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1화. 보험성뇌물의결말 (폭로자 김학성 시선)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제5화. 난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변호사 시선)

⦁제6화. 대검케어가최고야. (작가 시선)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 재판 추적기> 제4화. 부친 사망일의 진실 – 이문재 시선.

 

 

내 이름은 이문재다. 김학성과 나는 2000년쯤부터 돈거래를 했다. 김학성이 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김형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말만 하면 김형준이 불법 소프트웨어를 단속해주기 때문에 용산에서 내게 잘못 보이면 큰 일 난다. 내가 여기를 꽉 잡고 있다.”

 

 


 

김학성은 2012년 5월 출소하고 나서 나에게 투자를 요청했다. 이때도 김형준 이야기를 꺼냈다.

 

“김형준 검사가 한국에 있었으면 내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형준 검사가 외국에서 돌아와서 억울한 이야기를 듣고 해결해 줘서 나왔다.”

 

2012년 7월쯤 한 술자리에서 김형준을 소개받았다. 김학성이 김형준에게 고마워서 대접하는 자리 정도로 짐작했다. 물론 김학성은 검사 친구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다.

 

나는 출소한 김학성과 사업을 함께 운영했다. 2012년 7월 ‘KK인터네셔널컨퍼런스’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나는 대표이사로서 투자와 차용을, 김학성은 사업을 도맡았다.

 

출소 직후 김학성은 사업자 이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나에게 사업자등록과 투자를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이 이것은 다 가지고 있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사업을 하겠다.”

 

회사를 설립하자 김학성에게 법인카드를 내줬다. 김형준과 술자리를 함께 할 때도 김학성은 술값을 법인카드로 계산했다. 불쾌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결국, 내 돈으로 술값을 계산하면서 온갖 생색은 김학성이 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김학성에게 술값을 법인카드로 결제하는 것은 자제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김학성은 나와 돈거래 중 일부가 김형준 뇌물로 흘러갔다고 했다.

 


 

나는 법정에서 김학성과 돈거래 부분을 증언해야 했다. 증언 당시 법정에서 장부를 공개했다. 빌려준 돈 사용처를 꼼꼼하게 적어둔 장부였다.

 

"김학성과 김학성 처 딸, 휴대폰 통신비, 쌀값, 병원비, 학원비, 아파트 관리비, 보험료, 생활비, 졸업비"

 

빌려준 내역이 계속 나열됐다.

 

"2013.4.15. 70만 원 김학성 부친 병원비, 2013.7.25. 54만 원 김학성 부친 간병비."

 

이어진 내 발언에 법정이 소란스러워졌다. 김학성은 분명 2012년 12월 14일 김형준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형준아. 아버님이 가셨다. 당신 유언대로 고향에서 조용히 장례 치르고 마지막 길 가신다. 나중에 보자. 통화하자’.

 

 

김학성은 생존해 있는 아버지를 왜 돌아가신 분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김학성이 이 문자를 보냈던 시기 정황을 보자.

 


 

2012년 5월 막 출소한 김학성은 생활비도 없었다. 하루는 연체된 카드대금청구서와 휴대전화 문자를 내(이문재)게 보여줬다. 강제집행이 예정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학성은 전 처 이름으로 카드를 사용했는데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통사정을 했다. 당시 나도 힘들었던 시기여서 돈이 없었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 2012년 10월 15일 김학성에게 1000만 원을 송금했다. 통장에는 마이너스 1155만 원이 찍혔다.

 

검찰 조사에서 김학성은 이렇게 빌린 1000만 원 중 500만 원을 오강수 가석방 청탁을 위해 김형준에게 줬다고 했다. 상상도 못 한 일이다. 1000만 원 용도는 당연히 연체된 카드 대금 결제였다.  물론 김학성은 재판에서 카드 연체 이유를 김형준 접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1000만 원을 빌린 김학성은 이틀 뒤 술집 통채를 빌려 생일파티를 열었다. 그 비용을 누가 지불했는지도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됐다. 법정에서 김형준 쪽 변호인이 물었다.

 

“그런데 이틀 뒤, 2010년 10월 17일 김학성은 <업타운걸>이라는 술집을 빌려서 생일파티를 하였고 200만 원 정도 비용이 소요됐어요. 이문재 씨가 김학성을 위해서 마련해준 것으로, 결재도 이문재 씨가 하였다고 했는데 김학성 진술이 사실인가요?”

