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1화. 보험성뇌물의결말 (폭로자 김학성 시선)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제5화. 난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변호사 시선)

⦁제6화. 대검케어가최고야. (작가 시선)

 

 

 

 

 

 

 

나를 케어해줘 마지막 화, 대검 케어가 최고야(작가 시선)

 

 

2016년 9월 초 김학성이 오랫동안 김형준 검사 스폰서 노릇을 했다는 뉴스가 도배됐다. 나도 보도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꽤 많은 수감자를 접하고 취재했다. 그중 김형준을 특별하게 기억한다.

 

김학성이 스폰서 노릇을 했다는 폭로로 김형준은 2016년 10월 구속됐다.

 

나는 김형준에게 편지를 보냈다. 대부분 고위직 출신 수감자들은 편지를 받았다고 바로 답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편지를 보낸 이가 지인도 아니다. 그런데 김형준은 바로 답장했다. 뭘 믿고 내용도 절절한 편지를 보냈는지 오히려 의아했다.

 

 

 

그러나 재판을 보면서 이해 되기 시작했다.


 

검찰은 당시 김학성과 김형준 사이 메신저와 통신 기록을 모두 확보했다. 통화 기록만 봐도 하루 동선은 파악된다. 주고받은 메시지와 통화 내용을 비교하면 특정 날짜에 서로 만났는지 정도는 확인된다.

 

변호인은 이를 근거로 현금수수는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학성은 자신과 오강수를 김형준이 부장검사실로 불러 편의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 부분도 검토했다. 김학성은 김형준 외에도 다른 검사들에게 더 자주 불려 다녔다. 이유는 간단했다. 김학성이 범죄 정보를 제공하면서 재벌과 정치인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시했기 때문이다.

 

김형준도 김학성이 제공한 범죄 정보가 가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김학성이 출소하고 나서도 김형준은 범죄 정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계속 문자를 보냈다.

 


 

변호인은 증거인멸 부분도 따졌다. 당시 채권자들은 김학성 휴대전화 번호를 알았다. 김학성도 채권자에게 협박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김학성은 이 휴대전화를 해지하고 초기화해 동생에게 건넸다.

 

동생이 보면 곤란한 사진과 문자 때문에 초기화한 게 아닐까. 업무용 다이어리도 자기 횡령 사건 관련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없애놓고 김형준 지시로 없앴다고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형준 변호인이 하나씩 따진 내용은 모두 받아 적었다. 그렇게 모은 내용이 수백 쪽 분량이다.

 

그런데 피고인 신문이 시작되자 김학성은 허위진술을 했다며 말을 바꾼다. 오히려 대검 수사팀이 사건을 무리하게 수사했다고 질타했다. 검사들은 당황했다. 김학성 발언이다.

 

“2016년 9월 검찰이 자신을 구속시키는 이유가 김형준 검사의 비위를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김형준을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때마침 대검 수사팀 의도가 느껴졌고 그에 맞춰 진술했다.”

 

1심 재판 선고가 나왔다. 검찰과 피고인 측 모두 항소했고 항소심이 열렸다.

 

김학성은 검찰 수사 때 진술이 진실이었다고 말을 또 바꿨다. 김학성은 왜 진술을 계속 번복했을까.

 


 

먼저 1심 재판 막바지에 그동안 검찰 진술이 거짓이었다고 말한 배경부터 보자.

 

김학성이 설명한 상황은 이렇다.

 


 

1심 재판이 열리는 날 법정대기실에서 만난 김형준은 울면서 진술 번복을 사정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본 교도관이 김형준을 제지하지 않았다. 단지 김학성을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태워 보냈을 뿐이다.

 

1심 재판 진행 중에도 김형준은 재판부 시선을 피해 김학성에게 말을 걸었다. 살려달라며 이번에 유죄를 받으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목을 매는 시늉까지 했다. 친구를 다시는 배신하지 않겠다고 서로 약속했다고 한다.

 


 

김학성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1심 재판에서 수의복장을 한 김형준과 김학성은 변호인 좌석 뒤쪽에 앉았다. 김학성 말처럼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서로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한 친구가 말을 걸면 다른 친구는 귀를 가까이 대고 듣는 모습도 보였다. 방청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형준 친척 중 한 명은 속이 터진다고 했다.

