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제11화 청산가리 구입처

 


과거 청산가리는 철공 업체에서 철을 단단하게 만들 때 쓰였다. 불에 달군 금속을 청산가리에 담그면 청산가리가 녹아 금속 표면에 달라붙어 막을 형성하고, 이때 물로 빠르게 냉각하면 강도가 높아진다. 이른바 철 담금질이다. 호미나 낫을 만들 때 청산가리를 넣으면 강도가 강해져서 옛날에는 대장간에서도 사용했다.

 

하지만 강철이 나오면서 청산가리를 쓸 필요가 없어졌다. 오늘날 선박이나 비행기는 모두 강철로 만든다. 강한 철판을 가공할 때 쓰는 게 전기용접기다. 약한 쇠를 가공할 때는 산소 용접기를 사용했다.

검찰은 백경환 씨가 17년 전 동네 주민 이강춘(가명)씨에게 청산가리를 얻었다고 했다. 검찰은 이강춘 씨와 백경환 씨가 서로 잘 알던 사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강춘 씨는 당시 백경환 씨네 맞은편에 살았고 자전거 수리점을 운영했다. 17년 전 당시 백경환 씨 형제는 블록 공장 일을 하면서 트럭으로 배달도 했다. 백경환 씨는 자전거 바퀴 '펑크'를 때우려고 자전거 수리점에 종종 들렀다.

검찰은 이강춘씨가 자전거 수리점에서 산소 용접기를 사용했으므로 청산가리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백경환 씨는 사건 17년 전인 1994년 백색 가루 형태 청산가리를 신문지로 싸서 비닐봉지에 밀봉해 보관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백씨는 청산가리를 어디서 얻었을까

 


백경환 씨가 청산가리를 얻은 이유가 특이하다. 백 씨는 "농사지을 때 해충을 죽이려고 얻었다"라고 검찰에서 자백했다. 하지만 가족은 창고에 그런 위험한 물질이 17년 동안이나 보관됐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동안 손자들이 창고에 들어가 이것저것 만지면서 놀 때마다 할아버지인 백 씨는 단 한 번도 주의를 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검찰은 백경환씨의 자백이 명백한 증거인만큼 청산가리 유입경로까지 반드시 밝혀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강춘 씨의 자전거 수리점에 청산가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보기로 하자. 이강춘 씨는 1999년에 사망했기에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부인과 자식들이 아직 해당 지역에 살고 있다.

 



청산가리 공급처로 지목된 이강춘 씨 가족에게 이 사건은 놀랄 일이었다. 사건 당일 옆 마을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문에 그들은 그저 자살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뒤 백경환 씨가 용의자로 지목되자 이강춘 씨 가족은 백 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청산가리 구입처로 본인 집이 지목됐고 기자들이 몰려와 "청산가리를 썼느냐"라고 물어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자전거 바퀴) 빵꾸는 고무로 때운다"라고 받아쳤다.

백경환 씨는 이강춘 씨에게 1994년쯤에 청산가리를 얻었다. 아마도 청산가리를 한 움큼을 선뜻 줄 정도면 사이가 매우 각별했을 것 같다. 검찰도 둘이 서로 '잘 알던 사이'라고 강조했다. 이강춘 씨 가족도 당시 백경환 씨와 '잘 알던 사이'라는 것은 동의했다. 한동네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강춘 씨가 백경환 씨와 친한 사이라는 것은 부정했다. 일단 나이 차이가 너무 컸다. 호적상 이강춘 씨와 백경환 씨는 열 살 차이다. 게다가 가족들은 이강춘 씨는 그렇게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이 씨 가족이 두 사람의 친분을 부정하는 두 번째 이유는 뚜렷했다. 이강춘 씨 집은 구례구역과 가까운 곳이었다. 1990년대 후반 구례구역 근처는 지리산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 한창 들어서고 있었다. 당시 이강춘 씨도 식당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그즈음 이웃 마을로 이사한 백경환 씨는 오이 하우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전에 살던 동네 식당에 오이를 납품했다. 그 근처 식당 대부분 백경환 씨와 안면 때문에 오이 거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강춘 씨 부인은 단 한 번도 백경환 씨와 오이 거래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농사에 청산가리를 썼다고?

 

그렇다면 당시 이씨의 자전거 수리점에 청산가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할 길은 없을까? 이강춘 씨의 큰아들은 1982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 수리점에서 일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나중에는 가업까지 물려받고 지금도 같은 계통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에게 철 담금질 기술을 전수받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철 담금질 방법을 모른다.