 

나는 사실이 아니라고 답했다.

 

 

 

이처럼 김학성은 출소 후에도 경제적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고급술집에서 술을 마시곤 했다.  당연히 술값 독촉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김학성은 내게서 빌린 1000만 원 중 500만 원을  김형준에게 줬다고 했다. 장소와 날짜도 특정했다.  비긴어게인이라는 고급 술집에서 2012년 11월 15일에서 12월 14일 사이라고 진술했다.

 

재판에서 김형준 변호인 측은 이를 탄핵하기 시작했다.

 

우선 김학성은 2012년 11월 1일 ‘비긴어게인’에서 외상으로 술을 마셨다. 12월 14일에는 김형준과 바로 이 술집에서 만나기로 예정돼 있었다. 비긴어게인 사장은 11월 13일부터 12월 12일까지 술값 결제를 독촉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기간 동안 김학성은 “언제 처리해주겠다”라는 답변을 하며 다른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당시는 오강수도 김학성에게 사람을 보내서 여비서 횡령 문제를 김형준에게 처리해 달라고 재촉하던 시기다.

 

2012년 12월 14일 오전 10시 김학성은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는다. 읽어보니 은행이 보낸 카드 연체 내용이었다. 그날 김학성은 김형준에게 부친 사망 사실을 전했다.

 

김형준 변호인들은 김학성 부친 기일이 언제인지 물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명예가 있기 때문에 말씀을 못 드립니다.”

 

급기야 재판장이 당시 “살아계셨는지 사망한 상태였는지 그 사실관계를 확인해”달라고 요구 했다. 김학성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상태”라고 짧게 답했다. 재판장은 “살아계신 상태였습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내(이문재) 기억에도 김학성 부친 사망일은 2013년 가을이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2014년 7월 김학성은 나를 회사에서 쫓아냈다.

 

당시 김학성이 사업을 하면서 KK인터네셔널컨퍼런스가 거래처 문제로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 나는 대표이사였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김학성은 대표이사가 없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나에게 2015년 2월까지만 피해달라고 했다. 나중에 문제가 해결되면 내가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놓겠다고 했다.

 

그 사이 김학성이 KK게임즈를 만들었는데 나는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그래도 김학성을 사기죄로 고소하지 못했다. 김학성이 부장검사를 친구로 뒀다는 이유도 그중 하나였다.

 


 

사업가에게 검사 친구는 어떤 의미일까?

 

김학성은 구속 기간 대검찰청에 소환돼 김형준이 성공한 모습을 봤다. 김학성은 2012년 5월 2일 만기 출소하고 열흘 뒤부터 2개월 동안 김형준을 10회 만났다.

 

김학성은 재판에서 부장검사 친구인 김형준에게 잘 보여 사업 재개 과정에서 도움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시인했다. 김형준 주변에는 좋은 인맥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부장검사 친구인 김형준 얘기를 자주 한 것도 투자를 끌어내려는 의도였다고 인정했다. 부장검사와 친구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 자체는 출소 후 고교 동창생들 인맥 복원에도 도움이 됐다. 김형준은 동기들 중에 가장 우수한 친구였다. 그래서 동창생들은 형준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자리에서 김학성은 김형준과 친근하게 통화하며 옆에 있는 동기를 바꿔주기도 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2016년 9월 김학성이 오랫동안 김형준 스폰서 노릇을 하면서 수 억 원 여치 술도 사주고 돈도 줬다는 기사가 신문과 방송에 나왔다. 이 뉴스에 동창들 사이 전화통에 불이 났다. 한진우, 김형준. 김학성 모두 고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법정에도 동창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필자는 본의 아니게 김형준⦁김학성 동창들과 안면을 트게 됐다.

 


 

그중 대기업에 다니던 K가 증인으로 나왔다. K도 동창회에서 김학성을 알게 됐다. 김학성은 동창 K에게 사업 관련하여 K 인맥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K는 김학성이 평소에 술자리에서 계산하는 것을 많이 봤다. 김학성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선산과 주식이 있어 돈이 많다는 건 평소에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김학성이 김형준에게 뇌물로 술을 사줬는지 궁금했다. 동창 K는 김학성이 구속되자 면회를 갔다.

