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제복 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경찰청장까지)

 

 

외사 수사과(당시 외사3과)는 인터폴에 보내는 공문을 담당한다. 외국으로 도망간 피의자 범죄 내용은 외사과로 들어온다. 외사과 직원은 영어로 사건 개요를 작성해 피의자가 도망간 국가로 보낸다. 조현오가 외사3과장일 때 좋은 소식이 들렸다. 2004년 4월 선배인 허준영이 경찰청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허준영은 2005년 1월 경무관 인사를 단행했다. 조현오도 인사 대상이었다. 경무관이 되면 보통 지방청 차장급으로 출발한다. 당시 경무관 ‘3대 보직’은 정보심의관, 외사관리관, 감사관이었다. 여기에 서울청 경무부장과 정보관리부장까지를 ‘5대 보직’이라고 한다.

 

조현오는 외사관리관이 됐다. 관리관, 심의관, 기획관 등 ‘관’이 붙는 직책은 기관 고유 업무가 아닌 기관장 보좌 역할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당시는 업무성격과 관계없이 주로 ‘국’은 치안감이 ‘관’급 부서는 경무관이 맡는 식으로 구분됐다.

 

허준영은 조현오에게 몇 가지 과제를 맡겼다. 외사국 승격과 더불어 주재관 인원수를 30명 늘리라고 지시했다. 당시 교통관리관실도 교통국으로 승격하고자 애썼다. 먼저 움직인 교통관리관실을 제치고 외사관리관실이 승격하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모양새도 나빴다. 주재관 인원을 갑자기 30명이나 늘리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런데 조현오는 모두 해낸다. 2006년 외사관리관실은 외사국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정작 일을 시킨 허준영은 그 전에 경찰청장에서 물러난다. 2005년 11월 15일 여의도에서 한미FTA 반대 집회 중 농민 두 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2006년 2월 10일 이택순이 경찰청장으로 취임한다. 이택순은 조현오에게 ‘감사관’을 맡기고자 했다. 감사관은 감사·감찰 업무를 맡는다. 주변 압력을 견뎌내야 하고 뒷거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택순은 신중하게 적임자를 수소문했고 조현오를 선택한다.

 

2006년 말 조현오는 치안감으로 승진한다. 보직은 경비국장이었다. 2007년 4월 한화 회장인 김승연이 보복 폭행을 저질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5월 한화 고문과 이택순이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다. 경찰청장 로비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이택순은 자기가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검찰에 수사를 맡길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다. 경찰청장이 경찰 치부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게 맡긴다는 건 조직 안에서 용납되기 어려웠다. 경찰대 1기 출신인 황운하 총경은 경찰 내부 게시판에 청장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고 징계를 당했다.

 

경찰 내부 논의체인 전국지휘관 회의에서도 같은 의견이 나왔다. 전국지휘관 회의에는 지방청장, 국관, 본청 직속 기관장 등이 참석한다. 치안감 급은 대부분 참석한다고 보면 된다. 이 회의에서 이택순에게 퇴진을 권한 사람은 네 명이었고 그중 한 명이 조현오였다.

 

하지만, 네 명 가운데 이택순과 매일 마주치는 사람은 조현오뿐이었다. 나머지 세 명은 근무지가 서울 밖이었다. 이택순은 조현오를 ‘시저를 찌른 브루투스’라고 빗대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경찰청 직원은 청장 눈치 때문에 조현오를 멀리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현오를 다독인 사람은 종합경찰학교장 김석기였다. 적어도 김석기는 조현오를 인정했다.

 

2008년 2월 11일 어청수 경찰청장이 취임한다. 조현오는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보직을 옮긴다. 그해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열린다. 광화문 집회가 길어지면서 전국 전·의경 200개 중대가 집회에 투입된다. 청와대 바로 앞인 내자동 로터리가 뚫리자 어청수는 적잖이 당황했다. 어청수는 7월 22일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김석기에게 맡긴다.

 

2009년 1월 18일 서울지방경찰청장인 김석기는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됐다. 김석기는 1월 29일 어청수가 퇴임하자 청장 역할을 맡는다. 공식 임명은 되지 않았지만 경찰청 수장 자리를 비워둘 수 없었다. 김석기는 치안정감 명단에 조현오를 넣는다.