 

김형준은 직접 증인신문을 하다가 이 대목에서 울먹거리기도 했다.

 

“사적인 문제 때문에 정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30년 된 고교 친구한테 급전을 빌렸는데...”

 

흐느끼는 김형준을 보며 김학성은 마음이 움직였을까. 김학성은 1심에서 재판장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30년 지기 친구 부탁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심 재판이 끝나자 대검찰청은 김학성을 다시 소환하게 된다.

 

항소심 재판에서 다시 검찰 증인으로 나온 김학성은 확고하게 오직 사실만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김학성은 형사사건에 얽히면 도움을 얻고자 김형준에게 보험을 든다는 생각으로 술을 샀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항소심에서도 이 진술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김형준을 너무 자주 만나서 볼 때마다 그런 의도를 깔지는 않았겠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면 형준이가 자리를 걸고 나를 도울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다면 술을 샀겠느냐고 되물었다.

 

김학성은 왜 다시 진술을 번복 한 것일까?

 

1심 선고가 나오고 항소심까지 김학성에게 시간이 제법 있었다. 김학성은 재판 기록을 받아 다시 살펴봤다. 김학성은 재판 기록을 거듭 읽을수록 김형준이 친구였다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무슨 내용 때문이었을까.

 

김형준은 1심에서 김학성이 허위진술을 하게 해 놓고 이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학성이 허위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함으로써 수사 초점을 피고인(김형준)에게 맞춰서 김학성에 대한 검찰의 수사방향을 흐리게 하고, 김학성이 수사에 협조하는 것 같은 외관을 만든 다음에 구형량에 이득을 보고자 함이었다.”

 

김학성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학성이 언론에 폭로하면서 당시 서울서부지검 수사팀도 감찰조사 대상이 됐다. 김학성에 대한 횡령사건 수사는 더욱 엄정하게 진행됐고 선처를 기대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그러나 김형준 측 변호인 생각은 달랐던 듯하다. 1심 재판이 끝나자 김학성이 대검찰청에 다시 불려 나가게 된 부분을 공략했다.

 

몇 번 소환됐는지, 검찰 조서를 작성했는지, 대화 내용은 무엇인지 세밀하게 따졌다.

 

김학성은 평소 주변 사람에게 오강수를 ‘케어한다’, 김형준을 ‘케어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되고 나서 한 지인을 접견했을 때도 김학성은 ‘케어’라는 말을 썼다.

 

“서부지검과 대검은 틀려. 서부지검은 나를 죽이려고 하고 대검은 나를 케어해준단 말이야.”

 

김형준 측 변호인이 ‘케어’ 뜻을 묻자 김학성이 답했다.

 

“서부지검이 보기에 저는 일방적인 피고인이고, 대검은 뇌물공여자로서 공여자 진술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중요하고 아무래도 서부지검처럼 저를 막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검찰 증인으로 증인석에 선 김학성을 바라보는 김형준 시선도 분명히 1심 때와 달랐다. 마치 부장검사 시절 자기와 상관없는 사건 보고를 받는 듯한 그런 무덤덤함이 묻어 나왔다.

 

2심 재판부는 김형준에게 집행유예를 선사했다. 김형준은 기자들에게 소회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모함을 걷어낸 법원에 경의를 표한다.”

 


 

그 후로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나를 케어해줘> 원고는 그대로 묵혀뒀다. 법원이 판단을 내린 사건인데 굳이 들출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각자 자기 인생을 충실하게 살기를 바랐다.

 

2019년 하반기부터 박수종 변호사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뉴스타파>는 박수종 변호사 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 뉴스타파 방송화면 캡처

 

박수종은 법정에서 2015년 당시 여러가지 금융범죄 혐의로 금융위원회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그중 한 건을 대검에 의뢰했고 사건은 서울남부지검으로 이첩됐다.