 

“네가 뇌물이라고 줬다는데 맞냐?”

“내가 5억 8000만 원 넘게 술을 사줬는데 형준이 생각해서 줄이고 줄여서 5800만 원이 된 것이다.”

 

김학성이 이렇게 큰 소리를 친 반면, 당시 김형준 검사는 공황 상태였으며 기억을 잘 못했다. 변호인들이 “사실이 뭐냐?”라고 물어보자 김형준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술 마신 것은 맞다. 그런데 둘이 간 적 없고 여러 명 있었다. 돈 받은 것은 없었다.”

 

김형준은 둘이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가보면 꼭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당황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체 진실이 무엇일까? 이제 김학성에게 다시 자세히 물어볼 차례다. 그런데 피고인 신문에서 김학성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재판장에게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재판장님, 제가 위증했습니다.”

 

김학성은 공소장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며 사실대로 털어놓겠다고 나섰다. 내용은 이랬다.

 

김학성이 체포 될 당시 알코올 중독자처럼 매일 술을 마셨다. 그런 상태에서 긴급 체포돼 대검찰청에서 매일 새벽 2~3시까지 조사받았다. 검찰이 김형준 비위를 무마하고자 자기를 구속했다고 확신했다. 검찰과 김형준을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했기에 대검찰청 특감팀 수사 의도에 맞춰 진술했다는 것이다.

 

“김수천 부장검사와 진경준 검사는 억 단위인데, 김형준과 저는 해봐야 몇 천만원이다. 금액을 올려야 한다. 다른 거 없느냐”

 

김학성은 검찰 압박을 고스란히 느꼈다고 했다. 피고인 신문에서 김학성이 자백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  술 먹은 사실은 맞다. 향응접대는 아니다.

●  지금까지 김형준에게 17년 동안 구체적인 청탁 한 적 없다.

●  김형준에게 보낸 돈은 계좌로 보낸 500만 원과 1000만 원 이외는 없다.

●  증거인멸 관련해서 휴대폰 초기화는 박수종 변호사 지시다.

 

검찰과 변호인 모두 하필이면 1심 재판을 마무리하는 날 이런 자백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김학성은 이렇게 답했다.

 

“7월 9일 박수종 변호사가 와서 증언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형준이와 저는 박수종 변호사 농간에 놀아난 것입니다. 아마 형준이는 몰랐을 것입니다. 형준이도 박수종 변호사가 하자는 대로 했을 것입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오른쪽이 박수종 변호사

 

김학성은 박수종 변호사가 핸드폰 초기화를 지시했고 김형준과 자기 사이에 끼어서 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이제 박수종 변호사를 만나봐야겠다. 박수종은 검찰 출신이다. 김학성은 김형준이 그를 ‘형사사건의 베스트’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수종은 법정에 나와 정반대 증언을 한다. 박수종 증언 내용을 요약해보면 ‘형사사건 베스트’는 오히려 김학성이었다.

 

(다음 5화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시선)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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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하반기부터 PD수첩과 뉴스파타는 <죄수와 검사> 시리즈를 방송했다. 특히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 사건은 2016년 8월 <한겨레>에 30년 동안 김형준 스폰서 노릇을 했다는 고교 동창 김학성(가명) 폭로에서 비롯됐다. 2019년 PD수첩과 뉴스타파도 김학성 주장을 반영하여 이 사건을 방송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이렇게 한쪽에서 김형준을 몰아붙이는 가운데 다른 쪽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법원은 2017년 8월 10일 김형준에게 집행유예를 선사한다. 공소사실 많은 내용들이 무죄가 됐기 때문이다. 김형준은 2020년 5월 15일 법무부를 상대로 한 징계부가금 취소 소송도 승소했다.

 

어떻게 된 상황일까. 진실은 뭘까.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서형이다. 당시 김형준 ‘스폰서 검사’ 재판을 모두 기록한 유일한 목격자다. 당시 기자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재판에만 몰려다녔다. 이 재판 방청석에 기자는 없었다. 나는 재판에 나온 증인 시선으로 서술할 것이다. 언론에 실명이 나온 인물을 제외하고 모두 가명 처리한다. 이제 시작하겠다.

 

 


나를 케어해줘. 연재 순서.

