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제복 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서울과 경기는 스케일이 다르다. 연쇄살인이나 토막살인 사건 같은 강력 사건이 아니라면 경기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미디어 관심을 끌기 어렵다. 반면, 서울에서는 작은 사건과 집회도 어떻게 엮이느냐에 따라 정치적 이슈로 발전하기도 한다.

 

조현오는 2010년 1월 8일 서울지방청장으로 부임한다. 조현오는 바로 역대 서울청장 리더십 분석·평가한 내용을 접한다. 직원 여론과 불만을 수렴해 정책을 추진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현오가 밝힌 소감은 이렇다.

 

“다 좋은데… 이렇게 가자니 시간이 어디 있냐?”

 

보통 참모를 비롯해 지휘관 임기는 1년이다. 외사관리관, 감사관, 경비국장, 부산청장, 경기지방청장 등 조현오가 거친 곳에서는 어김없이 직원들 곡소리가 났다.

 

 

처음 3개월 동안 새로운 틀을 짜고 나머지 기간 강하게 추진해 그 틀을 정착하는 게 조현오 방식이었다. 조현오가 조직에 심고자 한 틀은 당연히 ‘성과주의’였다

 


 

조현오는 인사 과정에서 주관적인 지휘관 평가를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통상 인사는 심사위원회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서울청장으로 취임한 조현오는 바로 승진하고 싶은 직원을 강당에 모이도록 했다. 경정·경감 승진 대상자 225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7시간 남짓 면접이 이어졌다.

 

“자기가 승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봐라.”

 

조현오는 그 자리에서 담당 과장에게 면접한 직원마다 성과를 확인했다. 몇몇 직원은 승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약을 받기도 했다. 성과를 봤을 때 승진이 어려운 직원에게는 그 자리에서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면접에서 탈락이 확정된 직원은 ‘빽’을 쓸 기회조차 사라졌다.

 

당시 직원들이 가장 힘들었던 게 이 같은 인사 방식이었다. 조현오는 2~3개월에 한 번씩 성과 우수자를 내부에 공개해 승진 인사에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경쟁에 내몰린 직원들은 안팎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2014년 기준 부산은 경찰서가 15개, 경기도는 41개, 서울은 31개가 있다. 지역이 넓으면 지방청장이 일일이 챙길 수 없으므로 각 경찰서 서장이 치안을 책임져야 한다.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경찰서 단위로 평가를 진행했다. 성과가 좋은 경찰서는 혜택을 받았고 성적이 나쁜 경찰서는 집중감찰을 받았다. 조현오가 서울지방청을 맡은 시기에는 이 같은 평가 시스템이 무르익는 단계였다. 조현오는 평가 시스템을 적용하기 전에 개념을 구체화하고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장들과 회의를 했다.

 

“방배경찰서는 치안 수요가 적은 곳인데, 우리는 성과를 많이 낼 수 없어요.”

“종로경찰서와 남대문경찰서는 경호와 행사가 빈번해 실적을 많이 올릴 수 없습니다.”

 

조현오는 불평·불만을 끝장토론, 공청회, 간담회로 돌파하고자 했다. 통상 서울지방청 직원은 2만 3000여 명, 경기지방청 직원은 2만여 명이다. 이 정도 규모면 아무리 청장이라도 직원 공감 없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선 경찰서 정도 규모면 서장이 직원을 마음먹은 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실적을 내지 못하면 집중감찰 대상이 된다. 서장부터 일선 경찰까지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강북경찰서장인 채수창도 이 같은 압박에 시달렸다. 조현오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채수창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도 실적주의에서 살아남으려고 제 직원이 검거 실적을 올리도록 굉장히 독려하고 채찍질을 했습니다.”

 

인사에 대한 불만과 성과주의로 말미암은 피로는 경찰 조직에 꾸준히 누적됐다. 2010년 6월 23일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경찰관 4명이 구속된다. 피의자에게 고문·가혹행위를 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는 2009년 8월에 시작된다. 조현오 인사청문회 위원인 정수성은 증인으로 참석한 채수창에게 이 점을 확인한다.

 

“증인은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에 조 청장 책임도 있다며 동반 사퇴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양천서 피의자 고문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생긴 일이고 조현오 내정자는 올해 1월 서울청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양천서 고문 사건과 조현오 실적주의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은 결과적으로 조현오식 성과주의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통로가 된다.

