노를 금치 못한다.>

 

수습하고자 나섰다. 만나기 전에 한 직원이 필자에게 귀띔해줬다.

 

“원래 에어컨에서 냉난방은 한 기계잖아요. 김헌기 씨는 냉방은 잘 되는데 난방이 잘 안 돼요.”

 

처음 김헌기 수사기획관을 만난 날, 꼬장꼬장한 황새 아우라가 그대로 느껴졌다.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눈빛에서 드러나는 분노가 얼굴 전체로 출렁이며 퍼졌다. 김헌기는 파렴치한 부정부패사범이라는 구체적 근거들은 수사사항이라 말할 수 없다며 답답해했다. 필자는 김광준 인터뷰가 경찰에게 유리했다는 점을 들어 다독였다.

 

김광준은 그해 재심청구를 했으나 기각됐다. 당시 김헌기는 끝까지 항의했고 기사에 자신의 주장을 반영시켰다.

 


 

정권이 바뀌고 김헌기는 2018년 인천지방경찰청 3부장으로 재직했다 3부장은 크게 정보과와 보안과를 아우른다. 이 시기 김헌기는 난방 기능을 향상하려고 애썼다. 직원들을 기쁘게 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은 인천3부장실을 방문했는데 김헌기는 책상에서 직원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2018년 12월 1일, <노컷뉴스>에 기사가 뜬다.

 

"1천만 원 인출 시 경찰 출동"... 사생활 침해 논란

 

각 은행은 경찰과 업무협약이 돼 있다. 고객이 찾아와 1000만 원 이상 현금으로 인출하면 은행 직원은 무조건 112 신고를 한다. 신고를 접수하면 즉시 경찰이 긴급 출동해 현장에서 휴대전화 통화 내용 등을 살펴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범죄 연관성을 확인한다. 김헌기가 기사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딱 하나다.

 

'이 지침은 2016년 3월부터 이어졌다'

 

김헌기가 착안해서 전국으로 뿌리내린 이 제도를 겨냥해 기사는 '사생활 침해'를 지적하며 경찰 내부 의견을 인용한다. 분노 지수가 최고치를 경신한 김헌기는 계장에게 바로 지시한다.

 

"내가 글을 써야 하니까 통계 좀 갖다 줘!"

 

한해 총 1854건, 피해액 200억 원이 넘는 인천지역 통계를 바탕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보이스피싱 피해의 심각성을 알면 사생활 침해 운운하지 못한다'

 

김헌기는 페이스북 글을 복사해서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 제3화. 미스터 계장들)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

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

•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

•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

•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공 씨 단독범행이며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2010년 12월 9일 황운하는 디도스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당한 발표와 달리 여론은 축소수사로 받아들였다. 정권 입맛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디도스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자 검찰은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디도스 사건을 수사한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경찰 수사가 잘못된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경찰 조직 내에서도 후폭풍이 불었다. 황운하가 경찰 조직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문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불거졌다. 그러나 황운하는 2012년 말까지 수사기획관으로 일했다. 경찰청장 조현오가 흔들리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믿고 일을 맡기면 간섭하지 않고 외풍도 차단하는 게 조현오 방식이었다.

 

지능수사대와 범죄정보과를 신설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현오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을 테니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해당 과장은 최대한 능력 있는 직원으로 팀을 구성했다.

 

당시 범죄정보과는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작성하는 수준을 요구하지 않았다. 범죄정보과 일부 직원을 정보과 출신이 아닌 수사과 사람으로 구성한 이유다.

 

사건 첩보를 구해 수사하는 것을 ‘인지수사’라고 한다. 이른바 인지수사로 승진을 한 번 이상 했던 사람이 범죄정보과에서 일했다. 이들이 생산한 정보는 수사부서에 넘기면 바로 몇 가지 사항만 보완해 압수영장이나 계좌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수사부서가 압수영장을 받았다고 해서 그 결과가 모두 성공적일 수는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희팔 자금 추적 수사였다. 조희팔은 3조 5000억 원대 다단계 사기사건 주범으로 2008년 중국으로 밀항했다. 조희팔은 주로 대구에서 활동했고 이 지역에 관련 수사가 집중됐다. 당시 범죄정보과는 대구에 사는 조희팔 측근이 자금을 은닉했다는 첩보를 얻었다. 황운하는 대구지방경찰청이 아닌 경찰청 지능수사대에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청장 조현오도 나름 호전적인 기질이 있는데, 수사기획관으로 황운하까지 오면서 검찰 심기를 건드리는 행보가 이어졌다. ‘밀양 경찰 검사 고소 사건’이 첫출발이었다.