물론 이강춘씨가 아들 모르게 청산가리를 숨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강춘 씨에게 청산가리가 있었다면 분명히 또 다른 공급자가 있었을 것이다. 공급자를 추정할 수 있는 힌트는 동네 사람과 대화에서 나왔다. 한 할아버지가 1960년대 자기가 병원에 근무했다며 당시 사람들이 청산가리 구매를 부탁했고 이에 구해줬다고 했다. 당시는 청산가리 관련 규제도 없던 때였다. 동네 사람 진술을 확보하면 1990년 이강춘 씨가 청산가리를 구한 정황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이처럼 명확한 입증 없이 부녀는 자백만으로 유죄를 받았다. 대법원 판결(2012.3.15.) 이유는 이렇다.

'과거 철 용접 등에 청산가리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고 채소농사를 짓는 사람들 사이에 해충을 박멸하기 위한 수단으로 청산가리가 암암리에 유통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즉, 검찰은 해충을 박멸하려는 농민 사이에 청산가리가 암암리에 유통된 증거들을 풍부하게 제시했다. 이는 백경환 씨가 오이를 재배하면서 해충을 없애고자 청산가리를 사용했다는 진술을 뒷받침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검찰이 법정에 낸 보강 증거를 살펴보자.

 



검찰은 백경환씨 동네 사람 4명과 다른 동네 사람 2명에게 받은 진술을 법정에 냈다. 모두 오이 농사에 청산가리를 썼다는 내용이다. 이는 경찰에서 조사한 내용이었다. 검찰이 살인사건 기록을 검찰로 송치하도록 요구하자 경찰은 이에 따랐다. 검찰은 사건 기록 중 공소유지를 위해 유죄 입증에 유리한 내용을 뽑아 재판에 제시했다.

처음 경찰이 밝혀낸 내용부터 살펴보자. 당시 동네 사람 가운데 이금형 씨가 가장 먼저 청산가리를 썼다고 말한다.

 


문 : 청산가리가 어떻게 생겼던가요.
답 : 하얀 바탕에 약간 노란색을 띠는데 가루입니다.

문 : 당시 청산가리를 어떻게 사용하였나요.
답 : 예, 오이하우스 길이가 100m 정도 되는데 모퉁이에 신문지를 놓고 위에 '청산가리'를 놓고 불을 놓아 태워서. - 이금형 경찰 진술조서. 2009.7.23

이금형 씨 남편 우철문 씨도 가세했다. 8월 1일 순천경찰서 조사에서 다른 마을 사람 김광식 씨와 신종묵 씨 두 명이 청산가리를 쓰는 것을 "직접 봤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남편 진술을 살펴보자.

 


김광식과 신종묵 둘이서 하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 오래전에 두 사람은 확실히 오이 재배를 마치고 이맘때쯤 비닐하우스 땅바닥을 경운기로 갈아엎고 그 위에 청산가리 가루를 골고루 뿌린 다음 비닐로 그 위를 덮어 놓은 것을 봤습니다. (...) 바케스 같은 곳에 담아서 다닌 것을 봤는데 그 양은 모르고, 보통 6백 평 정도 재배를 했는데, 전체적으로 바닥에 하얗게 뿌렸습니다. - 우철문 경찰 진술조서. 2009.8.1.

청산가리 가격이 얼마 정도였을까? 한 법정 증언에 따르면 콩알 크기 2개 정도에 3만 원을 줬다고 한다. 이 사건기록을 검토한 전직 형사과장은 '(농사에) 돈이 참 많이 들겠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검찰은 경찰 진술조서를 법정 자료로 제출할 뿐만 아니라 항소 이유서에도 백경환 씨 동네 사람 4명이 한 진술을 소개하며 백경환 씨 자백에 신빙성을 보탰다.

우철문(가명)은 "오이농사를 하는데 청산가리를 태워 선충을 죽인다"라고 진술하고
김광식, 신종묵(가명)은 "오이 재배를 하면서 흙에 청산가리를 뿌린 사실을 알고 있다"(수사기록 제6권 116~122쪽)라고 진술하고,
이금형은 "오이농사를 하는데 청산가리를 태워 선충을 죽였다(수사기록 제6권 154쪽)"고 진술... - 검찰 항소이유서 54쪽. 2010.4.5.

하지만 현장에서 '보강증거' 사실 확인이 시작되자 필자는 당황했다. 거론된 동네 사람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실제로 청산가리를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사연은 이렇다. 순천경찰서는 처음에 사건 현장을 중심에 두고 시작해 그 동네 사람 가운데 청산가리를 쓴 사람이 있는지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청산가리를 썼다고 증언하는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바로 이금형 씨다. 남편 우철문(가명)씨도 오이농사를 짓는 다른 사람들을 지목했다.