 

당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이 김형준이었다.  박수종 변호사는 이 자리가 대한민국에서 뇌물 받기 가장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형준이 (김학성에게) 뇌물을 받았다고 생각한 적이 1초도 없었어요. 그리고 제 머릿속에는 김형준이 뇌물을 받으면 남부지검 합수단장 할 때, 10억~20억 원을 받지 1500만 원을 왜 받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박수종은 법정에 나와 김형준을 두둔했다. 2016년 검찰에게 도피중인 김학성 소재를 이야기해 긴급체포가 되게 한 것도 박수종으로 드러났다.

 


 

김형준과 박수종 관계에 의혹이 짙어져갔다.

 

 

▲ 뉴스파타 방송 화면 캡처

 

<뉴스타파>는 구치소에 있는 김학성과 접촉해 그가 말하는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했다.

 


(김학성) “김앤장에도 너랑 친한 변호사들 많은데 왜 옷 벗은 지 10년이나 된 박수종을 자꾸 전면에 내세워 일처리를 하자고 하냐?”

 

(김형준) “걔 주식도 많이 돌리고 함께 엮인 게 있으니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어. 내 말 들어.”

 

(김학성) “무슨 주식을 돌리는데?”

 

(김형준) “주식 해서 돈 좀 만졌는데 문제가 있거든. 지금은 내 말 들을 수밖에 없어. 근데 이런 일 처리는 베스트야.”

 


 

법정에서는 들어보지 않았던 내용이다. 2019년 10월 25일 <뉴스타파>는 김학성과 김형준이 통화한 내용을 편집 없이 모두 공개했다. 그 통화 내용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통화 내용 중 김학성이 ‘셀프 고소’ 작전이 실패하자 김형준에게 항의하는 부분이 있다.

 

이때 김학성은 김형준에게 "박수종이 네 말을 잘 듣는다고 했잖아!"라며 화내지 않는다. 김형준도 김학성에게 “박수종은 제삼자이며 지 아쉬운 게 뭐가 있겠어”라 “자기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지가 틀렸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게 뭐가 있겠어”라며 설명했을 뿐이다.

 


 

2020년 2월 6일 누군가 카톡으로 기사를 보냈다.

 

학성이 또 김형준을 뇌물 의혹으로 고발한 내용이다. 김학성은 박수종 변호사가 김형준에게 뇌물 4000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서울남부지검 검사들과 주가 조작 전문가가 얽힌 검은 커넥션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 이 주장은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이 순간 자신이 데리고 있던 검사들까지 한 묶음으로 매도되는 상황을 마주하는 김형준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재판에서 김형준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웠다는 게 드러났지만 방송은 여전히 폭로자 진술에 무게를 둔다.

 

김학성은 오래 전 입원한 적이 있다.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김학성 씨 아내는 당시 문병 온 사람은 김형준 뿐이었다고 증언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고교 동창 30년 지기, 그 세월 안에는 경쟁, 애정, 시기, 질투 등 온갖 감정이 묵혀있다. 김형준에게는 여전히 큰 인생 숙제다. 그 문제를 푸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이 글을 쓴다.

 

 

 -The End-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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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하반기부터 PD수첩과 뉴스파타는 <죄수와 검사> 시리즈를 방송했다. 특히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 사건은 2016년 8월 <한겨레>에 30년 동안 김형준 스폰서 노릇을 했다는 고교 동창 김학성(가명) 폭로에서 비롯됐다. 2019년 PD수첩과 뉴스타파도 김학성 주장을 반영하여 이 사건을 방송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이렇게 한쪽에서 김형준을 몰아붙이는 가운데 다른 쪽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법원은 2017년 8월 10일 김형준에게 집행유예를 선사한다. 공소사실 많은 내용들이 무죄가 됐기 때문이다. 김형준은 2020년 5월 15일 법무부를 상대로 한 징계부가금 취소 소송도 승소했다.

 

어떻게 된 상황일까. 진실은 뭘까.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서형이다. 당시 김형준 ‘스폰서 검사’ 재판을 모두 기록한 유일한 목격자다. 당시 기자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재판에만 몰려다녔다. 이 재판 방청석에 기자는 없었다. 나는 재판에 나온 증인 시선으로 서술할 것이다. 언론에 실명이 나온 인물을 제외하고 모두 가명 처리한다. 이제 시작하겠다.