⦁제1화. 보험성뇌물의결말 (폭로자 김학성 시선)

⦁제2화. 제말이그말입니다 (김학성 동업자 한수찬 시선)

⦁제3화. 앞뒤좌우완벽하게 (김학성 구치소 동료 오강수 시선)

⦁제4화. 부친사망일의진실 (김학성 전 사업 파트너. 이문재 시선)

⦁제5화. 난초등학생이었다. (박수종 변호사 시선)

⦁제6화. 대검케어가최고야. (작가 시선)

 

 

 

 

 

<김형준 스폰서 검사 사건 재판 추적기> 제1화 보험성 뇌물의 결말(김학성 시선)

 

내 이름은 김학성. 이 추악한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낸 당사자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김형준은 30년 지기 친구다. 우리는 모두 대학 진학 후 고시를 준비했다. 나는 실패했지만 김형준은 합격했다. 검사가 된 김형준은 승승장구했고, 나는 사업을 시작했지만 굴곡을 몇 번 거쳤다.

 

사업하다가 법적 분쟁에 휘말려 실형을 살면 그 고통은 말할 수 없기에 ‘검사 친구’는 나름 절실했다. 지난 7년 동안 김형준이 요청한 술값은 죄다 결제했다. 김형준은 강력사범이 아닌 경제사범은 도와줄 힘이 있다고 장담하곤 했다.

 

내가 한겨레신문에 폭로한 이후, 검찰은 내 휴대폰을 복원했다. 검찰은 2012년 5월부터 2016년 3월까지 김형준에게 5835만 1300원을 향응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3400만 원은 현금이었다. 전달 방법은 대부분 김형준이 벗어둔 양복 주머니에 넣어두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것을 ‘보험성 뇌물’이라고 표현한다.

 

 


 

이 이야기는 김형준 검사가 UN에 협력법무관으로 파견 나간 2010년부터 시작한다. 이 시기 나는 특가법위반, 사기 등으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때 구치소에서 오강수를 알게 됐다.

 

오강수는 불법 다단계로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나는 당시 합의금으로 거액이 필요했는데 오강수가 그 부분을 도와줬다. 나는 UN에 파견 나간 김형준이 돌아오면 출소 후 구명활동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2012년 5월 6일 출소하고 나서 김형준과 시작한 술자리는 6~7월에 집중됐다. 누가 봐도 향응일 수밖에 없는 접대였다. 당시 출소 직후인 만큼 별다른 수입원이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술값을 낼 능력이 없어 지인들이 대신 내줬다.

 

오강수도 김형준을 챙기라며 1000만 원을 건넸다. 오강수 구명활동은 내 집안에 복잡한 일이 터지면서 후순위로 밀려났다. 부친이 위독했던 것이다.

 

12월 14일 김형준을 만나려 했던 당일에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김형준은 만사 제치고 오겠다 했으나 정중히 사양했다. 부친 유언대로 가족장으로 마무리했다. 그 이후 3년 동안 김형준과 술자리는 없었다.

 


 

김형준도 바쁜 시기였다. 2012년 인천지검 외사부장 시절에는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건이 터졌다. 2013년 7월 서울 중앙지검 외사부장 시절에는 전두환 추징금 특별환수팀장, 2015년 하반기에는 서울 남부지검 증권합동수사단장을 맡았다. 그해 말 김형준은 인사에서 밀려 예금보험공사로 파견된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나는 이 시기에 사업을 재개했다. 회사 이름은 ‘KK게임즈’이다. 이 시기 외국 출장을 다니면서 더 바빠졌고 오강수를 면회할 시간도 없었다.

 


 

내가 김형준을 다시 만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5월경이다. 당시 김형준은 술집 아가씨에게 빠져 있었다. 나는 김형준에게 수차례 헤어지라고 요구했지만, 김형준은 좀처럼 정리하지 못했다. 급기야 2015년 가을쯤 김형준은 아가씨를 케어해야겠다며 오피스텔 보증금과 생활지원금을 요구했다.

 

통상 뇌물을 송금하면 차명계좌를 이용한다. 하지만 매출 100억 원이 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너무 바쁜 나머지 회사 경리에게 KK게임즈 법인계좌를 쓰도록 했다. 1500만 원은 회사계좌로 2월 3일, 3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보냈다. 경리에게는 ‘김형준 대여금’이라고 적도록 지시했다. 이게 바로 발단이 됐다.

