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2012년은 선거가 많았다. 4월 11일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 12월 19일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선거 기간에는 현수막 훼손이나 선거운동 방해 같은 일로 고소나 고발이 잦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는 선거 관련 사건 수사를 총괄한다. 당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장(현 수사과장)은 총경 김헌기다.

 

대선 일주일 전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사안이 급박해 김헌기 과장이 수사를 지휘했다. 그는 곧 국장에게 건의했다.

 

"국장님, 신고 내용이 인터넷 댓글을 단다는 것입니다. 단체로, 댓글부대가 댓글을 단다는 것입니다. 사이버 선거운동 아닙니까? 이것은 사이버 쪽 업무지 저희 업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초기에 출동해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이제부터 전문성 있는 사이버에서 사건 업무를 전부 맡아서 해야 합니다."

 

그러자 담당 과장이 자기들 업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국장도 김헌기 과장이 맡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사안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누구 업무를 따지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김헌기 과장은 국장에게 다시 건의했다.

 

"좋습니다. 그럼 수사를 하다가 댓글이 나오면 이건 사이버에서 해야 합니다."

 

12월 13일 서울지방경찰청 증거분석팀은 김 씨 노트북 등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댓글이 나왔다. 김헌기 과장은 다시 국장에게 건의했다.

 

"댓글 나왔으니까 사이버가 맡으십시오."

 

그러자 담당 과장이 엉뚱한 얘기를 했다.

 

"지금까지 지능에서 다 했는데 일관성 있게 다 하셔야지요."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서울청은 여론과 검찰에 초토화됐다. 경찰청 댓글 수사 업무 담당자는 2013년 국회 국정조사와 안전행정위원회에 불려 다니며 면박을 당했다.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은 국회의원들에게 '이상한' 청장으로 불리는 수모도 당했다.

 

경찰 간부들이 검찰이 제시한 분석실 CCTV가 사실과 다르다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야당(민주당) 의원들로부터 검찰 수사 결과에 반항한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해 말, 고위직 인사가 진행됐다. 동기생 강신명은 치안정감인 서울지방청장으로 갔다. 강신명은 서울청 경무부장과 대통령실 치안비서관실 코스를 밟아서 승진이 빨랐다. 동기생 송무빈은 그해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김헌기는 2014년 1월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장(현재 형사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력범죄, 폭력, 마약, 조직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정부는 사건 원인으로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을 지목했다. 4월 20일 유병언 검거를 위한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이 구성됐고 경찰청에 검거 협조공문이 온다. 그러면 이 공문을 담당부서가 접수해 처리해야 한다. 당시 유병언 죄명은 '업무상 횡령'이다. 보통 특수부에서 온 업무상 횡령 범죄는 지능범죄과장이 담당한다. 하지만 정작 지능범죄수사과장 다른 얘기를 했다.

 

"검거 관련은 형사과지요."

 

김헌기는 국장 앞인데도 정색을 하고 언성을 높였다.

 

"이 사람아!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죄명 별로 협조해야지. 너희들이 해야지 왜 형사과에 미루려고 해? 이건 검찰 강력부가 아니잖아. 검찰 특수부야! 그리고 죄명도 업무상 횡령! 그런데 왜 우리 형사에서 해?"

 

순간 회의실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후 회의마다 지능범죄과장은 국장에게 유병언 추적 관련 보고를 했다. 국장은 그때마다 김헌기 형사과장을 계속 쳐다봤다. 눈빛이 보내는 의미는 하나였다. 결국 김헌기는 국장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병언 검거는 실패했다. 6월 12일 전남 송치재 휴게소에서 2.5km 떨어진 매실밭에서 변사체가 발견된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다. 그는 유병언이었다.

 

최재경 인천지검장에 이어 이성한 경찰청장까지 부실 수사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박근혜 정권은 이성한 청장 후임으로 강신명을 임명했다.