 

 


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1화. 보험성뇌물의결말 (폭로자 김학성 시선)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제5화. 난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변호사 시선)

⦁제6화. 대검케어가최고야. (작가 시선)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 재판 추적기> 제1화 보험성 뇌물의 결말(김학성 시선)

 

내 이름은 김학성. 이 추악한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낸 당사자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김형준은 30년 지기 친구다. 우리는 모두 대학 진학 후 고시를 준비했다. 나는 실패했지만 김형준은 합격했다. 검사가 된 김형준은 승승장구했고, 나는 사업을 시작했지만 굴곡을 몇 번 거쳤다.

 

사업하다가 법적 분쟁에 휘말려 실형을 살면 그 고통은 말할 수 없기에 ‘검사 친구’는 나름 절실했다. 지난 7년 동안 김형준이 요청한 술값은 죄다 결제했다. 김형준은 강력사범이 아닌 경제사범은 도와줄 힘이 있다고 장담하곤 했다.

 

내가 한겨레신문에 폭로한 이후, 검찰은 내 휴대폰을 복원했다. 검찰은 2012년 5월부터 2016년 3월까지 김형준에게 5835만 1300원을 향응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3400만 원은 현금이었다. 전달 방법은 대부분 김형준이 벗어둔 양복 주머니에 넣어두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것을 ‘보험성 뇌물’이라고 표현한다.

 

 


 

이 이야기는 김형준 검사가 UN에 협력법무관으로 파견 나간 2010년부터 시작한다. 이 시기 나는 특가법위반, 사기 등으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때 구치소에서 오강수를 알게 됐다.

 

오강수는 불법 다단계로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나는 당시 합의금으로 거액이 필요했는데 오강수가 그 부분을 도와줬다. 나는 UN에 파견 나간 김형준이 돌아오면 출소 후 구명활동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2012년 5월 6일 출소하고 나서 김형준과 시작한 술자리는 6~7월에 집중됐다. 누가 봐도 향응일 수밖에 없는 접대였다. 당시 출소 직후인 만큼 별다른 수입원이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술값을 낼 능력이 없어 지인들이 대신 내줬다.

 

오강수도 김형준을 챙기라며 1000만 원을 건넸다. 오강수 구명활동은 내 집안에 복잡한 일이 터지면서 후순위로 밀려났다. 부친이 위독했던 것이다.

 

12월 14일 김형준을 만나려 했던 당일에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김형준은 만사 제치고 오겠다 했으나 정중히 사양했다. 부친 유언대로 가족장으로 마무리했다. 그 이후 3년 동안 김형준과 술자리는 없었다.

 


 

김형준도 바쁜 시기였다. 2012년 인천지검 외사부장 시절에는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건이 터졌다. 2013년 7월 서울 중앙지검 외사부장 시절에는 전두환 추징금 특별환수팀장, 2015년 하반기에는 서울 남부지검 증권합동수사단장을 맡았다. 그해 말 김형준은 인사에서 밀려 예금보험공사로 파견된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나는 이 시기에 사업을 재개했다. 회사 이름은 ‘KK게임즈’이다. 이 시기 외국 출장을 다니면서 더 바빠졌고 오강수를 면회할 시간도 없었다.

 


 

내가 김형준을 다시 만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5월경이다. 당시 김형준은 술집 아가씨에게 빠져 있었다. 나는 김형준에게 수차례 헤어지라고 요구했지만, 김형준은 좀처럼 정리하지 못했다. 급기야 2015년 가을쯤 김형준은 아가씨를 케어해야겠다며 오피스텔 보증금과 생활지원금을 요구했다.

 

통상 뇌물을 송금하면 차명계좌를 이용한다. 하지만 매출 100억 원이 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너무 바쁜 나머지 회사 경리에게 KK게임즈 법인계좌를 쓰도록 했다. 1500만 원은 회사계좌로 2월 3일, 3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보냈다. 경리에게는 ‘김형준 대여금’이라고 적도록 지시했다. 이게 바로 발단이 됐다.

