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제복 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2011년 10월 22일 오전 조현오는 전날 밤 인천 길병원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을 보고받는다. 장례식장 앞에서 조직폭력배끼리 단순 충돌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일 저녁 SBS 뉴스는 전혀 다른 영상을 내보냈다. 화면에서는 인천 조폭 130여 명이 도심 한복판에서 칼부림을 하고 있었다. 조현오는 허위·축소 보고를 받은 것이다.

 

격노한 조현오는 감찰과장에게 바로 전화했다. 경찰청 감찰팀은 인천남동경찰서 사무실 CCTV를 면밀하게 살폈다. 112 신고 접수가 되자 경찰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파악했다. 조사가 끝난 23일 인천남동경찰서장이 직위 해제됐다. 남동서 형사과장, 강력3팀장, 상황실장, 지구대 순찰팀장 등도 중징계를 받았다.

 

조현오는 “경찰이 조폭에게 위축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질책했다. 이에 현장에 출동한 강력3팀장이 반박하는 글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게 외부로 공개됐다.

 

‘저는 사무실에 있다가 상황실 연락을 받고 테이저건 등 장비를 챙겨 장례식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중략) 저는 현장 책임자로서 동료 직원과 더불어 흉기를 소지한 범인을 제압하고 피해자를 구조 후송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하 생략)

 

경찰 주장은 이렇다. 상황실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했고 조폭이 집결하자 경고 방송을 보냈다. 형사 5명이 칼부림을 한 가해자를 제압했고 집결한 조폭과 대치했다. 칼에 찔린 피해자를 후송하고 사건 현장을 채증 했다. 그런데 SBS가 형사를 조폭으로 잘못 보도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에 경찰청 감찰팀이 반박했다. 경찰이 아무리 활약했다 해도 초동 대응 실패를 덮을 수 없다고 했다. 2011년 10월 21일 현장 상황은 어땠을까.

 


 

인천 폭력조직인 크라운파 조직원 부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빈소가 인천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이어 빈소에 인천 조직폭력배들이 문상을 오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신간석파 K 씨와 크라운파 L 씨가 만났다. L 씨가 K 씨를 향해 빈정거린 게 발단이었다. 각자 자기 조직원을 소집하면서 장례식장이 소란스러워졌다.

 

 

10시 18분 1차 112신고가 접수됐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장례식장 엘리베이터 앞에 몰려 있다는 내용이었다. 인천남동경찰서 강력반과 상황실이 동시에 신고를 접수했다. 조폭은 지구대 파출소 경찰은 겁을 내지 않는다. 조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경찰은 강력계 조폭 담당 형사다. 하지만, 최초 신고 당시 강력팀 형사는 출동하지 않았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쪽은 구월지구대 순찰차였다. 순찰차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며 그냥 사태를 지켜보기로 한다.

 

10시 51분 조폭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싸운다는 2·3차 신고가 들어온다. 순찰차가 추가로 도착했다. 지구대 순찰팀장은 조폭끼리 싸움에 지나치게 관여하지 말 것을 지시한다. 현장에서 순찰차 두 대가 철수한다.

 

11시 18분 조폭들이 싸우니 빨리 와 달라는 4차 신고가 접수된다. 11시 45분에 출동한 인천남동경찰서 형사 5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100여 명이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다. K 씨가 L 씨를 흉기로 찔렀고 형사들이 K 씨를 제압했다.

 

조현오는 사건 현장에 형사 5명만 있었다는 사실에 격노했다. 집단폭력 대처 매뉴얼에는 사건 발생 즉시 관할 서장에게 보고해 초기에 경찰을 집중 투입하여 전원 검거하도록 돼 있다. 출동 인원만으로 제압하기 어렵다면 상황실에 기동타격대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관할 경찰서 인력으로 진압이 어렵다면 지방청에 요청할 수도 있다.

 

지방청은 폭력계와 광역수사대를 운영한다. 폭력계는 폭력조직을 수사·관리하며, 광역수사대는 경찰서 2개 이상이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고자 만든 것이다. 조현오는 활용 가능한 경찰력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 채 공권력이 무력한 모습을 보인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대대적인 감찰이 진행됐다. 감찰 결과 강력3팀장은 형사과장에게 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팀장이 과장에게 상황 보고를 했다면 맡은 임무는 다한 것이다. 강력3팀장에 대한 징계는 일단 거두게 된다.