 

 

그 해 송무빈은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장으로 발령 났다. 2016년부터는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을 맡았다. 서울청 경비부장은 그래서 1~2년 내로 승진이 보장되는 자리였다. 노동 강도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2015년은 세월호 1주년 추모 집회부터 연말까지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까지는 탄핵 관련 촛불집회 관리를 했다. 다시 대통령 선거 일정이 잡히자 19대 대선 경호·경비 등을 송무빈 경비부장이 담당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조국 서울대 교수는 4년 전 문재인 후보가 집권했다면 나라가 이렇게 됐겠느냐며 유세를 펼쳤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송무빈 업무성과는 계속해서 최우수(S) 등급이었다. 그 사이 경찰청장은 강신명에서 이철성, 그리고 민갑룡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승진 소식은 없었다.

 

2018년 4월 송무빈은 업무 과로로 한쪽 귀가 아프기 시작했다. 송무빈 부장은 민갑룡 청장에게 승진시켜줄 게 아니면 다른 보직으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치안감 승진에서도 제외됐다.

 

송무빈 부장은 11월 29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청와대가 치안감 승진에 밀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자신에게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백남기 농민 사태' 책임을 물었다고 주장했다. 송무빈 부장은 기자회견 직후 사의를 밝혔다.

 

물론 김헌기도 치안감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어떤 조직에서든 누구든 자기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런 상황을 피하려 애쓰며 그러는 게 현명하다. 얽히는 게 없으면 인사에 불이익을 당할 일도 없다.

 

왜 김헌기에게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는 일을 피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짧게 말했다. 남은 경찰 인생도 충실히 채워서 명예롭게 퇴직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헌기 경찰 인생은 경찰 지능수사 그 자체다.  그러나 2015년 경찰청 수사기획관 이후로 김헌기 보직은 수사를 자주 접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경찰 입직 후 지능수사에 다가가기도 순탄치 않았다.

 


 

어릴 적 순경이던 아버지 근무지를 따라 가족도 전국 각지를 떠돌았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살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1979년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대가 생긴다더라. 너는 무조건 경찰대를 들어가라."

 

김헌기는 1982년 경찰대 2기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경찰대는 군사학교 같았다. 1기 선배들이 주는 단체기합은 고단함을 더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경찰대를 졸업하면 군 복무 대신 기동대 생활을 했다. 집회 현장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민과 마주한 채 날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시민에게 욕먹을 때마다 경찰대를 왜 입학했나 자괴감이 들었다.

 

 

경찰대 출신은 경위에서 시작한다. 김헌기는 경감이 돼서도 경비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하루 12시간 대기하는 게 일상이었다. 아무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갈등이 많았다.

 

 

1993년 4월 구로경찰서 방범계장으로 발령받았다.

 

방범계장은 지금은 생활안전계장에 해당한다. 주 업무는 순찰을 돌며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다. 구로는 광명과 부천 경계로 강남순환도로와 내부순환도로가 지나간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 탓에 도둑과 강도가 들끓었다. 순찰로 범죄를 예방할 수는 없었다. 가장 좋은 범죄 예방법은 형사계가 도둑과 절도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서장은 김헌기를 무조건 질책했다.

 

이듬해 서장이 바뀌었다. 김헌기는 새로운 서장에게 고충을 털어놨다. 경찰대학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근무 이력을 나열하며 경비와 생활안전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는 정말 수사를 하고 싶습니다. 서장님 저를 수사부서에 보내주십시오."

 

"너는 무조건 한 우물만 파! 경비만 계속 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이무영 경찰청장은 경찰 수사역량을 높일 목적으로 조사간부제도를 기획했다. 경찰서에 고소·고발·진정·탄원 형태로 피해 내용이 접수되면 경제팀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불러 신문조서를 만든다. 수사는 조서를 만드는 능력이 기본이다. 상대 진술을 듣고 진술을 종합하는 능력, 증거를 수집하는 능력 그리고 결론을 내기까지 상당한 수사역량이 필요하다.

 

1994년 3월부터 젊은 간부를 대상으로 조사계(현 경제팀) 수사관 교육이 진행된다는 공문이 각 경찰서에 하달됐다. 그렇게 육성한 간부를 방배·서초·강남·송파·강동 등 강남권에 배치하는 게 목적이었다. 김헌기는 무조건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김헌기가 경제팀 수사관 교육을 신청했다는 소식에 서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너에게 무조건 한 우물을 파라고 했는데 넌 왜 안절부절못해서 경력도 없는 놈이 교육 신청한다고 되겠어!"