순천경찰서는 지목된 농가를 뒤졌고 사람들도 불러서 조사했다. 순천경찰서 조사결과, 처음 아주머니가 쓴 것은 청산가리가 아니었다. 농약 방에서 쉽게 구매 가능한 유황, 즉 '황산가리(황산칼륨)'였다. 황산가리는 하우스에 있는 자재 소독을 할 때 사용된다. 가루를 땅바닥에 그냥 놓으면 흙과 섞이므로, 종이 위에다가 놓고 태운다고 했다.

얼마 안 가 당시 마을에는 황산가리인지 청산가리인지 구분을 못 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6백 평 되는 땅바닥에 전체적으로 하얗게 뿌린 것은 무엇일까? 그건 토양의 산성화를 막는 소석회 아니면 생석회라고 했다. 조개껍데기로 만드는데 색깔이 하얗다.

 

 


동네 사람들 말에 따르면 순천경찰서는 그 후로 더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에 아무런 조사가 없었던 걸 보면 경찰도 그저 해프닝으로 봤고, 이 동네에는 청산가리 사용자가 없다는 수사보고가 올라가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이런 수사보고를 비롯한 수사기록은 검찰에 송치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단지 당시 순천경찰서 소속 한 형사는 "백경환 씨 동네에서는 오이농사를 짓는데 청산가리 사용자가 없어서 다른 이웃 동네로 수사를 확대했다"라고 말했다.

'보강증거'란 진술이 허위가 아니란 것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들이다. 검찰은 백경환씨 자백이 허위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허위증거를 제출한 셈이다. 검찰이 이런 허위증거들을 제시한 것은 고의일까? 아니면 실수일까?

한 전직 형사과장은 고의라면 허위공문서 작성에 해당하고, 실수라면 "살인사건을 다루는데 기록 전체를 읽어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못 박았다. 계속해서 경찰 입장을 살펴보자.

(제12화 - '경찰 측 입장'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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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제8화 막바지 경찰 수사 상황

 

 

 


형사는 백희정 씨를 조사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백희정 씨의 답변은 언제나 엉뚱했다.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했다가 '한참 뒤 생각났다'며 단편적인 부분을 말하곤 했다. 그러고는 혼자 웃어댔다. 백희정 씨는 담당 조사관보다 잘생긴 형사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형사들은 내부에서 그 형사에게 "(백희정 씨가) 너만 찾으니 네가 조사하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 경찰은 '갑 티슈'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동네 주민 장영환 씨를 용의 선상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형사는 백희정 씨가 어느 정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도 인지했다. 이모인 최숙자 씨는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형사들은 백희정 씨를 조사할 때 최숙자 씨도 동석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때부터 이모는 백희정 씨 옆에 앉아 아이 다루듯 달래면서 사건 당시 기억을 더듬게 했다. 경찰은 백희정 씨에게 성추행과 더불어 성폭행 피해 여부도 물었다. 처음에는 당한 적이 없다던 희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 결국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은 성폭행 혐의로 마을 주민 장영환 씨를 긴급 체포했고 죽은 최명자 씨 딸들과 대질 조사를 벌였다. 첫째와 둘째가 먼저 조사를 받았고 백희정 씨가 마지막으로 조사실에 들어갔다. 경찰은 조사를 끝내고 8월 18일 강간과 강제추행 혐의로 장 씨를 광주지검 순천지청으로 구속 송치했다. 더불어 백희정 씨에 대해서는 '정신지체가 의심된다'는 보고서도 덧붙였다.

 


 

검찰에 사건이 송치되자 희정 씨는 이모 최숙자 씨와 함께 검찰청으로 갔다. 8월 20일 오후 3시쯤 첫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검사는 이 사건에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가 쓴 기록을 보면 사건 서류를 받은 지 나흘째 되던 날인 8월 21일 오전, 검사가 사건 수사 기록을 보고 "우리가 한 번 그 사건을 해결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넌지시 말을 한 것으로 돼 있다.


두 번째 검찰 조사는 사흘 뒤인 24일이었다. 경찰은 성폭행 사건만 송치한 것일 뿐 살인사건 수사는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8월 20일부터 23일 사이, 최숙자 씨와 백희정 씨는 형사도 계속 만났다. 이모는 당시 형부인 백경환 씨를 담당했던 형사가 모두 백희정 씨에게도 붙었다고 했다.

형사들은 희정씨가 구속된 장영환 씨와 공모했을 가능성도 고려했다. 이모에게 이런 내용에 관해 백희정 씨를 떠볼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모가 "장영환 아저씨가 너하고 그랬다고 불었다는데?"라고 묻자 희정 씨는 "아닌데!"라고 툭 내뱉었다.