 

당시 KK게임즈 대표이사는 고교 동창인 한수찬였다. 게임 개발업체인 KK게임즈에 중국 샤오밍 전자제품 판매를 제안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잘 나가던 KK게임즈는 한수찬이 무리한 경영을 하면서 거래업체들 항의가 잇따랐다. 한수찬은 업체를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김형준과 좋은 방향으로 해보겠다며 한수찬을 달랬다.

 

2016년 3월 말 김형준에게 카톡으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도 최근에 머리 아픈 일이 생겨서... 우리 유통사업부 대표 한수찬이 업무상 배임횡령하고 잠적했다. "

 

 "뭔 소리야?? 우리 동기? 자네까지 문제되는 것은 없는 것이지?"

 

"나야 그렇지만 회사에 손실이 커. 38억이야. 업체에서 돈 받아먹고 그랬더라고."

 

한수찬은 이사회 결의로 대표직을 잃는다. 2016년 4월 한수찬은 내 핸드폰에 저장된 회사 지출 및 자금현황 보고 자료를 가져가 버렸다. 한수찬이 가져간 자료에 내가 ‘김형준 대여금’으로 적시한 1500만 원 내용도 있었다. 나는 거래업체를 찾아가 자료를 회수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으려 했으나 돌려받지 못했다.

 


 

4월 16일 서울에 있는 한 호텔 커피숍에서 김형준을 만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한수찬이 나를 횡령으로 고소한 사건들이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있었다. 거기에는 김형준이 1500만 원을 횡령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김형준은 변호사 박수종을 ‘형사사건 베스트’라며 만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박수종은 2010년 내가 구속됐을 때 고소인 측 대리인이었다. 또 나는 이미 선임한 변호사도 있었다.

 

김형준은 자신이 마련한 2000만 원을 박수종에게 건네며 일을 부탁했다. 자기 비리가 얽힌 만큼 그 일을 처리하는 명목이라고 생각했다.

 

▲ 뉴스탸퍄 방송 화면 캡처. 오른쪽이 박수종 변호사

박수종은 ‘셀프 고소’를 제안하며 자기 방식을 강요했다. ‘셀프 고소’는 서울서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여러 형사사건을 고양지청으로 이송해 처리하려는 방법이다. 고양지청 차장검사가 김형준 동기라고 했다.

 

나는 피해 거래업체 가운데 한 곳을 물색해 합의금 4000만 원을 건네며 나를 고양지청에 고소하도록 부탁했다. 그 업체 사장은 내가 부르는 대로 고소장을 작성했다. 2016년 4월 22일 고양지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박수종에게 고소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김형준은 고소장이 접수되자 사건이 배당되기 전에 고양지청 차장검사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확인할 길은 없으나 이때부터 김형준은 자기 대신 박수종을 통해 연락하라고 했다. 나중에 수사 과정을 고려하면 부적절하다는 게 이유다. 그 후 김형준과 직접 연락할 수 없었다. 박수종은 변호사 선임계를 작성하자고 했다. 자기는 법무법인 처음 소속이므로 고양지청에서 일을 보려면 처음 명의로 고양지청에 정식 선임계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5월 2일 법무법인 처음과 변호인 선임서를 작성했다. 이후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서울서부지검에 한수찬이 고소한 사건은 고소인 한수찬이 먼저 조사를 받고 나서 6월 20일 내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될 예정이었다. 그전에 고양지청으로 이송돼야 했다. 김형준에게 수차례 전화했으나 답이 없었다. 6월 17일 김형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 연락이 없어 실망이다. 어쩔 수 없이 문자 보낸다. 난 진짜 친구라 생각했는데 긴말하기 싫다. 박 변호사가 내게 해준 말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니가 날 도와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나도 알아봤고. 나는 지금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 내가 할 것은 내 가족이 그나마 살 수 있는 돈을 최대한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해서 보내 준 천오백만 원은 아래 계좌로 오늘 6시까지 송금하거라. 내 집사람 신한은행 아무개. 누구든 보내기만 하거라. 이것으로 너와 나는 정리하자. 박 변호사는 니가 알아서 정리하거라. 너에게 피해가 없도록 처리할 테니 더 실망하게 하지 말거라.

