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 재판 추적기> 제2화 제 말이 그 말 입니다. (한수찬 시선)
나는 한수찬이다. 나와 김학성, 김형준은 고교 동창이다. 그러나 이들을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다. 김형준은 총동문동창회에서 몇 번 보기만 했다. 보통 45~50명 정도 모이므로 김형준은 나를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김형준은 동창회에 잠시 있다가 밀린 업무 처리 때문에 검찰 차량을 타고 돌아갔다.
가까이서 김형준을 접한 것은 김학성 덕분이다. 내가 김학성과 얽힌 것은 2015년 1월부터다. 김학성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나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권했다.
당시 김학성은 KK인터내셔널에 다니고 있었다. KK인터네셔널 대표이사 이문재가 경영을 못해 망할 것 같다며 회사 게임사업부만 빼내 새로운 법인을 설립할 것이라고 했다. 그게 바로 KK게임즈다.
이후 나는 KK게임즈 대표이사가 됐지만 등기만 했을 뿐 회사 전반적인 업무는 김학성이 총괄했다. 나도 김학성 지시대로 움직였다. 김학성이 단골 술집 여직원에게 빌려 준 돈을 회수하는 일도 했다.
KK게임즈는 중국 샤오밍 전자 제품을 국내 거래처에 판매하면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김학성은 샤오밍 전자제품을 국내에서 가장 싸게 팔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국내 업체를 상대로 영업하고 계약하는 일을 담당했다. 국내 거래처에서 현금이 들어오자 매출은 늘었다. 덩달아 직원 회식도 잦았다. 결제는 언제나 김학성 몫이었다.
직원들 모두 김학성 인맥과 재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김학성은 처가 재산도 상당했다. 한 달에 두 번 용돈을 받는데 한 번에 2000만 원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번은 회식 중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왔다. 정치인 김무성이 나오자 김학성이 한마디 했다.
“아, 우리 6촌 형님.”
김학성은 김무성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6촌 형님’이라고 불렀다. 직원들도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삼성 이재용, 신세계 정용진을 언급할 때도 항상 ‘형님’ 호칭을 썼다.
하루는 김학성이 내게 재벌 2세들과 9인회 모임이 있다며 동행을 권했다. 그런데 바로 김학성 일정이 바뀌었다. 모임이 파기됐고 김형준과 셋이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평소 김학성은 김형준을 매우 가까운 사이로 내세웠다.
술집에서 보니 둘은 정말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대화에 깊이 끼어들지 못했던 나는 술 몇 잔 마시고 먼저 일어났다. 다음 날 김학성은 술값을 자신이 냈다고 말했다.
2016년 2월 KK게임즈 사무실 근처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던 김학성은 이런 얘기도 했다.
“김형준이 여자랑 사랑에 빠졌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줬다.”
김학성은 김형준 뿐 아니라 고교 동창에게도 중국에 있는 큰 기업을 언급하며 회사 매출이 100억 원을 넘는다고 자랑했다. 모임에서는 항상 자신이 술값을 계산하려 했다. 동창들도 술값이 김학성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동창 모임을 연 술집이 자신이 투자해 설립했다며 반은 자기 것이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 김학성은 회사 자랑에 끝이 없었다. 하지만, 나타나는 현상은 달랐다. 2015년 중반부터 거래업체에서 물품 납품 지연 항의가 들어왔다. 9월 들어 납품일자에 물품을 받지 못한 거래업체가 선수금 반환을 요구했다. 거래업체 대표가 사무실에 찾아와 항의하면 김학성은 자리를 피하면서 나에게 떠넘겼다.
2015년 12월부터 나는 거래업체 관계자와 회사 근처에서 만나며 계속 이야기했다.
한 번은 김학성에게 돈을 서둘러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김학성은 돈을 벌어야 갚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영업을 독촉했다.
2016년 1월 납품이 장기간 지연되자 업체들 항의가 거세졌다. 김학성은 중국 명절 기간 공백 등을 내세우며 상황을 넘겼다. 2016년 2월 들어서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김학성에게 물품 입고 일정을 계속 물었다. 김학성은 중국 쪽 문제든 국내 통관 절차 문제든 항상 이유는 설명했다. 나는 그 해명을 거래 업체 관계자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김학성은 오히려 거래 업체에 끌려다니지 않는 당당한 영업을 강조했다.
“그 사람들이 매일 찾아와서 괴롭히면 업무방해로 고소해라. 뒤에서 형준이가 봐주는데 넌 왜 그리 겁이 많니?”
2016년 3월 14일 김학성은 다시 내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 형준이하고는 통화했다. 만일 일이 발생하면 서부지검에 업무방해등으로 형사 고소하고 처벌해버리자. 형준이가 나 건드리면 죽여버리자고 한다.
직원들도 회사가 어렵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직원들은 나중에라도 김학성이 회사에 자기 자금을 투여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학성 또한 자기 재산을 거론하며 일부만 대출받아도 해결된다고 큰소리쳤다.
실제 3월 중순부터 거래처 항의가 거세지자 김학성은 거래처 환불 문제를 개인 돈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대신 대표이사인 내가 일처리 잘못으로 회사에 피해를 입힌 모양새를 갖추자고 했다. 김학성은 이사회를 열어 형식적인 권한정지를 결의할 테니 잠시 피해 있으라고 했다.
