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 재판 추적기> 제3화. 앞뒤좌우 완벽하게 - 오강수 시선.
2010년 김학성은 특가법위반, 사기 등으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때 구치소에서 오강수를 알게 됐다. 오강수는 불법 다단계로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는 자금관리를 여비서에게 맡겼다.
김학성은 당시 합의금으로 거액이 필요했는데 오강수가 그 부분을 도와줬다. 김학성은 UN에 파견 나간 김형준이 돌아오면 출소 후 구명활동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2011년 9월 대검찰청 제2범죄정보담당관으로 복귀한 김형준은 김학성을 소환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범죄정보 제공이었다. 김형준은 나중에 문제 되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요식행위로 뭐라도 하나 써낼 것을 주문했다. 김학성은 A4용지에 허위사실을 작성해 건네면서 친구인 그에게 고마움과 뿌듯함을 느꼈다. 이 검사 친구는 앞으로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학성은 총 9회에 걸쳐 대검찰청 제2범죄정보담당관실에 소환됐다.
아침에 가면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김형준과 이야기했다. 김형준이 보고 때문에 사무실에서 나가면 김학성은 아이패드를 만지거나 스포츠 방송을 보기도 했다.
전화도 자유롭게 썼다. 그렇게 있다가 오후 4시쯤 다시 구치소로 돌아왔다. 김학성은 김형준에게 금전적 지원은 받은 오강수를 소개하며 그도 함께 소환해달라 부탁했다. 김형준은 김학성을 소환할 때 두 차례 오강수도 불렀다. 그 자리에서 김학성은 오강수를 잘 부탁한다며 거듭 부탁했다. 김형준은 가석방 등 김학성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2012년 5월 6일 출소한 김학성은 오강수가 가석방될 수 있도록 돕고자 움직였다. 오강수는 가석방 대가로 금전적 도움을 제안하기도 했다.
출소하고 나서 김형준과 시작한 술자리는 6~7월에 집중됐다. 누가 봐도 향응일 수밖에 없는 접대였다. 당시 출소 직후인 만큼 별다른 수입원이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술값을 낼 능력이 없어 지인 A 씨가 대신 내주기도 했다. A 씨는 나중에 법정에서 당시 술자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김형준이 검사이다 보니 나중에라도 도움을 받고자 계속 접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유가 없을 때도 어쨌든 저에게 술을 먹으면서 제가 계산할 수 있게 같이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자체를 봤을 때는 나중에 도움을 받겠다는 이유밖에 안 됩니다.”
김학성은 매달 오강수를 면회했는데 당시 오강수는 무척 곤란한 상황이었다. 2012년 6월 여비서가 자금을 횡령한 것이다.
오강수는 김형준에게 여비서 횡령 사건을 부탁했다. 오강수 측근은 문자를 보내며 사건 처리를 독촉했으나 김학성 집안에 복잡한 일이 있었다. 부친이 위독했던 것이다.
12월 14일 김형준을 만나려 했던 당일,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김형준은 만사 제치고 오겠다 했으나 거절했고 부친 유언대로 가족장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KK게임즈를 하면서 오강수를 만날 기회가 더 없어졌다. 여기까지가 김학성 진술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오강수 씨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 이름은 오강수. 나는 유사수신범행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 말 구치소에서 김학성을 알게 됐다. 함께 지내다 보면 서로 자기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 마련이다. 나는 밖에 여비서를 두고 불법다단계로 번 돈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김학성은 당시 사기죄로 구속 재판 중이었다.
김학성은 검사인 김형준과 친구라고 했다. 김형준이 검사가 된 직후부터 접대도 하고 용돈도 주면서 스폰서 역할을 하며 관리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런데 김형준이 UN으로 파견되는 바람에 수사 과정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학성은 김형준이 자기 안부를 묻는 이메일 내용을 보여주며 관계를 자랑했다. 둘 사이가 가깝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시 나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형량이 상당히 남았기에 가석방을 받을 요건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 처지에서 검찰에 범죄정보 제공으로 공적을 쌓다보면 가석방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솔깃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검찰이 매력을 느낄만한 정보가 없었다.
반면 김학성에게는 굵직한 범죄정보가 제법 있다고 했다. 자기 계좌에서 수십억이 나간 흔적들을 보여줬다. 김형준 장인인 국회의원 박희태 씨에게 건넨 정치자금이 30억 원 정도 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어느 날 김학성은 종이 한 장에 대기업 비자금 뇌물 사건, 판검사 뇌물 사건, 경찰·국세청 공무원 뇌물 사건을 적어서 보여줬다.
“나에게 이런 사건들이 있으니 김형준이 UN에서 돌아오면 형님이 가석방 받거나 최소한 교도소에서 편하게 지내도록 조치해주겠다”
김학성은 김형준만 UN에서 돌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수차례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제가 재판을 받는 사건에 대한 합의금을 지원해 달라.”