 


 

역풍을 맞게 된 조현오에게 악재가 이어졌다. 강남 룸살롱 업주 유착 사건이다. 이 사건은 가출한 여학생 A양을 서초경찰서 실종팀이 성매매 업소에서 찾아내면서 시작된다. 가수 지망생인 A양은 미성년자였다. 업소 사장 이름은 이경백이었다. 웨이터 출신인 이경백은 2000년 북창동에서 룸살롱을 개업하고 강남 일대에서 유흥업소를 기업형으로 운영했다. ‘룸살롱 업계의 스티브 잡스’, ‘룸살롱의 황제’ 등으로 불리게 된 비결은 다방면에 비호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 단속반에 뇌물도 잘 바쳐야 했다.

 

경찰 단속을 비롯한 유흥업계 정보는 이경백을 거쳤다. 2006년 한화 회장 김승연이 폭행을 저지른 것을 경찰에 흘린 것도 이경백이었다. 경찰은 이경백과 단단히 엉켰고 조직은 점차 곪아 들어갔다. 이경백을 수사한다는 것은 경찰 조직의 종기를 도려내는 일이었다. 그전에 경찰은 이미 이경백에게 농락당한 적도 있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혐의를 포착해 이경백을 수사하려 했을 때 그는 오히려 수사관이 접대받은 내용을 확보해 수사팀을 엎었다.

 

외압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원래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은 생활안전과 소관이다. 하지만 조현오는 형사과에 이 사건을 맡긴다. 당시 형사과장은 황운하 총경이었다.

 

통화기록 분석부터 시작했다. 이경백이 지난 1년 동안 휴대 전화 두 대로 통화한 기록은 몇 만 건이었다. 등록된 사람만 1500명이 넘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적잖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검찰은 경찰이 긴급 체포한 이경백을 풀어줬는데, 수사를 이끈 황운하는 언론 브리핑에서 검사 실명을 거론하며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말한다.

 

 

이경백도 만만찮았다. 구속되면 그동안 바친 뇌물 내용을 모두 검찰에 불겠다며 맞섰다. 조현오는 오히려 이경백이 검찰에 뇌물 관련 내용을 불기를 기대했다. 검찰 수사이긴 하지만 경찰 비리를 도려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이경백과 통화 기록이 있는 경찰관 63명이 적발됐다. 조현오는 이미 취임할 때부터 업주 관계자와 공무 외에 전화 한 통, 물 한잔도 하지 말 것을 지시한 상태였다. 통화 내용을 소명하지 못한 경찰은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39명이 징계를 받았고 이 가운데 6명은 파면됐다.

 

“조현오가 범서방파 행동대장 출신과 의형제라더라.”

“조현오가 유흥업소에 10억 원을 투자해 월 2500만 원씩 배당금을 받는다.”

 

그즈음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조현오가 조폭과 의형제이며, 조현오 서울청장 비서실장도 연루됐다는 식으로 소문은 점점 덩치를 키웠다. 인터넷에서도 조현오가 강남 유흥가 조폭과 수십 차례 통화했다는 글이 돌았다. 민정수석실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조현오는 그를 옥죄는 의혹에 정면 대응하는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비서실장을 감찰해서 비위 사실이 있으면 엄하게 처벌할 것이고, 내 휴대전화 통화내역까지 모두 공개하겠다.”

 

조현오는 자신도 수사 대상에 넣었다. 서울청 수사부장인 박상용에게 자기 계좌열람동의서도 전달했다.

 

형사과장 황운하는 결국 이경백을 탈세와 성매매 혐의로 6월에 구속한다. 조현오는 이경백이 구속되고 두 달 후인 2010년 8월 경찰청장이 된다. 하지만, 이경백도 곧 보석으로 풀려났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으며 유유히 빠져나온다.

 

(다음 9화 –조현오, 경검 수사권 조정 어떻게?)

 

서형 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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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2010년 6월 23일 서울 양천경찰서 경찰관 4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고자 가혹행위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수갑을 채워 팔을 꺾어 올리는 이른바 ‘날개 꺾기’ 같은 폭력을 행사했다는 게 사회적으로 충격을 줬다.