 

<서울지방경찰청장 주상용. 경찰대학장 김정식, 경찰청 차장 이길범. 경기지방경찰청장 조현오>

 

하지만, 김석기는 2월 10일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한 달 뒤에 사퇴하면서 경찰청장에 오르지 못했다. 다음 청장 후보군에 눈길이 쏠렸고 조현오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그러나 치안정감이 되고 갓 일주일을 넘긴 조현오는 준비되지 않았다.

 


 

2009년 2월 15일 새 경찰청장에 해경청장인 강희락이 임명된다. 이후 조현오는 강희락 청장에게 견제를 받았다고 한다.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쌍용자동차 노조 진압으로 청와대 인정을 받았다. ‘용산참사’처럼 사망자 없이 정리했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조현오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임명된다.

 

조현오는 당시 서울청장 자리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경비통이 필요했다. 2010년 11월 11일 G20 서울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찰은 요인 보호를 위한 시뮬레이션을 끝없이 반복한다. 그 책임자가 조현오였다.

 

2010년 8월 9일 조현오는 청와대 측으로부터 경찰청장으로 내정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8월 14일, KBS는 5개월 전 조현오가 서울경찰청 기동대 지휘관 내부 강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를 언급했다고 보도한다. 8월 18일 변호사 곽상언(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은 ‘사자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다.

 

경찰 안에서는 조현오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현오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조현오는 8월 30일 청와대에서 경찰청장 임명장을 받는다.

 

조현오에게 ‘빽’은 자신을 인정하고 등용한 상사였다. 하지만, 조현오가 자신을 인정한 상사 힘만 빌려 경찰청장이 될 수는 없었다. 역시 ‘관운’이 받쳐줘야 한다. 그렇다면, 그 ‘관운’이라는 게 과연 뭘까.

 


 

허준영, 김석기가 자신을 아낀 것처럼 조현오도 ‘차기 경찰청장’ 후보를 키우고자 했다. 조현오는 2011년 11월 능력과 인품을 모두 갖춘 차기 경찰청장 후보들을 치안정감으로 전진 배치했다. 그는 그 치안정감 중에서 경찰청장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종준 경찰청 차장, 이강덕 서울지방경찰청장, 이철규 경기지방경찰청장, 강경량 경찰대학장, 서천호 부산지방경찰청장>

 

조현오가 기대했던 미래 청장들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경찰청 차장인 박종준은 2011년 12월 말 사퇴한다. 2012년 총선 출마를 위해서였다. 이철규(간부후보 29기)는 2012년 2월 29일 제일저축은행 금품수수 건으로 구속된다.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복귀는 할 수 없었다. 이철규가 구속되면서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서천호가 맡는다. 하지만, 불과 1개월 뒤에 ‘오원춘 사건’이 터졌다. 조현오는 이 사건 책임을 지고 4월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뜻을 밝혔다. 하지만, 서천호에게 ‘오원춘 사건’은 악재로 작용했고 그 역시 경찰대학장으로 경력을 마감한다. 이강덕, 강경량 모두 경찰청장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조현오가 자진사퇴를 했다면 봉하 쪽에서 차명계좌 발언을 더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현오는 누구보다 경찰청장이 되고 싶었다. 인사청문회에 나선 조현오는 의원들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존경하는 위원님, 저에게 경찰청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하여 경찰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겠습니다.”

 

참모는 지휘관과 달리 자기 색을 드러낼 수 없다. 조현오가 참모시절 건의를 하면 경찰청장들은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하며 한 가지 충고를 덧붙였다.

 

“나 혼자 잘 되려고 이러는 줄 아느냐?”

“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너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다.”

 

조현오는 전임자 조언을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경찰청장 해보니까 다 뻥이야.”

 

경찰 조직에서 가장 큰 권한인 인사권과 감찰권은 경찰청장에게 있다. 한 경찰은 조현오를 ‘황야의 무법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자기 하고 싶은 것은 원 없이 다 누렸다는 얘기다.

 

 

다음에는 조현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전·의경 가혹행위 근절’ 과정을 짚어보겠다.

 

(다음 5화-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부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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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3화. 조현오의 관운(경정에서 총경까지)

 

 

조현오가 처음 맡은 직무는 부산 금정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이다.

 

생활안전과 주 업무는 범죄 예방과 검거로 파출소와 지구대가 하는 일을 떠올리면 된다. 1990년 말은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때다. 범죄가 잦은 유해업소 단속이 생활안전과 주요 업무였다.