 


 

이 사건은 젊은 경찰대 출신이 2011년 밀양경찰서 지능팀장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당시 경남지방청은 토착비리 수사 성과를 독려했다. 때마침 지능팀장은 지역 사이비 기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역 폐기물업체 수사로 급선회한다. 수사 대상은 업체를 비호한 공무원까지 확대된다. 사건 규모는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독려하던 검사도 태도가 달라졌다. 검사는 지능팀장을 검사실로 불러들여 ‘수사의 정도’가 아니라며 제동을 걸었다. 지능팀장이 되물었다.

 

“어떤 점에서 비 정도입니까?"

 

지능팀장은 당시 그 말을 들은 검사가 흥분해 욕설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새끼 너 정신 안 차려. 여기가 어딘 줄 알어? 계장님 이 새끼 피신(피의자 신문조서) 받으세요. 너희 서장 내 앞에 불러봐? 너희 과장 한 번 불러봐?”

 

지능팀장은 검찰과 경찰이 협력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전과 머슴이었다. 지능팀장은 검사 말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고 검사실을 나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굴욕감, 자괴감, 모멸감 같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지능팀장은 앞으로 처신을 고민했다. 수사기획관인 황운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했고 검사를 폭언과 수사 축소 지시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해당 검사가 지능팀장에게 과잉수사 문제를 지적하며 적절한 수사 지휘를 했을 뿐 폭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이 사건을 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즉시 배당한다. 또 혐의를 부인한 채 진술서만 내고 경찰 소환 요구를 세 차례 거부한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영장을 기각했고 경찰 기소 의견도 무혐의 처리했다.

 

경찰청장 조현오는 이 과정에서 “검찰은 문제 있는 경찰을 잡아들이고 경찰도 문제 있는 검찰을 잡아들이면 두 조직이 모두 깨끗해지지 않겠느냐”라고 말해 검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검찰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경찰청 수사에 대응했다.

 


일반적으로 경찰청이 하는 수사는 특정 관할 사건이 아니다. 가령 조희팔 은닉자금 추적 수사는 피해자가 전국에 걸친 전국단위 수사였다. 검찰은 그런 경찰청 수사 사건들을 관할로 이첩을 요구하면서 방해하기 시작했다.

 

즉, 서울중앙지검은 조희팔 은닉자금 추적 수사를 대구지검으로 넘기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이 사건은 경찰청 지능수사대가 아니라 대구지방경찰청이 맡게 된다. 그러나 대구지역 경찰관은 조희팔 세력과 유착이 됐다는 의혹 때문에 수사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든 수사는 수사관 의지에 달렸다. 경찰청은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관을 대구지방청 수사계 소속으로 보냈다. 공문으로 진행하는 이 인사 과정은 검찰도 파악했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이 신청하는 각종 통신 허가와 계좌추적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공문에는 조희팔 은닉 재산 추적과 유착된 경찰을 잡겠다는 명분이 있었다.

 

대구로 간 수사팀은 조희팔 측근 거주지 아파트까지 특정해냈다. 하지만, 아파트를 압수수색하니 첩보 내용과 달리 측근은 빈곤하게 살고 있었다. 아파트를 뒤지면서 조희팔 사망을 암시하는 간접증거도 나왔다. 경찰청 지능수사대는 2012년 5월 조희팔 사망을 발표한다. 이 발표는 디도스 수사 발표만큼 언론에 집중포화를 맞는다.

 

처음 첩보와 수사 내용이 다르면 수사팀은 철수 지시를 바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부는 사람이 죽어도 돈은 있을 것이라며 은닉자금 추적을 지시했다. 불법 다단계 업자들은 통상 차명계좌를 사용한다. 모든 단서는 조희팔 주변인 진술에서 시작된다.

 

“내가 통장 빌려서 준 적 있다.”

 

수사팀은 본인 동의를 받아서 계좌들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장을 받아서 상대 계좌를 다시 열어본다. 수사팀은 대구에서 계좌추적 영장을 수십 차례 받아내며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조희팔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흘러 들어간 계좌 가운데 한 검사 이름이 등장한다. 검사는 조희팔 쪽에서 넘어온 자금으로 유진기업 주식을 샀는데 그 계좌에 입금한 사람들은 모두 특수 3부 검사였다. 이 가운데 한 명이 조희팔 쪽 수표를 검사 계좌에 입금한 것이다. 그 검사 이름이 김광준이다.

 

김광준은 고교 동창이면서 조희팔 측근인 강태용에게 받은 수표로 주식 투자를 한 것이다. 조희팔 자금 일부가 부장검사인 김광준 차명계좌로 흘러간 것이다. 수사관 30여 명이 차명계좌에 입금 한 사람들을 동시 조사하고자 전국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경찰 수사 정보가 언론에 새 나가면서 검찰이 직접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김수창 특임검사를 지명했다. 특임검사제도는 2010년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이 불거지자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이 검찰이 자정 능력을 강화하겠다며 들고 나온 개혁(?) 조치다.