 

그리고 박수종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 변호사님 저는 이제 삶에 대한 미련도 없습니다. 형준이에게 제가 보낸 돈 보내라 문자 보냅니다. 형준이랑 통화하세요. 그간 감사했습니다.

 

김형준은 연락이 없었다. 6시까지 입금된 것도 없었다. 속상했고 6월 20일 예정된 조사가 두렵기도 했다. 판단이 서지 않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취기가 오르자 김형준에게 문자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 형준아 너 연락도 없고 입금된 것도 없다. 내가 빌려준 돈도 못 받으니 병신이구나. 오케이. 알았다. 변제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내가 알아서 할게. 나쁜 새끼

 

그랬더니 김형준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외국 출장 중이며 첫 조사가 있는 20일 귀국해 돈도 보내준다고 했다. 1500만 원은 박수종에게 처리하라고 이야기할 테니 따라주기 바란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자 박수종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첫 조사를 받는 20일 오전에 15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변호사 선임료를 돌려받는 모양새를 취하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한수찬이 나를 서부지검에 횡령으로 고소하면서 거기에는 김형준이 1500만 원을 횡령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검찰이 나를 조사하면 이 내용을 확인할 게 분명했다. 이를 박수종에게 선임료를 준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박수종과 통화가 끝나자 김형준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 지금 박변 전화왔어. 월요일에 내 계좌로 보낸다는데 알았고, 형준아 다 내가 떠 앉고 갈 테니 그리 알아라.

 

그렇게 법무법인 처음에서 영수증을 작성하고 돈을 돌려받았다. 김형준에게 이야기한 대로 일처리 다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첫 검찰 조사에서 담당검사(박정의)는 한수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이 부분을 물어봤다. 나는 소주와 맥주 마신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배신감도 밀려왔다. 담당검사는 박수종에게 사건을 고양지청으로 이송해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송 사유가 고양지청으로 가야 내가 더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의 검사는 박수종이 나를 험담하며 다닌다고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변호사를 선임했음에도 다 알아서 한다는 말만 믿고 3개월을 그냥 날린 셈이었다.

 

결국, ‘셀프 고소’는 실패했다. 서울서부지검 주임검사가 사건 이송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흘 뒤 고양지청 사건이 서부지검으로 이송된다는 문자가 왔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나는 김형준을 의심하며 불쾌한 심정을 표했다. 검찰 조직을 향한 적대감도 커졌다. 2010년 억울하게 구속당한 적도 있어 더욱 그랬다. 담당 검사는 이런 말도 했다.

 

“친구끼리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고 여자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인데 뭐가 문제냐?”

 

6월 27일 김형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김형준 비위 내용을 담은 ‘수사검사 재배당민원요청서’ 사진도 첨부했다.

 

- 형준아 나 어차피 죽는 거 너무 화가 나서 박정의 검사에게 수사 안 받으련다. 지난 3개월간 나를 가지고 논 거고.

 

30년 지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김형준은 전화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 안 해서 그렇지 오죽하면 고양지청 차장 만나고 수차례 그거 어떻게 해보려고 하고 지금 서부서 그거 뭐야 주임검사 위에 있는 부장검사 따로 만나 친분도 만들어놓고 이래 저래 작업을 하고 있는데 너도 잘 알지만, 28기 부장검사 뭐야. 그 위에 부장. 내가 부장검사들과 자연스럽게 안면 트려고 다른 서부 부장들 다 불러서 밥 먹었어. 왜 그랬겠어? 내가 지금 할 일 없어 그랬겠어? 내 돈 써가면서? 그리고 주임검사도 마찬가지고, 내가 왜 서부 부장검사들 다 불러서 여의도에서 메리어트 호텔 식당까지 불러서 밥을 사 먹이면서 부장검사 한 명 때문에 1부장부터 공안부장, 관련된 부장 다 불러서 밥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주임검사도 얼마나 머리를 썼겠어? 불러서 밥 먹이고 그래야 하니까. 울산에 있는 친한 검사도 불러서 3-4명 엮어서 밥 먹이고 그거 왜 그러겠어?”