 

6월 29일 강북경찰서장인 채수창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리한 성과주의가 양천경찰서 고문을 부추겼다며 서울청장인 조현오가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청장인 강희락과 조현오는 불편한 사이였다. 하지만, 경찰 조직에서 하극상에 대한 대응은 단호했다. 강희락은 조현오 퇴진 요구를 기강 문란 행위로 규정하고 채수창을 직위 해제한다. 이후 채수창이 제기한 성과주의 비판은 일선 경찰서 직원도 공감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보직과 승진 인사 기준은 오직 성과’. 조현오가 내세운 ‘성과주의’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언론은 조현오가 MB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고 갑자기 실적 위주 평가를 도입한 것처럼 접근했다. 물론 MB 정부가 행정 효율성을 유난히 강조했고 ‘성과주의’는 그 방향을 잘 따른 방침처럼 보이기는 했다. 조현오는 그저 정부 기조를 잘 따랐을 뿐일까.

 


 

경찰 조직에서 실적에 집착하는 관행은 이전부터 있었다. 조현오가 형사과장일 때는 ‘범죄와의 전쟁’이 한창이었는데 대부분 경찰서 형사과장실에는 각 팀별 실적을 표시하는 막대그래프가 걸려있었다. 당시 전체 수사 활동비로 지급하던 돈이 430만 원 정도였는데 조현오는 수사비 절반은 형사 수만큼 나눴고 나머지 절반은 한 달 동안 팀별 성과에 맞춰 지급했다.

 

 

 

조현오가 성과를 강조한 것은 울산남부서장 때부터 도드라진다. 경정 이하 인사는 시험과 심사로 승진을 결정한다. 심사는 경찰서장의 주관적인 판단과 ‘빽’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였다. 조현오는 심사 과정에서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자 했다. 한 번은 승진 대상자를 모아놓고 이런 말도 했다.

 

“자신이 왜 승진해야 하는지 설명해봐라. 조직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자기 업무를 어떻게 열심히 했는지 증명해봐라.”

 

순위는 모두 보는 앞에서 성과를 중심으로 결정됐다.

 


 

조현오는 2003년 서울종암서장 때도 여전히 성과를 중시했다. 당시 종암서 형사과 실적은 서울지역 31개 경찰서 중 상위권이었다. 조현오는 형사과에 자주 들러 형사들을 격려하곤 했다. 그런데 한 번은 조현오가 생활안전과장에게 서울종암서 관할 파출소 직원 200여 명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성과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조사 결과 검거 실적이 전혀 없는 직원이 70여 명이었다.

 

해마다 경찰청은 다양한 치안 관련 통계를 내놓는다. 범죄 발생을 월, 요일, 시각, 장소, 기상 등으로 구분해 통계를 낸다. 이는 치안 수요에 맞게 인력을 배치하는 참고 자료가 된다. 70여 명이 1년 동안 실적이 없다는 것은 인력 배정이 문제 거나 직원이 일을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게 조현오 판단이었다. 조현오는 형사계장에게 일주일 동안 재교육 운영을 지시했다. 소매치기 식별 요령부터 수배자 검거 방법까지 전반적인 교육이 진행됐다. 재교육 성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최근에도 경찰청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일화가 있다. 2007년 조현오가 경비국장일 때 일이다. 이때도 승진 기준은 성과였고 순위는 공개한다는 게 인사 원칙이었다. 경비국 회의실에서 조현오는 참석자에게 ‘우리가 합의한 내용’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승진 순위를 밝혔다. 이 순번은 조현오가 보직 이동을 한 뒤에도 어김없이 지켜진다. 조현오가 떠났을 때 ‘빽’이 개입할 틈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조현오도 이를 의식했는지 이듬해 부산청장으로 옮기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순번을 어기는 사람은 내가 경찰청장이 되면 가만 안 두겠다.”

 


 

2008년 조현오는 부산청장으로 부임한다. 오랜 참모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휘관으로서 이력이 시작됐다. 부산에서는 지금도 조현오를 두고 ‘추진력은 최고’라는 평가가 많다.

 

조현오는 오전 6시 30분쯤이면 출근했다. 간밤에 주요 수배자 검거 소식을 들으면 즉시 검거 직원이 있는 경찰서로 향했다. 조현오가 움직이면 지방청 인사계에서도 함께 움직였다.