 

당시 KK게임즈 대표이사는 고교 동창인 한수찬였다. 게임 개발업체인 KK게임즈에 중국 샤오밍 전자제품 판매를 제안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잘 나가던 KK게임즈는 한수찬이 무리한 경영을 하면서 거래업체들 항의가 잇따랐다. 한수찬은 업체를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김형준과 좋은 방향으로 해보겠다며 한수찬을 달랬다.

 

2016년 3월 말 김형준에게 카톡으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도 최근에 머리 아픈 일이 생겨서... 우리 유통사업부 대표 한수찬이 업무상 배임횡령하고 잠적했다. "

 

 "뭔 소리야?? 우리 동기? 자네까지 문제되는 것은 없는 것이지?"

 

"나야 그렇지만 회사에 손실이 커. 38억이야. 업체에서 돈 받아먹고 그랬더라고."

 

한수찬은 이사회 결의로 대표직을 잃는다. 2016년 4월 한수찬은 내 핸드폰에 저장된 회사 지출 및 자금현황 보고 자료를 가져가 버렸다. 한수찬이 가져간 자료에 내가 ‘김형준 대여금’으로 적시한 1500만 원 내용도 있었다. 나는 거래업체를 찾아가 자료를 회수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으려 했으나 돌려받지 못했다.

 


 

4월 16일 서울에 있는 한 호텔 커피숍에서 김형준을 만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한수찬이 나를 횡령으로 고소한 사건들이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있었다. 거기에는 김형준이 1500만 원을 횡령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김형준은 변호사 박수종을 ‘형사사건 베스트’라며 만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박수종은 2010년 내가 구속됐을 때 고소인 측 대리인이었다. 또 나는 이미 선임한 변호사도 있었다.

 

김형준은 자신이 마련한 2000만 원을 박수종에게 건네며 일을 부탁했다. 자기 비리가 얽힌 만큼 그 일을 처리하는 명목이라고 생각했다.

 

▲ 뉴스탸퍄 방송 화면 캡처. 오른쪽이 박수종 변호사

박수종은 ‘셀프 고소’를 제안하며 자기 방식을 강요했다. ‘셀프 고소’는 서울서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여러 형사사건을 고양지청으로 이송해 처리하려는 방법이다. 고양지청 차장검사가 김형준 동기라고 했다.

 

나는 피해 거래업체 가운데 한 곳을 물색해 합의금 4000만 원을 건네며 나를 고양지청에 고소하도록 부탁했다. 그 업체 사장은 내가 부르는 대로 고소장을 작성했다. 2016년 4월 22일 고양지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박수종에게 고소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김형준은 고소장이 접수되자 사건이 배당되기 전에 고양지청 차장검사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확인할 길은 없으나 이때부터 김형준은 자기 대신 박수종을 통해 연락하라고 했다. 나중에 수사 과정을 고려하면 부적절하다는 게 이유다. 그 후 김형준과 직접 연락할 수 없었다. 박수종은 변호사 선임계를 작성하자고 했다. 자기는 법무법인 처음 소속이므로 고양지청에서 일을 보려면 처음 명의로 고양지청에 정식 선임계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5월 2일 법무법인 처음과 변호인 선임서를 작성했다. 이후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서울서부지검에 한수찬이 고소한 사건은 고소인 한수찬이 먼저 조사를 받고 나서 6월 20일 내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될 예정이었다. 그전에 고양지청으로 이송돼야 했다. 김형준에게 수차례 전화했으나 답이 없었다. 6월 17일 김형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 연락이 없어 실망이다. 어쩔 수 없이 문자 보낸다. 난 진짜 친구라 생각했는데 긴말하기 싫다. 박 변호사가 내게 해준 말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니가 날 도와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나도 알아봤고. 나는 지금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 내가 할 것은 내 가족이 그나마 살 수 있는 돈을 최대한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해서 보내 준 천오백만 원은 아래 계좌로 오늘 6시까지 송금하거라. 내 집사람 신한은행 아무개. 누구든 보내기만 하거라. 이것으로 너와 나는 정리하자. 박 변호사는 니가 알아서 정리하거라. 너에게 피해가 없도록 처리할 테니 더 실망하게 하지 말거라.