 

주당 80~100시간을 근무하던 때다. 경찰은 야간 근무도 해야 했다. 같은 여건 속에서도 성실하게 근무하는 직원이 있었고 순찰 시간에 산자락이나 주유소 뒤편에 운전석을 뒤로 젖혀 자는 직원도 있었다. 조현오는 교육과 순시를 병행하며 조직을 다그쳤다.

 

 

 

경찰 지휘부가 단속 실적을 다음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조현오가 원하는 보직은 형사과장이었다. 경찰서 형사과장은 그가 외무부 생활과 바꿀 만한 ‘로망’이었다.

 

경찰서 과장이 현장을 챙기니 파출소장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해 조현오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실적과 성과를 낸다. 하지만, 그 대가는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조현오는 부산동부경찰서 보안과장(당시 대공과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보안과는 공안 업무, 즉 안보 분야를 담당한다. 이른바 간첩을 잡는 곳인데, 조현오가 가장 원하지 않는 보직이었다.

 

조현오는 좌절감과 분노에 휩싸였다. 주변에서는 ‘돈’과 ‘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쑥덕거렸다. 결국 조현오는 경찰 고위급을 잘 아는 지인을 통해 빽을 썼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부산동부경찰서 형사과장에 발탁된다. 그런데 조현오는 빽을 쓰면 돈을 갖다 줘야 하는 당시 관례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냥 고맙다는 전화 한 통만 넣었는데, 인사성이 없다는 말 뜻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경정 6-8년차가 되면 조현오도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 승진을 눈앞에 둘 것이다. 문제는 총경 이후였다. 총경까지는 부산에서 승진할 수 있지만 경무관으로 승진하려면 서울에서 근무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승진 경쟁을 벌일 계장들이 조현오가 서울로 오는 것을 반길 리 없다. 조현오는 총경까지가 한계라는 생각에 서울 근무를 포기했다.

 


 

1995년 1월 느닷없이 사건이 터졌다. 누군가 경찰 승진시험 문제지를 몰래 유출하다 적발당한 것이다. 문제점을 보완해 시험 관리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야 했다. 경찰은 경무국장, 교육과장, 고시계장 등을 교체하면서 적임자를 찾아야 했다. 당시 박일룡 경찰청장은 전국을 뒤져 가장 청렴한 고시 출신 선발을 지시했다. 형사과장 시절 수사비 전횡을 끊어낸 조현오가 눈에 띄었다. 조현오는 경찰청 고시계장으로 근무하면서 시험 과목, 응시 방식, 채점 방식 등을 모두 전산화했다.

 

 

1996년 조현오는 치안비서실 근무를 맡는다. 이때 이택순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형사정보를 담당했다. 신참인 조현오는 교통, 외사, 보안, 해경 등 잡다한 영역을 맡았다. 상사는 빈번하게 조현오 업무 능력을 문제 삼았다. 조현오 역시 정보업무가 힘들었다.

 

치안비서관과 경찰청 정보국장이 모두 승진 대상이면 알력이 생길 수 있다. 알력이 생기면 정보 제공이 수월하지 않다. 또 정보 분야는 인적 네트워크가 뒷받침돼야 한다. 당시 경찰 조직은 간부후보생이 잡고 있었다. 경찰대 1기 출신은 1985년 경위로 시작해 1996년 경정으로 승진, 경찰청 계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조현오는 상사에게 구박받으면서 이택순과 가까워졌다.

 

1997년 조현오는 총경으로 승진했다. 총경으로 승진하면 보통 지방청 참모를 1년 정도 하고 서장으로 나간다. 일반적으로 처음 나가는 지역은 ‘3급지’인데 경찰서 직원은 100명 정도다.

 


 

조현오가 총경이 되면서 맡은 첫 직무는 경남지방경찰청 경비과장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던 당시 울산 현대자동차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 바람은 심상찮았다. 1998년까지 울산은 경남지방경찰청 담당 지역이었다. 당시 조현오는 상황을 주시하며 경비 대책을 마련했다. 현대자동차 직원이 태화강 둔치에 수만 명이 모여서 궐기대회를 열었고 조현오는 집회 현장에 나갔다.

 

당시 울산 지역 경찰서는 모두 ‘1급지’로 서장들은 조현오보다 나이가 많았다. 주변에서는 신참 경비과장인 조현오가 나이가 많은 서장에게 무전 점호하는 것을 말렸다. 누가 봐도 욕먹을 짓이었다. 하지만, 조현오는 업무와 관련된 일에 대해 양보가 없었다. 이런 당찬 모습을 눈여겨본 전병용 경남지방경찰청장은 김세옥 경찰청장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1급지’인 울산남부경찰서장에 조현오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것이다.