 

 

 

부산지방청에서 가장 먼 부산강서경찰서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조현오는 언제나 8시 전에 도착해 공을 세운 경찰을 격려했다. 인사계에서 준비한 상과 상품도 함께 전달됐다. 낮에도 주요 검거 소식이 들리면 경찰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조현오는 경찰 사기를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2007년 말 혜진이, 예슬이 사건, 2008년 3월 일산 엘리베이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 등으로 경찰은 거센 비난을 받고 있었다.

 

2014년 기준으로 부산에는 경찰서 15개, 파출소 40개, 지구대가 50개 있다. 조현오는 치안 체계를 점검하고자 각 팀별로 실적 통계를 내라고 지시한다. 그 결과 최고 실적과 최저 실적 차이는 1224배나 됐다. 조현오는 당장 성과를 근거로 인력을 배정하고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내부 게시판에서는 성과주의를 향한 불만이 쏟아졌다. 조현오 역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토론하고 싶은 사람은 당장 다 와라. 결론 나올 때까지 토론하자. 내가 잘못했으면 깨끗이 거두겠다. 내가 맞으면 내 방침을 따라라.”

 

끝장 토론으로 불평·불만을 돌파하는 방식은 일선 경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듯하다. 최근에도 그 일화를 떠올리는 경찰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물론 이 같은 대응을 두고 실적을 바탕으로 차기 경찰청장 자리를 노린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한 경찰 취재기자 생각은 달랐다.

 

“청장으로 와서 다양한 정책을 펼치는 부류가 있어요. 그런 정책이 인기를 얻으면 차기로 가는 디딤돌이 되지요. 하지만,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되고자 다양한 정책을 통해 인기를 얻고자 하지는 않았어요. 그보다 자기 권한으로 잘못된 것을 뜯어고치겠다는 쪽이었지요.”

 

조현오는 권한이 커질수록 징계 수위도 높였다. 비리를 도려내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경찰 조직 안에서는 1985년부터 경찰대 출신들이 입문하면서 조직을 깨끗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이처럼 아래에서는 ‘경찰개혁의 첨병’이라는 자부심으로 뭉친 젊은 피가 수혈되고 있었고 위로는 모든 청장이 유착 근절을 부르짖었다.

 

조현오도 부패 경찰 척결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과격했다. 일반적으로 유착에 대한 징계는 ‘사후 조치’였다. 경찰이 업주에게 돈을 받은 게 나와야 징계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현오는 단속 대상자인 업주와 업무 외 전화를 아예 금지했다. 물 한 잔도 얻어먹지 말라는 지시를 어긴 경찰에게는 여지없이 징계가 떨어졌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한 기자가 내린 평가는 박했다. 단순 통화는 통신 자유에 해당하며 설사 지시를 어겨 징계를 하더라도 행위에 비례하는 문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조현오가 징계한 직원 중 일부는 소청심판이나 행정소송을 거쳐 살아나기도 했다. 조현오가 내세운 ‘일벌백계’는 명료했지만 분명히 지나친 면도 있었다.

 

지방청장은 경정 이하 승진과 전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보통 경찰서 간 전보 인사는 인근 경찰서로 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성과를 기준으로 인력 배정을 진행한 조현오에게 관례는 관례일 뿐이었다. 해운대경찰서에서 강서경찰서로 옮기게 된 직원들 불만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해운대와 강서는 부산에서 경찰서 사이 거리가 가장 먼 곳으로 이동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2009년 경기지방청장으로 부임한 조현오는 징계 차원에서 평택에 근무하는 직원을 포천으로 보내기도 했다.

 


 

2010년 서울청장 때는 비리 온상으로 지목된 강남경찰서 수사팀을 뒤엎었다. 당시 강남 유흥업계가 단속을 돈으로 무마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조현오는 업주와 엮인 경찰을 서슴없이 징계하기 시작했다.

 

한 언론은 조현오가 차기 경찰청장 임명을 앞두고 ‘자기 관리’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강력한 내부 비리 척결로 청와대 관심을 끌고자 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현오가 청와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맞다. 민정수석실도 나름 움직이기 시작한 듯했다.

 

(다음 8화-조현오, ‘룸싸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서형 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구겨진 제복 목차

⦁제1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만나다

⦁제2화. 장자연 사건 부실수사는 왜?