 

얼마 후 김헌기는 희망대로 수사연수원으로 교육발령이 났다. 그는 서장 면박을 곱씹으며 각오를 다졌다.

 

김헌기는 1994년 7월 서초경찰서 조사계장으로 발령 났다. 김헌기 밑에 조사계 직원은 40명이었다. 이 가운데 절반이 교육을 함께 받은 경찰대 후배였다. 그중에 W가 있었다. 조사계장은 사건 배당과 결재를 맡았다. 김헌기는 결재하기 전에 모든 기록을 읽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노란 포스트잇에 적어 기록에 붙였다.

 

서초경찰서는 1994년 9월 지존파 일당 검거,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등으로 떠들썩했지만 조사계 직원들은 기록에 파묻힌 채 치열하게 세월을 보냈다. 김헌기는 그렇게 태풍 중심에서 4년을 보냈다.

 

1998년 경정으로 승진을 하여 2003년 인천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이 됐다. 오늘날 지능범죄수사대장에 해당되며 인지·기획수사를 하는 곳이다. 원인까지 따져 뿌리 채 뽑는 수사, 몸통을 찾는 수사를 한다.

 

그동안 수사2계장이 되고자 경찰청 로비에 수없이 드나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을 희망자를 생각하면 김헌기에게 큰 기회다.

 

그때부터 총경 승진 전까지 5년 6개월 동안 수사2계장으로 활약했다.

 

김헌기는 처음에 2개 반을 운영했다. 총직원은 10명이다. 수사2계 수사관들은 그 지역에서 나름 베테랑들이다. 이런 수사2계 직원들과 호흡을 맞춘 결과 수사2계가 빛을 발하자 부임하는 인천지방경찰청장들은 임시편제로 정원을 확대했다. 4개 반에 직원은 20명까지 늘어났다. P도 수사2계로 발탁됐다. 수사2계 사무실은 바로 옆에 있는 강력계 공간 벽을 밀어내면서 확장됐다.

 

(다음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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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김헌기를 알게 된 것은 2016년 7월 31일이다.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는 2012년 상황부터 설명해야겠다.

 


 

2012년 당시는 조현오 청장 시절이다. 김헌기는 본청 지능범죄수사과장(현재 수사과장)이었고 지능수사대를 지휘했다. 직속상관이 황운하 수사기획관이다.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신경전이 극에 달했다. 조현오 경찰청장도 나름 호전적인데, 수사기획관에 황운하까지 오면서 검찰 심기를 건드리는 행보가 이어졌다. ‘밀양 경찰 검사 고소 사건’이 출발이다.

 

이 사건은 젊은 경찰대 출신이 2011년 밀양경찰서 지능팀장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당시 지능팀장은 지역 폐기물업체 수사를 하고 있었다. 며칠 후 밀양지청 박 모 검사가 지능팀장을 불러 ‘수사의 정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능팀장은 반문했다.

 

"어떤 점에서 비정도입니까?"

 

검사는 흥분하면서 일어나 욕설을 했다. 지능팀장이 주장하는 검사 발언이다.

 

"이 새끼 너 정신 안 차려. 여기가 어딘 줄 알아? 계장님 이 새끼 피신(피의자신문조서)받으세요. 너거 서장 내 앞에 불러봐? 너거 과장 한 번 불러봐?"

 

검사 말이 다 끝나자 지능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고 나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굴욕감, 자괴감, 모멸감 같은 단어가 스쳤다.

 

사무실로 돌아와 앞으로 대처를 고민했다. 지능팀장은 경찰대 동문 게시판에 사연을 올리면서 검사를 고소할 계획을 밝혔다. 황운하에게도 면담을 요청했다.

 

경찰청은 검사 고소 사건 지휘를 김헌기 수사과장에게 맡겼다. 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배당해 경찰 소환 요구를 세 차례 거부한 박 모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체포영장을 기각했고 경찰 기소 의견도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경찰청 수사에 대응했다. 경찰청 수사 대부분은 특정 관할 사건이 아니다. 가령 조희팔 은닉 자금 추적 수사도 피해자가 전국에 걸친 전국단위 수사다. 조희팔은 3조 5000억 원대 다단계 사기사건 피의자로 2008년 중국에 밀항했다. 조희팔 주요 활동 무대는 대구였고, 대구에 조희팔 관련 수사가 집중됐다. 당시 범죄정보과는 대구에 사는 조희팔 측근이 자금을 은닉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보고를 받은 황운하는 대구지방경찰청이 아닌 경찰청 지능수사대에 수사를 지시했다. 조희팔을 수사했던 대구지역 경찰과 유착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조희팔 은닉 자금 추적 수사도 대구지검에 이송지휘를 내린다. 그렇게 되면 사건은 경찰청 지능수사대가 아닌 대구지방경찰청이 맡는다. 모든 수사는 수사관 의지로 결정된다.