 

울산은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됐다. 도시가 커지면 그만큼 치안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 많고 유흥업소가 밀집한 도시에는 살인, 강도, 성폭력 사건 발생이 잦다. 대가를 받고 오락실이나 룸살롱 등 업주를 봐주는 경찰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울산은 경남지방경찰청이 있는 창원과 멀었다.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통제하며 장악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조현오가 울산으로 오기 전날인 6월 30일, 현대자동차 사측은 노동자 수천 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은 울산동부경찰서 관할이다. 현대자동차 집회는 대치만 있었을 뿐 격렬한 상황은 아니었다. 조현오 서장은 경비를 담당했다. 그 사이 당 노사정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노무현 국민회의 부총재가 7·8월 울산을 방문했다. 8월 말 277명을 정리해고하는 것으로 최종 노사 합의안이 나왔다.

 

현대자동차 사태가 진정되자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해고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찰 안에서 바로 소문이 돌았다.

 

“야, 너 조현오 서장 알아?”

“네, 좋으신 분입니다.”

 

“야! 조 서장이 다 자르고 있어.”

“돈을 먹었으니까 잘리겠지요. 그 분은 돈 먹는 거 봐주지 않아요.”

 

“야, 그래도 너무 캐더라.”

 

조현오는 울산남부서장으로 근무하면서 부패와 비리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조현오가 근무하는 1년 동안 음주운전 사망자는 120명에서 70명으로 줄었다. 게다가 울산남부서 관할 3개 검문소 실적이 경남 전체 25개 검문소 가운데 1·2·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3급지인 사천경찰서장으로 발령받는다.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울산남부서에서 거둔 성과는 아무리 봐도 3급지 발령 근거가 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현오는 이번 인사가 청탁을 하지 않아 생긴 결과라는 말을 듣게 된다.

 

 

조현오는 경남 사천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경무관으로 승진하려면 서울 근무가 반드시 필요했다. 경찰청이나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장, 형사과장, 정보과장 등이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조현오는 그런 자리로 자신을 끌어줄 인맥이 부족했다.

 

2002년 1월 조현오는 경찰청 입성에 성공한다. 그가 맡은 일은 ‘사이버테러대응센터장’이었다. 당시 조현오는 경찰청 내 총경 가운데 딱히 아는 얼굴이 없었다. 서울 근무 경험도 적었고 고시 출신 중에서도 아주 드문 외무고시 출신이었다. 조현오가 인사 문제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같은 외무고시 출신인 허준영이었다.

 

조현오는 다음 보직을 기다렸다. 그는 곧 서울지역 경찰서장을 맡게 되는 순서였다. 총경 인사권은 경찰청장에게 있다. 조현오는 당시 최기문 경찰청장이 자신을 탐탁잖게 여겼다고 했다. 2003년 4월 조현오는 서울종암서장으로 부임한다. 아무도 견제하는 이가 없는 자리였다. 경쟁자들이 선호하는 보직은 종로서, 강남서, 서초서, 영등포서, 남대문서, 중부서, 송파서 서장이었다. 경무관 승진은 좋은 보직을 거쳐 실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서울종암서장 부임 1년째가 되자 조현오는 다음 보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소식이 들렸다. 허준영 치안비서관이 승진해 2004년 1월 서울경찰청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이어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을 직위공모한다는 공지도 떴다. 조현오는 당장 신청했고 허준영도 거들었다. 하지만, 최기문 경찰청장은 승낙하지 않았다.

 

 

조현오는 그 사이 특수수사과 면접도 했다. 당시 특수수사과는 청와대 조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청와대가 원하는 수위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멈췄다. 면접 장소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었다. 승진이 급했던 조현오는 최대한 충성심을 보이고자 했다. 하지만, 특수수사과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조현오는 최근에도 낙방 이유를 알지 못했다. 취재 과정에서 다른 경로를 통해 당시 조현오가 탈락한 이유를 들었는데, 청와대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연달아 떨어진 조현오는 허준영에게 체념하듯 말했다.

 

“기동대장으로 갈까요?”

“그러지 말고 다음 인사 때 움직여라.”