 


 

조현오는 폭력조직과 전쟁을 선포한다. 조폭에게 인권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했고 조폭이 폭력을 행사하면 총기라도 과감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10월 30일 자 ‘조현오 경찰청장의 처신 경박하고 무책임했다’는 사설을 통해 조현오가 ‘조폭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1990년대 형사과장 시절부터 총기 사용 발언을 했다.

 

조현오는 1990년 부산에서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부산은 해운대와 항만이 있다. 항만은 마약이 들어오는 통로이며 마약과 조폭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여름 치안 로드맵 중심에는 해운대가 있다. 돈과 사람이 몰리는 곳에도 조폭은 있다. 부산 최대 폭력조직은 ‘칠성파’였다.

 

조현오가 형사과장이던 때도 ‘조직 폭력과 전쟁’은 한참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형사들 사이에는 총을 던져서 범인을 검거한다는 한탄이 떠돌았다. 검거 과정에서 총을 쏘면 손해배상과 감찰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기에 칠성파 두목 이강한을 비롯해 간부급 조폭이 구속된다. 그렇다고 조직이 와해된 것은 아니었다. 이강한은 1999년에 출소한다. 그 사이 신흥 조직인 ‘신20세기파’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칠성파와 영역 다툼이 본격화됐다. 유흥업소 등을 놓고 벌인 주도권 다툼은 1992년 7월 칠성파 조직원이 20세기파 간부를 살해하면서 불거졌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가 소재로 삼은 사건이다.

 

2006년 1월 신20세기파가 보복에 나섰다. 부산 내 반 칠성파 세력을 규합해 60여 명이 흉기를 들고 칠성파가 모인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 난입했다.

 


 

이 사건 이후 2년이 흐른 2008년 조현오가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온다. 조현오는 경찰에게 조폭 검거 과정에서 위협을 느끼면 과감하게 쏘라고 지시한다. 일선 경찰에게는 놀라운 발언이었다. 한 경찰관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누가 책임지겠다고 하나요? 주변에 다 책임 안 지려는 사람들뿐인데….”

 

당시 이강한이 부산에 있는 한 호텔 사우나에서 목격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조현오는 부산지역 사우나에 조폭 출입을 금지했다. 전신 문신은 일반 시민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어서 경범죄 처벌 사유가 됐다. 형사들은 목욕탕에서 나오는 조폭에게 5만 원 과태료 스티커를 건네며 사우나에 오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사우나에 조폭을 출입금지 하는 조치는 이전 부산 청장들도 했던 단속 방법이었다. 하지만, 조현오는 두 가지 면에서 달랐다. 총기 사용과 더불어 조직 자금줄을 추적해 차단한 것이다. 조폭은 오락실 수익금 상납금을 바탕으로 조직을 관리했다. 다른 자금 확보 방법으로는 백일잔치, 돌잔치, 환갑잔치, 고희연, 생일잔치 등을 활용했다.

 

 

 

잔치는 보통 호텔에서 열렸고 조폭은 관할 구역 영업소 사장에게 초대장을 돌렸다. 형사들은 하객을 대상으로 참석 경위와 강압 여부를 조사했다. 조현오는 조폭 행사는 경찰이 확실하게 관리하겠다고 선언했다.

 

호텔에서 행사를 하더라도 민간인처럼 조용하게 할 것을 요구했다. 건장한 남자가 깍두기 머리에 검은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90도 각도로 절하는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조현오는 조폭들이 위력을 과시하면 공권력을 발휘했다.

 

행사에는 부산지방청 광역수사대, 강력수사계, 폭력수사계, 기동대, 관할 경찰서 강력팀 형사 등을 배치했다. 조현오는 조폭을 상대하면서 일선 경찰서, 지방경찰청 단위로 분산된 형사 인력으로 효율적인 관리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경찰 조직 내 최강 부대인 경찰 특공대를 호텔 행사장에 투입했다. 경찰특공대는 일선 경찰관들이 버거워하는 일들, 가령 조폭이 집단으로 흉기를 휴대해 진압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 지방청장 허가를 받아 출동한다. 조현오 지시를 받고 출동한 특공대원은 어떤 일을 했을까.

 

경찰특공대는 조폭이 타고 온 차를 검문하기 시작했다. 차 안에 칼이나 야구방망이 같은 흉기가 있는지 확인했다. 경찰직무집행법에 따르면 도검류는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된 도검류에는 레이저로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다.