3월 18일 KK게임즈 이사회가 열렸고 이후 나는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당시 나는 김학성이 잠시 사용하라며 건넨 휴대폰이 있었다. 휴대폰은 로그인이 된 상태였다. 나는 휴대폰으로 김학성 계정 이메일을 볼 수 있었다. 이메일에는 KK게임즈 회사 지출 및 자금 현황 보고서가 있었다. 그 자료를 열어본 순간 나는 김학성이 그려놓은 큰 그림을 알게 됐다.
그 보고서 거래업체에 납품이 지연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김학성은 국내에는 샤오밍 제품을 수입 가격보다 더 싸게 판매하도록 지시했다. 초기에는 외형적으로 회사 매출이 증가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오래 운영할 수 없다.
그러나 13~15개 거래업체에서 30억 원이 넘는 현금을 당길 수 있었다. 김학성은 이 가운데 20억 원 이상을 횡령해 유흥비로 썼다. 김학성은 이 모든 짓을 덮어 씌울 상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제안한 것도 큰 그림 안에 들어 있지 않았을까.
보고서를 보다가 ‘김형준 대여금’으로 두 군데 찍힌 항목이 눈에 띄었다. 2월 4일 500만 원, 3월 8일 1000만 원 등 총 1500만 원이 김형준에게 흘러갔다. 김학성이 김형준에게 돈을 해줬다는 말을 들은 게 2월 초였다. 그 내용을 서류로 직접 확인한 것이다.
나는 3월 26일 이 자료를 들고 피해 규모가 가장 큰 업체인 아스트라를 찾아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는 아스트라에 김학성 고소를 위임했다. 아스트라는 법무법인 로얄에 일을 맡겼다. 일을 진행하면서 김형준 부분은 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스트라는 단호했다.
4월 15일 아스트라와 나는 각각 서부지검에 김학성을 사기와 횡령으로 고소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학성은 자료를 회수하려 아스트라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니 돈을 갚으려면 선수금 더 내라.”
6월 3일 나는 서부지검에 출석해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주임검사가 김형준과 관련된 부분을 물어봤다. 나는 김학성에게 들은 대로 간단하게 진술했다.
당시 김학성은 김형준 검사가 나를 죽일 것이라는 식으로 소문을 냈다. 거래업체에서도 김학성이 뒤에 검찰이 있다는 이야기를 흘리고 다닌다고 했다. 급기야 김형준이 김학성을 위해 서부지검 검사들과 식사를 한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이 당시 나는 극도로 두려운 상태였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기자들에게 언론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했을 정도로 내 방어책이 필요했다.
내가 고소한 이 사건은 결국 두 동창생을 뇌물공여와 뇌물수수로 재판에 서게 했다. 그런데 각각 주장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김학성은 오랫동안 검사 친구 스폰서 노릇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김형준은 과장이라고 받아쳤다. 김형준은 ‘김형준 대여금’으로 표시된 1500만 원도 뇌물이 아니라 빌린 돈이며 갚았다고 주장했다. 둘 사이에 현금이 오간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이 사건을 차분하게 되짚었다.
김학성은 나에게 일시를 정해서 김형준과 함께 만나자고 한 적이 없었다. 늘 당일 갑자기 가자고 했다. 회사 직원들도 나처럼 갑자기 합석하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혹시 우리 회사는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김형준 변호인은 김학성이 말하는 뇌물 부분이 거짓이며 향응 횟수도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나는 김형준 측 주장에 동감하며 회사 자료를 그쪽에 건네줬다. 증거자료 제출에 KK게임즈 회사 직원도 도왔다. 나는 법정에서 자료를 건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김학성은 몇 월 몇 일 몇 시에 김형준을 만났다고 하는데 그날은 저랑 같이 있던 날이거든요. 그런데도 김형준을 만났다고 하니까.”
나는 김형준 변호인에게 김학성이 오랫동안 단골로 다니던 유흥주점 <달> 사장 장미희도 소개했다. 변호인은 장미희에게 장부를 제공받았다. 김학성이 술 마신 날짜와 액수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기에 김형준에게 유리한 자료들이었다. 변호인은 법정에서 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2016년 6월 김형준에게 빌려줬던 1500만 원도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다고 가족을 위해 최대한 마련해야 한다고 하면서까지 그 돈을 받아냅니다. 김학성이 술집 여직원에게도 법무팀 운운하며 돈을 회수할 정도인데 만약에 김학성이 김형준에게 뇌물로 건넨 다른 돈이 있다면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요.”
나는 변호인 말에 동의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내 기억에 김학성은 입이 무거운 편이 아니었다. 심지어 나와 술을 마시다가 대리비 5만 원을 건넨 적이 있었는데 이튿날이면 직원들이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김학성도 가만있지 않았다. 변호인에게 자료를 넘겨준 것을 문제 삼아 나를 서부지검에 고소했다. 유흥주점 <달> 관할 기관에 장부 사본을 근거로 이 주점이 여성 접대부 등을 두고 영업한다고 고소했다. 종업원들이 팁을 받은 내용이 적힌 장부 한 장을 첨부해 종업원들 처벌을 요구했다.
물론 김학성은 KK게임즈 이전부터 김형준에게 향응과 뇌물을 제공했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만난 오강수 씨 구명활동을 위해서다.
당시 둘 사이 일은 나(한수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오강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음 제3화, 앞뒤좌우 완벽하게(오강수 시선)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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