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2부) 목차

1화 300

2화 이런 수사관은 처음이지? 놀랬다면 미안해.

3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4화 다키스트아워(Darkest hour)

 

 

 

영화 다키스트아워 포스터(2017년작)

 

 

제4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9년 3월 안산에서 부동산 사기 사건이 터졌다.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에게는 월세라고 하고 세입자에게는 전세라고 한 뒤 전세금을 가로챈 사건이다. 피해자가 100명이 넘었다. 경기남부지방청은 부동산 중개업자를 구속했다.

 

김헌기 2부장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문제가 아니다. 유사한 범죄가 있을 거 아냐. 전세금을 유용한 놈이 한두 명이겠냐. 피해자는 젊은 직장인이나 학생들이고 다들 전세금을 엄마, 아빠가 해줬거나 은행 대출해서 마련한 것이잖아. 이건 확대 수사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겠느냐?”

 

“구청과 협조해서 부동산중개업자를 조사하겠습니다.”

 

김헌기는 이것을 도랑 막고 물을 퍼내 고기를 잡는 ‘막고 푸기’식 수사라고 했다. 무식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그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해? 모든 부동산 중개업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경찰이 조사하겠다면 부동산 중개업에서 가만히 있겠냐? 들고일어나지. 대다수는 선량한 중개업자인데 몇 놈 일탈한 놈 잡겠다고 이 잡듯이 뒤져? 그 몇 개 찾으려고 그 많은 수사력을 동원해?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신고를 받는 거야. 신고를 들어오면 수사를 하면 돼 우리는 신고하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만 하면 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대학가와 오피스텔에 ‘부동산 사기 집중신고기간 운영’이라고 홍보 펼침막을 걸었다.

 

신고를 유도하면 범죄 싹을 자르면서 예방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이런 감각은 어떻게 생길까?

 

김헌기는 영화 <다키스트 아워 Darkest hour>에서 처칠 부인이 남편을 위로한 대사를 인용했다.

 

“그 마음의 갈등이 지금 당신을 이렇게 단련시킨 거에요. 당신은 불완전하기에 강하고, 확신이 없기에 현명한 것이에요.”

 

영화 다키스트 아워 포스터(2017년작)

 

 

김헌기는 후배들에게 거듭 말했다. 어려운 과제를 받으면 고민과 갈등이 생기지만 그런 단련을 통해 감각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어쩌면 국민이 흘리는 피와 눈물에 땀과 노력으로 답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김헌기는 2015년 경무관으로 승진하면서 인천지방경찰청 제2부장으로 근무한다. 인천지역 수사와 112 상황실을 담당한다.

 

그해 김헌기 책상에는 상황보고서가 쌓였다. 상황실에서 전날 발생한 범죄 목록을 작성해 내부망에 전파한다. 김헌기가 출근하기 전 이미 부속실장이 이를 인쇄해서 갖다 놓는다.

 

2015년 10월 2일, 인천에서 남자가 전 여자친구를 살해 한 뒤 오피스텔에서 투신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살해된 여성은 이미 그전에 두 차례 112 신고를 했었다. 당일은 남녀가 심하게 다툰다는 이웃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이미 살해된 상태였다.

 

김헌기는 이 사건에서 경찰 대응에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다. 데이트 폭력 대응 기획은 이처럼 상황보고서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상황보고서에서 매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범죄가 있었다. 바로 1997년 대만에서 시작해 2006년 한국으로 건너온 ‘보이스피싱’이다.

 

속여서 돈을 가로채는 방법은 시대와 환경에 맞춰 계속 교묘해졌다.

 

당시 보이스피싱을 예방 방법을 고민하던 김헌기는 은행이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을 착안했다. 피해자가 은행에 가서 거액으로 현금을 찾을 때 은행직원이 경찰에 신고를 해주는 방법이다.

 

인천지방경찰청 2부장 시절에는 인천지역에만 적용했다. 하지만 곧 생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피해자에게 은행 직원과 경찰이 한통속이라며 믿지 못하게 유도한 것이다. 김헌기는 다른 공략법을 찾아야 했다. 결론은 휴대전화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다른 사람과 연락하지 못하도록 휴대전화를 켜놓고 있게 유도한다. 다짜고짜 휴대전화를 뒤졌다가는 민원이 발생한다. 개인 역량이 아니라 조직 시스템으로 걸러야 한다. 김헌기는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경찰이 먼저 시민에게 보이스피싱과 관련해 현금 인출하려는 게 아닌가 반드시 질문한다. 아니라고 대답해도 휴대전화가 통화 중이면 보이스피싱 피해자로 짐작할 수 있다.

 

이듬해 김헌기는 본청 수사기획관이 되면서 이 체계를 전국에 적용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왼쪽),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사진=금감원

 

지금이라도 경찰청에 보이스피싱 전담부서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김헌기는 부정적이다. 보이스피싱 지휘부는 대부분 중국에 있다. 잡아봤자 보병들, 즉 인출책과 송금책이 계속 나타나니 끝이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김헌기 식 해법은 이렇다.

 

“코로나 19 관련해서 국무총리가 대책본부장이 되잖아요. 보이스피싱도 총리가 대책본부장이 돼 끌고 가야 해요. 중국 공안과 공조하는 것도 경찰 혼자보다 외교부가 함께 나서야 더 효과적이고. 금융과 통신 제도를 고쳐야 해요. 안전과 편의는 반비례 관계인데 우리는 편의 위주로 가지요. 금융제도나 통신제도가 편한 대로만 가니까 보이스피싱에게 당해요. 클릭 한 번에 1억씩 날라 가는 게 말이 되나요?”