 



이 시기에 형사는 최숙자 씨에게 "구속된 장영환 씨 부인이 병원에 입원한 상태인데,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 달라"라고 부탁했다. 형사는 이모에게 볼펜만 한 녹음기를 건넸다. 이모는 조카 백희정 씨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얘가 누군지 아세요?"
"밑에 집 희정이인데…"
"아, 그래요? 막걸리 지금 사고 났는데… 싸이나('청산가리'의 일본식 표현) 아세요?"
"하얀색에 동그랗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표현했다. 최숙자 씨는 당시 검사에게도 이러한 진행 상황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제 백희정씨가 검찰에 자백하기 전날 상황을 살펴보자.

8월 23일 오후 3시, 이날도 백희정 씨는 이모와 순천 경찰서 앞 삼산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았다. 당시 희정 씨는 경찰이 묻는 질문에 엉뚱한 답변만 했다.

경찰 질문에 엉뚱한 말만 하던 백희정, 검찰에서는 갑자기...

 


이모 최숙자씨가 옆에서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희정 씨는 수사관 앞에서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김밥 가게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늦었다"라고 했다. 정식 아르바이트도 아니었는데 희정 씨는 파출소 옆에 있는 다리에서 울며 방방 뛰기까지 했다. 최숙자 씨는 택시를 잡아서 희정 씨를 태워 보낼 수밖에 없었다.

택시를 탄 희정씨는 형사들을 향해 "있다가 내가 진짜 말해 줄게요"라고 소리쳤다. 이모 최숙자 씨는 "백희정은 항상 그런 식으로 말했다"라고 했다. 형사들은 다시 기대에 부풀어 백희정 씨를 쫓아갔다. 형사들은 가게 구석에서 희정 씨가 일하는 것을 지켜봤다.

가게 일이 끝나자 희정 씨는 김밥 사장 김미순 씨 친구 가게 오픈 기념식에 간다며 광양으로 가겠다고 했다. 최숙자 씨가 말렸으나 희정 씨는 울면서 고집을 피웠다. 형사들은 광양까지 따라갔고 회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희정 씨는 형사들과 약속은 잊은 채 순천에 있는 김밥가게 사장인 김미순 씨 집으로 가버렸다. 이날 백희정 씨는 김밥가게 사장과 함께 지냈다.

김밥집 사장 김미순씨는 백희정 씨가 엄마가 죽고 나서 말수가 더 줄었다고 기억했다. 또 희정 씨가 경찰서에서 오랜 기간 조사받으면서 짜증이 더욱 늘었다고 했다. 종종 "내가 했다고 하고 들어가서 살겠다"라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8월 24일 희정씨는 김미순 씨에게 가방과 통장을 맡기고 오후 2시 검찰청으로 갔다. 당시 김미순 씨가 우연히 본 희정 씨 휴대전화 '카카오톡' 창에는 '푹 쉬고 싶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이모 최숙자씨는 백희정 씨가 오후 2시에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간 사실을 몰랐다. 저녁이 돼도 희정 씨가 돌아오지 않자 검찰에 전화했다. 수사관은 "금방 돌려보내겠다"라고 말했으나 밤 11시가 넘어도 희정 씨는 소식이 없었다.

8월 24일 검찰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용의자로 백희정을 긴급 체포했다. 백희정 씨가 검찰에서 자백했기 때문이다. 25일 '청산가리 막걸리 용의자 검거' 뉴스가 보도됐다. 뉴스를 접한 백경환 씨는 "저 년이 일을 저질렀나 보네"라며 방에 들어가 머리를 찧어댔다. 가족들은 아버지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검사는 백희정씨가 자백한 이튿날인 25일, 순천경찰서에 전화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백희정 씨를 검거했으니 경찰 수사기록 일체를 넘기라고 지휘한 것이다. 순천경찰서 살인사건 수사팀이 높이가 허리까지 닿을 정도인 서류를 가져왔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관련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백희정은 25일 검찰 조사에서 아버지와 공모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26일 오전, 검찰 수사관들이 자고 있던 백경환 씨를 체포했다. 백경환 씨는 당일 범행을 인정했다. 백 씨 부녀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도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

살해 동기는 '부녀 성관계'였다. 백경환 씨는 '지난 2009.8. 일자불상 밤 12시경 희정 방에서 성관계를 한 번 하였습니다'라고 자백했다.


자백 이후 <그것이 알고 싶다> 두 번째 방송


가족들은 검찰 수사에 반발했다. 검사는 이모 최숙자에게 왜 언니가 죽었는데 가해자 편을 드느냐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최숙자 씨는 8월이면 백희정을 데리고 형사들을 만나야 했기에, 순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백희정을 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즉, 검찰이 받아낸 자백대로라면 형사들이 백희정을 밀착 마크할 시기에 '부녀 성관계'를 했다는 말이 된다.

이 시점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한재신 PD가 카메라를 들고 따라붙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2009년 8월 1일, '두 마을의 끝없는 공포 - 청산가리 살해 미스터리'를 내보낸 데 이어 두 번째 방송이었다.