 

그리고 박수종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 변호사님 저는 이제 삶에 대한 미련도 없습니다. 형준이에게 제가 보낸 돈 보내라 문자 보냅니다. 형준이랑 통화하세요. 그간 감사했습니다.

 

김형준은 연락이 없었다. 6시까지 입금된 것도 없었다. 속상했고 6월 20일 예정된 조사가 두렵기도 했다. 판단이 서지 않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취기가 오르자 김형준에게 문자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 형준아 너 연락도 없고 입금된 것도 없다. 내가 빌려준 돈도 못 받으니 병신이구나. 오케이. 알았다. 변제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내가 알아서 할게. 나쁜 새끼

 

그랬더니 김형준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외국 출장 중이며 첫 조사가 있는 20일 귀국해 돈도 보내준다고 했다. 1500만 원은 박수종에게 처리하라고 이야기할 테니 따라주기 바란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자 박수종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첫 조사를 받는 20일 오전에 15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변호사 선임료를 돌려받는 모양새를 취하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한수찬이 나를 서부지검에 횡령으로 고소하면서 거기에는 김형준이 1500만 원을 횡령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검찰이 나를 조사하면 이 내용을 확인할 게 분명했다. 이를 박수종에게 선임료를 준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박수종과 통화가 끝나자 김형준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 지금 박변 전화왔어. 월요일에 내 계좌로 보낸다는데 알았고, 형준아 다 내가 떠 앉고 갈 테니 그리 알아라.

 

그렇게 법무법인 처음에서 영수증을 작성하고 돈을 돌려받았다. 김형준에게 이야기한 대로 일처리 다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첫 검찰 조사에서 담당검사(박정의)는 한수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이 부분을 물어봤다. 나는 소주와 맥주 마신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배신감도 밀려왔다. 담당검사는 박수종에게 사건을 고양지청으로 이송해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송 사유가 고양지청으로 가야 내가 더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의 검사는 박수종이 나를 험담하며 다닌다고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변호사를 선임했음에도 다 알아서 한다는 말만 믿고 3개월을 그냥 날린 셈이었다.

 

결국, ‘셀프 고소’는 실패했다. 서울서부지검 주임검사가 사건 이송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흘 뒤 고양지청 사건이 서부지검으로 이송된다는 문자가 왔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나는 김형준을 의심하며 불쾌한 심정을 표했다. 검찰 조직을 향한 적대감도 커졌다. 2010년 억울하게 구속당한 적도 있어 더욱 그랬다. 담당 검사는 이런 말도 했다.

 

“친구끼리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고 여자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인데 뭐가 문제냐?”

 

6월 27일 김형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김형준 비위 내용을 담은 ‘수사검사 재배당민원요청서’ 사진도 첨부했다.

 

- 형준아 나 어차피 죽는 거 너무 화가 나서 박정의 검사에게 수사 안 받으련다. 지난 3개월간 나를 가지고 논 거고.

 

30년 지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김형준은 전화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 안 해서 그렇지 오죽하면 고양지청 차장 만나고 수차례 그거 어떻게 해보려고 하고 지금 서부서 그거 뭐야 주임검사 위에 있는 부장검사 따로 만나 친분도 만들어놓고 이래 저래 작업을 하고 있는데 너도 잘 알지만, 28기 부장검사 뭐야. 그 위에 부장. 내가 부장검사들과 자연스럽게 안면 트려고 다른 서부 부장들 다 불러서 밥 먹었어. 왜 그랬겠어? 내가 지금 할 일 없어 그랬겠어? 내 돈 써가면서? 그리고 주임검사도 마찬가지고, 내가 왜 서부 부장검사들 다 불러서 여의도에서 메리어트 호텔 식당까지 불러서 밥을 사 먹이면서 부장검사 한 명 때문에 1부장부터 공안부장, 관련된 부장 다 불러서 밥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주임검사도 얼마나 머리를 썼겠어? 불러서 밥 먹이고 그래야 하니까. 울산에 있는 친한 검사도 불러서 3-4명 엮어서 밥 먹이고 그거 왜 그러겠어?”