⦁제3화. 조현오의 관운, 경정에서 총경까지

⦁제4화. 조현오의 관운, 경무관부터 청장까지

⦁제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제6화. 조현오의 인사청탁 간부 명단 공개

⦁제7화. 조현오 식 성과주의의 성과는?

⦁제8화. 조현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어떻게?

⦁제9화. 조현오, 검경 수사권 조정 어떻게?

⦁제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제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제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제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제14화. 조현오가 오버했던 이유

⦁제15화. 조현오가 무능한 간부를 다루는 방식

⦁제16화. 대한민국 마당발 이철규와 조현오

⦁제17화. 조현오 경찰청장의 인사권 행사 방식

⦁제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제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제20화. 조현오가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밀어붙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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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

•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

•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

•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2010년 2월 10일, 112 신고가 들어왔다.

 

불법 오락 신고자를 오락실 사장이 찾아내 폭행한 보복범죄 사건이었다. 오락실 사장이 신고자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오락실 사장에게 뇌물을 받은 경찰관이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컸다. 서울청장 조현오는 황운하에게 유착 경찰관 색출을 지시했다. 오락실 사장은 이미 휴대전화도 지니지 않은 채 잠적했다.

 

잠적한 용의자를 휴대전화 추적이 아닌 방법으로 하루 이틀 내에 찾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용의자를 붙잡았다 해도 자백을 받아내는 일도 문제였다. 자백을 받으면 해당 경찰관에게 또 자백을 받아야 했다.

 

집요한 수사 끝에 오락실 사장을 검거했고, 자백도 받았다. 그 결과 형사과장 황운하는 2010년 2월 25일 그 사장과 유착관계였던 강남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 네 명을 구속, 한 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2월에는 서초경찰서가 한 가출 여학생을 찾고 있었다. 통화기록 조회로 위치 추적이 가능했다. 여학생은 한 유흥업소에 있었다. 여학생은 업소에서 성매매를 강요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업소 장부를 압수하고 종업원 조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업소 주인은 바지사장이고 실소유주는 이경백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경백은 미성년자 성매매를 강요한 업소 실소유주로 긴급 체포됐다.

 

이렇게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피의자를 수사관서 등 일정한 장소에 인치하여 단기간 신체 자유를 제한하는 게 체포 제도다. 형사소송법은 사법경찰관이 긴급체포를 하면 검사에게 사후 승인을 받게 돼 있다.

 

미성년 성매매 문제로 사안이 심각했으나 검찰 기각으로 이경백은 풀려난다. 이 소식이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보고됐다. 황운하는 서울청 기자실에서 검찰에 대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성매매 사건은 생활안전과 담당이다. 하지만, 조현오는 황운하를 부른다. 황운하는 다시 폭력계 팀과 이 사건을 의논한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미 이경백을 잘 알고 있었다. 2008년 자신을 수사하려던 경찰청 특수수사과를 박살 낸 인물로 알려졌다. 당시 특수수사과에 발령받은 한 직원은 6명이어야 할 팀원이 2명뿐인 이유가 궁금했다. 확인하니 세 명은 이경백 때문에 날아갔고 나머지 한 명은 스트레스를 받아 병가 중이라고 했다.

 

이처럼 이경백을 잡으려면 완전히 벗겨야 했다. 어설프게 접근하면 다치는 쪽은 경찰이었다. 꼼꼼하게 수사해야 검찰도 구속영장 청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황운하는 수사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경백은 업소마다 바지사장을 내세웠다.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이 없었다. 수익은 추적할 수 없도록 세탁했다. 서초경찰서가 압수한 자료 중에는 업소 장부가 있었다. 일부 업소와 최근 3년 동안 매상이 적힌 장부였다.

 

수사팀은 이 장부가 신빙성 있는지 입증해야 했다. 73개 계좌에 흩어진 자금을 추적하는 일이다. 빼돌린 세금까지 찾으려면 국세청 직원 도움이 필요했다. 처음 수사를 시작했던 서초경찰서 팀과 서울청 팀까지 수사팀 합류 인원은 18명이었다.

 

이경백은 자신은 실소유주가 아니라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 막바지에 이경백은 황운하와 면담했다. 황운하가 카드를 내밀었다.