한재신 PD는 순천 아랫시장 국밥집을 찾아다니며 국밥을 먹고 막걸리 3병을 사간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백희정 씨가 다녔던 농업 고등학교를 찾아가서는 청산가리에 대해 가르치는 과목이 있는지 확인했다. 9월 26일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는 '미스터리,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 아버지와 딸은 공범이었나' 편을 방송한다.

 


한재신 PD는 마지막 장면에 김밥가게 사장인 김미순 씨를 등장시켰다. 당시 김미순 씨와 한재신 PD는 백희정 씨를 면회했다. 김미순 씨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인터뷰했고 쓸쓸하게 돌아가는 뒷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부녀를 향한 동정적인 시선을 강조하는 장면이었지만 검찰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검찰은 이때 접견 녹취록이 검찰에 유리한 증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 관계자 이야기다.

"당시 SBS PD가 김밥가게 아줌마 데리고 가서 얼마나 백희정을 구슬렸는데요, 검찰에서 뭔 일이 있었느냐면서 울고불고 쇼를 다 했어요. 그런데도 백희정은 검찰에서 강압수사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하잖아요."

이제부터 검찰의 활약을 살펴보자. 검찰은 분명 경찰 수사가 짚지 못한 부분들을 찾아냈다.

(제9화 - '검찰의 활약'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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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간의 기억 제6화 유력한 용의자 남편

 

 

 

 

남편 백경환(가명)씨가 사건 발생 직후 보인 행동들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당일 상황을 살펴보자.

 



백경환 씨는 오전 11시경 아내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일터에서 백 씨는 전화를 받은 뒤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뭔 막걸리를 줬는데 그게 잘못 되었는갑소."

 


백 씨는 일터에서 고향 마을로 달렸다. 당시 아내가 실려 간 병원으로 가려면 구례역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백 씨는 동생 집으로 갔다. 동생은 우선 장례식장으로 갈 것을 권했다. 하지만 백경환 씨는 현장으로 가서 막걸리병을 찾아 나섰다.

 

물론 현장은 이미 노란색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이 쳐진 상태였다. 그 후 백 씨는 병원으로 갔다. 친척들도 모여들었다. 장례식장에서 장모는 "술 먹으면 백 서방에게 많이 맞더니 결국에는 이렇게 되었네"라며 통곡했다.

이처럼 사건 당일, 최 씨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에 백경환 씨가 바로 '막걸리'가 문제였다고 여긴 점, 장례식장으로 곧장 가지 않고 사건 현장으로 간 점, 장모가 사위의 폭력적인 성향을 거론한 점 등을 검찰은 문제 삼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백경환 씨는 딸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백희정(딸, 가명)씨 검찰 자백에 의하면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는 막내딸에게 "경찰들에게 말조심하라"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이 부녀를 범인으로 지목하자 죽은 최 씨 식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검찰은 죽은 최 씨 여동생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왜 언니가 죽었는데도 용의자 편을 드느냐는 것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망한 최 씨쪽 식구들은 필자에게 사건 당일 있었던 일을 더욱 상세히 들려줬다.

 



당시 친척 사이에 장례 절차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고 한다. 순천 시내 병원보다는 동네와 가까운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백경환 씨는 돈이 없다며 난처해했다고 한다. 백경환 씨는 부인이 죽은 상황에서 돈 걱정을 먼저 했다는 것이다.

장례식장 주변에는 경찰이 모였다. 조문객이 한 명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문객들이 부조금을 건네자 그걸 일일이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장례 마지막 날 관이 나올 때 백 씨는 대성통곡을 했다.

"나 두고 가면 어쩌냐!"

이 장면을 본 사돈 쪽 식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백경환 씨가 범인이란 의심을 했을까? 친척들은 백 씨의 이런 모습이 결혼 초기부터 늘 봐 왔던 장면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 시선에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비칠지 생각하는 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장모가 통곡한 내용에는 친척들이 어떤 입장을 보일까? 당시 장모 통곡 소리는 장례식장에 있던 사람 대부분이 들었다고 한다. 사돈 쪽 식구들은 장모가 이런 통곡을 한 것은 이들 부부가 장모 앞에서도 싸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친척들 대부분은 동네 사람들을 초대한 장인 회갑 때를 비롯하여, 딸 결혼식 전날에 벌어졌던 부부간 다툼을 기억했다.