 

김헌기는 정부가 보이스피싱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본다. 반격 작전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 댓글 작업과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 경찰 중간발표를 심각하게 인식했다. 그래서인지 적폐 청산이 댓글 분야에 집중됐다. 그리고 당시 수사에 참여한 김헌기는 문재인 정부 들어 수사부서와 멀어진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보다 시위집회에 관한 폭넓은 자유가 주어졌다. 정부 철학이 집회시위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면 경찰도 그에 코드를 맞추게 돼 있다.

 

2018년 9월 8일 인천에서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인천 퀴어축제가 열렸고 한편에서는 퀴어 반대축제가 열렸다.

 

2018.09.08.MBC뉴스데스크 방송 캡처

 

반대측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전날부터 무대 단상을 점거하자 결국 경찰이 불법행위로 인한 업무방해로 체포했다. 김헌기가 인천지방경찰청 제3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경찰청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런 의미처럼 보인다.

 

‘무대를 점거한 우리 꽃다운 청년들이 왜 피를 흘리게 해야 하느냐. 불법행위를 해도 집회시위 자유를 누려야 할 너무 소중한 우리 국민이다.’

 

아주 심각한 불법행위가 아니면 체포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채증해서 사후에 처리를 하라는 식이다. 물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고 체포를 하겠는가.

 

그 용의자가 모 단체 깃발 주변에서 뱅뱅 맴돌아준다는 보장도 없다. 현장에서 이런 지침은 ‘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김헌기는 조직 내 지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노총 세가 커졌다. 그리고 기사들이 쏟아졌다.

 

-<건설경기 한파도 무섭지만 건설노조가 더 무섭다.>(2019.5.7.조선일보)

-<노조 등쌀에 치여 더 힘들다.>(2019.4.19. 동아일보)

-<날 풀리자 도진 건설노조 횡포, 크레인 또 날 세웠다.>(한국경제. 2020.3.18.)

 

건설노조 조직체계는 지역본부-지대-분회로 이어진다. 군대에서 대대-중대-소대와 같은 개념이다.

 

기사 내용은 비슷하다. “우리 노조원 써라”는 요구를 안 들어주면 출입구 앞에서 공사를 못하도록 집회를 하거나 노동청에 신고를 한다. 못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면 건설 현장에 안전조치 소홀로 지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구를 안 들어주면 "모델하우스 오픈 첫날 그 앞에서 확성기를 틀고 시위하겠다."는 것이다. 귀가 찢어지는 확성기를 단 승합차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단결투쟁가>가 울려 퍼지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런데도 업체들은 고소고발을 하지 못한다. 건설노조가 전국 조직이므로 집중 타깃을 삼을까 봐 겁내는 것이다.

 

“악질적인 무법 행위가 도를 넘었다”며 급기야 건설노조를 처벌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민노총 측은 "정당한 노동운동이었다"는 주장이고 경찰도 이미 정상적으로 집회 신고를 했기에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2019년 김헌기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2부장 시절이다.

 

화물연대 소속 기사들이 농협물류센터에서 자신들과 계약하지 않자 화물연대 소속이 아닌 기사들 차량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2019.04.20. MBC뉴스투데이 방송 캡처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들거나 돌멩이가 날아와 차량 앞 문에 금이 갈 지경이었다.

 

 

여러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자 당시 김헌기 2부장은 회의석상에서 단발성 불법행위보다 이걸 조종하는 지휘부를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휘부는 호응이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정치인과 여론은 독일과 협상을 원했다. 김헌기는 혼자 전쟁을 외치는 처칠 신세였다. 좌절감만 깊어졌다.

 


 

 

2020년 경무관 6년 차 마지막 해가 됐다. 김헌기는 다시 고향 같은 인천지방경찰청 1부장으로 돌아왔다.

 

여기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건설현장 인근에서 신고되는 집회 대부분이 민주노총에게 함락된 것처럼 느껴진다.

 

20년 전 그는 결코 불법행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수사2계장 시절, 경제팀 직원들과 간담회 자리였다. 직원들 하소연이 쏟아졌다. 재건축 재개발 관련 조합, 컨설팅 업체, 비상대책위원회 등 사이 고소고발 사건 때문에 다른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김헌기는 경제팀은 일반 선량한 사람들의 고소사건에 집중해야 하며, 자기네 이권 때문에 경찰 수사력을 낭비하는 게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겼다.

 

김헌기 수사2계장 지시가 떨어졌다.

 

“각 경찰서 재건축 재개발 사건 고소고발 사건 다 줘봐.”

 

인천지방경찰청 수사 2계로 고소고발 사건들이 모아졌다. 전체 사건을 놓고 보면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시공사에 문제가 있고 어떤 이권 때문에 문제를 삼는 것이 분석이 된다. 악취가 심하게 나는 부분은 수사 2계가 칼을 들이댔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촛불 탄핵 정국 이후 시대는 김헌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 보인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출근할 때마다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나를 보여줘야 할까.’

 

김헌기는 상상한다. 인천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시민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건이 터졌다. 2020년 4월 20일 인천 동구 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 안전교육장 앞에서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와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현장 노동자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 충돌로 10여 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2020년 4월 27일 경인일보는 <‘도 넘는’ 공사장 일감 다툼... 치안 강화 ‘두 팔 걷은’ 경찰>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경찰이 집회 과정에서 업무방해 등 불법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는 내용이다.

 

기사를 보면 인천지방경찰청은 최근 일선 5개 경찰서 경비, 정보, 수사 과장들과 건설현장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폭력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그 회의 장면을 상상해본다.

 

회의석상에서 ‘타협은 없다’고 질러대는 한 사람이 보인다. 일장 연설이 끝나자 일선 과장들은 속 시원한 표정을 짓는다. 마침내 회의석 정중앙에 앉아 있던 인천경찰청장이 흰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는다.  

 

 

 

 

- 2부 The End -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1부)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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