 

당시 경비 담당인 기동대장(지금은 기동단장)은 총경 승진을 바로 한 사람이 가는 자리였다. 조현오가 서울종암경찰서에서 1년 반을 보내자 경찰청 외사수사과장(당시 외사3과장) 직위 공모가 공지됐다. 누가 뭐래도 조현오는 외무고시 출신이다. 그가 외사수사과장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2004년 7월 조현오는 경찰청 외사수사과장(당시 외사3과)이 돼 미근동으로 돌아왔다. 현재 경찰청 과장(총경)은 모두 46명이다. 경찰청도 사람 사는 동네라 경찰청 안에서 유명한 사람은 곧잘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특히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과장이 주요 비난 대상이었다.

 

조현오는 그런 쪽으로 포함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식당에서 조현오 과장이 지나가면 직원들은 “자장면을 시켜먹어도 독상을 받을 분”이라고 소곤거리곤 했다. 그만큼 권위적이고 편하게 다가가기는 어려운 상관이었다.

 

 

(다음 4화-조현오의 관운, 경무관에서 경찰청장까지)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부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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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2화. 장자연 사건

 

 

필자가 다시 조현오를 만난 곳은 서울시청 근처 코리아나 호텔 식당이었다. 이곳에서 조현오는 경찰청장 시절 당시 청와대 ◯◯ 수석과 언쟁이 있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칠 때쯤 <나꼼수>에서 주진우 기자가 망쳤다고 주장한 사건이 떠올랐다.

 

“여기 왔으니 안 물어볼 수 없네요.”

 

2009년 ‘장자연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경기지방경찰청장이 바로 조현오다.

 


 

2009년 3월 7일 배우 장자연 씨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시 결과 타살 혐의점은 찾지 못했다. 경찰 결론은 ‘우울증’으로 말미암은 자살이었다.

 

연예인 자살로 마무리될 사건은 매니저 유장호 씨가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문건은 소속사 대표 김 씨가 성접대를 강요한 정황을 드러냈다. 장자연 씨 유족은 매니저 유장호 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더불어 소속사 사장 김 씨 등도 고소했다.

 

조현오는 “경찰 자존심을 걸고 철저히 수사하겠다”라고 밝혔다. 자살로 매듭지은 사건을 재수사하기 위한 본부가 분당경찰서에 설치됐다. 실력이 출중한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장까지 투입됐다.

 

사람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문건에 나온 ‘조선일보 방 사장’이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코리아나 호텔 방용훈 사장’, ‘스포츠조선 부사장 방성훈’ 등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방 사장은 그저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성매매 혐의는 증명되지 않았고 당연히 처벌도 없었다. ‘부실 수사’라는 딱지가 붙기 시작했다. 한 정치인은 ‘장자연 사건’ 진실을 은폐하는 주도자로 조현오를 지목했다. 조현오가 이 사건에서 주목했던 것은 뭘까.

 

“장자연 변사 사건 수사에서 핵심이 뭘까요?”

 

“자살이냐 타살이냐?”

 

“그렇지요. 타살 혐의가 없으면 경찰은 자살 동기까지 반드시 밝혀야 하는 부담은 없어요. 게다가 장자연 씨가 죽은 상황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가 혐의를 부인하면 진술 신빙성을 어떻게 밝혀내요?”

 

경찰은 국내 언론 보도 행태에 나름 불만이 있다. 경찰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내용을 극성스럽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찰이 장자연 사건 수사가 부실하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현 오니까 그 정도 밝혀낼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당시 장자연 씨 소속사 대표 김 씨는 일본에 있었다. 김 씨는 이미 2008년 12월 일본으로 출국했고 사건이 터지자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용의자가 경기지방경찰청 관할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 씨를 어떻게 잡아들여야 할까.

 

결국, 일본 경찰 손을 빌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외국 경찰 힘을 빌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 방법으로 국제기구인 인터폴(Interpol)을 거치는 방법이다. 경찰청 외사국을 통하면 되는데 역시 시간을 제법 들여야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시간보다 더 큰 문제가 따로 있다. 어느 나라 경찰이든 우선순위는 자국 범죄다. 일본 경찰이 한국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인터폴로 수배가 들어온 범죄 사안이 살인이나 국제적 사기 혐의도 아니다. 김 씨에 대한 혐의 내용은 ‘강요와 상해’다. 일본 경찰이 신경을 곤두세울 만큼 시급한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두 번째 방법이 바로 주재관을 통하는 것이다. 주재관으로 나간 한국 경찰이 평소 일본 경찰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이럴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사건 용의자를 빨리 검거할 수 있도록 일본 경찰 관심을 끄는 게 주재관 역할이다. 김 씨를 잡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2009년 3월 30일 경기지방경찰청은 외교부에 여권 반납 명령을 의뢰했다. 김 씨를 불법체류 신분으로 만들어 압박하는 것이다. 결국, 김 씨는 6월 24일 일본 도쿄에 있는 P호텔에서 붙잡힌다.