 

 

조현오는 다른 청장에게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언행이 있었다. 한 참여정부 인사는 경찰청장 시절 조현오 언행을 언급하며 ‘또라이’라고 비난했다. 2011년 1월 불거진 ‘함바 비리’ 사건에서 조현오가 취했던 방법도 이전 경찰청장들과는 전혀 달랐다.

 

(다음 14화-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서형 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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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2화. 장자연 사건

 

 

필자가 다시 조현오를 만난 곳은 서울시청 근처 코리아나 호텔 식당이었다. 이곳에서 조현오는 경찰청장 시절 당시 청와대 ◯◯ 수석과 언쟁이 있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칠 때쯤 <나꼼수>에서 주진우 기자가 망쳤다고 주장한 사건이 떠올랐다.

 

“여기 왔으니 안 물어볼 수 없네요.”

 

2009년 ‘장자연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경기지방경찰청장이 바로 조현오다.

 


 

2009년 3월 7일 배우 장자연 씨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시 결과 타살 혐의점은 찾지 못했다. 경찰 결론은 ‘우울증’으로 말미암은 자살이었다.

 

연예인 자살로 마무리될 사건은 매니저 유장호 씨가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문건은 소속사 대표 김 씨가 성접대를 강요한 정황을 드러냈다. 장자연 씨 유족은 매니저 유장호 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더불어 소속사 사장 김 씨 등도 고소했다.

 

조현오는 “경찰 자존심을 걸고 철저히 수사하겠다”라고 밝혔다. 자살로 매듭지은 사건을 재수사하기 위한 본부가 분당경찰서에 설치됐다. 실력이 출중한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장까지 투입됐다.

 

사람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문건에 나온 ‘조선일보 방 사장’이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코리아나 호텔 방용훈 사장’, ‘스포츠조선 부사장 방성훈’ 등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방 사장은 그저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성매매 혐의는 증명되지 않았고 당연히 처벌도 없었다. ‘부실 수사’라는 딱지가 붙기 시작했다. 한 정치인은 ‘장자연 사건’ 진실을 은폐하는 주도자로 조현오를 지목했다. 조현오가 이 사건에서 주목했던 것은 뭘까.

 

“장자연 변사 사건 수사에서 핵심이 뭘까요?”

 

“자살이냐 타살이냐?”

 

“그렇지요. 타살 혐의가 없으면 경찰은 자살 동기까지 반드시 밝혀야 하는 부담은 없어요. 게다가 장자연 씨가 죽은 상황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가 혐의를 부인하면 진술 신빙성을 어떻게 밝혀내요?”

 

경찰은 국내 언론 보도 행태에 나름 불만이 있다. 경찰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내용을 극성스럽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찰이 장자연 사건 수사가 부실하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현 오니까 그 정도 밝혀낼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당시 장자연 씨 소속사 대표 김 씨는 일본에 있었다. 김 씨는 이미 2008년 12월 일본으로 출국했고 사건이 터지자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용의자가 경기지방경찰청 관할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 씨를 어떻게 잡아들여야 할까.

 

결국, 일본 경찰 손을 빌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외국 경찰 힘을 빌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 방법으로 국제기구인 인터폴(Interpol)을 거치는 방법이다. 경찰청 외사국을 통하면 되는데 역시 시간을 제법 들여야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시간보다 더 큰 문제가 따로 있다. 어느 나라 경찰이든 우선순위는 자국 범죄다. 일본 경찰이 한국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인터폴로 수배가 들어온 범죄 사안이 살인이나 국제적 사기 혐의도 아니다. 김 씨에 대한 혐의 내용은 ‘강요와 상해’다. 일본 경찰이 신경을 곤두세울 만큼 시급한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두 번째 방법이 바로 주재관을 통하는 것이다. 주재관으로 나간 한국 경찰이 평소 일본 경찰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이럴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사건 용의자를 빨리 검거할 수 있도록 일본 경찰 관심을 끄는 게 주재관 역할이다. 김 씨를 잡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2009년 3월 30일 경기지방경찰청은 외교부에 여권 반납 명령을 의뢰했다. 김 씨를 불법체류 신분으로 만들어 압박하는 것이다. 결국, 김 씨는 6월 24일 일본 도쿄에 있는 P호텔에서 붙잡힌다.

 

지휘관이 모든 내용을 꿰뚫고 지시하는 것과 아랫사람이 파악한 내용대로 끌려가는 것은 차이가 크다. ‘장자연 사건’은 전자였다. 지휘관이 외무고시 출신으로 외사경찰 업무에 능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무고시 출신이 무슨 이유로, 어떤 방법으로 경찰에 온 것일까?