 

“비호세력 몇 명 불어라. 그럼 혐의 몇 개는 빼주겠다. 그거 안 하면 끝까지 죽는다. 내가 경찰에 있는 한 죽는다.”

 

“제가 평생 모시겠습니다. 퇴직 후에도 진짜 책임지겠습니다.”

 

“너하고 다른 할 말 없다. 너 혹시 나중에 빽 써서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경찰에 있는 동안 끝까지 쫓아다닐 거다. 내가 경찰을 그만둬도 내 후배들이 계속 경찰에 있을 거다. 네가 죄지은 만큼 응징을 받아라.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뇌물 바친 공무원을 부는 것밖에 없다.”

 

이경백 표정에는 구속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경찰은 3년 매장 장부에서 42억 세금 탈루액을 특정했다. 한 해에 14억씩 빼돌린 셈이다. 한 해 10억 원 이상 탈세는 10년형도 가능하다. 경찰은 이경백을 특별경제가중처벌법 조세법위반, 성매매알선, 전자금융거래법, 청소년 보호법, 범죄수익은닉 등으로 영장을 청구했다.

 

이경백은 2010년 6월 24일 구속된다. 그날 수사팀은 노래방을 갔다. 황운하는 김정호 노래를 골랐다.

 

예상대로 검찰은 경찰 수사 내용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성매매업소에 온 여성이 청소년인 줄 몰랐다는 이경백 주장을 수용했다. 그리고 경찰이 특정한 세금탈루액 42억 원 중 21억 원만 기소했다. 한 해에 7억 원씩 빼돌린 셈인데, 10억 원 미만은 보석 가능성이 커진다. 검찰은 이경백을 오직 세금 누락과 성매매 알선, 청소년 보호법 위반 세 가지만 기소했다.

 

이경백을 구속하자 두 번째 수사가 기다렸다. 경찰은 이미 이경백 휴대전화 통화기록 조회 영장을 모두 받았다. 당시 이경백은 대포폰을 사용했다. 먼저 이경백이 사용하는 대포폰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이경백 대포폰을 찾아냈고 그 휴대전화로 지난 1년 동안 경찰관 69명과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공직자는 업주와 어떻게 엮이는가? 처음에는 커피 한 잔부터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간단한 식사, 그다음 저녁에는 소주 한 잔, 그러다가 노래방을 간다. 한 사람이 포섭되면 그 직원은 자신과 친한 직원을 데리고 온다.

 

이경백은 특히 한 번이라도 만났던 공무원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가 운영하는 수십 개 업소가 인맥 형성을 뒷받침했다. 이경백은 이미 1997년 북창동에서 호객꾼 노릇을 할 때 파출소 직원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인맥을 유지했을 테다.

 

당시 서울청장 조현오는 업주 관계자와 공무 외에 전화 한 통, 물 한 잔도 말 것을 지시했다. 자진 신고기간을 주기도 했다. 지시를 어긴 직원은 숙청하듯이 날려버렸다. 이경백과 통화한 명단은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실로 전달됐다.

 

“수사 강도가 하도 세서 자기 새끼들 다 죽이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이를 지켜본 한 경찰관의 회상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유흥업소 업주와 접촉 금지' 지시 위반으로 40명을 징계했고 이 가운데 6명을 구속했다.

 

예상대로 이경백은 구속 3개월 만인 9월 7일 보석으로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된다. 경찰청장이 되면 대외적으로 조직에 대해 입장표명을 해야 했다. 바로 수사권이다. 당시 국회 사법개혁 소위원회가 구성돼 검찰 개혁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다. 국회를 중심으로 장이 마련된 만큼 경찰은 자기 조직 견해를 밝혀야 했다.

 

조현오는 호전적으로 알려졌다. 명분 있는 싸움은 애써 피하지 않았다. 취임 초기 수사구조개혁팀을 수사구조개혁단으로 격상한 데서도 이런 기질이 엿보인다. 이전부터 개혁팀을 경무관이 책임자로 있는 개혁단으로 격상하자는 제안은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면 검찰과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주변에서는 조현오가 황운하를 경무관으로 승진시켜 이 자리에 앉히려 한다고 봤다. 실제 그해 조현오는 경무관 승진인사에 황운하를 포함했다. 하지만, 검찰 출신 민정수석인 권재진이 반발했다. 황운하가 서울 서장 경험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조현오는 바로 황운하를 송파서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음 인사에서 황운하를 경무관으로 승진시켰다.