백 씨의 '욱'하는 성격, 친척은 "정상이 못 된다"는데

 

 


백경환 씨는 이처럼 '욱'하고 성질이 뻗치면 주변 시선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친척들은 이런 백경환 씨를 '부족하다', ' 정상이 못 된다'라고 생각했다. 즉 이런 범행을 계획할 만큼 지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아내 최 씨가 술에 취해 말수가 많아지면 부부 싸움이 나곤 했다. 자녀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술을 마시면 말수가 많아지고 언성이 높아졌는데, 아버지 백경환 씨는 "시끄러워!" 하면서 물건을 집어던지며 다퉜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정도 부부싸움은 흔한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장례식장에서 장모 통곡을 접했던 친척들은 전체적인 맥락상, 장모가 사위를 용의자로 놓고 하는 말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내딸은 아버지가 "경찰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당부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털어놨다. 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부분 역시 친척의 생각은 검찰과 많이 달랐다. 죽은 최명자(가명)씨 여동생도 형부가 백희정 씨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유는 아버지와 딸 둘이서 나눈 귓속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이 오고 간 것일까? 당시 한 친척은 막내딸이 장례식장에서 엉뚱한 소리를 해대니 아버지가 '말 함부로 하지 말라'라고 주의를 시킨 취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검찰은 이러한 보강증거와 더불어 살인 발생 원인도 더욱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 살인사건 동기가 반드시 부녀 성관계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이 사건도 다른 존속살인들처럼,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장기간을 두고 복합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해당 사건이 백 씨 집안에서 '가정환경, 성폭행 배경, 인터넷 채팅, 부부간의 다툼, 모녀지간의 갈등, 피고인 백희정의 비관적 삶의 한탄, 가족 간 경제적 어려움, 가족 간 우애 상실' 등이 오랜 시간을 두고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형사합의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러한 논리에 동감했다. 변호사는 여러 누적된 갈등이 내재한 상태에서 어느 순간 격분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우발적으로 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계획범죄에 가깝다. 계획적인 범죄들은 동기가 뚜렷한 법이다. 보통 살해 동기는 금전, 치정, 원한 이 세 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그 복합적 원인 중 하나가 "실제 백경환은 은행권에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에 발생한 인천 모자 살인사건에서도 사채라 불리는 제2금융권 대출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백경환 씨에게는 어떤 채무가 있었을까? 경찰은 초기에 백경환 씨 빚을 조사했다. 큰딸 카드 값과 오이 하우스 등 이유로 농협에 집을 담보로 4천만 원을 대출받았고, 2008년 12월경부터는 연체되고 있었다. 이는 농협에 농사자금을 빚진 것이다. 농사자금은 저금리에 속한다.

부조금 일일이 챙긴 남편, 과연 금전 문제가 살인 동기였을까

검찰 주장처럼 저금리 농사자금이 살인사건 동기 중 일부로 작용했을까? 한 형사는 만약에 부인이 농협에서 농사자금을 빌려서 그걸 엉뚱한 데 써버렸다면 부부간 갈등이 됐을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 집안은 금전 문제로 인한 부부 갈등이 어느 정도였을까? 사건이 발생한 2009년, 백경환 씨 집안의 경제적 여유를 살펴보자.

2009년은 오이 하우스 농사를 접었기에 돈이 궁해졌다. 2009년 4월경 백 씨 부부는 집 전화와 휴대전화 요금을 연체하기도 했다. 게다가 자녀 빚까지 갚아주는 실정이었다. 부부는 나락 농사와 동네 품팔이를 시작했다. 백 씨는 이웃 사람과 함께 다니며 집 짓는 일을 거들기도 했다. 최 씨는 순천시청을 찾아 희망근로사업장 근무를 신청했다. 농촌 품삯과 비슷한 일당이 나왔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최 씨는 일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백경환 씨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백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거리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마을 식당 주인이 친척 한 분을 소개했다. 산림청 하청을 받아 풀 베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일터까지 차로 40분 거리였다. 백 씨는 2009년 7월 1일부터 일을 시작했다.

만약에 부인이 없어진다면 남편 백경환 씨에게는 어떤 경제적 이익이 생길까? 백경환 씨가 혼자 농사를 지어야 하며 은행 빚도 혼자서 짊어져야 한다. 게다가 막내딸은 훌륭한 농사 파트너가 아니었다. 지난 기사에서 말했듯이, 백희정 씨는 일에 서툴고 의지가 없어 농사와 집안일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즉, 딸과의 자유로운 성관계를 위해 아버지가 평생 혼자 일하며 딸의 밥상까지 차려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부녀가 살인했을 때 상대적으로 돌아오는 이익을 생각해보면 살해 동기를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백경환 씨와 백희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초기에 유력한 용의자였다. 하지만 경찰은 부녀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백희정 씨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경찰을 철저하게 속였다고 털어놨다. 경찰도 막내딸의 말을 그냥 믿어줬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통화내역 등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압박해 부녀가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백경환 씨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번복한 사실에 의심을 품었다. 백경환 씨 진술을 살펴보자. 우선 기상 시각이 오락가락했다. 또 막걸리를 토방에 올려놓을 당시 아내가 방 안에서 자고 있었다고 말했다가 부엌에 있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사건 당일 식당 주인은 백경환 씨가 가게에 온 시각이 오전 5시 10분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백 씨 주장은 오전 5시 30분이었다. 백 씨는 또 일터로 바쁘게 가야 해서 막걸리병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마을 식당에서 커피 마실 시간은 있었다는 진술도 있었다.