 

검찰은 무엇보다 검사가 경찰에게 조사받는 선례를 남기지 않는 게 중요했다. 특임검사팀은 김광준 검사를 구속시키면서, 총 10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김광준 검사 개인 비리 차원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들은 황운하가 수사기획관이었기에 타깃이 김광준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 진행하는 ‘윤우진 용산세무서장 뇌물 수수 의혹’ 사건 또한 황운하가 뒤를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사건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 모 교수와 관련된 뇌물 첩보에서 시작된다. 당시 학과 학생 절반이 이 교수에게 불법 레슨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다른 첩보를 얻는다. 바로 이 교수에게 돈을 바친 학부모 김 모 씨가 윤우진 세무서장에게 뇌물을 건넨 정황을 잡아낸 것이다.

 

김 씨는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서 육류 수입 가공업자로 일했다. 매출이 큰 사업체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자기 사업체를 나누는 방식으로 매출을 줄이기도 한다. 이런 편법 사용 여부를 관할 세무서가 모를 리가 없다. 이를 눈감아달라는 뜻에서 관할 세무서장에게 로비를 할 이유가 생긴다. 김 모 씨는 윤우진 세무서장이 골프를 칠 때, 본인 카드로 비용을 결제를 해줬고 검사들도 함께 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범죄정보과에서 생산한 정보를 바탕으로 경찰청이 수사할지 지방청으로 보내야 할지 판단하는 주체가 수사기획관이다. 이 정보는 서울청 광역수사대로 넘어간다.

 

김모 씨 카드 결제 내역을 살펴보면 언제 골프를 쳤는지 알 수 있다. 보통 자기 이름으로 예약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각 골프 부킹 명단과 골프장 내 CCTV만 확인하면 된다.

 

간단한 사건이다. 하지만 검찰은 골프장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명분은 인권 보호였다.

 

경찰은 당시 윤우진 세무서장 통화기록을 갖고 있었다. 골프 치는 당일, “지금 누가 먼저 도착했어?”와 같은 대화가 전화로 오갔을 것이다. 기지국 위치를 근거로 톨게이트를 통과했을 차량을 특정해냈다. 그러나 차량 번호로 정확한 부킹 명단을 확인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해 검찰은 골프장 압수수색 영장을 6차례나 기각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는 여름에 윤우진을 불러 조사를 했다.

 

수사관은 조사를 끝마칠 즈음 외국에 나갈 계획이 있는지 확인했다. 윤우진 세무서장은 성실히 수사에 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사관은 당부했다.

 

“혹시 외국으로 나가려면 사전에 저희에게 꼭 말씀해야 합니다.”

 

2012년 8월 30일, 윤우진 세무서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해외로 도망친 것이다. 도피 전, 윤우진 세무서장은 대포폰으로 검사 여러 명과 수시로 통화를 하곤 했다. 누군가로부터 코치를 받은 흔적이 짙었다.

 

윤우진이 해외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경찰 쪽에 쓴 '빽'이 황운하로 인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사건 수사 관계자는 이를 “황운하 공이 크다”라고 표현했다.

 

윤우진 세무서장은 사회 전방위 분야에 힘 있는 인맥을 갖고 있었다. 경찰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당시 수사기획관인 황운하도 ‘빽’ 쓰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황운하는 그럴수록 서울청 광역수사대 실무진을 경찰청으로 불러들여 윤우진 수사 상황을 챙기기 시작했다. 진행 상황을 자세히 듣고 부족한 사항은 보완을 지시했다.

 

윤우진은 친한 경찰 고위직 인맥을 통해서 수사에 힘을 빼려는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윤우진 입장에서는 시간을 끌 수 있는 방법으로 해외도피를 택했을 것이다. 시간을 끌면 경찰 인사철이 다가올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2012년 11월 황운하는 결국 수사기획관에서 물러났고, 수사와 상관없는 보직으로 밀려났다. 당시 경찰청장 김기용은 황운하에게 부담스러운 심경을 털어놓았다고 했다.

 


 

2012년 말,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2013년 3월 김학의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이 터졌다. 정권은 권력층 수사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이 수사에 관여한 경찰들은 수사부서에서 배제됐다. 인사가 조직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경찰 수사기능은 그렇게 와해됐다.

 

황운하 수사기획관이 떠난 후, 박근혜 정권 하에서 권력층 비리 수사를 이어갔던 한 경찰은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조직에서, 저에게 전화해서 열심히 하라고 끝까지 격려해준 사람은 황운하와 조현오. 나머지 대부분은 전화해서 뭐라 하고 욕하고…”

 

(마지막 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글쓴이 : 서형 seohyung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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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조현오 전 청장(이하 호칭 생략)은 차명계좌 발언으로 많은 사람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겼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출소 후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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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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