 

지휘관이 모든 내용을 꿰뚫고 지시하는 것과 아랫사람이 파악한 내용대로 끌려가는 것은 차이가 크다. ‘장자연 사건’은 전자였다. 지휘관이 외무고시 출신으로 외사경찰 업무에 능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무고시 출신이 무슨 이유로, 어떤 방법으로 경찰에 온 것일까?

 


 

조현오는 어릴 적부터 제복을 동경했다. 까만 경찰복을 입고 금테 두른 모자를 쓴 부산 동래경찰서 직원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당시 조현오가 고등학생 시절 즐겨 본 연재만화에서 경찰서 형사과장은 권력의 정점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가정 형편 때문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다. 1981년 외무부 근무를 시작한 조현오는 그곳에서 선배인 허준영을 알게 된다. 88 올림픽을 계기로 경찰은 ‘국제화’를 위해 외무고시 출신을 수혈하고자 했다. 이때 조현오는 특채로 선발된다. 허준영은 그보다 앞서 경찰로 자리를 옮겼다.

 

경찰서 계급 구조는 ‘순경-경장-경사-경위-경감-경정-총경’이다. 고시 출신은 교육을 거쳐 경정으로 시작한다. 즉 형사과장, 생활안전과장, 경비과장 같은 참모 역할이다. 하지만, 지방청으로 가면 직급은 한 단계 낮아진다. 일선 지방청 계장급은 경정이다. 총경은 일선 경찰서에서는 ‘서장’이지만 지방청에서는 참모인 ‘과장’이 된다.

 

경찰대와 간부후보생 출신은 ‘경위’에서 시작한다. 조현오는 간부후보생 39기와 함께 교육을 받았다. 실습교육 장소는 부천경찰서였다. 부천경찰서 형사계장(경감)은 조직폭력배를 상대하다 무릎에 남은 흉터를 보여주곤 했다.

 

당시 조현오는 저런 멋진 형사보다 한 계급 위로 갈 수 있어 뿌듯했다. 19년 뒤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다. 조현오를 가르쳤던 형사계장은 장자연 사건에 투입된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장으로 만나게 된다.

 

조현오 첫 보직은 부산 금정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이었다. 직원들은 외무고시 출신 과장이 신기했다. 사실 경찰 입문 교육을 받을 때부터 고시 출신에 대한 대접은 남달랐다. 그리고 그 후로도 조직 내 출세 가도를 달렸다.

 

조현오는 자신이 좋아서 경찰을 선택한 만큼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경찰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조현오에 대한 직원들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이 같은 평가는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이 한몫을 했다.

 

한 지방청에 근무하는 과장이 들려준 경험담이다. 이 과장은 조현오 청장과 일을 하면서 초반에 눈 밖에 났다.

 

“보고서를 들고 가니 왜 들어오느냐고 바로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계장과 광수대장을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내 보고는 받지 않겠다는 뜻이었지. 다른 두 명에게 보고를 받는데 너무 민망하고 부끄럽고….”

 

이후에도 조현오가 직원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장면은 종종 목격됐다.

 


 

반대로 서울구치소 수감 중에는 어쩌다 마주친 해고노동자들로부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들었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운동시간에 무심코 지나가다가 조현오 어깨를 살짝 건들기라도 하면 그 사람에게 경고를 보내는 이가 있었다.

 

“운동시간에 젊은 사람이 다가와서 깍듯이 인사를 하더라고요. 같이 목욕하기 전에는 그냥 예의 바른 젊은이인 줄 알았지요.”

 

그는 조폭이었다.

 

역설적으로 조현오는 경찰 시절 조폭을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부산청장 시절 조폭이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을 막았고 자금줄도 차단했다.

 

부산청장 시절 “조폭이 흉기를 들고 공격하면 내가 책임질 테니까 총으로 쏴버려라.”란 발언을 한 것도 그였다. 그런 그에게 조폭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현오 청장님을 제일 좋아하고요. 두 번째는 김석기 청장입니다.”

 

조현오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한참 생각하다 “화끈한 사람을 좋아하나”라며 되묻는 정도였다.