 


 

조현오는 어릴 적부터 제복을 동경했다. 까만 경찰복을 입고 금테 두른 모자를 쓴 부산 동래경찰서 직원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당시 조현오가 고등학생 시절 즐겨 본 연재만화에서 경찰서 형사과장은 권력의 정점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가정 형편 때문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다. 1981년 외무부 근무를 시작한 조현오는 그곳에서 선배인 허준영을 알게 된다. 88 올림픽을 계기로 경찰은 ‘국제화’를 위해 외무고시 출신을 수혈하고자 했다. 이때 조현오는 특채로 선발된다. 허준영은 그보다 앞서 경찰로 자리를 옮겼다.

 

경찰서 계급 구조는 ‘순경-경장-경사-경위-경감-경정-총경’이다. 고시 출신은 교육을 거쳐 경정으로 시작한다. 즉 형사과장, 생활안전과장, 경비과장 같은 참모 역할이다. 하지만, 지방청으로 가면 직급은 한 단계 낮아진다. 일선 지방청 계장급은 경정이다. 총경은 일선 경찰서에서는 ‘서장’이지만 지방청에서는 참모인 ‘과장’이 된다.

 

경찰대와 간부후보생 출신은 ‘경위’에서 시작한다. 조현오는 간부후보생 39기와 함께 교육을 받았다. 실습교육 장소는 부천경찰서였다. 부천경찰서 형사계장(경감)은 조직폭력배를 상대하다 무릎에 남은 흉터를 보여주곤 했다.

 

당시 조현오는 저런 멋진 형사보다 한 계급 위로 갈 수 있어 뿌듯했다. 19년 뒤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다. 조현오를 가르쳤던 형사계장은 장자연 사건에 투입된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장으로 만나게 된다.

 

조현오 첫 보직은 부산 금정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이었다. 직원들은 외무고시 출신 과장이 신기했다. 사실 경찰 입문 교육을 받을 때부터 고시 출신에 대한 대접은 남달랐다. 그리고 그 후로도 조직 내 출세 가도를 달렸다.

 

조현오는 자신이 좋아서 경찰을 선택한 만큼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경찰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조현오에 대한 직원들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이 같은 평가는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이 한몫을 했다.

 

한 지방청에 근무하는 과장이 들려준 경험담이다. 이 과장은 조현오 청장과 일을 하면서 초반에 눈 밖에 났다.

 

“보고서를 들고 가니 왜 들어오느냐고 바로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계장과 광수대장을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내 보고는 받지 않겠다는 뜻이었지. 다른 두 명에게 보고를 받는데 너무 민망하고 부끄럽고….”

 

이후에도 조현오가 직원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장면은 종종 목격됐다.

 


 

반대로 서울구치소 수감 중에는 어쩌다 마주친 해고노동자들로부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들었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운동시간에 무심코 지나가다가 조현오 어깨를 살짝 건들기라도 하면 그 사람에게 경고를 보내는 이가 있었다.

 

“운동시간에 젊은 사람이 다가와서 깍듯이 인사를 하더라고요. 같이 목욕하기 전에는 그냥 예의 바른 젊은이인 줄 알았지요.”

 

그는 조폭이었다.

 

역설적으로 조현오는 경찰 시절 조폭을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부산청장 시절 조폭이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을 막았고 자금줄도 차단했다.

 

부산청장 시절 “조폭이 흉기를 들고 공격하면 내가 책임질 테니까 총으로 쏴버려라.”란 발언을 한 것도 그였다. 그런 그에게 조폭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현오 청장님을 제일 좋아하고요. 두 번째는 김석기 청장입니다.”

 

조현오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한참 생각하다 “화끈한 사람을 좋아하나”라며 되묻는 정도였다.

 

조현오는 경정으로 입문하여 20년 만에 경찰청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외무고시 출신이고 명석한 사람이다. 그를 결국 감옥으로 보낸 ‘차명계좌’ 발언도 우발적이라기보다 충분히 계산하고 한 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강할수록 고위직 인사의 능력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실력보다 눈치, 아부에 능해야 고위직을 차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조현오 역시 그런 의심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어떻게 경찰청장까지 올랐을까. 경정에서 치안총감까지 5개 관문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글쓴이 : 서형 seohyung224@gmail.com

 

(다음 3화-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 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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