나는 여비서를 시켜서 김학성에게 합의금 수억 원을 전달하도록 했다. 2011년 김형준이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으로 복귀했다. 나와 김학성은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김형준이 근무하는 대검찰청에 두 차례 소환됐다. 부장검사 사무실에서 김학성은 존칭도 쓰지 않은 채 김형준을 ‘김 부장’이라고 불렀다. 김학성은 김형준과 친구인 것을 보여주려 애썼다. 김형준은 별 말없이 업무적인 이야기를 했다. 김형준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김학성이 나에게 말을 꺼냈다.
“김형준 부장이 형님을 위해 가석방을 알아봐주는 중이니까 김 부장에게 직접 들어보세요.”
다시 사무실로 들어온 김형준이 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외국에는 플리바게닝 제도, 즉 범죄정보제공과 관련된 가석방 제도가 있는데 우리는 그런 제도가 없습니다. 다만 수감자가 자기가 아는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향후 가석방에 가점 요인으로 작용하는 제도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설명을 들으면서 김학성에게 믿음이 갔다. 김형준 설명은 제대로 된 범죄정보를 제공하면 가석방을 신속하게 받도록 힘 써주겠다는 취지로 들렸다. 김형준은 고급 범죄정보 제공에 협조를 구했다. 나도 김형준에게 제공할 정보를 하나 준비했다.
‘오강수가 모 국회의원에게 향응과 함께 현금 500만 원을 줬다’.
김형준은 ‘좀 약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전히 나는 김학성 지시에 따랐을 뿐이었다. 소환 전에 김학성은 내게 편지를 보내 얘깃거리를 준비하도록 했다.
‘그날 들어보고 필요하다면 아주 간단히 김 부장 앞으로 진술서 쓸 겁니다. 모양새와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사건화 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나라도 흠 잡히지 않게 하는 조치입니다. (...) 누가 묻지도 않겠지만 혹시 흠이 있어서는 안 되는 주의이십니다. 뭘 하나 하더라도 앞뒤 좌우 완벽하게 하려 하십니다’.
김학성은 2012년 5월 6일 만기출소를 했다. 그 직후 내 비서를 시켜 김학성에게 1000만 원을 송금하도록 했다. 김학성이 가석방, 교도소 이감 등 내 수감생활 편의를 위해 움직여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김학성은 정기적으로 면회를 왔다. 그리고 김형준 이야기를 주로 했다.
“김형준과 맨날 술을 마신다. 용돈도 준다. 형님을 위해서 밖에서 엄청 애쓰고 있다.”
김학성에게 김형준을 만나면 잘 이야기해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에는 내가 변호사법 위반, 사기 등으로 고소할까봐 면회를 충실히 왔던 것 같다. 나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학성 태도를 보면, 김학성이 김형준을 내세워 구치소에서 저와 한 돈거래에 대해서 문제삼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저도 실제로 김학성 친구가 김형준이라는 점 때문에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고소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7월이 됐을 때 김형준에게 부탁할 일이 추가됐다. 내 여비서가 돈을 모두 들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나는 비서를 횡령으로 고소했고, 김형준이 이 사건을 잘 챙길 수 있도록 김학성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2012년 말 김학성 부친이 사망하면서 내 아쉬운 얘기만 할 수 없었다. 김학성이 면회 오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2015년으로 넘어가자 사업이 바쁘다며 면회 오지 않았다.
그래도 오강수 처지에서는 건넨 돈을 고급 범죄정보와 맞바꿨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오강수는 김학성이 건넨 고급 범죄정보를 손에 쥐었다. 오강수는 2010년 말부터 7년 동안 김학성이 종이에 써준 범죄정보 내용을 여러 장 복사해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여러 검찰청에 근무하는 검사들과 담당 수사관들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정보를 바탕으로 실제 수사가 시작된 적은 없었다.
2017년 말 오강수가 재판 증인으로 나왔을 때 김형준 변호인은 그 이유를 알려줬다.
“저거 가짜라는 말 안 하던가요? 김학성은 다 거짓말로 썼대요.”
점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김학성이 오강수 구명활동을 위해 애를 쓴 것은 분명하다. 김학성은 오강수 구명을 위해서 김형준에게 돈을 건넸다고 말했다. 2012년 11월 15일에서 12월 14일 전으로 날짜도 특정 가능했다. 그 이후에 건넨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14일에는 김학성 부친이 돌아가셨고 두 친구는 한 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법정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이 나왔다.
“김학성 부친 사망일은 2013년 10월 21일. 내 기억에.”
이 증언을 한 사람은 KK인터네셔널 대표이사였던 이문재다. 이문재도 김학성 소개로 김형준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김학성은 왜 이 시점에 부친 사망이라는 카드를 꺼내야 했을까? 이제 이문재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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