 

이렇게 나를 설득하면서 김형준은 휴대폰을 없애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먼저 휴대폰을 없애라고 한 쪽은 박수종이었다. 휴대폰에는 그동안 김형준에게 향응을 제공했던 내용 등이 담겨져 있었다. 이 무렵 김형준을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얄팍한 기대는 있었다. 내 휴대폰 중 어떤 것은 박살 냈고, 어떤 것은 초기화 해 동생이 쓰도록 했다.

 

하지만 최소한 사실을 밝힐 자료가 필요했기 때문에 일부 자료는 캡쳐해 새로 구입한 휴대폰으로 옮겼다. 그래서 김형준과 관련된 2015~2016년 자료 일부가 지금 이렇게 남았다. 당시 나는 서부지검 조사 강도가 높아 긴급체포될 수 있다는 걱정에 휩싸였다. 사업에 투자한 것을 회수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박수종도 긴급체포를 피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했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7월 26일 서부지검에서 두 번째 조사받는 날 김형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 형준아 너도 지치지? 나도 지친다. 박수종 변호사와 통화했는데 오늘 긴급체포 안 하는 것 백 프로 확신 못하고 검사가 사건을 중하게 받아서 구속은 피하기 어려울 거라 이야기했다. 그럼 나는 어쩔 수 없다. 니가 나를 최소한도 지켜주지 못하니 나는 오늘 들어가지 않을 거다. 저번에 보낸 문건과 증거자료 등등 대검에 보내고 언론에 배포할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아무 아쉬움도 없다. 나는 모든 걸 다 잃고 간다. 너 초임검사 시절부터 지난 3월까지 너 술 사준 것만 해도 수억이다. 나는 그랬는데 너는 나를 왜 최소한도로 지켜주지 못하니? 앞으로 2주만 내게 더 시간이 있으면 되는데. 니가 오늘 긴급체포 없을 거라고 확신이 있으면 9시까지 걱정 말라고 연락 주라.

 

김형준은 전화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2차 조사를 받기 위해 서부지검에 출석했다. 무사히 조사를 마쳤고 긴급체포도 없었다.

 

대신 2016년 8월 16일 서부지검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8월 19일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8월 30일 1차 구속 피의자신문기일이 잡혔다. 예감했던 대로 김형준은 담당 검사와 협의해 나를 구속하는 조치를 택했다.

 

제 식구 감싸기가 이런 것이구나 싶으면서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구속 피의자신문기일인 30일 아침, 기자를 만나 자료를 모두 넘기며 인터뷰했다. 기자는 9월 5일 조간 기사로 시작해 모두 6회에 걸쳐 보도하기로 약속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8월 30일 예정이었던 피의자신문기일은 9월 1일로 연기됐다. 당일 아침 예정 시각에 나는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박수종에게 소회를 적어 문자로 보냈다.

 

- 형준이가 자기에게 진심으로 사과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사과가 없어서 본인이 이렇게 한 것이다.

 

그러자 박수종은 김형준에게 문자 메시지로 사과문을 받아 내게 전했다. 김형준은 추가 보도가 나오지 않게 도와달라고 했다. 이튿날 나는 박수종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 낼 연락해서 모든 자료가 담겨져 있는 제 핸드폰 자체를 넘겨드릴게요. 그리고 저는 진술서를 써서 한겨레 등에 보내겠습니다. 제가 다 안고 가겠습니다. 다만 중간에 넘길 때 저도 살아야 하니 돈 더 준비하세요.

 

박수종은 당일 2000만 원을 내게 송금했다. 나는 기자에게 이처럼 거래하고자 했던 사실까지 알려줬다. 이 추악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후폭풍이 불어닥쳤다.

 

김학성을 고소했던 한수찬도 “김형준이 검사로서 김학성으로부터 향응 등을 제공받은 것은 아주 나쁜 일이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뉴스파타 방송 화면 캡처

김학성 사건을 수사했던 서부지검 수사라인들도 대검 감찰 대상이 됐고 김형준은 9월 29일 뇌물수수와 증거인멸교사로 기소됐다.

 

재판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수찬이 태도를 바꿔서 김형준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수찬 시선으로 이 사건을 다시 본다.

 

 

(다음 2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 한수찬 시선)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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