사실 경찰도 검찰처럼 백경환 씨와 백희정 씨를 의심했다. 하지만 한 달 이상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경찰은 왜 검찰처럼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이제부터 경찰 수사를 한 번 점검해보기로 하자.

(제7화 - '경찰 수사 점검'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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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나흘간의 기억> 제1화, 자백뿐인 증거.

 

 

이 작업은 우연히 시작됐다. 몇 해 전 지금은 은퇴한 전직 검찰 수사관과 만났다. 수사관 시절 이야기를 하던 그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을 글로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당시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렸던 글도 제공했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이 사건에 대한 취재는 이렇게 시작했다. 전직 검찰 수사관이 작가에게 이 사건을 추천한 이유는 뭘까. 우선 이 사건을 되짚어보자.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지난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시 황전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다. 사건 발생 마을은 순천 시내에서 버스로 30, 40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이 사건에 등장하는 가족관계도를 살펴보자. 수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명으로 표기했다.

마당에서 발견한 막걸리병, 이걸 마시고 2명 사망


이 사건은 바로 부모와 막내딸,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던 집에서 발생했다. 당시 아버지는 60세, 어머니는 57세, 막내딸은 26세였다. 사건 현장인 집 구조를 살펴보자.

 

 

 

마당에는 창고 2개와 화장실, 화단이 있다. 그리고 화단 옆에서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제 사건 발생 당일 아침으로 가보자. 경찰 조사에서 남편 백경환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2009년 7월 6일 백경환 씨는 오전 5시경 일어났다. 세수하고 풀을 벨 때 쓸 낫을 갈았다. 당시 남편 백경환 씨는 산림 하청을 받아 풀 베는 작업을 했으며, 부인 최명자 씨는 순천시청에서 하는 희망 근로를 다녔다. 남편 백 씨는 집을 나서기 전에 대문 옆에 있는 화장실에 들렀다. 주차한 봉고 트럭 뒤에 검은 비닐봉지가 보였다. 봉지 안에는 막걸리병이 보였다.

 

 


백 씨는 비닐봉지를 뜰방(토방)에 놓고 부엌에 있는 아내를 불렀다.

 

"막걸리병이 차 뒤에 있데. 누가 갖고 가라고 한 건가? 그곳에 있데."
"예."

남편은 바로 트럭을 몰고 일터로 향했다.

부인 최 씨도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향했다. 한 아주머니가 현장에 먼저 나와 있었다. 그는 최 씨가 자전거에서 비닐봉지를 꺼내는 것을 보고 무엇인지 물었다.

"아침에 누가 갖다 놨네요."
"자네가 애쓴다고 누가 갖다 놨나 보네."

곧 풀베기가 시작됐다. 오전 일을 하는 중 최 씨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잔' 마실 것을 재촉했다고 한다. 오전 9시경 휴식이 시작되자 최 씨는 막걸리 한 병을 가져왔다. 두 병 가운데 '염색한 놈'이었다. 최 씨는 둘러앉은 세 명에게 막걸리를 먼저 따랐다. 막걸리 색이 갈색인 것에 대해 사람들은 '고급술', '칡술'이라며 추켜세웠다. 최명자 씨가 먼저 마셨다.

 



잠시 후 119가 출동했다. 네 명이 가까운 구례병원으로 실려 갔다. 최 씨를 포함해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순천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약 45일이 지난 시점에 범인을 찾아낸 것은 바로 검찰이었다. 사건을 맡은 순천경찰서가 한 달 넘게 뚜렷한 물증을 찾지 못하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강력사건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당시 순천지청은 순천경찰서에 수사 중단과 모든 사건 관련 기록을 요구했다. 물론 경찰 처지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신속하게 남편 백경환과 그의 막내딸에게 자백을 받아낸 것은 사실이다.

수사 결과, 살인의 동기는 놀랍게도 부녀 간 성관계가 원인이었다. 검찰은 남편 백경환과 그의 막내딸 백희정 부녀가 약 15년 전부터 성관계를 해왔는데, 죽은 최 씨가 이를 알고 부녀를 나무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밝혀낸 부녀의 범행 과정을 살펴보자.

 



검찰은 사건 발생 나흘 전부터 부녀가 범행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하루씩 살펴보자.

나흘 전부터 범행 준비했다는 부녀의 자백, 내용은 이렇다

 

 

 


7월 2일, 일을 마치고 돌아온 백경환 씨는 오후 6시쯤 부인 최명자 씨를 태우고 순천으로 향했다.