 

조현오는 경정으로 입문하여 20년 만에 경찰청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외무고시 출신이고 명석한 사람이다. 그를 결국 감옥으로 보낸 ‘차명계좌’ 발언도 우발적이라기보다 충분히 계산하고 한 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강할수록 고위직 인사의 능력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실력보다 눈치, 아부에 능해야 고위직을 차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조현오 역시 그런 의심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어떻게 경찰청장까지 올랐을까. 경정에서 치안총감까지 5개 관문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글쓴이 : 서형 seohyung224@gmail.com

 

(다음 3화-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 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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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조현오 전 청장(이하 호칭 생략)은 차명계좌 발언으로 많은 사람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겼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출소 후 2014년 말,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다녀왔다. 관련 기사에는 수행원이 3명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호의호식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2015년 2월 말, 조현오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수행원 정체를 밝혔다. 바로 그 수행원 가운데 한 명이 필자다.

 

조현오를 알게 된 것은 <나꼼수>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서다. <나꼼수>에서 다룬 조현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장자연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나꼼수 30회)’, ‘검경 수사권 조정을 검찰에 유리하게 한 장본인이고(나꼼수 31회)’, ‘디도스 수사에서 경찰 수사를 망친 장본인이며(나꼼수 32회)’, ‘경찰에 최시중 관련 첩보를 줬음에도 수사를 방해한 인물(봉주 2회)’이었다.

 

 

2013년 중반까지 조현오는 관심 밖 인물이었다. 당시 경찰을 취재 중이었고 한 형사에게 자신이 수사하던 사건을 윗선에서 덮으려던 일을 듣게 됐다. 그는 사직서를 준비하고 윗선에 들이댔다.

 

“만약 사건을 가져가면 사표를 내고 조현오 청장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사건을 묻으려던 시도는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됐다. 형사에게 ‘경찰청장 조현오’는 어떤 상징이었을까.

 

“검찰과 붙었을 때 그만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이 흔치 않거든요. 위에 눈치 안 보고 내부 비리에는 굉장히 부정적이지요. 바로 날려버려요. 숙청하듯이.”

 

이어진 경찰 취재 과정에서 접한 조현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조 파면’이라는 별명을 거론하며 독재자로 보는 시선도 있었고 인사 문제에 대한 불만은 상당했다. 반면 긍정적인 평가는 그동안 <나꼼수>에서 접했던 조현오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상반됐다.

 

“역대 경찰청장 중 허준영과 조현오를 존경해요. 아이러니한 것은 외무고시 출신들이 조직에 들어와서 비전을 줬다는 것이지요.”

 

“경찰 조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분이에요.”

 

“역대 청장 중 청와대와 관계에서 가장 강한 목소리를 냈어요. 검·경 수사권 다툼이 벌어질 때 자기에게 큰 타격이 올 수도 있어요. 통상적으로 검찰 조직은 자기 조직에 대항하거나 해를 입히면 반드시 보복합니다. 자기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상대 힘을 빼지요. 대표적인 대상이 경찰 수장이고요. 차명계좌 고소 건 외에는 걸릴 게 없는 분이잖아요. 국민이 갖는 가장 큰 이미지는 차명계좌 발언이지만 큰 줄기는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고 사명을 회피하는 사람은 아니지요.”

 

“카리스마 있어요.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이 있고 가차 없지요. ‘조 파면’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조직 내 비리를 완전히 쓸어버리면 조직은 깨끗해질 것 아니에요?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조현오> 책 표지에 멍든 사진? 그것은 이제석 디자인인데, 그런 디자인 쓴 것에 대해 쿨하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보기에는 수구적이고 권위적일 것 같지만 생각이 대단히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이들은 조현오가 차명계좌 발언으로 저평가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꼼수>가 제기한 내용이 과연 진실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사전조사를 마치면서 경찰을 주제로 글을 쓴다면 그건 ‘조현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조현오를 몹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연락처를 비롯해 그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조현오는 당시 ‘차명계좌 발언’으로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죄’로 기소돼 항소심 재판을 받았다. 이런 죄는 보통 양형이 벌금 100만 원 정도다. 항소심 재판에서 그는 차명계좌 발언 진원지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 임 씨를 지목했지만, 임 씨는 부인했다. 2013년 9월 26일 그는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다시 구속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정보가 하나도 없는 것과 소재를 알고 있는 것은 큰 차이다. 서울구치소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내용은 특별할 게 없이 평소 생각하는 바를 적었다. 하지만, 조현오는 편지를 받는 족족 찢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이 과정에서 조현오는 누군가를 한 번 믿으면 그냥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언젠가 그에게 재판기록을 요청했을 때 주변에서는 극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모든 기록을 조건 없이 보내줬다.