 

김헌기 수사과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관을 대구지방청 수사계 소속으로 인사이동을 시켜 수사하게 한 것이다.

 

 

이때 수사관 X가 파견된다. 이런 과정은 공문으로 진행되므로 검찰도 파악 가능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이 신청하는 각종 통신 허가와 계좌추적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공문에 적인 발령 이유가 조희팔 은닉 재산 추적과 유착 경찰을 잡겠다는 명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 명분과 결과가 같을 보장은 없다.

 

당시 첩보에는 조희팔 측근이 거주하는 주소나 연락처가 없었다. 그래서 대구로 갔던 수사팀은 주변인 전화번호를 추적해 대포폰을 특정했다. 그 대포폰에 나오는 세탁소, 택시 번호를 추적해 다시 거주지인 아파트를 특정했다. 하지만 아파트를 압수 수색하니 첩보와 달리 살림이 빈곤했다. 대신 아파트를 뒤지면서 조희팔 사망을 알리는 간접증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찰청 지능수사대는 2012년 5월 조희팔 사망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발표는 디도스 수사 발표만큼 언론에 집중포화를 맞는다.

 

수사관 X는 처음 첩보와 다른 수사 결과가 나왔기에 김헌기 과장이 철수 지시를 내리길 바랐다. 하지만 김헌기는 사람이 죽어도 돈은 어디 있을 것이라며 은닉 자금 추적을 지시했다. 김헌기가 수사지휘를 끊임없이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 친구들에게 지시하면 진척이 나오니 시키지. 못하겠다, 안 되겠다 하면 어떻게 시켜. 기본적으로 수사 역량과 의지, 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봐.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수사관 X가 그런 게 대단해. 내가 시키지 않은 것도 현장에서 판단해 성과를 내더라고."

 

불법 다단계 업자들은 통상 차명계좌를 사용한다. 대구에서 수사팀은 계좌추적 영장을 수십 차례 받아내며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그리고 조희팔 오른팔인 강태용에게 받은 자금 일부가 김광준 차명계좌로 흘러간 것을 포착한다. 강태용은 이미 2008년 말 조희팔과 중국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대구로 파견된 지능수사대 수사팀은 끈질길 수사를 바탕으로 정제된 보고서를 완성했다. 이때까지  김헌기는 황운하에게 보고를 잘하지 않았다. 김헌기는 황운하와 달리 철저한 실무형이다. 황운하가 언론에 터트릴까 봐 수사 기밀은 극도로 신경 썼다.

 

하지만 결국 검찰은 이 사건을 가로챈다. 한상대 총장은 11월 9일 김수창 특임검사를 지명해 김광준 검사를 검찰에서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2011년 11월 19일 김광준은 구속됐다. 이튿날 11월 20일 황운하 또한  수사연수원장으로 날아갔다. 당시는 조현오 청장이 물러난 후였다. 조현오 청장처럼 호전적인 뒷배가 아니면 조자룡의 칼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김헌기는 계속 수사과장으로 남아 검찰 수사를 지켜봤다. 2012년 말에는 대선이 있었다. 대선 직전에 터진 부패 검사 사건 때문에 각 대선 후보 측에서 검찰개혁, 수사권 조정 공약들이 나왔다. 그렇게 이 사건은 잊혀갔다.

 


 

그 후로 4년 이 지났다.

 

2015년 12월 15일,  7년 동안 도피하던 강태용이 국내에 소환되면서 제2막이 올랐다. 2016년 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광준에게 편지를 받았다.