약 40분을 달려 순천 시내 한 식당에 도착했다. 백 씨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평소 부인이 잘 먹는 국밥을 사줬다. 국밥을 먹고 막걸리 3병을 구매했다.

마을 앞 슈퍼에서 막걸리를 사면 범행이 쉽게 발각될 수 있어 순천에서 산 것이다. 오후 8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구매한 막걸리 3병 가운데 2병만 부엌 냉장고 안에 보관했다. 나머지 한 병은 거실에서 나눠 마셨다.


이튿날인 3일 금요일, 남편 백경환 씨는 부엌 냉장고에서 막걸리 두 병을 꺼냈다. 마당을 지나 막걸리를 창고로 가져간 백 씨는 창고 왼편 선반 구석에 보관한 청산가리 봉지를 꺼냈다.

청산가리는 약 17년 전에 구매한 것이다. 벌레를 잡을 때 한 번 사용하고 나서 남은 것을 선반 구석에 그간 보관해뒀다. 그리고 아버지는 막내딸 희정에게 창고에 가보라고 했다. 희정 씨는 창고 안에서 청산가리와 막걸리 두 병을 확인했다. 지문이 남을까 싶어 만지지는 않았다.


4일 토요일 오후 8시, 희정 씨는 계획을 실행으로 옮겼다. 숨겨둔 면장갑과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를 옥상 한쪽에 두고 창고에서 막걸리와 청산가리를 챙겨 왔다.

면장갑을 양손에 낀 희정 씨는 청산가리 두 숟가락을 막걸리병 안에 넣고 흔들어 섞었다. 그 막걸리는 부엌 냉장고 채소 보관실에 숨겼다. 그날 희정 씨는 부산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5일 일요일 오후 8시 30분, 희정 씨는 마을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돌아온 것이다.


6일 오전 2시 30분쯤 잠에서 깬 희정씨는 냉장고에 보관했던 막걸리 두 병을 꺼내 지문을 없애고 마당 화단 앞에 내려놓았다. 그 시각이 오전 3시쯤이었다. 희정씨는 집 밖으로 나가 하천에 청산가리 봉지를 버렸다. 그리고 면장갑은 마당에 있던 종량제 봉투에 버렸다.

이상이 부녀가 검찰에서 자백한 내용이었다. 검찰은 부녀를 기소했다. 검찰은 이미 유죄 입증을 자신했다. 피고인들의 쌍방 자백은 'X자' 형태로 서로 보강 증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막내딸 진술 증거는 아버지 자백이며, 아버지 진술 증거는 딸의 자백인 셈이다.

재판은 판결을 위해 피의자 자백 내용이 얼마나 타당한지 먼저 검토한다. 1심 재판부는 피의자들이 검찰에 한 자백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판결은 무죄였다. 하지만 1년 뒤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는다. 피의자 자백이 타당하다며 각각 무기징역과 20년 형을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도 피의자가 검찰에서 한 자백이 타당하다고 보고 유죄를 확정한다.

 



자백 외에 증거 없어... 가족도 재수사 원해

이처럼 '순천 막걸리 사건'은 이미 수사 단계에서 자백을 받았고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끝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안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판결했지만,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 주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자백 말고 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 틈새 때문에 지난 2013년 대법원 판결까지 난 사건을 놓고 부녀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부녀와 가족은 재수사를 원하고 있다. 가족과 친척 반응도 비슷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전직 수사관 또한 이들 부녀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그도 자백 말고 다른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수사 정당성에 논란이 될 불씨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궁금했다. 피의자 자백을 받은 검찰이 어떻게 증거를 하나도 찾지 못했을까. 오히려 피의자는 범행을 일체 부정하고 검찰이 증거로 압박하여 자백을 받아내는 게 상식적이지 않은가. 이 사건은 증거 없이 자백만 나왔고 법원은 그 자백을 증거로 채택했다.

필자는 아버지 백경환을 면회했고 그를 통해서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재판서류들을 모두 넘겨받았다.

필자는 사건 기록과 현장을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작업은 혼자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전직 판사 출신 변호사와 전직 형사과장도 사건 기록 검토에 동참했다. 이 연재를 통해서 현장에서 찾은 증거를 펼쳐 놓겠다. 왜 수사단계에서는 그런 증거들을 지나쳤을까. 혹시 수사 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글은 현재 독자를 비롯한 검찰과 경찰 모두에게, 현 수사체제 문제점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이해를 돕고자 사건 쟁점을 하나씩 점검하겠다. 먼저 범행에 쓰인 막걸리와 청산가리 구입처부터 가보자.

 


(다음 제2화 범행도구들  ☆ 2015년 오마이뉴스에 연재됐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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