 

조현오는 2014년 5월 중순 만기 출소했다. 그에게 연락을 받고 만나기로 하면서 부탁한 것은 재판부가 하지 않았던 현장검증이었다. 그가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이야기를 들었다는 한 서울역 인근 호텔 식당을 현장으로 지목했다.

 

 


 

조현오는 서울청장으로 부임해 2010년 3월쯤 이 호텔 식당에서 임 씨를 만났다고 한다. 지금까지 언론은 임 씨를 MB와 독대할 수 있는 핵심 실세 가운데 한 명으로 묘사했다. 그만큼 정보력이 막강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문은 당시 임 씨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 상황을 알 수 있는 지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임 씨가 조현오를 만난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현오가 임 씨를 만났다는 식당은 호텔 지하에 있는 고급 다다미방이다. 음식 값은 1인당 최하가 10만 원 선이다. 단아한 옷차림으로 머리를 깨끗이 뒤로 동여맨 아가씨들이 음식 시중을 든다. 조현오에게 임 씨에 대한 기억을 더듬도록 했다.

 

임 씨는 음식을 나르는 아가씨에게 ‘기프트 카드(Gift Card)’로 결제가 가능한지를 물었다고 한다. 아가씨는 결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임 씨는 카드 유효기간을 두고 아가씨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조현오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결제할지 고민하다가 예의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술이었다. 막강한 정보력이 있다는 사람이 자기 상품권 카드로 결제가 되는지도 모르는 식당에 서울지방청장을 불러냈다? 애초부터 불러낸 사람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정도로 허술할까? 법정 진술도 이런 식이었다면 재판부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듯했다.

 

조현오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차명계좌’ 발언에 대해 서울지방청장 시절 내부 강의였을 뿐이고 허위 인식과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문제가 있다.

 

그는 당시 현직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다. 일반 국민들로서는 그가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발언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고위직 공무원은 그만큼 말과 행동에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가 받은 판결이 부당한 면이 있다는 점을 짚어야겠다. 조현오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는 징역 8개월로 감형됐다. 감형 이유는 경찰직 공무원으로서 끼친 사회적 공헌을 고려한 것이다.

 

경찰 안에서 조현오를 싫어하는 이도 동의하는 점이 있다. 그가 매우 청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도 있다. MB가 임명한 경찰총수이기 때문이다. 차명계좌 발언까지 했을 정도면 눈치 보기와 아부에도 능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다.

 

 

영화 라스트 캐슬(2001)

 

 

‘균형 잡힌 시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라스트 캐슬>에서 어원(로버트 레드포드) 장군은 교도소장에게 군 형무소 수감자를 대하는 태도가 왜 서로 다른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은 그들의 최악인 면을 바라보지만, 나는 최선의 면을 보고자 한다.”

 

1차 현장검증에서 조현오에게 ‘최선의 면’을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과 정치적 색채가 맞지 않다면 모두 부정적으로 색칠하는 오늘날 사회상에 대한 반발로 조현오를 다시 보게 됐다. 물론 조현오는 여러 정치적인 논란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이다. 이 글은 분명히 선의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대상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작가가 책임을 져야 할 영역이다.

 


 

조현오와 첫 만남이 끝날 즈음 2차 현장검증을 제안했다. 장소는 서울시청 근처에 있는 코리아나호텔 중식당이었다. 이곳에서 조현오는 경찰청장 시절 당시 청와대 ◯◯ 수석과 언쟁이 있었다고 했다. 한 달 뒤에 조현오와 다시 만났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는 식탁이 있는 방이었다.

 

그곳에서 청와대 ◯◯ 수석에게 어떤 일로 화를 냈는지 물었다. ◯◯ 수석이 “검찰에 차명계좌 사건이 수사 진행 중인데, 조청장이 수사권 관련해서 그렇게 강하게 발언해도 되는 건가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칠 때쯤 <나꼼수>에서 주진우 기자가 망쳤다고 주장한 사건이 떠올랐다.

 

“여기 왔으니 안 물어볼 수 없네요.”

 

코리아나호텔 사장은 방용훈이며,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형제이다. 2009년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있었던 ‘장자연 사건’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다음 제2화-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 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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