 

그동안 형사소송법 개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조현오는 전국지휘관회의에서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 검찰에 타격도 입혔다. 2011년 말 경찰청에 범죄정보과와 지능범죄수사대가 설치됐다. 경찰청 내 신설 조직은 이런 의미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사기능을 행하는 곳은 검찰과 경찰이다. 비록 경찰이 검찰 수사지휘를 받지만 경찰 특수수사기능이나 범죄정보 기능이 살아 있으면 검찰 부패비리를 견제할 수 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고위공무원 비리, 경제사범과 같은 대형 사건을 인지해 직접 수사한다. 범죄정보과 역시 검사 등 비리 공직자 범죄 정보를 캐내고자 만든 기구다. 검찰에는 중수부와 범죄정보과가 이런 기능을 했다.

 

조현오가 경찰청장이 되면서 만든 새로운 기능 중에 수사기획관이 있었다. 경찰청 지능수사대와 범죄정보과 등을 지휘하면서 수사국이 맡는 중요 사건에 대해 수사 업무를 챙기는 자리였다. 당시 대검찰청도 중수부장이 수사기획관을 거느렸다. 수사기획관이라는 보직은 그 자리가 주는 무게감과 중요성으로 경무관으로 승진한 사람이 바로 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조현오는 바로 황운하를 수사기획관으로 내정했다.

 

“황운하는 수사경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 세워라. 일상적인 업무 하지 마라.”

 

황운하도 경찰 존재감과 자존심을 드러낼 수 있는 이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현오 청장이 바로 태도를 바꾼다. 예상치 못한 일이 전국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황 기획관은 무슨 이런 계획을 세우는 거 하지 말고 지능수사대, 특수수사과, 범죄정보과 끌고 디도스 수사를 해라.”

 

‘디도스 사건’은 2011년 10월 26일 보궐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와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 홈페이지가 사이버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사건 당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 수사에 들어갔다. <나꼼수>는 10월 29일 26회 방송에서 이 내용을 짚었다. 선관위 홈페이지 전체가 마비된 것이 아니라 일부 메뉴만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단순 사이버테러가 아니라 선관위 내부자 공모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경찰은 12월 1일 디도스 공격을 저지른 강 씨와 일당 3명, 이를 지시한 공현민을 검거했다. 공현민은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구식을 보좌하는 수행비서관이었다. 경찰은 2011년 12월 6일 국회의장인 박희태를 모신 전 비서 김태경을 소환한다. 공현민과 김태경은 분명히 사건 발생 전 후로 돈거래가 있었다. 김태경은 사건 관련성을 모두 부인했다. 공모 증거 또한 없었다.

 

이쯤이면 누구나 예상하는 앞날이 보이기 시작한다.

 

선거 부정 관련 사건은 여야가 날카롭게 맞설 수밖에 없고 언론도 중요하게 다뤘다. 만약 경찰 수사 결과가 각종 의혹을 잠재울 만큼 명확하지 않으면 야당은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요구한다. 게다가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 조정’을 놓고 어느 때보다 예민할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경찰 수사 허점을 놓칠 리 없었다.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당시 조현오 청장이 배후에 대한 여지를 열어두자고 설득했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누구를 감싼다는 인상을 주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사 결과라면 진실 여부를 떠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경찰은 피의자 구속 열흘 안에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 이를 내세워 수사에 시간제한이 있었던 점을 상기하거나 미흡한 부분은 검찰 수사에 넘기는 방법으로 폭풍을 피할 수도 있다.

 

수사결과가 일반인들이 믿고 싶어 하는 방향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황운하는 왜 당당하게 경찰 수사결과를 드러내지 못하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황운하는 단호했다.

 

"열어둘 여지가 없습니다."

 

"황 기획관이 너무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단정적으로 하셔도 좋습니다. 배후 없습니다."

 

황운하는 세간 여론에 휩쓸리기보다는 수사경찰로서 자존심과 당당함이 중요했다. 그리고 12월 9일 디도스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 씨 단독범행이며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다음 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글쓴이 : 서형 seohyung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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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서로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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