 

 

김광준은 법원에서 뇌물수수로 징역 7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 대구지검에서 조사받던 강태용이 김광준에게 돈을 빌려줬고 돌려받았다고 진술했다. 김광준은 편지에 2016년 1월 2일 자 강태용 피의자 신문 조서를 첨부했다. 뇌물이 아닌 새로운 증거라면서 재심을 원했다.

 

그러나 재심 신청이 어려운 시기였다. 2016년 검찰은 홍만표·진경준 사건으로 비난받는 시기다. 김광준에게 정공법을 권했다. 언론에 사죄하는 인터뷰를 하고 그래도 억울한 점이 있으니 재심을 요청하겠다고 하면 분위기가 훨씬 더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광준은 억울한 사정을 맞장구 칠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필자가 황운하를 섭외했을 때 김광준은 기절초풍했다.

 

 

2016년 황운하는 충남 아산에 있는 경찰대 교수부장이었다. 당시 <풍운아 황운하>를 집필하면서 그를 만났다. 황운하는 사무실에서 김광준이 보낸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당시 언론에 피의사실 공표를 했다며 황운하를 욕한 부분도 있었다.

 

황운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약해."

 

그래도 황운하는 ‘특임검사는 눈속임 쇼’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해줬다.

 

"김 전 검사가 특임검사를 통해 탈탈 털린 것은 맞다. 되는 것 안 되는 것 깡그리 탈탈 털렸다.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 인터넷 매체에는 김광준 편지 전문이 나가기도 했다. 김광준 처지에서는 자기 억울한 부분만 부각했을 것이다. 어느 날 한 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경찰청 김헌기 수사기획관에게 기사 항의 메일을 받았다며 내용도 보내줬다.

 

<이런 부정부패범 의견을 그대로 수용해 사실인양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에 큰 실망과 더불어 분노를 금치 못한다.>

 

수습하고자 나섰다. 만나기 전에 한 직원이 필자에게 귀띔해줬다.

 

“원래 에어컨에서 냉난방은 한 기계잖아요. 김헌기 씨는 냉방은 잘 되는데 난방이 잘 안 돼요.”

 

처음 김헌기 수사기획관을 만난 날, 꼬장꼬장한 황새 아우라가 그대로 느껴졌다.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눈빛에서 드러나는 분노가 얼굴 전체로 출렁이며 퍼졌다. 김헌기는 파렴치한 부정부패사범이라는 구체적 근거들은 수사사항이라 말할 수 없다며 답답해했다. 필자는 김광준 인터뷰가 경찰에게 유리했다는 점을 들어 다독였다.

 

김광준은 그해 재심청구를 했으나 기각됐다. 당시 김헌기는 끝까지 항의했고 기사에 자신의 주장을 반영시켰다.

 


 

정권이 바뀌고 김헌기는 2018년 인천지방경찰청 3부장으로 재직했다 3부장은 크게 정보과와 보안과를 아우른다. 이 시기 김헌기는 난방 기능을 향상하려고 애썼다. 직원들을 기쁘게 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은 인천3부장실을 방문했는데 김헌기는 책상에서 직원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2018년 12월 1일, <노컷뉴스>에 기사가 뜬다.

 

"1천만 원 인출 시 경찰 출동"... 사생활 침해 논란

 

각 은행은 경찰과 업무협약이 돼 있다. 고객이 찾아와 1000만 원 이상 현금으로 인출하면 은행 직원은 무조건 112 신고를 한다. 신고를 접수하면 즉시 경찰이 긴급 출동해 현장에서 휴대전화 통화 내용 등을 살펴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범죄 연관성을 확인한다. 김헌기가 기사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딱 하나다.

 

'이 지침은 2016년 3월부터 이어졌다'

 

김헌기가 착안해서 전국으로 뿌리내린 이 제도를 겨냥해 기사는 '사생활 침해'를 지적하며 경찰 내부 의견을 인용한다. 분노 지수가 최고치를 경신한 김헌기는 계장에게 바로 지시한다.

 

"내가 글을 써야 하니까 통계 좀 갖다 줘!"

 

한해 총 1854건, 피해액 200억 원이 넘는 인천지역 통계를 바탕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보이스피싱 피해의 심각성을 알면 사생활 침해 운운하지 못한다'

 

김헌기는 페이스북 글을 복사해서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 제3화. 미스터 계장들)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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