 

이렇게 나를 설득하면서 김형준은 휴대폰을 없애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먼저 휴대폰을 없애라고 한 쪽은 박수종이었다. 휴대폰에는 그동안 김형준에게 향응을 제공했던 내용 등이 담겨져 있었다. 이 무렵 김형준을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얄팍한 기대는 있었다. 내 휴대폰 중 어떤 것은 박살 냈고, 어떤 것은 초기화 해 동생이 쓰도록 했다.

 

하지만 최소한 사실을 밝힐 자료가 필요했기 때문에 일부 자료는 캡쳐해 새로 구입한 휴대폰으로 옮겼다. 그래서 김형준과 관련된 2015~2016년 자료 일부가 지금 이렇게 남았다. 당시 나는 서부지검 조사 강도가 높아 긴급체포될 수 있다는 걱정에 휩싸였다. 사업에 투자한 것을 회수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박수종도 긴급체포를 피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했다.

 

 

▲ 발로 뛰는 김희란 변호사 블로그 사진 인용

7월 26일 서부지검에서 두 번째 조사받는 날 김형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 형준아 너도 지치지? 나도 지친다. 박수종 변호사와 통화했는데 오늘 긴급체포 안 하는 것 백 프로 확신 못하고 검사가 사건을 중하게 받아서 구속은 피하기 어려울 거라 이야기했다. 그럼 나는 어쩔 수 없다. 니가 나를 최소한도 지켜주지 못하니 나는 오늘 들어가지 않을 거다. 저번에 보낸 문건과 증거자료 등등 대검에 보내고 언론에 배포할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아무 아쉬움도 없다. 나는 모든 걸 다 잃고 간다. 너 초임검사 시절부터 지난 3월까지 너 술 사준 것만 해도 수억이다. 나는 그랬는데 너는 나를 왜 최소한도로 지켜주지 못하니? 앞으로 2주만 내게 더 시간이 있으면 되는데. 니가 오늘 긴급체포 없을 거라고 확신이 있으면 9시까지 걱정 말라고 연락 주라.

 

김형준은 전화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2차 조사를 받기 위해 서부지검에 출석했다. 무사히 조사를 마쳤고 긴급체포도 없었다.

 

대신 2016년 8월 16일 서부지검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8월 19일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8월 30일 1차 구속 피의자신문기일이 잡혔다. 예감했던 대로 김형준은 담당 검사와 협의해 나를 구속하는 조치를 택했다.

 

제 식구 감싸기가 이런 것이구나 싶으면서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구속 피의자신문기일인 30일 아침, 기자를 만나 자료를 모두 넘기며 인터뷰했다. 기자는 9월 5일 조간 기사로 시작해 모두 6회에 걸쳐 보도하기로 약속했다.

 

▲ 뉴스타파 방송 화면 캡처

 

8월 30일 예정이었던 피의자신문기일은 9월 1일로 연기됐다. 당일 아침 예정 시각에 나는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박수종에게 소회를 적어 문자로 보냈다.

 

- 형준이가 자기에게 진심으로 사과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사과가 없어서 본인이 이렇게 한 것이다.

 

그러자 박수종은 김형준에게 문자 메시지로 사과문을 받아 내게 전했다. 김형준은 추가 보도가 나오지 않게 도와달라고 했다. 이튿날 나는 박수종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 낼 연락해서 모든 자료가 담겨져 있는 제 핸드폰 자체를 넘겨드릴게요. 그리고 저는 진술서를 써서 한겨레 등에 보내겠습니다. 제가 다 안고 가겠습니다. 다만 중간에 넘길 때 저도 살아야 하니 돈 더 준비하세요.

 

박수종은 당일 2000만 원을 내게 송금했다. 나는 기자에게 이처럼 거래하고자 했던 사실까지 알려줬다. 이 추악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후폭풍이 불어닥쳤다.

 

김학성을 고소했던 한수찬도 “김형준이 검사로서 김학성으로부터 향응 등을 제공받은 것은 아주 나쁜 일이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뉴스파타 방송 화면 캡처

김학성 사건을 수사했던 서부지검 수사라인들도 대검 감찰 대상이 됐고 김형준은 9월 29일 뇌물수수와 증거인멸교사로 기소됐다.

 

재판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수찬이 태도를 바꿔서 김형준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수찬 시선으로 이 사건을 다시 본다.

 

 

(다음 2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 한수찬 시선)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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